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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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동포 김경순님 소식을 접하며(이병일)러시아 사할린한국교육원장 이병일 사할린 동포가 2020년에 이어서 3년째 KBS한민족방송 체험수기 대상과 우수상을 수상했다는 (주)국악신문 10월 16일자 기사를 받고서 너무나 기뻐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사할린한국교육원생인 김경순 여사가 수상을 했다는 것은 사할린 동포들의 큰 경사이기 때문입니다. 사할린한국교육원이 주최하는 "2022년 제24회 한민족 수기대회”에서 사할린한국교육원의 장수 수강생인 김경순님(71세)이 지난 4월에 자작시 가사를 보여 주셨습니다. 가수 조용필님의 ‘그 겨울의 찻집’ 곡의 가사에 맞추어 쓰신 '노가바'(노래가사바꾸기) 가사인데, 일반적인 고국의 외면 속에 사시는 사할린동포 2세의 심정을 그대로 담은 가사였습니다. 가사에는 사할린 1세와 2세들의 디아스포라가 서린 가족사에는 뼈아픈 그리움이 절절했습니다. 그리고 7월 경에 또 한 편의 가사를 보내셨습니다. ‘칠갑산’ 노래에 맞춘 가사였는데, 한맺힌 눈물이 총총히 박힌 이별의 가족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노래를 불러서 녹음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 가사에 부쳐서 노래를 부르려고 연습하려고 했다가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경순님의 큰오빠는 1940년 10살 때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으로 떠나신 부모님과 헤어져서 배 떠난 부두에서 망연자실한 큰오빠의 심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12살에 부모를 떠나 서울 숙부댁으로 유학을 가던 장면이 겹쳐지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녹화를 하는 내내 목메임을 추스릴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가는 하늘길이 열려 50년 후 어머니는 병드신 채, 아버지는 연로하신 채 휠체어를 타고 한국을 방문해서 꿈에도 그리던 장남을 상봉하시고 사할린으로 돌아가서 몇달 후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서 가셔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그리고도 또 이산과 이별을 겪고, 다시는 못 만나 보시고 세분 모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런 기막힌 이별과 짧은 재회, 그리고 생이별한 비극의 이야기입니다. 김경순님이 겪었던 부모님의 기억, 큰오빠에게서 들은 그 수많은 하소연들이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가신 분들을 위로하고 다시 내세에서 만나길 기원하면서 글짓기를 해보시라고 했는데, 이 글이 조국에서 대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할린 동포들를 위로하는 치유가 되어 제 마음도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세계를 멈추게 하는 코로나와 전쟁으로 인해 2022년 들어서 사할린 동포들이 맞이하는 조국과의 첫 교류이기도 합니다. 내년에도 사할린 동포들과 교육원생들이 많이 참가하기를 바랍니다. 귀중한 많은 체험수기와 이야기들이 있지만, KBS한민족방송사와 수상의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사할린 동포 2세분들의 애환이 더욱 많은 글로 표현되어 기록으로, 역사로 남기를 기원합니다. 이 참담한 민족의 비극을 만든 세계전쟁, 그리고 책임을 져야하는 주체들이 더욱 더 이 문제를 따뜻한 가슴으로 다루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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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KBS한민족 체험수기' 대상 수상자의 답사(김경순)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김경순 첫쩨로는, 우리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한국의 "2022년 제24회 한민족 수기 대회”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그 겨울의 찻집”과 "칠갑산” 이란 노래에 제가 가사를 썼는데 이병일 원장님이 아주 잘 불러 주셔서, 댄스 그룹인 우리 모두와 사할린노인협회에서도 모두 다 잘 들었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도 눈물이 났고 쓰면서도 엄청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원장님이 저에게 용기를 주시면서 부모님이 살아온 사연들과 큰오빠와 헤어지던 때의 일들을 써 보라고 하셔서 용기내어 썼습니다. 2년 전에 썼다면 큰오빠가 한국에 살아 계셨으니까 읽어 보셨을텐데 너무 아쉽습니다. 저의 부모님과 큰오빠가 겪은 슬픔과 아픔이 조금이나마 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그나마 마음이 후련하고 한같은 슬픔이 걷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님처럼, 귀한 자식을 조선에 남겨두고 평생을 가슴에다 이별의 아픔을 묻고 살아온 사람들이 사할린에는 드문 편입니다. 자녀들 2-4명도 부모님들 반대없이 모두 다 데리고 왔습니다. 저의 큰오빠처럼 착실하고 부지런하며, 부모님과 강제로 이별당한 채 혼자 서러움을 겪으면서 이겨내고, 전쟁을 2번씩이나 겪으면서 고생스럽게 살아온 사람은 주위에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을 데려가고 싶고, 아들도 어머니를 따라가고 싶은데, 시절이 수상하여 할아버지는 장손을 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와 형제는 서로가 그리면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 기막힌 아픔과 슬픔의 사연을 글로라도 써서 한국의 "한민족 체험수기” 에 보내 드렸으니 그나마 흐뭇합니다. "2022년 제24회 한민족 체험수기” 에 냈지만 잘 읽어 주신 한민족 체험 수기 심사위원 선생님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거기다가 대상까지 받았으니 집안과 저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엄청 기쁩니다. 사할린에 사는 저의 형제들, 또 한국에 사는 조카들도 모두 다 잘 쓴 것도 대단한데, 대상까지 받았다고 기뻐하는걸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흐뭇합니다. 