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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 2세가 부르는 서러운 아리랑사할린한국교육원장 3년간 업무를 마치고 귀임한지 1년이 지났지만, 사할린 동포들의 서러운 처지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코로나 시절 함께 불렀던 아리랑 선율에 따라서 부른 개사한 노래를 불러본다. 교육일지와 사진 속에 있는 사할린 동포 2세들의 얼굴들을 떠 올려본다. 사할린 한인 2세의 간절한 소망 사할린한국교육원 한국문화 수업을 함께하면서 이분들의 간절한 소망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동포들의 뼈져린 한은 영주귀국으로 조국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형제들을 만나는 것이다. 한국으로 가신지 30년이 지나고 이미 영주귀국 후 연로하신 부모를 모시기 위하여 2세대 자녀 한명과 그 배우자를 영주귀국 대상으로 확대되었다.(2021년) 그 이전까지는 풀릴 기미가 없이 가슴 아프게 지속되었다. 1세대 부모가 사망한 2세대 자녀들에 대해서는 현재 법적으로 영주귀국이나 귀환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국적 취득에 관한 속지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분들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말하고 쓰고 배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술김에 흥얼거리는 아리랑이나 민요 가락을 들으며 자랐고, 한국의 전통 풍습과 명절을 쇠었으며, 조선에서 가져 오거나 사할린에서 만들어 쓴 조선의 생활물품을 늘 보고 쓰며 아버지, 어머니 따라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어린시절, 청소년 시절, 냉전의 시기를 살아 왔다. 해방 후 냉전 시기에 사할린 한인들은 억류되어 감시 당하며 사회주의 소련땅 사할린의 노동력을 보충하는 신분이었다. 이동과 취업, 인간으로서의 권리적 측면에서 차별과 멸시는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과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대한민국의 발전상이 보도되면서 급격히 사할린 한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지만, 어린 시절 당했던 차별과 수모에 대해서는 늘 대화의 끝에 "정말 숱하게 멸시를 받았어." 하시며 푸념하듯 말씀하시곤 했다. 오죽했으면 한인 2세대인 사할린태권도협회 안수학 회장은, 어린 시절 차별과 수모에 반대하여 싸움을 자주 했고, 김치 냄새난다고 놀리는 러시아 아이들 혼내주고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가라테를 배웠으며, 한러수교 후 태권도를 다시 익혀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국적을 러시아로 바꾸지 않고 평생 무국적으로 살다가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대하고 있었고 2세대 자녀들은 귀환을 믿으며 굳건히 당당하게 살아왔다. 그렇게 냉전과 사회주의 시절을 살다가, 한국의 발전상이 사할린에 알려지고 사할린 한인의 존재와 귀환의 문제가 공영방송을 타면서 국내에도 알려졌다. 사실 한-러 수교 이전에도 KBS사회교육방송(현재 한민족방송)에서는 사할린 한인동포들이 고국의 친지에 전하는 사연들이, 일본으로 이중징용 되어 재일동포가 된 지인을 통해 전달되어 방송이 되곤 했다. 그러나 첨예한 냉전 시기에 관심도 지원도 교류도 불가능한 시기였다. 1990년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 고국방문이 이루어질 때 한국에 다녀오신 1세대 부모들이 많았다. 그러나 영주귀국 희망 신청이 이루지던 결정적 시기를 맞이하기 전에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이 참으로 많다. 그 시기에 생존해 계신 1세대분들은 영주귀국을 희망하고 신청하여 고국에 오셨지만, 사망하신 1세대분들은 영영 통한의 그리움 안고 타국 땅에서 숨을 거두고 그 섬에 묻히셨다. 사할린에 징용되었다가 일본으로 다시 이중 징용된 1세대 부모를 둔 2세대 자녀들은, 알음알음 정보를 얻어 일본의 한 공동묘지에서 외할아버지의 묘를 찾기도 하였다. 이 얽히고 설킨 일제 강제징용과 식민시대의 압제와 희생, 그리고 조국으로부터 외면 당한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이분들에겐 실로 삶 전체가 버겁고 서러운 현실이다. 나는 어떤 영향력을 가진 위치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영주귀국 확정 전에 부모를 잃은 2세대 분들의 원한을 내 두 귀로 듣고 두 눈으로 보고 가슴에 간직하게 되었다. 사할린 동포 지원 특별법에 "사망 등 다양한 사유로 영주귀국 신청을 하지 못한 1세대 동포들의 자녀들에게도 희망에 따라 영주귀국의 기회와 모국인 대한민국의 국적 취득이나 경제적 지원의 혜택을 드릴 수 있는 방안" 을 모색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범위의 2세대 분들 중에는 현 러시아 정부의 연금을 수령하는 분도 있고, 홀로 사업을 일으킨 분도 있으며, 이미 사할린 사회에 인정을 받은 문화 예술 공로자도 많다. 대한민국으로 영주귀국한다면 자녀들과의 이별을 두려워하는 분들도 많다. 따라서 그런 범위의 모든 2세대 분들이 영주귀국을 희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국이 풀어주지 못한 부모의 원한을 보며 겪으며 성장하고 기억하는 자녀들의 소망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조국에서 살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할린 한인 2세의 고통과 설움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사할린한국교육원과 유치원에서 25년간 한국어를 가르치시다가 2021년 영주귀국 신청으로 한국에 오신 2세 전영희 선생님은, 어머니가 2004년 병환 중에 영주귀국을 하셨지만 대한민국 국적이 나오기 전에 병원에서 사망하셔서 한국 국적도 받지 못하였다. 그러니 전영희 선생님은 영주귀국 대상이 될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영주귀국 하시는 1세분과 재혼을 하여 배우자 자격으로 2021년 11월에 영주귀국을 하셨다. 그러나 배우자께서 역시 국적 취득 전에 별세하셔서 국적이 나오지 않아 애태우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화가 난다. 영주귀국 하신 분이 돌아가시면 사후에라도 국적을 드려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그래야 자녀에게도 법적으로 고국에서 살아 볼 기회가 생길 것 아닌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에 오셨는데 남편이 국적을 받기 전에 별세하여 배우자의 국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내는 다시 돌아가라는 것인가. 너무나 법 적용이 허술하고 냉혹하다. 유독 사할린 한인, 사할린 동포들에게 더 냉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세 부모를 모시기 위해 영주귀국 허용된 2세 분들 중에는 한국어에 서툰 분들이 많고 일상 생활, 행정적 처리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 고국 정착 과정에 난제와 장벽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사할린한국교육원의 한국어 교재를 다시 가져와 드린 적이 있다. 정착 지원 체계가 아직 자리 잡히지 않아 각자도생 해야한다는 말이 나왔다. KBS한민족방송이 주관하는 한민족체험수기대회에서, 2021년(사할린아리랑무용단 박영자 단장), 2022년(유즈노사할린스크 김경순) 성인 부문 대상을 모두 사할린 2세대 한인 어르신이 수상하셨다. 2021년 수상자 박영자님은,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다시 이중징용 되셨다가 끝내 일본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인사드리던 기막힌 디아스포라가 담긴 가족사를 글로 남겼다. 수상 인터뷰에서 "KBS가 주는 이 대상은 우리 가문의 영광이기 전에 사할린 한인 전체에 주는 상"이라며 "사할린에서 다시 이중징용으로 일본 탄광으로 끌려가서 타국에 묻히신 외할아버지께 이 상을 바친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하셨다. 2022년 수상자인 김경순님은 아버지에 대한 가족사를 이야기했다. 90년대 중반 병든 노부모가 한달 간의 모국방문에서, 50년 만에 아들과 상봉 후 다시 이별하여 사할린에 돌아와 몇 개월 만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끝내 영주귀국 신청을 해보지 못한 서러움에 관한 처절한 가족사의 이야기를 쓰셨다. 특히 김경순님은 한국교육원 한국문화 수업시간에 배운 가수 조용필의 노래(그 겨울의 찻집)와 주병선의 노래(칠갑산) 가사를 바꿔 부모에 대한 기억, 조국 귀환에 대한 부모의 열망, 부모님과 10살 아들(김경순님의 오빠)과의 이별 장면 등을 가사에 담아 내게 보내셨다. 그 노래를 노래방 반주에 맞추어 불러 보았는데, 부르다가 여러 번 가슴이 메이고 눈물이 터져 한참 후에나 완전히 부를 수 있었다. 그 노래 영상들을 김경순님께 내가 보냈고 김경순님은 한국의 조카들(큰 오빠의 자녀)에게 보내 드렸다고 한다. 그러면 조카들로부터 아버지 어린 시절을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고 한다. 박영자님의 외할아버지 이야기와 김경순님의 부모님과 오빠에 대한 사연은, ㈜국악신문과 새고려신문과 ‘우리말방송’에도 게재되고 방영되었다. 김경순님 사연은 KBS한민족방송에서도 사할린과 전화로 연결하여 소개되기도 하였다. 나도 방송에 출연하여 사연과 노래 가사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사할린 동포, 사할린 한인 1992년부터 시작된 사할린 동포 1세대의 영주귀국 사업으로 현재까지 4,700여 분이 홀로 또는 배우자와 함께, 그리고 2021년부터는 '이미 한국에 사시는 부모님'의 2세대 자녀 1인과 배우자가 한국에 영주귀국하여 사신다.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되었거나 사할린에서 태어난 한인들을 ‘사할린동포’라고 정의한다. 이분들이 영주귀국이 허용된 사할린 동포 1세대이다. 따라서 사할린에서 한 집안이나 동네에서 자란 언니, 동생, 친구라도 1945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영주귀국 지원 혹은 희망과 신청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제외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영주귀국 사업 개시 당시 생존하는 1세대 한인에 한하여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신청 및 허용 대상이 되었다. 이 글은 영주귀국 사업과 신청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망하거나 기타 사정으로 영주귀국 신청을 할 수 없었던 부모를 둔, 2세대 사할린 한인 자녀들의 간절한 소망에 관한 것이다. 이분들은 2024년 현재 연령상 6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에 이르신 분들이다. 조국 귀환의 기회를 누리지 못한 불쌍한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통절한 한을 품은 채 살고 계시다. 어떻게든, 그렇게도 부모가 돌아가고 싶던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계시다. 영주귀국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 취득을 하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절차가 너무나 어렵다고 한다. 이런 점을 알리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2020년에서 부터 3년간 한국문화교류가 단절되는 시기 필자는 임시 탈춤강습과 탈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국립사할린대학 한국어과 학생들과 사할린아리랑무용단 단원들에게 탈춤 기본 춤사위를 지도했다. 우리 민족은 어디를 가나 노래방이 있듯이 러시아는 춤을 즐기는 민족이다. 사교댄스나 스포츠댄스 모임이 많다. 아마도 죽을 때가지 춤을 추다가 간다고나할까. 동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실버댄스 동아리에 들어가서 함께 춤을 배우기도 했다. 그들에게 탈춤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렇게 동포들과 가까이 만나게 되면서 사할린 한인들의 이산에 대해 4대 가족사를 접하게 되었다. 특히 댄스 클럽에서 만난 오석만씨가 KBS한민족방송에서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2023년 우수상을 수상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한국어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할린 한인들의 가족사는 바로 잊혀진 한국사이고 동아시아 전쟁사라는 나의 설득에 용기를 내서 슬픈 가족사를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책으로 묶여 나와서 보내드리게 되었다. 한국교육원 수업에서 한국어 수업이나 한국문화 체험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인들이 과제물로 내 놓은 체험수기 중 우수한 작품이 KBS한민족체험수기에서 매년 대상과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경순님은 한국교육원 수업에서 ‘그 겨울의 찻집’ 노래를 배우신 후 ‘눈물의 섬, 사할린’으로 가사를 정셨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가사 중에 특히 "사무친 한을 풀어 주세요."는 대한민국에 외치는 절규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서러운 아리랑 사할린으로 끌려 왔어요. 조선 땅에서 그 옛날 일본 놈들의 시달림 받고, 늘 괴로움에 떨었죠 가고픈 고향 한국 땅으로, 부모형제 사는 마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 한숨만 저절로 나네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리워라 내 고향 사모친 한을 풀어 주세요, 하루 속히 날아 가고파 그늘진 세월, 고향 그리며, 철천지 한이 되었네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꿈에서 본 내 고향 그리고 ‘칠갑산’ 노래의 곡조를 생각하면서 부모와 이별하는 어린 10살의 오빠의 심정을 감정이입하여 지은 ‘’ 가사는 이러하다. 이별의 부두 부모 잃은 어린 마음을, 그 누가 알아 주리요 외로웁고 서럽던 아픔, 누구에게 원망 주리요 어머니는 내게 같이 떠나자, 애닯게 속삭였지만 할아버지 무서워 끝내, 따라간다는 말을 못했소 어머니가 나를 두고 떠난 날, 배 떠난 부두에 나가 하염없이 목 놓아 울었다오.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또 김경순님은 아리랑민족의 후예로서, 부모님과 큰오빠의 오십년 이별과 한번의 만남, 또 이별과 사별의 한, 전체 사할린 한인동포들의 고통의 역사를 담아 아리랑 가사로 쓰셔서 내게 보내셨다. 적절한 아리랑 곡을 찾아 보았는데, BTS의 아리랑이 긴 가사를 모두 담을 수 있었기에 노래로 불러서 보내 드렸다. 도중에 여러 번 목이 메었다. '한맺힌 사할린 아리랑'을 정리한 가사는 이러하다. 한맺힌 사할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일제에 끌려 사할린 왔소. 모질던 징용살이 누가 아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넘어간다.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믿음에 살아 낸 세월 [랩 버젼] 한달만 있다가 돌아간단 그말, 어찌나 기다렸는지. 밤이면 라디오 틀어 놓고서 혹시나 우리를 찾을까 봐. 애타게 기다린 자식 형제들 오십년 넘어서 만나보네. 수십년 세월을 참아 왔는데 언제 또 고향 땅을 밟아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기다리다 지쳐 세상 뜨신, 우리네 부모님들 불쌍하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 넘어간다. 부모들 사모친 한 생각하면, 애타던 자식들도 가여워라. 너나없이 서럽고 아파 어이하오. 이 가사의 핵심은 부모와 어린 오빠가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친 것, 그런 가엾은 부모를 보는 자식들 모두 차마 맨 정신으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가엾다는 점이다. 영주귀국의 기회가 오기 전에 돌아가신 불쌍한 부모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진다. 부모님의 나라에 더 가까이 가고 싶은데 도무지 소식도 없고 희망을 찾을 수도 없다. 이 아리랑의 마지막 가사들은, 그렇게 부모를 잃고 조국과 단절된 채 희망을 잃은 사할린 한인 2세대 자녀들의 심정을 그대로 외치는 절규다. "(조국 귀환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 뜨신 우리네 부모님들 불쌍하오 부모들 사모친 한 생각하면 애타던 자식들도 가여워라 너나없이 서럽고 아파 어이하오 2023년 9월에는 ㈜국악신문사(대표이사 기미양)를 통하여, 아리랑 무용단장 박영자님(갈리나 박)의 아리랑 가사를 받았다. 박 단장님 역시 일찍 부모를 잃고 영주귀국의 희망이 사라진 심정과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마음 속의 조국에 대한 이미지와 당신의 현실에 대하여 "사할린 2세 아리랑"라는 재목을 달고 가사를 지으셨다. 아리랑 반주를 확장하여 가사를 붙여 서울의 사무실에서 불러 보았다. 사할린 2세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는 사할린 2세 한인 할머니, 하지만 부모 조국은 한국이라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 어릴 때 저 산 너머엔, 내 조국 있다고 믿었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팔십 년 세월 부모 잃고 서럽구나, 나도 이제 주름진 할머니로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말문 터진 손주들 자주 묻는 말, 할머니와 조국에서 살 수는 없나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발전되어 잘 사는 우리 조국 한국, 우리에겐 자랑스런 마음만 크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언젠가 이 생명 끝나기 전에, 조국 품이 우리 2세들 안아 줄까 한인 2세, 우리는 누구인가요 어릴 적부터 조국의 존재를 믿고 한국어, 한국문화로 정체성을 지켜 왔지만, 영주귀국 신청 시기 이전에 부모를 빨리 여의신 사할린 한인 2세 어르신들의 심정은 한결 같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한국을 조국으로 선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당신들께도 주어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설령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사할린 사회에 뿌리박은 삶의 터전을 옮기는 문제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자녀들과의 이산, 다른 친지, 친구들과의 이산을 의미하며 기존의 러시아 정부로부터 받는 연금의 상실과 영주귀국 후 생활보호대상자 신분으로서의 생활 등 수많은 심적 갈등 상황이 존재한다. 