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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편견을 지니고 있던 학자의 편견 탈출기
웃음과 눈물로 우리를 위로한 노래의 역사

김한나
기사입력 2021.03.1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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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특유의 문화적 DNA와 시대 상황들이 트로트의 변신을 이끌었다는 주장에서부터 ‘100년의 역사를 지나 이 시대의 영웅이 된 노래라는 등의 평가로 열풍을 일으고 있트로트. 과연 이 트로트는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트로트라는 용어는 합당한 것일까? 트로트는 어떤 역사적 변천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과거 트로트와 현재 트로트의 같고 다른 점은 무엇일까?

    오늘날 대중음악사에서 트로트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차마 트로트를 좋아한다 말하지 못했던 이들, 거세게 불고 있는 트로트 열풍에 어리둥절한 이들, 아직도 트로트를 부르는 게 불쾌한 이들에게 내미는 꼼꼼한 대답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이 발간되었. 저자는 대중음악사학자로 자처(?)하는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장유정 교수이다.

     

    1. 트로트에 편견을 지니고 있던 학자의 편견 탈출기

    2020년 한 해대한민국은 트로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열풍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 시발은 한 방송사의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이었지만 이 바람은 이제 거의 모든 방송 프로그램을 점령했다. 가히 광풍이라 할 만한 트로트의 인기에 어리둥절한 사람도 많고,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즐기는 이도 많다. 어느 쪽이든 궁금하긴 하다. 왜 갑자기 트로트의 바람이 불게 되었는지, 한때 촌스럽고 천박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트로트의 어떤 면에 사람들이 푹 빠지게 되었는지.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웃음과 눈물로 우리를 위로한 노래의 역사에서, 노래에 빠져 노래를 연구하며 직접 노래하기도 하는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장유정 교수가 바로 이런 의문에 대답한다.

     

    2. 트로트가 왜색 노래로 찍힌사연

    1963, 그 유명한 음악다방 세시봉에서는 성점 감상실이라는 걸 운영했다. 사전 예고 없이 노래를 들려주고 세시봉에 온 젊은이들이 노래에 대한 의견과 함께 별점을 매기는 것이었다. 이때 초대된 유명 가수들도 노래의 평점을 매겼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들려준 날 초대 가수로 온 봉봉 사중창단은 왜색 조라는 이유로 별점을 매기는 걸 거부했고, 이 사실이 주간한국에 보도되었다.

     

    저자는 트로트의 뿌리를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중가요사에서 트로트는 몇 차례 논쟁의 중심에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트로트의 뿌리와 관련된 것이었다. 바로 왜색 시비. 최초의 트로트 논쟁은 1964년에 발표된 이미자의 명곡 동백아가씨에서 시작됐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노래는, 이듬해 돌연 방송 금지곡이 되었다. 이 조치에 대해, 그간의 통념은 한일수교를 앞둔 군사정부가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동백아가씨왜색이라는 딱지를 붙였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당시의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하여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다. 서양 음악 전공자, 방송국 음악 담당 실무자 등 이른바 음악 엘리트들이 동백아가씨의 인기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 방송 금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때 그 음악 엘리트들이 동백아가씨를 비판한 근거가 바로 왜색이었다.

    이때 찍힌 왜색이라는 낙인은 1980년대 후반 노래 운동의 일환으로 대중음악을 연구평론한 이들에 의해 더욱 공고해졌다. 트로트는 체제 순응적인 거짓의 노래로, 일제가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식시킨 갈래라고 주장한 것이다. 트로트가 왜색의 노래라는 주장에는 트로트가 일본 전통음악인 엔카와 같은 갈래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런 통념에 질문을 되돌린다. 과연 트로트는 엔카인가?

