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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순의제향·수토문화제 등 20건 지원문화재청은 올해부터 호국선열의 충의를 기리는 공간이나 역사적 장소에서 열리는 주요 기념행사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올해 지원 대상은 사적 '진주성'에서 열리는 진주대첩 순의제향 행사, 경상북도 기념물인 '울진 대풍헌'에서 개최하는 울진 수토 문화제 등 총 20건이다. 순의제향은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순절한 호국선열에 올리는 제사를 뜻한다. 진주대첩 순의제향은 1592년과 1593년에 진주성에서 발발한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로, 민관군 7만여 명이 적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한다. 울진 수토 문화제는 울릉도와 독도로 가던 수토사들이 머물렀던 곳에서 열리는 기념행사다. 수토는 수색해 토벌한다는 뜻으로, 조선시대에는 왜구 등의 침략을 막고자 수토군을 운영했다. 이 밖에도 국가등록문화재 '구리 한용운 묘소' 일대에서 열리는 추모 행사, 경기도 시도등록문화재인 '오산 유엔군 초전기념비' 일대에서 열리는 행사 등이 국비를 지원받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올해 5월부터 '문화재' 체제에서 '국가유산'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국가유산의 의미와 정신을 보존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진주대첩 순의제향은 임진년(1592년)과 계사년(1593년)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무공 김시민 장군, 창의사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희 등 의사 40위를 비롯해 7만명에 달하는 순국 의병들의 거룩한 뜻을 기리는 행사다. 신위(神位)를 모신 진주 창렬사에서 매년 제향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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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12)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덕적도에 대한 명상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니 문헌상 최초의 우리나라 섬 이름 당·신라 연합, 신라 칠 때 징검다리 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 역할도 두 사건 모두 역사의 큰 기점 형성 언젠가 코앞 북한으로 왕래하는 배 출항하는 날만 기다릴 뿐이다 서기 660년 6월, 소정방이 이끄는 대군 13만 명이 한반도로 물밀듯 건너온다. 산동반도 성산을 출발한 군대다.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 이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신라에서는 전선 100척 군사 오만 명과 태자 김법민을 보내 영접한다. 당군과 합류하니 18만 명, 백제군이 감당하지 못할 위력의 나당연합군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6월 20일 이들이 합류한 곳이 지금의 인천시 옹진군 덕적도다. 왜 덕적도였을까? 그것은 서해의 물길과 유사 이래 명멸했던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대립 혹은 네트워크를 전제해야 이해할 수 있다. 갯벌의 노두, 강변의 징검다리라고나 할까. 지금도 인천항을 드나드는 외항선들 길목이 덕적도의 작은섬 소야도와 건너편 소이작도 사이 물길임을 주목할 수 있다면 왜 이 섬인가를 알 수 있다. 예성강과 한강 아니 한 시대의 수도였던 개성과 한양을 오가기 위해서는 대개 이 수로를 건너야 한다. 중국의 여러 해안은 물론 일본과 동남아를 오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덕적도에 도착한 소정방은 법민에게 7월 10일 사비성을 치자고 제안한다. 왜 바로 부여로 내려가지 않고 20여일 덕적도에 머물렀을까? 항간에는 4개월여 머물렀다고도 한다. 20여일 머문 데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다. 대규모 군사로 위협을 해서 싸우지 않고 백제를 주눅 들게 하는 전략이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물때와 해류 특히 내안의 조류 흐름을 기다렸다는 해석에 나는 무게를 둔다. 음력 6월이면 지금의 양력 7월 그야말로 삼복더위다. 대규모 군대가 움직이기에 불리하다. 더군다나 식수와 군량미 조달이 원활하지 않았을 작은 섬에서 20여일을 기다릴 이유가 있을까? 답은 해류와 조류에 있다. 일 년 중 바닷물 수위가 가장 높은 때가 7월 백중사리다. 여름철이면 난류가 한류를 밀어내며 거대한 해류가 북상하고 겨울철이면 한류가 난류를 밀어내며 남하한다. 여기에 조석간만의 조류 흐름을 잘 읽고 조간대의 연안과 강의 갯고랑까지 읽을 수 있어야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설화로 남은 소정방과 덕적도 덕적도의 작은섬이 소야도이고 소야도의 큰섬이 덕적도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니 문헌상으로 최초의 우리나라 섬 이름이다. 덕적도의 작은 섬 소야도(蘇爺島)는 소정방의 이름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소(蘇)는 소정방의 성씨요 야(爺)는 아비 혹은 신이라는 뜻이다. 소정방이 신라의 아비라도 된다는 뜻일까? 소야도 노인회장의 구술을 들으니 관련 이야기가 한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헐렸지만 소야도초등학교 해변을 '담안'이라고 한다. 흩어진 주춧돌들이 있었다는데 이를 당나라 군대와 연결시켜 해석한다. 소야도 남동쪽 끝 즉, 소이작도를 바라보는 해안 이름이 '진대끝' 혹은 '진대골'이다. 당나라의 군대가 진을 치던 곳이라는 뜻으로 풀이한다. 여기에는 마치 실제 사용한 듯한 돌절구 형식의 바위가 있다. '진대끝돌절구'라 한다. 이 또한 당나라의 군대와 연관시켜 해석한다. 소야도 아홉 개의 경치 중 하나로 꼽는 곳이다. 진대끝에서 당나라 군대 본부가 있었다는 곳까지 연결된 긴 모래사장을 '감'이라고 한다. 당나라 군사들이 밟고 이동했기 때문에 갯벌이 굳어져 단단하게 되었다나. 실제 소야도 사람들이 이곳을 지날 때는 해안으로 돌지 않고 단단한 '감' 갯벌을 가로질러 간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비롯된 소정방의 덕적도 주둔 사실은 날개를 달고 스토리텔링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으니 은혜를 입었다는 점에서 이런 시선들이 생겼을까? 팩트와 픽션을 뒤섞은 팩션의 확장이 어디까지인지 좀 더 들여다봐야겠다. 어쨌든 중국의 황족 전횡을 마을 시조로 여기는 외연도 등 일부 섬이나 서복의 경유지 및 도착지로 알려진 지명들과 더불어 대중국 교류관련 흔적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 다시 1950년 9월의 장면 하나, 민족동란으로 한반도가 피로 물들 무렵, 일군의 해병대가 덕적도에 상륙한다. 지금의 '밭지름' 앞 모래사장이다. 밭지름은 참사진이 있던 소재지(지금의 진1리)의 바깥에 있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덕적도사(1985)는 이곳을 당나라군사들이 주둔했던 곳으로 해석하고 있다. 상륙 해병대는 주민들을 공산군 세력으로 오인했던 것인지 민간인 여섯 명을 총살한다. 송은호(진리, 90세)씨는 지금도 열여섯 살 당시의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덕적도와 건너편 영흥도에 진을 친 해병대의 엄호로 맥아더가 이끄는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한다. 이후 서울수복 및 한국전 종료와 삼팔선의 경계 굳히기 등의 역사는 익히 아는 바와 같다. 영흥도를 비롯한 덕적도가 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상고해보니 당나라와 연합한 신라가 백제를 칠 때도 이 섬을 징검다리 삼았고 유엔군이 북한을 협공할 때도 이 섬을 교두보 삼았다. 두 사건 모두 우리 역사의 큰 기점을 형성한다. 이 사건뿐이겠는가. 이 항로에 얽히고설킨 하고많은 역사가 있지 않겠는가. 개경과 한양 등 한반도 심장부의 관문 역할을 했던 덕적도에서 중국을 바라보며 망연한 며칠을 보낸다. 소정방과 맥아더를 견주어 명상한다.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날은 바람 고요하나 물길 드세 뱃길이 막히고 어떤 날은 거친 파도를 헤치고 배들이 들고난다. 역사 이래 발해 연안을 돌아 나선 중국의 배들은 천개의 북한 섬들을 지나 이곳 덕적도를 지나갔을 것이다. 이어도, 가거도를 거친 동남아시아의 배들도 또한 서남해 연안 무수한 섬들을 비껴 한반도의 어딘가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제는 어떤 외세들이 혹은 시절들이 덕적도에 머물러 한반도의 미래를 재구성하게 될 것인가. 섬이란 그런 것이다. 국토로 따지자면 나라의 최전선이자 관문이요, 인문으로 따지자면 우리 마음의 이상향이다. 코앞 북한으로 왕래하는 배가 언제 출항할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기다릴 뿐이다. 파도 그치고 바람 자는 날 불현듯 어떤 선주 나서 황해도 해주 가는 배편 출발한다고 항구마다 외고 다닐 것이기에. 인천시 옹진군 덕적도의 역사 <옹진군의 역사>를 인용해 덕적도 공부 자료로 삼는다. 덕적도는 우리나 섬 가운데 기록상으로 처음 등장한다. '삼국사기'나 '당서' 등에는 신라와 당나라 교통상의 요지로 덕물도(德物島) 혹은 득물도(得物島)라 한다. '고려사' 지리지 당성군 조에는 인물도(仁物島)로 표기되었다. '고려사' 고종 46년 2월조에 덕적도라는 이름이 처음 나온다(徒西京黃州民于德積島). 덕적도사(1985) 등에는 '덕물'에 가까운 발음이라 하여 '큰물섬'으로 해석하고 있다. 물(物)과 수(水)를 발음상 유사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다. 서해의 큰물길이라는 뜻이겠다. 본래 고구려 세력권에 들었다가 신라에 편입되었는데 지금은 북한의 옹진과 인천의 옹진으로 나뉘었다. 덕적이라는 지명은 개성과 장연 사이에도 있다. 여기에 덕물산이 있는데 덕적도 국수봉이나 소야도 국사봉과 친연성이 높다. 소정방이 여기 올라 하늘에 제사지냈다는 기록이나 왕이 아플 때 이 봉우리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 등은 덕적도의 만신 김매물의 맥락과 함께 차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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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한국전쟁과 아리랑(下) <br>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 코리아# "UN참전 군인들은 애환이 담긴 애조의 아리랑을 전쟁 참상의 현장에서 가슴에 담았다. 일부는 아름다운 한국처녀의 아리랑으로, 일부는 처참한 어린 고아의 아리랑으로, 또 어떤 군인은 승전가 아리랑으로 담았다. 이들에게 아리랑은 영원한 한국 참전 인식표(認識票)이다.” # "유엔군은 한국군 전우에게 아리랑을 배웠고, 나라마다 다른 군가 대신 아리랑으로 연대하였다. 아리랑이 행진가와 진혼곡으로도 연주되기도 하여 한국의 국가로 아는 군인들도 많았다.” # "참전 유엔 정보 담당 군인들은 오끼나와 기지에서 기초적인 생활어와 아리랑을 배웠다. 한국전 포로 식별을 위한 정보교육이었다. 포로 중 아리랑을 부르지 못하면 중공군이고, 아리랑을 잘 부르면 북한군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또한 전투 중 고립되었을 때 아리랑을 부르면 한국인들이 공포심이나 거부감을 갖지 않고 보호해 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 "유명한 재즈 뮤지션 오스카 페티포드는 우연히 들은 아리랑에 영감을 받아 귀국하여 째즈 ‘아디동 부르스’을 취입해 인기를 얻었다. 오스카 페티포드는 40년대와 50년대 초 미국 재즈계에서 베이스와 피아노 연주자로 유명하였다. 그는 1953년 초 일본 오끼나와 미군기지에 위문공연을 왔다 한국 위문공연을 하고 있는 미국 뮤직션들과 합류하여 귀국하기 위해 인천의 야전 부대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 야전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 밖에 있던 한국 통역병이 휘파람으로 부는 노래를 듣었다. 일을 본 뒤 통역병에게 휘파람 연주에 대해 물었다. 이 때 ‘아-리-랑’을 ‘A-DEE-DONG’으로 듣게 된 것이다. 그가 취입한 SP음반에는 연습곡(take) 2곡까지 수록하여 처음 들었던 당시의 영감을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읽을 수 있다.” # "지난 4월 24일 90세로 별세한 룩셈부르크 레미히 성당의 질베르 호펠스(Gilbert Hauffels)씨의 장례식에는 아리랑이 연주되었다. 인구 20만의 나라에서 100명이 파병된 군인 중 19세의 청년으로 1952년 3월 참전하였다. 최후까지 휴전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하여 또한 철원평야를 확보하기 위해 격전을 벌인 ‘철의 삼각지’ 백마고지 전투에서 생존한 이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의 전투에서 고지 주인이 12번이나 바뀐 전투로 포탄 27만발로 ‘395 고지가 무너져 내려 마치 누워 있는 흰말’(白馬高地)로 보일 정도로 되었다는 최고, 최후의 전투였다. 그는 조카에게 남긴 유언장에 ‘아리랑을 들려 달라’는 유언에 따른 것이다. 아리랑은 룩셈부르크 한인회 박미희 회장이 불렀고, 반주는 참전 후 재직한 세관의 관현악단이 맡았다. 이 나라도 독일에 점령되었다가 미국 등의 우방국 참전으로 해방이 된 역사를 갖고 있다. 그의 한국전 참정 일기는 룩셈부르크 전쟁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 "전우들을 위해 아리랑을 부르겠다.- 6·25 당시 미 해병대 병장이던 영국 참전 용사 콜린 새커리(93)옹이 부산에서 열린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아리랑을 불렀다. 1950년 9월 19세의 청년으로 영국군 제30야전포병대 소속 포병으로 참전했다. 