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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파편에 담긴 이야기(2)

특집부
기사입력 2021.07.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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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투각돈편(靑磁透刻墩片)-이 의자는 누가 앉았던 것일까

     

     

          이규진(편고재 주인)

      

    강화도에서 민속품을 수집해 답십리 고미술 상가에 넘기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 강화도 아주머니에게서 구매한 것이 청자투각돈편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강화도 아주머니에게는 답십리 고미술 상가 중에서도 자주 들리던 단골 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단골 가게가 문이 닫혀 있었다. 강화도 아주머니는 할 수 없이 옆 가게를 들렸는데 그 주인이 마침 나와는 친한 사이였다. 그러잖아도 이웃집 단골 물건을 중간에서 거래하기도 뭐하고 찜찜하던 차에, 내가 생각난 주인은 내게 전화를 했고, 달려간 나는 군말 없이 구매한 것이 청자투각돈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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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청자투각돈편 현고 13x25Cm. 편고재 소장

     

    그날따라 강화도 아주머니의 단골 가게가 문이 닫혀 있지 않았더라면, 강화도 아주머니가 또 옆 가게를 들리지 않았더라면, 더구나 그 옆 가게 주인이 내게 전화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청자투각돈편은 내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오래전 일로서 그 강화도 아주머니도 이제는 이 세상 분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세월은 무정하건만 청자투각돈편과의 인연만이 남아 아직도 유정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강화도는 몽고 침입 시 정권과 왕실이 피난을 가 몽고에 항거했던 지역이다. 따라서 이 시기만 놓고 보면 강화도는 전국에서 고급 청자의 가장 큰 사용처였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강화도에서 출토되는 청자 중에는 의외로 명품들이 많다. 1963년 최항의 무덤에서 묘지석과 함께 출토되었다는 호암미술관 소장의 국보 제133호인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전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강화도 아주머니에게서 구매한 청자투각돈편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런 종류로는 양질에 속한다.


    청자돈으로는 보물 제416호인 이대 박물관 소장품이 널리 알려져 있다. 41조로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이 청자투각돈은 해방 전 개성 고려동에 살던 농부 김 씨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움집을 만들려고 마당 한구석의 땅을 파다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농부 김 씨는 일본인들에 의한 강탈을 염려해 다시 땅속에 묻어 두었다 해방이 된 후 개성 유일의 골동 가게인 조일상회로 가져가 거금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후 이 청자투각돈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끝내는 이화여대 박물관 소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 청자투각돈은 유명세에 비해서는 소성 과정에서 환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탓인지 황갈색이 더러 보인다. 그에 비하면 강화도 아주머니에게서 구매한 청자투각돈편은 환원이 잘 이루어져 유색이 비색에 가까운 편이다.


    청자 의자를 두고 말하는 청자돈의 기형은 대개 비슷하다. 통형에 위는 막혀 있고 아래는 터져 있으며 옆은 대개 3단으로 나누어 투각을 하고 있다. 청자투각도편도 예외는 아니어서 옆 부분에 해당하는 곳은 투각으로 무늬를 장식하고 있다. 성형을 한 후 완전히 마르기 전에 대칼 같은 것으로 밖에서 안쪽으로 투각을 한 듯 뒷면을 보면 작업 시 태토가 밀려나 뭉친 부분들을 볼 수 있다. 투각 외의 장식으로 청자투각돈편의 윗부분에는 섬세한 음각 무늬가 들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자세히 보면 유면이 많이 닳은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로 보아 청자투각돈편은 부장품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사용하다 파손되어 버려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한민족 고유의 난방인 온돌은 그 역사가 오래 되었지만 보편화한 것은 조선 중기에 와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상류층에서는 입식 생활이 일반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청자돈과 관련된 유물이 심심찮게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청자투각돈편은 누가 사용했던 것일까. 왕이었을까 왕비였을까 아니면 왕자나 공주였을까. 그도 아니면 어느 고관대작이었을까. 비록 한 조각 도편에 불과하지만 이 청자투각돈편을 보고 있노라면 저 아득한 시공 너머 고려인들의 화려했던 삶과 꿈이 오롯이 따스한 정감으로 전해져 오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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