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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2)
安昌浩論- 人物春秋-印貞植
김종욱
1. 平南 江西땅 秀麗한 舞鶴山을 등지고 溶溶히 흐르는 大同江을 앞으로 바라보면서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一 寒村 ‘도마메’에서 한 貧農의 아들로 태어난 한 個의 人間으로써의 島山 安昌浩가 나의 論하려는 바 對象이 아니다.
오직 三十餘年의 長久한 歲月을 通하여 朝鮮의 土着 資本家 階級의 歷史的 利害를 終始一貫 숨김이 없이 스스로의 一言一動의 中에로 表現하고 代辯하면서 그와 온갖 歷史的인 變遷과 流動을 같이 하여 오는 한 個의 物質的 勢力으로써의 島山, 또 現在의 歷史的 階級에 있어서는 頹廢되고 無氣力한 이 땅 小市民들의 幽靈俱樂部인 저 興士團 또는 修養同友會의 巨頭로서의 安昌浩가 이제부터 내가 敢히 讀者諸賢의 앞에 그 階級的 本體를 明白히 提示하는 同時에 그의 앞에 남긴 不可避의 歷史的 路線을 科學的으로 規定하여 보이고자 하는 人物的 對象인 것이다.
2. "有産者團의 商品의 低廉한 價格은 可히 如何한 ‘萬里長城’도 粉碎하여써 野蠻人의 頑强한 異人嫌惡를 征服하는 重砲이다.”
그러므로 極東의 無涯한 處女地를 向하여 商品輸出의 廣汎한 窮한 泉原을 獲得할 것을 唯一의 目標로 하여 멀리 山넘고 물 건너 이 땅 三千里의 近海를 威脅하고 있던 當時 隆盛한 發展期의 歐美 資本主義가 깊이 數千年 동안에 長久한 牧歌的 歷史를 通하여 封建的 城廓벌에 窒息的으로 封鎖되어 亞細亞的 沈滯에 잠자고 있던 李朝 末葉 朝 該 社會를 內部的으로 힘차게 衝擊하고 刺戟하였을 때 中國이나 또는 當時 日本社會와 함께 당시 朝鮮도 歷史- 未曾有의 急激性을 띈 社會的 動搖를 經驗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身分的 隸從관계 自作自給的 自然經濟 中世紀的 沈滯狀態 ‘初夜의 權利‘ 孔孟 상투 등 다시 말하면 封建的인 社會體系 全般에 대하여 最後를 告하는 弔鐘이 서울과 平壤을 爲始하여 三千里의 坊坊谷谷에서 우렁차고 勇敢스럽게 울려 들리기 始作한 것이다.
當初부터 崎嶇스럽기 짝이 없었던 우리 朝鮮의 近世史는 勿論 이러한 封建的 社會體系의 崩壞過程이 이 땅 社會內部로부터 自生的으로 또는 獨立的으로 發育成長된 土着 新興資本의 社會的 生産力의 前進에 의하여 遂行되고 促成됨을 頑强히 拒否하였다.
이처럼 當時의 社會的 動搖가 物質的 生産力의 發展에 의하여 基礎되지 못하였었다 할지라도 그러나 他方으로 先秦資本의 重壓的 包圍와 刺戟이 激甚하였던 만큼 政治機構意識 道德關係등 사회의 上部構造로부터의 動搖는 十七 八世紀의 佛蘭西에 比하여도지지 않을 만큼 急激性을 띄고 發展하였다.
同時代 中國의 新興資本階級의 騎士 汪精衛가 四億萬의 民衆을 향하여 ‘盜跖은 一世之賊이지만 ㅇ[미상]丘는 萬世之賊’이라고 喝破하고 있었을 때 이에 呼應하여 朝鮮의 新興市民의 騎士들도 封建的 道德의 鐵鎖와 專制的 政治機構에 대한 斷乎한 反抗을 거듭하는 同時에 그들이 要望하는 市民社會의 建設을 肉彈的으로 促成한 것이다.
南國一帶에서는 東學黨의 反亂이 李朝의 體系를 根抵로부터 震撼케 하였으며 金玉均一派의 ‘쿠데타’가 市民社會의 아름다운 姿樣을 全 民衆의 앞에 宣示하였으며 또 都鄕 各地에서는 舊學에 對抗하여 新學의 設立이 勃發하게 促成되고 있던 그때 他方으론 日滿의 戰雲이 急迫한 形勢로 닥쳐왔으니 때는 正히 歷史上 그 類例가 없는 非常時였다. 이 非常時를 能히 非常時로써 自覺하게 되자 곧 ‘호미자루’를 내던지고 單身 서울로 올라와 둥글둥글한 그러나 날카로운 눈쌀을 四野에 던지면서 힘찬 두 주먹을 흔들면서 성낸 獅子와 같이 民衆의 覺醒을 외치던 한 명의 弱冠 風雲兒가 나타났으니 그가 곧 三十年前 옛날의 島山 安昌浩이다.
그러나 그의 聰明한 눈쌀 그의 힘찬 두 주먹도 事實은 當時 新興資本階級의 覺醒이었음은 그도 또한 理解할 수 없었던 歷史的 事實이다.