같은 소대 전우 4명을 잃고 327고지 전투에서 생환했다. 4명의 전우가 잠든 부산 UN공원에서의 기념식에 그들을 위해 아리랑을 부르겠다는 의사에 따른 것이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배로 부산에 도착했을 때 뜻은 모르지만 선율이 너무나 애잔하고 아름다워 금방 기억하였다고 한다. 그 오랜 세월 한국전을 생각할 때마다 아리랑을 흥얼거렸다고 한다. 이제 혼자의 흥얼거림이 아닌 세계를 향해 평화를 기원하며, 전우의 죽음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 부른 아리랑이다.” # "70년 전,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 서명식을 마친 후 유엔군 군악대가 연주한 곡이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한국전쟁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빛을 발하는 노래이다. 지루하고 적군의 전략으로 오르내린 휴전 회담은 유엔군을 지치고 격분시켰다. 가장 길고도 이목을 끈 국제적인 정전 협정 조인식임에도 악수도 없고, 박수도 없고, 웃음기도 없는 조인식이었다. 그리고 동서 문을 통해 갈라졌다. 그런데 문을 나서는 순간 양측의 군악대가 연주한 곡이 아리랑이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한민족이며, 전쟁의 최후 종결 주도자도 남과 북은 한민족이라는 것을 적과 동지가 공감한 결과이다. 아리랑이 남북간의 만남에서 연주되는 이유이다. 이제 아리랑 연주는 종전의 순간일 것이다. 그때는 악수하고 박수치고 웃으며 맺는 조인식이며 부등켜 함께 합창하는 아리랑일 것이다. 그 아리랑을 염원한다.” 룩셈부르크 아리랑 *유언장에 '아리랑을 불러달라'고 할 정도로 아리랑을 좋아했던 호펠스 씨는 아리랑을 들으며 떠나셨다. 인구 2o만의 룩셈부르크가 6.25 전투에 100명을 파병했다니, 그동안 몰랐는데 놀랍고 감동스럽다. 여러 나라의 넘치는 도움을 받고 선진국으로 우뚝선 대한민국이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데 결코 인색해선 안될 것이다. 호펠스씨의 명복을 기원한다 아리랑의 국제화가 이뤄진 게 6·25 전쟁부터다. 한민족의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미 7사단은 아리랑을 사단 공식 행진곡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1951년 위문공연 차 방한한 유명 재즈 가수 오스카 페티포드는 우연히 아리랑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앨범을 발매해 인기를 모았다. ‘아디동 블루스’란 이름인데 아리랑을 아디동으로 오인한 것이다. 수많은 용사들이 종전 후에도 아리랑을 잊지 못했다. 지난 4월 24일 별세한 룩셈부르크의 질베르 호펠스씨는 "장례식 때 꼭 아리랑을 불러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6·25 당시 미 해병대 병장이던 이는 지난해 한국 정부로부터 ‘평화의 사도 메달’을 받으며 아리랑을 불렀다. 오늘 부산에서 열리는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직접 아리랑을 부를 예정이다. 참전 용사 60여명이 참석한다. 70년 후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남한에서 울려퍼질 아리랑을 듣는 노병들의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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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아리랑’ 부른 참전용사 '콜린 태커리', 명예보훈장관 위촉영국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d Talent) 우승자이자 정전협정 70주년 및 유엔군 참전의날 기념식에서 아리랑을 열창했던 콜린 태커리(93세, Colin Thackery) 6·25전쟁 영국군 참전용사가 대한민국 명예보훈장관이 된다. 국가보훈부는 "28일 오후 4시 30분, 서울지방보훈청 박정모홀에서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를 제2호 명예보훈장관으로 위촉한다”고 밝혔다. 국가보훈부의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프로그램으로 초청되어 지난 24일(월)부터 29일(토)까지<5박 6일> 일정으로 방한 중인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는 19세 때 한국전 출전 명령으로 갓 결혼한 아내를 남겨두고 1950년 9월 제45야전포병연대 소속 포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327고지 전투 등에서 중공군과 싸운 참전영웅이다. 또한,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는 89세인 2019년 영국의 노래 경연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최고령 참가자로 출연해 단 3곡으로 우승하며 국민 스타가 되었다. 지난 2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영국 첼시왕립병원 위문 당시, 태커리 참전용사가 아리랑 공연을 즉석에서 불렀고 이에 감탄한 박장관의 제안으로 기념식 아리랑 공연이 성사되었다. 지난 27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22개국 참전국 정부대표 등 4천명이 참석한 "정전협정 70주년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무대에 올라 연합합창단과 함께 아리랑을 편곡한 ‘어메이징 아리랑’을 열창해 관중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명예보훈장관은 국가보훈부가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유엔참전국의 명망 높은 인사들을 위촉해 유엔참전용사들의 명예선양과 권익증진에 기여하기 위한 제도로 작년 9월 ‘한국의 사위’로 불리는 래리 호건(Lawrence Hogan) 미 메릴랜드 당시 주지사가 1호 명예보훈장관에 위촉된 바 있다. 이날 위촉식에 앞서 박민식 장관은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와 환담을 나누며 6·25전쟁에 참전해 대한민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헌신한 테커리 참전용사에게 존경을 표하고 정전70주년 행사 초청에 응해준 것에 감사를 전했다. 또한,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명예보훈장관’으로서 유엔참전의 인연을 이어나가는 상징이 되어 건강하게 오래오래 활동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박민식 장관은 위촉식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명예선양에 힘써 주신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귀하를 대한민국 명예보훈장관으로 위촉하오니, 한국전 참전용사 명예선양이라는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계속적인 지원을 당부 드립니다.’라고 적힌 위촉장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자개 보석함을 태커리참전용사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영국의 국민 스타인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를 명예보훈장관으로 위촉하게 되어 기쁘다”면서 "재방한 감사만찬과 기념식장에서 불러주신 ‘아리랑’은 함께 참전한 전우들과 이를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강조하며 "귀국하신 후에도 유엔참전용사들이 맺어준 대한민국과의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래하는 명예보훈장관’으로서 오래오래 활동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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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울려퍼진 유엔참전용사의 아리랑 세레머니지난 27일 저녁 ‘피란의 수도’ 부산에서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70여 년 전 이국 땅에서 전쟁 속으로 뛰어들었던 세계 각국의 청년 군인들이 이제 노병이 되어 다시 찾은 대한민국에서 부른 ‘어메이징 아리랑’이었다. 아리랑 공연은 이날 부산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 및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의 하이라이트였다. 행사에 참석한 유엔참전용사들은 전광판 속 한글의 영어식 읽기 표기로 된 아리랑 가사를 읊으며 나지막히 함께 불렀고, 모든 참석자들이 감동했다. 국가보훈부는 유엔군참전의 날 및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기념해 24일부터 29일까지 5박 6일간의 일정으로 유엔참전용사와 가족 등 200여 명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재방한 행사’를 진행했다. 처참한 상흔만이 남아있었던 70여년 전, 많은 한국인들이 쉴새 없이 흥얼거렸던 아리랑을 따라부르며 익히게 된 유엔참전용사들은 낯선 나라였으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로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볐다. 미국,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등 총 22개국에서 약 200만 명(연인원)에 이르는 유엔군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포화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한국을 다시 찾은 유엔참전용사들은 이 나라의 눈부신 사회·경제·문화적 발전과 커다란 환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재방한 행사’ 일정 중 27일 본격적인 기념식 행사를 앞두고 유엔기념공원과 롯데호텔 부산에서 유엔참전용사와 후손 등을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이것은 기적이다. 정말 ‘원더풀’하다” 27일 롯데호텔 부산에서 진행된 유엔참전용사 4인 합동인터뷰에서 이처럼 가장 먼저 소감을 전한 미국인 유엔참전용사 도널드 리드 씨는 72년 전인 1951년 8월 18살의 나이에 해병대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19살때까지 1년간 전방에서 벌어진 전투 3개에 참여했는데, 특히 미 제1해병사단과 국군 해병 제1연대가 1951년 8월 31일부터 9월 20일까지 펀치볼(해안분지)을 공격해 확보한 전투인 ‘펀치볼 전투’에도 참전했다. 이같은 한국과의 인연 덕분이었을까, 리드 씨는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한국인 여성과 인연이 닿아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1951년 9월 한국을 떠날 때 한국 땅은 굉장히 황폐했고 절대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이후 굉장한 발전을 이뤄냈다”며 "한국인들의 마음과 정신력 때문에 이런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한국 성공의 원동력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현재의 분단된 한반도 상황에 대해 "6·25전쟁을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 북한 사람들이 굶주림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할지 안다. 북한도 어서 평화를 찾아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며 "통일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평화를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을 포함해 한국을 10번 째 방문한 리드 씨는 "올때마다 이런 환대를 받는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다”면서 "이렇게까지 참전용사에게 감사를 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한국의 너그러움에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보여준 커다란 환대, 결코 잊지 못할 것” 일본에서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부산에 도착해 참전했다는 영국인 참전용사 리차드 카터 씨는 전쟁 당시 임진각 근처에 배정받은 자신의 임무를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길을 순찰하고 부대원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것, 또 임진각 뒤에 있는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며 "중공군이 내려오는지 두 개의 다리를 계속 감시했어야 했는데 다행히도 폭격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6·25전쟁 참전 당시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져온 카터 씨는 "이게 부산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사진 한 장, 한 장을 소개했다. 1953년 부산에 도착했을 당시 트럭으로 이동하는 도중 촬영한 외곽지의 한 장면, 14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가막산 인근의 부대 내 군 텐트가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하게 설치돼 있는 장면, 적군 침입시 폭파해야했던 두개의 다리 모습이었다. 