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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연주자 이주항, '일월당 프로젝트' 앨범 발매대금연주자 이주항이 '일월당(日月當) 프로젝트'로 세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이번 정규앨범의 제목은 '부분과 전체(BALANCE)'다. 이주항을 중심으로 전통음악의 기반 위에 음악가·안무가·영상감독·음향감독으로 이뤄진 프로젝트 앨범이다.총 10곡이 수록됐다. 감성과 낭만의 기조 속에 국악, 일렉트로, 힙합, 발라드 등 다양한 사운드로 표현된 음악들로 가득차 있다.이주항은 "해와 달, 그 사이에 이루어지는 자연과 인간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음원·공연·영상 등 전방위적 콘텐츠 활동을 통해 만물의 상생을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며 "음악 장르를 구분짓기보다 연결성을 발견해 불균형 속의 자연스러움을 만들어낸 음악"이라고 소개했다.타이틀곡 '마음의 눈'은 바버렛츠의 경선(Sunnie)이 피처링과 작곡, 이삭N지연의 이삭이 작사에 참여했다.수록곡 '사라진 경계'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6호 살풀이춤 보유자인 이은주 교수, '비밀의 통로'·'꿈속의 망상'은 에일리언(Alienz)이 안무가로 참여해 뮤직비디오 영상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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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주년' 경기민요의 역사, 묵계월 명인국립무형유산원은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였던 고(故) 묵계월(본명 이경옥)의 삶을 회고하는 공연 '명인 오마주'를 27일 얼쑤마루 대공연장에서 연다. 명인 오마주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작고 명인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기획 공연이다. 이번 공연으로 일평생동안 경기소리를 배우고 전하며 살았던 묵계월 명인의 흔적들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재조명하고자 묵계월의 제자들이 무대에 올라 경기민요 '경복궁타령', '뱃노래', '창부타령' 등을 들려준다. 이달 개최되는 「명인오마주」 공연은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였던 故 묵계월 명인을 회고하는 무대로 마련되었다. 묵계월 명인은 서울 태생으로 11세 때부터 이광식, 주수봉, 최정식 등에게 시조, 가사, 잡가, 경기민요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이문원에게 삼설기, 짝타령 등을 배워 오늘날 송서·율창의 맥을 전하였다. 또한 안비취, 이은주 명창과 함께 한국민요연구회를 결성하여 경기민요를 연구하고 경기소리의 활성화를 위해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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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예술원법 >의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하는 문인 성명서” 발표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문인 744명이 함께 한 "< 대한민국예술원법 >의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하는 문인 성명서”가 발표됐다. 이번 서명은 8월 9일부터 22일까지 2주간 진행되었다. 성명을 통해 문인들은 현재 문제가 제기된 "대한민국예술원법 5조 회원의 선출, 6조 회원의 임기, 7조 회원의 대우 조항의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했다. 이들은 먼저 현재 기존 예술원 회원에게 있는 신입 회원 선출권을 공신력 있는 외부 추천위원회에 넘겨 불필요한 오해와 잡음을 없앨 것을 요구했다. 또한 2019년 법 개정을 통해 ‘평생’으로 변경된 회원의 임기를 4년 단임제로 바꿀 것을 촉구했다. 더불어 매달 180만 원씩 지급되는 예술원 회원의 정액수당 등 대우와 관련된 조항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바꿔 예술원의 독립성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앞서 ‘한국작가회의’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현장소통위원회’ 역시 < 대한민국예술원 >의 전면적인 개혁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문인 성명서의 실무를 맡은 소설가 이기호에 따르면 "2,30대 젊은 문인들의 참여도가 특히 높았으며, 소속되어 있는 작가단체나 지역, 장르와 상관없이 < 대한민국예술원 >에 대한 개혁 의지가 높았다”고 밝혔다. 또한 "참여한 문인 744명 외에도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등 329명의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성명서 발표에 동참”해주었다고 전했다. 성명서에 동참한 문인들은 이를 계기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문체부에서 더욱 적극적인 < 대한민국예술원법 > 개정 노력에 나서줄 것을 촉구하기로 했다. 문인 성명서 전문과 참여한 문인 744명의 명단, 미술, 음악, 영화, 연극 등 예술인, 시민 329명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 대한민국예술원법 >의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하는 문인 성명서 대한민국예술원은 예술창작에 현저한 공적이 있는 예술가를 우대·지원하고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을 행함으로써 예술발전에 이바지하게 한다는 의도로 지난 1954년 설립되었다. 문학·미술·음악·연극,영화,무용 등 총 4개 분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91명의 회원이 소속되어 있다. 한 해 지원되는 국가 예산은 32억 원이 넘으며, 이 예산의 대부분은 회원 개개인에게 매달 180만 원씩 지급되는 정액수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예술원이 지금과 같은 제도로 운영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다음과 같이 < 대한민국예술원법 >의 개정을 요구한다. 1. 대한민국예술원법 제5조 (회원의 선출)의 개정을 요구한다.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의 신입회원이 되려면 본인이 입회원서를 내거나 기관이나 단체가 추천한 자를 기존 회원이 심의, 전체 회원 2/3 이상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말은 제 아무리 예술적 공헌이 뛰어나다고 해도 기존 회원들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입회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예술적 공헌보다도 기존 회원들과의 ‘친교’가 회원 선출의 더 중요한 잣대가 되어 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회원 대다수가 특정 학교, 특정 장르 출신이라는 오명도 쌓고 있다. 이를 전면 개정해서 기존 회원들만의 의결이 아닌, 별도로 구성된 외부 추천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를 거칠 것을 요구한다. 2. 대한민국예술원법 제6조 (회원의 임기 등) 또한 개정해야 한다.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의 임기는 ‘평생’이다. 원래 연임제였던 것이 2019년 11월 법 개정을 통해 ‘평생’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그 어떤 공적 자리의 임기가 ‘평생’ 동안 보장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것은 전근대적인 ‘신분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회원의 임기를 ‘4년 단임제’로 바꿀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3. 대한민국예술원법 제7조 (회원의 대우)는 우리시대 예술의 위상과 역할에 맞게 개정되어야 한다.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은 매달 180만 원씩 정액수당을 지급받고 있다. 정액수당 외에도 각종 창작지원금도 지급되고 있다. 회원 중 대다수는 정년퇴직한 교수로 이미 국가 예산이 상당 부분 포함된 연금 혜택자들이다. 이런 예술계 상위 1% 회원들에게 또다시 국가 재정으로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이중지원이며 분배정의에 어긋난 특혜이다. 예술원 회원들의 명예는 수당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하여 예술의 독립성을 더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예술은 늘 ‘종결 없는 생성’을 추구한다. 해체하고 끊임없이 재구축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은 비로소 예술의 이름을 얻는다. 우리는 쉼 없이 변화하는 예술원을 원한다. 이것은 ‘세대’와 ‘공정’의 문제가 아닌 ‘상식’의 문제이다. 국가의 문화예술 예산 방향성은 언제나 새로운 것, 신인 쪽으로 집중돼야 한다. 그래야 정책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대한민국예술원 >의 진정한 개혁과 < 대한민국예술원법 >의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한다. 소설 (총 273명) 강나윤 강대호 강동수 강화길 강희영 고광률 고은규 고은주 고하경 구병모 권상혁 권여선 권오단 권정현 권현옥 김강 김경 김경란 김기창 김나경 김나은 김나정 김남일 김다경 김도연 김동하 김미월 김민경 김민효 김병운 김서령 김선민 김설아 김성은 김소연 김순정 김승미 김애란 김유담 김의경 김이설 김이정 김이환 김인철 김재영 김정란 김정진 김종호 김주욱 김지원 김한숙 김해솔 김현주 김현진 김혜나 김혜원 김호연 김휘 김희선 김희진 나푸름 노은지 도수영 도재경 라유경 류원 명지현 문경민 문미순 문지혁 문진영 문혜정 민병훈 박경희 박문구 박민정 박사랑 박상영 박선우 박솔뫼 박이수 박인 박일우 박일재현 박정윤 박종규 박지음 박향 박형서 박희주 반수연 변영희 배길남 배상열 배이유 백가흠 샤무아 서성옥 서영주 서용좌 성민선 성보경 성은영 성지혜 손현주 손홍규 송경아 송미성 송지은 신상진 신승철 신종석 신호철 심너울 심봉순 심아진 심이슬 심현서 안보윤 안이희옥 안정희 안준원 안지숙 양난영 양선형 양정규 양진 양태석 염승숙 예소연 오선호 오정연 오현종 우다영 원종우 위단비 위수정 유경숙 유시연 윤성희 윤영 윤재룡 은미희 이가현 이갑수 이경 이경희 이기호 이만교 이만영 이무성 이미란 이미상 이병렬 이병순 이삼교 이상균 이상실 이상우 이서아 이서영 이선영 이선웅 이수경 이수안 이순원 이승은 이시도 이시백 이시은 이신조 이연초 이영미 이용석 이은선 이장욱 이재경 이재은 이정은 이정임 이주란 이지 이진리 이채형 이춘길 이태형 이현석 이현수 이현신 이후경 이희종 임경선 임국영 임리연 임성순 임수정 임자경 임현 장글바우 장류진 장은진 장정희 전민식 전삼혜 전성태 정경숙 정광모 정병근 정보라 정소현 정아은 정여랑 정영선 정영수 정인 정지아 정지향 정진리 정진새 정진영 정태언 정현석 조선희 조수경 조승미 조영주 조우리 조유리 조재영 조진연 조진주 주수자 지은 진보경 차영민 천운영 천희란 최광 최민초 최성각 최수경 최시은 최영선 최예은 최용탁 최유안 최은미 최은영 최정화 최정희 최지송 최지연 최진영 최형아 하명희 하아무 하창수 한숙현 한의연 한지혜 한차현 함정임 해도연 해이수 허희정 헤이나 현윤수 홍명진 황규석 황시운 황정은 황지운 황충상 시 (총 310명) 강경아 강대선 강덕환 강봉덕 강상돈 강성은 강회진 고경자 고명재 고주희 공정배 구경리 국중홍 권기만 권누리 권선희 권혁소 김건영 김경선 김경후 김광명 김규중 김근 김나림다 김남규 김도수 김령 김명기 김명수 김미령 김민정 김민지 김별 김상혁 김석영 김선오 김성신 김성철 김소연 김소현 김수상 김숙희 김시온 김신숙 김영교 김영란 김영삼 김완 김윤선 김윤현 김은경 김은령 김은선 김은아 김은옥 김은우 김이강 김이하 김자현 김재룡 김정원 김주대 김중일 김지영 김지혜 김진희 김차성 김창균 김태일 김태형 김행숙 김현서 김형미 김화정 나해철 나혜정 나희덕 남길순 남영희 노혜경 류경 류재만 문계봉 문숙 문정영 민구 민우 박경희 박구경 박덕선 박동민 박래흥 박민규 박민서 박상봉 박상수 박선영 박성우 박소영 박수자 박순원 박시영 박시하 박연준 박완호 박원희 박유진 박은영 박은정 박일만 박일환 박재연 박정선 박정애 박정원 박정호 박진형 박희주 배수연 백남이 백신종 백애송 백은선 변윤제 서승현 서요나 서윤후 서춘희 서현진 서효인 석민재 선안영 성영희 성윤석 손다예 손병걸 손세실리아 손음 손준호 손채은 송계숙 송승언 송승환 송정원 시랑 신미나 신철규 신해욱 신현수 심우기 안정원 양문규 양안다 양은정 양현주 여국현 염창권 오석화 오성인 오은 오은경 오의찬 옥빈 우대식 유계영 유순예 유승영 유승현 유진목 유현아 유희경 육근상 육호수 윤경덕 윤선중 윤은성 윤제림 윤진화 이경림 이경재 이계섭 이근화 이기성 이나임 이동우 이명재 이명희 이문복 이문숙 이문희 이범근 이병국 이병일 이부자 이사동 이산하 이상번 이상범 이서영 이선애 이설빈 이설야 이성미 이소암 이소호 이송희 이순 이승하 이시영 이언빈 이연희 이영숙 이용호 이우영 이원 이원석 이은옥 이응인 이재연 이재훈 이정록 이정모 이정연 이정훈 이종민 이진명 이창윤 이철경 이필 이해존 이혜미 이호균 이회시 임순빈 임영석 임영자 임유영 임의진 임재원 임주아 임지은 장석원 장우원 장은숙 장혜경 전결 전방욱 전비담 전선용 전숙 전해윤 전호석 전홍준 정고요 정병근 정소슬 정완희 정용기 정우영 정원도 정재호 정지담 정태화 정혜숙 조금숙 조길성 조병준 조성문 조세핀 조시현 조영란 조영욱 조찬연 조한일 조해주 조현정 조혜정 조희진 주영국 지연 차도하 차원선 차행득 채상우 천세진 최분임 최아영 최양숙 최원 최은수 최은숙 최재훈 최정진 최지원 최지인 최현우 추프랑카 한승태 한영희 함기석 함파도 허갑순 허림 허유미 현택훈 혜조스님 황규관 황인찬 황종권 희음 어린이청소년문학 (총 77명) 고승현 고현경 길상효 길지연 김경미 김경은 김국희 김근혜 김류 김명선 김선정 김선주 김숙 김연희 김영순 김유진 김정옥 김중미 김하늘 김하은 김한아 김해우 김혜연 노수미 류미원 문부일 박연수 박지숙 백미숙 백혜영 성주희 성현정 손홍기 신현수 심진규 안수자 안점옥 양인자 양정숙 오늘 유다정 유영소 윤소희 윤우주 윤해연 윤혜숙 은소홀 은이결 이라야 이봉직 이상화 이예숙 이유리 이은미 이정은 이창숙 이태훈 이퐁 이현주 이화영 임근희 임성규 임순옥 임정진 정미영 정세언 정순란 정이립 정인순 조오복 진윤호 진형민 최경선 최영란 최은영 최은희 한정영 에세이 (총 23명) 김잠출 김한울 남궁인 남동균 노지양 민경희 박시윤 박종숙 오지은 윤은주 윤이나 이길보라 이문자 이재성 이주연 이지상 장남수 정용수 정지음 천현우 최지은 하지수 황숙자 평론 (총 50명) 강지희 강희철 고명철 김동현 김태선 남승원 노태훈 류보선 박명순 박수연 박인성 박진 백지은 서희원 성상민 성현아 손남훈 신샛별 신형철 심진경 안지영 양경언 오길영 오창은 오혜진 우아름 이도흠 이동순 이소 이승한 이여로 이융희 이지용 임관수 임지훈 장은정 전병준 전영규 전혜진 정영훈 정홍수 조재룡 조형래 천정환 한수영 한영인 허윤 황정산 황호덕 홍기돈 희곡 (총 11명) 강한나 김옥미 김종성 박희도 원아영 이해경 임유진 전혜린 조현주 진주 허선혜 문인 총 744명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등 예술인, 시민 (총 329명) 강귀웅 강규수 강민수(미술) 강민우(출판) 강보름(연극) 강서현(미술) 강성원(미술) 강영임 강윤경(연극) 강윤정(게임,웹툰) 강윤지(전시,공연기획) 강지이(영화) 강현우(연극) 고소희 고연옥(연극) 고은기(영화) 고일권(웹툰,만화) 고철환 공민희 공상아(연극) 곽건우 구자창(작곡,작사가) 구태은(출판) 구형준(영화비평) 권명환(영화) 권칠인(영화) 권혁(시각예술) 권혜정 권희수(미술) 금수민(전통예술) 길정석(연극) 김경란(출판) 김경린 김경혜 김규민(영화) 김규종(영화평론) 김꽃비(영화) 김나연 김남훈(시각미술) 김다정(피아노) 김동국(연극) 김명화(영화) 김미아(연극) 김민경(연극) 김상철(문화정책) 김새싹(미술) 김선우 김성기 김성신(출판평론) 김성진(음악) 김성태(영화) 김성희 김성희(만화가) 김세환(연극) 김소연(영화비평) 김수정(영화) 김신일(음악) 김연재(연극) 김영순 김영표(연극) 김우용 김유진(디자인) 김윤미 김은정(미술) 김은정(연극) 김은혜 김인걸 김일권 김일안(음악,다큐) 김재민이(시각) 김정기(영화) 김정화(미술) 김제필 김종군(대중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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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정창관의 신보유람 51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경기 12잡가> 정아인 전도양양’ 음반은 8월 18일 정효아트센터에서 열린 경기 12잡가 완창발표회 기념으로 출반된 것이다. 