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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블랙홀이 나타나 티끌하나 남김없이 모든 것을 휘어 삼켰다. 객석에 있는 관중이 윤은화의 블랙홀에 빠져들었다. 감동과 전율을 느낄 때면 소름이 돋는다. 나만의 감동은 아닐 것이다.
지난 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윤은화의 ‘양금 시나위’(초연)를 보았다. 비주류 악기로 취급받는 양금의 협연이었다. 이 작품은 협연자 윤은화 작곡으로 국악관현악과 만나 양금이 주인공이 되는 연주회였다.
나발의 힘찬 소리로 시작되었다. 윤은화의 양금소리는 귀로만 듣기에도 황홀하고 넋이 나가기 충분했지만, 채를 잡은 양손의 움직임과 몸짓 그리고 얼굴 표정까지 더해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했다. 의자 등받이에 맞닿은 상체는 강력한 장력에 이끌려 앞을 향하게 만들었다. 너무나 당차고 열정적이며 유혹적이기까지 했다.
그곳은 마치 양금의 세상이 되어 모두의 혼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적막공산을 단숨에 호중천으로 바꿔 놓았다. 단 한순간도 한 눈 팔수 없고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연주였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아까울 만큼 감탄의 연속이었다.
연주가 끝났을 땐 저 멀리 가 있던 넋이 허우적거리며 돌아오느라 정신을 번뜩 차려야 했다. 놀란 눈과 벌어진 입은 온 몸이 양금소리에 젖어 마를 틈이 필요했다. 그 여운은 돌아오는 내내 가시지 않았다. 만일 황진이가 윤은화의 ‘양금 시나위’를 들었다면 자신의 시에 선율을 입혀 달라고 의뢰를 했으리라는 상상도 했다.
작품 ‘양금 시나위’는 2015년 독주로 연주하였고, 이번에 국악관현악으로 재편, 초연이었다. 한국양금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윤은화의 연주세계는 무한한 듯하다. 청아한 양금의 선율을 머금고 나온 초겨울 저녁은 산뜻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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