1954년 한국을 떠난 이후 처음 한국을 방문한 그는 "모두 한국에서 이룬 이같은 발전을 다른 사람들도 따라야 할 모범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의 이런 성공은 결국 통일로 이뤄져야 한다”고 통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한국의 발전과 성장에 대해 연신 놀라움을 표한 카터 씨는 "유엔 참전국의 대표로서 한마디를 하자면, 이번 행사가 굉장히 잘 준비되어 있어 감사하다”면서 "한국이 보여준 커다란 환대,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발전 믿을 수 없어…굉장히 기쁘다” 이번 재방한 행사로는 한국을 처음 방문한 호주인 참전용사 로널드 워커 씨는 1953년 왕립호주 제2대대 상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한국을 찾은 그해 9월, 그는 6.25전쟁의 대표적 격전지 중 하나로 꼽히는 후크고지 전투 등 전투에 투입돼 전장을 누볐다. 후크고지 전투는 휴전협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미국과 영연방군이 4차례에 걸친 중공군과의 격전 끝에 임진강 북단의 연천군 장남면, 백학면, 미산면, 왕징면 일대를 대한민국 영토로 귀속시킨 전투다. 후크고지란 이름은 격전지가 벌어졌던 지형이 후크(hook) 모양으로 생겼다는 이유로 붙여졌다. 워커 씨는 "전투 당시 미국군의 왼쪽 옆에서 방어하는 것이 임무였다”며 "평화협정이 맺어진 이후에도 감시를 풀지 않고 언제든 진격할 준비를 했었다”고 당시 맡았던 임무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성공을 이룬 요소에 대해서는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한국의 재건에 참여했던 것, 다른 나라들이 이에 대해 많이 배워야 한다”며 "정말 훌륭하고 믿을 수 없다. 이러한 발전을 보게 된 것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전쟁 당시 군인들을 도왔던 조적성, 김진태, 김일송이라는 이름으로 추정되는 세 인물을 언급하며 그들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합동인터뷰에 참석한 이들을 비롯한 유엔참전용사 60여 명은 오전 6·25전쟁 희생자 11개국 2300여 명의 유해를 모신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참배했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폭염을 뚫고 참배에 함께한 워커 씨는 유엔기념공원에 대해 "잘 정비돼 있어 굉장히 놀랐다. 한국은 이런 유엔 묘지가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할 것”이라며 "유엔 병사들을 항상 기억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홍콩에 주둔했다가 한국으로 넘어와 6·25전쟁에 참전했던 캐나다인 참전용사 윌리엄 로버트슨 씨는 전쟁 당시 친하게 지냈던 전우의 묘비에 캐나다 보훈의 상징인 ‘포피(Poppy)’ 모양의 뱃지를 올려뒀다. ‘쓰러진 병사’라는 꽃말을 가진 포피는 로버트슨 씨의 캐나다 고향마을에 사는 10살 소년 ‘키오’가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정말 아름다운 세레머니였다”며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참전용사 후손, "아버지, 다시 참전할 것이라 말해” 유엔기념공원 참배는 들끓는 무더위 속에서도 전우를 찾은 참전용사들의 의지 덕분에 오전 내내 진행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인 유엔참전용사 이반 홀사우센의 아들인 케이스는 이번 재방한 행사로 한국을 찾게 돼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서 6·25전쟁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듣고 사진도 보았다”며 "아버지는 파일럿으로 참전했는데, 당시 전쟁의 긴장감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곤 하셨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와 그의 동료들은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는데,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겨우 22살이었다”며 "아버지는 약 75개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한국 사람들은 유엔군의 희생에 대해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아버지는 오래 전, 다른 인터뷰에서 다시 또 참전하겠다고도 말하셨다”고 아버지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전하기도 했다. 튀르키예 유명 크리에이터, 보훈부 초청으로 참석…"엄청난 경험” 이날 튀르키예 유엔참전용사들을 대신해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있는 튀르키예 유엔참전용사들에 헌화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루히 씨는 보훈부 초청으로 이번 재방한 행사에 함께 했다. 1421만여 명의 구독자 수를 보유한 유튜버이자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루히 씨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색적인 곳을 방문하거나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영상 콘텐츠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특히 한국어, 영어를 포함한 14개 언어의 자막과 더빙도 제공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 참전용사들이 22~23세였는데, 젊은 나이에 열망을 뒤로 한 채 헌신했다”며 삶에 대한 꿈과 욕심을 모두 뒤로 한 채 참전해야 했던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대한 안타까움과 예우를 표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과 튀르키예 사람들 간의 어떤 연결성을 느낀다. 전쟁과 역사에 대해 구독자들이 알고 서로를 이해했으면 한다”며 "그때 당시의 이야기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전했다. 루히 씨와 함께 방한한 12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크리에이터 아흐멧 씨도 이에 대해 동감했다. 그는 "여기는 매우 감정을 자극한다. 묘역에서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을 보았는데, 이 점은 나를 매우 다르게 느껴지게 한다”며 "참전용사들은 더욱 예우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아흐멧 씨는 "한국에 3일 정도 머무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지만, 한국 문화에 대해 더 잘 알고 싶다”며 "내 자신이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나에게 엄청난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할아버지(참전용사)들이 생전에 한국을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고 전했다. 6·25전쟁 기간 4만 1000여 명의 유엔군이 전사하고 11만 명이 다치거나 포로가 되는 큰 희생이 있었다. 유엔군이라는 이름 아래 전 세계 청년들이 인생의 가장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젊음과 꿈을 뒤로 한 채 낯선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전장을 누벼야 했다. 7월 27일은 이같은 유엔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법정기념일,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매년 돌아오는 7월 27일,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과 헌신한 그들에 대한 진심어린 경의를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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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다시 찾은 영웅, 21개 참전국 용사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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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두 얼굴의 평화, DMZ' 특별전 개최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이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두 얼굴의 평화, DMZ' 특별전을 오는 10월15일까지 선보인다. 1953년 7월 27일 경기도 북부의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을 기념하고,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의 참상과 정전협정, 그리고 정전협정의 결과로 만들어진 비무장지대(DMZ)에 대해 조명해보는 특별기획전이다. 행사는 오는 10월15일까지 진행된다. 전시는 지난 2020~2021년 문화재청·경기도·강원도가 합동으로 진행한 '한반도 비무장지대 실태조사' 성과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비무장지대 내에서 발굴·수습한 영웅들의 유품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제1부 ‘끝나지 않은 전쟁’, 제2부 ‘두 얼굴의 DMZ’, 제3부 ‘내일을 위한 기억’, 제4부 ‘DMZ 실태조사 성과 순회사진전’ 등 네 부분으로 나눠진행된다. 제1부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는 6·25전쟁과 정전협정을 다룬다. 6·25전쟁에서 사용한 대표적인 무기인 M1 소총과 '따발총'이라고 불리는 소련제 슈파긴 기관 단총, 전쟁 때 뿌려진 삐라, 유엔군이 돌아갈 때 기념으로 가져간 아리랑스카프 등을 전시한다.또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전협정 본문(복제본)을 볼 수 있다. 정전협정서는 유엔군 대표와 북한군·중공군 대표가 서명, 정전협정서 원본은 미국과 중국 북한에 있다. 제3부 '내일을 위한 기억'에서는 6·25전쟁에 전투부대와 의료지원을 해준 국제연합군의 22개 국가의 희생을 기억하는 국내의 기념비를 소개한다.이와 함께 70년 전 정전협정 지도를 통해 사라진 마을과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도 전시한다. 비무장지대가 탄생하면서 사라진 마을은 총 2개 도, 9개 군, 35개 면, 116개 행정리와 401개의 부속마을이다.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된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전쟁·분단·이산의 아픔을 노래한 대중가요, 전쟁을 다룬 영화, 판문점과 비무장지대를 기록한 사진집, 다시 가 보고 싶은 '그리운 금강산' 관련 유물과 자료, 비무장지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실태조사 자료 등도 전시한다. 제4부는 'DMZ 실태조사 성과 순회사진전'이다. DMZ 실태조사 때 촬영한 가장 최근의 사진들을 경기도박물관 갤러리에서 따로 선보인다.2009년 국방부 의뢰로 최초로 휴전 이후 비무장지대 기록 사진을 촬영한 박종우 작가의 다큐멘터리 사진도 전시된다. 이 사진들을 통해 70년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무장지대 안의 감시초소와 전방을 수색하는 병사 모습, 그 곳에 서식하는 식물과 조류, 포유류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무장지대의 원시적 아름다운 자연 풍경 아래에는 남과 북이 겪은 전쟁 잔해와 아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시 기간 중에는 정전협정 70주년 학술포럼과 전시연계 전문가 특강 등 다양한 행사도 열린다. 전시연계 프로그램으로는 통일부가 제작한 ‘DMZ 메타버스, 사라진 마을’이 상설돼 있다. 6.25전쟁 이전 DMZ에 있었던 400여 개의 마을 중에서 연천 고랑포리․항동리, 철원 외촌리․유정리, 양구 문등리, 고성 대강리․사비리 등 큰 규모의 마을을 메타버스로 구현한 프로그램이다. 경기도박물관 관계자는 "비무장지대 땅 밑에 지뢰와 폭탄이 숨어있고 전사자의 유해와 유품, 문화유적과 사라진 마을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이들을 무심히 덮고 회복해가는 자연생태계의 모습을 통해 DMZ의 내일, 한반도의 평화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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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70주년&정전70주년 기념, '제1회 동두천평화아리랑제' 팡파레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유엔 참전용사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6‧25한국전쟁에서 나누었던 동지애 및 인류애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27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는 국적이 다른 22개 유엔군 참전 용사들이 모였지만, 아리랑으로 하나 되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역시 참전 용사와 유엔 합창단이 함께 부른 ‘어메이징 아리랑’이었다. 무대 영상에선 각국 참전 용사들이 6‧25전쟁 때 불렀던 아리랑을 추억하며 한 소절씩 부르는 모습이 나왔다. 이날 '상생의 도시' 동두천시에서도 한미동맹70주년 및 정전협정70주년을 맞이하여 아리랑이 메아리쳤다. 27일 동두천시가 주최하고 (사)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가 주관한 '제1회 동두천평화아리랑제'는 한·미우호관계 발전과 나아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아리랑에 담아냈다. 10시 현충탑과 11시 자유수호박물관에서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단장:김경수), 동두천아리랑보존회(회장:유은서),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혜솔)이 함께하고, (사)아리랑연합회와 (주)국악신문이 후원했다. 