그러나 조국이 부모의 한을 풀어 준다는 기본적인 정책의 도리와 그로부터 받는 부수적 혜택이면 충분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들의 국적 취득이나 자녀의 유학이나 체류 등에 있어서 유연함 같은 혜택일 수 있다. 엄연히 식민지 시기 타국으로 강제동원된 국민들의 자손이 아닌가 말이다. 2021년 10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 정권에 항복하여 붕괴되던 시기, 그간 한국 정부에 기여한 아프가니스탄 국민과 가족들을 우리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목숨을 걸고 안전하게 데려온 미라클(기적)의 작전이 있었다. 그러한 쾌거는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한국 정부의 도덕성과 형제애 및 인류애를 상기시킨다. 그런 인류애와 형제애를 지닌, 정의로운 나라가, 강제로 희생된 일제침략기의 혈육과 자손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또한 지나치게 엄격한 법률의 적용으로 인해, 명백한 국적 회복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 상황(영주귀국 후 국적 취득 전 사망하신 경우)에서 비인륜적으로 국적을 부여하지 않아 그 자녀들의 기회가 방기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법의 취지를 저버리는 일이다. 법의 사각지대는 극단적으로 냉혹하게 2세대분들의 가슴을 갈라 놓는다. 법이 어째 그리 촘촘하지 못하여 법 구실을 다 못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일본 정부나 러시아 정부와 얽힌 외교적, 법률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런 문제 해결의 전제없이도 우리 정부의 결단이면 어느 정도 가능한 일 아닐까 생각한다. 하물며 인구도 수십년 간 하염없이 감소하고 있어 국가 소멸의 길로 가는 절체절명의 시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체 무엇을 망설이는가 묻고 싶다. 나는 2세분들의 사무치고 뼈저린 한마디 한마디를 기억한다. "왜 한국은 그렇게 발전했으면서 우리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죠? 옛날엔 가난했다, 전쟁으로 힘들었다, 다 이해해요. 그런데 지금은요?" "부모들은 우리에게 한국어와 한자를 가르쳤어요. 조국에 돌아갈 때까지 잊으면 안된다고. 저 산 넘어가면, 바다 건너가면 조국 조선땅이 있다고 했어요. 고향이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소련 시절에, 영주귀국 전에, 병으로, 이중징용으로 다 돌아 가셔서 우리들은 갈 기회가 없어졌어요. 우린 뭐에요?" "부모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 고향에, 왜 사할린에서 태어난 2세들은 못 살아 보는 거죠? 한국말도 말하고 생활방식도 한국식으로 잊지 않고 지켜왔는데?" 한국 교육부에서 파견 나온 교육공무원은 이에 대해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다만 ‘제가 그런 것을 결정하거나 영향을 미칠 만한 능력이 없어서 죄송해요.’ 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의 애환을 담은 가사에 노래를 불렀고, 교실과 공원에서 한국의 인기 가요를 불렀으며 탈춤을 소개하고 민속춤을 같이 추었으며 한국문화 수업을 했다. 그리고 ‘한국어말하기대회’에서 발표하실 내용을 컴퓨터로 옮겨 드리고 약간 교정하는 역할만을 했다. 나는 한국에 복귀 이후 영주귀국 사할린 동포들의 행사에는 가능한 참여하고 있다. 지난 3월 23일 파주사할린동포회 영주귀국 15주년 행사에서 전국사할린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님을 비롯한 사할린동포들과 함께 사할린아리랑이 대합창으로 불려졌다. 사할린이라는 말만 나와도 눈믈을 흘리신다. 우리는 그분들이 흘리신 디아스포라의 눈물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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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한국교육원 개원 30주년 맞아2023년 12월 10일은 사할린한국교육원 개원 30주년이다. 새고려신문 배순신 기자는 사할린한국교육원에 대한 이야기를 정승훈 사할린한국교육원장과 나누었다. - 원장님, 우선 개원 30주년 축하드립니다. 사할린한국교육원이 그동안 진행한 주요 사업을 소개해주신다면. - 큰 틀에서 보면 한국교육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 전파입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면, 첫째, 교육원에서 직접 운영하는 한국어 수업과 한국 문화수업이 있습니다. 둘째, 한국어를 채택한 학교들이 한국어 수업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입니다. 셋째, 사할린 내 각종 한국어/한국문화행사를 지원하는 일입니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나 K-Pop 대회 지원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넷째, 올해 시작한 사업인데요, 4년제 대학 졸업하신 분들이 원하시면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On-line 코스를 사할린국립대학교에 개설해서 10월부터 강의 시작했습니다. 다섯째, 사할린주 여러 지역에 분포한 한글학교를 지원하는 일도 맡고 있습니다. - 30년간 교육원 수업을 수료한 학생들의 수치는 어떻게 되는지요? - 이것은 통계 자료가 정리되어 있는지 확인을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최근엔 러시아인들이 한국어 수업을 많이 신청하는 추세인데요, 우리 동포들, 특히 동포 학생들이 많이 신청해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 교육원에서 교육원 자체 수업 외에도 한글학교 수업, 한국어 채택학교도 지원을 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지원인가요? -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한글학교 지원은 재외동포청 지원 사업(외교부)이고요, 한국어 채택학교 지원은 교육부 지원 사업입니다. 한국어 채택교 같은 경우에는 수업자료 및 도구 지원과 한국어 관련 행사 지원을 합니다. 내년엔 한국어반 우수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할 계획으로 예산을 신청할 것입니다. 예산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글학교는 학생 숫자에 따라 예산을 지원합니다. 하지만 예산 사용 범위는 제한돼 있습니다. 강사 인건비, 수업자료 구입, 한글 관련 행사, 임차비용 등에만 쓸 수 있고 자산 취득한다거나 개인적 용도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 9월 1일부터 새학기가 시작되었는데 현재 교육원 수업에 몇 명이 수강하고 있고, 어떤 교육과정이 있는지요? - 한국어 수업의 경우 입문반, 초급반, 중급반을 운영하고 있고요, 한국 문화수업 2개 반(한누리반, 주부반)과 1월에 추가 개설된 한국어와 한국문화반이 있습니다. 지금 수업을 받는 사람은 230명 내외입니다. - 현재 교육원에 강사진과 몇 명의 강사가 강의 중인지 궁금합니다. 한때 한국어교사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 현재 강사는 모두 8명(한국어 교사: 임 엘비라 교수님, 코르네에바 인나 교수님, 정혜경 동양김나지아 선생님, 이 알비나 선생님, 코로트코바 알료나 선생님, 문 베로니카 선생님; 한국문화 강사: 설원화 선생님, 박영자 선생님)입니다. 한국어 수업은 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과 사할린국립대 한국어과 교수님들, 그리고 졸업을 앞둔 한국어과 학생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법이 바뀌어서 졸업을 앞둔(교사 자격 취득 전) 학생들도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어제 교육원 교육 수요자 만족도 결과를 보고했는데요, 설문조사 항목 중에 '교사들은 수업을 충실하게 운영하며, 학습 수준에 맞게 학생을 지도하는가?'라는 항목에 대한 응답이 아주 높게 나왔습니다. 응답자 126명 중, 116명이 '매우 그렇다'고 했고 '그렇다'라고 응답한 수강생이 나머지 10명이었습니다. 교사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강사분들께 감사하는 마음뿐이죠. - 교육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직원진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 현재 전일제(정식) 직원은 3명이고, 1명은 계약제 회계사입니다. 1명은 교육원의 전체 살림과 행정일을 담당하고 있고, 1명은 통(번)역과 행정,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 어린이 한국어교육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1명은 운전과 교육원 시설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코로나 사태 이후, 제재 상황에서 한국과의 교류가 많이 감소되었는데 교육원에서는 이와 관련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요? - 직항이 없어져서 너무나 아쉬움이 큽니다. 예전처럼 직항이 있다면, 한국과 많은 교류 사업을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이동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언젠가 직항이 다시 개설 될 때를 대비해서 온라인 교류나 소수 학생들일지라도 한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현재는 일부 극소수의 학생들만이 한국 방문 연수 혜택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 매우 안타깝습니다. - 최근 어떤 교육원 행사들이 실시됐는지요? - 지난 여름방학 때, 한국어/문화 캠프를 열었습니다. 코르사코브를 비롯하여 아니바, 녜웰스크, 홈스크 등 지방도시에서 개최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10월 20일 말하기 대회, 12월 1일 K-Pop 축제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12월 8일엔 사할린한국교육원 개원 30주년 기념 행사가 있습니다. - 앞으로 사할린한국교육원의 계획은 무엇인지요? - 지방 도시(홈스크, 아니바, 녜웰스크, 돌린스크, 마카로브) 학교들이 한국어 채택을 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지원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글학교가 없는 도시들에 한글학교 설립을 돕는 것도 중요하고요. 제가 맡은 일은 교육과 문화 분야이기 때문에. 한국과의 문화 교류에도 관심을 가지고 교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할린 학생들이 한국의 대학이나 대학원에 많이 진학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 교육원장으로서 사할린동포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 세계 어느 곳에 살더라도 우리 동포들은 평균 이상으로 잘 삽니다. 머리가 좋고 부지런하기 때문입니다. 동포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뿌듯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말을 사용하고, 쓸 줄 아는 동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국이 아니고 러시아에서 살 것인데, 한국어가 왜 필요해?'라고 말씀하시면,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러시아에 살더라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우리 말과 글을 반드시 배워야 할 것입니다. 말과 글(언어)에는 그 민족의 사유와 문화의 정수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류의 영향으로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앞다퉈 배우고 싶어하는 언어가 한국어이고요, 앞으로 한국 경제와 문화는 더욱 성장해서 한국은 최고의 선진 강국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포 여러분 한국어를 배웁시다! 늘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교육원 개원 30주년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며 귀 교육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새고려신문=배순신 기자) [출처] 2023년 12월8일(음력 10월26일) 새고려신문 (사할린 새고려신문) | 작성자 bplus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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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아리랑의 날' 다시 불러보는 '사할린아리랑'10월 1일 '아리랑의 날'이다. 아리랑학회는 지난달 새로 탄생한 사할린아리랑 가사를 사할린동포들과 전국아리랑전승단체에 전달했다. 지난달 9월 19일 정선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길자)가 주최 주관한 제8회 정선아리랑 가사짓기대회에서, 사할린에 살고 있는 사할린 2세 김경순.박영자씨가 특별상을 수상했다. (사)정선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길자)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매년 응모작 모두를 모음집으로 출판해 정선아리랑 가사의 현재화와 전국적 관심을 축적해 오고 있다. 김길자 이사장은 "특히 올해에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사할린 동포들, 국내 영주 사할린 동포, 탈북 새터민 등도 참여를 할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이는 전체 아리랑의 현재화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이번 응모작은 심사 도중에도 현장 접수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할 정도로 전국적 관심을 받고 있었다. 심사에 오른 작품 수는 응모자 일반부 132명 312수, 학생부 45명 53수이다. '정선아리랑 가사짓기’는 올해 8회 째로 전국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전국 유일한 아리랑 가사짓기대회 행사이다. 사설은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가서 80 여년 동안 만나지 못한 육친의 뼈아픈 이별의 한과 '이산의 이산', '디아스포라(이산)'를 노래했다. 다음은 사할린한국교육원 한국어반 김경순(77세)씨가 지은 정선아리랑 가사이다. 자신들의 부모가 일제에 속아서 왔고 나는 왜 사할린에 태어났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부모들은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나서 바닷가 언덕애 올라 하루종일 배를 기다렸다고 한다. 하루가 가고 한달이 가고 한평생을 사할린 동토의 땅에서 묻혔다고 한다. 아리랑의 정서를 첫번째로 찾는다면 아마도 사할린아리랑을 들 수 있다. '시대의 노래' 아리랑의 존재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후렴) 아우라지 물가에 봄꽃놀이 눈에 삼삼한데 왜놈에 속아 어린 아들 두고, 사할린에 징용 왔소 사시 삼철 탄가루 눈발에 꽃가루 날리는데 모질고 배고픈 눈물의 징용살이 그 누가 아나요 전쟁 끝나면 여량 땅에 돌아갈 걸 믿었지 한달만 있으면 아들한테 갈 것을 철썩같이 믿었지. 밤이면 라디오 켜 두고, 혹시나 우릴 찾을려나 숨죽여 듣던 세월은 꾸역꾸역 쉰 해가 넘었네. 고향의 큰배 기다리다 병들어 세상 뜬 부모들 가엾어라 부모등골 쓰라리고 쓰라리네, 애타던 자식들도 애닮퍼라 다음은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한국어교사 박영자(73세)씨가 지은 정선아리랑 사설이다. 사할린동포특별법이 발효되어서 누구든지 조선사람들은 1세가 사망해도 2세 3세는 조국에 귀환할 수 있게 해달라고 노래하고 있다. 무릉도원 정선을 놔두고 우리네 부모 사할린 징용왔네 말문이 터지고 귀가 열릴때 알았네요 우리네 조국땅 나는야 사할린2세 한국인 우리네 부모 조국은 남조선 어릴때 저산 너머 가면 우리네 남조선이라고 알았네 이제는 80년이 흐르고 흘러 나도 할머니 되었네요 말문이 열린 손자들이 우리는 조국에서 못사나요 가보지도 못한 조국이 잘사는 나라 되었네 이제는 자랑스런 조국 세계인이 가고싶은 조선땅 그리운 조국이 언젠가 우리를 품에 안아줄까나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사는 사할린2세 김경순(갈리나김)시와 박영자(갈리나박)씨는 지난 해 2021년 2022년 KBS 한민족체험수기에서 각각 대상을 수상했다. 이 사설은 10월 1일 '아리랑의 날'에 경기도 양주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살고 있는 율정마을 사할린아리랑보존회(최나타샤)에 전달되었다. 앞으로 무대에서 이 사설을 노래로 다듬어서 부를려고 한다고 전했다. 현재 알려는 사할린아리랑은 사할린1세 정성애 할머니가 지어서 부른 것과 새고려신문 공모전에 당선된 정태식씨가 지은 사할린아리랑이 음반과 무대화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할린아리랑제, 문경아리랑제, 청주아리랑제, 왕십리아리랑제, 공주아리랑제 등에서 정성애 할머니 장남 원명운(서천 영주귀국사할린동포회)씨가 부르기 시작하면서 각 지역 아리랑단체에서 불려지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사할린한국교육협회 부회장인 공노원 여사 손녀 신마이야(당시 12세)와 신아리나(당시 5세)가 2018년 사할린아리랑제와 2019년 문경새재아리랑제에서 '사할린아리랑'을 무반주로 불러서 첫 막을 열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지금도 유튜브에 검색하면 바로 그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 2021년 12월 23일 외교부에서 주관한 서울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참석 하에 개최된 '사할린동포법 제정 및 영주귀국 기념식'에서 신아리나가 아리랑으로 첫 무대를 열었다. 이 장면은 전세계 방송을 타고 동포사회에 방영되었다. 이날 70여 년만에 조국의 땅을 밟은 사할린 동포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어린 소녀가 부른 아리랑이 어루만져 주었다. 이 날 손녀가 부른 아리랑을 보면서 공노원 여사가 흘린 눈물을 잊을 수 없다. 박영자씨는 "나의 4대 가족사의 디아스포라가 담긴 이 사할린아리랑이 책으로 묶어서 나온다고 하니 기쁘다. 기록으로 남겨진다고 하니"라고 당선소감을 전했다. 김경순씨는 "작년에 만든 사할린아리랑 가사가 비공식적이지만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님에게 부탁을 드렸다. 직접 불러서 녹음을 해달라고, 그런데 음반에 담게 되어 가끔 행사 마당에서 확성기를 통해 아리랑을 들을 수 있다. 