우리들에게 언제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신 우리 이병일 원장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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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7번째 '사할린의 밤'을 열어주신 대구 시민들께대구시는 9월 1일부터 2일간 민족통일대구광역시청년협의회(회장: 하태균)와 함께 광복 77주년, 한·러 수교 32주년을 맞아 일곱 번째 ‘사할린의 밤’ 행사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개최한다. 전국 25개 지역에는 2009년부터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공동체를 이루면서 정주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으로 끌려간 조선인 중 65퍼센트가 경상도 출신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매년 대구에서는 '사할린의 밤' 과 와 사할린에 가서는 '대구의 밤' 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오기 전 대구시는 매년 청년회와 함께 러시아 사할린 주 한인회 임원과 영주귀국 사할린 동포 2백여명과 사할린주한인협회 임원진을 1박 2일 초청해 그들의 디아스포라 아픔을 어루만지고 사할린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해 오고 있다.대구시와 청년회는 2008년부터 매년 사할린을 방문해 ‘대구의 밤’ 행사를 개최하고, 장학금 및 위문품을 전달하는 등 대구시의 위상을 높이고, 상호간의 깊은 신뢰를 형성해왔다. 시는 오는 8월에도 사할린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줄확산으로 내년으로 미루었다. 다음은 전국 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의 대구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 글이다. 사할린동포를 초청해주신 대구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국 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회장 권경석입니다. 대구에서 지난 17년 동안 사할린동포들에게 큰 선물을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할린 귀국동포를 위해 아낌없는 배려와 사랑으로 환영해 주신 대구시민 그리고 본 행사를 준비해 주신 민족통일 대구시청년협의회 하태균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해로 대구에서 일곱번째를 맞는 ‘사할린의 밤’ 행사에 저희 영주귀국 동포들과 전국의 단체 회장님들을 초대해주심에도 다시한번 전 사할린 귀국동포들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대구 청년들의 사할린동포에 대한 따뜻한 온정이 올해로 벌써 17년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들도 다른 누군가들처럼 한 두 번의 보여주기식 지원과 나눔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동토의 땅 사할린이다 까레이스키다 뭐다 해서 일시적으로 조명을 받는 우리 동포들에게는 조국의 무관심이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터라 새롭게 찾아오는 조국의 손님들이 매번 반갑지 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17년의 오랜 시간동안 우리들의 애환과 슬픔을 함께 공감하고 아파하며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따스함을 나눠주는 고마운 손님들이 바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대구청년들이었습니다. 사할린에서 보여줬던 ‘대구의 밤’ 행사를 통해 대구의 저력과 청년들의 사할린 사랑을 보여줬다면, 우리들이 이제 그에 대한 보답으로 ‘사할린의 밤’ 행사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전쟁 시 강제징병과 조국의 분단 등 이런 저런 이유들로 오랜 시간 우리는 조국을 찾지도 못하고 조국에서도 우리를 찾지 않는 모순의 위에 생존의 사투를 벌여왔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이제 어린 후손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랏말도 모르고 살아가지만 분명한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은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영주귀국한 우리 동포들은 조국의 품에서 편안한 남은 여생을 보내며 우리를 잊지 않는 이런 대구 청년들과도 함께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코로나19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습니다. 이번의 행사를 준비하며 마음을 졸였을 대구청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여러분들의 그 따뜻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행사를 준비하시고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주신 대구청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대한민국의 영광이 함께하는 동안 사할린에 대한 사랑과 나눔도 영원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함께하신 모든 분들의 가정과 하시는 일들이 무탈하고 성공적이기를 바라며 인사에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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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한성준-김재선-정철호 명인으로 이어지는 청강판소리고법보존회국악은 오랜 세월 수많은 명인들에 의해 구전심수로 전수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는 한민족의 정신이 깃든 전통민속문화 '국악'을 말살하고자 하는 식민지 정책과 강제 주입 교육으로 인해 광복 이후까지도 온전한 국악 전승이 매우 위태로워졌습니다. 판소리의 연주 북, 고법 역시 전승의 위기감이 발생하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기에 이르렀고 청강 故정철호 명인이 1996년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습니다. 