첫 음반은 2021년 3월에 ‘소리걸음 첫 번째 경기민요 정아인 <전도양양>’으로 출반하였다. 이 음반은 두 번째 출반으로 2장의 CD로 구성 되어있다. 필자는 음반 해설서에 쓴 격려글로 대신한다. 소리꾼 정아인의 소리걸음 두 번째 경기 12잡가 완창 발표회 기념음반 <경기 12잡가> 출반을 격려하면서 잡가(雜歌)는 전통사회에서 전승되어 조선 말기에서 20세기 초에 특히 성행하였던 노래의 하나로, 기생·사당패·소리꾼과 같은 전문예능들이 긴 사설을 기교적 음악어법으로 부르는 노래다. 불리는 지역에 따라 경기잡가, 서도잡가, 남도잡가로 나눈다. 경기 12잡가는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지역에서 불렸던 잡가로 앉아서 부르며, 좌창 또는 긴 잡가라고도 한다. 가사내용은 판소리처럼 서사적 이야기이고, 처음에는 유산가·적벽가·제비가·집장가·소춘향가·선유가·형장가·평양가 등 8잡가였으나 후에 잡잡가인 달거리·십장가·출인가·방물가 등 4곡이 더하여 12잡가가 되었다. 정아인은 영훈초등학교 4학년생으로 12잡가 완창 발표회와 동시에 음반을 출반하였다. 발표회에 맞추어 음반을 출반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 3월에 1집 정아인의 소리걸음 첫 번째 <전도양양(前途洋洋)> 음반 출반 때 격려의 글을 보냈다. 벌써 2집이라니, 그것도 경기 12잡가 음반이라 놀랍기만 하다. 이는 스승인 전병훈 소리꾼의 경험에 의한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전병훈 소리꾼은 7살 때 12잡가를 완창한 최연소 완창 공연 기록을 가지고 있다. 경기 12잡가 완창은 경기 소리꾼이 넘어야 할 태산인데, 12잡가를 배운지 1년 만에 넘은 경이로운 기록이다. 일찍 넘는다고 좋은 건 아닐지 모르지만, 어릴 적의 소중한 경험은 경기 소리꾼으로 소리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름 있는 경기소리꾼이라면 반드시 경기 12잡가 음반을 출반해야 한다. 경기 12잡가는 1974년에 ‘경기민요’라는 종목명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다. 묵계월·이은주·안비취 명창이 첫 예능보유자로 지정된바 있다. 2장의 음반에 수록된 장구 반주는 스승인 전병훈 소리꾼과, ‘달거리’ 후반의 ‘매화타령’은 경기음악연구회(가야금 임정완. 피리 김태형. 대금 심성욱)가 맡았다. 이색적인 접근이다. 아직은 완성되어야 할 12잡가이지만, 앳된 목소리의 12잡가는 대견함과 기특함을 감상자에게 선사하고 있다. 이제 학생들이 부르는 12잡가도 누가 잘 부르는지를 선택해야 할 이상적인 세상이 오고 있어 매우 반갑다. 만 10살이 되지 않은 이때에 2번째 음반 <경기 12잡가>의 산을 넘고 있지만, 또 다른 태산이 있음을 알고 정진하기를 바라면서 격려의 글을 마친다. * 관련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GGC-20075&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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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정창관의 신보유람 49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경기 12잡가의 연원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1840년대부터 성창했다고 추측된다. 경기 12잡가는 여느 민속 성악과 같이 구전심수로 전해졌는데, 남창으로는 사계축 소리꾼, 여류로는 삼패 기생을 전승 주체로 본다. 경기 12잡가는 본래 8잡가와 잡잡가로 구분된다. 8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집장가, 소춘향가, 선유가, 형장가, 평양가로 8곡이고 잡잡가는 달거리, 십장가, 방물가, 출인가로 4곡이다. 이들은 20세기 중반 이후 12가사처럼 한 묶음이 되어 전승되고 있다. 경기 12잡가는 긴잡가로도 불리며 경기 소리를 대표하는 하위 장르이자 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의 전승 과제 곡이다. 그런데 12잡가의 음계를 살펴보면 악곡마다 경토리 뿐만 아니라 서도토리가 쓰이기도 하며 어떤 악곡에서는 경토리와 서도토리가 번갈아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서도토리가 쓰이는 악곡에서는 서도소리 고유의 요성이 도드라진다. 이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울, 경기지역 소리꾼들과 서도 소리꾼들이 함께 활동하고 교류하며 음악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그들이 함께 취입한 음반 기록과 극장 공연 기록, 특히 20세기 초 남진해 서울 극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평양 날탕패의 기록이 그 근거가 된다. 경기 12잡가는 1974년에 경기민요라는 이름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고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선생이 예능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이후 활발한 전승 활동을 통해 현행에 이르고 있다. 이호연 명창은 11살 때 큰아버지이자 국악인, 이범석 옹이 운영하던 고전음악학원에서 민요와 무용에 입문하였다. 16세에는 경서도소리계의 거목, 이창배 선생과 정득만 선생에게 경서도 소리와 가사, 시조를 학습했다. 22살 때는 당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던 안비취 선생 문하에 입문, 전수교육을 받으며 본격적인 전통예술가의 길을 간다. 1996년에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되었고, 이후 이호연 국악예술원을 설립, 전수 활동을 활발히 하며 2020년, 전승교육사로서 전수 및 이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호연 명창의 경기 12잡가는 직계 가족인 이범석 옹에게 발굴되어 이창배, 정득만 선생에 의해 뿌리를 내렸고, 초대 예능 보유자인 안비취 선생을 만나 꽃을 피운 전통의 원형 그 자체인 것이다. 이 음반에는 2008년 녹음과 2020년 녹음의 경기 12잡가가 수록되어 있다. 처음 선보이는 음원으로 장구는 김보연 소리꾼이 잡았다. 12년의 차이를 두고 한 소리꾼의 12잡가를 같이 만나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악보집도 같이 출판되어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경기 12잡가’는 경기소리꾼이 넘어야 할 태산이다. 2개의 태산을 넘고 있는 이호연 명창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다. * 본 음반 소개 글의 많은 부분은 해설서와 악보집에 글을 쓴 경기음악연구회 전병훈 대표의 글을 인용함. * 관련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Z-AM-21F&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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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정창관의 신보유람 48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잡가(雜歌)는 전통사회에서 전승되어 조선 말기에서 20세기 초에 특히 성행하였던 노래의 하나로서 전문예능인들의 노래, 곧 기생·사당패·소리꾼과 같은 전문가들이 긴 사설을 기교적 음악어법으로 부르는 노래다. 불리는 지역에 따라 경기잡가, 서도잡가, 남도잡가로 나눈다. 경기 12잡가는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지역에서 불렸던 잡가로 앉아서 부르며, 좌창 또는 긴잡가라고도 한다. 가사내용은 판소리처럼 서사적 이야기이고, 처음에는 ‘유산가·적벽가·제비가·집장가·소춘향가·선유가·형장가·평양가’ 등 8잡가였으나 후에 잡잡가인 ‘달거리·십장가·출인가·방물가’ 등 4곡이 더하여 12잡가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인기 있는 경기소리꾼, 회심곡과 아리랑의 소리꾼인 고하 김영임 명창이 12잡가 음반(2CD)을 출반하였다. 지난 6월 14일에 공연한 ‘12잡가 발표회’의 실황으로 제작한 것이다. 반주는 윤재영 고수가 맡았다. 음반에는 ‘적벽가’를 처음으로 12곡이 수록되어 있다. 2005년에 김영임 <경기 12잡가>(2CD)를 출반하였으니 16년 만에 선보이는 2번째 경기 12잡가 음반이다. 김영임 명창은 경기민요의 큰 어른인 이창배, 정득만 명창에게서 잡가와 시조 등을 사사받았고, 묵계월 문하에서 오랫동안 경기소리를 사사하였다. 경기 12잡가는 1974년에 ‘경기민요’라는 종목명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으며, 묵계월·이은주·안비취 명창이 첫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김영임 명창은 현재 제57호 전승교육사(이전 준보유자)이다. 해설서에는 2005년 <경기 12잡가>의 글들을 일부 게재했지만, 아주 자세하다. 12잡가에 대한 권오성 교수의 해설은 영어, 일어, 중국어로 번역되어 있고, ‘12잡가의 전승과 녹음’은 배연형 문학박사 글로 수록되어 있다. 지난 6월 14일의 완창발표회 공연과 출반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황희 장관의 축하 글도 보인다. 그 만큼 김영임 명창이 대중들에게 차지하는 비중을 엿볼 수 있다. 사실 12잡가는 민요의 최고봉이지만 대중과는 좀 떨어진 분야이다. 이제 경기민요의 대가, 회심곡의 대명사인 김영임 명창의 귀에 익은 미성으로 듣는 12잡가는 대중들에게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음반도 아주 착한 가격으로 다가온다. * 관련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ENEC-096&page=1 * 2005년 출반 <경기 12잡가>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NSC-146&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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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40: 한악계의 은인, 조선일보 방일영국악상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세상에는 상도 참 많다. 갖가지 상들이 넘쳐나고 있다. 상들이 지천이다 보니 개중에는 뒷말이 개운찮은 상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 많은 상 중에서 과연 좋은 상이란 어떤 것일까.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내가 보는 좋은 상이란 우선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상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상금의 과다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주최측의 명성이나 위엄에서 오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상의 권위는 공평무사한 운영에서 온다. 아름아름 주고받는 상에는 권위가 쌓일 리 없다. 주는 자와 받는 자 공히 그저 주기적으로 치르는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주는 자도 받는 자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받는 자도 수상에 대한 자긍심을 갖기 어렵다. 시를 쓰는 어느 지인의 말이다. 자기가 아는 문인이 얼마 전 어느 문학상을 받았단다. 그런데 상을 받은 대가로 주최측이 발간하는 정기 간행물을 상금 이상으로 팔아줘야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이 문학계에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수상자가 얼마를 내겠다고 먼저 언질을 주고 상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시상제도가 하나의 생계수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상 받았다는 것을 시큰둥하게 보거나 우습게 알기 십상이다. 이 같은 폐단은 전통음악계에서도 간간이 들려온다.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면 은연중에, 어떤 때는 아예 드러나게 자기 제자나 지인이 수상자가 될 수 있도록 서슴지 않고 부끄러운 짓들을 한다. 꽤 오래전 일이다. 전남 고흥에서 김연수 명창을 기리는 제1회 김연수국악상 심사를 위촉받고 참여한 적이 있다. 김 명창의 수제자를 자임하고 남들도 그렇게 인정하는 오 아무개 명창이 심사위원장 역할을 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국악 전공자도 아닌 인물을 수상자로 극구 추천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인데 전주에서 국악계를 위해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수상 조건에도 맞지 않는 사람이라며 나부터 적극 반대했다. 결국 안숙선 명창을 제1회 수상자로 선정했다. 선정 회의가 끝난 후 은밀히 알아보니 오 명창이 열렬히 추천했던 인물은 바로 자기 남편이었다. 이 같은 전통음악계의 시상 풍토를 일거에 쇄신하고 등장한 시상제도가 다름이 아닌 방일영국악상이다. 하기사 방일영국악상은 기존의 여느 국악상들과 같은 지평에서 운위할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만큼 격이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 이 상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일보를 한국 대표 신문으로 키워 낸 우초愚礎 방일영方一榮 선생이 1994년에 제정한 국악상이다. 기억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1994년은 소위 ‘국악의 해’라고 해서 정부가 한 해 동안 국악계를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는 취지로 출범한 해다. 