     

    3. 엔카는 일본의 전통음악도, 트로트의 뿌리도 아니다

    미스터트롯에서 정동원이 불러 화제가 된 희망가, 이 풍진 세상1923년경 발매된 노래다. 익히 아는 것처럼 일본 노래의 번안곡으로, 원곡은 마시로키후지노네(真白富士)또는 시치리가하마노아이카(七里哀歌)라는 제목의 노래다. 1910년 일본 가마쿠라에서 발생한 배 사고로 많은 중학생들이 희생되었는데, 이들을 위한 애도가로 만들어져 일본에서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또 원곡이 있다. 1888년에 미국에서 간행된 노래집 프랭클린 스퀘어 송 컬렉션(Franklin Square Song Collection)에 실린 찬송가 When We Arrive At Home이다.

     

    많은 한국인이 트로트는 곧 엔카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엔카는 무엇일까? 일본에서 엔카는 연설을 노래로 만든 엔제쓰카(演説歌)’, 즉 메이지 10년대(1877~86)에 일본에서 자유민권사상을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노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엔카라 불리던 노래는 오늘날 우리가 엔카라 알고 있는 노래와는 다르다. 1920년대 초기와 1930년대 재즈와 여타 서양 음악 장르를 받아들여 일본화한 갈래가 1960년대 이후에 엔카로 명명된 것이다. , 일본에서 서양 음악을 받아들여 일본화하고 있을 때, 한반도에서도 서양 음악과 일본 음악을 받아들여 한국의 대중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당연히 가지고 있는 반일감정, 그리고 지식인 계층의 엘리트 의식이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트로트라는 갈래를 우리 노래로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화면 캡처 2021-03-16 233137.jpg

    4. 트로트, 한국인과 함께 울고 웃다

    초창기 트로트의 음악적인 특징은 4음과 7음이 빠진 단조 5음계(minor pentatonic scale)2박자로 설명된다. 그러나 한국 대중음악 최초의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황성의 적(황성옛터)2박자가 아니라 우리 전통 장단과 통하는 3박자 곡이며, 5음계는 일본의 전통음악뿐 아니라 서양의 오래된 민요를 위시하여 동아시아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태동한 트로트는 어떻게 변화하며 지금에 이르렀을까? 저자는 광복 이전부터 2020년대 현재까지, 트로트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대중적으로 히트한 노래카추샤의 노래〉 〈이 풍진 세월(희망가)같은 일본 노래의 번안곡이었지만, 황성의 적〉 〈목포의 눈물처럼 한국인이 짓고 부른 노래가 탄생해 식민지 민중의 분노와 설움을 달래주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전쟁과 실향으로 인한 간난신고를 달래준 것 또한 트로트로, 가거라 삼팔선〉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단장의 미아리고개등이다.

     

    전쟁의 참화를 딛고 재건에 힘쓰던 1960년대에서는 향토적인 정서와 도시 지향적인 정서가 공존했다.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향한 임을 그리는 고향 여성을 이미자가 대변했다면, 화려한 도시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남성은 배호가 상징했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에 데뷔해 1970년대를 주름잡았고 지금까지 건재한 남진과 나훈아가 있다. 1970~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포크와 록이 대유행했는데, 트로트 역시 그 영향을 받아 록 트로트가 탄생했다. 송대관의 해 뜰 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 윤수일(과 솜사탕)사랑만은 않겠어요등이다. 그런가 하면 두 여성 트로트 가수가 국민 트로트도 내보였으니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김수희의 남행열차.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의 가요계에서 김연자, 주현미로 상징되는 트로트 메들리’, 그리고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의 트로트 4인방을 빼놓을 수 없다.

    점점 흥겨워지기는 했으나, ‘성인이 즐기는 유흥의 노래로 한정되던 트로트가 다시 전 세대가 즐기는 노래가 된 것은 장윤정이 어머나를 들고 나온 2000년대 들어서다. 10대들은 아이돌 멤버들이 부르는 트로트를 같이 불렀고, 노년 세대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백세인생을 노래했다. 그렇게 세력을 넓혀가던 트로트가 미스트롯진 송가인과 미스터트롯 7인방에서 폭발했다 할 것이다.

