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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테너 이정현’ 회장 당선테너 이정현이 국내 음악실연자들의 저작인접권을 관리하는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이하 음실련)의 신임 회장으로 당선됐다. 대중음악 분야가 아닌 순수음악(클래식) 분야에서 최초 당선이다.음실련은 이정현 당선인이 지난 9일 열린 음실련 제3차 이사회에서 큰 지지를 받으며 4년간 집행부를 이끌어 갈 신임회장으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이정현 회장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학·석사 졸업하고 동 대학교 오페라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드라마 ‘각시탈’, ‘장밋빛 인생’, ‘인생은 아름다워’ 등 유명 OST 메인 테마곡을 녹음했고, ‘토스카’, ‘라 트라비아타’ 등 다수 오페라에서 주역으로 활약했다. 또한 이야기가 살아있는 클래식 상식백과 등 도서를 출간했으며, 현재 포니캐년코리아 소속 아티스트로 활약 중이다.이 회장은 음실련 7대, 8대, 9대 순수음악 분야 이사로 재직하면서, ‘대통령 직속 국가 지식재산 네트워크’ 콘퍼런스, ‘문화와 저작권 정책’ 콘퍼런스 등 중요행사에 음실련을 대표하여 참여해왔으며, 약 150여명이 넘는 음악실연자의 회원 가입을 유도하고 원로회원 복지, 창작활동 지원을 위해 큰 노력을 해왔다. 이정현 회장의 이러한 활동은 음실련의 공적 역할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이정현 신임회장은 "12년 동안 음실련 이사로써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실연자들의 권익을 더욱 더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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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진흥법', 어떻게 시행되나?’(1)대통령과 문체부장관에 대한 기대 2003년 헌법재판소는 민족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것은 국가의 은혜적 시혜가 아니라 헌법상 의무라고 판시했다. 여기의 의무 조항은 바로 헌법 제9조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이다. 이를 토대로 20여 년 간 뜻있는 국악인들과 국회의원들의 노력으로 국악진흥법이 지난해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은 ’1년 뒤’라는 부칙에 의해 오는 7월에 시행령과 규칙을 마련하여 시행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곧 주무 기관이 1년 동안 마련한 시행령과 규칙이 공개될 것이어서 귀추(歸趨)가 주목된다. 그동안 이 시행령과 규칙을 마련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장관 주제하에 원로국악인들과의 1차 자문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의견수렴을 위해 5개 권역(18일 서울·경기권, 19일 강원권, 20일 호남권, 21일 충청권, 22일 영남권)을 돌며 ‘2024 함께 만들어가는 국악진흥법’을 주제로 현장 간담회(?)를 진행했다. 그리고 산하 기관인 국립극장과 국악방송 측은 아직 자체 의견을 내지는 않고 있다. 국악계 일각인 (사)한국국악협회(국악진흥법전문가위원회 위원장 박상진)와 한국국악진흥예술연합(이사장 이영희)에서는 세미나 개최와 자체 전문위원회를 구성, 자체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그리고 개별적인 국악인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주장을 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수많은 진흥법이 제정, 시행되어 왔다. 문화 분야만 하더라도 학술진흥법 ·영화진흥법·바둑진흥법 ·서예진흥법 ·영화진흥법’ 등이 시행되고 있다. 사실 우리 국악인들은 인접 분야의 이런 진흥법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왔다. 이번 시행되는 개별법 국악진흥법은 타 분야 못지않게 모범적으로 국악진흥이란 목적을 이뤄가야 한다는 점에서 인식을 달리 해야 할 것이다. 이에 ‘국악진흥법, 어떻게 시행되나?’를 통해 주무부서의 입장과 국악인들의 바람이 무엇이고, 그래서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를 논의 해보기로 한다. 그 첫 번째는 그간 언론을 통한 제시된 문체부의 기본 계획과 우선 표출된 국악계 의견이 무엇인가를 매체를 통해 정리하여 시행령과 기본계획에 반영되기를 기대해 본다. 특히 국악인들은 이법 시행에 있어 어떤 자세여야 함도 살피기로 한다. 매체를 통해 표출된 내용을 정리하기로 한다. #1 "국악진흥법 제정으로 'K-국악' 기회의 창이 열렸다. 국악이 세계에서 힘차게 연주되어 차세대 K-컬처 킬러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지원하겠다.”(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2023. 06. 30.) #2 "문체부는 국악진흥을 위해 국립국악원과 국립극장 등 소속기관을 운영하고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국악방송,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 올해 기준 250억 원(23년 기준) 규모의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연합뉴스 2023.06.30.) #3 "국악진흥법 시행령은 현장 국악인들의 애로사항을 잘 청취하고 숙론(熟論) 절차를 거쳐 실질적인 국악인 모두에게 피부로 와닿는 시행령 제정을 적극 검토 하겠다.”(브런치스토리 매거진 2023.11.03. ) #4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악진흥법 시행과 관련해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공진단 2024. 03 01.) #5 "무형문화재 제도 소관 기관인 문화재청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구했다. 내년에는 변화가 있을 수 있도록 근본적인 무형문화재 제도를 검토해 보겠다”(연합뉴스 2023.12.01.) 이상의 5개 대목은 모두 문체부(장관)의 발언이다. 주무장관의 발언인 만큼 주목이 되고 기대도 된다. 우선은 국악인 모두에게 피부로 와닿는 시행령 제정을 검토하여 "기대해도 좋다”라고 한 장담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과연 장관이 만난 이들만 국악인이고, 지방의 작은 국악공동체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여기에 포함되는지는 궁금하다. 이 법의 시행 실익은 국악이 좋아서 끌어안고 살아오는 지방의 모든 생활 국악악인들에게도 긍지를 심어주어 전승 활동을 즐겁게 하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과는 다른 모든 국악인을 대상으로 한 시행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의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 지자체에 ‘국악진흥 담당관(자)’을 배정하여 이 업무를 촉진시키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와 관련한 조례 제정 필요성 등을 시행령에 담아야 한다. 문체부 전통예술과를 확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지자체에 담당관을 배정하게 하는 것은 이 법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제1 요건이다. 이를 이번 시행령과 규칙에 반드시 담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250억 원의 사업비 집행에 대한 문제다. 국립국악원 · 국립극장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 국악방송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 지원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곳만을 통한다면 지금까지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는 적어도 문체부 내에 국악인들로 구성된 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해 전국 지자체 생활 국악인에게까지 스며들게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대로 라면 인터넷 못하고, 기획서 못 쓰는 지역 국악인들에게는 여전히 먼 산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소위 ‘기획서 선수’나 ‘기획서 장사꾼’들만의 예산 따먹기 장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보유자 제도에 대한 극히 일부에 한정된 문제를 국악인 일반의 일처럼 의제로 삼은 것은 문제이다. 왜냐하면 보유자가 되려는 이나 보유자가 된 이는 이미 일반 국악인이 아닌 스타 또는 권위자이다. 세칭 누릴 만큼 누린이 들이다. 다시 말하면 극히 일부의 특별한 활동을 하는 계층이란 말이다. 그들의 활동이 대다수의 국악인들이 해당 종목의 향수자들로서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전승활동을 하는데 비해, 이들은 특별한 목적으로 활동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며, 이미 문화재청의 제도적 보호와 지원을 받는 이들로서 국악진흥법상의 국악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기 때문이다. 이번 진흥법은 그야말로 전 국악인들에 의한 국악진흥을 위한 법이란 점에서 그렇다. 다음은 각 매체를 통해 제기된 국악계의 의견들을 정리한다. 지원이 골고루 집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6 "국악에 합당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국악은 그 지원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는 전통 예술로 거듭나야 할,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뉴스퀘스트 2023 07 05) #7 "전통문화의 큰 축인 국악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개별법 부재로 인해 그동안 국악에 대한 지원이 미흡한 실정이었다.”(중앙일보 2023.08.10.) #8 국악계의 체질 개선과 지원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생태계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부산일보 024.03.24.) 재정 지원에 대한 기대가 표현되어 있다. 지원이 필요 없어도 전승, 전수가 가능할 때까지는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요구이다. 얼핏 지원이 곧 진흥책이라는 단견 같지만 사실 그동안의 ‘국악’에 대한 지원은 문화 전반의 지원 중에 일부였을 뿐이다. 이제는 국악의 전분야 즉, 전통음악·전통무용·전통연희 등과 이를 재해석·재창작한 공연예술 모두에 고루 진흥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9 "대통령령으로 방송 편성법 제71조에 클래식이나 동요, 국악이 법적으로 30% 정도 비율이고 나머지 70%를 다 대중음악으로 되어있다. 국악 방송 편성 비중을 늘릴 수 있는 대통령령을 고쳐야 한다”(뉴스핌 2024.03.14.) #10 "국악의 날 제정이나 국악 주간을 만들어 공연 몇 개를 더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부산일보 024.03.24.) 전자는 방송에서의 국악 프로그램 저조 현황에 대한 개선책을 제시하였다. 국악의 방송 송출에 대해 쿼터제를 실시하여 국악 노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시적 부양책으로서는 시도해 볼만한 방법이다. 다음은 ‘국악의 날’ 제정에 대한 의견으로 다소 부정적이다. 이는 아마도 문체부가 ‘국악의 날’ 제정에 대해 우선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혹시라도 문체부장관이 생색 내기 제정 기념행사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제정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은 아닌 것이다. 문체부는 ‘오월 단오’를 선호하는 듯한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상을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문체부는 스스로 밝힌 바를 시행령과 규칙에 담아 기존의 어느 분야 진흥책 보다 실질적인 진흥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지원에 대해서는 기존에 몇몇 산하기관을 통해 선택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전국 곳곳의 국악인들에게 골고루 스며들게 하기 위한 심의기구를 두어 지원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단의 조치로 일정 기간 방송에서의 국악 송출을 쿼터제로 하여 부양시키는 방법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국악의 날’ 제정에 대한 의견으로, 특정 날짜에 대한 의견보다는 시행 기관의 생색내기로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것에 주목을 하여 급하게 정하지 말고 다양한 의견을 모아 결정하기를 바란다. 기획 특집-‘국악진흥법, 어떻 시행되나?’(1)의 결론은 이렇다. 국인인들은 이 법 시행령에 대해 대통령과 문체부 장관의 특별한 관심을 요구한다. 국악진흥법은 문화체육부가 마련한 시행령과 규칙으로 대통령령으로 시행하는 법인 만큼, 대통령의 국악에 대한 인식 제고와 문체부 장관의 책임을 다하여 국악을 진흥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국악인들은 대통령과 문체부 장관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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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스승 10주기 추모기념공연, 제27회 양금연주회지난 21일 양금연주회가 주최하는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제27회 양금연주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그동안 양금연구회를 위하여 많은 곡을 작곡한 박경훈 작곡가의 곡 중 두 대의 양금과 18현가야금을 위한 청성곡(16회)과 양금중주곡화(23회)이다. 이번에 새로 위촉을 한 손다혜 작 곡가의 정악양금 3중주를 위한 도시를 비추는 달, 그리고 작년에 위촉초연해서 호평을 받았던 이고운 작곡가의 양금앙상블을 위한 소릿바람을 개작초연했다. 또한 여창가곡 둘째바탕 중 환계락과 편수대엽, 영 산회상 중 세령산, 상현도드리, 타령을 준비했다. 양금연구회는 서울대학교 故 선화 김정자(1942-2014)선생님의 발의에 의해 국립국악원 원로사범 故 심소 김천흥(1909-2007)선생님을 주축으로 1989년에 창단된 이후 지금까지 양금음악의 활성화를 위하여 정악과 민속음악 등 전통음악은 물론 고악보 해독작업을 통한 복원연주와 매회 저명한 작곡가에게 양금창작음 악을 위촉하여 꾸준히 연주활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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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채치성 예술감독을 만나다[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봄비가 촉촉이 땅을 적시는 4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지 6개월이 된 채치성 예술감독님을 만났다. 그는 국악방송 사장, KBS 국악관현악단 부지휘자, KBS 라디오 국악 프로듀서 등을 지내며 기획력과 단체 운영 역량을 인정받아 온 국악계의 원로다. 감독님이 꾸려나갈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방향성과 국악 및 국악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감독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고 인터뷰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취임 축하드립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A. 지난 11월부터 감독직을 맡게 되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왕 오게 되었으니 더욱 잘 이끌어서 명실상부한 악단으로 자리매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력 중입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업무를 보는 데 치중하고 있어요. 악단 연주 일정은 제가 취임하기 전부터 이미 올 9월까지 기획되어 있었기에, 저는 올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연주나 행사를 기획하여 시작하게 됩니다. 10월 2일에 진행될 공연에서는 제가 직접 작곡하고 지휘한 곡도 연주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늘 색다르고 다양한 관현악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어 항상 흥미로운데요, 이 악단을 앞으로 어떻게 꾸려 나가고 싶으신가요? 감독님께서 이끌기를 원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방향이나 음악적 가치 등이 궁금합니다. A. 무엇보다 국립단체이기에 우리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전통음악이 뿌리 깊게 근간이 된 가장 한국적인 무대를 더 많이 기획하고자 해요. 지금까지 국립국악관현악단은 현대적인 음악 어법이나 타 음악 장르와의 협업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 왔습니다. 관현악을 통해 대중적이고 다양한 색채를 선보였고, 단원들의 기량 또한 많이 향상되었는데요. 이를 발판 삼아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연주 기획을 많이 하되, 그 바탕에는 우리 음악을 잊지 않고 두고 싶습니다. 우리 장단과 우리 선율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관현악곡을 무대에 올려, 국립 악단으로써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고 싶어요. Q. 정오의 음악회나 관현악시리즈 등 정기적으로 선보이는 대표 시리즈가 있다는 것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런 시리즈는 어떻게 준비되나요? 관객들의 반응이 참 좋다고 들었습니다. A.정오의 음악회는 오랜 인기와 함께 늘 매진입니다. 대중들이 아주 좋아하는 시리즈인데요. 대중에게 익숙한 연예인이나 국악인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들려주며 관객들과 소통한다는 것이 이 시리즈가 장기간 흥행할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관현악시리즈 또한 다양한 관현악곡을 조명하고 연주하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입지를 단단히 만들어 주는 데 한몫을 하고 있죠. Q.혹시 또 다른 시리즈나 새로운 공연이 계획되어 있나요? A. 6월에 계획된 야외 음악회 ‘애주가(愛酒歌)’라는 공연이 있습니다. 음악에 소량의 시음을 곁들이는 공연인데, 전통주를 마시며 전통음악을 관람하는 참신한 공연이라 아마 많은 분이 좋아하실 것 같네요. 또 국립합창단이나 창극단 등 국립극장에 소속된 전속단체들과 함께 합동하여 선보이는 브랜드 공연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Q. 감독님은 오랜 기간 국악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 오셨잖아요. 작곡뿐 아닌 방송 쪽에서도 국악 콘텐츠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A. 1981년, KBS에 입사하여 PD로 활동한 것이 저의 첫 방송 생활이었습니다. 30분짜리 국악 관련 방송을 맡아 진행했기에 국악 음반 자료가 필요했는데, 그 당시엔 방송용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월요일마다 KBS 스튜디오에서 연주자들을 불러 음악을 녹음해 아카이빙을 쌓았죠. 그렇게 방송 시간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그 녹음 자료가 지금까지 쓰이니, 방송계와 국악계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국악방송에 재직하면서부터는 오로지 국악에 몸 바쳐 왔습니다. 