이어령 문화부장관 시절 그분의 아이디어로 한 해에 예술계 어느 한 분야를 당시 10억 원씩 특별 지원한다는 정책을 실행했는데, 무용과 문학에 이어 세 번째로 국악의 해가 선포된 것이다. 아무튼 유달리 국악을 좋아하며 국악인들을 자별히 배려해 주셨던 우초 선생은 국악의 해를 맞이하여 명실상부한 상다운 상을 출범시켰다. 지난해로 4반세기를 맞이한 방일영국악상은 그동안 전통음악계에 적지 않은 자극과 활력을 불어넣어 왔다. 사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라면 누구나 내심 수상을 소망하는 선망의 대상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방일영국악상의 권위와 위상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다. 그간의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누구나 그 상의 존재가치를 십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제1회 때의 수상자부터 순차적으로 열거해 본다. 제1회 판소리 명창 김소희, 제2회 국악학자 이혜구, 제3회 판소리 명창 박동진, 제4회 정재무 김천흥, 제5회 종묘제례악 성경린, 제6회 서도소리 오복녀, 제7회 판소리 명창 정광수, 제8회 정가 정경태, 제9회 배뱅이굿 이은관, 제10회 가야고 황병기, 제11회 경기민요 묵계월, 제12회 대금 산조 이생강, 제13회 경기민요 이은주, 제14회 판소리 오정숙, 제15회 판소리 고법의 정철호, 제16회 민속음악학 이보형, 제17회 판소리 박송이, 제18회 피리 정재국, 제19회 판소리 성우향, 제20회 판소리 안숙선, 제21회 경기민요 이춘희, 제22회 거문고 김영재, 제23회 사물놀이 김덕수, 제24회 가야고 이재숙, 제25회 한국음악학 송방송. 이쯤 되고 보면 방일영국악상은 상이되 상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를 증언하는 한국문예사의 거대한 물줄기이자 척추 같은 산맥이다. 따라서 그 상은 곧 음악상이되 하나의 독특한 문화현상이자 역사의 실록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영예로운 국악상에 나는 직간접적으로 꽤 자주 연계돼 온 셈이다. 직접적으로는 심사위원이나 심사위원장을 했고, 간접적으로는 수상자들이 부탁한 축사의 글들을 시상식 유인물에 기고해 왔다. 총 25회에 걸친 시상 중에서 16회에 걸쳐서 나의 심사평이나 축하의 글이 실렸으니 이 상과의 인연도 적지 않은 연륜이 쌓였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국악신문 독자들에게 귀한 글을 보내주신 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이지출판사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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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숲길 11개소, 봄철 개방(5.16.~6.30.)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나명하)는 오는 5월 16일부터 6월 30일까지 구리 동구릉 숲길을 포함한 조선왕릉 숲길 11개소를 개방하여 치유의 공간으로 제공한다. 또한, 동구릉과 사릉, 태릉·강릉에서는 봄철을 맞아 시민들을 위한 숲길산책과 놀이체험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하여 제공한다. 올해 봄철에 정비하여 처음으로 개방하는 조선왕릉 숲길은 ▲ 파주 삼릉 ‘작은 연못’ 숲길, ▲ 서울 태릉과 강릉 ’노송(老松)‘ 숲길, ▲ 남양주 광릉 ‘복자기나무’ 숲길로 총 3개소다. 또한, 조선왕릉 숲길 내에 조성을 완료한 다양한 휴게공간을 국민에게 개방한다. 능침 일원 숲속에 그늘막과 도서가 비치된 ▲ 서울 태릉과 강릉 ‘어린이 마당’, 서울시 내 유일한 오리나무 생태보존지역인 ▲ 서울 헌릉과 인릉 ‘오리나무 숲길과 쉼터’, 조선왕릉 전통 들꽃을 만끽할 수 있는 ▲ 화성 융릉과 건릉 ‘들꽃 마당’, 소나무 숲속의 다채로운 들꽃이 가득한 쉼터인 ▲ 남양주 사릉 ‘초화원 쉼터’, 남한강 여주보가 한눈에 보이는 ▲ 여주 영릉과 영릉 ‘두름길 쉼터’ 에서 천연 향균제인 피톤치드로 산림욕을 즐기며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기를 기대한다. 숲길 개방시간은 조선왕릉 관람 시간과 같으므로 조선왕릉 방문객은 누구나 쉽게 숲길을 이용할 수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각 조선왕릉관리소에 문의하거나 문화재청 누리집(www.ch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궁능유적본부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이용객 간 2m 이상 거리 두기’, ‘숲길 내 일방통행하기’를 비롯해 ‘화장실 등 다중이용시설 이용 시 마스크 꼭 쓰기’ 등 이용객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관람객들에게 꾸준히 안내할 계획이다. 또한, 전 직원 마스크 착용과 입구마다 손세정제를 비치하는 등 안전하고 청결한 궁능 관람시설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봄철을 맞아 문화행사로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소장 송시경)는 구리교육문화원(원장 이은주)과 함께 동구릉·사릉 숲길 치유 프로그램『숲길 산책 ‘쉼’』을 6월 3일부터 24일까지 운영한다. 『숲길산책 ‘쉼’』은 왕릉을 품은 특별한 숲에서 휴식하며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프로그램으로, 동구릉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4회에 걸쳐 시행하며, 사릉은 5일과 12일 토요일 오후 1시에 운영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구리 동구릉과 남양주 사릉의 숲길에서 진행되며 동구릉의 경릉∼양묘장까지의 숲길, 사릉의 능침뒤편 소나무길에서 시낭송, 오카리나 연주 감상, 명상하기 등 특별한 체험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하여 사전예약을 통해 회당 20명으로 참여 인원을 한정한다. 사전예약은 12일 오전 10시부터 조선왕릉 누리집(royaltombs.cha.go.kr, 참여마당-문화행사)에서만 가능하며, 1인당 최대 4명까지 선착순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조선왕릉 누리집을 참고하거나 동구릉(☎031-563-2909)으로 문의하면 된다.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중부지구관리소(소장 김행덕)는 노원문화원(원장 오치정)과 함께 태릉 능침, 그늘집, 숲길 등 태릉 일원을 무대로 『역사와 함께하는 태릉·강릉 숲속 놀이터』를 5월 19일 오후 2시부터 운영한다. 이번 행사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단위 관람객 대상으로 태릉·강릉 역사해설과 숲 체험 등 자연 속 휴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며 노원문화원 누리집(www.nwcc.or.kr)에서 12일부터 사전예약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태릉(☎02-972-0369)으로 문의하면 된다. 모든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 착용, 발열확인, 안전거리 유지 등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한편, 궁능유적본부는 "올해 하반기 개방을 목표로 구리 동구릉 전통조경학습장, 남양주 광해군묘 숲길, 고양 서오릉 창릉 숲길, 파주 장릉 생태 숲길 등 조선왕릉 내 5개소 숲길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조선왕릉 숲길의 고유 식생환경과 다양한 관람객 편의시설과 안전시설 등을 정비하여 조선왕릉 숲길을 방문하는 관람객의 만족도를 높이고자"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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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br>‘2005’의 아리랑<2><br> 6종의 서울경기아리랑2005년의 문화재청 ‘지역별 아리랑 전승실태 조사보고서’는 제도권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아리랑을 조사한 최초의 보고서다. 6개 권역의 아리랑은 국가적 전승 지원 대상이 된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서울경기 지역 아리랑 전승실태 기초조사’이다. 조사자는 김연갑(사단법인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이다. 이 조사는 서울경기 권역에 6가지 아리랑으로 규정을 하였다. 이는 당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들의 이수 대상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에 오늘의 시점으로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다. 6개 아리랑은 본조아리랑/강원도아리랑/긴아리랑/한오백년/정선아리랑/구아리랑이다. 이 6종 아리랑의 음악적 특징은 경토리가 우세하고 메나리토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6종의 규정에 대한 이견은 첫 째는 ‘강원도아리랑’을 이 권역의 것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다. 다음은 ‘한오백년’의 문제이다. 전자는 소위 ‘잦은아라리’의 통속화 한 것을 전승지역의 아리랑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써, 오늘의 시각으로는 제외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토속 잦은아라리는 강원도 춘천과 강릉이 주전승지역이지만, 이것의 통속화 한 강원도아리랑은 이들 지역에서 전승되지도 않고 포함시키지도 않는다. 현실적 전승활동은 서울경기 지역 민요 전승주체들에 의해서 계승 되고 있다. 결국 문제는 토속 아라리와 이의 통속 아리랑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 보고서의 입장은 전승지역을 중심으로 삼은 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후자 한오백년은 1940년대 초 음반화 되어 서울경기 지역 소리꾼들에게 널리 불리는 것으로, 곡조는 토속민요 긴아리랑과 같지만, 곡명에 ‘아리랑’이 없고 또한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가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는 아리랑 범주의 특별한 인식으로 서양음악의 보편 시각에서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와 2014년 국가무형문화재 159호 등재를 계기로 곡명과 후렴의 존재 여부로 삼는 관점에 의해서다. 하여튼 이 6종을 범주화 한 것은 근본적으로는 현재적 전승지역과 전승주체를 중심으로 계승이 되는 실상에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계보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결과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조사 대상자는 ‘12잡가’와 경기민요 전승계보, 즉 조기준 박춘경 장계춘 주몽신이란 구한말 명창들의 계보에서 형성된 제 1세대 보유자 안비취 이은주 묵계월의 계보를 중심으로 삼았다. 당시 보유자 이춘희 계보(이춘희 김혜란 이호연), 이은주 계보(김장순), 묵계월 계보(김영임)에서 총 6인을 대상으로 공통된 6개 곡명의 아리랑 현장 녹취와 전수 과정(음반 취입과 교재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춘희 계보가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며 당시 생존한 1세대 보유자 이은주 선생과 묵계월 선생은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활동이 적어지게 되면서 그 제자 1인을 대상으로 계보가 이어졌다. 이 때 조사된 악보는 서울경기 아리랑의 표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다. 보고서의 결론 부분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점을 주목하였다. 첫 째, 전문 소리꾼들에 의해 형성되고 전수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 결과로 서울 경기지역 향토성보다는 보편적인 세련미를 특장으로 하여 창민요라는 고정적 기능을 중심임을 밝혔다. 둘 째, 1926년 나운규 감독 영화 '아리랑' 주제가에서 출현한 ‘본조아리랑’은 모든 아리랑의 대표로 인식되어 있고, 이미 세계성을 띄고 있어 전승주체를 제한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제시하였다. 셋 째, 소위 ‘김옥심제정선아리랑’ 또는 ‘서울제정선아리랑’은 1940년대 말, 이창배와 김옥심이 작창한 것으로 예술성이 가장 뛰어난 일종의 창작아리랑이다. 이에 본조아리랑과 함께 성격상 주목되는 작품이다. 이 조사 보고서는 최초의 실태 조사 결과라는 점과 제도권의 관심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활용성과 함께 아리랑 역사에서 주목을 해야 한다. 또한 이 보고서를 통해 서울경기 아리랑으로 6종을 규정한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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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옷깃이 스쳐간 "한악계의 별들" (양장)이 책은 가곡 [비목]의 작시자로 널리 알려진 한명희 선생이 인연의 옷깃이 스쳐간 보석 같은 인연들의 이야기를 역사라는 시간의 대리석에 새겨놓은 것이다.작가가 유려한 문체로 새겨놓은 주인공들은 우리 한악(국악)계의 터를 다듬고 보듬어 온 명인 명창들과 한악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분들이다.그리고 우리의 문화가 된 아리랑과 한국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흥, 멋, 운치)에 대한 해박한 고찰은 한국의 전통예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서울대 음대 국악과를 나와 TBC(동양방송) PD 시절부터 국악에 남다른 애정과 사명감을 갖고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우리 국악계를 이끌어 온 분들과 각별한 교분을 나누어 온 저자 또한 우리 음악을 계승 발전시켜 온 산증인이다.