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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충돌하고 갈등하며 융합의 길을 모색해 오던 20세기를 거치면서 나는 절실하게 터득한 진리 하나가 있다. 강남의 귤이 회수淮水를 지나면 탱자가 되듯 문화에도 예술에도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공리公理가 통한다는 사실이 곧 그것이다.
지구촌의 이웃들이 똑같은 조건과 유사한 생활양태로 살아가고 있지만, 각기 민족 간에는 서로 다른 DNA를 지니고 있듯이 각 민족이나 지역 간의 문화예술에도 각기 다른 고유성이 있다. 나는 그 같은 고유성을 일러 종종 ‘문화의 원형질이니’ 혹은 ‘문화적 DNA’니 하는 말로 불러보기도 한다.
한국 음악 속에는 한국적인 기후풍토나 한국인의 기질 등이 얼키고 설키며 배양시켜 온 한국 음악 고유의 유전질이 있다. 그 같은 한국 음악 특유의 유전질, 다시 말해서 한국 전통음악의 DNA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전통가곡, 즉 정가正歌를 내세우고 싶다. 그만큼 정가는 한국 음악의 특수성은 물론, 전통문화의 개성을 통합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장르다.
이처럼 소중한 문화유산인 우리 정가임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와서는 극성하는 상업주의적 부박한 시류에 밀리면서 눈에 띄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국악계로 보나, 정부 당국의 문화정책 차원에서 보나, 천려일실千慮一失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나 문화는 어쩌면 소수의 선각자적 소신에 의해 이어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판소리도 그랬고, 산조 음악도 그랬으며, 여기 정가 또한 예외가 아니다. 특히 대중적 환호와는 거리가 먼 정가 분야는, 그야말로 고독한 예술적 소신이 남다르지 않고는 평생의 업으로 매진해 가기 힘든 장르다.
이 같은 조야한 여건 속에서도 정가의 맥을 오롯하게 이끌어 가고 있는 가객이나 단체가 있다면, 마땅히 우리는 그들에게 격려와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중견 가객 이준아가 이끄는 한국정가단은 그 같은 칭송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여창 가곡으로 명성을 굳힌 이준아의 탄탄한 내공이나 음악성도 범상치 않으려니와, 본인이 주역이 되어 창단한 한국정가단의 공연 경력 또한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가곡의 법통을 충실하게 재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가사에 가곡풍의 옷을 입혀서 참신한 경지를 펼쳐 내기도 하는 유연한 음악관은 가곡 음악의 맥을 통시적으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열린 예술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8회째 정기공연을 축하하며, 한국정가단의 활동에 박수를 보낸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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