국악 맞춤형서비스 등의 새로운 시도에도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이제는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베를린 필하모닉처럼 생중계 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해요. 그렇게 되면 공연장에 오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고, 우리 음악도 멀리 뻗어져 나갈 것입니다. Q. 그렇다면 국악의 대중화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A. 대중성과 전통을 잘 엮어서 우리 음악이 어렵지 않다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우리 어법에 맞는 연주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 음악에 대해 이해하고, 우리 음악의 맛을 잘 살린 콘텐츠를 언론에 노출, 홍보하며 대중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음악은 충분히 생활화가 가능하고, 참 재미있으니까요. Q. 감독님께서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국악을 경험할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저도 어릴 때부터 국악을 접했기에, 그 경험의 소중함을 잘 아는데요. 곧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어린이 음악회 ‘별별 땅땅’이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A. 음악 교사직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학생들에게 단소를 만들어 가르쳤는데, 그 학생들이 지금까지도 그때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고 해요. 그만큼 어릴 때 음악언어를 알고 경험하는 게, 교육이 아주 중요합니다. ‘별별 땅땅’은 단원들이 소규모로 연주하고, 아이들이 국악을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놀이 형태로 체험할 수 있게끔 해주는 공연입니다. 국립극장은 어린이 공연이 참 많습니다. 이 공연도 장기 공연인데, 많은 분이 믿고 찾아주셔서 늘 감사하죠. Q. 선생님께서 만드신 곡 ‘꽃분네야’가 생각납니다. 그 곡은 선율도 참 좋지만, 가사도 정말 정겹고 아련한 느낌이 들어요. 국악가요라는 장르가 그 곡으로 인해 시작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곡을 만들 때 가장 치중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A. ‘꽃분네야’를 통해 우리 정서를 담은 대중가요를 가장 먼저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작곡, 작사를 할 때 우리 음악과 우리 말 어법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 중요해요. 특히 가사를 쓸 때 그 점에 가장 치중하여 작업합니다. 영어는 관사가 앞 박이지만, 우리말은 반대죠. 강세와 문장의 어법을 막무가내로 쓰지 않고, 문장이 말이 되도록, 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악적으로 장단이나 선율 등 한국적인 정서를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Q.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님으로서, 또 국악 분야의 원로로서 앞으로 어떤 것을 계획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A. 예술감독직을 수행하며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공연을 많이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서울에 자리하고 있지만, ‘국립’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악단입니다. 그 이름답게, ‘찾아가는 국립극장’ 프로그램처럼 서울 외의 지역에 가 공연한다든지, 문화소외계층이 국악을 경험할 수 있게끔 다양한 무대를 더 많이 기획하여 꾸리고자 해요. 그리고 무대를 영상으로 남기거나 송출하는 영상화 사업에도 힘을 많이 쏟을 예정입니다. 채치성 예술감독님이 인터뷰 내내 강조하던 것은 ‘가장 한국적인 우리 음악’이었다. 우리 음악이 가진 독자적인 묘미, 아름답고 가치 있는 그 매력을 잃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목소리에는, 오랜 시간 국악계에서 국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그의 열정과 사랑이 묻어났다. 앞으로 채치성 예술감독님이 이끌어 갈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굳건하고 아름다운 무대를 더욱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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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2만 명에게 300만 원씩 지원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복지재단)과 함께 2024년 예술인 2만 명에게 예술활동준비금(구 창작준비금)을 지원한다. 예술활동준비금은 예술 외적인 사유로 예술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운 예술인들이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는 600억 원을 편성해 기준 중위소득 120%(1인 가구 기준 2,674,134원) 이하인 예술인 2만 명에게 인당 300만 원씩 지원한다. 예술활동준비금 신청은 4월 1일부터 30일까지 예술활동준비금 시스템(www.kawfartist.net)을 통한 온라인 또는 우편*으로 접수한다. 제출 서류 등 신청에 필요한 사항과 상세한 절차는 복지재단 누리집(kawf.kr) 내 사업 공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올해 사업에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지급 방법과 기준을 보완했다. 기존 상하반기에 2회로 나누어 지급하던 것을 상반기 한 번에 2만 명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를 통해 예술인들이 빨리 예술활동준비금을 받아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연중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더욱 많은 예술인들이 예술활동준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선정 이력에 대한 배점을 신설한다. 기존에 선정되었던 횟수에 따라 점수를 차등화함으로써 소수에게 지원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고 그동안 혜택을 받지 못한 예술인들을 폭넓게 지원한다. 기존에 한 번도 선정되지 않았던 경우에는 최대 배점인 4점을 받을 수 있으며, 선정 이력에 따라 1점씩 차감되어 4회 이상 선정되었던 신청자는 0점을 받게 된다. 아울러, 원로예술인* ‘우선 선정제’를 ‘가점제’로 변경한다. 이는 연령에 대한 우대와 함께 소득 여건·선정 이력을 다방면으로 고려해 꼭 필요한 예술인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편, 장애예술인에 대한 우선 선정제는 기존과 같이 유지한다. 기존 격년제 요건도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2023년에 창작준비금을 받았으면 신청할 수 없다. 문체부 신은향 예술정책관은 "예술활동준비금은 여건이 어려워 예술활동을 부득이 중단해야 하거나 그 성과를 최대한 발휘하기 어려운 예술인들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라며, "예술활동준비금이 예술인들의 창작열을 북돋우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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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방송 사장, ‘중도하차장’?현 정부 들어 국악방송 사장으로 취임한 백현주씨가 국민의미래 비례대표를 기대하고 사표를 낸 것이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오전, 국민의힘 사무총장이 백 사장을 비례대표로 추천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2022년 9월 취임, 25년 9월까지 임기로 그간 예산확보 등으로 국악계에서 기대를 갖게 했으나 이번 하차로 국악방송 사장 자리는 ‘중도하차장’으로 비하되기에 이르렀다. 국악계 한 원로는 "국악인이 아니어서 우려했는데, 현실화 되고 보니 씁씁하다”고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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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곳곳에 봄바람 불어넣은 '신 유배기행' 마무리 공연대한민국 1세대 마임이스트 유진규, 판소리 명창 배일동, 한국화가 신은미. 세 명의 예술가가 흡사 예술유랑단을 꾸려 2~3월에 걸쳐 전국을 순회하는 ‘신 유배기행(奇行)’이 귀경길에 올라 3월 24일 서울생활문화센터 체부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경우에도 살아있는 예술혼을 북돋고 예인들의 멋과 흥과 신명을 나누는 자발적 예술 유배 활동이 ‘신 유배기행(奇行)’이다. 유진규와 기획자 이재화(제니퍼)가 첫 뜻을 세우고 평소 작품 및 공연활동을 함께 해오고 있는 배일동 명창에 힘을 보태어 주기를 부탁했다. 이어 한국화 라이브드로잉의 라이징스타인 한국화가 신은미 작가가 뜻을 모았고, 이들의 성을 하나씩 따서 신•유•배 기행으로 브랜딩 한 후 이어 배일동의 추천으로 고수 박창준이 합류하여 기행단이 완성되었다. ’기행‘이란 여행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이라는 뜻도 있지만, 한자로 奇行(기행)을 풀어 말해 유배를 다니듯 예술가들을 찾아 전국 곳곳을 다니는 기이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기행과 같은 예술활동을 선보이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유배는 다 두고 몸 하나만 가지고 떠나는 것이다. 몸 하나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마임, 판소리, 라이브드로잉으로 가는 곳마다 그 지역의 자발적 예술가와 함께 ’신 유배기행‘을 펼쳐오고 있다. 이번 서울 공연에는 강병인(글씨예술가), 강해진(바이올린 연주자), 김지웅(색소폰 연주자), 문진수(연희춤꾼), 윤주희(국악인), 상흠(가수, 기타리스트), 한받(자립음악가) 가 참여한다. 2월 4일, 통영 사량도를 시작으로 춘천 아트팩토리봄, 진주 현장아트홀, 구미 소극장공터다, 제주 삼달다방 까지의 2월 유배를 지나 3월의 유배는 15일 광주 예술이빽그라운드, 22일 강릉 크리에이티브1230까지 총 7번의 기행을 마치고 모든 기행을 마무리할 마지막 8번 째 기행을 24일 오후 5시 30분에 서울생활문화센터 체부에서 펼친다. 유진규는 "우리가 다닌 전국의 유명한 소극장들은 모두 문을 닫고 있었다. 역시나 ‘신 유배기행’이 올해 첫 공연이었다. 우리는 새해 새롭게 단장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기쁨을, 극장에서는 새해 처음으로 관객을 맞이하는 보람을 누렸다. 우리는 가는 지역마다 그곳의 예술가들과 함께 했다. 장르의 구분은 없었다. 어느 곳에서는 천연 염색가, 어느 곳에선 미디어 작가, 도예가, 사투리 전문가, 그리고 음악, 춤, 문학, 풍물, 영상 등 그 지역에서 함께 하려는 예술가들과 한 무대에서 어울렸다. 그리고 꼭 마지막 공연은 함께하는 즉흥 퍼포먼스였다.” 이어 "우리의 귀경을 기다린 많은 관객과 마지막 ‘신 유배기행’을 잔치처럼 펼칠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공연은 서울문화재단의 2024년 원로예술지원 선정 프로젝트로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공연료는 전석 무료로 입장, 감상 후 자율적인 액수를 지불하는 감동후불제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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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장관, 국악진흥법 전문가 간담회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오는 7월 국악진흥법 시행을 앞두고 국악계 원로들을 만나 '국악의 날' 제정 등 정책 방향에 대한 조언을 청취했다.유 장관은 14일 오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국악 원로들과 간담회를 갖고 "지난해 7월 국악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오는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며 "국악진흥을 위한 시행령을 만들고 있는데, 많은 이야기를 해달라" 이어 "'국악의 날'도 제정해야 하는데 언제가 좋을 지, 국악을 진흥하기 위해 어떤 내용을 넣으면 좋을 지 의견을 달라"고 덧붙였다.이날 간담회에는 ▲김경배 월하문화재단 이사장(84·국가무형문화재 가곡 보유자) ▲김중섭 처용무본회 상임이사(84·국가무형문화재 처용무 예능보유자) ▲조흥동 한국무용협회 고문(83·전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신영희 한국국악진흥예술연합 추진위원장(82·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 ▲박일훈 아트컴판 이사장(78·전 국립국악원장·문화재위원회 무형문화재 분과 위원) ▲이춘희 한국전통민요협회 이사장(77·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 ▲박범훈 작곡가(76·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단장·중앙대 명예교수) 등 국악계 원로들이 참석했다. 문체부는 이날 원로 간담회에 이어 오는 18일부터 23일까지 전국 5개 권역에서 '국악진흥법' 시행 준비를 위한 현장 간담회를 개최한다. 지난해 6월 국회를 통과한 국악진흥법은 올해 7월 말 시행을 앞두고 있다. 올해부터 5년마다 국악진흥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고 '국악의 날'을 지정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문체부는 현장 의견을 수렴한 후 오는 4월 중순께 시행령을 마련해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이어 공청회와 국무회의 등을 거쳐 7월26일부터 법 시행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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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이즘한글서예가전, '아리랑 특별전 13일 개막이즘한글서예가회(회장 이종선)는 한글서예계의 현 주소를 확인하고, 미래지향적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네번 째 전시를 개최했다. 오는 13일부터 19일까지 1주일간 인사동 한국미술관(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2)에서 개최한다. 개막 행사는 오후 4시부터 시작되었다. 이번 '이즘한글서예가전'에는 총 30명의 작가가 개성이 돋보이는 독창적인 작품 90여 점이 출품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주)국악신문사(대표이사:기미양)의 지원을 받아 '아리랑 특별전'을 병행하여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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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제25집·'한민족음악총서' 제16집 발간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은 예술인의 삶과 예술이 담겨있는 '국립국악원 구술총서'제25집과 북한의 민족음악과 예술 문화를 국내에 알리고 연구에 활용하기 위한 '한민족음악총서' 제16집을 발간했다. 자료는 국공립 도서관 130여 곳에 배포되고, 이용의 편의를 위해 국립국악원 누리집에서 PDF 파일로 제공하여 학술 연구와 국악 보급에 활용될 전망이다. 국립국악원은 2009년부터 원로 예술인의 지나온 삶과 예술세계를 기록화하는 구술채록집을 발간하고 있다. 구술자들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하여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 공백을 보완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이번에 출간된 제25집에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경제어산 보유자 동주 원명의 구술을 담았다. 어산은 범패, 범음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ㆍ찬양하는 노래를 비롯한 불교 의식을 구성하는 음악과 춤을 두루 포함한다. 어산을 크게 서울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경산제(경제)와, 팔공산을 중심으로 전해 온 영남제(팔공산제), 전주를 중심으로 전해온 호남제로 분류하는데, 경제어산은 현재 서울 홍원사의 동주 원명을 중심으로 맥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불교의 재의식 중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 삼대 재의식을 총괄할 수 있는 역량 있는 범패승을 가리켜 어장이라고 한다. 어산 어장 동주 원명은 1964년부터 장벽응 스님과 박송암 스님께 범패의식 작법 전 과정을 사사하며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범패를 갈고닦아 온 명인이다. 그의 이야기는 한국 범패의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고 예술인의 역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번에 출간된 '한민족음악총서'제16집은 ‘1955년 평양굿’이라는 주제로 1955년 평양 현지에서 채록된 평양굿 음원 2종과 사진 162장을 분석한 연구서로 주목된다. ‘평양굿’ 자료는 북한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민속학연구실에서 1955년 12월 초 김일출, 전장석, 신영돈의 지도하에 최명옥, 백봉춘, 김원실, 리정필 네 명의 평양 무당이 연행한 ‘잔상굿’과 ‘다리굿’을 조사한 것이다. 현장에서 채록된 음원과 사진, 사진 정보 등은 1957년에 민속학연구소 편찬실에서 정리하여 보관하였고, 이 자료를 국립국악원에서 관련 단체와 협력하여 2020년에 확보하였다. 2022년 학술적 활용을 위한 음원과 사진 감상회 및 2023년 학술회의를 진행한 이후 논고와 음원을 채보한 악보, 무가 사설에 대한 해설 등을 추가하여 지난 2023년에 공개하게 되었다. 이처럼 북한 현지에서 녹음된 굿 음원과 사진이 국내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지금은 사라진 북한 무속의 실체를 파악하고 남한 일부 지역에 전승되는 북한 굿과의 비교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한민족음악총서'에는 홍태한(전북대) 교수의 "평양 다리굿의 흐름과 가치”, 최진아(한양대) 교수의 "1950년대 북한지역 무속 의례의 물질문화 읽기”, 김인숙(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1955년 평양굿의 음악”, 양종승(샤머니즘 박물관) 관장의 "무가사설 연구”는 등 총 4명의 전문 연구자의 연구 논문과 악보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총서의 원천 자료인 평양굿 음원과 사진은 국립국악원 특수자료실에 보관되어 있으며, 열람을 원할 경우 공간이음(02-580-3235)으로 사전 신청 후 이용 가능하다. 국립국악원은 1990년 초부터 북한의 악기 개량과 음악, 무용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였고, 2013년부터 북한문화의 이해 증대와 한민족 디아스포라 음악 연구 확장을 위해『한민족음악총서』를 발간하였다. 이러한 결과물들은 연구 논문집을 비롯, 재외동포 원로예술가 구술채록집, 각종 잡지의 총 목록과 색인집 등으로 현재까지 총 15종을 제작하여 북한학 관련 연구를 위해 제공하고 있다. 