올해 지은 이 사할린아리랑도 같이 불려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디아스포라의 아픔이 담긴 사할린아리랑을 역사에서 기억해달라"라고 전했다. 이번 공모전에도 매신저 역활을 해준 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은 "공모전이 알려져도 나이드신 세대들은 인터넷 사용을 몰라서 누군가 도와주어야 응모를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이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전국사할린귀국통포연합회 권경석 회장은 "사할린아리랑은 사할린 한인의 존재를 알리는 노래이다. 더불어 사할린아리랑을 통해 국민들에게 사할린동포특별법이 널리 알려지기 바란다."라고 격려했다. 내년에도 사할린 동포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디아스포라 아리랑, 사할린아리랑이 새록새록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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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정선아리랑 가사짓기 ‘응모 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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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도시의 날' 아리랑 메아리지난 일요일 9월 9일,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도시의 날'에 아리랑이 메아리쳤다. 유즈노사할린스크시가 주최한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도시의 날' 부대행사로 치루어진 김치페스티벌에서 사할린아리랑무용단(단장 박영자)이 강원도아리랑 선율에 추는 아리랑춤을 선사했다. 이어 회원들과 광장에 펼쳐진 장소에서 러시아인들에게 '김치 담구기' 방법을 실연했다. 2020년부터 유즈노사할린스크시는 매년 '도시의 날'에 김치페스티발을 열고 있다. 사할린은 물론 러시아 전역에서 김치는 러시아인들에게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할린 2세 박영자 단장은 "매년 이날에 우리 아리랑무용단은 '아리랑춤'을 무대에 올려요. 사할린에서 아마도 아리랑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라고 전했다. 이어서 오후 3시 사할린아리랑무용단은 전문예술단체 '루스키 테램 앙상블'이 개최한 '우리는 다 같이(Мы вместе)' 페스티벌 무대에서 3가지 춤을 선사했다. 사랑의 아리랑춤, 도라지춤, 사할린아리랑을 선보였다. 아름다운 한복과 퍼포먼스를 곁들인 춤은 시민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루스키 테램 단장은 본 행사 사이트 게시판에 "아리랑 춤이 오늘 행사를 더욱 빛내준 멋진 공연이다"라고 기록을 해주었다고 박단장은 전했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한국어교사인 박영자 단장은 2007년 서울문화재단에서 파견된 목진호 선생에게 우리 전통춤 입춤을 시작으로 국악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2014년 사할린아리랑무용단을 조직했다. 이번 달에도 5차례 공연을 해왔다고 가슴 벅차 했다. 돌린스크, 우글레고르스크, 홈스크, 유즈노사할린스크 등에서 한인들과 러시아 국가 행사에서 아리랑을 춤을 선사해오고 있다. 박단장은 "전쟁으로 인해 현재 한러교류는 언제 다시 재개가 될지 모르지만, 한국에 가고 싶다. 안산에 사는 어른들이 공연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안산으로 영주귀국한 친구도 보고싶고, 매년 사할린아리랑축제에 오신 아리랑 식구들도 보고싶다"고 전했다. 사할린아리랑무용단은 2019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에 초청을 받고, 전국아리랑경창대회 늘푸른청춘 부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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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할린 동포와 함께 아리랑한마당이병일/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원장 (현 석관중학교장) 사할린한국교육원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지 4개월이 다 되어간다. 지금은 서울의 중학교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는 현지 사할린 동포들과 여전히 아침마다 여러 SNS에서 인사를 나눈다. 시시각각 소식들은 점심시간이나 오후 퇴근길에서 열어 보고 러시아어로 번역해서 하트를 보낸다. 지난 11일 주말 아침 사할린 동포들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국악신문사 기미양 대표님의 초청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사할린에서 귀국하고 처음으로 사할린 동포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을 안고 영주귀국동포들이 사시는 경기도 양주 율정마을에 도착했다.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가 주관하는 "사할린동포와 함께하는, 찾아가는 아리랑 학교"가 열린 것이다. 서울에서 양주까지 2시간 이상 운전을 하면서, 지난 3년 간 임기를 마친 사할린한국교육원 시간이 주마등같이 지나갔다. 그 중 많은 추억들 중 '사할린아리랑'은 기미양 대표님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3년 전 7월 중순 국악신문사 기미양 대표님과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님을 처음 만났다. 사할린 비자 갱신차 일시 귀국했다가 제4회사할린아리랑축제 행사를 준비하는 문제로 종로에서 만난 것이다. 현재는 전쟁으로 잠시 중단 된 상태이지만 2016년부터 매년 아리랑연합회는 사할린주한인협회와 공동주최로 사할린에서 크고 작은 행사와 공연을 수 차례 지속적으로 주관해 오고 있는 아리랑공동체이다. 국내외 55개 아리랑전승단체와 연구단체로 구성된 순수 시민운동단체이다. 그후 일시 귀국 때마다 국악신문사에서 보내주는 한복과 태극선 부채, 태극상모(이담농악), 아리랑음반,국악음반 등을 사할린 한민족예술동포단체에 전달했고, 아리랑학회에서 주관하는 아리랑학교 프로그램에 수강하기도 했고, 돌아가서 사할린한국교육원에서 아리랑 특강과 새해 첫날 우리말방송에서 아리랑의 역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기미양 대표와는 아리랑 관련 자료와 행사 소식을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고, 화상통화로 10월에 내린 사할린 첫눈 소식을 건내 주어서 국악신문 포토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특히 유즈노사할린스크 주에서 지어준 '아리랑누각'과 '아리랑공원' 건립 소식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러 국제적 사정으로 매년 사할린아리랑축제 및 아리랑 예술공연 단체가 준비하는 사할린 방문은 무산되었다. 나는 사할린에서 탈춤과 소고춤, 사할린아리랑, 밀양아리랑, 어부놀이 등 민속춤과 아리랑배우기 등을 통해 사할린 동포 및 현지인과 교류를 하였다. 특히 2022년 3월 KBS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50년' 행사에 사할린 동포들 50명과 함께 특별초청 되어 동포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후 2022년 KBS방송 한민족수기공모전 수상자 인터뷰, 한민족방송에 두 차례 출연해서 사할린 동포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특히 KBS한민족수기공모전 참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한글교육에 힘썼다. 미디어 매체를 통해 사할린 동포의 존재와 이산의 역사를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니 지나가시는 어르신들의 러시아어 대화가 들려서 참으로 신기하고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자꾸 말 걸고 싶은 기분이랄까. 문경에서 도착한 대형버스에서 앰프와 악기, 다듬이, 박스 등이 리어카에 실려서 공연장으로 이동 중이었다. 사할린 어른들도 함께 손수 나르시고 계셨다. 떡과 수박 등 다과회까지 준비를 해오셨다. 공연 식전 행사에서 인사할 기회가 주어졌다. 사할린 한인문화센터에서 행사가 있게 되면, 1세대 어르신들께 큰절을 드리던 습관이 있어서 양주 율정마을 동포 1세대분들께 바닥에 엎드려서 큰절을 올렸다. 이어 "아직도 3년간 살다 온 사할린 기억이 생생해서 자다가도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 글을 쓰며 추억한다. 그리고 영주귀국 신청 전에 부모가 사망하시면 영주귀국 신청을 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2세대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씀을 드리면서 잠시 가슴이 울컥해져서 머리 속이 먹먹해졌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닫혀진 대강당 문이 오늘 3년만에 처음 열게 된 것이다. 한쪽 면은 대형 사이즈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비치는 공간이라서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무덥지는 않았지만,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관계로 관람객이 늘어나고 공연이 이어지면서 다소 습기가 올라가는 느낌이 있었다.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사할린에서 살다오신 어르신들께는 부담이 되는 기온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사할린에서 체질이 형성된 분들이라 한국의 무더운 여름은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늘 이맘때는 사할린에 돌아가서 그리운 가족들과 함께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9월 말 즈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시고 했는데....이제는 전쟁으로 가지 못하고 3년간이나 한국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계신다.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회장:이만유)가 준비한 공연 프로그램은 모두 아리랑판이다. 율정마을 어르신들로 구성된 사할린아리랑합창단의 '사할린아리랑' 합창으로 첫 막을 열었다. 이후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과 회원들의 '왕십리아리랑', 동두천아리랑보존회의 '동두천아리랑'이 불려졌다. 2부는 문경에서 오신 40여 명의 아도위 회원들이 준비했다. 아도위합창단과 아도위연주단이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홀로아리랑 등 다양한 아리랑을 연곡으로 불러 주시고, 문경새재아리랑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하모니카 연주단이 트롯트를 선사했다. 동포들이 무대에 나와서 우리 전통 춤사위와 러시아 민속 춤사위로 춤을 추기 시작해서 신명을 높여 주었다. 트롯트에서 빠른 비엔나 왈츠, 불루스 등을 망라한 춤판이 이루어졌다. 러시아에서 태어나신 분들은 노래보다 춤을 더 즐긴다. 우리가 노래방을 좋아하는만큼 그들은 춤을 즐기는 민족이다. 휘날레 춤판에는 많은 어른들이 춤을 추시고 기뻐하셨다. 코로나가 때문에 너무나 오랜만에 모여서 추어보는 춤이라고 하시면서....이러한 자연스런 파티 풍경은 사할린에서 근무하는 동안 너무나 낯익은 어울림이어서 참으로 오랜만에 그리운 사할린 추억으로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문경시민들은 동포 분들께 드릴 정성이 담긴 선물도 듬뿍 가져 오셨다. 문경시장이 보낸 아리랑 책자, 문경특산물 오미자 와인, 오미자김 등을 뒷풀이에서 풀어 놓기도 하셨다. 직접 만든 생강조청을 준비하신 문은자 여사님의 정성이 대단하다. 기미양 대표님은 사할린아리랑축제추진단장으로서 '아리랑'을 매개로 현지 사할린 동포와 전국 여러 지역의 사할린 영주귀국동포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계신다. 영주귀국 사할린동포 분들의 성함과 얼굴, 모스크바에서부터 사할린에 사는 친인척 관계에서 겹사돈 관계까지 거의 알고 계신다. 그동안 사할린 원로 교육자 고 공노원 선생의 안내로 안간, 인천 등 에 사시는 많은 사할린 사람들을 만나서 강제동원과 가족사에 대한 기록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기대표님과 공노원 선생의 안내로 2017년 사할린 이산의 역사가 다큐로 방영되고, 국내외 사할린 동포들에게 KBS한민족체험수기 공모전 참가를 널리 알려오고 계신다. 사할린 동포들의 디아스포라의 아픔이 공중파와 출판을 통해 소개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매년 대상 수상작은 사할린 동포들의 이산의 고통이 담긴 가족사이다. 작년 대상 역시 사할린한국교육원 한글학교 수강생 김경순(77세) 어른이 수상했다. 2019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일간 개최된 '서울아리랑페스티발'에서 '사할린아리랑무용단과 사할린아리랑합창단이 대상과 금상을 받았다. 현재 사할린아리랑앙상블(단장:박영자), 오늘 만난 양주 율정마을 사할린 동포로 이루어진 사할린아리랑보존회 합창단이 수상한 것이다. 당시 하바롭스크아리랑보존회 게나김 단장도 초청되어 무대에서 '카레이스키아리랑'을 부녀가 같이 불러서 주목을 받았다. 우리는 흩어진 한민족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아리랑을 매개로 활발한 개방과 교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코로나 판데믹의 여파과 전쟁으로 인한 문화적 교류의 중단으로 인한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아리랑을 매개로 문경시민들과 사할린이 연결된 오늘 이 시간은 새로운 시작의 의욕을 신선하게 일으키는 날이다. 순수 시민운동단체로서 문경아리랑을 널리 알리고 있는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의 활동이 놀랍다. 이만유 회장의 특강에서 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처럼 온 국민이 문경새재아리랑을 부르게 될 것이라는 진정성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먼 길을 와 주신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 왕십리아리랑보존회, 동두천아리랑보존회, 한편 이혜솔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장님은 병원 입원 중에도 양주까지 오셔서 공연이 끝나고 바로 병원으로 재입원하셨다. 사할린아리랑을 널리 알리고 있는 사할린아리랑보존회 및 율정마을 어르신들, 오늘 사할린과 문경의 만남을 순조롭게 이어주신 국악신문사 기미양 대표, 그리고 자리를 빛내주신 전국사할린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님과 부회장님의 동행 등,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런 귀한 다음 만남의 시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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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섬, 사할린을 떠나며판데믹 함께 눈물의 섬, 사할린에 들다 판데믹이 고개를 들던 3년 전, 나는 용케 국내 판데믹을 피하듯 한국을 떠나 눈보라를 헤치며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공항에 내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거센 풍설에 비행기가 착륙이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은 '눈의 나라' 러시아 사할린 조종사들에겐 모욕적일 수 있겠다는 걸 알았다. 도착하자마자 사할린한인문화센터 앞뜰의 '일제강제동원희생자추모비'와 '이중징용희생자추모비'에 묵념하고 동포들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희망을 품고 교육원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단 열흘만에 판데믹으로 인해 한국어·문화강좌를 원격수업으로 전환했고, 기존의 활발한 국내 교류사업들은 모두 취소되었다. 일제 강제동원과 냉전 역사에 연유한 이산과 슬픔의 섬은 4, 5월까지 산을 하얗게 덮었던 얼음눈이 녹으면서 차가운 물이 도시 전체를 돌아 흘러 차갑고 고립된 눈물섬이 되었다. 새로운 사업이 보다 많이 필요했던 사할린한국교육원에서, 깊이 정들며 사랑에 빠지다 정신 차린 3년을 되돌아 보고자 한다. 재미와 의미를 충족할 교육원(장) 역할 찾기 교류 단절의 시대 문화의 메신저가 되어야 했다. 극동 3개 교육원장은 공무비자 90일이 만료될 즈음 국내(대한민국) 출장을 통해 비자를 새로 발급받아 복귀해야 한다. 판데믹 기간과 경제 제재 시기에 국경을 넘는 일은 PCR 음성증명, 2주간 격리, 멀고 먼 항로의 힘겨움과 모험이 늘 함께 했다. 그럼에도 여행가방엔 한국어 및 문화체험·교육에 필요한 물품, 동포예술단체나 한국어채택교 선생님이 부탁한 물품(한복, 문화지도, 한지, 단어카드, 민속놀이도구, 공연도구 등)으로 채워졌다. 이런 것들은 교류가 원만할 때엔 방문하는 당사자나 단체가 사할린에 오면서 가져오거나 외교파우치를 통해 운송하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준비해준 내 자취 삶의 반찬꾸러미들은 포기하거나 최소화 해야했다. 한국과 사할린 사이 한국어교육․문화 물품을 나르는 메신저의 역할은, 힘들지만 독보적인 보람이 있었다. 그것은 한국 정부의 한 교육공무원이 거의 고립된 사할린 동포들을 망각하지 않았구나 하는 인식을 드리지 않았을까 하는.....자족적으로 나름 생각해 본다. 한국의 한국어와 한글, 그리고 전통문화에 대한 재미와 의미를 결합하는 어떤 새로운 사업들을 찾고 실행했다. 사할린 동포와 러시아 현지인들이 잘 어울려 사는 것, 한국, 한국어·문화에 대한 호감과 친밀감을 유지․증진하는 것은 서로 관련이 깊다. 교육원의 역할은 문화적 스며듬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소 썰렁한 문화센터 로비에 이동식 TV를 배치하고 사할린우리말방송과 KPOP, 세계문화유산, 전통과 현대의 한국문화, 경제적 성취에 대한 영상을 거의 매일 상영했다. 영상을 안보는 것 같아도 센터에 출입하는 어른, 어린 학생들이 자주 시청하는 것을 확인했다. 러시아 유일한 한글신문 새고려신문도 놓아두면 금방 없어졌다. 또 학기초 가끔 학교의 교문맞이처럼 한국어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파티안경을 쓰고 어른, 청소년 수강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했고 연말이 되면 한국노래 버스킹(대중 앞에서 노래하기)을 했다. 사할린에서 원장의 이런 모습은 낯설 것이다. 어색하지만 서로 웃음이 나오고 잘 통하지 않는 언어의 장벽을 넘는 바디랭귀지라고 할까... 재미있으며 쉽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원장이 품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조금 망설이긴 했으나, 품위, 권위로 살아 온 삶이 아니었으니 오히려 그것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무덤과 같은 홀로 생활을 더 힘들게 할 뿐이라 생각하여 그냥 시도했고 즐겼다. 