김경수 지부장의 사회를 맡고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의 초혼무 '살풀이춤', 가야금병창 '아리랑',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의 '지신밟기'와 '비나리', 동두천아리랑보존회의 '이담아라리', '동두천아리랑', '황석산아리랑',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의 '아리랑'이 불려졌다. 오전 10시 동두천 현충탑앞에서 (주)국악신문 기미양 대표이사가 동두천평화아리랑제추진단 창립 선언문을 낭독했다. 다음은 선언문 중 한국전쟁 때 남북이 양측에서 각각 불렀던 아리랑이다. 사발그릇 깨어지면 두세조각이 나는데 38선이 깨어지면 한덩어리 된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잘넘어간다('정선아리랑' 1절) 우리나 님은요 날 그려 울고 전쟁판 요내들 임 그려 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울며 넘네(중부전선 854고지 대적방송(對敵放送) '음탄(音彈)아리랑' 1절) 백두산봉우리 깃발 펄펄 날리고 제주도 한라산 유격대깃발 올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 간다('빨지산아리랑' 1절, ‘항미원조 전쟁 군가집’ ) 11시 자유수호박물관에서는 식전행사에서 한국전쟁시 세계평화를 위해 참전한 유엔군 및 순국선열의 희생을 추모하는 추념제를 올리고, 지신밟기로 시작하여 '아리랑'을 헌정했다. 주최측은 "한미동맹 70주년과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여 한미우정을 상징하는 아리랑을 통해 더욱 한미우정을 강화하고,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통해 '상생의 도시' 동두천시의 정화와 치유를 회복하는 정주년이 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김경수 회장은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여 아리랑으로 이 땅을 정화시키고 '동두천시를 새롭게, '시민을 힘나게', 회복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동두천'의 서사를 주제로 한 지속적인 전통문화 활동을 통해 동두천시의 이미지를 새롭게 전환시키는 효과를 기대한다. 특히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전쟁에 참가한 22개국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호국영령들에게 아리랑을 바친다"라고 밝혔다. 또한 내년 2회에는 경기 북부 지역의 민·관·군과 다문화사회를 대상으로 아리랑으로 하나가 되는 문화예술 향유 기회의 장을 확대·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히겠다고 전했다. 유은서 회장은 "전국적 물난리로 행사가 축소된 이번 동두천평화아리랑제이지만, 우리 전 회원은 한마음을 모아 유엔 참전용사들과 순국선열들을 추념하며, 평화의 노래 '동두천아리랑'이 시민들에게 애창곡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혜솔 회장은 "동두천에 주둔한 미 7사단가로 불린 아리랑을 부르면서 감회가 새롭다. 미군들이 널리 알린 이 아리랑이 미국 뮤직션들이 편곡하여 여러 버젼의 아리랑이 음반으로 나왔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정전 70주년이라는 정주년을 통해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담보하는 동두천의 서사는 '상생의 도시 동두천'으로 거듭날 수 있다. 상생의 도시 동두천은 세계 유네스코가 주목한 아리랑의 3대정신(대동 해원 상생)을 구현할 수 있는 중추적 역활을 수행할 수 있는 서사를 담보하고 있다. 동두천 보산리에 주둔한 미군 7사단이 매일 아침마다 불렀던 단가 '아리랑', 1964년 안흥리에 미군 7사단이 지어준 '아리랑다리', 미군 위안부 모임 '아리랑'은 동두천 시의 역사이고 서사이다. 그만큼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충돌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요인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 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보산리에 1971년까지 2만6천명이 주둔한 미군들이 단가로 아리랑을 불렀고,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아내들에게 아리랑악보가 담긴 실크 스카프를 고국으로 보냈다. 어제 국가보훈부에서 이 '아리랑스카프'를 복원하여 유엔 참전용사들에게 선물을 한다고 밝혔다. 아리랑은 전장에서뿐 아니라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조인식을 마치고 귀환하던 유엔대표단과 북한 측이 사열할 때도 동시에 각각 연주된 곡이다. 이날 동두천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여 아리랑이 불러진 것은 역사적 의미를 시사한다. 아리랑은 미래의 노래이고 평화를 상징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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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한국전쟁과 아리랑(上)한국전쟁 3년 1개월 2일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위 38°선 전역, 소련의 지령과 중국의 지원으로 북한군이 전면 남침하였다. 약 5년간의 체제에서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냉전 속의 이 체제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후자는 수립이 되자마자 군사력을 확충하며 소련과는 ‘조소군사비밀협정’을, 중국공산당과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전쟁을 준비했다. 이에 따라 중국 공산군에 있던 조선인 2만5천명이 북한군에 인도됨으로서, 13만명이 전선에 배치되었다. 우월한 전세를 갖춘 북한은 통일을 내세워 선전포고(宣戰布告)도 없이 남침을 했다. 이렇게 전 38선상에 남침함으로서 촉발된 전쟁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하였다. 이에 UN 결의에 따라 국제사회가 개입하게 되었고, 미7사단 주력부대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성공함으로서 서울을 수복하고 이어 9일만에 평양을 점령하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는 다시 교착상태에 머물게 되었다. 이 때부터 UN군 등에서 제한전쟁으로 휴전이 제기 되기에 이르렀다. 이 전쟁으로 한민족은 너무나 큰 손실을 보았다. 정신적 피해는 제처 두고라도 인적 물적 손실은 물론, 많은 이산가족 발생 같은 고통은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기에 이르렀다. 우선 인적 손실은 어느 전쟁보다 컸는데, 국군은 140여만 명, 북한은 약 329만 명, 유엔군은 약 15만 명의 손실을 보았다. 결국 남북은 무려 520만 명의 희생을 낸 것이다. 전쟁 피해, 희생은 이뿐만이 아니다. UN 참전군들의 희생도 크다. 참전국은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남아공 룩셈부르크 16개국이 유엔군으로서 약 190만 명의 전투병을 파병했으며, 인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가 야전병원, 병원선 등의 의료지원을 통해 참전했다. 이들의 인명 희생도 막중했다. 또한 많은 포로들의 발생도 그 처리로 갈등을 겪었다. 한민족이 남북군과 중공군에 동족임에도 편입되었고, 16개국 UN군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포로 교환 문제는 휴전회담 기간 내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 포로 중에는 강제로 징집되어 많은 투항병이 발생하였고, 한국군 포로가 재 강제 징집 되어 북한군이 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중공군 포로 중에는 송환을 거부하는 자도 있었다. 이런 상황으로 UN '포로교환문제소위원회'와 '국제적십자조사위원회'는 곤경에 처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세 가지 문제로 급진전하게 되었다. 하나는 북한 지역에 전염병의 발발한 사실이고, 둘은 1952년 12월 유엔총회에서 120일간 설득하여 체코·폴란드·스웨덴·스위스 4개국으로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하게 하자는 합의를 하였다. 마지막은 1953년 3월 소련의 스탈린의 사망이었다. 이런 경과로 휴전은 급진하였다. 드디어 1951년 7월 미국의 릿지웨이 유엔군 사령관과 북한 김일성과 평더화이 중공군사령관이 개성에서 회담이 시작되어, 군사분계선 설정, 세부사항 일괄타결, 전쟁포로 문제 합의와 협정 체결이 된 것이다. 2년 만인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협정을 맺어 전쟁은 중지되었다. 북한과 중공군 대(對) UN군 측의 미국이 대표하여 협정에 서명함으로서 휴전이 되었다. 3년 1개월 2일의 전쟁은 휴전 체제로 들어 간 것이다. 이로서 포로교환 등의 여진이 남았지만, UN군은 해체되어 참전 군인들은 각국으로 귀국하였다. 남북한은 전선에서 군인들과 무기를 철수하였다. 그리고 전쟁 복구에 들어갔다. 처참한 동족상잔 한국전쟁은 귀국 참전 군인들에 의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그 결과로 ‘한국은 전쟁의 나라’, ‘한국은 고아의 나라’, ‘한국은 아리랑의 나라’ 같은 인상비평적(印象批評的) 표현들이 회자되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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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70주년에 참전용사 '콜린 태커리' 아리랑 부른다영국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d Talent) 우승자인 콜린 태커리(93세, Colin Thackery) 6·25전쟁 영국군 참전용사가 국가보훈부의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행사에 초청되어 아리랑을 열창한다. 24일부터 29일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방한해 부산에서 개최되는 7.27 정전협정 70주년 계기 행사에서 만날 수 있다.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의 방한은, 지난 2월 영국을 방문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런던의 첼시왕립병원에서 정부를 대표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7명의 유엔참전용사에게 감사를 표하며 ‘정전협정 70주년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공식 초청장을 전달해 이루어졌다. 당시, 태커리 참전용사는 본인의 브리튼슨 갓 탤런트 우승 경력을 소개하며 ‘아리랑’을 즉석에서 불러 박 장관을 놀라게 했다. 이에 박민식 장관은 "한국에 초청할테니 6·25전쟁 정전70주년 기념식에서 아리랑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고 태커리 참전용사가 이를 흔쾌히 수락해 정전70주년 계기 행사 아리랑 공연이 성사되었다.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는 재방한 행사의 둘째 날인 7월 26일(수) 시그니엘부산 호텔에서 유엔 참전국 정부대표단, 주한참전국 대사 등 3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는 ‘유엔참전용사 감사만찬’, 27일(목)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6·25참전유공자, 학생, 시민 등 4,000여명이 참석하는 ‘정전협정 70주년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28일(금) 영국 대사관 주최 ’참전용사 초청 리셉션‘ 행사 무대에 올라 ‘아리랑’을 부를 예정이다.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는 15세에 영국군에 입대해 19세 때 한국전 출전 명령으로 갓 결혼한 아내를 남겨두고 1950년 9월 제45야전포병연대 소속 포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327고지 전투 등에서 중공군과 치열하게 싸운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는 함께 참전한 6명의 전우 중 4명의 전우를 잃고 참전 2년만인 1952년 고국으로 돌아갔고 전사한 4명의 전우는 현재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아리랑 공연에 대해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는 "영국에서 배를 타고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곳이 부산이었는데 당시 전장에서 부르던 노래가 아리랑이었고 전우들과 무슨 의미의 노래인지도 모른 채 기회가 될 때마다 함께 불러 이제는 한국을 떠올릴 때마다 아리랑이 생각난다.”