대학교수와 국립국악원 원장을 지내면서 『하늘의 소리 민중의 소리』 『우리가락 우리문화』 『한국음악, 한국인의 마음』 『하늘의 음악이란 무엇인가』 『학 떠난 빈터에는』 등의 저서는 우리 음악계의 소중한 문헌들이다.004서문인연 한 자락1부010가야고 병창으로 그린 비천상 _ 강정숙 명창012사물놀이로 세계를 제패한 선구자 _ 김덕수 명인016반듯한 기개 꼿꼿한 자존심 _ 김소희 명창022회심곡의 프리마돈나 _ 김영임 명창026월하의 음악 세계가 그립다 _ 김월하 가객028천진무구한 가섭의 염화미소 _ 김천흥 선생034둥둥 북을 울리면 신명이 솟는다 _ 김청만 명인036경기민요의 외연을 넓혀 가는 열정 _ 김혜란 명창038경기민요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주인공 _ 묵계월 명창041국악교육에 헌신한 선견지명 _ 박귀희 명창044끈기와 집념의 화신 _ 박동진 명창048국립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해 내는 능력과 수완 _ 박범훈 교수053늦가을 햇살녘의 잔상 _ 박병천 명인, 김영태 시인059청초한 유덕遺德은 한악계의 등불 _ 성경린 선생061학문의 바탕 체상體常을 튼실히 한 학자 _ 송방송 교수063소리꾼의 판소리 사설 정립 _ 송순섭 명창065장인 정신의 사표가 될 판소리 여왕 _ 안숙선 명창076서도지방의 맛과 멋을 이어 준 고마운 은인 _ 오복녀 명창078동초제 판소리 정립에 기여한 공적 _ 오정숙 명창081소쇄원 광풍각의 죽림풍류 _ 원장현 명인085실사구시의 학문을 궁행한 성실한 학자 _ 이보형 선생088고소한 해학이 일품인 경중예인鏡中藝人 _ 이상규 교수090대금산조의 달인 _ 이생강 달인093노래로 그려 낸 한 시대의 풍속사 _ 이은주 명창096가야고 음악의 경중미인 _ 이재숙 교수099소중한 문화지킴이 한국정가단 _ 이준아 가객101노래와 인품이 교직된 경기민요의 대가 _ 이춘희 명창103학덕과 인품을 겸비한 음악학의 태두 _ 이혜구 박사107심금을 퉁겨서 노래하는 국민가객 _ 장사익 가걸歌傑110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른 소리꾼 _ 정광수 명창113피리로 세상을 보듬어 온 외곬 인생 _ 정재국 명인116영년퇴은이 유발하는 무정세월 _ 조운조 교수119놀이마당문화의 파수꾼 _ 지운하 명인122한국전통음악연구회의 창단 _ 최경만 명인125정악 가야고의 법통을 잇는 금객琴客 _ 최충웅 명인130가야고 음악의 신지평을 개척한 작곡가 _ 황병기 교수133내 삶의 인드라망을 수놓은 한악계 별들 _ 김연수, 이창배 외2부144전통음악을 사랑하는 고마운 기업인 _ 초해 윤영달 선생148초야에 묻힌 국악계의 보옥 _ 서암 권승관 선생153어느 인연이 그린 삶의 무늬 _ 백석의 연인 자야 여사158기인처럼 살다 간 풍류객 _ 연정 임윤수 선생161정녕 가시나이까 _ 화정 김병관 선생165유어예의 귀명창 _ 호암 이병철 선생175한악계의 은인 _ 조선일보 방일영국악상179문화가 된 노래 아리랑185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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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연극의 해, 2020년 한 해 돌아보는 온라인 토론회 개최2020 연극의 해 집행위원회는 1월 26일 화요일 ‘‘2020 연극의 해’를 통해 바라본 한국연극의 현재, 그리고 미래 - 결산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는 2020년 한 해 진행된 2020 연극의 해 사업들의 가치와 담론을 확장하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찾기 위해 마련된 온라인 토론회다. 토론회는 총 4개의 세션으로 구성된다. 2020 연극의 해가 제시한 담론들인 △안전한 창작 환경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 △관객 소통의 다변화라는 3개의 주제와 더불어, 2020년 10월 31일~11월 1일 공연된 ‘언도큐멘타 : 한국연극 다시 써라’를 되돌아보며 한국 연극이 당면한 과제를 살핀다. 발제와 토론에는 2020 연극의 해 사업에 참여한 집행위원과 함께 주요 사업을 추진해 온 신재(0set프로젝트), 이종승(공연예술인노동조합), 이은주(콜렉티브 프린지) 등이 참여한다.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참여하는 연극인 및 관객과 소통하며 다양한 의견을 한 데 모으는 순서도 마련돼 있다. 2020 연극의 해를 통해 바라본 한국연극의 현재, 그리고 미래 - 결산 토론회는 사전 신청 뒤 ZOOM을 통해 직접 참여할 수 있다. 토론회는 2020 연극의 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되며 모든 세션에 문자 통역과 수어 통역이 제공된다. △2020 연극의 해 유튜브 채널 - http://bit.ly/2020theater △ZOOM 참가 사전신청 - https://forms.gle/TRNU2RngS5rCjg799 토론회를 준비한 2020 연극의 해 집행위원회는 2020 연극의 해가 일회성 사업으로 끝나기를 원치 않는다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지난 1년간 사업을 철저히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변화를 끌어내는 동력으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2020 연극의 해 집행위원회은 2019년 5월 ‘2020 연극의 해’ 추진이 공식화된 뒤 다양한 계층을 수용한 집행위원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연극계 전반을 아우르는 집행위원회 구성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열린 토론회에서 의견을 수렴했다. 연극인 주도 민간 자율로 구성된 집행위원회는 연극인들과의 공론화 과정 등을 거쳐 추천받은 연출, 연기, 무대 기술, 극작, 공연 기획 분야 등의 인사들로 구성됐다. 위원장은 호선으로 심재찬 연출가가 맡고, 당연직 3명을 포함해 총 18명의 집행위원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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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기악, 소리, 춤, 무속, 공연놀이, 의례 등 우리 전통 예인 110인을 5개 분야로 나눠 소개한 책이다. 거문고 산 조의 강동일, 단소 김무규, 배뱅이 굿 이은관, 태평무강선영, 부채춤의 김백봉, 양주별산대놀이 김상용 등 명인들을 컬러사진으로 소개했다. [지은이] 이규원 194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주간 종교신문 취재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동서양 종교를 두루 섭렵했고 월간 『광장』 편집장을 역임했다. 1988년 세계일보에 입사하여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재냈다. 현재(사)한국언론인연합회 이사이며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 종묘제례 전수자이고 온 세종교신문 발행인 겸 편집국장이다. 1995년 『문예사조』지 시 부문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고 제6회 부원문학상을 받았으며 한국자유시인협회 이사로 시작활동 중이다. 이 책으로 제 27회 한국기자상 본상과 제36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차세애』(공저, 대원미디어), 『한국의 사찰 탐방』(공저, 불교사상사) 등이 있다 기악 1. 강동일 - 거문고 산조 2. 김무규 - 단소 3. 김영채 - 해금 4. 김오채 - 설장구 5. 김천흥 - 해금 6. 박귀희 - 가야금 병창7. 박동신 - 잽이 피리 8. 박범훈 - 피리9. 박종선 - 민속악10. 서용석 - 대금11. 윤윤석 - 아쟁12. 이생강 - 대금13. 이승렬 - 집박14. 전경환 - 농악 상회15. 전사섭 - 설장구16. 정달영 - 가야금 병창17. 정철호 - 아쟁 산조18. 지성자 - 가야금 산조19. 천대룡 - 고수20. 함동정월 - 가야금 산조21. 황병기 - 가야금 소리1. 강도근 - 동편제2. 강준섭 - 진도다시래기3. 김경복 - 서도 명창4. 김길임 - 강강술래5. 김덕순 - 여창 시조6. 김소희 - 동편제7. 김애정 - 국악인8. 남해성 - 여류 명창9. 묵계월 - 경기 12잡가10. 박동진 - 명창11. 박상화 - 영가무도12. 박송희 - 명창13. 박홍남 - 산유화가14. 선우향 - 여류 명창15. 성창순 - 강산제 명창16. 소동규 - 내포제 시조17. 신유경 - 육자배기18. 안비취 - 경기민요19. 안숙선 - 명창20. 안승삼 - 배치기 노래21. 오복녀 - 서도소리22. 오정숙 - 명창23. 이동규 - 남창가곡24. 이용배 - 임방울제 명창25. 이은관 - 배뱅이굿26. 이은주 - 경기잡가27. 장월중선 - 흥부가28. 정광수 - 명창29. 정회천 - 보성소리30. 조공례 - 남도 들노래31. 조상현 - 명창32. 조을선 - 제주 민요33. 조통달 - 명창34. 최광순 - 홍성 결성농요35. 최봉출 - 정선 아리랑36. 한농선 - 명창37. 한동희 - 회심곡38. 한승호 - 적벽가39. 황용주 - 선소리 타령 춤1. 강선영 - 태평무2. 김계화 - 교방굿거리춤3. 김덕명 - 양산 사찰 학춤4. 김백봉 - 부채춤5. 김수악 - 굿거리춤6. 김숙자 - 도살풀이7. 김진홍 - 한량춤8. 박정수 - 일무9. 박홍도 - 문둥북춤10. 안채봉 - 소고춤11. 양소운 - 해주검무12. 이동안 - 마지막 도대방13. 이매방 - 승무14. 이애주 - 승무15. 장금도 - 동살풀이춤16. 장홍심 - 바라승무17. 정경파 - 살풀이춤18. 하보경 - 밀양북춤19. 한진옥 - 춤꾼 무속1. 김금화 - 황해 강신무2. 김대례 - 진도씻김굿3. 김석출 - 세습 무가4. 김윤수 - 제주칠머리당굿5. 김점식 - 서울 무악6. 김찬섭 - 무악 피리7. 박병천 - 무악8. 박어진 - 서울굿9. 송동숙 - 오구굿10. 신석남 - 동해 세습무11. 오수복 - 강신무12. 오옥주 - 강신무13. 이선비 - 강신무14. 장보배 - 황해도 강신무15. 조한춘 - 경기 무악 공연 / 놀이 / 의례1. 공옥진 - 창무극2. 김덕수 - 남사당해3. 김복섭 - 독경4. 김상용 - 양주별산대놀이5. 김재원 - 남사당패6. 문장원 - 동래야유7. 박계순 - 남사당8. 박세민 - 염불9. 박송암 - 범패10. 박점실 - 동래야유11. 박후성 - 창극12. 여재강 - 북청사자놀음13. 이강덕 - 종묘제례악14. 이상호 - 하회별신굿탈놀이15. 이일웅 - 범패작법16. 조승자 - 어름광대 "이화 도화 행화 방초들아 일년 춘광 한틀 마라너희는 그리하여도 여천지 무궁이라우리는 단 백세뿐이니 그를 설워하노라"모시 적삼에 잠방이를 정갈히 다려 입고 통부채로 더위를 쫓으며 정자나무 그늘 아래서 세월을 희롱한다. 오가는 길손 있으면 어느덧 벗이 되어 비장해 두었던 한 수를 읊어 댄다. 거기에 동자 있어 밥 나르고 술 따르니 이 아니 신선일시고. 시조에는 군살이 없다. 초장 중장 종장의 3행으로 인간사 막힌 숨통을 터 주고 촌철살인하는 옛선비들의 기지가 넉넉하다.국내 유일의 여창 가곡 분야 기능 보유자(제30호, 1973년 지정) 월하(月荷) 김덕순(金德順.74) 씨. 김월하라고 해야 선뜻 알아듣는 '덕순 할머니'. 월하는 부산 구덕수원지 뒷산에서 시조 배울 적 '어느 후덕하신 어른'이 지어주신 아호일 뿐 이름이 아니라며 뒤늦게나마 덕순이라 불려 보고 싶다고 자청한다. - 본문 187쪽에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누구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얘깃거리가 있다. 막상 털어놓고 나면 별것이 아닌데도 혼자 보듬고 지척이며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비밀 같은 것 말이다. 바로 우리의 전통 예인들이 그러했다.민초들의 우상으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던 이들은 오히려 민초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해 왔다. 민초들은 전통 예인들의 행위 예술에 도취되면서도 "내가 저 짓을 않길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으로 예기(藝技)를 즐겨 왔던 것이다.이토록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소위 양반 부류나 가진 자들이 예인들을 대해 왔던 정서는 어떠했겠는가. 멸시, 천대, 경멸... 그래서 민중들의 예인들은 입을 다물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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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요연구회 (韓國民謠研究會)설립 당시의 회장: 안비취(安翡翠), 회원: 안비취·이소향(李素香)·묵계월(墨桂月)·김옥심(金玉心)·이은주(李銀珠), 고문: 정득만(鄭得晩)·이창배(李昌培)·김순태(金順泰)였다. 1975년 한국민요연구회 주최로 이은관민요발표회를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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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가에 실려 온 70년, 영원한 소리꾼, 묵계월백이숙제 착한 이와 도척 같은 몹쓸 놈도 죽어지면 허사로다.역려건곤에(逆旅乾坤) 부생이 약몽(若夢)하니 즐거움도 얼만고병촉야유(秉燭夜遊)하며 독서담론 자락하니 한가하기 측량없다 ······.일생이 이러하니 상산사호(商山四皓) 죽림칠현 한가롭다.이만하면 적송자(赤松子) 안기생(安期生)을 부러하랴범려(范蠡)의 오호주(五湖舟)와 장자방(張子房)의 사병벽곡(謝病辟穀)소광의 산천금(散千金)과 도연명의 귀거래는 모두 다 작은 일이 아니로다 ······. 깊은 밤, 은근한 석유 등잔 불빛이 창호지 문틈으로 새어 나온다. 한동네 또래 할머니들 대여섯이 둘러앉아 ‘이 집’ 며느리가 읊는 알듯말듯한 소리를 내 신세와 견줘 가며 듣고 있다. ‘소리’하는 며느리가 지칠까 봐 이따금씩 ‘그려!’ 하며 추임새로 부추긴다. 할머니 무릎에 앉아 뭐가 뭔지도 모르며 골똘히 듣고 있던 손자 녀석은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 이 때 구슬픈 듯하면서도 청아한 목소리로 읊어 대던 ‘며느리의 소리’가 바로 ‘삼설기’다. ‘홍길동전’, ‘사씨남정기’ 같은 얘기책에 청을 넣어 구성지게 읽었다.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게 책 읽고 편지 읽는 투의 바로 그 ‘목청’이었다.삼설기는 수많은 경기잡가 중에서도 엄연히 ‘족보 있는 소리’다. 잡가에 능한 소리꾼이 많건만 묵계월(墨挂月ㆍ72,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씨의 삼설기는 단연 독보적이며 발군이다. 그래서 묵씨는 ‘묵계월의 삼설기가 기막히다’는 칭송을 들을 때마다 16세 적 수양모(이정숙) 집 사랑방까지 찾아와 그 소리를 가르쳐 준 이문원(李文元) 선생을 잊지 못한다.인간문화재 묵계월 씨는 또래 소리꾼 이은주, 안비취 씨와 함께 꽤나 알려진 이름이다. 설이나 정월 대보름, 추석 등 민족 고유 명절 때면 TV를 통해 ‘묵계월과 그 문하생들’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늘 깨끗한 한복에 쪽머리나 찌고 만단 시름없이 소리만 하고 살 것 같은 묵씨에게도 인생의 우여곡절은 깊다. 그가 살아 온 ‘한 생애’는 묵씨 자신의 것이라기 보다는 동시대를 살아 온 동료, 선ㆍ후배 국악인들과도 연관지어 가볍게 지나칠 내용들이 아니다. 바로 국악 1세대들의 현장 육성이기 때문이다.묵씨는 서울에서 나고(중구 광희동 2가 357번지) 자란 순 서울 토박이다. 아버지(이윤기)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기억도 없고, 열 한 살 때 만난 양어머니(이정숙)에 의해 한 소녀의 운명은 반전해 버리고 만다."그 집에 살던 양언니 이름이 묵계홍이었어요. 소리는 별로였지만 얼굴이 예뻤습니다. 계월이라 지으면 팔자가 좋아질 것이라며 그 집 성을 따 묵계월이라 부르게 된 겁니다.”그 때가 열 두 살 적. 본명 이경옥(李瓊玉)을 버리고 예명 묵계월이라 써온 지 60년이 넘었다. 웬일인지 이씨 집안에는 남자가 귀해 족보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수양어머니는 소리 선생 이광식(李光植) 씨를 불러 개인 학습을 시켰다. 1년여 동안 여창 지름, 남창 지름, 시조, 가사 등 기초를 익혔지만 뛰어난 소리는 아니었다고 회상한다.양모 손에 이끌려 조선 권번에 입적한 것이 13세. 여기서 주수봉(朱壽鳳) 씨를 만나 경기12잡가를 속속들이 배우게 된다. 이 때 조선 권번에는 70~80명의 예기들로 붐볐고 하규일(河圭一) 씨가 가곡을 가르치고 있었다. 기악, 무용부도 있었지만 묵씨는 오직 경기잡가에만 몰두했다. 권번 학습이 끝나면서(14세) 과장에도 더러 나가고 사랑놀음에 자주 불렸다. 