국립국악원 김영운 원장은 구술총서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국악의 계승과 발전에 한 획을 그어온 명인들의 발자취가 다음 세대의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일에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또한 『한민족음악총서』제16집이 1950년대 북한의 굿과 음악을 확인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무속음악 연구를 심화하고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북한음악 관련 자료가 남북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혀 한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주춧돌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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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20주년 맞는 서울문화재단, 2024년 10대 과제 발표서울문화재단이 16일 2024년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올해는 다가오는 서울문화재단 창립 20주년(3월 15일)을 맞아 그간의 전문성과 노하우, 기획력을 모아 예술인, 시민, 도시 세 축을 두루 살피는 10대 과제를 선정해 ‘예술특별시 서울’을 실현하는 데 힘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해 재단의 총 예산은 1756억원으로, 이중 사업비는 약 1300억원이다. 이는 전년보다 17%(약 200억원) 증가한 수준이며, 총 51개 사업에 투입된다. 서울문화재단은 올해 ‘예술하기 좋은 도시, 예술특별시 서울’을 슬로건으로 첫째, 예술인을 위해 진행해 온 ‘예술창작지원 혁신’을 완성한다. 예술활동을 위한 안정적인 창작환경이 더 다양한 대상에 적시에 제공될 수 있도록 기존의 그물망 예술지원체계를 고도화하고, 개인별 원스톱 지원 서비스를 본격화하며, 새로 시작한 시상제도의 공신력을 강화하고, 미래형 예술지원모델을 발굴할 예정이다. 둘째, 시민이 예술로 행복할 수 있도록 일상 체감형 문화예술을 확대한다. 서울의 사계절을 대표하는 예술축제 ‘아트페스티벌 서울’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서울스테이지 2024’ 및 ‘피아노서울’ 등으로 문화예술 접근성을 높이며, 권역별 문화예술교육센터를 중심으로 생애주기별 예술교육을 확대하는 한편 맞춤형 문화복지 다각화로 약자와의 동행을 지속해간다. 셋째, 글로벌 예술특별시 서울로 도약할 수 있는 문화예술 기반과 정책을 마련한다. 재단의 향후 20년을 이끌어갈 문화예술 시설과 조직을 재정비하고, 국제 포럼을 개최하는 등 서울의 예술정책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10대 과제’로는 예술인을 위해 ①그물망 예술지원체계 고도화 ②개인별 원스톱 지원 서비스 시행 ③순수예술 시상제도 공신력 강화 ④미래형 예술지원모델 발굴, 시민을 위해 ⑤노들섬 거점 ‘아트페스티벌 서울’ 사계절 개편 ⑥시민 문화예술 접근성 제고 ⑦전 연령 대상 생애주기 예술교육체계 마련 ⑧맞춤형 문화복지 다각화, 도시를 위해 ⑨문화예술 기반시설과 조직 재정비 ⑩서울 예술정책 발신지 역할 등을 추진한다. 예술인에게 희망을, ‘혁신적 예술창작지원’ 완성 ① 더 정교하고 빠르게, 그물망 예술지원체계 고도화 지난해 신진·유망·중견 지원방식에 청년·원로 트랙을 더해 지원 사각지대를 줄인 ‘그물망 예술지원체계’는 연간 200억 규모의 예술지원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예술인의 안정적인 창작환경을 조성해왔다. 이는 코로나19 종식 전인 2022년 180억 규모 대비 11% 이상 증가된 규모다. 현재 예술창작지원 1차 통합공모 결과, 각 예술가가 수령하는 지원금 평균액 예상치는 1540만원 선으로 2023년 1300만원 선 대비 약 19% 상승할 것으로 보이며, 다가오는 2차 통합공모 예상치를 합산하면 연간 1500명 이상이 지원금을 활용해 예술활동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도 예술지원사업 통합공모 1차는 2023년 10월 시작돼 2024년 1월 12일부터 선정자가 순차적으로 발표됨으로써 연초부터 예술인은 예술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부터 더욱 정교하게 개선된 부분은 청년예술가의 역량개발을 위한 간접지원 강화와 원로예술가 지원금 상향이다. 청년예술가에게는 멘토링, 네트워킹 등이 새로 지원되며, 원로예술가 지원금은 기존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올랐다. 또 우수 레퍼토리 개발을 위한 ‘다년 지원사업’도 시범 도입되는데, 연극과 무용 분야 선정작을 2년 동안 연속 지원한다.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원로예술인을 위한 안내창구가 돼줄 ‘대면 안내창구’를 신설했으며, 24시간 잠들지 않는 ‘예술지원 전문 상담 매니저 AI 챗봇’ 등 맞춤형 서비스도 개선사항에 포함된다. ② 서울예술인지원센터 중심 개인별 원스톱 지원 서비스 본격화 2023년 10월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센터 내 예술인을 위한 통합지원플랫폼인 ‘서울예술인지원센터’가 개관했다. 예술인 전용 상담실과 오픈라운지를 신규 운영하고 있는 센터는 예술지원사업 정보 제공 외에도 긴급생활비 및 의료비 등을 지원하는 예술인 생활기반 지원사업을 관계기관과 연계해 진행하고 있으며, 창작활동에 필요한 법률·세무·노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권역별 전문심리상담센터를 통해 예술인 심리상담도 진행하며, 추후 건강검진이나 예술인 학업지원을 위한 장학사업 등의 영역까지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최근 공연물품 공유 플랫폼 ‘리스테이지 서울’의 위탁 상담·접수창구가 서울예술인지원센터에 마련됐다. 온라인 플랫폼 정식 운영에 맞춰 오프라인에서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추가한 것이다. 서울예술인지원센터는 예술인의 필요에 따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올해도 각종 지원 서비스를 보완해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일 계획이다. ③ 서울 대표 순수예술 시상제도 ‘서울예술상’·‘서울희곡상’ 공신력 강화 지난해 처음 시작한 순수예술 시상제도인 ‘서울예술상’과 ‘서울희곡상’이 각각 제2회를 맞이해 규모를 키우고 내실을 다진다. 제1회 대상 수상자로 허윤정의 ‘악가악무-절정’을 선정한 ‘서울예술상’은 올해부터 ‘프런티어상’을 신설하면서 연극/무용/음악/전통/시각/다원 6개 장르별 상금을 각 1000만원씩 총 6000만원 상향한다. 기존 최우수상 1000만원, 우수상 500만원에서 최우수상을 1500만원 규모로 500만 원 상향하고, 우수상은 프런티어상으로 대체해 1000만원 규모(500만원 상향)로 시상해 총 1억6000만원 규모의 상금이 수여된다. 또 작품 및 장애예술인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이 추가돼 기존 재단 예술지원 선정작 외 ‘2023년 서울에서 발표한 우수 작품’과 연중 활발한 활동을 보인 ‘장애예술인’까지 확장해 시상한다. 무엇보다 선정의 공정성을 강화하고자 지난해 34인의 선정 심의위원회를 54인으로 대폭 확대해 모든 후보작을 대상으로 한 현장평가를 작품당 1회 수준에서 평균 2.7회로 끌어올렸다. 지난 12일 장르별 전문가 60여 명이 참여한 ‘제2회 서울예술상 운영위원회’(운영위원장 손숙) 위촉식을 시작으로 예심·본심·최종심을 거쳐 오는 2월 28일 국립극장에서 시상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제1회 ‘서울희곡상’은 지난 12월 신인 극작가 이실론의 ‘베를리너’를 선정하고 2000만원의 상금을 전달했다. 등단 여부와 관련 없이 미발표 창작 장막희곡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공모에는 총 178편의 희곡이 응모되는 등 높은 관심을 샀다. ‘베를리너’는 올해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QUAD) 프로덕션 과정을 거친 후 하반기 공연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서울희곡상은 올해도 새롭고 우수한 창작 희곡을 발굴해 연극 생태계 활성화를 도모한다. ④ 기술과 환경 변화에 발맞춘 미래형 예술지원 모델 발굴 지난달 막을 내린 겨울 축제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에는 2만여 명의 시민이 국내외 융합예술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문화역서울284 본관을 찾았다. 7년의 휴식기를 앞두고 서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개된 백남준의 ‘시스틴 채플’이 주목을 끌었고, 언폴드엑스 창·제작지원작가를 포함해 독일, 스위스, 캐나다 등 국내외 18팀이 참여한 23작품을 통해 융합예술의 현주소를 제시했다. 재단이 지원한 김아영, 상희 작가의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골든 니카상 및 특별상 수상은 융합예술분야에 관한 재단의 지속적인 지원 성과로 꼽힌다. 올해 재단은 국내외 협력기관과 전시작품을 교류하는 등 서울을 넘어 글로벌 진출을 앞두고 있다. 상반기에는 캐나다 디지털 아트 전문기관 일렉트라(ELEKTRA)와의 협업으로 국제 디지털아트 비엔날레에, 하반기에는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의 기획전시에 참여할 예정이다. 또 공연예술분야를 중심으로 NFT(대체 불가능 토큰) 제작과 유통을 지원하는 ‘서울예술인 NFT’도 계속된다. 지난해까지 발행된 63개의 NFT는 판매액에서 일부 플랫폼 수수료를 제외한 전액인 약 5000만원 규모가 예술가에게 직접 후원됐다. 블록체인 생태계를 활용해 사실상 개인의 예술가 지정기부가 가능하도록 만든 것으로, 기술·디지털 사회의 예술인 자생력 강화와 기술을 연계한 미래형 예술지원모델 발굴의 일환이다. 사업에 참여한 예술인들은 실제 지원액 자체보다 자신의 예술인생을 블록체인화해서 브랜드를 영원히 가질 수 있다는 것에 큰 자긍심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민에게 행복을, ‘일상 체감형 문화예술’ 확대 ⑤ 노들섬 거점으로 시민·해외관광객 위한 ‘아트페스티벌 서울’ 사계절 개편 지난해 사계절 시즌제로 개편 운영된 서울문화재단 축제 통합 브랜드 ‘아트페스티벌 서울’은 연간 28만 관람객을 달성하며 시민문화향유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개별 축제로 진행했던 2022년 대비 관람객 수가 15만명 이상 증가했으며, 특히 재단 창립 이후 최초로 야외에서 진행한 대형 순수예술 축제 ‘한강노들섬클래식 발레·오페라’는 온라인 사전예매가 1분 안에 매진되는 등 호응이 뜨거웠다. 올해 ‘아트페스티벌 서울’은 보다 많은 시민의 문화요구를 반영해 발레·오페라 등 순수예술부터 인디음악·브레이킹 등 대중예술까지 다양한 예술 장르가 서울시민 모두를 만나는 사계절 글로벌 예술축제로 열린다. 또 노들섬을 중심으로 서울 전역에서 축제를 개최해 ‘예술특별시 서울’과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대표 축제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재단은 올 한해 서울이 ‘세계적인 축제도시, 예술특별시 서울’이 되는 원년이 될 수 있도록 브랜드 아래 각 축제의 예술성, 안전, 관람편의 등을 국내외에 적극 알릴 계획이다. ⑥ 시민 일상에 더 가까이 ‘서울스테이지 2024’, ‘피아노서울’ 2024년은 문화예술이 서울시민의 일상에 더 가까워지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매월 첫째 목요일마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예술공간들에서 펼쳐진 예술공감 콘서트 ‘서울스테이지11’이 ‘서울스테이지 2024’로 확대 개편돼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을 찾는다. 올해는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을 공연장소로 추가하는 한편, 서울시 내 자치구 협력을 통해 지역별 찾아가는 공연을 대폭 확대해 1만명의 시민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또 올해는 홍대 앞, 대학로, 명동, 한강공원 등 서울의 유동인구가 많은 공간 곳곳에서 즉흥 연주와 함께하는 순간을 기대해보는 것도 좋겠다. ‘서울스테이지 2024’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피아노서울’을 통해 현재 서울시내 6개소에 시민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가 설치돼 있다. 재단은 서울 곳곳에 피아노 설치를 확대하는 한편, 해당 피아노를 활용한 게릴라 버스킹 공연과 시민 참여 이벤트 등을 연중 개최할 예정이다. ⑦ 강북·서초·은평 확장된 5대 권역 기반 생애주기별 예술교육체계 첫걸음 현재 재단이 운영 중인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양천·용산에 이어 강북·서초·은평 3개소가 올해 안 개관을 목표로 조성 중이다. 앞으로 5대 권역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가 완성되면 각 거점에서 장르에 특화된 수요자 중심 고품격 예술교육 제공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예술교육분야 시민참가자는 3만4373명으로, 2022년 2만3166명에 비해 49%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시민참가자 숫자의 상승을 견인한 ‘서울시민예술학교’를 대표사업으로 오는 5월 봄학기와 9월 가을학기로 커리큘럼을 구성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용산·양천은 유아·어린이·청소년·성인·시니어 등 전 연령대의 시민이 새로운 취향과 관심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감상과 창작 등의 방법으로 다양한 예술가와 만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처럼 생애주기별로 확장된 문화예술교육은 강북·서초·은평 센터까지 도심 속 5대 권역으로 폭넓게 펼쳐져 문화향유 접근성 강화를 통해 시민의 문화향유 체감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2023년에 이어 시정역점사업인 ‘엄마아빠 행복 프로젝트’도 부모 및 전 가족 대상의 특화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아이 키우기 좋은 서울’이라는 구호에 걸맞은 사업을 지속한다. ⑧ 소외 없는 문화예술… 맞춤형 문화복지 다각화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대상으로 문화예술, 관광, 체육활동을 지원하는 2024년 문화누리카드의 1인당 연간 지원액이 기존 11만원에서 13만원으로 18% 증액되며, 올해 2월 1일부터 카드 발급이 가능하다. 서울에서 전국 최초로 진행한 서울청년문화패스의 경우 올해 1인당 최대 20만 원의 문화예술 공연 및 전시 관람을 지원한다. 지원 상한 연령도 기존 22세에서 23세로 높여 확대 운영(19세~23세)되며, 올해 지원규모는 전년 대비 76% 확대된 4만9000명이다. 해당 2개 사업을 통해 연간 약 44만 명이 문화예술 혜택을 누리게 된다. 재단은 ‘서울스테이지 2024’의 찾아가는 공연, ‘서울시민예술학교’, ‘엄마아빠 행복 프로젝트’ 등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예술 공연과 전시로부터 뜻하지 않게 소외됐던 시민들의 문화향유권을 보장해 나가며 ‘약자와의 동행’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글로벌 예술특별시 서울로 도약 위해 ‘문화예술 기반과 정책’ 선도 ⑨ 서울문화재단 미래 20년 이끌어갈 문화예술 시설 및 조직 재정비 재단은 올해 노들섬, 서울연극창작센터,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3개소 등 총 5개소의 운영을 새로 시작한다. 이로써 재단이 올해 운영하는 공간은 동대문구 본청사를 포함해 서울시 내 총 20개 공간이다. 재단은 서울시가 민간 대행 용역을 통해 운영하던 노들섬을 올해 1월 1일부터 맡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용산구 양녕로에 자리한 노들섬은 456석(스탠딩 708석) 규모의 공연장 ‘라이브하우스’, 이색 전시공간 ‘노들갤러리’, 한강 노을을 무대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잔디마당’ 등의 시설로 구성돼 있다. 올해는 먼저 선라이즈 노들, 썸머 노들, 선셋 노들, 화이트 노들 등으로 이뤄진 복합문화공간 ‘예술섬 노들’ 브랜드를 구축한다. 계절마다 노들섬의 정취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도록 문화가 흐르는 예술마당 상설프로그램을 비롯해 시민에게 365일 문화예술이 흐르는 예술섬으로 다가갈 예정이다. 성북구 동소문동에 새로 마련되는 서울연극창작센터는 올해 하반기 운영 시작을 앞두고 있다. 연극 제작부터 공연까지의 전 단계를 지원하는 거점 시설로, 다양한 연극단체와 우수 작품 발굴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문화 공간이다. 소극장, 블랙박스극장, 연습실, 공유 사무실 등을 갖추고 오는 하반기 공연물품 공유 플랫폼 ‘리스테이지 서울’의 오프라인 플랫폼 공간이 이전해 대학로 연극 창·제작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초(서초구 반포동), 은평(은평구 수색동), 강북(강북구 미아동)에 새로 마련되는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는 각각 음악, 무용, 연극·뮤지컬·전통예술 장르에 특화된 건물이다. 기존의 양천(옛 서서울예술교육센터), 용산(옛 서울예술교육센터) 두 권역에서 다섯 권역으로 확대돼 각 거점을 기반으로 기초문화재단과의 협력체계가 본격화된다. 전년 대비 224억 원(16%) 늘어난 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조직과 인력도 재정비했다. 2022년 3본부, 9실, 25팀, 8단위 조직을 부서 통폐합 등을 반영해 2023년 3본부, 9실, 32팀, 9단위 조직으로 개편했다. 조직원도 22명 확충, 총 정원은 254명이 됐다. ⑩ 국제포럼 및 한광연 총회 개최… 서울의 예술정책 알리는 교두보 역할 올해는 국내외로 서울의 문화정책을 선도하고, 발신하는 기관으로서 위상을 높이는 해가 될 예정이다. 먼저 오는 3월 재단 창립 20주년을 맞이해 ‘예술하기 좋은 도시, 예술특별시 서울’의 비전 아래 미래 정책방향 모색을 위한 ‘서울문화예술국제포럼’을 개최한다. 포럼은 도시의 창조적 역량과 문화적 매력, 지속가능한 예술생태계를 위한 정책방향을 주제로 국내외 저명한 문화정책 및 예술경영 전문가를 초청해 발제와 토론을 진행한다. 한편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이하 한광연) 회장기관으로서 서울문화재단은 국내 예술정책을 선도함과 동시에 17개 시도 광역문화재단간 연대와 협력을 이끄는 역할을 충실히 해낼 계획이다. 해마다 국내 문화예술정책의 주요 현안에 대한 대표 연구를 수행하는 한광연은 총회를 통해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올해 2월 개최되는 한광연 총회는 정책세미나를 겸해 도시 간 정책 교류의 자리를 마련했으며 이 밖에도 연내 해외연수, 공동사업 등이 예정돼있다. 이창기 대표이사는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2024년은 재단에 매우 특별한 해”라며 "기존에 해왔던 사업뿐만 아니라 공간과 조직을 재정비해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시작의 마음으로 ‘예술특별시 서울’이 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문화재단 2024년도 10대 과제’와 관련해 더 자세한 내용은 서울문화재단 누리집(www.sfac.or.kr) 또는 홍보마케팅팀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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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노래 월인천강지곡’, 웅장함과 화려함만?'마치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추는 것과 같다'는 뜻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조선 세종 31년(1449)에 세종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여 지은 노래를 실은 책이다. 국립극장은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세종의 노래 : 월인천강지곡'을 해오름극장에 올렸다.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대형 칸타타로,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과 서양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총 313명이 함께 무대를 만들었다. 연출진으로는 작곡가 겸 지휘자 박범훈, 연출가 손진책, 안무가 국수호까지 세 거장이 의기투합했다.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먼저 떠난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한글 찬불가로, 석가모니의 전 생애를 담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군주의 외로움, 지아비의 순정, 한글이 만백성에게 전파되기를 바란 세종의 마음에 주목해 무대를 재구성했다. 국립창극단 출연진으로는 김준수가 세존(석가모니의 다른 이름) 역을, 이소연이 소헌왕후 역을 맡았고, 세종 역 김수인을 비롯해 민은경, 유태평양 등 국립창극단 주역 배우들도 함께했다. 