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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40

특집부
기사입력 2021.06.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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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의 소리

     

     

    이 동 희

     

    절정 <3>

    시대의 정신이었다.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변화를 요구하였고 개혁을 요구하였다.

    박연은 그 중심 바람맞이에 서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동안 책을 읽고 공부하고 닦아 온 바탕에다 경서經書 사서史書 예악서禮樂書 그리고 모든 고문서 전적들을 다 섭렵하고 모든 사례들을 샅샅이 뒤지고 고구考究하여 상소문을 작성하였던 것이다. 맹사성 유시눌 같은 제조들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 많은 선학 전관들의 자문을 받고 다시 되묻고 하여 초안을 확인하고 다시 쓰고 하였다. 밤을 새워 문헌을 뒤적였고 끼니를 거르고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쓴 것을 다시 읽어보고 고쳐 쓰고 또 청서를 하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가령, 좌의정 관습도감 제조提調 영악학領樂學의 자리에 있던 맹사성 대감에게는 무시로 자문을 받았다. 크고 작은 문제들을 시도 때도 없이 물어대었다. 집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밤중에 찾아갈 때도 있었다. 물론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하다 보면 그렇게 될 때가 많았다.

    북촌 꼭대기 맹사성의 집에 당도하면 피리소리가 났다. 퇴청 후 또는 저녁 식사 후 불기 시작한 피리를 밤늦게까지 계속 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사실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덜 하였다. 그런데 밤이 늦고 불이 다 꺼진 때도 그냥 돌아온 일이 없었다. 밤에 찾아가는 것도 염치없는 일인데 자는 사람을 깨우기까지 하였다. 그것도 고불古佛이다. 너무나 근엄한 대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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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이무성 화백의 작화 : [연재소설] 흙의 소리 40

     

    그러나 자다가 일어난 맹사성은 개의치 않고 반가이 맞아주었다.

    그날도 밤이 늦었다. 내일 아침 고할 것인데 아무리 전적을 뒤지고 참고하여도 마음에 안 들고 미심쩍고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절차를 밟는 것이기도 했다.

    "어서 오시게.”

    무슨 일인가 소리는 하지 않았다.

    "너무 무례한 줄 압니다만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고 내일 아침 아뢸 것인데 하교를 받고자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박연은 정말 너무 무례함을 자복하며 몇 번이고 용서를 구하였다.

    "딴 소리 말고 어서 용무를 말하시게.”

    그러면서, 내가 나라 일 하는 것이 임무인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오히려 나무랐다. 그리고 밤이 늦었으니 다른 사람들은 깨우지 않겠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하였다. 하인을 시켜 무엇을 내오게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박연은 더욱 몸둘바를 모르고 내일 고할 사항을 늘어놓았다.

    무무武舞의 법에 관한 것이었다.

    "무무는 선왕이 난을 평정하신 공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관계되는 바가 지극히 중합니다. 면류관을 쓰고 방패를 잡은 것은 원래 제왕이 친히 춤을 추던 제도로서 그대로 고치지 않은 것입니다. 예기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가.”

    맹사성은 아까부터 의관을 차리며 말하였다.

    "지금 무무를 하는 사람은 형조와 의금부에서 거관去官한 사람들이 많이 섞이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형옥刑獄에서 도끼 작도를 잡고 살육하는 사이에서 늙었으므로 그 습성과 소양이 단정하지 못한 사람들인데 하루아침에 아악에 참례하여 청묘淸廟에 돌아오니 행동거지가 완만하고 거칠며 얼굴 모양이 늙고 추한데다가 면류관을 쓰고 방패를 잡게 되니 아주 마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악학樂學에 명을 받은 후로부터 자제들 중에 대신할만한 사람이 있으면 계속하여 갈아세우고 그럴 수가 없는 것은 아직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악의 춤추는 사람을 다시는 형관刑官을 지낸 사람을 섞어 붙이지 말고 자제들 가운데 대신할만한 사람이 없으면 모두 삭제할까 합니다.”

    맹사성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듣고만 있었다. 아직 의견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살펴보시고 그래도 괜찮다고 하시면 재랑齋郞은 이조吏曹로 하여금 그 벼슬아치를 자원하는 사람 중에서 나이 젊고 총명한 사람을 뽑아서 정하게 하고 무공武工도 병조兵曹로 하여금 나이 젊고 일을 감당할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차정差定하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되겠네.”

    맹사성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일무佾舞에 대해서는 다시 또 하교를 받겠습니다.”

    "그러시게.”

    맹사성은 언제나 그냥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깐깐하고 매사 의견이 많았다. 사실은 그래서 밤에라도 찾아와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박연이 일어서려 하는데 맹사성은 벽장에서 호리병을 꺼내오며 편히 앉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의관을 푸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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