또한 평생교육 강좌 ‘세계의 민속춤’ 클래스를 열어 2세 동포 어르신과 현지인 함께 센터 강당과 도시 공원, 스키장 리조트 위에서 춤추고 어울리는 기회를 가졌다. 1세 어르신이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사할린 할머니들이 춤추며 즐거워하는 것을 처음 본다. 사할린 할머니들은 너무 힘들게 살아와서 춤추며 밝게 웃는 모습을 도통 보기 어려웠다”고 하셔서 큰 보람을 느꼈다. 평생교육 강좌 ‘글쓰는 사할린’도 인상적이다. 사할린 동포 2세 ‘빅토리아 최’ 작가님을 강사로 모시고 동포 2세분들의 부모와 성장 시절에 대한 기억을 글로 써 역사와 유산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탄생한 강좌였다. 한국어가 서툴다면 러시아어로 써도 좋으니 제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부모들의 아픔과 그 아픔을 보며 자란 기억을 되살려 생명을 주자는 취지였다. 우리말방송과 새고려신문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였고 나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살려 글을 썼고,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새고려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동포 단체들의 행사나 잔치 등에 초대되면 꼭 한국탈과 한삼, 소고, 블루투스 노래방 마이크를 지참했다. 언제라도 민속춤클래스에서 함께한 밀양아리랑을 같이 추고, 소고춤과 탈춤, 사할린동포 애창곡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정체성(идентичность)의 실마리와 함께 카레이츠(корейцы)의 신명나는 문화를 보여드리고자 하는 의미였지만, 실제로는 내 적성에 너무 맞기 때문이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모국)과의 문화교류 단절을 보완하는 업무 찾기 교육원의 본연 업무는 한국어와 한국문화교육이다. 판데믹 전까지 방학에 활발히 오고 가던 사업이 중단되자 한국어 학습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외국어학습은 익숙한 접촉과 소통이 핵심인데, 그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교육원장 과제 수행 대회”였다. 한국의 시낭송, 자신의 꿈 말하기, 한식만들기나 KPOP 춤·노래 영상, 한국영화 감상 말하기 영상 등을 제출하면 한국음식 체험권이나 한국 기념품 등을 상품으로 주었다. 주말에는 한지공예와 매듭공예, 김밥만들기 등의 특별수업을 가끔 운영했다. 교육원 공간을 십분 활용해야 하고 말하기 기회를 자꾸 주는 것이 언어학습에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2022년 여름방학에는 처음으로 사할린 초·중등학생을 위한 한국어·문화캠프를 열었다. 한글학교와 한국어채택교 선생님·학생, 아리랑무용단이 리더가 되어 한식만들기, 한글쓰기, 민속춤, 민속놀이 코너를 운영하여 한국어와 문화에 대한 친밀감을 갖도록 했다.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과 채택 가능성이나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었다. 지방도시 10개교 학생 900여명이 참여했고 전세버스를 빌려 포로나이스크와 마카로프 도시를 향해 새벽에 출발하기도 했다. 캠프가 끝나고 많은 학생들이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했고 자신들의 작품을 자랑했다. 한글학교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시작했지만, 단절의 시대에 참 괜찮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이 지면을 빌어 선생님과 학생들, 아리랑 어르신들게 감사드린다. 단절을 보완하는 또 하나의 시도는 하바로브스크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 동포의 만남이다. 하바로브스크한국교육원이 개최한 "한국어말하기 큰잔치”에 초대를 받아 사할린 아리랑무용단원을 모시고 참석했다. 무용단은 대회 축하의 의미로 무대에서 ‘도라지’ 춤을, 나는 개량된 ‘봉산탈춤’을 선보였다. 하바로브스크 고려인 아리랑예술단의 환대를 받았고 공연의 반응은 뜨거웠다. 무엇보다도 하바로브스크 아리랑센터에서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의 뜨거운 포옹, ‘도라지’ 민요와 춤을 화합하여 공연하는 장면, 밀양아리랑 민속춤을 함께 추는 흥겨운 수업 장면은 마치 다큐멘타리의 한 장면 안에 들어간것 같았다. 문득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가르치는 블라디보스톡 24학교 교장 선생님의 제안, 즉 "지금 한국과 교류가 어려우니, 블라디보스톡·사할린·하바로브스크의 한국어 채택교끼리 공동수업이나 대면 교류 같은 것을 해보자.”는 말씀이 생각났다. 연해주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 동포의 교류가 우선 현실화 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이런 역사적인 자리에서 밀양아리랑을 가르쳐 드리다니, 참 믿을 수 없는 장면이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사실 교사연수에서 배운 봉산탈춤 기억을 살려 처음 체부라슈카 유치원 행사에서 모험적으로 초연한 적이 있다. 이 영상을 본 사할린국립대 엘비라 교수님의 제안으로, 한국 탈 색칠하기 행사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공연하고, 행사 참가자들에게 가르쳐 함께 탈춤을 추게 되었다. 사할린에 처음으로 탈춤을 소개한 격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2022년 11월 30일, 한국의 탈춤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에 등재 결정되어 남달리 보람이 컸다. 사할린 우리말방송 <한국의 상징> 코너에 ‘한국의 탈춤’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상징> 코너에는 3년간 ‘한글’, ‘추석’, ‘아리랑’, ‘설’, ‘정월대보름’, ‘한식(절기)’, ‘한식(KFOOD)’, ‘온돌’, ‘직지·금속활자·한지’, ‘이순신·난중일기·거북선’, ‘독도’ 등 한국의 상징을 소개했고, ‘한국의 무술’, ‘청자와 백자’의 촬영을 마쳤다. 한국의 공무원으로서 사할린 동포들께 드리는 기억의 노래 선물을 녹음했다. 국내출장 중에 KBS라디오 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 나가 사할린 동포 소식을 전하는 자리에서 교육원 수강생 사할린 동포 2세 김경순님의 개사곡 두곡을 무반주로 불렀다. 부모와 어린 큰오빠의 이별과 50년 만의 만남 또 이별과 사별의 한맺힌 사연을 담은 가사였다. KBS한민족방송을 진행하는 박해상 MC가 당신이 운영하는 스튜디오에서 사할린에 의미있는 노래들을 녹음하여 사할린 동포들께 선물로 드리라는 제안을 하셔서 녹음한 후 음악 CD를 만들어 주셨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 분이 지으신 가사가 그 분의 부탁으로 불러준 나의 목소리로 녹음이 되었다. 디아스포라의 가족사 사연을 개사하신 김경순님이 2022년 제24회 KBS세계한민족체험수기대회 성인 부모님과 큰오빠의 한맺힌 사연을 수기로 제출하여 대상을 받은 것이다. 사할린 동포를 대표해서 받았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글쓰기를 통해 이산의 아픔을 치유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십여년만에 교육원 수강생 두분의 사연이 KBS한민족 방송에 사연이 소개되어 녹음하여 보내드리고 드리고 소정의 원고료도 받아 전해드렸다. 자주 글쓰시고 방송에 보내셔서 기록으로 남기시길 간곡히 소망한다. 3년 동안 맞이한 3번째 봄날, 헤아릴 수 없는 신명과 의미의 기억들이 사계절의 천연색으로 바뀌며 지나간다. ① 가을의 김치축제에서는 한국에서 가져 온 24시간 막걸리를 담가 현지인들과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막걸리 더 없냐고 묻는 현지 공무원이 계셔서 한번 더 담가 드렸다. ② 공무출장에서 복귀하며 가져 온 팽이, 제기, 딱지, 국궁, 비석치기 등 민속놀이 도구들을 배치하여 추석맞이 민속놀이체험 코너를 운영했다. 교육원과 문화센타로서 당연히 보여야 할 모습이어서 보람이 컸다. ③ 이 행사를 목격한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의 연구진이 한국교육원 활동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하여 난데없이 영어 인터뷰에 뛰어 들었다. 끝내고 난 보람과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던 기억이 있다. ④ 한인회 여성회 초대로 야유회를 가서 6시간 동안 춤을 추었다. 러시아인 한 남성이 몇시간을 지켜보던 모습은, 마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3일 낮과 밤’ 동안 춤추던 동이족을 묘사하던 이웃 민족의 모습이 저러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⑤ 코르사코프 한인회에서 여름날 주최한 ‘한국의 맛’ 행사에서 원없이 노래하고 춤추었고 땀 흘렸다. 여름 한복이 없어 땀으로 고생했지만 그것은 고생이 아니라 사랑이고 신명이었다. 고스란히 인생의 끝까지 가져갈 장면들이 너무 많아 이렇게 이임한 후 떠나,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은 이 시대가 야속하다. 떠나는 이의 소망과 감사 지난 3년은 비록 판데믹과 제재로 인해 고립과 긴 우회로 값비싼 왕래의 비용을 치루었지만, 그 상황을 살아내기 위한 가치있는 역할 찾기와 재미와 신명을 주는 모험적 사업의 시도는 스릴과 보람을 준 시간이었다. 이제 떠나는 즈음에 동포분들께 소망하는 것은, 한국어든 러시아어든 글쓰기를 계속해 주십사 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한인사회에서 그런 기록들이 대대로 전달되어야 고통의 역사가 치유되고 생명과 힘을 얻을 것이라 본다. 사할린 동포들이 글을 쓰고 번역하여 다듬어 KBS 한민족 방송에 자주 보내시면 좋겠다. 그러면 다음세대들이 역사를 기억하고 모국과의 연결을 쉽게 하여 자부심을 갖고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1세대 부모님이 영주귀국을 못하고 돌아가신, 2세대 어르신들은 부모의 고난과 갈망, 자신의 성장기를 더듬어 소중한 감성과 기원, 소망과 원망 등을 글에 마땅이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해자와 모국의 정부는 무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 끝으로 고립과 고독, 환율의 공격과 온갖 제한들 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보람으로 엮여진 교육·문화 여행과 모험을 보람있게 해주신 사랑하는 부모님, 가족, 형제자매, 첫날부터 끝까지 반갑게 응대해 주신 사할린 동포 어르신들게 마음을 다해 감사드린다. 특히 교육원생 중 작년 KBS한민족방송체험수기에서 대상을 차지한 김경순 여사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또 사할린의 한인 언론방송·대학 및 교육계·문화예술계 지도자와 구성원 단원 여러분들, 또 다른 민족 이웃들, 늘 정성 가득한 한글학교와 교육원·한국어채택교의 한국어․문화 학습자 여러분·선생님들, 또한 성실한 우리 공관과 재외국민 이웃들, 사할린을 사랑하고 기억하는 한국의 국악신문, 아리랑연합회에도 감사드린다. 3개년 교육원장 임기 시절 사할린에서 맞이한 열두 계절동안 하루하루가 저에겐 빛나는 선물이었다. 어떻게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지 정리하고자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스파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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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예술인과 동포애를 나누다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이 사할린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 한국예술과장 신율리야 선생님에게 동두천시이담농악단(김경수 단장)이 기증한 '이담농악'의 상징인 태극상모를 전달했다. 지난 달 비자연장으로 한국을 방문한 이병일 원장이 국악신문과 이담농악단이 기증한 한복, 태극상모 등을 사할린 예술인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코로나와 전쟁으로 현재 사할린 동포들과의 교류가 3년간 미루어진 실정에서 동포애를 나누는 뜻깊은 모습이다. 한편 이병일 원장은 2월 중순이 지나면 사할린한국교육원 책임자로 3년의 임기를 마치게 된다. 그동안 이원장은 사할린 교민들의 한국 내 민원창구 역할을 해 온 인물이다. 이원장은 지난해 초부터 사할린과 하바롭스크 교민들에게 교습과 무대를 통해서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을 전수해 주고 있다. 또한 세시명절에는 세배하는법, 윷놀이, 김치만들기, 막걸리빚기와 트롯트 등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려 오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교육원생 중 사할린 동포 2세 김경순(72세) 여사가 2022년 제24회 'KBS한민족체험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데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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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상모와 한복 기증식, 사할린 예술인들에게11일 오후 4시 사할린 교민 청소년이 중심으로 구성된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있는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에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의 상징인 태극상모 1점과 한복 5벌을 기증하는 모임이 있었다. 안국동 (주)국악신문 주필실에서 사할린 한국어교육원 이병일 원장이 퇴임을 앞두고 귀국, 틈을 내서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김경수 단장에게서 농악의 상징인 상모 1점과 (주)국악신문(대표이사 기미양)에서 한복 5벌을 기증받았다. 무형문화유산 '이담농악' 보유자인 김경수 단장은 "하늘길이 열리면 사할린 청소년들에게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의 진수를 전수해주고 싶다"라고 전했다. 사할린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 학생들은 2012년부터 재외동포재단 후원으로 매년 방학에는 국립남도국악원의 해외 동포체험 프로그램인 '모국체험' 연수 참여를 통해서 국악 종목 전반에 걸친 수업을 받았는데, 3년간 코로나로 입국을 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병일 원장을 통해 기증을 받는 이는 사할린 교민 예술단 사할린아리랑무용단 박영자단장 등으로 ‘코로나19’로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뜻 깊은 선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2016년부터 매년 사할린 교민 예술단에게 한복 등을 지원해 온 기미양 대표는 "코로나와 전쟁으로 예전처럼 서로 오고가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마음만은 오고가는 사이” 라며 "작은 성의나마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에 이병일 원장은 "따뜻한 동포애가 담긴 마음을 그대로 전해드리겠다"라고 하였다. 한편 이병일 원장은 사할린한국교육원 책임자로 3년의 임기를 마치게 된다. 그동안 이병일 원장은 사할린 교민들의 한국 내 민원창구 역할을 해 온 인물이다. 이번에도 사할린 동포 박영자 단장이 전해준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 건립(정선) 성금을 국악신문사에 전달해주었다. 사할린3세 이미르 씨의 고사리 나물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을 경유하여 배를 타고 온 동포애가 담긴 마음을 받았다. 이원장은 작년 초부터 사할린과 하바롭스크 교민들에게 '탈춤'을 전수해주고 있다. 또한 세시명절에는 세배하는법, 윷놀이, 김치만들기, 막걸리빚기와 트롯트 등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려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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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부터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겨울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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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 선다‘기념비적 기념비’,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10주년을 기념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가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강가에 세워진다. 아리랑의 고향 정선과 맏형 정선아리랑의 포용력과 국내외 40개 지역 아리랑 전승단체의 대동정신이 대통합을 이뤄 세우는 뜻깊은 비이다. 전면 글씨는 한글 서예가 한얼 이종선 선생이 쓰고 후면 취지문은 ‘정선체’로 새기고, 기단에는 40개 지역 단체와 대표자 명이 새겨진다. 비의 규모는 높이가 5m 40cm로 국내에서 가장 큰 비이다. 세워지는 곳은 여량면 여량리 아우라지 강가이다.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이 합수되어 아우라진다(어우러진다)는 의미라서 정선군과 전승단체가 어우러지는 대통합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최적지이다. 비 전면에는 "유네스코 등재 10주년 기념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이 새겨진다. 후면의 취지문에서는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라는 전제로 정선군과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가 공동 발의하고, 국내외 아리랑 전승단체가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에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전하며 공동으로 창조한 결과물이다 각 지역마다의 정서를 담고 여러 문화 예술장르로 변화하며 다양하게 존재한다. 민족정체성 함양과 공동체 결성에 기여하며 근현대사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아리랑을 이천십이년 십이월 오일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하여, 아리랑의 인류 보편 가치를 인정하였다. 