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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무,춤추는 처용 아비들

김지연
기사입력 2005.02.2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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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무,춤추는 처용 아비들
    일시 2005년 3월 8일(화) 20:00

    장소 : LG 아트센터

    보고픔도 극심한 허기의일종,
    그 기갈을 달랠 굵직한 춤들이 찾아온다.
    늘 생각하지만 보고픔도 배고픔 못지 않은 극심한 일종
    이란 생각이다. 그 기갈을 달래줄 큰판이 선다.

    바로 남무(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이다. 춤이라는 예술보다 삶에 물러나 있었던 숨은 자들, 여든 일곱의 노 명인부터 불혹을 넘긴 마흔까지 총 여덟 명의 남자들이 판에 서는 것이다.
    오늘날 전통춤의 주류를 이루는 여무(女舞)가 아니고 승무와 살풀이 계통도 아닌지라, 낯설지 모르지만 아는 이들은 탄성을 지르는 최고의 '춤'이요 '꾼'들이다.


    춤 하면 한량이고 한량하면 동래한량인데, 이번 판의 최고 어른 문장원(文章垣, 1917) 선생이 바로 그 동래의 마지막 한량이다. 26대에 걸쳐 동래에 세거(世居)해 온 토박이로 일생을 동래의 풍류에 바쳤다. 지금 여든 일곱, 텅 비운 몸으로 나가 여백과 만나는 선생의 춤은 한 폭의 세한도(歲寒圖)다. 고령의 관절이라 오금과 돋음의 폭이 좁아들었으나 걷노라면 자연스레 밟히는 엇박은 관객의 허리를 곧추 세우고 남은 폐활량을 한데 모아 추임새를 뱉게 한다.


    김덕명 선생의 '양산사찰학춤'은 또 어떤가. 한량의 복장으로 학을 형용한다. 어찌나 완벽하던 지 마침내 고고한 한 마리의 학이 되고 만다. 장자가 꾼 나비꿈처럼 학이 선비를 꿈꾸는지 선비가 학을 꿈꾸는지 분간이 묘연하니 분명 우리시대의 호접몽이다.

    정인삼의 '소고춤', 하용부의 '밀양북춤', 이윤석의 '덧배기춤', 김운태의 '채상소고춤', 박영수의 '목중춤'이 모두 오르니, 옛적 밤드리 노닐던 처용아비처럼, 온몸에 춤을 가득 담은 남자들의 굵직한 춤판이다.


    그간 이 남무(男舞)에 대한 앵콜 요청이 너무 많았었다. 그러나 여건이 허락지 못하다. 2004년 전국문예회관연합회의 순회프로그램으로 선정 되어 다시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2005년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갖는 것이다. 이번 공연은 원작에서 한 가지 변화가 있다. 당초 호암아트홀 공연(2002, 9.6- 9.7) 에는 황재기선생의 고깔소고춤이 있었다. 그런데 공연 후 돌아가셔서 아쉽게 장쾌하던 남무(男舞)는 칠폭으로 줄었다. 이에 남무(男舞)의 대칭으로 찾아 2004년에 올린 '여무(女舞), 허공에 그린세월'에 참여하여 뜨거운 갈채를 받은 군산의 예기 장금도 선생의 '민살풀이춤'을 초대하였다. 물론 우리 시대에 들어 나지 않은 춤이다. 그러나 손을 펴고 나오면 저절로 공기의 결로 스미는 탁월한 춤이다.

    춤을 '육체의 시'라 한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중에서 '그 나이였다. 그때 시가 나를 찾아왔다'란 구절이 눈에 띈다. 아무래도 2004년 통영, 울산, 고양, 순천으로 다듬잇살 잘 오른 두루마기차림의 그들이 행할 때, 분명 그때 춤이 우리를 찾아 올 것이다.


    ◈ 프로그램


    - 문장원의 '동래입춤'

    첫 발짝을 떼는 춤이고 일생을 송두리째 바쳐 완성해 가는 춤이다. 문장원의 입춤은 여든 일곱 텅 비운 몸으로 나가 여백과 만나는 한 폭의 세한도다. 걷노라면 자연스레 밟히는 엇박은 관객의 허리를 곧추 세우고 남은 폐활량을 한데 모아 추임새를 뱉게 하니, 보라! 마지막 동래한량이다.


    - 김덕명의 '양산사찰학춤'

    예전 출입하던 한량의 복장으로 추는 춤이다. 너울너울 학 같은 춤, 종래에는 학의 동작을 생태를 더욱 형용하니 마침내 한 마리의 학으로 남았다. 장자가 꾼 나비꿈처럼 학이 선비를 꿈꾸는지 선비가 학을 꿈꾸는지 분간이 묘연한 김덕명의 학춤, 분명 우리시대의 호접몽이다.


    - 정인삼의 '고깔소고춤'

    일생 판의 상쇠로 살았고 이제 한 걸음 나와 서슴없이 춤추려 한다. 어린 양화점 점원이 바라본 쇼윈도 밖의 화려한 행차들, 차마 그 꿈을 못 잊어 생의 한 갑자가 지난 지금, 그는 꽃을 이고 길떠난다. 흥의 벌판을 밟아온 꾼의 멋들어진 꽃그늘을 보자.


    - 이윤석의 '덧배기춤'

    농사일과 춤일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춤의 고을 고성을 지키는 실한 말뚝이 이윤석, 춤 시간을 솎아내려 오광대회관과 비닐하우스 사이를 과속하다 늘 딱지를 떼이지만, 팔 걷고 판에 들어서 굵직한 뼈대를 펼치면, 그리운 조용배, 허종복의 덧배기 가락이 너울거린다.


    - 하용부의 '북춤'

    아름답던 백발의 춤꾼 하보경. 우리가 한 시절 신선과 같이 살았던 기억은 옛일이 되어 이제는 손자에게 춤을 구해야 한다. 밀양강가 춤의 삼대를 흘러온 춤. 북을 울리며 그 여운에 몸을 맡기는 춤, 활개를 쉼 없이 들어올리는 편한 호흡, 그렇게 살아 숨쉬고 있는 춤.


    - 김운태의 '채상소고춤'

    트럭에 말뚝과 광목포장을 싣고 황토먼지 자욱한 남도 길을 마지막 유랑 행중 호남여성농악단 단장의 아들. 칠 십 년대 가파르게 넘던 보릿고개 언덕 위의 비 새는 포장극장을 박수갈채로 채워 넣던 일곱 살 소고의 신동, 그에게 백남윤에게 받은 채상소고춤이 있다.


    - 박영수의 '목중춤'

    '탈만 쓰면 탈춤이냐' 호령하던 사리원의 봉산탈 김유경이 떠난지 6년, 그러나 오래된 춤의 관례는 대를 이어 거행되고 있다. 선반기 앞에서 철을 깎던 몸이 춤이 되었고 쓸모 없는 근육마저도 연소시킨 한치 군더더기 없는 몸으로 '소상반죽열두마디' 만사위로 솟아오른다.


    특별초청



    - 장금도의 '민살풀이춤'
    '나는 없어서 먹고살라고 이거(소리) 배우고 저거(춤) 배웠어.' 군산의 장금도는 살풀이춤을 출 때 수건을 들지 않는다. 수건을 휘두르면 호흡이 깨지기 때문이다. 어린 날 탔던 인력거, 춤던 춤 때문에 죄인처럼 숨은 슬픈 어미 한손을 꺼내들면 공기의 결로 스며간다.

    경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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