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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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6월엔 내가 /이해인숲 속에 나무들이일제히 낯을 씻고환호하는 6월 6월엔 내가빨갛게 목타는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흠뻑 취하는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하얗게 쏟아버린아카시아 꽃타래 6월엔 내가사랑하는 이를 위해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찬 비 맞아도 좋은바위가 된다. 추천인:이창구(대종교문인회 회원) "나는 6월에 현충일이 있음을 기억한다. 그들을 생각하면 ”산기슭에 엎디어 찬 비 맞아도 좋은 바위"이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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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아카시아꽃/ 이해인향기로 숲을 덮으며 흰 노래를 날리는 아카시아꽃 가시 돋친 가슴으로 몸살을 하면서도 꽃잎과 잎새는 그토록 부드럽게 피워냈구나 내가 철이 없어 너무 많이 엎질러 놓은 젊은 날의 그리움이 일제히 숲으로 들어가 꽃이 된 것만 같은 아카시아꽃 추천인: 김화숙(국악인) "그렇다. 누군들 젊은 날의 그리움이 수북하지 않을까만, 칠순을 넘기는 갈 길이 급한 이에게는 더 수북할 것이다. 그 청신하고 푸르른 꽃 내를 어찌 이 나이라고 잊으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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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5월 /용혜원초록이 좋아서봄여행을 떠난다눈으로 보는 즐거움마음으로 느끼는 행복이가슴에 가득하다오월하늘이 좋아서발길을 따라 걷는다초록 보리 자라는 모습이희망으로 다가와들길을 말없이 걸어간다 추천인: 김세르게이(작곡가,사할린2세) "마음대로 자란 보리밭 녹색 물결, 그 이랑 사이로 나르는 종달이의 자유. 그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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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5월/ 이 해 인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 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 둔 기도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월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은총을 향해 깨어 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 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 내는 5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 추천인:김윤식(단원회 회원) 기도의 시인 이해인 수녀님의 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으니 분명 "아낌 없는 축복을 쏟아 내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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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오월/피천득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오월은 모란의 달이다.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나는 오월 속에 있다.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추천인:김경혜(화가)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푸른 신록을 바라보면 살아있는 모든 것이 봄날이다. 그리고 내 나이를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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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김춘수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쏘련제(製)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보(三十步)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頭部)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鋪道)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일만(一萬)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 사장(沙場)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한국의 열세 살은 잡히는 것 하나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의 분(憤)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항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뿌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람은 불면의 밤, 왜 모든 기억을 나에게 강요하는가.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대학생이었다. 일본 동경 세다기야서 감방에 불령 선인으로 수감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내 목구멍에서 창자를 비비 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머니, 난 살고 싶어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그 소리는 까마득한 어디서,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이면서…… 나는 콩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고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누가 나를 우롱하였을까. 나의 치욕은 살고 싶다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내던진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소녀의 뜨거운 피 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아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不眠)의 담담한 꽃을 피운다. 인간은 쓰러지고 또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또 쓰러질 것이다.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악마의 총탄에 딸을 잃은 부다페스트의 양친과 함께 인간은 존재의 깊이에서 전율하며 통곡할 것이다.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딩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 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 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추천인:김연갑(아리랑연합회) "55년 전쯤 국어 시간에 배운 시. 지난 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이 시를 떠 올리고 돌아와 다시 읽는다. 80년대를 뜨겁게 살아 온 내 또래들은 이 시의 저의(底意)를 안다. 여행은 과거를 소환하는 기제라지만 반 세기를 거슬러 가 본다. ‘문장형 시제(詩題)’로만 기억했던 이 시의 이곳을 기억에 담았다. 그런데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여기에 ‘아리랑 사연’이 담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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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꽃/김춘수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추천인: 김덕묵(민속학자) 우리들은 모두 누구에게 무엇이 되고 싶어한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오늘도 너를 생각하며 가만히 너의 이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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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알렉산드르 푸시킨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Не печалься, не сердись.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В день уныния смирись, 기쁜 날이 오리니 День веселья, верь, настанет.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Сердце в будущем живёт,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Настоящее уныло.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Всё мгновенно, всё пройдет, 지나간 것 그리움이 되리라 Что пройдёт, то будет мило.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추천인:이미르(사할린왈츠댄스단 단장) 오늘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내일의 태양은 반드시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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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4월의 비/이제하보소, 보이소로 오시는 4월 가랑비 헤어진 여자 같은 4월 가랑비 잔치도 끝나고 술도 깨고 피도 삭고 꿈도 걷히고 주머니마저 텅텅빈 이른 새벽에 가신 이들 보이는 건널목 저편 사랑한다, 한다 횡설수설하면서 어디까지 따라오는 4월 가랑비 추천인:기광룡 (사진작가) 그제의 가랑비. 턱 고이고 50년 전 회상하는 신세, 딱 그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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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여기저기 봄꽃들/ 한승수가로수 왕벚꽃 화려한 왕관을 쓴 채 임대아파트 울타리에 매달린 어린 개나리를 내려다보고 철없는 목련은 하얀 알몸으로 부잣집 정원에서 일광욕을 한다.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다. 화려함이 다르고, 눈높이가 다르고 사는 동네가 다르지만 그것으로 서로를 무시하지 않는다. 빛깔이 다르지만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 어우러져서 참 아름다운 세상. 추천인:최정순(전 사할린여성협회장) "우리도 4월의 꽃들처럼 서로 미워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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