국립무용단원 30여 명은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분신으로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보였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을 비롯한 악단과 합창단을 지휘하기 위해, 이 공연에서 작곡과 지휘를 맡은 박범훈 지휘자가 무대에 올랐다. 오래도록 국악 관현악의 발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음악적으로 훌륭한 곡을 많이 만들어 온 원로의 등장에 관객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작곡가 노트에 의하면, 이번 음악은 ‘소리’를 보여주는 데에 치중하였다고 한다. 오늘의 우리 소리를 모아 보여주기 위해 음악과 무용, 그리고 소리를 한 군데로 점철시켜 하나의 극 형태로 나타낸 것이다. ‘월인천강지곡’은 현재 전해지지 않아 어떤 곡이었을지 알지 못하나, 백성을 사랑한 세종대왕의 마음을 상상하여 만들었다고 하여 이 무대의 음악이 더욱 기대되었다. 합창단의 합창과 관현악의 전체 연주(tutti)로 웅장하게 서곡이 시작되었다. 한국적이면서도 서양적인,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듯한 색다른 느낌이 무대를 감쌌다. 마치 레퀴엠(requiem)의 절정 부분을 듣는 듯 강하고 감성적인 느낌이 지속 되었고, 창극단원들의 ‘세종께서 들려주는 사랑의 노래를 들어요’라는 소리로 극이 시작되었다. 밝은 음색과 흥청거리는 굿거리장단 위에 화려한 한국 가곡 느낌의 선율이 연주되었다. 세존이 흰 코끼리를 타고 오는 장면에서는 흰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여유 있게 등장했고, 장단의 패시지가 빨라질수록 관현악 반주가 더욱 웅장해지며 교향곡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또 극을 이끄는 건 창극, 즉 판소리였기에 서양음악 기반 합창단과의 앙상블이 이질적이기도, 잘 어우러지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크로스오버(Cross-Over) 시도가 신선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시도는 국립극장이기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형 무대를 충분히 활용한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은 원으로 된 길을 걷고 연기하고, 소리하며 창극의 색을 물씬 보여주었다. 하지만 극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와 음악이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우선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웅장함과 화려함으로만 가득했다. 물론 국악 관현악을 비롯하여 서양 관현악, 합창단까지 합세한 대규모 편성이었기에 음악적으로 색다른 시도를 하기 쉽지 않았겠지만,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비슷한 사운드와 리듬 형태만이 반복되어 아쉬웠다. 박범훈 작곡가는 예전부터 ‘붓다 교성곡’ 같은 대규모 작업을 많이 해 왔다. 그의 음악은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정갈하게 풀어내고 드라마틱한 기승전결을 뚜렷하게 녹여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도 관현악의 오케스트레이션이나 서양 악기를 활용한 독특한 사운드 구현이 신선하고 깔끔했으나, 국악 관현악이 기반이 되고 그 위에 서양 악기가 받쳐준다던 설명과는 다르게 서양 악기의 강하고 풍성한 사운드가 기반이 된 진행 위에 국악기가 가끔씩 얹혀 연주된다는 느낌이 강해 균형 있게 어우러지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창극의 소리도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는 계면조의 꺾는 음과 떠는 음, 뻗는 음만을 활용하여 질러내기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칸타타 장르에서 판소리를 활용한 시도는 좋았지만 세부적인 소리 형태는 색다를 게 없었고,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장단 안에 비슷한 선율 형태만이 반복되어 지루함을 느꼈다. 단조 기반의 화성 진행 또한 변화가 거의 없었고, 가사는 선율에 자연스럽게 붙지 않아 운율감이 떨어졌으며, 한문이나 종교적 용어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모니터에 가사가 띄워지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 이 무대는 분명 ‘세종’을 조명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을 기리는 느낌이 드러나지 않고 주제가 불분명했다. 조금 더 확실한 가사 전달과 명확한 주제를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종의 노래: 월인천강지곡’은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 기념공연이라는 타이틀답게, 그 어떤 공연보다도 화려하고 웅장했다. 그리고 대규모 편성으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었기에 국악 공연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에게는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크고 새로웠기 때문일까? 오페라도, 뮤지컬도 아닌 새 장르는 음악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고 중심이 잡히지 않은 느낌을 받았으며, 극의 줄거리 또한 국립극장의 남산 이전 50주년을 기념하는 의의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아 주제의 선정 의도가 불분명해 보였다. 시도되지 않던 한국적 대작을 위한 노력과 연출에는 큰 박수를 보내지만, 이 시대에 걸맞은 전통 예술 무대였는가 하면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 음악은 세계인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고, 흉내 낼 수 있어야만 그 보편성과 독창성을 지니고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이번 무대를 발판 삼아, 국립극장의 공연이 앞으로 더욱 중심을 잡고 이 시대의 전통다운 전통, 국립극장다운 위엄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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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연출가 김삼일 "60년 버틴 극단의 힘? 진지하게 연극할 뿐"(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연극은 진지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작품을 진지하게 올리면 다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창단한 은하 극단이 그래서 60년을 버틴 것이죠." 연극계 원로를 조명하는 축제인 '늘푸른연극제'를 준비하는 연출가 김삼일(82)의 목소리에서는 뚝심을 느낄 수 있었다. 5일 서울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 연출은 연극에 관심이 없는 젊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묻는 말에 단순한 대답을 내놓았다. 연극의 불모지였던 경북 포항에서 60년간 지방 연극 문화를 이끈 그의 말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달 6∼28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열리는 늘푸른연극제는 '플레이 어게인'(play again)을 주제로 원로 배우, 연출가, 극작가 등을 조명하는 작품 4편을 소개한다. 연출가 부문에 선정된 김 연출은 1963년 KBS 포항방송국 성우로 입사한 이듬해 극단 은하를 창단하며 본격적인 연극인의 길을 걸었다. '대지의 딸들', '별은 밤마다' 등 지금까지 연극 총 169편을 연출했고 1983년 한국연극예술상과 2004년 이해랑연극상 등을 받았다. 그의 노력으로 포항에 뿌리를 내린 극단 은하는 1983년 포항시립극단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리얼리즘 연극을 표방하는 김 연출은 대본에 충실하게 작품을 올린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김 연출은 "포항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공연할 당시 연극을 처음 보는 고등학생들도 연극을 즐겼다"며 "오늘날 연극처럼 이야기를 비트는 일 없이 책에 나오는 그대로 무대를 올렸다. 폼을 내거나 재면서 연극을 올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연출은 6∼7일 황혼기에 접어든 세 친구의 순수한 사랑을 담은 '언덕을 넘어서 가자'를 연출한다. 그는 "세 사람의 연기자가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0∼14일 열리는 '비목'에는 원로배우 백수련이 출연한다. 할머니 윤구가 전쟁에서 전사한 둘째 아들의 비목을 찾아 다니는 과정을 담는다. 백수련은 연습 기간 낙상 사고로 다리를 다쳐 수술을 받는 등 연습에 지장을 겪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오르는 투혼을 발휘한다. 백수련은 "출연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는데 함께 작업하는 분들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며 "연기하기 쉬운 상황은 아니지만 배우로 끝까지 책임을 지려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어 원로배우 윤문식과 최주봉, 이승호가 출연하는 연극 '폐차장블루스'가 18∼21일 공연된다. 거제 포로수용소 생활을 함께 한 세 노인이 해묵은 오해로 갈등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윤문식과 최주봉은 1964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6기 동문으로 만난 뒤 60년간 맞춰온 호흡을 선보인다. 폐막작으로는 24∼28일 이현화 극작가의 '누구세요?'가 공연된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채 각자가 집주인이라 주장한다는 내용의 부조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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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연간 시민관람객 2배 증가 등 성과 발표서울문화재단은 올 한 해 시민 문화향유의 대폭 확대를 견인하고, 예술가에게 안정적인 창작환경을 만들어 내년 ‘예술하기 좋은 도시, 예술특별시 서울’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재단은 1년 내내 서울 도처에서 고품격 예술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해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 접근성을 높였다. 올해 처음 사계절 축제로 진행된 ‘아트페스티벌 서울’에는 연간 35만 명의 시민이 참여해 예술을 즐겼다. 이는 개별 축제로 진행했던 전년 대비 20만 명 이상 높아진 수치다. 봄에는 ‘서울서커스페스티벌’, 여름에는 ‘서울비보이페스티벌’이 계절의 활기를 더했고, 가을에는 ‘한강노들섬클래식’이 예술을 품은 노들섬 야외무대서 펼쳐져 한강의 정취와 함께 그레이트 선셋을 선사했다. 특히 ‘한강노들섬클래식’의 발레·오페라 티켓 예매는 시작 1분 만에 순식간에 매진돼 시민의 뜨거운 호응을 확인했다. 이달 13일 문화역서울284 본관에서 막을 내린 겨울 축제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에서는 미디어아트의 거장 백남준의 ‘시스틴 채플’이 7년의 휴식기를 앞두고 서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개돼 2만여 명의 시민을 만났다. 지난해 첫 선을 보인 ‘서울스테이지11’은 도심 곳곳에서 시민의 일상과 만나는 마티네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첼리스트 양성원, 성악가 사무엘윤, 배우 염혜란, 소리꾼 이희문, 프로듀서 박문치 등 국내 정상급 예술인의 대거 출연으로 시민 만족감을 높였다. 서울문화재단 11개 공간에서 펼쳐진 총 72회 공연에 9000여 명의 시민이 다녀갔으며, 시민 관람률은 전년 대비 약 40% 상승했다. 올해는 특히 이동 약자 등을 위한 ‘찾아가는 스테이지’를 신설해 500여 명의 지역주민과 특별한 만남을 가져 문화예술을 통한 약자와의 동행을 실천했다. 시민문화향유 확산을 위한 재단의 활동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따라 그동안 위축됐던 문화예술 활동 회복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달 26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국민여가활동조사’에서 여가생활에 전반적으로 만족한다는 응답률이 60.7%로 조사돼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의 문화예술행사 직접 관람률 또한 58.6%로 지난해 대비 소폭 상승했다. 서울문화재단은 예술가를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펼쳤으며 창작지원금 형태의 단순 지원을 넘어 각종 시상제도 마련, 예술가 중심 원스톱 지원플랫폼 구축 등으로 독보적인 서울형 예술지원체계를 완성했다. 재단은 지원 사각지대를 좁혀나가는 그물망 예술지원체계에 기초해 연간 1570건, 199억원(2023년 기준) 규모의 지원사업을 운영 중이다. 올 10월 ‘서울예술인지원센터’를 개관해 예술지원정보, 생활기반 지원, 법률 및 심리상담, 무대용품 공동이용 플랫폼 등 예술인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는 원스톱 지원플랫폼 운영을 시작했다. 또한 올해 제정한 ‘서울예술상’과 ‘서울희곡상’은 창작 과정 중심 지원에서 나아가 우수작품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제작, 유통, 확산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예술계의 호평을 받았다. 이달 18일 열린 ‘제1회 서울희곡상’에서 178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수상작 ‘베를리너’의 이실론 작가는 "지치지 않고 계속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가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올 초 ‘원로예술지원’을 신설하자 평균연령 70세 이상의 원로 예술인의 신청자 수가 60% 이상(344명→560명) 크게 늘어 나이를 초월한 창작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최고령 지원자인 만 90세 신현득 동시작가(1933년생)는 41번째 동시집 발간의 열정을 보이며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12월 20일부터 정식운영을 시작한 온라인 플랫폼 ‘리스테이지 서울’은 ‘보관 또는 공유’를 위한 플랫폼이 없어 공연 후 버려지던 물품을 쉽고 편리하게 재사용하고, 공연예술인들이 저렴하게 대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특히 공공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회원 간 직거래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했다. 재단은 사업뿐 아니라 경영의 청렴과 효율성, 사업의 창의성 등에서 우수함을 높게 평가받아 삼일미래재단(삼일회계법인), 한국공공브랜드진흥원, 서울시 감사위원회 등으로부터 올해만 총 13개의 표창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올해 9월 열린 삼일회계법인 주최 ‘제9회 삼일투명경영대상’의 공공부문상 초대 기관으로 이름을 올리고 상금 4000만원을 받으며 기관의 경영 투명성 등을 높이 평가 받았다. 특히 이달 19일에는 여성가족부로부터 직원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가족친화기관’ 으로 인증받았으며,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출연기관 부패방지 시책평가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이는 공공기관이 선도적으로 보여야 할 가족친화, 청렴의 가치를 모범적으로 지켜 온 결과다. 서울문화재단은 2024년부터 한강 노들섬을 글로벌 예술섬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운영을 시작한다. 또한 양천, 용산에 이어 강북, 은평, 서초 등 5개 권역 체계의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본격화 준비에 나서며, 서울시 전역에서 시민을 위한 더 많은 고품격 문화예술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창기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는 "내년은 서울문화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는 특별한 해”라며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예술섬으로 변모할 노들섬과 시민 일상이 예술이 되는 ‘예술특별시 서울’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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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한국교육원 개원 30주년 축하 기념식지난 12월 8일(금)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사할린 한인문화센터 대강당에서 사할린한국교육원 개원 30주년을 축하하는 뜻깊은 기념식이 열렸다. 사할린 한국교육원은 1993년 12월 10일 유즈노사할린스크 에멜야노바 거리 19-A 제21학교에서 처음 문을 열었고, 2006년 12월 29일 현재의 한인문화센터로 이전해온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사할린한국교육원은 한인동포들과 러시아인들에게 꾸준히 한국어 교육을 실시해 연 7천 여 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사할린한국교육원은, 한류 영향으로 점점 증가하고 있는 한국어 수강생들의 수요와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국어 강좌와 한국문화반 개설 및 운영뿐만 아니라 사할린국립대학교 한국어과, 동양김나지아, 제2김나지아, 제32학교, 코르사코브 제2학교와 제4 학교,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 <체부라쉬카>유치원을 비롯하여 각 지역의 한글학교에도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주관하여 한국 유학이나 취업 희망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각종 정보제공, 상담, 현지 적응 도움 및 교육도 시키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주유즈노사할린스크영사출장소 박상태 소장, 사할린주한인협회 박순옥 회장, 사할린국립대 임 엘비라 어문·역사·동양학 대학 학장, 유즈노사할린스크 시한인회장, 사할린주 한국교민회 대표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였다. 특히, 7대 사할린한국교육원장을 지낸 장원창 현 첼랴빈스크 대학교수와 이재현 현 하바롭스크교육원장이 참석하여 더욱 의미가 있었다.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학생들의 한국 전통무용 북춤으로 시작된 기념식은 귀빈들의 축사, 개원 30주년 기념 문예 콩쿠르 입상자 시상, 원로교사 권견자 선생님을 비롯한 한국어 교육 관계자들에게 감사패 전달, 정승훈 원장의 감사 인사 순서로 마무리 되었다. 행사 도중 축하 공연을 해준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 학생들(북춤/부채춤/소고&설장구춤)과 12월 1일 K-Pop 축제에서 입상한 코르사코브 제2학교 댄스팀, 코르사코브 제4학교 졸업생 브라즈노바 알료나, <체부라쉬카>유치원생들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2023년 12월15일(음력11월3일)새고려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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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전용극장, ‘구두쇠 스크루지’ 가족음악극서울 종로구(구청장 정문헌)는 국내 최초 어린이 전용극장인 종로 아이들극장에서 15~24일 가족음악극 ‘구두쇠 스크루지-크리스마스 캐럴’ 공연을 운영한다고 12일 밝혔다. 