이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이하여 정선군과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가 공동 발의하고 국내외 아리랑 전승단체가 창조적 계승에 뜻을 모아 기념비를 세운다.” 기단에는 대통합의 뜻을 모은 40개 지역 전승단체와 대표자 이름이 새겨진다. "등재 10주년 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정선군수 아리랑연합회 이사장 김연갑. 건립 동참 국내외 아리랑 전승단체” 아래 다음의 보존회와 대표자 이름이 새겨진다. (가나다순) "경기아리랑보존회 이춘희, 경산아리랑보존회 배경숙, 계룡산아리랑보존회 범진, 공주아리랑보존회 남은혜,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 임규익, 구미아리랑보존회 김종남, 인동아리랑보존회 서주달, 군포아리랑보존회 한영숙, 동경아리랑보존회 전월선, 동두천아리랑보존회 유은서, 대구아리랑보존회 김상준, 문경아리랑보존회 송옥자, LA아리랑보존회 서연운, 부산아리랑보존회 김희은, 사할린아리랑보존회 최미분, 사할린아리랑앙상블 박영자, 서귀포아리랑보존회 유재희, 서도아리랑보존회 유지숙, 서울아리랑보존회 유명옥, 상주아리랑보존회 김동숙, 성주아리랑보존회 임옥자, 성주의병아리랑보존회 최문희, 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아리랑보존회 김영임,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 연변아리랑보존회 전화자, 영남아리랑보존회 정은하, 영천아리랑보존회 전은석, 예천아리랑보존회 최수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울릉도아리랑보존회 황효숙, 인제뗏목아리랑보존회 권원희, 정선아리랑보존회 김길자, 제주아리랑연구회 장경숙, 진도아리랑연구보존회 강송대, 진천아리랑보존회 박소정, 청주아리랑보존회 강옥선,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기연옥, 하바롭스크아리랑보존회 김석복, 호주아리랑보존회 김채원." 한편 이 비문의 글씨는 한얼 이종선님으로 최근 대형 작품 전시회를 개최하여 화제를 모은 분이다. 약력은 다음과 같다. 한얼 이종선 한국서학회 이사장, 동방대학원대학교 서예과 교수, 성신여대 미술대학 초빙교수, 한국서총 총간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유농서회, 오거서루 등 주재. 대한민국서예대상전 등 50여 대회 심사위원. ‘한글 서예로 읽는 우리음악사설전시회’(21) 외 개인전 6회. 한글서예 오늘과 내일 전, 광개토대왕비 특별전 외 초대전 400여회 출품. 불교방송개국 기념비(97), 남산도서관 표지석(02), 고려대학교 개교백주년기념비(06), 지리산 연곡사 사적비(21) 외 30여 곳 제액 및 금석문.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외 국내외 40여 기관 작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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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에서 개최되는 KBS한민족체험수기 시상식에 부쳐...오늘 'KBS한민족체험수기' 담당 프로그램 팀 10여 명이 시상식을 위해 카자흐스탄 알마티시로 출발했다. 시상식과 축하공연이 알마티한국교육원에서 10일 개최된다. 올해 영예의 대상은 사할린한국교육원에서 수년간 계속 한글을 공부하고 있는 사할린 2세 김경순(71세)씨가 수상된다. 일제강점기 1940년 전후부터 8만에서 10만으로 추정되는 조선인들이 사할린으로 강제동원이 되어 끌려왔다. 1945년 외세가 일으킨 전쟁은 끝났지만 동서양 냉전으로 국교가 닫혀 있어서 뱃길과 하늘길이 막혀서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남사할린 전 지역에 탄광지역이나 임업지역으로 배정을 받고 100여 가구에서 150여 가구가 이주하여 남사할린 전역에서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생존했다. 잔치날에는 절구방아를 찧어서 떡을 빚고, 부침개를 부치고, 국수를 뽑아서 상을 차리고 한복을 입고 소리패들이 나가서 민요를 부르고 장구를 쳤다. 이렇게 사할린 1세들은 자신들은 언젠가 돌아갈 조국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국적도 없이 살다가 나이를 먹어갔다. 그러다가 일부는 2000년부터 국내 영주귀국이 이루어져서 국내 인천, 안산, 부산, 김포, 파주, 양주 등 25개 지역에서 현재 2500여 명이 살고 있다. 이병일 원장이 2021년 7월 한국에서 비자연장을 마치고 사할린으로 떠나기 전날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국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과 사할린 현지 한인들의 소식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주고 받았다. 비자연장을 위해 3개월마다 입국시 국내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사회 답사를 함께 동행했다. 김포, 인천에 영주귀국한 최정순 회장과 공노원 선생을 만나서 사할린 소식을 주고 받았다. 이원장은 사할린 한인사회에서 필요한 한복을 기증 받아서 가지고 가고, 2021년 제2차 영주귀국한 동포들이 요청한 한글학습 교재(러시아어 판)를 전달하기 위해 국내 영주 사할린 동포사회를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3월 KBS한민족방송 주최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50년' 공개방송에도 전 김주한 사할린교육원장님도 함께 참가해 주셨다. 2022년 9월까지 한국에 입국할 때마다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은 메신저를 통해 현지에서의 영상통화를 요청하여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KBS한민족체험수기 수상자 발표 소식을 듣고 바로 사할린으로 전화를 드렸다. Q. 원장님, 여기 한국입니다. 방금 이번 KBS한민족체험수기 대상 작품과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대상을 수상한 분이 바로 사할린한국교육원 원생 김경순님입니다. 이산의 가족사가 담긴 '눈물의 섬,사할린' 수기가 대상을 타게 되셨습니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자에게 수상소감 준비해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A. 정말인가요. 꿈인가요. 믿기지 않습니다. 사할린 동포들의 경사입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밖에 생각안나네요. 이원장이 지난달 비자 연장으로 잠시 한국에 들어 왔는데, 몇달 전 미리 보낸 사할린 동포들의 '한글ㆍ한복ㆍ태권도ㆍ국악ㆍ아리랑 향유에 대한 인터뷰를 해주셨다. 이번에 대상을 수상한 김경순씨 체험수기 과정을 살피기 위해서, 이 글에서는 1993년부터 20년간 한글 교육을 맡아 온 사할린한국교육원의 역할과 이병일 원장의 교육활동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한다. 아울러 이원장의 교육이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Q. 원장님, 안녕하세요. 3개월 전 뵙고 오늘 뵙네요. 사할린 동포들은 잘 지내시는지요. 코로나가 심한데......먼저 사할린한국교육원에 대해 소개 해주세요. A. 내년이면 사할린한국교육원 개관이 30년이 되네요. 1993년 12월 10일에 러시아내에서는 가장 먼저 설립된 한국어 및 한국문화 교육기관입니다. 2016년에 러시아 사할린 교육부에 추가(보충)교육기관으로 등록되었고, 법률적인 조건을 유지하며 운영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내에서도 재외동포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설립되어 있으며, 기관의 설립 또한 한-러 수교 이후 생겨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교육원은 전 세계적으로 43개 원이 있으며 러시아와 CIS지역(3개)을 포함하면, 우리나라 교육원 설립은 일본 다음으로 많은 한국교육원이 개원되어 있는 국가입니다. 한국어입문, 초급, 중급, 한국어 회화반을 운영하고 있고, 한국문화 초급, 고급반 및 민속춤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 특별수업으로 한지공예, 전통매듭 등을 운영합니다. 전체적으로 학기당 200명이 입학을 합니다. 연 400여 명이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한인동포 및 자녀, 현지인 절반 정도씩이고, 한글학교 등록 및 운영비 전달, 수업장학, 한국어 채택학교 지원사업, 한국어 능력시험 운영 등을 담당합니다. 다음해에는 30주년이 되는데...... 예산 확보와 30주년 행사 등의 대략적인 구상을 해놓고 이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극동 러시아에서 사할린 다음으로 개원한 교육원은 어디인가요? 조선인이 많이 사는 곳인가요. 하바, 블라디 중? A. 교육원은 한국정부나 교육부가 원해서 설립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 동포들의 수차례의 요청에 의해서 그 국가 혹은 지역에 설립을 검토하여 개원합니다. 사할린과 연해주는 한인, 고려인 동포들이 많기 때문에, 또는 현지인들과도 사이가 좋기 때문에 국가, 지역 정부의 인정을 받아 설립, 개원하였습니다. 한러수교 후 가장 요구가 많았던 곳이 사할린이었습니다. 그래서 수교 후에 가장 먼저 1993년 12월 사할린에 개원하였고, 하바로브스크, 블라디보스토크, 로스토프나도누 순으로 교육원이 설립되었습니다. Q. 러시아에서 가장 한인들이 많이 살고있는 곳이 사할린인데. 그만큼 한국어 습득 능력과 교육 실적이 높은가요? A. 교육실적은 교육원 건물 규모와 K-POP 열기와 관계가 많습니다. 법률적으로 많이 수용 가능한 면적이라면 실적이 많겠지요. 그런데 사할린은 작은 교실 3개와 공동사용 1개 교실이 있습니다. 물론 500명 수용 가능한 대강당은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사할린에는 한국어를 배우신 분, 한국말 잘하시는 분, 이미 한국에 영주귀국하신 친척들이 많은 동포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K-POP 열기는 매우 조용합니다. 마치 한국 국내에서 K-POP을 잘 모르는 것과 같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한국어 학습 열기로 보자면 현지인(러시아 민족)이 더하고 동포들은 적당히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참여률은 비교적 낮은 편입니다. 한국어 능력시험 수요는 사할린이 가장 낮습니다. 사할린교육원은 1년에 1번만 시험을 치루는데, 블라디보스톡, 하바로브스크, 로스토프나도누 교육원에서는 매년 2번씩 시험을 보며, 참가자들이 많아서 넓은 학교 강당을 빌려서 시험을 치룹니다. 물론 사할린에서 'K-POP경연대회' 등에서 한류 열기는 모두 대단합니다. 그러나 한국어, 한국문화 교육 실적에서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하면 높지 않습니다. 이미 한국과의 연대감이 높고 주위에 한국말 잘하는 한인들이 많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는 여유가 있어서...그런가 봅니다. Q. 한국어 교육은 교육원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선생님들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요. 누구나 입학이 가능한가요. 입학시험이 있나요? 전에 가보니 엄마와 10대 후반 아들이 함께 배우더라고요. A. 한국어 교육은 입문반 3개반, 초급반 2개반, 중급 1개반, 회화 1개반으로 구성되고, 선생님들은 경력 1,2년차부터 정규 교육을 받으신 한국어학과 교수님까지 다양합니다. 현직 한국어 채택학교에서 재직하셨던 선생님들이시며, 실력은 정상급입니다. 다만 경력이 낮은 선생님들은 원어민과의 교류가 적어서인지 한국에서 파견된 저(원어민 사용자)와의 대화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처음에는 놀라웠습니다. 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해당 언어를 하루도 빠짐없이 연구하고 접해야 하는데.... 그러나 학생들은 매우 만족해 하여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 교육 관련 대학에서도 교육과정에서 실제 1대 1로 대화하는 '회화'나 '듣기', '말하기'의 비중을 늘려야 하는 것이 우선적 학습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사할린한국교육원의 장수 수강생인 김경순님이 대상을 받으셨는데. 어떻게 체험수기를 쓰시게 되었는지요? A. 사할린한국교육원이 주최하는 '2022년 제24회 한민족 수기대회'에서 사할린한국교육원의 장수 수강생인 김경순님이 지난 4월에 자작시를 보여 주셨습니다. 가수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곡의 가사에 맞추어 지으신 '노가바'(노래가사바꾸기) 가사인데, 일반적인 고국의 외면 속에 사시는 사할린동포 2세의 심정을 그대로 담은 가사였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에 담긴 가족사를 자세하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씀을 하신 그 마음을 그대로 담아서 글로 써보시라고 권했습니다. Q. 가사 내용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가요? A. 가사에는 사할린 1세와 2세들의 디아스포라가 서린 가족사에는 뼈아픈 그리움이 절절했습니다. 그리고 7월 경에 또 한 편의 가사를 보내셨습니다. ‘칠갑산’ 노래에 맞춘 가사였는데, 한맺힌 눈물이 총총히 박힌 이별의 가족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노래를 불러서 녹음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이 가사에 부쳐서 노래를 부르려고 연습하려고 했다가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경순님의 큰오빠는 1940년 10살 때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으로 떠나신 부모님과 헤어져서 배 떠난 부두에서 당시 어린 큰오빠의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적나라하게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50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가는 하늘길이 열려서, 어머니는 병드신 채, 아버지는 연로하신 채... 휠체어를 타고 한국을 방문해서 꿈에도 그리던 장남을 상봉하시고 나서 사할린으로 돌아오셔서 몇달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이런 기막힌 이별과 짧은 재회, 그리고 생이별한 비극의 이야기입니다. 저도 12살에 부모곁을 떠나 서울 숙부댁으로 유학을 가던 장면이 겹쳐지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녹화를 하는 내내 목메임을 추스릴 수 없었습니다. 한국어 자막이 달린 10분 정도의 다큐 영상을 열어보고 나서 가슴이 한참 동안 울컥했다. 남의 나라 전쟁 때문에 사할린에 끌려와서 반세기 동안 겪어야 하는 한 가족사의 디아스포라는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그래서 제목이 '눈물의 섬, 사할린, 이별의 항구'이었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가 담긴 이 가족의 사연은 사할린 동포들에게는 누구나 겪어야 하는 가족사이다. 사할린에 사는 동포들에게 이러한 뼈아픈 사연이 없는 가족은 없다는 것이다. Q. 이번에 교육원생이 수상한 대상,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큰 성과를 얻으셨습니다. 개인적 소감은? A. 사할린에서 태어난 김경순님이 겪었던..... 부모님이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셨던 기억, 한국에 남겨진 큰오빠에게서 들은 이산에 대한 고통, 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고향에 묻히지 못하고 타국에 묻히신 분들을 위로하고, 다시 내세에서 만나기를 기원하면서 글짓기를 해보시라고 했는데, 이 글이 조국에서 대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수상 소식은 사할린 동포들을 위로하는 치유가 되어서, 제 마음도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세계를 멈추게 하는 코로나와 전쟁으로 인해서, 이 상은 2022년 들어서 사할린 동포들이 맞이하는 조국과의 첫 교류이기도 합니다. 내년에도 사할린 동포들과 교육원생들이 많이 참가하기를 바랍니다. 2020년부터 대상을 수상하신 사할린 동포들에게는 큰 자극이 되었다고 봅니다. 전 한국어 교사로서 한글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같은 소임을 공감하셨다고 봅니다. 많은 사할린 동포들도 기뻐하였습니다. 교육원의 한글 수업에도 큰 힘이 됩니다. Q. 2년 동안 교육원에서 한글교육을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학생은 ? A. 수많은 학생이 기억나지만, '안냐 나른스카야' 학생이 생각납니다. 교육원에서 5년간 한국어 공부를 했고, 한국에 나가서 장학생으로 유학하고 싶었지만 한국어 능력시험 3급으로는 자격이 안된다고 하여 탈락되었어요. 이후 사할린국립대 한국어학과 들어가고, 계속 교육원에 나오고 하다가 부산외대 교환학생이 되어 6개월 동안 공부하고 돌아왔습니다. 의지의 사할린 여성이랄까요? Q. 사할린한국교육원에서 펼친 원장님의 교육이념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A. 사할린 동포들에게 있어서 한글과 한국어는 정체성의 구현입니다. 한국어를 모르면 한국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한국어는 한민족의 얼이고 혼입니다. 다음 사할린 한인 4세 세대와 한국인 세대가 만나서 김치, 김치찌게, 삼겹살을 먹으며 먹으며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한국문화에 친해지도록 탈춤도 보여 드리고 달고나(오징어게임)도 만들어 보여 드리고 제기차기, 팽이돌리기 등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Q. 원장님, 사할린 동포들의 한글교육과 사랑에 대한 마음이 전해져 옵니다. 다시 사할린교육원장직을 연장하시고 싶으시나요? 공식적 연장은 가능한가요. A. 네, 6개월 단위로 연장 가능합니다. 저는 코로나 시기와 함께 교육원 임기가 시작되어...처음 몇 개월동안 문을 닫고 해서 아쉬움이 커서. 6개월 연장 신청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떠날 때는 떠나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어쩌면 다시 오기 위하여 지금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첫 개원이나 교육원 이전 등 정말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연장이 안됩니다. Q. 현재 한글교육을 하는 사할린 세종학교(교장:임종환) 역활과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A. 유즈노사할린스크 세종학교는 재외동포재단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의 이름입니다. 세종학당재단에서 운영하는 세종학당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교육원에서는 매년 재외동포재단의 한글학교 운영비를 지원하고 정산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교육원에서 보유한 교과서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세종학교의 문화행사에 가끔 참여하기도 하고, 민속춤 수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글학교 수업 장학은 우리 교육원의 업무입니다. Q. 