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청자투각돈편(靑磁透刻墩片)-이 의자는 누가 앉았던 것일까
이규진(편고재 주인)
강화도에서 민속품을 수집해 답십리 고미술 상가에 넘기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 강화도 아주머니에게서 구매한 것이 청자투각돈편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강화도 아주머니에게는 답십리 고미술 상가 중에서도 자주 들리던 단골 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단골 가게가 문이 닫혀 있었다. 강화도 아주머니는 할 수 없이 옆 가게를 들렸는데 그 주인이 마침 나와는 친한 사이였다. 그러잖아도 이웃집 단골 물건을 중간에서 거래하기도 뭐하고 찜찜하던 차에, 내가 생각난 주인은 내게 전화를 했고, 달려간 나는 군말 없이 구매한 것이 청자투각돈편이다.
그날따라 강화도 아주머니의 단골 가게가 문이 닫혀 있지 않았더라면, 강화도 아주머니가 또 옆 가게를 들리지 않았더라면, 더구나 그 옆 가게 주인이 내게 전화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청자투각돈편은 내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오래전 일로서 그 강화도 아주머니도 이제는 이 세상 분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세월은 무정하건만 청자투각돈편과의 인연만이 남아 아직도 유정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강화도는 몽고 침입 시 정권과 왕실이 피난을 가 몽고에 항거했던 지역이다. 따라서 이 시기만 놓고 보면 강화도는 전국에서 고급 청자의 가장 큰 사용처였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강화도에서 출토되는 청자 중에는 의외로 명품들이 많다. 1963년 최항의 무덤에서 묘지석과 함께 출토되었다는 호암미술관 소장의 국보 제133호인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전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강화도 아주머니에게서 구매한 청자투각돈편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런 종류로는 양질에 속한다.
청자돈으로는 보물 제416호인 이대 박물관 소장품이 널리 알려져 있다. 4개 1조로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이 청자투각돈은 해방 전 개성 고려동에 살던 농부 김 씨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움집을 만들려고 마당 한구석의 땅을 파다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농부 김 씨는 일본인들에 의한 강탈을 염려해 다시 땅속에 묻어 두었다 해방이 된 후 개성 유일의 골동 가게인 조일상회로 가져가 거금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후 이 청자투각돈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끝내는 이화여대 박물관 소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 청자투각돈은 유명세에 비해서는 소성 과정에서 환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탓인지 황갈색이 더러 보인다. 그에 비하면 강화도 아주머니에게서 구매한 청자투각돈편은 환원이 잘 이루어져 유색이 비색에 가까운 편이다.
청자 의자를 두고 말하는 청자돈의 기형은 대개 비슷하다. 통형에 위는 막혀 있고 아래는 터져 있으며 옆은 대개 3단으로 나누어 투각을 하고 있다. 청자투각도편도 예외는 아니어서 옆 부분에 해당하는 곳은 투각으로 무늬를 장식하고 있다. 성형을 한 후 완전히 마르기 전에 대칼 같은 것으로 밖에서 안쪽으로 투각을 한 듯 뒷면을 보면 작업 시 태토가 밀려나 뭉친 부분들을 볼 수 있다. 투각 외의 장식으로 청자투각돈편의 윗부분에는 섬세한 음각 무늬가 들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자세히 보면 유면이 많이 닳은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로 보아 청자투각돈편은 부장품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사용하다 파손되어 버려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한민족 고유의 난방인 온돌은 그 역사가 오래 되었지만 보편화한 것은 조선 중기에 와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상류층에서는 입식 생활이 일반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청자돈과 관련된 유물이 심심찮게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청자투각돈편은 누가 사용했던 것일까. 왕이었을까 왕비였을까 아니면 왕자나 공주였을까. 그도 아니면 어느 고관대작이었을까. 비록 한 조각 도편에 불과하지만 이 청자투각돈편을 보고 있노라면 저 아득한 시공 너머 고려인들의 화려했던 삶과 꿈이 오롯이 따스한 정감으로 전해져 오는 듯한 느낌이다.
많이본뉴스
많이 본 뉴스
- 1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일노래, 삶의 노래' 오는 23일부터
- 2공연예술로 하나가 되는 '더원아트코리아' 최재학 대표를 만나다
- 3(34) <br> 노동은의 ‘잘못된 조건’ 둘, ‘교묘한 조작’
- 4제24회 공주 박동진판소리명창명고대회(0712-13)
- 5전주세계소리축제 공식 포스터 및 키워드 공개
- 6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82 <br>‘국악의 날’ 지정을 위한 제언(9) - “악학궤범은 새로운 가치 창출”
- 7제26회 서라벌전국학생민속무용경연대회(07/13-14)
- 8유인촌 문체부 장관, '국제문화정책 추진전략' 발표
- 9이애주한국전통춤회의 ‘우리춤 원류 찾기’ 첫 번째 여정 ‘법열곡’
- 10꽃신부 정주혜 양 시집가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