자그마한 몸매에서 터져 나오는 다부진 소리에 사랑어른들은 매료됐고 가는 곳마다 ‘묵계월뿐’이었다고 한 시절의 풍류를 떠올린다. "기왕에 소리해 먹고살 팔자라면 이골나게 배워야 되겠더군요. 독선생(김윤태)을 모셔다 붙임새를 새로 보태고 최정식(崔貞植) 선생을 찾아가서는 자청해서 경기민요를 배웠습니다. 무슨 짓이든 해야 먹고사는 세상, 확실한 ‘자기 일’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18세에 ‘화초머리’ 얹은 채 인력거를 타고 명월관, 국일관, 천향각을 주름 잡던 일, 쌀 한 가마니에 7원씩 할 때 놀음채를 25원씩이나 받던 전성기 얘기 등은 행간에 접어 넣자고 한다. 해방(25세), 6ㆍ25 등 민족의 격동기를 살면서도 묵씨는 목청을 지켜 내기 위해 개인 놀음청에도 응했고, 또 그것이 먹고사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부산 피란 시절에도 그랬고 수복 후 서울에 다시와서도 남편과 자식을 위해 목소리만은 생명처럼 아껴야 했다.이래서 묵씨는 상ㆍ중ㆍ하청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특히 중ㆍ상청 부분에서 꺾어 올려치는 끝막음 소리는 그의 제자들만이 이어받아 낼 수 있는 일품의 경기민요다.임정란(林貞蘭ㆍ50, 준문화재)ㆍ고주랑(高柱琅ㆍ46)ㆍ임수연(34)ㆍ조경희(趙慶姬ㆍ33)ㆍ김운경(32)ㆍ정경숙(30) 씨 등이 이수생으로 대중들 앞에 나서는 문하생들이며, 박순금(38)ㆍ최근용(32)ㆍ김진희(28)ㆍ최근순ㆍ최보물(32)ㆍ김덕례(29)ㆍ이명희(25) 등은 전수생.서울 중구 무학동 5번지 중부소방서 건물 앞 ‘경기12잡가 묵계월 전수소’에는 문선진(37), 배미숙(28) 씨 등 교습생만도 30명이 넘어 묵씨의 경기민요 맥은 탄탄하다. 다만 소리좀 할 만하면 결혼과 함께 작파해 버려 들인 공력이 아까울 때가 많다고 늘 아쉬워한다. 풋고추 절임김치 문어 전복 곁들여황소주 꿀 타 향단이 들려 오리정으로 나간다 ······.이제 가면 언제 요료 오만 한을 일러 주오.명년 춘색 돌아를 오면 꽃 피거든 돌아를 볼까 ······.곤히 든 잠 행여나 깨울세라등도 대고 배도 대며 쩔래쩔래 흔들면서일어나오 일어나오 겨우 든 잠깨어나서 눈떠 보니 내 낭군일세······. 경기민요 중 출인가(出引歌)의 소절들. 경기잡가는 ①유산가, ②적벽가, ③제비가(연자가), ④소춘향가, ⑤집장가(집장 사령), ⑥형장가, ⑦평양가, ⑧선유가, ⑨출인가, ⑩십장가, ⑪방물가, ⑫달거리(월령가) 등 크게 12가지로 나뉘어져 있다.이 중 묵계월 씨는 적벽가ㆍ출인가ㆍ선유가ㆍ방물가로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았고(1975년 7월 12일), 이은주(李銀珠) 씨는 집장가ㆍ평양가ㆍ형장가ㆍ달거리로, 나머지는 안비취 씨 몫으로 구분돼 있다. 1971년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 김옥심, 이소향 씨 등이 만든 민요연구회는 이들 경기민요꾼의 권익을 증진시키며 사회적 예우도 격상시켰다."배운 게 소리였고 살기 위해 잡가를 불렀지요. 누가 인간문화재 같은 거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미국도 구경하고 일본에도 다녀왔습니다. 인생사라는 게 꼭 잘돼야 되겠대서 잘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이제는 여자 나이 70이 넘다 보니(1920년 10월 19일생) 별 생각이 다 든다고 했다. 아차 하면 한 달이고 문득 깨어 보면 한 해가 가 버리고······. 곱던 얼굴 생각하며 젊은 제자들이 찾아들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수시키려 사정하며 가르친다. 22세에 결혼하여 1남2녀를 두고 지금은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를 둔 할머니지만 시름에 겨워 홀로 뒤척이는 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청춘에 짓밟힌 애끊는 사랑눈물을 흘리며 어디로 가나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한오백년 사자는데 웬 성화요. 묵계월 씨는 임과의 사랑, 인생무상이 듬뿍 담겨져 있는 강원도 민요도 즐겨 부른다고 했다. 애틋하면서도 홀로 서려는 기개가 확실한 애곡(哀曲)이어서 더욱 그렇다고 한다. • 묵계월 경기12잡가 계보 출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이규원, 정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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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京畿民謠)1975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으며, 당시 이경옥(李瓊玉, 예명 묵계월)·이윤란(李潤蘭, 예명 이은주)·안복식 (예명 안비취) 명인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2020년 현재 보유자는 이춘희(李春羲)이다. 경기잡가는 서울 문(門) 안과 근교의 장인, 밭장이, 한량(閑良) 출신 소리꾼들에 의하여 전승 발전되어 왔다. 특히 서울 만리재에서 청파(靑坡)에 이르는 일대의 소리꾼들이 잡가를 잘하였다 한다. 이들은 겨울에 파를 기르는 움집을 크게 만들었는데, 그 안에 소리방(房)을 꾸미고 여기에 둘러앉아 장고 장단에 맞추어 소리를 하였다.잡가(雜歌)란 가곡(歌曲)이나 가사(歌詞)와 같은 정가(正歌)에 상대되는 속가(俗歌)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속가 가운데 약간 긴 통절형식(通節形式)의 좌창(坐唱)을 잡가라 하며, 그 가운데 긴잡가는 느린 장단으로 된 십이잡가(十二雜歌)를 말한다. 잡가 명창으로는 속칭 추조박(秋曺朴)이라는 조선 말의 3인을 꼽는다. 즉 기교에 뛰어난 추교신(秋敎信), 성대를 잘 타고난 조기준(曺基俊), 잡가로 이름이 높던 박춘경(朴春景)이다. 그 가운데서도 박춘경이 잡가를 많이 짓고 잘 불렀다 한다. 이들의 뒤를 이어 한인호(韓仁浩)·주수봉(朱壽奉)·최경식(崔景植)·박춘재(朴春載)와 같은 명창들이 나왔고, 다음으로는 이창배(李唱培)·김순태(金順泰)·최정식(崔貞植)·이진홍(李眞紅) 등이 활약하였는데 이들의 후배인 안복식(安福植:예명 安翡翠)·이경옥(李瓊玉:예명 墨桂月)·이윤란(李潤蘭:본명 李銀主) 등은 나중에 기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경기잡가에는 가사(歌詞)와 같이 긴 사설(辭說)을 도드리장단이나 세마치장단으로 짠 긴잡가와 사설시조형의 긴 사설을 빠른 장단으로 짠 휘모리잡가가 있다. 긴잡가 가운데 유산가(遊山歌)·적벽가(赤壁歌)·제비가[燕子歌]·소춘향가(小春香歌)·선유가(船遊歌)·집장가(執杖歌)·형장가(刑杖歌)·평양가(平壤歌)·십장가(十杖歌)·출인가(出引歌)·방물가(房物歌)·달거리[月令歌] 등을 십이잡가라 한다. 휘모리잡가의 사설이 사설시조에 보이는 서민적인 해학으로 가득 차 있는데 비하여, 긴잡가의 사설에는 판소리의 한 대목씩을 따서 극적인 장면을 노래하거나 서정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 많고 흔히 통절형식으로 되어 있다. 장단은 주로 굿거리·자진타령·세마치장단 등이 쓰이며, 5음음계의 평조선법(平調旋法)에 장·단 3도 진행이 많다. 민요의 종류로는 노랫가락·창부타령·아리랑·긴아리랑·이별가·청춘가·도라지타령·노들강변·사발가·베틀가·태평가·오봉산타령·오돌독·양류가·방아타령·자진방아타령·사설방아타령·양산도·군밤타령·풍년가·한강수타령·경복궁타령·개성난봉가·사설난봉가·매화타령·늴리리야·는실타령·건드렁타령·도화타령·사철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노랫가락과 창부타령은 무가(巫歌)이고, 아리랑·이별가·청춘가·도라지타령·태평가·양류가·늴리리야·군밤타령 등은 발생년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속요(俗謠)에 속한다. 양산도·방아타령·자진방아타령·한강수타령·경복궁타령 등은 선소리[立唱]에 속한다. 서도나 전라 민요에 비하여 맑고 깨끗하며, 경쾌하고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한편 놀량·앞산타령과 같이 소리꾼들이 늘어서서 소고(小鼓)를 치고 춤을 추며 부르는 것을 선소리[立唱]라 하는데 대해, 잡가는 늘어앉아서 장고의 반주로 부르기 때문에 좌창(坐唱)이라 하기도 한다. 서도나 전라 민요에 비하여 맑고 깨끗하며, 경쾌하고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흥겹고 경쾌한 맛을 풍기고 있다. 창법에서도 급격히 떨거나 꺾거나 흘러내리는 음이 별로 많이 쓰이지 않고 있어, 명쾌한 맛을 풍기며 부드럽고 유창하며 서정적이다. 선율은 서도소리에 보이는 수심가(愁心歌) 토리에 가까우나 시김새가 서도소리보다 짙지 않고, 경기민요에 보이는 경토리[京調]가 섞여서 특이한 음조를 갖는다. 경기소리 가운데 양산도(楊山道)·방아타령·창부타령(倡夫打令)과 같은 경기민요나 곰보타령·병정타령과 같은 휘모리잡가가 흥겹고 구성진 느낌을 주는 것에 비하여 유산가·소춘향가와 같은 긴잡가는 차분하고 구수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색이다. 충청도 북부의 일부와 강원도 지방의 일부 민요들도 포함하고 있어, 중부지방 민요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해 불려진 통속민요와 그렇지 않은 토속민요가 있는데, <노랫가락>·<창부타령>·<방아타령>·<양산도>·<오봉산타령>·<사발가>·<군밤타령>·<흥타령―천안삼거리>·<강원도아리랑> 등의 통속민요가 잘 알려져 있다. 연주형태에 따라서는 좌창과 입창, 즉 앉아서 부르는 소리와 서서 부르는 소리로 나누어지는데, <노랫가락>·<오봉산타령>·<양유가> 등이 좌창에 속하고, <양산도>·<방아타령>·<경복궁타령> 등이 입창에 속한다. 좌창은 경기 긴 잡가식의 좌창과, 입창은 경기산타령과 같은 입창과 맥이 통한다. 일반적인 음악적 특징은 남도민요에 비해 한 글자에 여러 개의 음이 붙는 일자다음식의 선율이 많아, 가락의 굴곡이 유연하면서도 다채롭고 명쾌하다. 선법은 5음음계로 된 평조선법으로 장3도와 단3도의 음진행이 많고, 5음이 골고루 쓰이면서 주요음의 선율 골격은 완전4도를 주축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음조직은 같은 평조라고 하더라도 <창부타령>이나 <노랫가락>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서양음악식의 계명창법에 의한다면 솔·라·시·도·레로 불려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한강수타령>이나 <경복궁타령>에서처럼 라·도·레·미·솔로 부를 수 있는 곡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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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경기민요 명창 묵계월의 생애사 연구논문초록 본 논문은 경기민요 명창 묵계월의 생애사Life history를 통해, 경기민요의 근․현대사를 정리함으로써, 전통예술의 학론적 기반을 구축하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다.‘명창의 생애사’란 명제의 특성상 가계家系는 물론, 특히 ‘구술심전口述心傳’에 의한 도제식徒弟式 전수傳受 교육상 사승師承 관계를 예의 주시했다. 묵계월의 가계는 당시 대부분의 가창가歌唱家가 그러했듯이 한미寒微해 11세부터 20세까지 양어머니에 의해 교육된 소리꾼으로 출발했지만, 중요무형문화재로 선발된 이후 비로소 예인藝人으로서의 신분 상승, 나아가 그 영예에 충실하고자 자신의 사명감에 솔선수범率先垂範하였음을 증명하였으며, 사승관계를 통해 경기민요에 관심 갖게 된 동기 및 그 학습과정과, 공연 및 음반활동, 특히 경기민요연구회 결성과 연구회 활동, 나아가 경기민요의 무형문화재 등재 과정을 경기민요의 발달사적 차원에서 정리하였다. 물론 이상의 정리 작업이 참고문헌을 통한 연구·정리가 아니라. 온전히 한평생(80여년) 경기민요 가창자로 살아온 묵계월과, 40여년 스승으로 모시고 함께 활동해 온 연구자와의 대담 녹취는 그 어떤 유형의 문헌적 기록 이상의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녔으며, 노령으로 인한 기억상실은 몇몇 문헌에서 보충하므로, 묵계월 개인의 전기적 가치 이상 경기민요의 발전사적 가치 및 미래 제시적 연구물이고자 하였다. 특히 목계월·안비취·이은주 3인을 주축으로 한 경기민요연구회의 세 명인은 경기민요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이후, 이들 명인은 생활인으로서의 명창이 아닌, 공인, 이른바 예인藝人으로서의 품위는 물론, 사명을 다 했음을 무대공연 및 왕성한 음반활동, 그리고 민속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한 민속공연활동의 시례를 다양한 팜플렛 및 초대장·홍보게시물 등 자료 제시를 통해 예증했다. 그 중 특히 묵계월의 남다른 업적은 거의 독보적으로 이문원 소리선생으로부터 전수傳受해 완창完唱해 오던 송서율창誦書律唱의 맥을 제자 유창에게 전수傳授해 2009년 서울시 문화재 제 41호 송서율창 보유자에게 계승하므로 스승의 도는 물론, 당대에서 끊어질 뻔했던 한 전통예술의 맥을 이었다는 점에서 참다운 사도師道를 다했다 할 것이다. 이 밖에도 묵계월의 문하에는 인간문화재 보유자 2명, 전수조교 4명, 전수 장학생 5명, 대통령상 수상자 9명, 경기민요 이수자 36명 등 많은 후학을 양성하므로 민속예술가로서는 물론, 위대한 교육자의 역할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예능 못지않게 중시한 인성교육의 면면을 점검하고 예증하였다.따라서 묵계월 명창 한 분의 생애사 논고였지만, 이 논고를 통해 초기 한국 민요의 발달 과정은 물론, 앞으로 국악인 모두가 사명처럼 수행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므로 경기민요의 발전사 및 위대한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밝혀 후학의 귀감으로 삼고자 했다.This article aims to establish an academic basis of Gyeonggi folk song, a type of Korean traditional art by examining the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of Gyeonggi folk song through the life history of a master singer Muk Gyewol. Following the typical definition of ‘life history’ of a master singer, the article particularly focuses on both the pedigree, and the unique relations between a master and pupils that are formed especially when obeying to masters and his or her teachings are considered as strictly absolute and such teaching are usually orally passed down to the pupils.As most other singer families did in Korea, Muk’s family had low social status. When she was eleven, Muk started her career as a professional folk song singer under the teachings of her stepmother, which continued till she turned to twenty. It was not until she was selected as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when she was finally upwardly mobile. The article shows how Muk took the initiative and set an example of a master singer in order to devote herself to the honor of the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lso the article