코로나로 인해서 한국에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팬데믹 기간 동안 교육원과 사할린한인협회는 연례 행사를 어떻게 치루셨는지요. A. 교육원은 문화행사로 주최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으로부터 교류가 없으니까요. 2021년 한국어말하기 K-POP 경연대회는 국립대학이 주최, 사할린한국교육원이 주관하였습니다. 김치축제에는 우리가 강사님만 초청했고, 막걸리와 전통놀이 도구만 지원했습니다. 사할린한인협회(회장:박순옥)가 주관했습니다. 2021년의 말하기 대회와 K-POP경연대회는 사할린국립대학에서 예산을 세워서 개최했으며, 설날 행사 등에는 사할린한국교육원 민속춤 클래스에서 ‘밀양아리랑 댄스’을 더했지만, 실제적 주최는 사할린한인협회입니다. 이제는 사할린에서 문화행사는 대부분 사할린한인협회가 주관하게 되었고, 저는 사할린동포 단체가 주체가 되어 주최되는 문화행사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13일 인터뷰를 마치고 2일후 이원장은 탈춤을 가르치기 위한 한삼 20벌과 한복 10벌, 무용 슈즈 10컬레를 트렁크에 추려 넣고 뱃길로 가는 사할린 길을 나섰다. 이원장은 서울에서 출발하여 동해안 뱃길을 타고 블라디보스톡에 당도한 후 다음날 오전 사할린 가는 비행기를 타고 유즈노사할린스크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보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사할린에 가는 직항로가 폐쇄 되어서 2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돌고 돌아서 2박 3일을 걸려서 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은 3년째 가족이 기다리는 사할린 땅을 밞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 봄에만 해도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모스크바에서 사할린 행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했다. 올 가을부터 연해주로 가는 뱃길이라도 열려서 다행이다. 그러나 극동 러시아 바이칼 부근 지역에 사는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몽골을 경유해서 2일간 육로로 가야하는 형편이다. 우리 모두는 어서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에는 사할린 한인들의 정체성을 살피기 위해 이병일 원장에게서 사할린 동포들의 '김치'와 '국악'의 향유에 대한 인터뷰를 싣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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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아리랑앙상블, '아리랑+탈춤' 선보여지난 22일 사할린 달네이 지역에서 사할린아리랑앙상블(단장:박영자)이 '아리랑+탈춤'을 선보였다. 교육원에서 특별수업으로 탈춤을 지도한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이 오늘 본지로 보내준 동영상이다. 탈춤을 추는 무용수는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과 수강생인 사할린 3세 이미르씨,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병일 원장은 "교육원 특별수업으로 학생들에게 탈춤을 가르치는 모습을 박영자 단장이 보고서 '아리랑' 선율에 맞추어서 같이 해보자라고 해서 오늘 무대가 완성되었다."라고 전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할린아리랑앙상블 박영자 단장이 "10여 년 전 탈춤을 보고 매료되었다. 2007년 한국에서 오신 목진호 선생에게 처음에 아리랑 선율에 기본 한국전통무용 춤사위를 배웠어요. '아리랑춤사위'라고 하던대요. 탈춤과 입춤, 살풀이춤, 부채춤, 소고등을 배웠다. 역동적인 춤사위가 신이나고 속이 시원한 몸짓이다."라고 전하며 "아리랑에 접목시켜 보았다"라고 전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사할린으로 파견된 목진호 선생은 "사할린에서 2007년 2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처음에 가르친 것이 아리랑춤사위이다. 이어서 사물놀이, 난타를 가르치고, 탈춤, 말뚝이춤, 봉산탈춤, 고성오광대 기본무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태평소, 대금, 소고춤을 가르쳤다."라고 전했다. 함께 수업을 맡은 황혜진 국악인은 가야금, 단소, 대금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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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국악신문, 국내외 사할린 공연예술단에게 태극선 부채 선물(주)국악신문사는 국내외 사할린 공연예술단에게 한국 춤사위 공연을 위해 사용하는 태극선 부채를 선물로 전달했다. 국내 비자문제로 잠시 입국한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을 통해 국악신문사에서 보낸 태극선 부채를 유즈노사할린스크 세종학교 림종환 교장과 사할린아리랑무용단에게 전달했다. 국내는 김포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로 구성한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김포 지부 전영희 교사와 양주 사할린아리랑합창단에게 태극선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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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지난 15일 '한민족 문화의 날' 개최지난 5월 15일(일) 사할린주 미술박물관은 '사할린주 한인협회'와 공동으로 한민족 문화의 날을 개최했다. 12시와 14시에는 미술관의 '한반도 현대 미술' 상설 전시관을 둘러 볼 수 있었고, 15시에는 주한인협회 측에서 한인문화센터 소속 '하늘'타악기팀(단장 송정석), 주한인협회 소속 '사할린아리랑무용단'(단장 박영자)이 신명나는 무대를 만들었다. 최 율리야와 서 마리나 가수들이 한국 트로트와 러시아이 애창하는 민요를 불렀다. 세계인들이 공인하는 K-뮤직과 한민족 전통문화에 대한 해설과 함께 한국음악을 감상했다. 이날 행사를 많은 어린이와 함께 찾아온 가운데 한글 쓰기, 한민족타악기 문화체험실도 열렸다. 한글쓰기 체험교실에서는 사람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써보는 체험을 하는 기회도 주어지고, 타악기 체험교실에서는 짧은 작품 하나 만들어 보고 바로 발표공연을 했다. 관객들은 북을 치면서 즉흥적으로 여러 율동도 해보는 데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즐거워 하였다. 특히 이날 한복을 입고 포토존 무대에서 즉석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관객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는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한민족 문화의 날 행사는 '러시아 민족들의 문화 유산의 해'기념 행사 일환으로 진행된다. [출처]22년 5월20일(음력 4월20일) 새고려신문 (사할린 새고려신문) | 작성자 bplus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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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2021유치원 한글학교 졸업식30년 역사를 지닌 사할린 한글교육협회(한국)가 매년 2차례 시행하던 사할린 한글학교 한국 문화체험 연수가 코로나로 중단되어 있다. 주 원인은 경제적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5개 지역 유치원에서 한글학교 수업을 해오다가 최근에는 후원이 줄어서 3개 지역 유치원에서 한글수업을 해오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주)국악신문사와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주축이 되어 2020년부터 후원회가 결성되어, 사할린에서 한글학교 수업은 다행히 이어오고 있다. 사할린 한글학교 한국 문화체험 연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27년 동안 사할린에 한국어 교육과 차세대들의 모국 방문을 후원해왔다. 이는 임태식 사할린 한국어교육협회장의 헌신으로 이어져왔는데, 코로나로 운영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임 회장은 최근 아리랑학회 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명감을 갖고 사할린 한국어 교육을 도와줄 개인이나 단체가 절실히 필요합니다."라고 밝혔다. 서울 혜화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임 회장이 사할린의 한국어 교육 문제에 열정을 품게 된 것은 가족사와 연결된다. 바로 사할린에 거주하는 고종사촌을 만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을 때 사할린 공식 한글학교 제9동양어문학교를 방문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임 회장의 회고 속에는 앞으로의 운영에 대한 걱정이 절실하게 전해졌다. "한글 교육 수업 장면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국어 교육이 재개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모든 것이 열악했지만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태도만큼은 정말 열성적이었어요. 그 흔한 스티커도 없어서 성적이 올라가는 아이들에게 색종이로 별을 오려서 노트에 부쳐주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서 스티커를 당장 한 보따리 보냈습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고 배우고자 하는 한국어 교사들의 열정에 감동을 받고 귀국 후 친분이 있는 각 학교의 교장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사할린 동포를 위한 한복 700여 벌을 모아 수선해서 보내기도 했다. 사할린 내 유치원 3곳에 한국어반을 설립해 운영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할린 현지에선 한국어를 가르치는 상급 학교가 많지 않아서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어 학교 설립이 시급하지만 당장은 여력이 없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맥을 이어가게 하고 싶습니다. 교사들에게도 아이들이 한국말을 잊지 않게만 도와달라고 하고 있죠." 임 회장은 비영리단체인 사할린 한국어교육협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후원자를 찾아 나섰다.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단체에는 후원이 많이 들어온다는 데 사할린 문제에는 관심있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불행한 역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나야 했던 사할린 한인의 후손들이 우리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설명을 했지만 협회를 함께 이끌어 나갈 사람(동지)을 찾는 일도, 후원자를 모으는 일도 쉽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후원사업은 갈수록 힘들어졌다. 후원자들이 노년을 맞이하여 양로원이나 병원생활을 하게 된 탓이다. 그 결과 후원자는 3분지 1로 줄어들었고, 여기에 코로나로 해서 더욱 힘들어졌다. 차기 한국어 교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 현지 한글 교육을 맡은 교사들의 부족 현상이 있게 되었다, 26년 전에 책정한 차비 정도의 월급과 지원은 경제적으로 너무나 협소해서 계속되는 코로나로 이 교육사업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런데 2016년부터 매년 '사할린 아리랑제'를 주관하는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논의를 하게 되었다. 최근 이에 동조하는 아리랑학회, 국악신문 등이 동조하고 나섰다. 지난 3월 후원회가 구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정은하 회장은 최근 모임에서 "일제강정기 강제동원으로 사할린에 끌려간 조선인 중 경상도 출신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말을 잊지 않고 아리랑까지 부르는 동포들은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우리말을 잊어버리면 아리랑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1차 후원회 결성에 이어 제2차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문제를 측면 지원해 온 공노원 부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류바람을 타고 불어온 한국의 인기는 사할린에도 주기적으로 한국 문화가 움트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사할린에는 남북한 문화가 각각 공존해 있었지만 냉전 이념 속에서도 한국 풍습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어서 '사할민국'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한글 교육이 사라지면 다음 세대는 러시아 문화에 동화되어 정체성 문제에 혼란이 올 것이다" 라고 한글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임 회장은 이 같은 논의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본회의 설립 취지를 이해해 주시고 후원회원으로 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총장님께서 많은 지원을 해 주셔서 큰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리랑 보존과 발전을 위해 수고하시는 전국 아리랑전승단체 회장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국악신문 전직원의 관심 표명에 대해 감사합니다. 특히 이번 공노원 부회장의 사할린 현지 공개수업 참관과 지도하는 기간에 후원을 해 준 나눔성형외과 (원장 노승만)에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새고려신문, 2021.04.16) 30년동안 사할린 어린이들에게 한국어 교육사업을 펼쳐 온 비영리단체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후원회 가입 연락처는 (주)국악신문사로 하면 된다. (02-92-1411)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은 국악신문를 통해 "유치원 한국어교육을 가능케 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보낸다. 후계 교사가 키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라고 전했다. 박영자 교사는 "오늘 종강을 하면서 작년 9월에 개강하고 1년동안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아이들이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공부하기를 바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국어를 계속하기는 어렵지만 유아기에 배운 한국어는 노래처럼 기억될 것이다. 나는 그래서 아이들과 노래하고 춤으로 가르쳤다."라고 전했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임태식 회장 메세지 러시아 사할린! 일제강점기 통한의 상흔이 1,2세대에 머물지 않고 3,4세대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침식되어가는 아픔이 있습니다. 나라 잃어 천대받던 4만 3천여 우리 동포들은 광복의 기쁨도 누리지 못한 채 반세기를 부당한 영어의 몸으로 한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핍박과 허기로 고향을 그리다가 세상을 떠난 수많은 우리 동포들도 있습니다. 1990년 한ㆍ러 수교로 꿈에 그리던 모국을 왕래하게 되었지만 우리말과 글을 쓰던 1세대들의 영주귀국과 타계는 2세대들의 모국어 사용을 중단하게 했고 3,4세대들의 한국어 교육 부재는 이제 문맹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963년 한국어 교육 폐지 이후 조선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러시아어로 교육을 받아야만 해서, 3세대가 모이면 중간에 있는 2세가 1세와 3세의 소통을 위해 통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현실입니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어 교육이 재개되었지만 1963년 이전 양성한 한국어 교사는 영주귀국을 하였거나 고령으로 타계하였습니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사할린 국립대학에서 양성한 300여 명의 한국어 교사는 열악한 보수체계로 거의 전원이 한국어 교사임용을 기피한 실정입니다. 현재 사할린에는 정규교육을 이수한 한국어 교사는 전무한 편입니다. 질 높은 교육을 위해 교사 양성과 연수, 교재ㆍ교구확충 등에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협회는 아직은 어렵지만 사할린에 한글학교가 설립되고 우리 동포가 우리말과 한글을 잊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3월 1일.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임태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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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23>박영자, 강제동원 숨기는 '사도광산' 유네스코 못간다박영자 단장은 "일본은 지난 2015년 나가사키현에 있는 '군함도(하시마 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던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재까지도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며 분노했다. 이어서 "특히 사할린 동포들은 1945년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졌을 때, 다시 이중징용을 당했다. 폭파된 도시 재건 사업에 끌려갔다. 다시 돌아 온 사람은 몇 안 되지만, 그것도 방사능에 노출이 되어서 고통에 시달리다가 아편 중독으로 죽은 사람들도 있다. 