며 "너무 아픈 기억이 많은 한국이었지만 아직도 우리를 기억해 감사를 전하는 한국에 다시 오게 되어 기쁘고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전우들을 위해 아리랑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초청에 응해 고령에도 한국을 찾아주신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의 아리랑 노래가 행사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남아 오늘날 자유 대한민국의 놀라운 번영을 이뤄낸 유엔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잊혀지지 않고 미래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콜린 태커리 참전용사는 2019년 89세의 나이에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d Talent) 역대 최고령 출연자로 출연해, 우승해 우승상금 25만파운드(현재 한화 4억1천4백만원 가치)를 받아 국민 스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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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참전용사들 정전 70주년 맞아 한국 온다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정전 70주년 계기, 오는 24일(월)부터 29일(토)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유엔참전용사와 가족 등 200명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재방한 행사를 진행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재방한 행사는 정전 70주년 계기, 70년 전 대한민국을 지킨 유엔참전용사에게 정부 차원의 예우와 감사를 전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영웅들을 모십니다” 주제로 추진된다. 방한하는 참전용사와 유가족은 덴마크를 제외한 21개 참전국 200명으로 유엔군 참전의날이자 정전협정 70주년인 7월 27일(목)을 앞두고 24일(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재방한 참전용사 중 최고령자는 미국의 해럴드 트롬(미국, 95세) 참전용사로, 1950년 미 육군 이병(PFC)으로 참전해 인천상륙작전 및 장진호 전투에 참전하였다. 해롤드 씨와 함께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패트릭 핀 (미국, 92세)씨와 고든 페인 (영국, 92세)씨도 함께 방한한다.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꼽히는 후크고지 전투에 참전한 로널드 워커(89세), 렉스 맥콜(92세), 버나드 휴즈(92세), 마이클 제프리즈(90세, 이상 호주), 빈센트 커트니(캐나다, 89세), 피터 마시(영국, 90세) 참전용사도 방문단으로 내한하며 특히, 빈센트 커트니 씨는 11월 11일 ‘턴 투워드 부산’ 행사를 최초로 제안한 참전용사이다. 또한 4형제가 함께 6·25전쟁에 참전한 아서 로티(캐나다, 91세)씨와 그의 아들도 함께 재방한한다. 아서 로티씨 4형제는 6·25전쟁 정전 후 캐나다로 무사히 돌아갔고 다른 형제 3명은 현재 모두 별세하였다. 방문단에는 전쟁 당시 한국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을 기억하고 아직까지 찾고자 하는 참전용사도 있다.이번 초청을 통해 처음 방한하는 윌리엄 워드(91세, 미국) 참전용사는 전쟁 당시 부산 캠프에서 매일 자신의 빨래를 해주겠다던 12세 소년 창(Chang)을 찾고 있으며 에드워드 버커너(캐나다, 91세) 참전용사 역시 전쟁 당시 초소(Large Squad) 청소를 했던 ‘Cho Chock Song’이란 한국 소년을 만나고 싶어 두 사람 모두, 당시 찍은 사진을 국가보훈부로 보내왔다. 유엔참전용사의 가족 중에서는, 6・25전쟁에 미8군사령관으로 참전해 중공군의 공세를 꺾고 전선을 38도선 북쪽으로 북상시킨 제임스 밴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장군의 외손자인 조셉 맥크리스천 주니어(Joseph Alexander McChristian JR) 씨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여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월튼 워커’ 장군의 손자인 샘 워커 2세(Sam, S. Walker Ⅱ) 씨도 포함되었다. 재방한하는 참전용사와 가족은 지난 6일 보훈부가 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 이학재)와 체결한 업무협약에 따라 인천공항에 입국하는 순간부터 입국절차 간소화, 전용 출입국통로(패스트트랙) 등 최고의 예우와 공항내 전광판, 가로등 배너 등 감사 환영을 받는다. 방한단은 25일(화) 판문점 방문을 시작으로 26일(수) 유엔참전국 감사 만찬에 참석하고 27일(목) 부산 유엔기념공원 방문, 유엔군 참전의날 및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 참석, 28일(금) 전쟁기념관 방문의 공식 일정 후 29일(토) 출국할 예정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유엔참전용사분들은 73년 전 발발한 전쟁에서 낯선 땅, 낯선 나라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젊음과 목숨을 바친 진정한 영웅”이라며"대한민국의 놀라운 70년을 만든 주역인, 이분들이 재방한 기간 어떠한 불편함도 없도록 최고의 예우를 다하고 대한민국과 참전국, 더 나아가 세계의 젊은이들이 유엔참전용사의 숭고한 인류애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국제보훈사업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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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정전 70주년 기념 '보훈·안보세미나' 개최국가보훈처는 31일 10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윤종진 국가보훈처 차장, 주한 대사관 관계자, 각계 전문가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훈·안보세미나를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이번 세미나는 6·25전쟁 당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연대한 국가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제고하고 향후 국제보훈외교의 지평 확대를 위한 학술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개최된다.이번 세미나에는 멕시코, 모로코, 아일랜드 등 타국에 배속되어 참전한 국가들과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등 주요 물자지원국 등 13개국의 대사 및 관계관들이 참석한다. 또한 중립국감독위원회 스웨덴, 스위스 대표도 참석할 예정이다.첫 번째 세션은 73년전 샤픽 하사디(Chafik Rachadi) 주한모로코왕국대사가 프랑스군에 배속돼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모로코 참전용사들에 대한 내용을 발표한다. 이어 주멕시코대사관 국방무관을 지낸 김윤주 중령이 주멕시코대사관에서 추진한 ‘6·25전쟁 멕시코 참전용사 찾기 캠페인’ 등으로 10여명의 멕시코 참전용사들을 찾기까지의 노력과 과정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두 번째 세션은 군사편찬연구소장을 역임한 조성훈 박사가 ‘중립국감독위원회 역할 재조명’을, 경호 국방대학교 교수가 ‘국제보훈영역의 확장을 위한 검토’를 주제로 발표한다.끝으로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양영조 박사는 물자지원국 현황에 대해 최초로 연구를 진행한 전문가로 일부 통계치 수정 등 기존 연구내용의 보완 필요성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세미나에서 다뤄질 전문가들의 다양한 발표 내용은 면밀히 검토해 보훈외교 대상국 확대 등 보훈정책 전반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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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25 전쟁 영웅 박동진 중사이만유/전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몇 년 전 문경시 관내 초등학생 50명을 대상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 확립과 나라 사랑 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충효교실’을 문경문화원이 운영할 때 4일간 일정의 전담 강사로 위촉받아 추진한 적이 있었다. 교육 주제는 충효 중에서 효(孝)는 차기 교육으로 미루고 ‘충(忠)’으로만 해서 오래전부터 문경에 세거한 큰 문중의 조상 중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충신과 문경을 빛낸 호국 인물이신 엄흥도, 이강년, 박열, 김용배, 박동진, 5분을 선정 그분들의 업적과 위대한 생애를 기려보고자 하였다. 본고는 5분 중 20세 꽃다운 젊은 나이에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산화하신 ‘6‧25 전쟁영웅 박동진 중사’에 대해 조명해 보고자 한다. 당시 박동진 중사에 대한 행적을 알기 위해 노력했으나 출생지 문경에서는 상세한 내용을 구할 수 없어 국가보훈처에서 2016년 ‘이달의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되어 낸 홍보 자료를 참고하였다. 위기에 처한 6․25전쟁의 판세를 바꾼 1950년 9월 15일에 실행되었던 국제연합(UN)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추진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배경에는 인천항 입구에 위치한 덕적도, 영흥도 탈환에 목숨을 바친 박동진(1930.1월 28일∼1950.8.20.) 해군 일등병조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첩보대의 지상명령"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를 확보하라!”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1930년 1월 28일, 경북 문경(유곡동 한절골)에서 태어나 1949년 1월, 해군 신병 12기로 입대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전장에 투입되었다. 그해 8월, 북한군은 연안 가까이에 있는 일부 도서를 점령하고 무고한 일반 주민을 학살했고, 또한 아군 함정의 동정을 감시하는 거점으로 이곳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를 그대로 두면 해군의 동향이나 작전 상황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물론, 당시 유엔군이 시도하려던 인천상륙작전 역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1950년 8월 해군은 정보 수집과 교두보 확보를 위해 함정의 승조원으로 구성된 육전대(陸戰隊)를 편성했고,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 작전을 전개하였다. 육전대는 해군에 소속되어 작전을 돕고, 필요할 시 육전에 종사하는 군대로서 지금의 해병대였다. 이때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해군 1함대에서 차출, 육전대 1소대 1분대장으로 참전하였고, 8월 18일에 덕적도를 향해 떠났다. 아군의 함포 지원을 받으며 덕적도에 성공적으로 착륙하여 산악고지를 도주하던 북한군을 격파하고 덕적도를 점령했다. 그리고 8월 20일, 영흥도로 진입, 북한군에게 맹공격을 퍼부으며 국군 포로 4명을 구출했다. 북한군은 이미 덕적도를 빼앗긴 상황에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영흥도 자체가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꼭 필요한 거점이었던 만큼,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를 비롯한 육전대는 끝까지 적을 몰아세웠다. 추격 중 적의 은신처를 발견한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부하들의 전진을 우선 정지시킨 후, 수류탄을 빼내 들고 엄호받으며 단독으로 돌진했다. 첫 번째 수류탄을 성공적으로 투척하고, 두 번째 수류탄을 던지려던 순간, 안타깝게도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의 가슴에 적의 탄환이 관통하였다. 분대장이던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가 총탄에 맞아 쓰러지자, 이삼재 부분대장이 이를 대신해 또다시 수류탄을 들고 돌진했고, 적의 집중사격으로 그마저 전사하자 전 분대원들은 일제히 적진으로 돌격했다. 이들의 공격으로 해군은 영흥도를 완전히 탈환했고, 덕적도와 영흥도의 탈환은 9월 15일에 전개된 인천상륙작전에 결정적인 전공을 올리게 되었다. 박동진이 적의 공격으로 인해 쓰러지면서 무장이 부족했던 동료들을 위해 "내 총 가져가라!” 소리치며 자신의 기관총을 던져준 후 숨을 거두었다고 하였다. 정부는 피로서 조국을 지킨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에게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그리고 조국을 위해 산화한 우리 문경 출신 전쟁영웅 고(故) 박동진 중사의 희생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명명한 해군 유도탄고속함 15함인 ‘박동진함 해군부대’를 창설하고 2014년 4월 1일 취역하여 영해를 수호하고 있다. 이날 문경시(시장 고윤환)는 해군 박동진함 부대와 자매결연식 개최하였다. 그리고 2017년 3월 24일에는 영웅께서 태어나신 고향 마을, 경상북도 문경시 유곡동 292번지에 위국헌신(爲國獻身)의 표상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6․25전쟁영웅 박동진 중사 기념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했다. 우리 고장, 문경을 빛내고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우리의 자랑스럽고 위대한 문경인,‘ 6․25전쟁영웅 박동진 중사’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도 대한민국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위기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작전을 성공시킨 숭고한 희생과 애국정신을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겠다. 