원로 연출가인 이병훈, 아동극 전문 예술감독 김숙희, 원로배우 심우창 등 국내 최고의 제작진이 참여해 어린이 관람객과 가족들에게 선물 같은 공연을 선사할 것이라고 구는 전했다. 영국의 소설가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음악극으로 재구성한 이번 공연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차가운 집에서 혼자 보내는 구두쇠 스크루지에게 세 유령이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베풀 줄 모르던 구두쇠 스크루지를 달라지게 한 ‘하룻밤의 기적’을 통해 관객들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생각해보고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받게 될 것이라고 구는 덧붙였다. 공연은 15~24일 평일 19시30분, 토요일과 크리스마스 이브는 15시와 19시, 일요일은 15시에 시작된다. 월요일은 휴관한다. 공연 시간은 70분이며 관람 연령은 36개월 이상이다. 가격은 전석 3만원이다. 공연 예매 등 자세한 사항은 종로 아이들극장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어린이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꿈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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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71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장) 지난 달 23일(목)에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회의실에서는 약 12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국악진흥법’ 전문가위원회(위원장 박상진) TF 팀 5차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동안 소위원회 회의를 4차례 가지면서 ‘국악진흥법’ ‘시행령’ 등에 담겼으면 하는 내용들을 심도 있게 토론하며 의견을 도출하였다. 이날 5차 토론회의는 1월 중순에 있을 ‘정책토론회’의 기획 회의 성격으로 진행하였는데, 소위원회의 위원과 오랜만에 참석한 위원들이 분출해내는 열기는 대단하였다. 그동안 ‘한국국악협회 전문가위원회 TF’에서 개최한 회의 내용을 국악신문에서 크게 보도하면서 국악인들의 관심이 뜨겁게 고조되었다. 그 회의 내용을 요점만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전문가위원의 이름은 생략하고 발언 순서대로 A B C ,,, 의 호칭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A 전문가위원은, 1월 중순에 있을 정책 토론회를 좀 더 구체적이면서 체계적으로 준비한다면, (사)한국국악협회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B 전문가위원은, ‘국악진흥법’의 제정은 정치권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므로 시행령은 정치적 편향성 없이 추진되면 좋겠다. 그리고 정책토론회에서는 원론적인 논의보다는 시행령에 꼭 들어갈 내용 중심으로 명확하게 주제 발제가 제시되면 좋겠다. 또한, 2024년에 국악진흥법 시행령 관련 조사 연구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실시된다고 하는데, 여기에 우리 사)한국국악협회의 의견이 실질적이면서 광범위하게 개진될 수 있는 내용으로 정책토론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C 전문가위원은, 국악진흥법의 발전적 모색이나 방향성 제시도 중요하지만, 시행령에 담길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의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이날 가안(假案)으로 준비한 발제 제목에 대하여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현재 가안의 논제 중 기조발제인 "국악진흥법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적절한 것 같은데, 주제 1에 "국악문화 현장 상황과 대처 방안”이라든지, 주제 2에 "국악의 지원 정책과 국악산업 및 시장조사를 위한 연구의 필요성 제안”같은 경우는 실질적인 시행령에 담길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므로 논제를 다시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한국국악진흥예술연합>이라는 임의단체가 설립되어 국악진흥법 통과에 따른 발전 방안을 나름대로 모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역사와 전통뿐만 아니라 국악계를 대표하고 있는 사)한국국악협회로 힘이 모아져서 추진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문체부 등 관련 기관 공무원들과의 미팅 시 구두로만 의견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제안서 형식의 텍스트 자료를 정리해서 항시 제시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말하였다. 이에 박상진 위원장은, 정책토론회 주제를 "국악진흥법 제정에 따른 국악 정책의 발전방향 모색(가안)”에서, 이제는 발전방향 모색을 넘어 시행령에 담을 수 있는 구체안을 만들어서 정부에 제안하는 정책토론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가안으로 작성한 제안들에 대해 업그레이드된 의견제시를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B 전문가위원은, 이번 정책토론회에서는 국악 원로들의 바램이나 철학적인 소견보다는 국악진흥법 시행령에 담길 내용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번 정책토론회에서 발제가 2인으로 되어 있는데, 국악원로이면서 인지도가 있는 1인이 더 추가되어서 발제를 3인으로 구성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좋겠다고 말하였다. D 전문가위원은, 시행령이 내년 7월 26일에 발효되게 되어 있다. 따라서 6월 말까지는 문체부에서 시행령을 마련할 텐데, 이제 약 6개월의 시한이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용역을 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용역 결과를 가지고 24년 3월 정도면 공청회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공청회에 우리 전문가위원회가 다수 참여해서 지금 우리가 정리하고 있는 준비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타의 시행령을 참고해서 이기적인 제안보다는 장기적인 플랜을 짜서 제도적으로 국악인들이 많은 지원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1월에 있을 정책토론회에서는 기성세대에 대한 지원, 미래세대에 대한 지원, 교육 관련 지원 등의 내용으로 제가(D 전문가위원) 기조발제를 하고, 20~30대 젊은 국악인들을 동참하게 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지원하는 형태가 제시되게 하는 것이 시행령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책토론회를 대비해 핵심에 부합하는 주제로 다시 조율해 보도록 하겠다고 말하였다. 박상진 위원장은, 발제자 전체의 주제를 선택과 집중에 맞춰 조율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문체부에서 3월 정도에 공청회가 열릴 것을 감안하여 우리의 정책토론회는 1월 10일에서 20일 사이에 날짜를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국악진흥법’의 ‘시행령’은 위와 같은 산고(産苦)를 통해서 옥동자로 탄생할 것을 기대해 본다.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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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 명예 예술인 24명 지정전남도는 지역문화협력위원회를 열어 2023년 전남도 명예예술인 24명을 지정했다고 밝혔다.전남도는 도내 거주자로 30년 이상 예술활동에 매진하면서 뛰어난 예술적 성취와 사회 기여를 통해 ‘예향 전남’의 명성을 드높인 70세 이상 원로예술인을 대상으로 문학·미술·연극 등 분야별 명예 예술인을 지정하고 있다.2022년 ‘전남도 명예예술인 지정 및 운영 조례’가 제정된 후 전국 최초로 총 31명의 명예 예술인을 지정했다.올해는 지난 10월 한 달간 신청한 예술인 중 시군에서 신청 자격 등 1차 심사를 거쳐 추천받은 26명의 원로예술인을 대상으로 진행해 최종 선정했다.선전된 전남도 명예예술인 ▲ 문학 김현태(78)·윤문칠(75)·임병식(77) ▲ 국악 양장열(75) ▲ 사진 송창근(83) ▲ 연극 박광태(71) ▲ 서예 강수남(73)·김광숙(72)·김선우(78)·신수일(81)·임주섭(77)·홍은옥(82) ▲ 한국화 곽창주(70)·김선영(70)·묵창선(79)·박재옥(71)·백용운(72)·정선덕(72)·주권옥(81) ▲ 서양화 박동열(73)·박주하(70)·손영선(70)·이웅성(80)·정다운(87). 명예예술인 지정서 수여식은 오는 28일 예정됐다.지정된 명예 예술인에 대해서는 작업실이나 자택에 ‘전남도 명예예술인 지정’ 현판을 부착해 자긍심을 고취하고 예술활동 지원 등 예우에도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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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장편소설 '흙의 소리' 출판기념회지난 11일 오후 2시 악성 박연의 삶과 꿈을 그린 장편소설 '흙의 소리'(도서출판 국악신문)출판기념회가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개최되었다. 신현득아동문학가 장윤우 엄한정 시인 이명재 평론가 외 많은 문인 작가들 음악인들 화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기념식은 김치홍 평론가의 진행으로 시작되어 오현승(서도명창)의 영동아리랑이 축가로 메아리쳤다. 이어서 축시를 선사한 김영숙 시인의 서시 '풍경' 이 낭송되었다. 기미양 (주)국악신문사 대표이사의 인사말, 한명희(전 국립국악원장) 이미시 서원 좌장과 정영철 영동군수의 축사가 있었다. 이에 대한 답사를 한 이동의 작가는 "박연이 충북 영동 출신이어서 군수를 비롯하여 재경 영동 인사들이 많이 참가하였고 아리랑도 영동아리랑 공연을 하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김운향 시인 소설가의 소설 낭송 '못다한 이야기' 조규수 시인의 '흙을 쌓아 산을 이루었네' 시낭송이 진행되었다. 특별 코너로 최경호 평론가의 '흙의 소리' 소설 평론으로 '박연의 삶과 꿈 형상'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영동이 고향인 이동희 작가는 "영동 답사에서는 박연이 쓴 시에 있듯이 '흙을 쌓아…'에서 주제를 파악하고자 하였고, 집필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유배 생활과 그 당시 남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낙기고자 하였다. 특히 우리나라 3대악성 우륵, 왕산악, 박연 중에서 두 사람은 신화 전설적 인물인데 비해, 박연은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예와 악의 실천자"라고 강조하였다. 소설 속 삽화를 그린 원로작가 이무성 회백은 "원색 삽화를 그리게 된 일화와 영동 시민들이 박연의 인물에 대해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윤규 시인의 시조창 '10년을 경영하여'이 메아리치고, 휘날레는 이혜솔 명창의 아리랑 공연으로 이날 출판기념회를 끝맺었다. '흙의 소리'는 도서출판 국악신문 기획으로 2년 2개월 동안 111회에 걸친 발표한 연재소설로 난계 박연의 말년 전남 고산 유배 등 새로운 사실을 밝혀 작품화 한 것이다. 다음은 영동군수 축사 전문이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산비탈을 화려한 색으로 물감칠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나라의 3대 악성 중 한 분인 난계 박연 선생의 삶을 생생하게 연출한 장편소설 「흙의 소리」가 출간하게 되어 영동군민의 한 명으로서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먼저, 이번 「흙의 소리」 출간을 위해 노력하신 이동희 단국대 명예교수님과 기미양 (주)국악신문사 대표이사님 그리고 관계자분들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동안 우리는 악성이라는 음악적 업적에 가려진, 난계 박연의 삶에 관해서는 별다른 논의도, 의문도 없었습니다. 난계 박연의 삶과 꿈을 연출한 「흙의 소리」 출간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 주고, 박연 선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난계 박연의 고장인 충북 영동에서 우리나라 최초 전통국악분야 국제행사인 ‘2025 영동 세계국악엑스포’유치가 확정되어 2025년 9월 12일부터 10월 11일까지 30일간 레인보우힐링관광지와 국악체험촌 일원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30개국 97만명의 내·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국제적인 문화행사에 예술가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이동희 단국대 명예교수님과 (주)국악신문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여러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1월 11일 영동 군수 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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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 다시 피리를 마주하다: 박범훈 명인갑작스러운 찬 바람으로 계절이 바뀜을 실감하게 되던 11월의 어느 날, 곧 있을 ‘박범훈류 피리산조 연주회: 회향(回向)’ 연주회 준비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계신, 국악계의 원로 박범훈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를 만났다. 120명의 연주자와 함께 할 이번 공연부터, 피리산조, 배움과 가르침, 전통과 창작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어보았다. Q.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고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A. 국악계에 남은 생을 기여하고자 노력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작품도 열심히 쓰고, 지휘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요즘은 40여 년 전에 스승(지영희)의 가락을 바탕으로 만들었던 피리산조를 제자들과 함께 연주하며 전승, 보존하는 데에 힘쓰고 기여하고자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 나에게 허락되는 데까지, 이렇게 계속 국악계에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일하며 지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선생님께선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석좌교수를 맡고 계시죠. 동국대 한국음악과는 2023년 서울캠퍼스에 개설되었고, 이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신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학과 운영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A. 예. 입학 정원은 15명이었지만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제가 뭘 했다기보다는, 서울의 메이저 대학 안에 국악과를 설립해 주었다는 점에서 동국대 측에 참 고맙죠. 아직 설립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학부 과정 외에도 대학원 석사, 박사, 석박 통합과정까지 모두 만들어져 있어 한국음악과의 앞날이 더욱 기대됩니다. 특히 문화재급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직접 학생들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Q. 동국대 한국음악과는 불교음악과 맥을 같이 하며 포교를 위하여 설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 국악과와 비교했을 때 수업 과정 등에 차이가 있나요? A. 큰 차이라기보다는,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에서는 맞춤형 교육을 한다는 데에 분별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공수업에서 학년별로 배워야 할 커리큘럼만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개개인 학생의 역량에 맞추어 가르칠 것을 정한다는 거죠.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상의하고, 흥미나 보완점 등을 찾아 그에 맞춘 전공 수업을 하는 겁니다. 또 가무악을 함께 가르치며 지휘, 무용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끔 합니다. 그러한 맞춤 수업이 이 시대의 전통음악을 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국악계가 더욱 발전하는 큰 초석이 될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맞춤형 수업이라니, 개개인의 역량이 더욱 늘 수밖에 없는 좋은 수업이네요. 학생들의 미래가 함께 기대됩니다. 요즈음 준비 중이신 11월 25일 공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120명이 연주하는 피리의 향연이라는 부제목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번 공연은 어떤 공연인가요? A.이번 공연은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서 연주하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대학교수부터 연주자, 학생, 취미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제게도 참 뜻깊은 공연이 될 것 같네요.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연주하는 문중들이 한데 마음을 모아 한 자리에서 연주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죠. 떼 피리로 연주하는 겁니다. 프로그램 순서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대의 첫 막은 이 피리산조를 잉태한, 모태가 되는 경기시나위를 연주합니다. 특히 지영희 선생님의 첫 제자인 최경만 선생이 연주함으로 더욱 의미가 있죠. 그 외에도 제가 산조를 만들 때 많이 참고했던 지영희 선생님의 해금산조 연주도 있고, 박범훈류 피리산조에 관해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 중 토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Q. 공연 기획부터 함께함의 목적에 이르기까지 참 뜻깊은 무대가 아닐 수 없네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선생님께서 창시하신 박범훈류 피리산조는 지영희 경기시나위를 모체로 조와 다양한 전조 등을 활용하여 창시한 산조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영희 선생님의 경기시나위와는 차별을 둔 부분, 즉 작곡가, 창시자로서 선생님만의 특수한 주안점을 두고 만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A. 산조를 만든다는 건 산조의 틀, 짜는 기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거죠. 또 악기의 특징이 잘 드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피리산조의 경우 피리로 불었을 때 특징이 드러나는 산조여야 합니다. 그 가락을 대금이 불어서 더 좋으면 과연 피리산조로써의 매력이 있을까요? 산조는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연주자가 만들어야만 값어치가 있습니다. 전 산조를 만들며 피리의 특수 주법이나 특징, 그리고 독창성을 다르게 하기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Q. 