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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32

특집부
기사입력 2021.04.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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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의 소리

     

    이 동 희

     

     

    <1>


    나이를 얘기하였는데 그동안 참 정신없이 살았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안 해본 것이 없고 안 가본 길이 없다. 어디 다닌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많은 곳을 다니지도 못하였다. 잠시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 것이다.

    관직에 몸을 두기 시작하면서 그 훨씬 이전부터 가정은 그의 생각 밖에 있었다. 집은 잠을 자는 곳이고 아내는 아이들을 키우는 존재에 불과했다. 무엇은 대단하고 또 무엇은 대단치 않아서가 아니었다. 다 중요하고 대단하지만 하늘이 시키는 일 나라의 일이 먼저이며 아버지 어머니의 일 조상 선대의 일이 먼저라고 생각하였다.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글쎄 그런 말이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한다면 아내를 위하고 자식을 위하는 것은 후순위라는 것이 아니고 우선순위가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천지신명 대의 정도가 가르치는 방향으로 매진하였을 뿐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그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 바치고 갖은 치성을 다 드리는 아내는 부모님 다음으로 소중하고 운명적으로 얽혀진 일심동체임은 스스로 자인하고 높이든 낮추든 절대적인 처지이지만 그 표시를 내지 않고 살 뿐이었다. 덤덤하고 아니 초연하였다. 그는 그저 아이를 낳도록 해주는 사람일 뿐이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다. 가끔 큰기침을 하는 것으로 권위를 지키고 그것을 무너뜨리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자기의 일에 충실하고 주어진 임무에 전력을 다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그것이 물론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아들 셋 딸 하나 다 아버지의 마음에 들게 자라지를 못하였다. 딸은 그런대로 아버지를 하늘같이 여기고 어려워하고 한 마디 하면 그것을 금과옥조처럼 따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아들 셋은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의 너무도 늘푼수 없고 예에 치중하고 악에 심취하고 소리와 가락에나 매달려 모든 정력을 쏟아붓고 있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

     

    난계-흙의소리32회.JPG
    [국악신문] 이무성 화백의 작화 : [연재소설] 흙의 소리 32

      

    "참 답답해요. 천상 선비지요.”

    둘째 중우仲愚가 그렇게 말하였다. 아버지를 비하하는 것인지, 칭찬은 아니었다.

    "뭘 잘 한다는 것이냐

    못 알아 들어서가 아니었다. 섭섭한 것도 아니었다. 그로서는 그저 선비면 되었던 것이다.

    "역적이 되지 않고 도적질 하지 않고 살면 되는 거여.”

    "그게 아버지의 목표인가요?”

    막내 계우季愚가 묻는다. 토를 다는 것이다.

    "왜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냐?”

    "그러네요.”

    "목표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더 욕심은 없다. 내가 하던 일을 잘 마무리 하고 싶다. 대가 없이.”

    그러자 아이들은 아버지의 말은 더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맏이는 좀 나았다. 맹우孟愚는 대놓고 그렇게 대받지는 않았다. 생각이 같지는 않았지만.

    박연은 자신의 일, 그것은 물론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가정의 일도 아니었지만, 피리가 되었든 편경이 되었든 경서가 되었든 한번 집착하면 끝을 보아야 했다. 예도 그런 것이요 악도 그런 것이었다. 악기도 그런 것이었다.

    못마땅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털끝만큼도 옳지 않은 것은 참지 못하고 바르지 않은 것은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였다. 그것이 성품이면서 의지였다. 여러차 상소를 올리고 올리는 것마다 예조로 내려 보내어 실행이 되었다. 그의 의견은 곧 정책으로 실현이 되었다. 의견을 올리는 것마다 즉각 채택이 되었던 것이었다. 백발백중이었던 것이다.

    무슨 별난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위로 줄이 닿았던 것도 아니었다. (세종)과는 특별한 관계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문학이라는 임무에 충실을 기했을 뿐이고 단 한 번도 사사로운 일과 연관지어진 것은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문제점을 포착하면 거기에 온 정열을 쏟아 파헤치고 해결하려 하였다. 밤을 새워 전적을 뒤지고 식음을 폐하고 생각을 비틀어 짜내고 탐문하고 그리고 상주하였다. 낱낱이 지적을 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왕과의 대화였다.

    예악 분야에서는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어폐가 있다면 음악 분야에 있어서는 단연 일인자였다. 오십을 넘었으니 소장학자도 아니고 대가라고 해야 할지.

    악의 정비에 나선 세종이 대제학 맹사성孟思誠을 제조提調로 두고 박연을 별좌로 임명하여 악학 실무를 맡긴 이래 그 책임을 다하여 우리 예악 음악을 빛내고 불후의 공적을 쌓아 종내는 악성樂聖의 일컬음을 받게 되는데쉰 전후가 그의 음악적 발자취의 정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 몰라도 도적질 하지 않고 역적이 되지 않고 살아온 목표이며 가꾸어 온 꿈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화면 캡처 2021-04-15 07130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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