산천도 울고 하늘도 울고 -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영웅 박동진 중사를 추모하며 - 피 끓는 나이 약관, 스무 살에 장렬히 산화하신 6·25전쟁 호국영웅 님이시여! 그날, 산천도 울고 하늘도 울었습니다 그러나 님이 있어 오늘, 이 땅이 있고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백척간두에 선 대한민국 그 운명이 걸린 "인천상륙작전 교두보를 확보하라”라는 첩보대의 지상명령 이미 북한군이 점령한 덕적도와 영흥도를 탈환해야 하는 막강한 임무를 부여받은 님은 불타는 용기와 애국심으로 작전을 수행하셨으니 장하도다 그 이름 특수 상륙부대, 해군 육전대 1소대 1분대장 박동진 중사 1950년 8월 18일 덕적도를 점령하고 이어 8월 20일 새벽 영흥도 탈환 작전에 돌입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시다 마지막 발악하는 잔당을 맞아 부하들을 안전한 곳에 두고 단독으로 적진을 향해 뛰어나가 첫 번째 수류탄에 이어 두 번째 수류탄을 투척한 순간 애석하게도 적의 탄환이 가슴을 관통 장렬히 산화하시니 아! 슬프도다 님이시여! 님의 불타는 가슴에서 애국의 붉은 피 솟구치던 그날, 고향 주흘산도 울고 영강도 울었습니다 님이시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전투 승전의 북소리 지금도 높이 울리고 충무무공훈장에 빛나는 자랑스러운 문경의 아들 대한민국의 건아여! 6·25전쟁 영웅이시여! 이제 고이 잠드소서 비록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지만 님의 이름을 단 유도탄 고속함 ‘박동진함’이 바다를 지키고 있고 그날의 그 용맹스러운 충의는 대한민국이 있는 한 님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영웅으로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님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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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한미동맹 70주년’ 계기 10대 영웅 선정…뉴욕 타임스퀘어에 송출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한미 6·25전쟁 참전용사 10대 영웅의 영상이 송출된다. 국가보훈처는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한미연합군사령부와 공동으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을 선정, 이를 영상으로 제작해 20일(현지시간)부터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송출한다고 밝혔다. 이는 10대 영웅을 비롯한 양국 참전용사들의 위대한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를 표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굳건한 한미동맹을 이어가자는 의미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10대 영웅의 모습을 담은 30초 분량의 영상은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삼성, 엘지 전광판을 통해 하루 680회 송출된다. 10대 영웅은 6·25전쟁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70년을 이어온 한미동맹의 역사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을 중심으로 선정됐다.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에는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 밴 플리트 부자, 윌리엄 쇼 부자, 딘 헤스 공군 대령, 랄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 백선엽 육군 대장, 김두만 공군 대장, 김동석 육군 대령, 박정모 해병대 대령이 이름을 올렸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은 6·25전쟁에서 아군 지휘는 물론,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해 전세를 뒤집어 위기의 한국을 구한 영웅이다. 조수 간만의 차 등으로 인한 작전 수행의 어려움과 미국의 반대에도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 성공을 거뒀다. 밴 플리트 부자는 2대에 걸쳐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 밴 플리트 장군은 미8군 사령관으로 참전해 "승산이 없는 전쟁이니 동경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참모의 건의에도 굴하지 않고 전선을 지킨 명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아들 제임스 밴 플리트 2세는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1952년 4월 임무 수행 중 적의 대공포 공격을 받고 실종됐다. 그를 찾기 위한 적진에서의 수색을 아버지 밴 플리트 장군이 ‘아군의 인명 손실’을 우려하며 중단시켜 참전을 앞두고 "전우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편지를 남겼던 청년 밴 플리트는 실종 전사자로 남게 됐다. 윌리엄 쇼 부자 또한 2대에 걸쳐 헌신했다. 윌리엄 쇼는 선교사로 주한 미군 군목으로 자원입대해 한국 군대에 군목제도를 도입했다. 그의 아들 윌리엄 해밀턴 쇼는 하버드에서 박사과정 수학 중 6·25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미 해군에 재입대(제2차 세계대전 참전)했다. 인천상륙작전 때 정보장교로 작전 성공에 기여했으며 서울수복작전을 위한 정찰 임무 수행 중 적의 총탄을 맞고 28세의 나이에 전사했다. 딘 헤스 공군 대령은 1950년 7월 대구기지에 도착한 이후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 양성 훈련을 포함해 1년여 동안 250회에 걸쳐 전투 출격을 하는 등 한국 공군의 대부로서 역할을 했다. 랄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은 1950년 11월 청천강 북쪽의 전략적 요충지인 205고지 점령 때 수류탄에 맞고도 작전을 지휘하는 등 중공군에 맞서 활약했다.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은 재미교포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 전역한 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의 나라를 구하겠다”며 미군 예비역 대위로 자원입대했다. 1951년 5월 구만산·탑골 전투와 금병산 전투에 참전,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을 독려해 승리로 이끌었으며 특히 지난 2018년 한국인 이름을 딴 미국 최초의 고속도로인 ‘김영옥 대령 기념 고속도로’의 주인공이다.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에서 국군 제1사단을 지휘해 칠곡군, 가산·동명면 등지를 아우르는 다부동 전투에서 미군과 함께 북한군 3개 사단을 격멸했다. 백선엽 장군은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고 가라”는 말을 남김으로써 임전무퇴의 군인정신을 실천했다. 김두만 공군 대장은 6·25전쟁 중 대한민국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을 달성했으며 김신 장군 등과 함께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에도 참여했다. 승호리 철교는 미 공군이 500회 출격으로도 폭파하지 못한 것을 저고도 폭격으로 14회 만에 폭파해 적 후방 보급의 요충지를 차단하는 전공을 세웠다. 김동석 육군 대령은 1950년 9월 미8군 정보 연락장교로 서울탈환작전을 위한 결정적인 적군 정보를 수집, 유엔군사령부에 제공함으로써 서울탈환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박정모 해병대 대령은 서울탈환작전 때 소대원을 인솔해 시가전을 전개하고 중앙청(당시 정부청사)에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년을 맞아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을 선정하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우리는 70여 년 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10대 영웅을 비롯한 참전용사들의 위대한 희생과 헌신이 굳건한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는 국가보훈처 '6·25전쟁 정전70주년 사업추진단'(044-202-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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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한미동맹 70주년 'Amazing 70' 참전용사에 감사22일 국가보훈처는 올해 한국전쟁(6·25전쟁) 정전협정과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위대한 헌신으로 이룬 놀라운 70년'을 주제로 국민·국제사회와 함께하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훈처는 올 2월 '정전 70주년 기념사업 고문 위원' 위촉을 시작으로 구글코리아 및 22개 참전국의 구글 지사들과 함께 만든 '70년간의 비무장지대(DMZ) 역사·자연·예술 온라인 전시 소통창구'를 전 세계에 공개했다. 또 이달 19일엔 '2023 서울마라톤' 참가자 3만2000여명이 정전 70주년 공식 브랜드가 새겨진 배번을 달고 참여했다. 보훈처는 △참전용사의 위대한 헌신에 감사 △자유의 가치를 국제사회와 공유 △놀라운 성공의 역사를 미래세대로 계승 등을 위한 사업계획을 수립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보훈처의 이 같은 계획은 전날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도 보고됐다.박민식 보훈처장은 "올해는 정전협정 70주년, 한미동맹 70주년의 특별한 해"라며 "다양한 기념행사와 사업 등을 통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국민·참전국과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며, 더 굳건한 동맹으로 더 나은 미래로 전진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보훈처는 정전협정 체결일인 올 7월 27일엔 22개 참전국이 동참하는 '정전협정 70주년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국제기념식'을 열어 "'글로벌 중추 국가' 한국의 위상을 제고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보훈처는 이날을 전후해 '참전국 정부대표단·유엔참전용사 및 가족 초청 행사'를 개최하고, 미래 보훈 협력방안을 논의할 '참전국 보훈 장관회의'도 주관할 예정이다.보훈처 관계자는 "22개 참전국 중 룩셈부르크·뉴질랜드는 정상급이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했다"며 "각국 국방·보훈장관은 9명 정도가 참석 가능하다고 했다. 장관들은 대부분 초청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정상급 참석자도 추가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보훈처는 '유엔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인 올 11월 11일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가 있는 부산유엔기념공원에서 '국제추모식'을 개최한다. 이에 즈음해 부산유엔평화기념관에서도 국내외 참전용사의 유품·기록 등을 모은 '참전용사의 흔적' 특별기획 전시회가 진행된다. 이외에도 보훈처는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공중비행, 불꽃축제 및 음악회 등이 어우러진 '세대 통합 한마당' 축제를 마련, "국민과 함께 참전용사의 희생·공헌과 정전 70주년의 가치를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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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평화아리랑’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이 조인된 날이다. 69년 전 7월 27일 판문점에서 3년간의 전쟁이 국제법적으로 정전을 문서로 합의한 것이다. 당시의 조인식장 건물은 현재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어 북한 측에 편입된 상태인 가건물에서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William K. Harrison Jr.) 중장과 북한군 수석대표 남일 대장이 각각 서명하여 이뤄졌다. 이 날의 조인 장면은 미군이 촬영하여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소장되었다. 이 날 아리랑으로선 뜻깊은 연주가 있었다. 아마도 가장 ‘아리랑’ 다운 연주였을 것이다. 바로 양측이 서명한 조인서를 교환하고 대표단이 동서쪽으로 난 문의로 나서는 순간 양측에서 아리랑이 연주되었다. 미군 측과 북한군 측 소규모 악대가 아리랑을 대표단을 향해 연주한 것이다. 이 아리랑 연주는 양측이 모두 인식한 의도적인 연주였다. 국제적이고 세기적인 전쟁의 휴전 조인식이면서도 악수도, 박수도, 당연히 웃음도 없었지만, 이 전쟁의 해결은 남북의 자주의사에 의해 이뤄질 것이란 암묵적 합의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동시에 연주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지난 27일 한국전 정전 조인 기념식이 한국과 미국에서 개최되었다. 서울 동대문 프라자와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추모의 벽’에서 역시 아리랑이 연주로 장식되었다. 