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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다른 이는 몰라도 이상규 교수가 회갑이라는 사실은 얼른 실감이 가지 않는다. 흔히 선배들의 나이 드심은 쉽게 눈에 띄어도, 후학들의 깊어지는 연륜은 의외란 듯 좀해서 믿겨지지 않는 인지상정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의 회갑에 대한 나의 의외성은 이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그는 팔팔한 장년 시절부터 머리는 은발이었다. 따라서 ‘안면은 청년에 머리는 은발’이라는 이미지가 곧 이 교수의 초상화처럼 나의 뇌리에 늘 각인되어 있었으니, 머리가 여전히 은발인 한 내 머릿속의 이 교수는 아직도 싱싱한 불혹의 연재年載쯤으로 감쪽같이 속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하간 이 교수의 은발은 적어도 은발을 선호하는 내게는 여간 인상적이질 않았다. 그와 관련된 내 머릿속 사진 중에는 우선 은발의 장면이 전면에 떠오른다. 하얀 두루마기에 은발을 휘날리며 멋지게 지휘를 하는 장면이 곧 그것이다.
은발에 부서지는 은은한 조명과 학창의 같은 흰 두루마기 자락에 단아하게 흐르는 지휘의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관중은 어느새 무대 배경으로 드리워진 산수화 속의 신선이라도 된 양, 마냥 그윽한 상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 예사다.
그러고 보면 이 교수의 흰 두루마기 은발의 지휘 장면은 중생을 피안의 예술세계로 이끄는 통과의례적 마력魔力이자, 본인의 음악적 본령本領을 극명하게 압축하는 생생한 징표임에 분명타고 하겠다.
한편 이 교수의 창작곡 중에는 잘 알려진 ‘대바람 소리’가 있다. 이 작품은 ‘대바람 소리/들리더니/소소한 대바람 소리/창을 흔들더니…’로 시작되는 시구를 모체로 하고 있지만, 나는 이 곡의 표제가 이 교수의 타고난 심성을 음악적으로 구현시킨 좋은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상규 교수의 총체적 인상은 예부터 상찬돼 오는 대죽을 닮은 데가 있다. 우선 야무진 듯 단정한 풍모가 그렇고, 깔끔하고 사리가 분명한 천성이 그러하다.
일찍이 서울지방 사람들의 품성을 일러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고 했는데, 포천이 본관인 이 교수 역시 경중미인적 정갈함과 명료함이 유난히 드러난다.
여기에 더해 재치있는 익살이 일품이다. 대나무 절조節操에 은은한 인간미를 조화시킨 성품이다. 그러고 보면 이 교수의 이미지나 작품 세계를 시각적으로 환치하면, 그것은 영락없이 엄동설한을 버텨 서 있는 고죽苦竹이라기보다는 따뜻한 남녘땅 초가 지붕 마당가에 올곧게 둘러쳐진 청순한 청죽靑竹임에 분명타고 하겠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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