3. 그의 ‘이데올로기’가 當時에 朝鮮의 社會的 情勢에 制約되어서 비록 雜多한 封建的인 不純한 要素를 많이 包含하였다고 하더라도 微弱하나마 當時의 新興市民階級의 利益을 代表한 者인 限에서 이 島山의 存在란 그것도 確實히 한 個의 歷史的 事實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沈滯하고 腐敗한 封建朝鮮의 한 個의 커다란 進步的 存在가 아니면 안 된다. 그의 唯一한 救國的 標語는 一도 敎育이요 二도 교육이었다. 그는 關西의 雄都 平壤에 大成學校라는 中學校를 設立하고 그것을 中心으로 各地에 小學校를 設立하기에 努力하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靑少年들을 ‘스팔타’ 式으로 敎育訓練한 것이었다.
當時의 朝鮮을 回顧하라. 朝廷에서 밥먹는 수많은 어중이 떠중이 멍텅구리 바보들은 날마다 어찌하였으면 民衆을 더욱 많이 苛斂誅求할 것을 생각하기와 또 朝鮮의 運命과 重大한 관계가 있는 日露의 風雲을 손가락질하고서 누가 이길까 하면서 消日을 하고 있었으며 廣汎한 民衆은 塗炭에 呻吟하면서 祖國이 어느 배에 실리어 어디로 떠내려가는지도 모르고 封建的 惰眠에서 힘없이 하품만 하고 있던 때가 아니었던가. 이때에 있어서 한 個의 나라의 先驅者로써 한 개의 階級의 前衛로써 當面의 適切한 ‘슬로건’이 교육 그것이었던지 아니었던지는 모르겠으나 아니 교육이라는 遠大한 展望을 가진 事業보다도 혹은 焦眉의 救急的인 다른 任務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島山 개인의 좀 더 많이 聰明하지 못한 것으로 그의 功績을 過小評價할 아무런 이유도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明治維新 당시에 있어서 일본의 청년들이 허리에 칼 차고 街巷으로 徘徊하며 全日本의 정치적인 中心地가 物情이 騷然하던 그 당시에 있어서 고요히 三田의 수풀속에 숨어서 靑年子弟에게 所謂 文明的 교육을 賦與하는데 熱中튼 福澤愈吉이란 存在가 近代 일본의 國民史에 있어서 잊어버리지 못할 巨大한 存在가 아니던가. 資本主義 일본의 思想的 啓蒙 아울러 자본주의 일본의 經濟的 建設者의 養成, 이 두 가지의 巨大한 任務를 한 개의 인간이 遂行하였다는 것으로서는 누구나 그의 赫赫한 大功績을 是認치 않을 者 없을 것이다.
絶對的으로 본다면 島山의 그 당시의 功績은 무어라 해도 우리는 永遠히 認定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믿는다. 유명한 獨逸의 天才的 思想家 ‘하이네’가 ‘삼송’이 斷頭斧를 휘두르기 전에 먼저 ‘볼테르’가 辛辣한 哄笑를 깔깔 웃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말한 바와 같이 封建的 專制機構를 무너뜨리자면 먼첨 封建的인 道德과 낡은 意識의 捕縛으로부터 전 민중을 解放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科學的 眞理를 그가 能히 뚜렷하게 認識하였던지 못 하였던지는 우리가 알 바 아니지만 何如間 이 眞理를 實行하지 않으면 안 될 嚴重한 義務를 當時 조선의 新興하는 資本主義的 要素의 發展이 島山에 향하여 黙黙히 命令한 바 있다.
4. 時局이 변해서 韓國이 朝鮮으로 改名하게 되자 島山은 조선 내에 이 以上 머물러있을 수 없게 되었다. 鴨綠江 저 便의 넓다란 曠野는 無限한 魅力을 가지고 이 不運兒를 불러가고야 말았다.
그는 조선의 時局이 요즈음 귀에 익은 말로 ‘超非常時’라던 당시에 있어서 교육사업이라는 遠大한 展望을 가진 일을 할 만큼 또 熱血兒인 安昌浩답지 못하게 悠長한 心氣를 가진 사나이인 만큼 大陸의曠野로 건너가서도 그는 그렇게 世人이 想像하는 急進的 思想家는 되지 못하였다. 아니 그는 悠遠한 曠野에 건너가서는 더 한層 ‘浪漫的’ ‘好好的 ’가 되고 말았다.
조선 내에 머물러있을 時에 있어서도 그가 노력한 교육사업이란 것이 당시의 조선을 改革하기 위한 일정한 理論的 根據위에서 計劃된 科學的 ‘프로그람’이 아니라 오직 조선의 新興資本의 要素의 要求에 응하는 漠然한 無意識的 行動에 不過하였다는 것을 大陸에서의 그의 행동은 如實히 고백하고 말았다. 科學的 ‘코스’에 基準되지 못한 敎育主義, 無 內容한 文化打鈴의 空語는 이제부터의 島山이 머리를 집어 뒤로 이고는 한 개의 怪物이 되고만 것이다.
조선이 잠자고 있을 時에 있어서 교육의 烽火를 든 것은 確實히 進步的 事業이었다 하드라도 民衆이 이미 눈을 깨어 다른 무엇을 要求할만큼 成長하였음에 不拘하고 依然히 더구나 중국까지 가서 敎育萬能主義, 空虛한 文化打鈴을 反覆한다는 것은 確實히 一種의 念佛에 不過한 것이었다.(註 먼저 '안창호론'은 결본이 많아서 전혀 문장 연결이 되지 않아 새롭게 관계자료들을 찾아서 정리한 것입니다. '조선중앙일보' 소장처가 많지 않아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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