한 신문은 이를 정확하게 기억해 냈다. "기념식은 미7사단 군악대와 우리 국방부 군악대대가 합동으로 아리랑을 연주하며 시작됐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조인하고 귀환하던 대표단을 위해 미군이 연주했던 노래가 아리랑이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노래’다. 남북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남측은 60여종, 북측은 43종의 아리랑을 ‘아리랑’으로 포괄했다. 하나이면서 어럿인 노래이다. 이 각각의 아리랑은 나름의 속성과 기능이 있지만 공통된 문화적 형질은 ‘대동과 상생’이다. 이는 곧 ‘평화정신’인 것이다. 내년은 정전협정 70주년. 부디 전쟁을 평화로 전환시키는 종전 기념식이 있기를 희원한다. 그 기념식에서 세계인이 악수하고 박수치며 함성을 지르는 감동이 넘치게 하자. 그리고 부등켜 눈물콧물 범벅되고 음정 박자 후렴이 뒤엉켜 ‘평화의 아리랑’을 목 놓아 부르자. 대동과 상생으로 끝내 이뤄낸 평화의 아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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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전쟁 전사자 유품 보존처리 완료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일대의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에서 수습된 유품 309건 417점의 보존처리를 마쳐 23일 국방부에 인계할 예정이다. 철원 화살머리고지는 1953년 국군과 유엔군으로 참전한 프랑스군이 중공군과 치열하게 싸운 격전지로,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대에 위치한다. 이번에 보존처리 완료된 유품 309건 417점은 신원이 확인된 유품 50건 73점과 신원 미확인 유품 259건 344점이다. 군번줄, 군화, 수통(水桶) 같은 개인물품을 비롯하여 M1(엠원) 개런드 방아쇠와 M1 대검, 철모, 탄띠 같은 전투 장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문화재청은 국방부의「6.25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 추진」에 따라 국방부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면서 지난해부터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전문인력을 활용해 한반도 비무장지대 내에서 발굴한 한국전쟁 전사자의 유품들의 보존처리를 지원해왔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비무장지대 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유품 보존처리 지원으로 순국선열에 대한 공동의 국가적 책무를 실천하고 근대 문화유산의 보존방안 수립과 기초자료 확보에 이바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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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화살머리고지에 평화기념관6·25전쟁 격전지였던 강원 철원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에 평화를 상징하는 기념관이 들어선다강원도는 화살머리고지 평화기념관 건립을 위한 내년도 국비 12억원을 확보했다고 5일 밝혔다.평화기념관은 철원 백마고지 전적비 인근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들어선다. 2025년까지 국비 191억원 등 283억원을 순차적으로 투입해 건립한다.평화기념관은 분단의 역사와 사회적 아픔을 치유하고 남북 공동체 회복을 위한 평화, 희망 등의 비전을 형상화한 라키비움(도서관+기록관+박물관) 형태 복합공간으로 만든다.화살머리고지는 1953년 국군과 중공군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참전했던 국군, 중공군뿐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등 유엔군의 유해가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곳으로 남북이 최초로 공동 유해 발굴을 추진한 곳이다. 유해발굴 작업은 2018년 9·19 군사합의를 계기로 이듬해 4월부터 진행했으며 지난 6월 마무리됐다. 화살머리 남측 지역에서 3092점의 유해가 발굴됐으며 국군 전사자 유해 중 9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또 화살머리 고지 인근에서 인식표와 계급장 등 군인 유품 10만1816점을 찾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강원도와 철원군은 화살머리고지 평화기념관 건립을 위해 지역 국회의원들과 힘을 합쳐 국비를 확보하고 정부를 설득하는 데 주력해 기념관 조성을 이끌어 냈다.박용식 강원도 평화지역발전본부장은 "화살머리고지 평화기념관이 평화와 화합의 상징적인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조성하고, 앞으로 기념관과 연계한 다양한 사업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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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11시…유엔참전용사 추모 1분간 묵념11월 11일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맞아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가 있는 부산에서 영국군 무명용사 유해 안장식과 유엔전몰장병 추모식이 거행된다. 국가보훈처는 오는 11일 오전 10시 30분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행사를 거행한다고 10일 밝혔다.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은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유엔참전용사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시작한 국제추모 행사다. 지난해 ‘유엔참전용사의 명예선양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에 따라 11월 11일을 법정기념일인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한 가운데 ‘부산을 향하여(턴투워드 부산, Turn Toward Busan)’이라는 표어로 진행된다. ‘부산을 향하여’는 6·25전쟁에서 희생한 11개국 2311명의 유엔전몰장병이 안치돼 있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22개국 유엔참전국이 11월 11일 1분간 함께 묵념한다는 의미로, 지난 2007년 첫 행사부터 사용하고 있다. 올해 행사에는 김부겸 국무총리와 라미레스 콜롬비아 부통령, 폴 러캐머라 유엔군사령관, 황기철 보훈처장을 비롯해 22개 참전국 주한 외교사절 등이 참여한다. 특히 대한민국의 초청으로 8일부터 13일까지 방한하는 7개국 40여 명의 유엔참전용사와 가족도 함께 한다. 보훈처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영국군 무명용사 유해 안장식과 유엔전몰장병 추모식으로 나눠 거행된다. 안장식은 영국군 묘역에서 추도사와 유해봉송을 시작으로 영국 국기헌정·하관·허토·헌화·묵념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허토는 지난 70년 동안 영국군 3구의 유해가 묻혀있던 경기도 파주 일대의 흙이 사용돼 고인의 영면을 기린다. 이어 11시 정각에 맞춰 부산시 전역에 추모 사이렌이 울리고, 1분 간의 묵념과 함께 유엔전몰장병들의 희생과 공헌을 최고의 예우로 기린다는 의미에서 조포 21발을 발사할 예정이다. 또 김 총리와 유엔참전국 대표 라미레스 콜롬비아 부통령은 유엔전몰장병 추모명비가 투영된 원형 수반 위에서 수상 헌화를 진행한다. 원형 수반에는 유엔전몰장병 추모명비에 새겨진 전사자와 실종자 4만 896명의 넋을 기리고, 추모와 간절한 기다림의 의미를 담아 특별 제작한 ‘달맞이꽃’ 4만 896송이를 띄운다.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진 달맞이꽃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모든 전몰장병에 대한 국민의 간절한 기다림을 표현했다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헌화 후에는 유엔군을 대표해 폴 러캐머라 유엔군사령관의 헌정 인사말과 주제 영상, 국제추모 행사를 최초로 제안한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가 전우에게 바치는 시 ‘소중한 청춘의 나날’ 낭독이 이어진다. 아울러 유엔묘지에 안장된 캐나다 참전용사 패트릭 윌리엄 오코너가 전사 전날인 1951년 5월 30일에 남긴 시 ‘코리아’에 한국 유명 음악감독 김문정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를 성악가 길병민이 불러 헌정공연을 펼친다. 김 총리의 추모사를 비롯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대한민국 정부의 영국군 유해 발굴 노력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도 영상으로 전하고, 부산 출신의 아이돌 가수 조유리가 영상 속의 유엔참전용사 후손들과 함께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이매진(Imagine)’을 부르는 추모공연을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유엔참전용사의 헌신을 기억하는 공군 블랙이글스의 추모비행이 하늘을 수놓을 예정이다. 보훈처는 "올해는 대한민국의 유엔가입 30주년과 유엔기념공원 조성 70주년이 되는 역사적으로 뜻깊은 해”라며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이번 영국군 무명용사 안장식과 추모식이 유엔참전용사의 헌신을 기억하고 세계평화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유엔참전용사의 헌신을 추모하기 위한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도 마련한다. 보훈처는 ‘김지윤의 지식 Play’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고 있는 김지윤 박사의 ‘11월 11일 11시, 전 세계가 부산으로 향하는 까닭은?’ 영상과 터키·호주·태국·그리스·프랑스의 참전 이야기를 전하는 전쟁사 연구자 남보람 연구원의 ‘호국의 역사다방’ 영상을 11일부터 보훈처 유튜브에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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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참전국에 전통문화 알리기 업무협약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 이하 ‘보훈처’)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 이하 ‘문체부’)와 함께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유엔참전국에 한복 등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한 업무협약을 20일(금) 오후 4시 30분,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체결한다. 이번 협약은 유엔 참전용사에게 전통문화 무료 체험 등을 통해 감사를 전하고, 유엔참전국에 ‘한복’ 등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림으로써 미래세대까지 한국과의 인연이 계승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양 기관은 협약을 통해 유엔 참전용사와 후손 방한 행사, 유엔참전국 현지 위로‧감사 행사 등을 계기로 전통문화 알리기에 앞장설 예정이다. 또한, 향후 참전국과의 인연을 미래세대로 계승하기 위한 국제보훈 정책과 전통문화 홍보 정책에 대한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한편, 양 기관은 유엔 참전용사에게 한복을 선물하는 재능기부 활동으로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국격을 높이는 일에 앞장선 김인자, 김혜순 한복 디자이너에게 공동으로 감사패를 수여한다. 두 디자이너는 각각 ‘유엔군 참전의 날(7.27)’ 계기로 방한한 유엔 참전용사 후손과 ‘한-콜롬비아 정상회담(8.25)’을 앞두고 방한할 콜롬비아 참전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복을 지원했다. 황기철 보훈처장은 "이번 업무협약이 71년 전 유엔 참전용사들이 지킨 한국이라는 나라가 문화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알리고,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 보답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보훈문화를 구축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미래세대까지 전파하여 그 인연이 계승될 수 있도록 문체부와 지속적으로 협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문체부 황희 장관은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지키고자 맞서 싸웠던 분들께 우리 전통문화를 수호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세계 속에 한류를 확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의 정신을 계승하고, 우리 전통문화를 바르게, 널리 알리기 위해 보훈처와 다각적으로 협력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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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참전의 날' 맞아 영어로 개사한 '기억의 노래' 영상 제작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유엔군 참전의 날(7.27)’을 맞아유엔군 참전용사들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해 ‘기억의 노래’를 영어로 개사한 노래 영상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기억의 노래’는 작년 6월 호국보훈의 달에 가수 하림이 작곡하고, 국민과함께 작사하여 완성한 곡으로 무료 음원을 배포한 바 있으며, 올해는 ‘유엔군 참전의 날(7.27)’을 맞아 새롭게뮤지컬 배우 마이클리(Michael K. Lee)가 영어로 가창했다. 