기사상세페이지

도자의 여로 (4)
청자종 편

특집부
기사입력 2021.08.13 07:30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마음으로 듣는 저 종소리

      

           이규진(편고재 주인)

     

    내게는 죽편으로 널리 알려진 서정춘 시인이 만들어준 자필 시집이 한 권 있다. 기존의 시집 중에서 20여 편을 고르고 이것을 서 시인 본인이 철필로 꾹꾹 눌러 써 만들어준 이 시집의 제목은 종소리’. 죽편도 좋지만 이 종소리 또한 내가 좋아하는 시이기 때문에 이 자필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20210812_172242.jpg
    [국악신문] 청자종편 현고 13×6cm 편고재 소장

     

     

    한 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

    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멀리멀리 퍼져 나가는 종소리의 긴 여운이 귓가에 맴도는 듯한 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종을 이야기할 때 그 특징으로 우선 정상부의 용뉴龍鈕와 몸체의 비천상을 이야기한다. 외형상 아주 아름답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종은 어디까지나 소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기물이다. 저 멀리서 새벽을 일깨우며 들려오던 산사의 종소리는 얼마나 신비롭던가. 한국 종의 매력은 실상 외형보다도 맥놀림에 의한 그 소리에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종 상부에 음관을 두고 종 아래에는 명동을 두어 소리가 하늘을 향해 소리치고 땅이 공명하는 한국 종의 아름답고 그윽한 그 종소리는 흔히 영혼을 깨우고 세상을 밝히는 울림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종은 소리를 위해 존재하는 기물이기 때문에 금속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타종을 위해서는 우선 이를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깨지기 쉬운 청자로 종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실제로 청자종靑瓷鍾이 존재한다. 아쉬운 것은 원형이 남아 있는 실물은 없고 깨진 조각으로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이대 박물관에 있는 음각무늬편, 강진 청자박물관의 목련편, 부안 청자박물관의 '양각 부처님 편'이 그것들이다. 필자도 근래 이 청자종 편을 한 점 구했다. 지인 집에 들렀다가 눈에 띄어 양도를 받은 것인데 여간 흥분되는 일이 아니었다.


    청자종 편은 상대와 하대의 윤곽이 남아 있는데 상대는 아래쪽을 향해 하대는 위쪽을 향해 연판문을 두고 있다. 상대 바로 밑에는 유곽 없이 양각의 목련만 여섯 개가 보이고 몸체에는 비천상의 휘날리는 천의 자락이 일부 남아 있는 가운데 당좌의 연꽃무늬도 약간 보인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의 형태가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남아 있어 전체적인 종의 모양새를 유추해 볼 수가 있다. 앞에서 열거한 박물관 소장품들보다 크기도 크거니와 더 구체적으로 종의 형태를 연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치지도 못할 청자종은 왜 만든 것일까. 종소리는 처음에는 귀로 듣지만 결국은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에밀레종으로 널리 알려진 봉덕사 신종에 새겨진 글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무릇 지극한 도는 형상의 밖에 있어 보아도 능히 그 근원을 볼 수 없으며 대음(大音)은 천지의 사이에 진동하나 들어도 그 울림을 들을 수 없습니다. …… 그러므로 신종을 매달아 중생으로 하여금 일승(一乘)의 원음인 종소리를 듣고 깨닫게 하려 합니다.”


    이에서 보듯 종소리는 단순히 울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기 위한 방편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하면 고려인들은 청자종을 통해 그 소리 안 나는 진리의 종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었을까. 푸른 청자빛 하늘을 통해 영원을 꿈꾸었던 고려인들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청자종 편을 통해 느껴지고는 한다.

     

     

    경연대회

    경연대회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