attempts to explain Muk’s reasons and motivations to get involved in Gyeonggi folk song, the learning process, performance and other activities such as forming Gyeonggi folk song research association and its activity by thoroughly understanding the relations between a master and pupils. Moreover, the process of listing Gyeonggi folk song as an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was examined from the aspect of the development of the Gyeonggi folk song.This research is not just conducted through the examinations on references or previous researches. It also includes the record of conversation between the researcher who has been a pupil of Muk for about 40 years and Muk herself who has lived as a master singer of Gyeonggi folk song for her whole life. Surely it is more valuable resource than any other literature records on this topic. However, Muk’s loss of memory due to old age was supplemented by other literature records. Hence, the article proposes more than just an individual biography: the valuable development of Gyeonggi folk song and its future value. After they were designated as an Intangible Cultural Treasure, Muk Gyewol, An Bi-chwi, and Lee Eun-joo, who are master singers as well as the main figures of the Gyeonggi folk song research association, not only maintained dignity as a public figure but also greatly performed their mission as a master singer. The article also illustrates it through their stage performance, active involvement in recording and shows how folk performance contributed to popularization of folk art by investigating various pamphlets, invitations and advertisements of the performance.The unique and great achievement of Muk Gyewol is in her making great efforts to teach and passing down her skills to her pupils, which can be seen as unequaled. She had carried on the legacy of singing Songseo-yulchang that she learned from her teacher, Lee Munwon and succeeded to her pupil, Yoo Chang who were designated as the 41 Intangible Cultural Treasure of Seoul in 2009. As a result, it can be said that Muk prevented the tradition from being broken off. Surprisingly, under Muk’s teaching there are two students who hold the designation of Human Cultural Asset, four apprentices as assistant instructors, five apprentices with scholarship, nine awardees of President Prize and thirty six students who completed the Gyeonggi folk song course. She fostered numerous pupils and fulfilled the mission both as a master singer and folk artists. Furthermore, she not only focused on the students’ skills as a singer but also paid close attention to build students’ upright character as an individualIn conclusion, the article deals with the life history of a master singer, Muk Gyewol and covers the overall history of Korea’s Gyeonggi folk song. Also it shows how Muk Gyewol has set an example of a great teacher for the future generation and successfully fulfilled her mission as a master singer through her whole life. Finally it suggests tasks that are assigned to other younger Korean folk si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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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한악계의 별들 (저자:한명희)이 책은 가곡 '비목'의 작시자로 널리 알려진 한명희 선생이 인연의 옷깃이 스쳐간 보석 같은 인연들의 이야기를 역사라는 시간의 대리석에 새겨놓은 것이다. 작가가 유려한 문체로 새겨놓은 주인공들은 우리 한악(국악)계의 터를 다듬고 보듬어 온 명인 명창들과 한악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분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가 된 아리랑과 한국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흥, 멋, 운치)에 대한 해박한 고찰은 한국의 전통예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서울대 음대 국악과를 나와 TBC(동양방송) PD 시절부터 국악에 남다른 애정과 사명감을 갖고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우리 국악계를 이끌어 온 분들과 각별한 교분을 나누어 온 저자 또한 우리 음악을 계승 발전시켜 온 산증인이다. 대학교수와 국립국악원 원장을 지내면서 《하늘의 소리 민중의 소리》 《우리가락 우리문화》 《한국음악, 한국인의 마음》 《하늘의 음악이란 무엇인가》 《학 떠난 빈터에는》 등의 저서는 우리 음악계의 소중한 문헌들이다. 차례 004서문 인연 한 자락 1부010가야고 병창으로 그린 비천상 _ 강정숙 명창012사물놀이로 세계를 제패한 선구자 _ 김덕수 명인016반듯한 기개 꼿꼿한 자존심 _ 김소희 명창022회심곡의 프리마돈나 _ 김영임 명창026월하의 음악 세계가 그립다 _ 김월하 가객028천진무구한 가섭의 염화미소 _ 김천흥 선생034둥둥 북을 울리면 신명이 솟는다 _ 김청만 명인036경기민요의 외연을 넓혀 가는 열정 _ 김혜란 명창038경기민요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주인공 _ 묵계월 명창041국악교육에 헌신한 선견지명 _ 박귀희 명창044끈기와 집념의 화신 _ 박동진 명창048국립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해 내는 능력과 수완 _ 박범훈 교수053늦가을 햇살녘의 잔상 _ 박병천 명인, 김영태 시인059청초한 유덕遺德은 한악계의 등불 _ 성경린 선생061학문의 바탕 체상體常을 튼실히 한 학자 _ 송방송 교수063소리꾼의 판소리 사설 정립 _ 송순섭 명창065장인 정신의 사표가 될 판소리 여왕 _ 안숙선 명창076서도지방의 맛과 멋을 이어 준 고마운 은인 _ 오복녀 명창078동초제 판소리 정립에 기여한 공적 _ 오정숙 명창081소쇄원 광풍각의 죽림풍류 _ 원장현 명인085실사구시의 학문을 궁행한 성실한 학자 _ 이보형 선생088고소한 해학이 일품인 경중예인鏡中藝人 _ 이상규 교수090대금산조의 달인 _ 이생강 달인093노래로 그려 낸 한 시대의 풍속사 _ 이은주 명창096가야고 음악의 경중미인 _ 이재숙 교수099소중한 문화지킴이 한국정가단 _ 이준아 가객101노래와 인품이 교직된 경기민요의 대가 _ 이춘희 명창103학덕과 인품을 겸비한 음악학의 태두 _ 이혜구 박사107심금을 퉁겨서 노래하는 국민가객 _ 장사익 가걸歌傑110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른 소리꾼 _ 정광수 명창113피리로 세상을 보듬어 온 외곬 인생 _ 정재국 명인 116영년퇴은이 유발하는 무정세월 _ 조운조 교수119놀이마당문화의 파수꾼 _ 지운하 명인122한국전통음악연구회의 창단 _ 최경만 명인125정악 가야고의 법통을 잇는 금객琴客 _ 최충웅 명인130가야고 음악의 신지평을 개척한 작곡가 _ 황병기 교수133내 삶의 인드라망을 수놓은 한악계 별들 _ 김연수, 이창배 외 2부144전통음악을 사랑하는 고마운 기업인 _ 초해 윤영달 선생148초야에 묻힌 국악계의 보옥 _ 서암 권승관 선생153어느 인연이 그린 삶의 무늬 _ 백석의 연인 자야 여사158기인처럼 살다 간 풍류객 _ 연정 임윤수 선생161정녕 가시나이까 _ 화정 김병관 선생165유어예의 귀명창 _ 호암 이병철 선생175한악계의 은인 _ 조선일보 방일영국악상179문화가 된 노래 아리랑185한국 전통예술을 이해하는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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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가락으로 승화시킨 서른 살 망부의 한, 안비취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된 경기민요에는 12잡가가 있다. ①유산가(遊山歌) ②적벽가(赤壁歌) ③제비가(燕子歌) ④소춘향가(小春香歌) ⑤집장가(執杖歌. 집장 사령) ⑥형장가(刑杖歌) ⑦평양가(平孃歌) ⑧선유가(船遊歌) ⑨ 출인가(出引歌) ⑩십장가(十杖歌) ⑪방물가(房物歌) ⑫달거리(月齢歌)가 그것이다. 이들 12잡가의 음악의 특징은 4분의 6박자인 도드리 장단이 대부분이며, 형식은 약간 불투명한 유절(마루) 형식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직설적 표현이 많다. 서울ㆍ경기도를 중심으로 충청 북부와 강원 일부 지역까지 애창돼 중부 지방 민요로도 불린다.12잡가는 세 사람의 인간문화재로 나뉘어 지정ㆍ보호받고 있다. 이중 안비취(安翡翠, 1926년 3월 21일생) 씨가 유산가ㆍ제비가ㆍ소춘향가ㆍ십장가를, 묵계월 씨가 적벽가ㆍ출인가ㆍ선유가ㆍ방물가를 부르며, 이은주 씨는 집장가ㆍ평양가ㆍ형장가ㆍ달거리로 지정돼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다.매년 설날이나 추석 등 경축 무대에 ‘안비취와 그 제자들’로 소개되며, 기골 장대한 체구가 대중을 압도해 버리는 안비취 여사.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바로 옆의 이춘희(李春羲, 89년 준문화재 지정), 김혜란(본명은 숙근, 전수자), 이호연(본명 연화, 전수자) 씨 등도 TV 화면을 통해 낯익은 얼굴들이다."4남1녀의 외동딸로 태어났지요. 위로 언니가 일찍 죽자 명이 길라는 뜻에서 ‘복식(福植)’이란 남자 이름으로 지었답니다. ‘비취’란 예명은 12잡가를 떼 주신 최정식(崔貞植)선생이 제가 16세 때 방송에 첫 출연하게 되자 지어 주신 겁니다. 흔히 비취 반지로 알고 있지만 중국 문헌 속에 나오는 새 이름이라고 들었어요.”서울 종로구 효자동 대궐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자란 안씨는 순흥 안씨 보성군파로 당시 부친은 효자동에서 제일 큰 잡화상을 운영했다. 부잣집에다 절에 가 빌어서 난 딸로 애시당초 부족함이나 어려움 같은 건 남의 일이었다고 한다.손으로 태엽 감으며 아버지가 듣던 ‘빅타’ 유성기가 좋아 보여 늘 곁에서 참견했다는 것. 이 때 들은 ‘기막힌 소리’들이 이화중선(李花中仙), 김소희(金素姬), 백운선, 장학선 명창 들의 애절한 판소리. 소학교에 들어갔으나 머리는 좋았는데 공부는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등 소리 가사는 듣기만 해도 줄줄 외워 댔지만 특히 산수는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했다고 한다.안씨의 ‘팔자’는 열 세 살 때의 대담한 가출로 판가름난다. 세 살 위의 이웃집 민향심(閔香心)과 무단 가출, 하규일(河圭一) 씨가 운영하던 정악 교습소에 들어갔다. 그 때 하씨는 이왕직 아악부에 나가면서 별도 교습소를 차려 놓고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여기서 안씨는 궁중정재(춤)와 4검무, 연하대무, 무산향 등을 익히고 이병성 씨한테 가곡을 정식으로 전수받았다. 뒤늦게 안 어머니의 지원으로 2년 뒤에는 한성준(韓成俊) 씨를 만나 민속춤(승무)을, 최정식(崔貞植) 씨한테는 경기12잡가를 배우기에 이른다. 이래서 가무에 능한 오늘의 안비취로 일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최정식 씨는 ‘금강산타령’, ‘풍등가’ 등을 작사ㆍ작곡한 장구 명인으로 그의 문하에서 세 명의 인간문화재가 배출됐다. 하규일 씨는 일제 때 조선 권번을 움직인 당대 가무의 대가였다."정악에서 민속악 쪽으로 나오니 창법이 달랐습니다. 특히 상성(고음)이 가곡보다 힘들어 적응하기가 힘들었지요.” 안비취 씨는 정악만을 끝까지 지켜 내지 못한 것을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다."어려서부터 시집은 정말 가기 싫었고 소리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사 뜻대로만 됩니까. 19세에 강기준(姜基準) 씨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 분은 내 나이 서른에 딸만 둘 남겨 놓고 훌쩍 떠나 버렸지요.”시집살이하는 동안 ‘여편네가 살림은 안 하고 소리질만 해 댄다’ 하여 가정 불화가 잦았다. 안씨는 그 때나 지금이나 예술 없이는 못 살겠다는 황소고집이었다고 한다. 남편을 잃은 천추의 한은 춤사위와 소리 가락으로 승화 됐고 결혼식에 참석조차 않은 친정 아버지 가슴을 녹이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6ㆍ25 때 부산 피난지에서의 공연과 1959년(34세) 박귀희(朴貴姬)ㆍ임춘앵ㆍ복혜숙(영화 배우)ㆍ최용자(무용가)ㆍ임유앵(임춘앵 언니) 씨와의 일본 순회 공연이 잊혀지지 않는단다. 일본 첫 공연은 최상덕(연출가), 박진(연출가), 이서구(李瑞求) 씨를 중심으로 ‘대춘향가’를 선보여 교포들을 울렸다. 자유당 말기에는 박초월(木初月), 김소희(金素姬), 박귀희 씨와 함께 당시 오재경(吳在璟) 공보처장관을 설득, 오늘의 국악협회를 인가 받아 창립하는 등 국악 발전에도 앞장섰다. 한때는 골프에 심취, 명동 사보이호텔 건너편에 실내 연습장을 만들기도 했으나 첫 사업은 보기좋게 실패했다.서울 중구 남산동의 안비취 후계양성소에는 대학을 나온 장학생들도 적지 않다. 50명이 넘는 제자 중 최영숙(35)ㆍ이금미(30, 본명 생길, 국립국악원)ㆍ전숙희(44) 씨는 전수자로 등록됐고, 남궁랑(35)ㆍ이유라(34)ㆍ전영희(39) 씨 등은 장학생.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했던가. 준문화재로 지정(1989년)된 이춘희(서울 출생) 씨도 중학 시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민요만 부른다며 체육 선생한테 매맞은 소리 솜씨다. 