이번에 영어로 개사한 ‘기억의 노래’는 원곡자 하림의 주도하에 이뤄졌으며, 가창은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가, 영어 개사는 가수안신애가 맡았다. 향후, 이번 영상은 유엔참전국 관련 국제보훈 행사에 활용될 예정이며 음원도 제작하여 배포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영상은 국가보훈처 유튜브 채널에서 오늘(27일)부터 볼 수있으며, 국가보훈처는 "영상을 통해 많은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줄 것으로, 국내외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헌신을 기억하고감사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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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완창 판소리 무대, 박동진 흥보가 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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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유품 보존처리 시작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국방부가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발굴해 수습한 한국전쟁 전사자의 유품 313건 425점의 보존처리를 시작한다. 국방부는 남북 간 체결된「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2018.9.19)」에 따라 남북공동 유해발굴구역으로 선정된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유해발굴 작업(2019.4.~2020.11.)을 진행해 유해 약 400여 구와 화기, 탄약, 전투장구, 개인유품 등 총 9만 5,000여 점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그간 국방부는 유해발굴 현장에서 확인된 유품에 대해 자체적으로 보존처리를 해왔으나 발굴지역이 확대되면서 유품 수량이 늘어 보존처리가 지연되자 지난해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중심으로 비무장지대 내 유해발굴 유품의 보존처리를 지원하고 있다. * 2020년 문화재청의 유해발굴 유품 보존처리 지원 수량: 69건 545점 올해 문화재청이 보존처리를 하게 된 유품 313건 425점은 개인유품 50건 73점과 기타 화살머리고지에서 출토된 263건 352점이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오는 28일 국방부로부터 대상 유품들을 인수하여 연말까지 보존처리를 완료할 예정이다. 또 7월에는 보존처리 유품 중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의 유가족을 초청하여 유품의 보존처리 과정을 공개하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참고로, 철원 화살머리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대에 위치하며 1953년 국군과 유엔군으로 참전한 프랑스군이 중공군과 치열하게 싸운 격전지였다. 이 지역의 유해발굴은 한국전쟁 이후 68년 만에 이뤄진 최초의 비무장지대 유해발굴 사례로 역사적인 의미 역시 크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비무장지대 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유품 보존처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순국선열에 대한 공동의 국가적 책무를 실천하고 근대 문화유산의 보존방안 수립과 기초자료 확보에도 기여할 계획이다. <보존처리 대상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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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DMZ) 철원 화살머리&백마고지 실태조사문화재청(청장 정재숙)·강원도(도지사 최문순)·경기도(도지사 이재명)는 비무장지대(DMZ) 세계유산 등재추진을 위한 문화·자연유산 실태조사의 하나로 철원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 실태조사를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진행할 계획이다.철원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과 중공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1951년 휴전회담이 시작된 이후 실제 정전협정이 이루어지는 1953년 7월 27일까지 고지쟁탈전이 이루어졌던 대표적인 장소들이다.화살머리고지(Arrowhead hill)는 지형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1953년 7월 11일까지 총4차의 전투 발생했다.백마고지(Whitehorse hill)란 이름은 포격으로 인해 누워있는 백마의 지형으로 명명되었으며, 1953년 7월 11일까지 총 4차 전투 발생했다. 이러한 고지들은 현재 비무장지대를 설정하는 기준인 군사분계선의 형태를 결정한 주요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장소성으로서 의미가 크다. 또한, 철원 화살머리고지는 2018년 「9·19 군사분야합의서」에 의해 최초의 비무장지대 내 유해발굴이 가능했으며, 갈등과 분단으로부터 평화와 협력의 장소로 전환되는 역사적인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 한반도 비무장지대 실태조사단은 정부혁신(적극행정)의 하나인 이번 실태조사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군사작전지도 등 기록자료를 토대로 현재 추모관으로 탈바꿈한 감시초소(GP)를 비롯하여 유해발굴현장 등이 이루어지는 고지의 경관과 영역 설정을 위한 기록화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 또한,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21일 현장을 방문하여 화살머리고지 등이 비무장지대 세계유산 등재 추진의 중요한 현장임을 확인하고 한반도 비무장지대 실태조사 진행상황도 점검할 예정이다. 한편, 문화재청은 현재 국방부 협업과제로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국군유해와 함께 수습된 유품의 보존처리도 수행하고 있어 이번 유해발굴 현장 실태조사를 통해 유품 보존처리의 향후 진행방안 등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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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 개최‘70년 전 부산항에 도착한 필리핀 참전용사를 기억하며’ - 필리핀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 - ‣ 박삼득 보훈처장은 주한필리핀 대리대사 등과 함께 6·25전쟁 당시 필리핀군 부산항 입항일에 맞춰 18일(금) 오전 10시, 필리핀군 참전기념비에서 ‘필리핀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 진행 ‣ 필리핀은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상군을 파병한 국가로, 7,420명이 참전하여 율동 전투 등에 112명이 전사하는 등 많은 희생으로 공적을 세웠으며, 앞으로도 참전으로 맺은 혈맹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예정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이하 보훈처)는 6·25전쟁 당시 필리핀군 부산항 입항일(1950. 9. 19)에 맞춰 18일(금) 오전 10시, 필리핀군 참전기념비(경기도 고양시)에서 ‘필리핀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상황을 고려하여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크리스티안 헤수스(Christian L. De Jesus) 주한필리핀 대리대사, 스튜어트 캠벨 메이어(Stuart Campbell Mayer) 유엔군 부사령관, 이재준 고양시장, 장광선 육군 제1군단 부군단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참배로 경건히 진행된다. 6·25전쟁 당시 필리핀은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상군이 참전한 국가로, 부산 입항일인 1950년 9월 19일부터 1953년 5월 13일까지 연인원 7,420명이 참전했다. 필리핀군은 1950년 10월 1일 미 제25사단에 배속되어 활동을 시작한 이후 연천 율동 전투(1951. 4월) 등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112명이 전사하고 299명이 부상, 16명이 실종되고 41명이 포로가 되는 등 많은 희생이 있었다. 또한, 정전 이후에도 한국의 재건을 위해 많은 지원을 했을 뿐 아니라 주력 철수 이후에도 유엔군사령부에 소수병력을 주둔시켜 정전협정이 준수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한편, 보훈처는 올해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를 맞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필리핀 참전용사 등 유엔참전국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6·25전쟁 70주년 기념식’과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등을 통해 멀리서나마 유엔참전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으며, 특히 지난 5월 필리핀 참전용사에게 방역 마스크 5만장을 지원하기도 했다. 오는 11월에도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11월 11일)을 맞아 기념식, 추모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필리핀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은 주필리핀대사관과 필리핀 주재 한국문화원을 통해 가진 최근 인터뷰에서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국을 기억하고 특별한 애정을 표현했다.필리핀 한국전 참전협회장인 막시모 푸리시마 영(Maximo Purisima Young)전쟁 당시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는데, 다시 방문한 한국의 모습은 크게 달라져 있어 놀랐다고 언급하면서 근면 성실한 한국인들에게 감동을 받았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또한, 한국정부에서 참전용사들을 예우할 뿐만 아니라 후손들을 위한 교육 지원을 하는데, 이것이 참전용사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그의 아들인 워터 영(Water Young)은 참전용사 아들로서 아버지께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셨다는 것을 항상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하면서, 전쟁 당시 필리핀군이 추운 날씨 속에서 한국인들을 위해 싸운 것은 우호국에 대한 희생정신을 보여준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상황에서 한국정부에서 유엔참전용사를 위해 마스크를 전달한 것은, 전쟁 당시 참전용사가 한국인들에게 보여줬던 사랑을 한국 정부에서 필리핀과 참전국에게 다시 돌려준 것으로, 아주 놀랍고 정말 존경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6·25전쟁영웅 얍 대위의 딸인 이사벨리타 얍 아가논(Isabelita Yap-Aganon)아가논은 1993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는데, 판문점에 가는 길에 어머니께서 감정에 북받치셨는지 눈물을 보이셨다고 과거를 회상했다.또한, 그로부터 몇 년 후에도 다시 한국에 가게 되어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는데 그때 감정에 복받쳐 눈물이 났었다고 전하면서,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버지의 영혼이 한국에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작년은 한-필리핀 수교 70주년이었던 해로, 앞으로도 양국 국민들 간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콘라도 얍(Conrado D. Yap) 대위는 1950년 9월 19일 필리핀 육군 제10대대전투단 전차 중대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1951년 4월 23일 율동전투에서 방어진지를 사수하고 전사했으며, 지난 ‘19년 4월 국가보훈처 선정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다. 보훈처는 "앞으로도 필리핀 참전국을 포함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국제보훈사업을 추진하고, ‘참전으로 맺은 혈맹의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해 참전용사 후손을 비롯한 미래 세대와 함께 6·25전쟁의 역사를 되새기는 사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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