그 돈을 대다가 집안이 망하자 부인은 집을 나가고 가족이 뿔뿔히 흩어졌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숨기고 유네스코에 등재를 한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박영자 단장(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한국어 교사)은 2021년 KBS한민족체험 수기에서 이중징용 당한 가족사에 대한 수기로 대상을 수상했다. 제목은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이다. 본지에 3회에 걸쳐 연재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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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 사할민국, 사할린 동포 설날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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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민족체험수기 대상,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3부)KBS라디오 한민족방송은 '제23회 KBS 한민족 체험수기 공모전'의 성인 부문 대상에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시의 박영자 씨(1951년생)를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중국·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등의 조선족·고려인·사할린 한인 등이 응모했고, 이 가운데 6개 부문 22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소속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는 박 씨는 일제강점기 외할아버지가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이중 징용을 당해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고 타국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가족사를 담은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으로 상을 받았다. 박씨는 "강제징용 역사를 지닌 사할린 한인들의 가슴에 쌓인 이산의 아픔을 위로하는 상"이라며, "이중징용으로 일본 탄광에 끌려갔다가 사할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현지에 묻히신 외할아버지에게 이 상을 바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수상작을 3부로 나누어서 3부를 연재한다. 일본 땅에 묻히신 외할아버지를 찾다 (3부 편) 언제나 일본 외할아버지 사시던 곳에 가보나라는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제주 진외가집에서 외할아버지는 종전 이후 재혼도 하지도 않고 혼자 아들을 키우시다가 오사카에서 돌아가셨다고 알려 주었다. 1990년 한러수교 이후 한국의 친척들과 연락도 계속해 왔는데 세월이 바쁘다 보니 일본에 묻힌 외할아버지의 묘를 찾을 생각만 가슴에 담고 가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2019년 어느날 페이스북에서 낯선 외국 남자가 친구하자는 신청이 들어와서 페친이 되었다. 한국말로 답변을 했더니 그분이 사할린 한인 역사와 나의 가족사에 관심을 보였다. 자신도 일본에서 태어난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 2세로 살고 있다고 하며, 나의 제주도 출신 부모님이 사할린에 강제동원 되었다가 이중징용된 가족사에 대해 가슴 아퍼했다. 일본 친구는 30여 년 간직하고 있던 외삼촌의 연락처를 달라 하시고 오사카에 계신 외삼촌 댁에 전화해 보겠다고 하셨다. 기적처럼 외삼촌 댁 전화번호와 주소는 바로 연락이 되었다고 한다. 외삼촌은 12년 전에 별세하셨고, 외숙모는 살아 계시다고 전해 주었다. 이 소식을 받고 나는 이틀 동안 설움이 북받쳐서 울고 또 울었다. 다시 이틀이 지나 오사카에 사시는 얼굴도 모르는 외숙모 집 전화번호를 떨리는 손으로 두드렸다. 제주도가 고향인 재일교포 외숙모는 한국말을 잘 못하셔서 일본말을 섞어가며 오랫동안 가족 얘기를 해주셨다. "언제가 올 너의 소식을 기다렸다. 내일 당장 오라. 보고 싶다"라고 울먹이셨다. "외숙모님! 외삼촌을 못 만난 것이 마음이 아퍼요. 더 일찍 연락을 하는 건데 사는 것이 힘든 시기라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가는 것이 러시아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내일이라도 가고 싶지만 준비를 해서 연락을 드리고 가겠습니다.”라고 전하고, 석달 후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로 찾아갔다. 드디어 낯선 땅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묘앞에서 큰절을 올렸다. "할아버지, 엄마 대신 제가 70년 만에 찾아왔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오늘에서야 엄마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외할머니가 평생 그리워 하시던 아버지를 손녀인 제가 찾았어요. 마지막 유언을 엄마 대신 제가 지켜 드렸어요. 이제 슬퍼하지 마세요. 편히 쉬세요” 먼저 생전에 만나지 못하고 헤어진 부녀간의 영혼을 위로해 드렸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그리워 하던 오라버니(나의 외삼촌)의 묘앞에서 모자간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이 순간부터 나는 눈만 감아도 우리 외가 가족이 얼마나 슬프게 살아오셨는지 이제는 뼈저리게 알 것 같다. 아버지를 그리워 하던 딸(어머니), 아들을 그리워 하던 어머니(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제주도에 남겨두고 온 딸을 만나셨으리라. 외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만나셨으리라. 나는 이제서야 돌아가신 엄마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나) 엄마! 이제 편안히 잠드소서..... 나는 이 글을 남기면서 내가 누구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게 되었다. 우리 4대에 걸친 가족사는 사할린에 사는 손자에서 손자로 대대로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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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민족체험수기 대상,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2부)KBS라디오 한민족방송은 '제23회 KBS 한민족 체험수기 공모전'의 성인 부문 대상에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시의 박영자 씨(1951년생)를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중국·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등의 조선족·고려인·사할린 한인 등이 응모했고, 이 가운데 6개 부문 22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소속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는 박 씨는 일제강점기 외할아버지가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이중 징용을 당해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고 타국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가족사를 담은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으로 상을 받았다. 박씨는 "강제징용 역사를 지닌 사할린 한인들의 가슴에 쌓인 이산의 아픔을 위로하는 상"이라며, "이중징용으로 일본 탄광에 끌려갔다가 사할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현지에 묻히신 외할아버지에게 이 상을 바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수상작을 3부로 나누어서 2부를 연재한다. 무국적으로 살다가신 아버지와 어머니(2부) 부친 박정환(1919년생)은 전라남도 목포 근처 작은 하의도라는 섬이다. 1944년 부친은 하의도의 한 사람과 함께 강제동원을 당했다. 사할린에서 부친은 산판(벌목장)에서 일했다. 우리 부모는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코르사코브 항구 근처에서 만나서 살림을 차렸다. 고향에 갈 수 있다는 기대를 품은 동포들은 그 당시 코르사코브에 도착하자마자 공동묘지부터 만들었다. 고향에 돌아갈 때 부모님의 유해를 가지고 가기 위해서다. 이후 사할린에 와서 산판과 탄판에서 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일본 탄광으로 다시 징용을 받아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을 맞고 죽어간 사람들. 사할린에 돌아왔으나 전쟁의 트라우마로 정신을 잃은 사람들, 이렇게 잃어버린 가족들 사진을 가슴에 품고 몇 년간이나 모여서 살았다. 모여서 살다가 러시아 국적을 받든지 북한 국적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두 분 다 무국적이셨다. 러시아 국적을 받으면 조금은 자유롭고 경제적 혜택도 많아서 동서들이 같이 받자고 했지만 모두 거절을 하셨다. 혹시라도 국적 문제로 고향에 돌아갈 길이 막힐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하셨다. 집에서는 조선말만 사용하게 했다.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이 있으니 우리말을 잊으면 안된다고 야단을 치셨다. 그 덕에 우리 형제는 조선말을 가슴에 담고 살았다. 나는 1951년 코르사코브에서 맏딸로 태어난지 한 달이 되어 사할린 북부 스미르늬흐구역 오노르마을 근처 동포들만 사는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유는 고향땅에서 함께 끌려 온 부친의 동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산판(벌목장)에서 함께 작업을 했다. 오노르 마을에서 마침내 내 밑으로 남동생이 셋이나 연이어 태어났다. 아버지는 내 밑으로 남동생을 세 명이나 봤다고 나를 추켜 세워 주셨다. 이후 나는 8살이 되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우리 가족은 북적북적한 스미르늬흐 마을로 이사를 했다. 거기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란 눈을 가진 백인 러시아 사람을 봤는데, 언어도 다르고 외모도 낯설어서 놀라웠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아 "아버지, 이곳 사람들이 왜 우리랑 달라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조선사람들이 어떻게 사할린에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강제징용을 당했는지,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합병했던 당시 얘기를 그때 처음 설명해 주셨다.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우리 가족은 돌아갈 조국이 있고, 밀양 박씨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나는 나의 뿌리에 대한 강한 자부심은 ‘나’라는 존재를 당당하게 했다. 아버지 나이와 비슷한 1세 분들은 만나면 똑같이 고향을 그리워 하셨다. 당시 사할린은 고향이 같으면 서로 서로 의형제를 맺고 기념 사진을 찍어두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었다. 어른들은 그 사진을 앞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셨다. 나 죽으면 이 사진을 누군가는 고향집에 언젠가는 가져가게 될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죽는날까지 간직하다가 자손들에게 남겨주고 간다. 그리고 누구나 항상 밤에 라디오 수신기를 켜고 한국 방송을 기다리셨다. 혹시나 고향 소식을 들을지도 모른다면서,...우리 아버지도 한국 노래를 들으시면서 자주 우시기도 하셨다. 당시 어린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이해가 안 갔다. "노래가 즐거운데 왜 우시지?”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안하시고. 먼 하늘만 쳐다보시디가 독한 보드카를 한잔 드시고 주무셨다. 어느덧 나는 결혼을 하게 되어 집을 떠나게 된다. 88서울올림픽 때, 어느날 부모님 댁을 찾았다. 엄마와 아버지 두 분 다 눈이 퉁퉁 부어 계셨다. 밤새도록 우셨다고... 어제 늘 듣고 있던 라디오에서 바로 아버지 ‘박정환’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셨다. 사방팔방으로 연락을 취해 사할린 동포들을 돕고 있는 일본의 변호사 타카기 켄이찌를 통해 편지로 연락을 하게 된다. 다음 해 아버지 친척의 초청을 받아서 나는 난생 처음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을 통해 한국을 찾아갔다. 아버지는 3형제 중 둘째이시고, 아버지의 형과 남동생은 6.25전쟁 때 실종되셨다고 했다. 한 집안 삼형제가 뿔뿔히 헤어지게 된 것이다. 남의 나라들이 일으킨 전쟁이 만든 상처는 너무 컸다. 한국 방송에서 우리 아버지를 찾은 분은 한국에 계시는 작은 아버지의 아들과 딸이다. 소식이 주고 받다가 한국 적십자의 도움으로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그리운 조국 땅에 발을 내렸다. 어머니는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외할아버지의 소식부터 알아보는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고향인 하의도, 친척들이 사는 목포,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도를 다 찾아가서 친척들과 눈물 젖은 상봉을 했다. 물론 서울도 가보았다. 제주도에는 어릴 때 우리 엄마가 업어 주며 키웠다던 조카들을 만나서 가족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보자 마자 피를 나눈 형제라는 피붙이들이 나누는 뜨거운 정은 사할린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일본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의 오라버니 연락처를 받게 되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일본 땅에 묻히신 아버지의 묘지를 찾아가겠다고....엄마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약속을 했다. 그 당시에는 일본에 친척이 있는 경우 외국방문 허가가 떨어졌지만 일본에서 친척을 찾고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소비에트 정권이 무너지면서 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묘를 찾으려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시고 1995년에 돌아가셨다. 다음 해 고향을 그리워하시던 아버지는 '이제 엄마도 없으니 고국으로 가고 싶다.'라는 의사를 나타내셔서 우리는 가족 모임에서 '그렇게 해드리자.'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영주귀국을 하셔서 처음에 아버지는 춘천 '사랑의집' 양로원에서 계시다가 나중에는 노환으로 재활기관인 인천 '사할린한인복지회관'으로 옮기셨다. 1년 후 나는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되어 자식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사할린에서 일을 그만 두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여러 가지 힘든 일과 통역을 하면서 휴일마다 인천 양로원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찾아서 위로해 드렸다. 그러나 한국에 온지 5년이 지나서 출가를 한 맏딸이 출산을 하게 돼서 손녀를 돌봐주기 위해 완전히 사할린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다. 그리고 나서 2008년에 아버지께서는 조국에서 10년을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의 유해를 사할린으로 가져와 어머니의 묘 곁에 나란히 안치해 드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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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한민족 체험수기 공모전' 대상에 박영자 씨와 주 코스타 학생KBS라디오 한민족방송은 '제23회 KBS 한민족 체험수기 공모전'의 성인 부문 대상에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시의 박영자 씨를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공모전은 북방지역 동포의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우리 말과 글을 보존해온 것을 격려하기 위해 1998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중국·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등의 조선족·고려인·사할린 한인 등이 응모했고, 이 가운데 6개 부문 22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소속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는 박 씨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이중 징용을 당한 가족사를 담은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으로 상을 받았다. "사할린 한인의 살아온 가족사는 바로 70년간 잊혀진 역사입니다. 코로나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이 글을 정리했습니다. 죽기 전에 남겨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이 상은 사할린에 남겨진 사람들을 대신해서 받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박영자) 영상 부문 대상을 수상한 러시아 사할린 주 코스타 학생(16세)의 영상은 '우리 가족의 삶 이야기'가 차지했다. 4대에 걸친 사할린 한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었다는 평을 받았다. "나는 어렸을 때 우리가 한인들인데 러시아에서 왜 사는가? 사할린에 어떻게 왔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너무 궁금했다. 학교수업에서는 알 수 없는 우리 가족의 역사를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서 들었다. 우리 할머니의 아버지께서는 경상남도에서 1943년에 카라후토로(사할린) 강제 징용으로 끌려오셨다. 고르노자보츠크라는 마을 산판에서 아주 힘든 벌목일을 하게 되었다. 전쟁 후에도 우리 가족은 고향에도 못 가고 남겨졌다. 