이창배 민요학원에서 배우다 1971년 안씨를 만나 본격 학습에 들어간 뒤 1975년 안씨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수석 전수생으로 등록됐다. 한때는 김부해 음악학원에서 배운 숨은 솜씨로 가수 황금심 씨 노래를 구분 못 하게 잘했으며 최근에는 롯데월드에서 민요 부르기 강좌(매주 화요일)를 맡고 있다. 안비취 선생은 경기민요에 놀이가 끼지 않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판소리에는 고수와의 대화(아니리)가 있고, 굿에는 리듬ㆍ의상ㆍ소리ㆍ재담까지 포함된 바라지가 신바람을 내 주는데 12잡가는 단조로움의 연속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이지산 스님(재미)이 귀국하면 제자 김혜란 씨에게 바라지 가락을 배우게 해 경기민요와 굿장단의 만남도 시도해 볼 계획이다. 중대, 추계예술대, 서울예전에 나가 강의하면서도 이런 변신 가능성을 여러 번 토의해 보았다고 한다. "한생애 예인의 길을 걷느라 여자로서 잃은 것도 많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쌍계사(雙磎寺) 국사암과 서울 근교 절을 자주 찾으며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를 생각합니다.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건지······. 경기민요에 담긴 내용들도 부의 허망함과 헛된 욕심을 나무라는 내용이 많지요.” • 안비취 경기민요 계보 출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이규원, 정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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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慕-冥福을 빕니다! 이은주 명인국악신문이 기록한 우리들의 이은주 선생님은! 1922년 경기도 양주군 장한명에서 ‘윤란’ 탄생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목소리’라는 ‘銀珠’ 득명. 원경태선생의 문하에서, 이창배선생과 함께한 지도자. 홍명극장·단성사·TBC경창대회 장원과 1등의 명성. 대동강물을 먹지 않고서도 서도소리 ‘수심가’로 1등. 전쟁통에 ‘태평가’를 복원하여 ‘짜증을~’ 덜어 태평을 기원. 유성기 SP음반 80여장, LP음반 300여장을 취입한 역사. 1969년 안비취 묵계월과 함께 57호 경기민요 보유자. 1999년 경기12잡가 전곡을 79세라는 최고령 녹음. 경기소리 긴아리랑과 정선아리랑 절창의 목구성. KBS국악대상·옥관문화훈장·국악협회 10대명인 선정. 긴아리랑과 이별가로 명창 여부 가늠하는 척도 제시. 소리인생 84 천수, 세수 98세 만수, 그 명성 만만세. 아! 인금구망(人琴俱亡)이요 인금병절(人琴幷絶)! 국악신문, 2020. 1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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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경기민요’ 이은주 명예보유자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은주(1922년생/본명 이윤란) 명예보유자가노환으로 11월 2일(월) 오후에 별세하였다. 생년월일: 1922. 10. 6. 주요경력 - 1939. 인천 흥명극장 명창대회 장원 - 1955. 단성사 명창대회 장원 - 1975. 7. 12.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 - 1991. 한국국악대상, KBS국악대상 특별상 수상 - 1993. 옥관문화훈장 수상 - 2006. 방일영 국악상 수상 - 2010. 한민족문화예술대상 수상 - 2013. 7. 17.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명예보유자 인정 경기민요는 조선 후기에 널리 향유되던 잡가를 20세기 초 서울이나 평양의 근대 도시적 분위기에 맞춰 세련되게 만든 새로운 노래 양식 전체를 아우르는광의의 개념이지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기민요는 ‘경기좌창’이라 불리는‘경기긴잡가’ 12곡이다. ※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1975. 7. 12. 지정) 경기긴잡가는 경기 특유의 율조로 대개 서경적 혹은 서정적인 긴사설로 비교적 조용하고 은근하며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서정적인 표현이 많은 것이특징이다. 원경태 선생에게 경․서도소리, 가사, 시조, 잡가 등을 배우며 소릿길에 입문한 고(故) 이은주 명예보유자는 경기민요 종목의 초대 보유자였던 고(故) 묵계월(본명이경옥), 고(故) 안비취(본명 안복식) 선생과 함께 경기민요 3인방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고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경기민요 초대 보유자 3인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떠나게 되었다. 고(故) 이은주 명예보유자는 1962년부터 한국민요연구회 초대 이사 겸 부회장,한국국악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민요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며, 1975년 이은주 경기창연구원을 개원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는 등 한평생 경기민요의 보전과 전승활동에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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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민요] 인간문화재 이은주 명인 약력이은주 (1922-202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1922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출생 1936 원경태 선생께 가사, 시조, 잡가 사사 1939 인천홍명극장 명창대회 1등 ‘수심가’ 1939 경성방송국 데뷔 ‘소춘향가’등 1946 대한국악원 민요부원 1947 서울중앙방송국 전속 민요부원 1947 고려레코드사 음반 취입 1949 서울중앙방송국 팔도민요취입 1954 킹스타, 신세기, 도미도, 오아시스, 유니버셜 ~1962 레코드사 유성기 음반취입(약 80여장취입) 1955 단성사 명창대회 1등 1958 청구고전성악학원 강사 1962 한국민요연구회 초대이사취임 1963 한국민요연구회 재일동포 위문공연 1969 제4회 TBC(동양방송) 명인명창대회 1등 1969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후보지정 1975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지정 1975 이은주 경기창 연구원 개원 1991 KBS 국악대상 특별공로상 수상 1992 고희 기념 ‘바람 한자락 소리한자락’공연(호암아트홀) 1992 미국 뉴욕 카네기홀 및 LA 윌셔에벨홀 한 흑 친선문화축제공연 1993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 수상(대통령 표창) 1996 이은주 소리인생 60년 기념공연(국립극장) 2000 이은주의 12잡가 전집 음반 발매 2001 이은주 팔순기념 ‘태평가’ 공연 (국립극장) 2005 국악협회 ‘10인의 명인’에 선정 2006 소리의 맥 시리즈 ‘소리연’음반 발매 2006 ‘소리연85’ 공연 (국립국악원) 2006 11. 조선일보사주최 ‘방일영 국악상 수상’ 2007. 9 ‘天傳의소리’ 음반 발매 Lee, Eun-Joo / Vocalist. Holder of Gyonggi Minyo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Asset Lee Eun-Joo was born in 1922, in Yangju-gun, Gyonggi province,South Korea. At her age of 13, she started to learn Korean traditional vocal music such as Si Jo, Gasa, Jap Ga under the maestroWon, Kyung-tai. In 1939, she began to appeal public attention as a promising vocalist as she won the first prize from the vocal contest hosted by Incheon Hong-myung theater and had successful debut concert through Kyungsung Broadcasting Company. Since then, she continued to develop her career as the best singer of the days as she grabbed the title of top singer at the most powerful and authorized contests for Korean traditional folk songs named Dansung-sa competition, and TBC Contest in 1955 and in 1969. Between 1954 abd 1962, she had led her busy and smooth schedules appearing Radio programmes and contracting with famous recording companies. With that result, she had released about 80 recordings from the Koryo Record, King star, Oasis, Shinse-gi, Universal labels, which ranked the most case of that times. Lee Eun-Joo, who has widely been recognized one of the best and renowned singer in the nation, in 1975, finally, had been designated the title of the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asset number 57, in the field of Gyonggi minyo. She had received a medal for distinguished services from KBS Grand Awards for traditional music in 1991 and also had been decorated the jade crown Order of Culture from the government in 1993. In 1996, she had given the 60th debut anniversary concert and also had her 80th anniversary concert at the National theater in 2001. In 2006, Bang Il-Young Foundation of Chosun Daily News conferred the Grand Award to Lee Eun-Joo and praised her successful music life for about 60 years as a master of vocalist in our days. In 2000, she released the completion CD for 12 Jap Ga under her own name, and in 2006, introduced new CD named Sori yeon. In 2007, she is expecting another new CD called Chun-Jeon, which means the Sounds from the Heaven. [음반] 이은주의 <천전의 소리> 가사 : 1. 달거리 月齡歌 네가 나를 볼 양이면 심양강(尋陽江) 건너와서 연화분(蓮花盆)에 심었던 화초 삼색도화(三色挑花) 피었더라 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一朝郎君)이 네가 내 건곤(乾坤)이지 아무리 하여도 네가 내 건곤이지 정월이라 십오일에 망월(望月)하는 소년들아 망월도 하려니와 부모 봉양 생각세라 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이 네가 내 건곤이지 아무리 하여도 네가 내 건곤이지 이월이라 한식(寒食)날에 천추절(千秋節)이 적막이로다 개자추(介子推)의 넋이로구나 면산에 봄이 드니 불탄 불 속잎 난다 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이 네가 내 건곤이지 아무리 하여도 네가 내 건곤이지 삼월이라 삼짇날에 강남서 나온 제비 왔노라 현신(現身)한다 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이 네가 내 건곤이지 아무리 하여도 네가 내 건곤이지 적수단신(赤手單身) 이내 몸이 나래 돋친 학(鶴)이나 되면 훨훨 수루루루룩 가련마는 나아하에 지루에 에도 산이로구나 안 올림벙거지에 진사상모(眞絲象毛)를 덤벅달고 만석당혜를 좌르르르 끌며 춘향(春香)아 부르는 소래 사람의 간장(肝腸)이 다 녹는다 나하에 지루에도 산이로구나 경상도 태백산(太白山)은 상주(尙州) 낙동강이 둘러 있고 전라도 지리산(智異山)은 두치강(豆治江)이 둘러 있고 충청도 계룡산(鷄龍山)은 공주(公州) 금강(錦江)이 다 둘렀다 나아하에 지루에 에도 산이로구나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 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以下굿거리 장단) 인간 이별 만사중(萬事中)에 독수공방(獨守空房)이 상사난(相思難)이란다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안방 건넌방 가루다지 국화 새김의 완자문이란다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어저께 밤에도 나가 자고 그저께 밤에는 구경 가고 무슨 염치로 삼승(三升)버선에 볼 받아 달람나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나 돌아감네 에헤 나 돌아감네 떨떨거리고 나 돌아가노라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두견이 울어라 사랑도 매화로다 2. 집장가 執杖歌 집장군노(執杖軍奴) 거동을 봐라 춘향(春香)을 동틀에다 쫑그라니 올려매고 형장(刑杖)을 한아름을 듸립다 덤석 안아다가 춘향의 앞에다가 좌르르 펄뜨리고 좌우 나졸(邏卒)들이 집장(執杖) 배립(排立)하여 분부(吩付) 듣주어라 여쭈어라 바로바로 아뢸말삼 없소 사또안전(使道案前)에 죽여만 주오 집장군노 거동을 봐라 형장 하나를 고르면서 이놈 집어 느긋느긋 저놈 집어 는청는청 춘향이를 곁눈을 주며 저 다리 들어라 골(骨) 부러질라 눈 감어라 보지를 마라 나 죽은들 너 매우 치랴느냐 걱정을 말고 근심을 마라 집장군노 거동을 봐라 형장 하나를 골라 쥐고 선뜻 들고 내닫는 형상(刑狀) 지옥문(地獄門) 지키었던 사자(使者)가 철퇴(鐵槌)를 들어메고 내닫는 형상 좁은 골에 벼락치듯 너른 들(廣野)에 번개하듯 십리만치 물러섰다가 오리만치 달려 들어와서 하나를 드립다 딱 부치니 아이구 이 일이 웬 일이란 말요 허허 야 년아 말 듣거라 꽃은 피었다가 저절로 지고 잎은 돋았다가 다 뚝뚝 떨어져서 허허한치 광풍(狂風)의 낙엽이 되어 청버들을 좌르르 흘터 말고 맑은 구곡지수(九曲之水)에다가 풍기덩실 지두덩실 흐늘거려 떠나려 가는구나 말이 못된 네로구나 3. 형장가 刑杖歌 형장(刑杖) 태장(笞杖) 삼(三)모진 도리매로 하날치고 짐작(斟酌)할까 둘을 치고 그만 둘까 삼십도(三十度)에 맹장(猛杖)하니 일촌간장(一寸肝臟) 다 녹는다 걸렸구나 걸렸구나 일등춘향 (一等春香)이 걸렸구나 사또 분부(使道吩付) 지엄(至嚴)하니 인정(人情)일랑 두지 마라 국곡투식(國曲偸食)하였느냐 엄형중치(嚴刑重治)는 무삼일고 살인도모(殺人圖謀) 하였느냐 항쇄족쇄는 무삼일고 관전발악(官前發惡) 하였느냐 옥골최심 무삼일고 불쌍하고 가련(可憐)하다 춘향 어미가 불쌍하다 먹을 것을 옆에다 끼고 옥 모퉁이로 돌아들며 몹쓸 년의 춘향이야 허락 한 마디만 하려무나 아이구 어머니 그 말씀 마오 허락이란 말이 웬 말이오 옥중에서 죽을망정 허락하기는 나는 싫소 새벽 서리 찬 바람에 울고 가는 기러기야 한양성내(漢陽城內) 가거들랑 도련님께 전하여 주렴 날 죽이오 날 죽이오 신관사또(新官使道)야 날 죽이오 날 살리오 날 살리오 한양낭군(漢陽郎君)님 날 살리오 옥 같은 정갱이에 유혈(流血)이 낭자(狼藉)하니 속절없이 나 죽겠네 옥 같은 얼굴에 진주 같은 눈물 방울방울방울 떨어진다 석벽강상(石壁江上) 찬 바람은 살 쏘듯이 드리불고 벼룩 빈대 바구미는 예도 물고 제도 뜯네 석벽(石壁)에 섰는 매화(梅花) 나를 보고 반기는 듯 도화유수묘연(挑花流水渺然)히 뚝 떨어져 굽이굽이굽이 솟아난다 4. 