박범훈류 피리산조에는 경토리가 굉장히 많이 녹아있는 것이 특징이잖아요. 경토리를 산조에 녹여낼 때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셨나요? A. 보통 산조에는 전라도의 남도제가 많이 들어가긴 합니다만, 지영희류 해금산조, 지영희제 경기시나위에는 경기제. 즉 경토리의 특징이 특히 강합니다. 경기 시나위에는 경토리와 계면조의 특징이 모두 녹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꺾는 음도 남도제와는 조금 다르고, 계면조라고 해도 너무 심각하거나 애절하지만도 않죠. 또 경토리와 계면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피리의 특징으로 이야기하자면, 무속음악과의 관계도 설명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무속음악에서 피리는 반주에 많이 쓰였습니다. 무녀가 노래할 때 조(key)가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조에 맞추어 반주해야 하기에 관의 변화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기제에서 주법이 굉장히 많이 발전했어요. 목튀김, 혀치기 등 특수주법이 아주 다양해졌죠. 피리만의 특징이 생긴 겁니다. 저는 그런 경기제의 특징, 피리의 주법을 제 산조에 다양하게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들어보면 조성의 변화가 많고, 관을 올려잡고 내려 잡으며 주법이 많이 변화하는, 경토리가 도드라지죠. Q. 요즈음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각자의 유파를 만들고 산조를 기본으로 삼아 음악 활동을 해 나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조를 어떻게 보시나요? 또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A. 젊은 연주자들이 산조에 관심을 두고 만들어 나가는 현상이 참 좋네요. 유파를 짜서 남기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산조의 특징을 확실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악기를 오랫동안 연주하고, 악기의 특징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게 중요하죠. 그 악기의 도사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산조의 틀. 즉, 장단, 조성, 시김새 등의 조건을 확실하게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저 즉흥으로 짜서 연주하고 남기기엔 생명력이 없어요. 그렇게 꾸준히 연구하고, 연주하고, 기본적인 특징을 확실히 살린 후에 본인의 독창성이 입혀지면, 오래도록 남는, 인정받는 산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Q. 특히 선생님께선 수많은 창작곡을 오랜 세월 만들어 오신 작곡계의 원로시기에 더더욱 여쭙고 싶던 질문입니다. 전통이든 창작 음악이든, 창작하는 데 있어 어떤 것을 기본적으로 꼭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창작이라는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게 아니에요. 유(有)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거지. 음악에 들어있는 게 하나도 없으면 뭐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건 소리로써 사람을 괴롭히는 거예요. 항상 작곡하는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어요. ‘소리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라.’ 그러려면 인풋(input)이 정말 중요합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좋은 곡이 나오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죠. 다양한 음악적 소양과 경험, 고민, 습득이 필요해요. 그렇게 내게 다양한 것들이 축적되면, 음악은 그때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예요. 내가 만들고자 하는 방향을 확실하게 잡고 음악을 만들고 나면, 결국 생명력을 가진 곡이 되어 오래도록 연주될 겁니다. Q. 마지막으로 질문드릴게요. 저도 그렇지만, 다양한 음악이 유입되고 수많은 장르가 뒤섞이며 어디서든 자유롭게 음악을 듣고 배울 수 있는 시대기에 더욱 이 시대의 전통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과 생각이 듭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악인들이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할 마음가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전통이든, 현대음악이든 간에, 예술을 전공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에요. 미(美)를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저는 어느 자리에 있든 내 전공을, 음악을 놓쳐본 적이 없어요. 왜? 좋으니까요. 억지로 하는 사람들은 도중에 그만두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음악을 하며 어려운 일도, 힘든 일도 있겠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사람은 그 고비를 끝까지 넘습니다. 내가 좋아서 한다는 그 마음가짐, 예술에 대한 자긍심을 놓지 않고 전통을 해 나가길 바랍니다. 이 시대의 존경받을 원로로 통하는 박범훈 석좌교수가 전통 예술계에 오랜 시간 이바지하며 높은 평판을 이루어 온 데에는, 음악을, 창작을 전심으로 사랑해 온 꾸준한 세월이 있었다. 11월 25일 펼쳐질 그의 공연 제목은 ‘회향’. 긴 세월 쌓아온 음악을 돌아보며, 그 음악의 뿌리, 근원으로 돌아가 피리를 오롯이 마주한다는 의미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이어온, 그리고 미래를 이을 박범훈류 피리 산조가 들려 줄 우리 음악에 대한 강인함, 사랑, 그리고 굳건함이 벌써 귀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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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 금관문화훈장, 문화훈장 32명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로 ▴‘문화훈장’ 수훈자 15명,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대통령 표창)’ 수상자 5명,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체부 장관 표창)’ 수상자 7명,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문체부 장관 감사패)’ 수상자 5명 등 총 32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유인촌 장관은 27일(금) 오후 2시, 모두예술극장(서울 충정로)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해 유공자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축하 인사를 전한다. 특히 이번 시상식은 장애예술 관련 수상자와 가족 등이 많이 참석함에 따라 지난 24일(화) 국내 최초로 개관한 장애예술 표준공연장 모두예술극장을 개최 장소로 정했다. 모두예술극장은 누구나 문화를 향유하고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최고로 높인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시상식에서는 장애예술인이 국악 축하공연도 펼친다. 문체부는 문화의 날(10월 셋째 주 토요일)을 계기로 대한민국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한 문화예술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1969년부터 매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를 선정해 포상하고 있다. 올해는 1973년에 제정된 문화훈장이 50주년을 맞는 해로 그 수상의 의미가 어느 해보다 크다. 가장 큰 영예인 금관 문화훈장은 성악가 조수미 씨가 수훈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성악가이자 케이(K)-클래식 선구자로서 38년간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공적을 인정받아 금관 문화훈장을 받는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 문화향상에 기여한 공적이 현저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서 ‘금관’은 그중 최고 등급으로 해당 분야 개척자나 원로급에 수여한다. 은관 문화훈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 보유자로 60여 년간〈조선왕조실록〉기록에만 현존한 ‘조선왕조의 의례’를 연구 복원하고, ‘한국궁중꽃박물관’ 설립 등으로 한국궁중예술 전승 발전에 기여한 전통공예가 황을순 씨, ▴40여 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한국의 토속 음악을 소재로 한 활발한 작곡과 방송활동을 통해 국악이 동시대와 어우러지며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창작품 및 녹음자료 등 8천여 점을 국립국악원 아카이브에 기증한 국악작곡가 고(故) 이해식 씨, ▴평생 춤 외길을 걸어온 전통무용가로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등 전통춤을 계승하고 국내외 활발한 작품활동을 통해 폭넓은 예술세계를 펼치며 한국무용 발전에 기여한 무용가 정승희 씨 등 3명이 받는다. 보관 문화훈장은 ▴2018 평창 패럴림픽 개회식 문화공연 <공존>으로 한국예술을 세계에 알리고, 대한민국 장애인 국제무용제를 창설하는 등 장애예술 발전에 기여한 최영묵 (사)빛소리친구들 대표, ▴서울예술재단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를 설립해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화에 기여한 표미선 ‘표 갤러리’ 대표, ▴50여 년간 국내외를 아우르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통해 현대회화의 지평을 넓히고 한국미술의 세계화에 기여한 오수환 서울여대 명예교수, ▴한국 현대도예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독자적인 추상 도자 세계를 구축하고, 한국 공예의 세계적 확산에 기여한 강석영 전 이화여대 명예교수, ▴60여 년 동안 150여 편의 연극에 출연하고 세계연극제 참가로 한국문화예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기여한 박광웅 전 (사)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등 5명이 받는다. 옥관 문화훈장은 ▴30여 년간 한국도서관협회에 근무하면서 국민의 도서관문화 창달에 기여한 고(故) 이현주 전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 ▴2003년 한미사진미술관을 개관해 133회 전시, 20여 년간 사진작가 창작·전시활동 등을 지원해 대한민국 사진문화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한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20여 년간 향토문화의 개발․보급 및 민속축제 행사 주관 등으로 문화예술향유 기회 제공에 기여한 박문태 울산중구문화원 원장, ▴42년간 시조를 창작하고 제주지역 문학저변 확대에 기여한 고(故) 오승철 전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회장, ▴중증의 장애 속에서 장애예술인 정책 개발과 권익 증진, 장애인문학 발전에 기여한 방귀희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40여 년간 ‘서울창업허브’ 등 공공건축물과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등 다수 예술건축물을 설계해 한국건축문화 발전에 기여한 박제유 ㈜제이유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등 6명이 받는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은 ▴문화일반 부문 박선자 (사)강릉예총 회장, ▴문학 부문 윤후명 소설가, ▴미술 부문 이배 작가, ▴음악 부문 작곡가 겸 피아노 연주자 박창수 더하우스콘서트 대표, ▴연극 부문 최용훈 극단 작은신화 대표 등 5명에게 수여한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자에게는 대통령 표창과 함께 상금 각 1천만 원을 수여한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은 7개 부문에서 예술가 7명을 선정했다. ▴문학부문에는 시인 유희경, ▴공예디자인 부문은 공예가 정다혜, ▴건축 부문에는 건축가 강우현, ▴음악 부문은 피아노 연주자 임윤찬, ▴국악 부문에는 국악인 안은경, ▴연극 부문에는 연출가 이철희, ▴무용 부문에는 안무가 김정훈 등 7명이 수상한다. 이들에게는 문체부 장관 표창과 함께 상금 각 5백만 원을 수여한다. 자녀를 훌륭한 예술가로 키운 ‘장한 어버이상’ 수상자로는 ▴장애예술인 국악가 이지원 씨의 어머니 곽진숙 님, ▴연극 연출가 민준호 씨의 아버지 민겸식 님, ▴국악인 위희경과 가수 위일청의 어머니 서춘자 님, ▴가수 양희은과 배우 양희경의 어머니 윤순모 님, ▴장애예술인 정은혜 작가의 어머니 장현실 님 등 5명을 선정했다. 이들에게는 문체부 장관 명의 감사패와 함께 각 3백만 원 상당의 부상을 수여한다. 유인촌 장관은 "다양한 분야에서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서른두 명의 수상자분들께 진심으로 축하와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라며, "예술인들이 작품 활동을 통해 마음껏 자신의 꿈을 꽃피울 수 있도록 자유롭고 공정한 창작환경을 조성하고,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증진해 국민이 문화로 행복하고 화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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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타고난 안무가 전황의 춤인생과 예술세계국악계로 지평 넓힌 정통파 무용가 이매방(1927-2015.8.7, 국가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 보유자, 27호 승무보유자), 강선영(1925-2016.1.21., 국가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보유자), 김덕명(1924-2015.10.24, 경남무형문화제 제3호 한량무보유자) 전황(1927-2015,5,16,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국립창극단장)등 원로무용가들과 중견무용가 정재만(1948~2014), 임이조(1950~2013), 지희영(1949~2015) 등의 작고는 격동기 근대무용사의 산증인들이자 역사적인 인물들, 과거사를 증언해주고 알려줄 대영박물관과 같은 역사자료가 소실된 것 같은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전황선생님은 80대에도 청년같은 외모와 건강한 모습으로 공연현장에서 유일한 원로관객으로 뵙던 분으로 가장 장수하실 것 같았는데 지난해 갑작스런 비보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간 전황선생님을 뵐 때마다 늘 말쑥한 양복차림, 반듯한 자세로 빼어나게 멋진 노신사의 모습에 부러움과 존경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불가사이한 점도 많은 분이라는 데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80대 고령임에도 청년같이 건강하고 멋지고 미남인 신사로 사셨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둘째, 세계적인 근대무용가 최승희의 정통파 제자이면서 몇 안 되는 남성 한국무용가인데 어찌하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국립창극단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국악인들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는가? 타고난 공연예술의 스타집안과 성장배경 전황(全璜, 본명 전두황)은 1927년 3월8일 함경남도 함흥시 남문리에서 전영술과 신명이의 5남3녀 중 7번째로 태어났다. 부친 전영술은 함흥시 재판소 앞에서 사법서사를 하며 유복한 가정을 꾸렸다. 부친은 해방 직후에 작고하였고, 모친은 6·25전쟁 직전에 작고하여 어려움도 겪었지만 형제자매들이 대중스타로 우뚝 솟아 있었기에 전황은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맏형 전두옥은 역시 함흥출신 무용가 조택원과 고향친구였고, 영화 ‘아리랑’의 감독 나운규와 절친으로 영화배우 겸 권투선수였으며, 중국에서 배운 18기 무예를 이 땅에 처음 들여왔고, 승용차를 팔로 끄는 차력도 자랑했다. 누나 전옥(全玉, 배우, 본명 전덕례, 1911~1968)은 ‘눈물의 여왕’으로 무대와 스크린의 톱스타인 그녀를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셋째형 전두철은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다. 사촌형 전운봉은 남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였고 북쪽에서도 인민배우로 대접을 받았다. 누나 전옥과 매형 강홍식(姜弘植, 1902~1971, 이시이 바꾸의 제자, 해방공간 당시 북조선영화촬영소 부소장, ‘봄타령’을 처음 부르고 유성기음반 취입한 가수)의 딸 강효실(姜孝實, 1932~1992)도 다 아는 영화배우이며, 강효실의 아들 최민수도 현재 유명한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어 전황의 가계가 한국 근현대공연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황의 딸 전미례는 본래 한국무용을 전공하였지만 아버지처럼 분야를 바꾸어 ‘재즈계 여왕’이라 불리는 재즈무용가로 활약하고 있다. 전황의 어린 시절 누나 전옥이 함흥 진사관에 공연하러 고향이 오면 집 앞에는 스타 전옥을 보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때 열서너 살 된 전황은 자랑스런 누나의 연극을 보기위해 친구들과 공짜손님으로 극장을 드나들곤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황은 1941년 함흥 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함흥상업학교를 졸업하면서 예인의 삶 속에 젖어들어 갔으며, 맏형 전두옥의 영향을 받아 1946년(19세)까지 권투선수생활을 하면서 강인한 체력과 민첩한 몸동작을 단련하였다. 이러한 가계내력과 성장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우선 국가적인 스타가 될 만큼 수려한 외모를 선대로부터 물려받았으며, 형제들과 친척들이 예술가들이 많다 보니 전황도 자연스럽게 그런 무용, 국악 등 전통문화를 익힐 수 있는 가정환경이었다. 또 새로운 문물, 스포츠, 영화, 연극 등 다양한 문물과 예술에서도 적응력이 강하여 뛰어난 연기력, 체력의 유전적 DNA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황선생님의 인물치레가 범상치 않은 점은 이러한 천부적인 집안내력에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유명 연기자들과 예술스타들이 타고난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 후천적인 환경과 노력이 가미될 때만이 보석의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말년까지 정정하고 강건한 자태와 인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맏형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권투선수의 기초훈련에서 익힌 날렵한 잽 동작과 발 스텝과 빠른 호흡과 민첩성 등으로 무용가로서의 유연성과 리듬감, 손놀림과 발놀림 등의 신체적 바탕을 갖추게 된 것임도 알 수 있다. 최승희 제자로의 입문배경과 공연활동 전황의 춤인생은 당시 아시아는 물론 세계무대에도 잘 알려진 무용가 최승희와의 조우에서 비롯하였다. 1947년 3월 최승희가 전황의 고향 함경남도 함흥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마침 남녀무용수 단원을 한명씩 뽑는다는 소식에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응시하였다. 전황은 젊은 혈기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하여 오디션을 받았는데 뜻밖에 최승희의 눈에 들어 많은 젊은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남자로는 유일하게 합격통지를 받고 평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것으로 무용경력도 없었던 전황은 1등 합격으로 운명적인 춤인생이 시작되었다. 