     

    이쯤 되니 대한민국 모든 세대가, 멀고 가까움이 있을 뿐 트로트의 자장 안에서 삶을 보내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이 모든 노래들, 록 트로트라느니 재즈 트로트라느니 댄스 트로트라는 이름을 마구 붙일 수 있는 이 노래들이 과연 하나의 갈래라고 할 수 있을지에 또 의문이 생긴다. 저자는 바로 이런 다양성,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이 트로트의 생명력이라고 단언한다. 다소 유치할 수 있는 트로트의 노랫말에 우리를 달래주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감정 과잉의 고갱이를 보여주는 트로트는, 때로 누군가가 집에서 보내는 일상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트로트를 듣고 부르며, 우리는 세대 공감과 소통을 경험하고 정서적 공동체도 회복했다. 단지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일지라도, 지금 현재 누군가에게 그 무엇보다 위로가 되는 것은 트로트다.”

     

    화면 캡처 2021-03-17 001403.jpg

     

    5. 본문에서 뽑은 주요 내용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 트로트는 왜 천대받게 되었나? 2부는 사회 변화와 함께한 트로트의 변모. 3부는 트로트의 세계와 미학을 담았다. 이 중에서 주요 내용을 뽑아 정리했다.

     

    대통령 박정희가 동백아가씨의 금지에 개입했다는 소문에 대해, 그 시절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김두영은 "대통령이 뭐 할 일이 없어서 노래 한 곡 금지하는 데 관여한단 말인가. 실상을 너무 모르는 백면서생들의 탁상공론이다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초기 트로트의 음악적 전형을 보여주는 목포의 눈물이 나올 당시 음반 가사지에는 제목 위에 지방 신민요라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형식임에도, 그 노랫말로 인해서 신민요로 불리기도 했던 정황을 포착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트로트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토착화에 성공한 갈래였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이국성을 표출한 노래들이 등장했던 것은 정치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검열이 심해지고 그때마다 불려 다니는 것에 염증을 느낀 많은 작사가와 작곡가가 정치와 무관한 이국적인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버스를 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버스 운전사들이 트로트 메들리에 빠져 있었는지를 말이다. 신나고 경쾌한 리듬에 친숙한 노랫말과 선율을 얹은 트로트 메들리는 졸음을 쫓고 힘내서 운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네 박자를 작사한 김동찬의 말에 따르면, 네 박자트로트의, 트로트에 의한, 트로트를 위한노래라고 한다. 트로트를 무시하고 천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반항으로 만든 노래가 네 박자였다.


    2000년대 이후의 트로트에서는 비극적 낭만성보다 희극적 유희성이 강조되는 측면이 높았다. 일상어나 비속어가 등장하고 의성어와 의태어 등도 자유롭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박현빈의 샤방샤방〉 〈곤드레만드레〉 〈빠라빠빠같은 노래에서 우리는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음성상징어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노래의 재미와 유희성을 더한다.


    그러고 보면 트로트의 흡수력과 포용력은 요즘 말로 이다. 모방과 복제, 갱신, 변신, 변모 등을 통해 끝없이 달라진다. 트로트가 계속 달라진다는 것은 머무르지 않고 흐른다는 것이고, 흐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박제가 아니다. 끝없는 핍박에도 트로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 변신과 포용력이 바로 트로트의 힘이다.


    누군가는 여기저기 할 것 없이 TV에서 온통 트로트만 나온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트로트가 받았던 오해와 편견, 그 속의 핍박과 설움을 감안하면 지금 트로트의 열풍을 좀 참아주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영원한 것은 없을 테니, 언제까지나 트로트의 열풍이 계속되지도 않을 것이다.

     

    6. 대중음악사학자 지은이 장유정

     

    2004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일제강점기 한국 대중가요 연구유성기 음반 자료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9년에 유재하론사랑,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평론으로 인천문화재단 주최 플랫폼문화비평상음악 부문상을 수상했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강연과 라이브 공연을 결합한 렉처 콘서트(Lecture Concert)’를 하며 장유정이 부르는 모던 조선: 1930년대 재즈송(2013)경성야행(京城夜行)(2020)이라는 두 장의 정규 음반도 발매했다. 현재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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