평양가 平壤歌 갈까보다 가리갈까 보다 임을따라 임과 둘이 갈까보다 잦은 밥을 다 못 먹고 임을따라 임과둘이 갈까보다 부모동생(父母同生) 다 이별하고 임을따라 임과둘이 갈까보다 불 붙는다 불이 불 붙는다 평양성내(平壤城內) 불이 불 붙는다 평양성내(平壤城內) 불이 불 붙으면 월선(月仙)이 집이 행여 불갈세라 월선(月仙)이 집이 불이 불 붙으면 육방관속(六房官屬)이 제가 제 알리라 가세 가세 노리 놀러가세 월선이 집에 우리 놀러를 가세 월선(月仙)이 나와 소매를 잡고 가세 가세 어서 들어를 가세 놓소 놓소 노리놓소그려 직영(直纓)소매 노리 놓소그려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직영(直纓)소매 동이 동 떨어진다 상침(上針) 중침(中針) 다 골라내어 세(細)모시 당사(唐絲)로 가리감춰 줌세 5 긴 아리랑 1. 만경창파 거기둥둥 뜬배 게잠깐 닻주어라 말 물어보자 2. 우연히 저달이 구름밖에 나더니 공연한 심회를 어이 풀어볼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 구료 아리랑 아리얼쑤 아라리로 구료 3. 이별하든 날 내어히 살었나 모질고 거친세파 어히 살어갈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 구료 아리랑 아리얼쑤 아라리로 구료 6. 정선 아리랑 1.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유점사 법당뒤에 칠성단 도두 모ㅎ 고 팔자에 없는 아들 딸 낳달라고 석달열흘 노구메 백일정성을 말고 타관객리 외로히 난사람 괄세를 마오 2. 세파의 시달린 몸 만사에 뜻이없어 홀연히 다 떨치고 청려를 의지하여 지향없이 가노라니 풍광은 예와달라 만물이 소연한데 해저무는 저녁노을 무심히 바라보며 옛일을 추억하고 시름없이 있노라니 눈앞에 온갖것이 모다 시름뿐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만주오 3. 산비탈 굽은길로 얼룩암소 몰아가는 저목동아 한가함을 지랑마라 나도 엊그제 정든임을 이별하고 일구월심 맺힌 설움 이내진정 깊은한을 풀길이 바이없어 이곳에 머무르니 처량한 초적일랑 부디 불지를 마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만주오 7. 이별가 離別歌 1. 이별이야 이별이야 님과날과 이별이야 2. 가는님을 잡지마오 다녀올때가 반갑다오 3. 인제가면 언제 오려오 오만한을 일러주오 8. 회심곡 回心曲 일심으로 정념 아하아아미 이로다 보홍오 오호 억조창생은 다 만민시주님네 이내 말씀을 들어보소 인간세상에 다 나온 은덕을랑 남녀노소가 있지를마소 건명전에 법화경이로구나 곤명전에 은중경이로다 우리부모 나비실제 백일정성이면 산천기도라 명산대찰을 다니시며 왼갖 정성을 다 들이시니 힘든남기 꺽어지며 공든탑이 무너지랴 지성이면 감천이라 부모님전 드러날제 석가제존 공덕으로 아버님전 뼈를 빌고 어머님전 살을 빌어 제석님전에 복을빌고 칠성님전 명을빌어 열달배설한후 이세상에 생겨나니 우리부모 날기를제 겨울이면 추울세라 여름이면 더울세라 천금주어 만금주어 나를곱게 길렀건만 어려서는 철을몰라 부모은공을 갚을소냐 다셧하니 열이로다 열에다섯대장부라 인간칠십 고래희요 팔십장년 구십춘광 백세를 산다해도 달로더불어 논하며는 일천하고 이백달에 날로더불어 논하며는 삼만육천일에 병든날과 잠든날이며 걱정근심 다제하면 단사십도 못사는 인생 어느하가 부모은공 갚을소냐 청춘가고 백발오니 애 달ㅍ 고 슬프도다 인간공로 뉘가능히 막아내며 춘초년년 녹이나 왕손은 귀불귀라 초로같은 우리인생 한번아차 죽어지면 다시오기 어려워라 어제오늘 성턴몸이 저녁내로 병이들어 실낱같이 가는몸에 태산같은 병이들어 부르느니 어머니요 찾느니 냉수로다 인삼녹용 약을쓴들 약효험이 있을소며 맹인불러설경한들 경덕인들 입을소냐 흔미하여 누웠을제 제일전에 진광대왕 제이에 초강대왕 제삼에 송제대왕 제사에 오관대왕 제오에 염라대왕 제육에 변성대왕 제칠에 태산대왕 제팔에 평등대왕 제구에 도시대왕 제십전에 오도전륜대왕 열시왕전 맹인사자 일직사자 월직사자 한손에는 철봉들고 또한손에 창검쥐여 쇠사슬을 비껴차고 활등같이 굽은길로 화살같이 달려들어 닫은문을 박차면서 성명삼자 불러내니 정신이 아득하여 처자의 손을잡고 만단설화 다못하여 정신차려 살펴보니 약탕관이 버려있고 지성구호 극진한들 갈목숨이 머물소냐 친구벗님 많다해도 어느친구 동행하며 일가친척 많다해도 어느일가 대신가리 구사당에 하직하고 신사당에 허배헌후 대문밖을 써ㄲ 나서니 적삼내여 손에들고 혼백불러 초혼하니 없던곡성 낭자하다 옛노인 하신말씀 저승길이 멀다더니 오늘내게 당해서는 대문밖이 저승이라 청춘이가고 백발이 올줄았으면 십리밖에다 가시성이나 쌓을걸 세상천지 동포님네 회심곡을 허소 말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할일을 합시다 나하하아 헤라 헤라헤 열의열사십소사 나무관세음보살 출처: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SRCD-15284 (정창관의 국악CD음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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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경기민요 인간문화재 ’ 이은주 명인 별세2020년 11월 2일 경기민요 인간문화재 이은주(본명 이윤란, 향년 98세) 명창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고(故) 안비취(1926~1997), 묵계월(1921~2014) 명인명창과 함께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여성 3인방'으로 불리며 경기민요 전승과 보급 및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왔다. 1975년 이은주경기창연구원을 개원하고 후진 양성에도 지속적인 열정을 쏱았다. 이은주 명인은 1922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난 1936년 원경태 선생에게 사사하였다. 1939년 KBS의 전신인 경성방송국 음악 프로그램으로 데뷔하여 이름을 알렸다. 같은 해 인천 ‘흥명극장 팔도명창대회’에서 ‘수심가’를 부르며 1위를 차지했다. 한국전쟁 때, 일제강점기때 불리다 잊혀진 구전민요 '태평가'를 복원해 전국적 명성을 얻었으며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1948년 ‘고려레코드’의 민요음반을 시작으로 유성기 음반 80여 장, LP 300여 장 등을 발표했으며 1999년 팔순을 앞둔 나이로 경기 12잡가 전곡을 녹음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93년 옥관문화훈장, 2006년 방일영국악상 등을 받았으며 2010년 한민족문화예술대상 민요부문에서 수상했다. 빈소는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지하 6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월 5일 오전 6시 4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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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정창관의 신보유람 9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아리랑은 민족의 음악이다. 4대 아리랑은 ‘본조아리랑’, ‘정선아리랑(아라리)’,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이다. 필자는 여기서 제일 주요한 ‘아리랑’은 ‘밀양아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4대 아리랑 중에서 제일 먼저 나온 아리랑은 ‘정선아라리’이지만 토속민요로 일제강점기에는 유성기음반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강원도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선아라리류 음악은 등장하고 있다. ‘본조아리랑’이라고 하는 나운규의 영화에 나온 아리랑은 지금 많이 변해있다. 많은 아리랑들이 비슷비슷하지만 그 지역의 이름을 붙혀 여러 아리랑들이 산재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1926년 나운규 영화의 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의 시작인 것은 맞지만, 우리가 지금 부르는 ‘본조아리랑’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가 부르는 ‘본조아라랑’은 1947년 이은주 명창의 아리랑을 기점으로 1950년대 중반에 완성된 것이다. 김금화 명창의 ‘밀양아리랑’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개봉(1926년 10월1일)되기 전 9월 27일 동아일보에 나타난다. 사실 음반으로는 아리랑 중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밀양아리랑이다. ‘진도아리랑’은 8년 후인 1934년에 나타난다. ‘밀양아리랑’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1926년 밀양아리랑’의 가사가 제대로 채록 되어 있지 않다. 필자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채록 해놓았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 밀양에 있는 밀양아리랑 비석에 있는 가사는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로 시작하지만, ‘1926년 밀양아리랑’에는 ‘날 좀 보소’ 가사는 없다. 또 후렴으로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으로 부르는데 ‘1926년 밀양아리랑’에는 ‘쓰리쓰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 1930년 이후 나타난 가사들이다. 일제강점기에 유성기음반으로 제일 많이 나타나는 아리랑은 ‘밀양아리랑’으로 15장에 이르고 있다. ‘아리아리랑’ 음악도 밀양아리랑인 것을 고려하면 19장이 ‘밀양아리랑’이다. ‘본조아리랑’은 변해가는 과정에 있어 몇 장이라 말하기도 애매하다. ‘정선아리리’는 강원도아리랑으로 숨어있는 것을 고려해도 2장 정도, ’진도아리랑‘은 3장이다. ’밀양아리랑‘ 음반이 단연코 많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밀양아리랑‘이 그 만큼 대중들의 인기가 대단했기에 음반사들이 많이 출반했다는 증거다. 이렇게 인기가 많았던 ‘밀양아리랑’이 지금까지 다른 아리랑에 비해 지역에서 푸대접을 받은 것 같다. 이제야 밀양시가 ‘밀양아리랑’음반을 처음 출반하였다. 2장의 음반에는 밀양에서 민속놀이를 전승하고 있는 4개 단체, 감내게줄당기기, 새터가을굿놀이, 법흥상원놀이, 무안용호놀이 팀과 청소년 공연팀인 아리랑친구들이 참여하였다. 통속민요로 출반한 ‘밀양아리랑’이 토속민요화 되어 즐겁게 부르고 있다. 노래는 투박하고 거칠지만 정겹게 다가온다. CD 1, 4번곡 ‘어린이 밀양아리랑’은 1961년 출판한 ‘우리민요 시화곡집’에 나오는 윤석중 선생의 노랫말로 최초로 담은 것이다. 또 밀양아리랑 곡조로 부르는 ‘광복군아리랑’도 수록되어 있다. 이 음반을 시작으로 의미있는 밀양아리랑 음반들이 출반되기를 기대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출반된 밀양아리랑 유성기음반들이 꼭 복각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유성기 음반 19장에 수록된 밀양아리랑의 가사만 제대로 채록해도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정창관의 아리랑’ 채널, KC-밀양아리랑(4대아리랑) 코너에서는 위의 밀양아리랑, 1926년 김금화 명창이 부르는 밀양아리랑(최초로 유튜브에 공개)과 170 여곡의 밀양아리랑을 감상할 수 있다. 관련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K-VE-5817&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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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6호 살풀이춤 이은주 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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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정창관의 신보유람 2‘잡가’(雜歌)는 전통사회에서 전승되어 조선 말기에서 20세기 초에 성행하였던 성악곡의 하나로서 전문예능인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소리꾼이 긴 사설을 기교적 음악어법으로 부르는 노래다. 불렸던 지역에 따라 경기 잡가, 서도잡가, 남도잡가로 나누기도 한다. 잡가는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과정을 거쳐서 이어져 오고 있으며, ‘잡가는 민요보다는 엄격하고 정가보다는 자유롭다.’라고 회자되어 있다. ‘경기12잡가’는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지역에서 불렸던 잡가로 앉아서 부르며, 좌창 또는 긴잡가라고도 한다. 가사 내용은 판소리처럼 서사적 이야기이고, 처음에는 8잡가였으나(유산가·적벽가·제비가·집장가·소춘향가·선유가·형장가·평양가) 후에 달거리·십장가·출인가·방물가가 더하여 ‘경기12잡가’가 되었다. 12라는 수로 엮은 것은 이전의 판소리 12바탕, 12가사 등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송은주 소리꾼의 <12잡가 눈대목>은 ‘경기12잡가’음반으로 소리꾼의 첫 음반이다. 잡가는 보통 장구 반주로 부르며, 전곡은 2시간~2시간 반 정도로 CD음반 2장 내지는 3장에 담고 있다. 이 음반은 눈대목이라는 이름 아래 분량을 반으로 축소하여 1장에 담았다. 반주도 장구가 아닌 기악 반주로 가야금 임정완, 대금 김태현, 피리 김태형, 해금 소윤선, 장구 이지안이 참여하였다. 서양 오페라에서는 ‘Highlights’라는 이름으로, 판소리에서는 ‘눈대목’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이 많이 출반되어 왔지만 ‘경기12잡가’ 음반에서 눈대목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 음반이 처음이다. 곡 중에서 좋은 대목을 선별하고 이어서, 감상자들이 편하게 5분 정도로 발췌하였다. 송은주 소리꾼은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원 한국음악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김금숙, 이은주 명창을 사사하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이며 현재 전주대사습보존회 이사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사실 판소리 완창이나 경기12잡가 전곡을 듣는 것은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처음으로 12잡가 눈대목이라는 음반을 출반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평가는 감상자의 몫이다. 관련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GGC-20018&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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