홈스크 항구에서 조국에서 오는 배만 기다리다가 70여년이 흘러서 4대가 이어지는 가족이 태어났다. "(주 코스타) 한민족방송은 올해 코로나19로 별도 시상식을 거행하지 않고 수상자에게 전달되었다. 수상자 박영자씨와 주 코스타군은 KBS 한민족방송방송사에 감사의 마음을 담은 수상소감을 본지에 전했다. 올해로 23회 째를 맞는 이번 공모전은 생활 속에서 한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전승하고, 우리 말과 글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 체험담, 한류와 한글에 대한 생각과 감상을 담은 글과 영상을 대상으로 하였다. 매년 9월에 중국 동북 3성을 비롯해 CIS 지역과 러시아 사할린 등에 사는 북방 동포를 대상으로 한민족 체험수기를 공모, 10월 중순에 발표한다. 수상 소식이 나가고 나서 사할린과 러시아 고려인사회에서 많은 격려와 감사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수상작과 수상소감은 본지에서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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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민족체험수기 대상,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1부)KBS라디오 한민족방송은 '제23회 KBS 한민족 체험수기 공모전'의 성인 부문 대상에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시의 박영자 씨(1951년생)를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공모전은 북방지역 동포의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우리 말과 글을 보존해온 것을 격려하기 위해 1998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중국·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등의 조선족·고려인·사할린 한인 등이 응모했고, 이 가운데 6개 부문 22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소속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는 박 씨는 일제강점기 외할아버지가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이중 징용을 당해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고 타국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가족사를 담은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으로 상을 받았다. 박 씨는 수기에서 70여년이 지나서 우연한 기회에 오사카에 묻히신 외할아버지 묘를 찾게 돼 70년만에 외할머니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박 씨는 "사할린에 들어와서 뿌리를 내린 밀양 박씨 가문의 영광이지만, 동시에 강제징용 역사를 지닌 사할린 한인의 이산의 아픔을 위로하는 상"이라며 "이중징용으로 일본 탄광에 끌려갔다가 사할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현지에 묻힌 외할아버지에게 이 상을 바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민족방송은 올해 코로나19로 별도 시상식을 거행하지 않고 수상자에게 바로 전달하기로 했다. 수상작은 KBS라디오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다음은 수상작을 3부로 나누어서 연재한다. 이산(Diaspora)과 나의 외할머니(1부) 나는 작년에 세계를 멈추게 한 코로나에 걸려서 죽음의 고개에서 헤매다가 살아났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어머니이셨다. 꿈에서 만난 어머니에게 "지금 너무 아퍼요. 살고 싶어요. 살려주세요”라고 매일 기도를 했다. 20여일 동안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다가 기적적으로 완치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오자마자 나는 살아 생전에 못 다한 고조할머니. 외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나에게 이어지는 긴이야기를 남기려고 한다. 4대에 걸쳐서 가라후또(사할린)에 살게 된 조선인의 이야기이다. 사할린 강제징용에 인한 이산과 다시 일본 땅으로 끌려가는 이중징용을 당하게 되는 슬픈 가족의 이야기이다. 나는 사할린에서 태어났지만 나의 어머니 현민제(현남열,1928년생)는 제주도가 고향이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1944년 우리 어머니는 16세가 될 무렵에 사할린에 강제징용으로 끌려 오신 아버지를 찾기 위해 홀로 제주 본가 할머니 곁을 떠나 사할린으로 건너오셨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은 어린 아들과 남편은 강제징병으로 끌려가고 어린 딸들과 주부들까지 정신대로 일본이나 남영군도나 사할린으로 강제징용이 되어 가는 시대라서 할머니는 어린 손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부모가 있는 사할린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에게는 외조부님이 되시는 우리 어머니의 부모님은 두 딸을 본가에 맡기시고. 두 분은 1940년 겨울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아들 하나만 데리고 계약기간 2년만 마치고 돌아오겠다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기다리라라는 말을 남기고 사할린으로 끌려가신 것이다. 우리 외조모는 일제에 의해 가족이 헤어지는 첫 번째 이별을 당한 것이다. 제주도 친할머니 집에 남겨져 함께 살던 언니가 시집가서 어린 두 아들들을 돌보고 있게 되자, 할머니는 손녀에게 "얘야, 가라후토 아버지를 찾아가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1944년 전쟁 막바지에 몰린 일제가 조선 어린 여자들을 정신대로 끌고 가는지라 할머니가 겁이 나서 손녀딸을 부모가 있는 사할린에 보내려고 한 것이다. 꽃같은 16세를 맞이한 소녀는 늘씬하고 고와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 볼 때마다 더욱 불안해진 할머니는 너 혼자라도 가야 한다고 떠밀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소녀는 독한 마음을 먹고 미수가루를 뱃속에 차고 홀로 배를 타야만 했다. 아니면 정신대로 끌려갈 판이다. 배 밑바닥에서 간신히 20여 일 지내고 나서야 일본땅을 통해 사할린에 도착을 해서 천신만고 끝에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할린 우글레고르스크(에수토루) 구역의 탄광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바로 며칠전 일본으로 이중징용을 당해 17살 어린 아들까지 데리고 가라는 일제에 의해 이미 일본 고베의 한 탄광으로 강제동원 되어 떠나버린 뒤였다. 그리운 아버지는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다. 낯설은 사할린에 남겨진 가족들을 뒤로 하고 2년만 있다가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시고 코르샤코프 항구에서 배를 타고 떠난 후였다. 당시 일제는 한 가정의 아버지와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까지 전쟁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일본 탄광으로 강제로 끌려가야만 하는 세상이었다. 외할머니는 졸지에 남편과 아들을 빼앗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인이 되셨다. 남겨진 두 딸과 함께 평생 동안 힘들고 외로운 여생을 사셨다. 고향에서 끌려갈 때는 2년만 일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다가 이중징용으로 다시 일본으로 내몰린 것이다. 1년 뒤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었지만 부자는 일본으로, 모녀는 사할린으로....... 갈라지고 찢어져야만 했다. 남의 나라 전쟁을 위해서 한 개인이 당해야만 하는 ‘이산의 이산’을 겪게 되었다. 일제에 의해 두 번째로 당하는 가족의 이별인 것이다. 사할린에 도착한 어머니는 가족을 만난 기쁨보다는 꿈에도 그리운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만날 수 없다는 슬픔으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하신다. 하나밖에 없는 오라버니까지 일본 탄광으로 끌려갔다고 외할머니가 통곡하시는 모습이 늘 생생하다고 하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일본땅에서 돌아온 사람들만 만나면 "하늘 같은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샛별같은 아들을 일본에 빼앗겼다. 이런 사람을 아십니까"라고 찾고 찾으셨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더 슬펐다고 한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젊은 나이에 평생 수절하신 외할머니는 생전에 그리워 하시다가 돌아가시면서 딸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다. "민제야 너는 반드시 나 대신에 일본 땅에 묻히신 아버지를 찾아가서 인사를 꼭 해야 한다”라고 하시며 손을 꽉 잡으셨다. 죽는 순간까지도 너무나 억울해서 눈도 못 감고 떠나가신 어머니의 두 눈을 감겨드리며 "네”하고 굳게 약속을 하셨다고 한다. 마지막 그 모습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사셨다.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조국은 우리를 외면하고 결국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고향 제주도에 돌아가지 못하고 자식들과 함께 이국땅에 묻히게 된다. 이별과 고향, 이 두 가지가 외할머니에게 뼈아픈 한이 되어 살아오셨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반드시 외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려야 한다고 내 귀에 못이 박히게 중얼거리셨다. 돌아가시는 날 하얀 눈이 많이 내렸다. 나를 불러서 바라 보시면서 "영자야. 내가 지켜드리지 못한 나의 어머니와의 약속을 너는 지켜야 한다. 반드시 외할아버지를 찾아야 한다.”라고 유언을 남기시고 눈을 감으셨다.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산의 고통은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나에게 대물림이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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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사할린’은 ‘동행’이다아리랑은 민중들의 공시매체이다. 간결한 선율에 두 줄의 사설로 개인적인, 또는 집단적인 심사를 표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의 기쁨과 슬픔을 자연스럽게 반영하여 노래로 주고받아 소통하는 것이다. 아리랑의 이러한 매체성은 적어도 1930년대 해외 동포들에게는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으로 체화된 문화였다. 그래서 1930년대 말부터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동포들도 아리랑을 통해 참상을 드러냈다. 그 아리랑은 너무나 늦게 우리에게 전해진 ‘사할린아리랑’이다. ‘사할린아리랑’은 ‘동토(凍土)의 눈물’이었다. " 따뜻한 조선을 놔두고 사할린에는 왜 왔나 왜왔나 우리님 따라서 내여기 왔지"(사할린아리랑) 나의 사할린 동포에 대한 이해는 이렇게 아리랑이란 프리즘을 통해서였다. 2010년대 들어 접하게 된 사할린 동포사회가 왜 아리랑을 부르는지를 알게 된다. 아리랑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지 10년이 지나서 였다. 이 부끄러움으로 사할린 동포를 만나고 공부하였다. 결국 ‘사할린아리랑제’라는 이름으로 가서 함께하게 되었다. 남사할린 곳곳의 흔적은 모두 위령제의 대상이었다. 세상에 이런 지역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가서 부른 조국의 아리랑은 장송곡이며 위령가가 되었다. ‘사할린아리랑’에 밴 눈물은 1, 2세대만의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법령이란 또는 제도란 이름의 한계로 눈물을 흘리는 동포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런 사정들을 들으며 10여 년을 오가는 동안 세상을 뜨신 분들도 있다. 그때마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마지막 눈길은 조국을 향하였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것은 곧 "조국이여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라는 한스러운 호소였다. 내가 미약하지만 사할린 동포들과의 ‘동행’을 마음으로 약속한 계기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이 ‘동행’ 약속의 실천은 우선 동포들이 남긴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국내에 알리는 일과 기회가 되는대로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전자는 수십 편의 문학작품을 남긴 춘계 류시욱 선생 기록을 찾아 문경에 ‘디아스포라문화원’을 설립하게 한 것이고, 후자는 국내 언론에 동포들의 사연들을 보도하게 한 일이다. 특히 후자에 주력을 하고 있다. 이 중 하나가 KBS한민족방송의 뜻깊은 사업에 연계시키는 일이다. 이를 기록들을 통해 후세에게 ‘사할린의 눈물’뿐만 아니라 조국과의 동행 과정을 전해주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나의 이런 작은 동포들과의 ‘동행’ 실천을 이해해 준 KBS 한민족방송으로부터 영예의 공로상을 받았다.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상임을 안다. 지금 사할린 현지와는 코로나19로 거의 단절 상태이다. 대신 SNS통신을 통한 온라인 소통과 국내 영주귀국 동포들을 통해 작은 동행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정도의 단절에도 전전긍긍하는데, 80년 동안 단절은 오죽했겠는가. 이런 생각하면 동행을 통한 소통의 계기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알게 된다. 더 많은 이들과 더 많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어제는 양주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과 함께 사할린에 살고 있는 박영자 단장의 KBS한민족방송 체험수기 대상 수상을 자축하는 짧은 모임을 가졌다. KBS 한민족 방송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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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민족체험수기 사할린 박영자 대상KBS라디오 한민족방송이 주최하는 2021 제23회 한민족 체험수기 공모 수상작이 오늘 발표되었다. 영예의 성인 부문 대상은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 박영자 씨로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이란 작품이 선정되었다. 성인 부문 우수상은 7편이 선정되었다. 청소년 부문 대상은 중국 흑룡강성 계동현 리조영 학생으로 '한국 그리고 우리 가정'이 선정되었다. 청소년 부문 우수상은 중국 길림성 연길시 박성민 학생의 '자랑스러운 꽃들의 엄마'과 인천광역시 서구 싸프로노브 안드레이 학생의 <나의 꿈> 2편이 선정되었다. 장려상도 3편이 선정되었다. 중국 길림성 룡정시 최서영 학생의 '그날을 위하여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권빈 학생의 '나에게 푸른 꿈을 심어주는 아빠',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시 최니나 학생의 '한글 학습과 한국문화 체험 경험담', 특별상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남경자 씨의 '낡은 가요집'이 선정되었다. 한편 우수상 중에는 경기도 부천시 최영철 씨의 '아리랑 매력은 영원하리라'도 선정되었다. 그리고 KBS한민족상은 서울시 영등포구 전길운 씨의 '간병인 이야기'와 러시아 사할린 홈스크시 주 코스탸 학생의 '우리 가족의 삶 이야기'가 선정되었다. 지도교원상에는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조선족중학교 신영애 선생님과 중국 흑룡강성 녕안시조선족중학교 최화길 선생님이 선정되었다. 단체상은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조선족중학교가 선정되었다. 올해로 23회째를 맞는 이번 공모는 생활 속에서 한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전승하고, 우리 말과 글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 체험담, 한류와 한글 생각을 담은 글과 영상을 대상으로 하였다.매년 9월에 중국 동북 3성을 비롯해 CIS 지역과 러시아 사할린 등에 사는 북방 동포를 대상으로 한민족 체험수기를 공모, 10월 중순에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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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할린 한인들이 선보인 김치축제유즈노사하린스크(Yuzhno-Sakhalinsk) 세르게이 나드사딘(Sergey Nadsadin) 시장도 축제 장소를 방문하여 박순옥 회장의 도움으로 김치를 만들어 보았다. "Yuzhno-Sakhalinsk는 다국적 및 다문화 도시입니다.그리고 우리의 국경일은 항상 보편적인 재미와 상호 존중의 분위기에서 개최됩니다. 미식을 포함한 한국 문화와 그 전통은 섬 주민들의 일상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한인 디아스포라가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축제가 마을 사람들에게 진정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Yuzhno-Sakhalinsk 행정부는 미래에 당신의 사업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시장은 말했다. 사할린주 한인협회 박순옥 대표는 "8월 21일 주말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확산으로 취소되어 한달이나 늦쳐진, 사할린 한인들의 최대 명절인 광복절 및 추석 행사를 위해 후원해 주신 도움과 지원에 대해 시 행정부와 세르게이 나드사딘 시장님께 우리를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 도시의 문화생활이 해가 갈수록 풍성해지고 있어 기쁘다”라고 전했다. 사할린아리랑무용단(단장:박영자)이 김치축제 축하 무대를 아리랑춤으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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