권투선수로 다져져 손발이 빨랐고 눈썰미가 좋아 최승희의 춤시범을 센스있고 날렵하게 잘 따라 추어 무용수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평양의 최승희무용연구소(1946년 8월 개소) 3기 연구생으로 입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하고많은 거 놔두고, 남자 놈이 춤을 추냐’고 반대했었다. 전황은 집에 있는 공기총과 아코디언을 팔아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로 갈 여비를 만들었다.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받는 국비 400원과 전옥누나에게 받은 용돈 50~100원, 어머니가 보내주는 100원으로 생활비를 삼아 알뜰하게 살면서 열심히 춤을 추었다. 얼마 되지 않아 30여명의 연구생이 묵는 기숙사생 중에서 최승희의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배우는 수제자로 발탁됐으며 이로 인해 국비를 300원씩 더 받게 되었다. 당시 북측 정부에서 최승희에게 국비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최승희와 안막선생님께 면회를 요청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워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전하니 국비 중에서 추가로 200원씩 더 지급해 주었다. 이곳에서 전황이 신흥(新興)무용(지금의 현대무용), 조선춤, 남방춤, 러시아춤, 발레 등을 배울 때 바로 위 선배로 김백봉도 있었다. ‘딴 딴 따따딴, 딴 딴 딴딴딴’ 최승희선생이 북을 치면 그대로 발맞춰 따라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빨리 배웠다. 반주악사가 없을 땐 리듬감각이 탁월하다며 북과 장구를 치게 했던 것이 국악을 섭렵하는 시초가 되었으며, 이렇게 국악에 눈떠 훗날 국악협회 이사장을 지낸 바탕이 이때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그 후 전황은 국비 외에 800원의 월급도 받았는데, 그에겐 금전적인 수입보다 4년 동안 허실없이 배운 최승희 안무법과 음악선택법이 소중할 뿐이었다. 최승희 안무의 ‘초립동’은 안성희에게 배워 1947년(20세)에 추었다. "최승희 선생은 히스테리가 많았어요. 1948년 평양예술극장에서 제가 안성희·김백봉과 3인무 ‘옥중투사’를 추는데, 객석에 앉아 계신 어머님과 사람들이 ‘황아! 황아!’ 부르며 야단이셨죠. 그 소리에 저는 춤순서를 잊어버렸죠. 결국 최선생께 혼나고 긴 손톱으로 꼬집혀 살이 뭉개졌죠. 그만큼 완벽을 추구하셨고, 기억력, 창작력,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셨구요” 전황은 1948년 고된 훈련 중에도 단원들 누구보다 동작과 자세, 그리고 순서익히기에서 남다른 끼와 천부적인 표현력을 인정받아 최승희무용단원으로 중국순회공연을 처음으로 다녀왔다. 중국순회공연을 하던 중 매란방의 〈손오공〉을 보게 되었는데 분장실의 매란방은 남성인데도 춤출 때는 여자같이 곱게 추었다고 하였다. 당시 최승희는 안무작업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는데, 매일 아침마다 두 달 동안 몰래 숨어 ‘노사공’ 안무를 보던 전황이 결국 최승희에 발각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스승은 ‘재주있는 놈’이라며 악사 옆에 앉아서 보라고 승낙하였다. 이렇게 1947년부터 1950년 사이 4년 동안 최승희의 작업, 공연, 생활 등 모든 것을 전황과 김백봉만이 가장 소상히 알고 있는 산증인이 되었다. 1950년 6월 7일에는 100명 규모의 방소예술단원으로 출국하여 9일 걸려 러시아 모스코바에 도착했었다. "하루 종일 달려야 역 하나가 나와요. 치타에 도착하니 거지 떼들이 몰려들어 돈 달라, 빵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우리도 기차 안에서 빵과 과자를 배급받아 먹었을 뿐인데...” 이런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당시 소련) 모스크바 공연 중에 6·25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허정숙 단장이 ‘조국전쟁이 일어났다. 남한이 쳐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방소예술단은 정치적 색채를 띤 단체였어요. 러시아 공연도 이미 약속된 공연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허정숙은 전쟁 중에도 예술단을 이끌고 공연을 감행하였지요. 러시아에서 기억에 남는 곳은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공연장이었어요. 러시아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했는데, 무대에서 탱크가 돌고 10마리의 말이 거니는 규모였습니다.” 그 후로 예술단은 밤마다 이동해 귀국길에 올랐다. 평양으로 돌아온 후에 전황을 비롯하여 최승희무용단원들은 춤연습을 하다가도 폭격이 오면 최승희연구소의 지하실에 피하곤 하였다. 전쟁의 와중에 인민군이 점령한 서울 구민관에서 ‘해방의 노래’를 공연했다. 어수선하고 자유롭게 나다니지도 못했는데 장추화, 송범 등이 구경을 왔었다. 전황은 군인으로 위장하고 동양극장에 출연하는 전옥의 충정로 집으로 갔는데, 누나는 없고 그 집은 민청사무실로 사용 중이었다. 전황은 이산의 고통을 억누르며 ‘초립동’과 ‘목동과 처녀’를 추었다. 춤출 때는 이산의 고통을 잊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평양으로 돌아가 가족과 만날 꿈만 꾸었다. 1950년 8월 예술단은 광주. 목포(여기서 이매방이 안성희와 전황의 춤을 봤다는 생전 증언을 들었다), 군산을 순회공연하고 평양으로 돌아가던 길인 조치원에서 북한 군표와 남한 돈을 한 뭉치씩 받았다. 전황은 남한 순회공연을 하다 철수 명령을 받고 평양으로 되돌아가던 중 최승희의 딸 안성희 일행과 헤어졌다. 중도에 안성희는 인민군에 붙잡히지만 최승희의 딸이어서 평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가을 전황은 최승희딸 안성희와 헤어져 빨치산 잔류들과 산을 타고 군화 소리 난무하는 평양에 겨우 도착하였다. "최승희 무용연구소로 가니 러시아에서 공연할 때 사용하던 물건들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러나 가족은 없었다. 양복과 구두 등을 챙겨 스승 최승희가 있는 자강도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때 전황의 운명은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평안도 석암에서 과일을 사러 가다 예술단 악사가족을 만났다. 그들은 "최승희도 여기 있다. 자강도로 가면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누나가 있는 남한으로 가라”하였다. 그때 안성희와 김백봉도 만났다. 그리하여 전황은 석암의 악사네 집 지하에 숨어버렸다. 순수예술가로 살 길은 남한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가는 산길에서 사흘을 굶고 허기져 살길이 막막해 허리띠를 나무에 걸었다. 목을 매 자살하려는 순간에 드라마같은 일이 생겼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연주자 최옥삼(가야금산조 명인, 최승희 반주자)이 "어떡하든 살아야 한다”며 말렸다.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 숨어 있다가 숨은 사람들 대표로 전황이 미국 제일기갑사단 대적선전대를 찾아가 "최승희 제자지만 전옥의 동생”이라 하여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1951년 1·4후퇴 때 평양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그때 조카 강효실(당시 20세)은 작가 이서구(백조가극단 작품 집필)가 지프차에 태워 서울로 보냈다. "충정로 누님댁에 가니 누님과 재혼한 매형 최일이 있더군요. 후에 누님댁은 트럭을 빌려 부산으로 피란가고 저는 국민제일 군위병으로 뽑혔으나 늑막염으로 군면제를 받고 뒤늦게 부산으로 갔죠.” 전옥은 백조가극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당대스타인 김승호, 허장강, 배삼룡, 고복수, 황금심 등 백조가극단장 전옥의 밥을 먹지 않은 이가 없었다. 작고 전에 현재 육군사관학교 뒤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에 배밭을 소유했는데 남편 최일이 훗날 그 땅을 많이 팔았다고 한다. 전쟁은 함흥부자인 전황의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고, 북한에 생활기반을 둔 채 남한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힘겨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중부터 안무가로 인정받은 남한생활 1951년 부산피난시절 전황은 한국민속무용연구소를 개소하여 전옥누님이 단장으로 있는 백조가극단과 무관하게 활동했다. 정인방이 전황을 찾아와 부산극장에서 공연할 무용극 〈처용랑〉의 마귀역할을 이인범(발레)이 사정으로 출연하지 못한다고 대신 출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대본도 없이 음악을 맡은 나운영의 집에 가 피아노곡을 듣고 안무하여 마귀옷을 입고 현대무용같은 발레를 추었는데, 안무를 잘했다는 평을 받았다. 1953년 박녹주, 박귀희, 김소희, 박초월, 임춘앵 등이 주축인 여성국악동호회(여성국극의 효시, 1948년 창단)에서 활동하는 최승희 반주악사였던 박성옥을 따라 동래온천장에서 창극연습에 참가하여 유치진 작 창극〈가야금〉 초연 때 아쟁(박성옥으로부터 이미 배웠음)을 연주하였다. 그때 전황은 박성옥의 연주를 돕다가 한영숙의 춤 〈가야금의 노래〉를 보는데 안무적인 관점에서 아쉬운 춤판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햇님창극단장 김주전이 한영숙에게 전황이 최승희 제자니 한번 시켜보라는 귀뜸을 주었다. 이 말을 들은 한영숙이 전황에게 안무해보라고 부탁해 인정받은 것이 오늘날까지 안무가로 자신감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특히 여성군무인 만큼 춤은 추지않고 안무에만 열중하여 여성국악동호회의 후신인 햇님창극단은 잘 나가게 되었고 전황은 안무가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작품 〈햇님달님〉에서 라이벌인 박귀희(햇님)·김소희(달님)가 노래하고 안무는 전황의 몫이었다. 국악을 듣는 귀가 있으니 다른 이가 일주일 걸릴 안무를 하루나 이틀에 완성했다. 동래온천장 공연은 자금이 넉넉해 신선놀음이었지만, 여성국극단이 예닐곱 개씩 생기다보니 서로 제살깎기식 경쟁을 했고 결국 해체를 거듭하다 국립창극단이 태동하게 되었다. 당시 출연료는 명창이 1만원, 악사는 9천원, 안무가는 6천원 정도 받았다. 돈을 벌게 된 23세 전황은 1951년 11월 이조판서를 지낸 집안의 딸 다섯 살 연하의 김봉선과 금정사에서 결혼하였다. 여성국극에 반한 동래여고 출신 김봉선이 햇님창극단 오디션에 뽑혀 무용수로 투입되면서 사귀다가 눈이 맞았었다. 처형이 예기 김강남월로 7세에 레코드를 취입한 천재소녀 명창이었다. 그가 소리한 뒤 순서에는 서로 무대에 나가길 꺼릴 정도였다고 하였다. 당시 누님 전옥은 예술가가 일찍 결혼하면 신세망친다고 반대했었지만 결혼 후에는 처가살이를 했다. 첫아이는 출생 직후 죽었고 5년 후 태어난 전미례(52·서울전미례 재즈무용단대표), 죽은 딸의 이름 ‘미례’를 다시 붙였다. 전황의 2남2녀 중 맏딸 전미례만 춤을 물려받았다. 펄펄 나는 힘과 예술적 열정을 미국 재즈유학에 쏟았고 국내 재즈무용계 무용학 박사 1호를 기록했다. 6·25 전쟁 후 부산에서 북한 출신들이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살 때 최승희 제자인 전황은 전옥의 신원보증으로 안무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당시 이인범, 송범은 활동하지 않았고, 김백봉도 북한출신의 최승희 제자라는 이유로 조용했었다.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터전이 국극판이었다. 김백봉, 강선영 등도 여성국극단에서 안무했었다. 국극에는 오프닝춤, 상징춤, 경사춤, 피날래춤 등 적어도 너댓 가지 춤이 필요했다. 전황은 국극을 안무하며 창을 계속 들었기에 귀명창이 되었다.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창을 들으며 누구보다 빨리 안무했다. 50여년 이상 국악을 들으며 입으로는 안 되지만 손하고 가슴 속으로는 연주가 가능했다. 〈벌에 쏘인 꽃〉 등 수많은 국극과 창극을 안무했다. 대표작은 첫 작품인 〈가야금〉.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우륵을 따라간 가실왕과 그를 사모한 배꽃아기의 사랑이야기 자체가 건전해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무용작품도 전황류 〈부채춤〉, 〈장구춤〉, 〈소고춤〉, 〈장검무〉, 무용극〈황우와 우미인〉, 〈시집가는 날〉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당시 명창 박귀희와 김소희는 형님아우 하면서 잘 지냈지만 서로 최고이고 싶어 했고, 서로 전황에게 하소연했었다. 박귀희의 명성이 더 앞섰기에 김소희는 늘 불만이었다. "내가 나이도 위고 소리도 잘 하는데 왜 밤낮 박귀희 다음에 김소희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박귀희는 스스로 김소희만큼 소리가 못하다는 걸 깨닫고 가야금병창으로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았고, 김소희는 판소리로 지정받았다. 북한출신이고 최승희의 제자라는 이유로 소외시켰지만 실력으로 춤을 인정 전황은 최승희 선생에게 배운 춤을 바탕으로 창작했으니 내 몸에서는 항시 최선생님의 춤냄새만 난다고 술회하였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자 무용만으론 생활비가 되지 않자 영화사 일도 하고 백조가극단도 봐주고 돈이 되는 일이면 창극단 안무도 하는 등 최승희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춤실력과 안무력을 바탕으로 바쁘게 살았다. 또한 늘 북한콤플렉스가 있었다. 예를 들어 흰 의상과 빨간 의상을 입고 추던 무용수들 가운데 빨간색이 가운데로 몰리는 춤이 나오면 임검석에서 보자고 하여 누가 안무했느냐? 왜 빨강색 의상이 가운데로 몰리느냐? 꼬치꼬치 따져 마음대로 창작할 수 없었다. 또 남한 무용가들은 '이북에서 온 주제에 어디를 넘봐' 하는 식으로 질투하기도 했다. 부산피난시절 여성국극단 안무를 할 때 "전황이가 누구냐” 고 하더니 무조건 쇠고랑을 채운 적도 있었다.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간 그에게 "왜 남한으로 넘어왔느냐”면서 간첩취급을 했다. 물론 매번 누나 전옥이 보증을 서서 풀려났지만 그 후로도 국가보안법으로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은 북한출신임을 숨겼지만 전황은 스스로 떳떳하게 밝히곤 하였다. 자신뿐만 아니라 당시 김백봉과 남편 안제승도 종로경찰서에 불려갔으며 북한출신이어서 차별도 받았다. 올림픽 때 안무를 맡고 싶었는데, '전황이는 이북에서 왔다'며 그를 추천하지 않아 참여를 못한 적도 있었다. 초기의 무용가들은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행사안무를 추천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외롭게 홀로 투쟁하며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자리를 얻었다. 문화관광부 등 정부에서는 실력 있다고 알아주었다. 한국민속예술단원 및 안무자로서의 왕성한 해외활동 1958년 국극의 전성기까지 안무가로 활동한 전황은 결혼 후 서울로 이주하여, 1963년 광화문에 신흥무용학원을 내었고, 체계적인 춤교육 덕분에 조교를 두 명이나 두고 지도하였다. 1963년 서울민속무용단 활동과 더불어 예그린 무용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합창단, 무용단, 관현악단 등 300명의 단원들은 운영에 어려움이 있어 해체와 재창단을 거듭하며 예그린도 100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말기 멤버로 동참한 전황은 권려성의 후임으로 예그린 무용부장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 경축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총감독 및 안무·연출을 맡았으며, 1964년에는 명동국립극장에서 이틀 동안 제1회 춤 발표회를 가졌다. 이틀 공연은 대박이었다. 흥행사가 붙은 공연은 대전에도 초청됐다. 당시 김백봉은 필동에 연구소를 차렸고, 장추화의 제자 송범은 현대무용을 추었다. 그 후에도 1967년까지 매년 전황 민속무용 발표회를 가졌다. 1967년 정일권 국무총리 때도 계속 민속예술단에서 활동했다. 1968년 한국민속예술단 지도위원 및 출연자로 멕시코 올림픽·일본 공연을 하였다. 송범, 김백봉, 김문숙, 전황 등과 함께 조택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그들은 세계 각국을 순회공연을 하였다. 그 때 전황은 〈부채춤〉 〈농악〉 〈장고춤〉 〈무당춤〉 등 동적인 춤을 안무하고 추었다. 1970년 정부문화사절단 지도위원으로 일본 및 동남아 순회공연을 하였고, 1971년 정부문화사절단으로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 레바논 일본 등 순회공연, 1972년 정부문화사절단 무용총감독으로 유럽·중동·아프리카·동남아 등 24개국 순회공연, 1973년 문공부 파견 일본 신주쿠 고마극장에서 〈춘향전〉 안무와 국립창극단 〈배비장〉 안무를 하였다. 1976년 국립무용단 지도위원으로 문공부 파견으로 일본 도쿄국제극장 쇼치구가무단의 〈심청전〉을 안무하였다. 1977년 정부문화사절단 유럽 11개국 순회공연을 가졌다. 1978년 하와이이민 75주년 기념 한국민속예술단 연출·안무를 맡았으며, 1981년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기념 공연 및 대예술제에 연출·안무로 농악을 올렸다. 이처럼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국가적 행사와 해외공연의 안무자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무용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특히 전국적으로 흩어진 〈농악〉을 무대화한 주인공이 바로 전황이다. 한두 시간씩 치는 농악을 15분 정도로 압축해 많은 가락과 춤사위를 정리했다. 김덕수와 최종실 등 사물놀이패가 구성되기 전 좌도농악과 우도농악의 좋은 점을 뽑아 50~60명이 오르는 무대농악으로 구성했다. 처음 선보인 건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공연에서다. 교방춤과 마당춤을 극장예술로 다듬으면서 극장양식의 변화를 주도했다. 한국국악협회 이사장과 국립창극단 단장을 역임한 전황 최승희 제자로 안무가와 무용가로 활동한 전황이 어찌하여 무용협회 활동을 하지 않고 국악협회로 발을 돌렸을까 의문이 든다. 1964년 한국국악협회 무용분과위원장을 맡고 14년 동안 국악협회 활동을 하다가 1988부터 1991까지 한국국악협회부이사장으로 활동한 배경도 무용계에서는 북한출신이라는 배타성, 남성이 남성춤을 추지 않고 여성춤에만 치중하는 모습, 성정체성의 문제를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이 된 그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하는 대한민국국악제를 협회 주최로 이끌어 오는 등 40여 년 동안 한국국악협회에서 역동적인 남성춤을 안무하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타악과 현악과 성악을 터득하여 국악계에서 활동한 것이다. 국립창극단과의 인연은 1973년 〈배비장〉 안무를 맡으면서부터였다. 물론 여성국악창극단이 활동한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창극에서의 역할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이어서 1999년 중국 베이징 국극공연 〈황진이〉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그해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고법(鼓法) 이수자가 되었다. 고법은 창극단 시절 한일섭과 정철호로부터 조금씩 배워 연주에 참여했던 것을 인정받아 이수증을 받게 된 것이다. 2000년 창작민요극〈진도에 또 하나의 고려 있었네〉와 창무극〈해상왕 장보고〉를 안무했다. 일본어능력시험 1급 자격도 땄다. 일본공연을 자주 가고 일본작품 〈제비〉도 번역할 정도였다. 2002년 문화재청 파견 한·일문화교류의 해 〈천년의 소리〉 일본순회공연 예술총감독도 맡았다. 그리고 2004년 국립창극단 자문위원을 위촉받아 자문하였고,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겸임교수로 10년을 출강하여 마지막까지 춤열정을 후학들에게 쏟았다. 그리고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의 대상으로 춤과 국악 생애를 증언하였다. 다만 장년 이후 춤을 많이 추지 않고 안무를 주로 했기 때문에 제자가 많지만 어려서부터 춤을 배워온 윤성주와 딸 전미례 등이 있고 말년의 제자로는 김지원, 백선희 등이 있을 뿐이다. 전황의 예술세계 전황은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문하에서 사사했고, 1951년 한국민속무용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64년 일본 동경올림픽 경축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총감독과 안무연출을 맡는 등 정부 문화사절단으로 각국에서 '춘향전', '심청전' 등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한국민속예술단원과 안무자로 유럽 3회, 동남아시아 2회, 미국, 러시아, 중국, 중동, 일본 등 당시엔 한 번 나가기도 힘들다는 외국 공연을 수십 차례 다녔다. 덕분에 국민훈장인 동백장도 받았다. 1988년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거쳐 199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1996~97년 국립중앙극장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무용계뿐만 아니라 국악계에서도 널리 업적을 남겼다. 전황이 남긴 예술혼과 예술철학은 몇 가지 굵직한 교훈과 한국공연예술사에 족적을 남겼다. 첫째, 최승희의 가르침에서 터득한 창작력과 뛰어난 안무력을 바탕으로 민간예술을 민족적 무대예술로 승화시킨 점이다. "저, 최승희 제자예요. 최승희! 최승희 무혼(舞魂)의 흐름이 제 춤에 들어 있다고요. 그 자부심 하나로 이 땅에서 타협하지 않고 외롭게 홀로 투쟁하며 살았습니다.” 음악적 소양이 뛰어났던 최승희가 전통악기를 개량한 악기반주에 맞춰 민족무용과 국극을 안무하고 창작하던 것을 이어받은 전황은 안무력과 창작력을 발휘하여 ‘마당농악’을 ‘무대농악’, ‘민간춤’을 ‘무대춤’ 등으로 민족무대예술을 발전시켰다. 둘째, 북한출신 콤플렉스를 딛고 일어서 이념갈등 속에서도 남한예술가로 자리매김하며 본인만의 순수공연예술작품을 창작하였다. "북한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빨간 의상을 입고 추던 무용수들 가운데로 몰리는 춤이 나오면 임검석에서 저를 보자고 하여 마음대로 창작할 수도 없었죠.” 때로는 쇠고랑도 채웠고,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간첩취급도 당하는 등 북한출신이어서 차별도 많이 받았으며, 북으로 넘어간 최승희 제자라는 이유로 편견이 상존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운 고향마저 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을 펼칠 수 있는 남한을 택했고, 굴하지 않은 신념으로 자신만의 예술혼을 살려보고자 각종 공연예술에 전념하였다. 셋째, 여성편향적 경향과 비중에 편향된 사조에 맞서 외롭게 역동적인 남성예술의 복원과 추구에 앞장서 남녀예술의 균형발전과 공존사상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최승희 선생께 남성춤, 여성춤을 확연히 구분해 배웠는데, 왜 남성들이 그리 여성스럽게 추는지‥‥‥‥” 여성춤은 곱고 이쁘지만 남자는 남자다운 춤을 추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본인 스스로도 살풀이춤, 입춤같은 춤을 춘 적도 없고 장검무, 소고춤, 장고춤, 농악춤 등 남성성이 강한 춤을 추고 가르쳤다. 혼자의 힘으로 대세를 역전시키기는 역부족이었지만 그는 남성은 치마(여성)춤만 추지 말고 바지춤을 추어야한다며 남성예술과 여성예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일념으로 살았다. 하지만 전황은 이매방이 가장 춤을 잘 춘다고 했다. 60여년 친구이지만 전황은 남자가 여자처럼 춤추는 게 싫었다. 최승희 문하에서 수년 동안 남성춤과 여성춤을 구분해야 한다는 사상이 골수에 박힌 그는 춤추는 남성들의 대부분이 여성화된 춤을 추는 게 못마땅했다. 그때부터 그는 무대가 좋지만 무대에 가급적 서지 않았다. 여성적인 춤을 추는 이들과 동일시되는 게 싫었다. 게다가 딸 전미례가 아버지의 성정체성과 취향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을 해 그때부터는 가끔 서던 무대마저 무대화장을 전혀 하지 않다가 전두환 대통령취임식 때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넷째, 한민족예술의 본질인 가무악(歌舞樂) 일체사상과 악무극(樂舞劇) 합체사상을 표방하고 심어주었다. "국악을 알아야 무용을 창작할 수 있어! 특히 장단의 귀가 뚫려야 산조를 들을 줄 알아야 춤을 만들 수 있지!” 우리 민족은 원래 국악따로 무용따로가 없이 악가무 일체의 예술적 특성을 지닌 민족이다. 전황은 이러한 민족예술과 춤의 본질적 특성을 올곧게 지닌 예술가였다. 서구예술의 전공분화시대에서 소외됨을 무릅쓰고 총체예술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하였다. 전황이 한국예술계에 남긴 것 한국 신무용의 핵심이 최승희에서 비롯됐기에 스승 최승희에 대한 기억을 소상히 간직한 전황의 자부심은 귀하고도 올곧았다. 최근까지 남한에 생존해있는 최승희의 대표제자로는 김백봉과 전황뿐이었는데, 유일한 남자제자인 전황선생님의 작고는 신무용시대의 대표적인 적통자이며 전승자의 인맥단절을 의미한다. 그는 평생 최승희의 춤사상을 실천하고 끊임없이 남성춤을 추구해온 근대무용의 산증인이었으며, 무대농악의 창시자이고 국극과 창극에서도 영원한 안무자로 자리매김하여 국악계의 수장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등 한국 근대예술사의 한 획을 긋고 떠났다. 끝으로 전황은 예술계의 간디라는 생각이 든다.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 무저항, 평화주의자이였듯이, 전황은 빼어난 외모와 타고난 스타집안의 피를 이어받았고 당시 세계적인 한국무용가 최승희의 남성제자였기에 한국무용계에서 스타반열과 직책에 오를 수도 있었지만, 여러 정체성 문제로 혼돈의 시대를 살면서도 묵묵히 세태에 복종하지 않았고, 이념전쟁의 희생양이었지만 본인만의 색깔과 예술혼을 불사르며 국가, 사회, 문화계에 무언의 항거를 보여주었다. 국악계로 발을 돌려 커다란 족적을 남기면서 끝까지 무용계를 탓하지 않았다. "전황류 소고춤, 전황류 검무, 전황류 쌍검무, 전황류 농악을 만들었지만 최승희 선생의 혼이 들어가 있다는 거죠. 남자는 남자답게 씩씩하게 ! 그래서 저는 절대로 무대에 오를 때 화장하지 않았습니다. 미례가 나의 성정체성에 의심을 품을 때부터 완전히 화장을 그만두었죠.”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아쉬움도 남는 법이어서 전황선생님이 마지막 남긴 말씀이 떠오른다. "피리 등 관악기만 못해보고 타악과 현악은 웬만큼 해봤지! 그런데 아쉬움이라면 거문고 산조를 못해본 것이 가장 한이 맺혀! 술대로 현을 드르렁 긁는 소리가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멋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수상〉국무총리표창(68년), 문화공보부장관 표창(69·70·71·72년), 국민훈장 동백장(73년), 문화공보부장관 감사장(81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공로패(82년), 한국국악협회 국악대상(98년), 문화재청 공로 감사장(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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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최선의 산수(傘壽)기념 창작춤 〈맥의 터〉전통과 창작 아우른 노장의 춤 한마당 7월 5일 밤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원로들과 젊은이들까지 한여름 밤의 객석은 만원을 이루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최선 예능보유자의 산수(傘壽, 80세)를 기념하기 위해 제자들이 마련한 춤판은 전통춤판이 아니라 뜻밖의 창작춤 무대였다. 더구나 호남살풀이춤보존회(회장 장인숙) 회원들이 주최·주관한 공연이어서 당연히 제자들이 모든 스태프로 참여하는 스승에게 바치는 봉무(奉舞)무대 임에도 대본, 안무, 구성, 총감독이 80세를 넘긴 최선이어서, 처음엔 당사자의 욕심인가하고 의아 했었다. 작품내용은 어린 시절 춤에 입문하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평생 춤만 추며 살아온 소재를 모티브로 만든 최선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러다 보니 대본과 안무, 총감독까지 하면서 ‘전북 춤맥의 터전’이라는 뜻으로 ‘맥의 터’라는 제목까지 본인이 붙인 배경을 납득할 수 있었다. 최선은 3막으로 구성된 작품에 무려 6번에 걸쳐 출연하면서 전통춤과 창작춤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주역 무용수로서의 역할을 소화해냈다. 몸놀림이 젊은이들 못지않았고 감정표현력, 연기력과 무대 장악력까지 뛰어나 관객을 압도하면서 마지막 장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서 손수건을 적시며 흐느끼는 소리마저 간간이 들려왔다. 막이 오르고 최선의 춤인생 영상에 이어 첫 등장은 의외로 어린 아이(김찬우)가 한복 입은 어머니(김정자) 손에 이끌려 천천히 걸어 나와 무대 앞을 가로질러 허튼춤으로 한 바퀴 돌아 인계하듯이 인사하고 퇴장하는 장면이었다. 1943년 8살 때 춤추고 멋내기를 좋아하던 아들(최선)을 데리고 전라북도 전주에 최초로 현대무용과 발레를 도입한 무용가 김미화(일본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와 최승희 제자)의 연구소를 찾아가는 최선 어머니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을 예견하는 극적인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어 호남살풀이춤과 함께 지정된 동초수건춤을 최지원과 이수자들이 군무로 선보였다. 이 춤은 해방 후 전동성당 옆에서 전동권번에서 이추월로 부터 전수받은 전통춤이다. 이추월의 조선춤들이 오늘날 전북 특히 전주지역에 최선과 뒤를 이어 기방계 전통춤의 춤맥을 잇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4장으로 구성된 2막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싹 티우고 꽃피워 열매 맺어 뿌리내린 민족의 한과 혼의 결정체인 전통춤의 정립과 전승과정을 그렸다. 1장은 ‘연가(戀歌)’와 부채입춤, 2장은 어린 시절의 아동춤과 엿장수의 가위춤, 3장은 대감놀이 무당춤과 무당군무, 4장은 특별한 창작무대로 깃발춤, 장대춤, 가면춤의 8인 군무에 이어 남성 4인의 한국창작춤과 최선의 합동춤이었다. 1장 연가는 최선이 1960년 초 개인발표회에서 처음 무대에 올렸던 작품으로 성춘향과 이도령의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춤으로 당시 소녀 김광숙과 이길주와 함께 추던 춤이었다. 이번 무대에서는 최선과 장인숙의 듀엣으로 연가를 추었는데 최선의 노익장(老益壯)이 아닌 젊은 청춘남녀의 애틋한 분위기를 여전히 느끼게 하였다. 2장은 천진난만한 아동 유희와 엿장수와의 합동춤으로 최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게 하였다. 3장 대감놀이 무당춤도 최선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다. 홍철릭(紅天翼)에 홍빗갓을 쓰고 오방기를 든 주무당 최선의 청신무 이어 조무들의 방울·부채춤 2인무와 최선의 재등장으로 3인무로 펼쳐진 도약과 회전의 접신무는 강렬한 강신의식을 보는 듯했다. 4장은 6.25 한국전쟁의 영상으로 전쟁과 폐허, 피난과 굶주림으로 처참했던 당시에도 불굴의 정신으로 최선이 춤으로 살아남는 강인한 예술세계를 보여주었다. 남성들만 출연하는 이스트기네스 비보이단의 강렬한 비트의 음악과 깃발, 장대, 가면을 이용한 역동적인 몸짓으로 당시 남북의 이념 갈등구조 속에서 극대극의 사회상을 춤으로 표현하였다. 최선은 그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오직 춤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을 군무 속에서 독무로 오버랩(overlap)하며 고뇌에 찬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남성무용단이 펼치는 4인 창작군무 다음에 최선의 독무가 이어졌다. 중년기의 애환과 한을 극복하고 외길 춤 인생의 여정을 표현하는, 대각선 외줄 조명을 따라 긴 천을 즈려밟고 지나갔다 다시 나와 몸부림치다 등지고 뒷막을 향해 한손을 쳐들고 비척거리면서도 한걸음 또 한걸음 나아가는 장면은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제3막은 1장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한 영상아래 꽃길 따라 긴 수건춤, 어둠 속의 쌍등춤과 외등춤, 2장에 무대중앙에 높은 사각단 위의 백발노인(최선)의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춤, 단아래의 수건춤 3인무, 남성4인무, 수건 든 비보잉(B-boying) 군무에 이어 다시 등단한 백발노인과 단아래 제자들과 함께 호남살풀이춤 군무로 마무리하였다. 하얀 수염과 상투머리, 도포를 입은 노인이 호리병을 들고 앉아서 술을 마시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고뇌에 찬 신로심불로춤은 80세를 넘긴 회한의 춤이지만, 수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조선춤의 숨결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가는 신선(神仙)의 춤을 표현한 것이다. 이어 8명의 비보이들이 개량한복에 수건을 들고 추는 군무가 선보였다. 처음에 서서 추는 톱록(toprock), 바닥에서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주로 발을 움직이는 다운록(downrock)과 다리를 벌린 채 어깨와 등을 이용해 회전하는 윈드밀(windmill), 짧은 시간차를 두고 상체와 하체를 번갈아 가며 움직이는 스와이프(swipe)와 몸을 잠시 정지하는 프리즈(freezes) 등으로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마지막으로 사각현의 단 위에 오른 백발노인 최선(崔善)은 그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보유자이기에 이수자들과 함께 호남살풀이춤을 보여주면서 무선(舞仙)같은 면모를 한껏 발휘했다. <곰삭고 가라앉히는 전통춤과 확산하고 뜨는 창작춤과는 성격이 달라 병행하기 쉽지 않는데 이번 공연은 창작춤의 면모와 감정표현과 연기력도 발휘하여 전통춤만 추는 편견을 불식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80이 넘은 나이에도 무대를 주름잡고 6번씩이나 출연하여 주역 무용수로서 청년 같은 정신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무대였다. 옥에 티라면 두 가지 등춤이 유사하여 어둠 속에 신비감도 주었지만 10분 남짓 길게 추다 보니 지루했고, 창작무대라 하지만 순수 창작품이라기보다는 전통과 창작의 퓨전으로 전통춤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산수기념 무대는 몇 가지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단순히 개인무대라기보다 전북 전통춤계의 면면을 보여주는 자리였고, 그가 전북 무형문화재춤의 대가임을 확인시켜주는 무대였으며, 가장 오랜 세월 전북춤을 지켜온 지킴이임을 증명하는 공연이었다. 최선의 업적이라면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고(원광대 이길주, 광주대 허순선, 충남대 정은혜, 영남대 김희숙 등)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인간문화재를 배출시킨 점이다. 현재 전북에서 김광숙(예기무), 이길주(호남산조춤), 문정근(전라삼현승무), 서울에서 고선아(한량무), 이북오도에서 김나현(화관무) 등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그의 제자들이다. 이매방류 승무의 명인 채상묵도 어린 시절부터 춤이 바탕을 지도받은 수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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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1인당 300만원 창작준비금 지원, 8일부터 접수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8일부터 21일까지 하반기 '창작준비금지원사업-창작디딤돌' 신청을 받는다.창작디딤돌은 예술인이 경제적인 이유로 예술 활동을 중단하지 않도록 1인당 30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매년 상·하반기 2회로 진행하며, 격년으로 지원할 수 있다. 지난 3월 진행한 상반기 창작디딤돌에 이어 하반기에도 1만명을 지원할 예정이다.예술인 복지법상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하고(사업공고일 기준 유효자), 신청인의 소득인정액이 당해 연도 기준 중위소득 120% 이내인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다.소득인정액에 따른 배점제로 수혜자를 선정한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통해 조사한 신청인의 소득인정액이 당해연도 기준 중위소득 120% 이내(1인 가구 249만3470원)인 예술인 중 소득이 적은 순으로 지원한다. 원로예술인(만 70세 이상)과 장애예술인은 배점제를 적용하지 않고 자격요건 충족 시 우선 선정한다.창작준비금시스템을 통해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우편 접수도 진행하며, 이는 8일부터 15일까지 받는다.(우편 신청기간 내 우체국 소인분 확인) 결과 발표는 11월 중순에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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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악진흥예술연합 창립, 이영희 초대 이사장 선출(사)한국국악진흥예술연합(이하 한진연)은 16일 오후 2시 국가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이영희(무형문화유산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 창립총회 공동 준비 위원장을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이 단체는 지난 6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악진흥법 입법 활동을 주도해 온 전, 한국국악협회 임웅수 이사장을 비롯해 국악계, 학계, 문화계 전문가 중심으로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 출범하게 된 것이다. 총회에서는 앞으로 K_컬처의 뿌리이자 중심인 국악계 제2 도약을 위한 국악진흥법 국회 통과 기념 도시 순회 축하공연 등 다양한 문화운동을 펼쳐 나갈 계획을 밝혔다. 더불어 "철저한 문제의식과 조직진단 및 성찰을 통한 성숙한 국악계의 질서 유지와 사업을 펼친다.”고 하고 "기성세대 국악인의 전문성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신세대 국악인과 국내 정상급 문화기획자 영입 등 수평적이고 열린 사고로 다양한 국악 대중화를 위한 문화운동을 펼쳐나간다.”고 입을 모았다. 발기 위원은 국악, 문화, 학계 종사자로 김종규·이영희·신영희·고광희·임웅수 위원 포함 5인의 공동 추진위원장과 이호연·양길순·송재영·이영희·김세종·조연섭·이수현 7인의 공동 부위원장이 참여하여 의지를 표명했다. 출범식에서 김종규(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창립총회 추진위원장은 인사말에서 "국악진흥법은 무려 18년 세월을 준비해온 국악인의 소망이자 꿈이었다. 굴하지 않는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이루어낸 승리”라고 그동안 노고에 격려를 표했다. 이영희(국가무형문화유산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 초대 이사장은 수락연설에서 "한국국악진흥예술연합은 국악진흥법 제정이란 국악 중흥기를 맞아, 짜임새 있는 국악정책으로, 국악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며, 국악의 산업화와 활성화를 통하여 국악이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힘을 기르자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회 등 기관 교류를 총괄하고 있는 前 한국국악협회 임웅수 이사장은 "민속음악의 위상을 국민들께 인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만치 계획이나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을 내는데 힘을 더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국악계 한 원로는 "1994년 국악의 해, 국악진흥의 좋은 기회를 갈등으로 하여 기념비나 관련 훈장 수여 하나도 거두지 못하고 보낸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번에는 민속악계가 업적을 내야 한다"고 기대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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