故 정철호 명인은 1927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7세부터 부친 정치조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임방울, 정응민 명창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김재선 명고수 문하에서 판소리 고법을, 한갑득 명인 문하에서 거문고를 사사했습니다. 사단법인 청강판소리고법보존회는 한성준-김재선-정철호 명인으로 이어지는 판소리 분야의 최고 명고수 계보 북가락을 보존,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단법인입니다. 한성준 명인은 판소리 명고수, 춤, 피리, 줄타기, 땅재주 대가로서 특히 판소리 고법의 전무후무한 일인자로 국악 역사책에 공식 기록되어 있으며 김재선 명고수는 한성준 명인의 일급 수제자로서 임방울 명창의 수행 고수였고 임방울 명창과 김재선 명고수 문하에서 소리와 북을 모두 섭렵한 故 정철호 명인이 그 맥을 굳건하게 지키며 후학들을 왕성하게 지도 많은 제자들을 통해 유서 깊은 판소리 고법 과 전통예술 문화를 다음세대에 이어주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명인 故 정절호선생은 판소리 명창. 아쟁산조의 창시자. 1세대 국악작곡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법' 보유자입니다. 청강 선생은 임방울 문하에서 판소리 '수궁가.적벽가.춘향가' 전 바탕을 사사 받고 제1회 남원국악 경연대회에서 1등을 수상하여 판소리 명창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청강 故 정철호 명인은 국악작곡가로서 신작판소리/ 신민요/ 여성국극/ 창극 작창에 있어 독보적으로 많은 작품 2만 여곡이 넘는 작곡을 하였으며 특히 국가와 민족 을 위해 순국하신 열사들의 일대기를 신작판소리로 작곡하여 국악의 저변확대에 큰 공 을 세운 예인이기도 합니다. 또한 1948년대에 세인이 다 아는 故 정철호선생의 업적 중의 하나인 민속악의 아쟁산조를 창시 보급하여 우리 전통음악에 없어서는 안될 악기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청강 故 정철호선생은 평생을 한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판소리를 필두로 고법. 기악 아쟁산조. 창작등 민속음악 전반을 두루 섭렵, 전통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故 정철호의 예술세계를 올곧고도 깊게 오직 한길로 우리의 전통문화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몸 받쳐 살아 오셨습니다. 선생께서는 국악은 나의 호흡이고 나의 생명이야 국악이 아니면 삶에의미 가 없다는 선생께서 안타깝게도 그 많은 예술업적을 남겨두시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 셨습니다. 이제 사단법인 청강판소리고법보존회는 선생님께서 남겨두신 수많은 예술 업적들을 보존하며 후세들이 연구할 수 있는 자료를 정리하고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선생님의 많은 제자들을 통하여 선생님의 예술을 계승 발전시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청강 故 정철호선생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청강정철호 국악상'을 재정하여 평생을 전통 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예술인의 대상으로 선발하여 부상(1천만원과 함께 상장) 을 수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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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구를 죽이는 '플라스틱 악당'노이진 어린이(11세, 양일초등학교 4학년)가 4월 22일 '지구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국악신문사로 설치 미술 작품을 보내왔다. "플라스틱 병 안에 지구를 넣어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한 작품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초록별, 지구에서 플라스틱의 피해가 가장 크다는 지구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공부하고 만든 작품입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매일 주스나 물을 빨아 먹고 버리는 일회용 빨대도 바다에 사는 거북이에게 생명의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충격입니다.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가서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공기 중에서도 떠다니면서 모든 생명에 해를 끼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은 '플라스틱 악당'입니다. 오늘 나부터라도 지구를 살리는 환경운동을 실천하겠습니다."(노이진) 지구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 자연보호자들이 제정한 지구 환경보호의 날로, 매년 4월 22일이다.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제정한 날로, 유엔이 정한 세계환경의 날(6월 5일)과는 달리 순수 민간운동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매년 ‘지구의 날’을 전후한 일주일을 기후변화주간으로 정하여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생활 실천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소등행사 등을 전국 각지에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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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23>박영자, 강제동원 숨기는 '사도광산' 유네스코 못간다박영자 단장은 "일본은 지난 2015년 나가사키현에 있는 '군함도(하시마 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던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재까지도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며 분노했다. 이어서 "특히 사할린 동포들은 1945년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졌을 때, 다시 이중징용을 당했다. 폭파된 도시 재건 사업에 끌려갔다. 다시 돌아 온 사람은 몇 안 되지만, 그것도 방사능에 노출이 되어서 고통에 시달리다가 아편 중독으로 죽은 사람들도 있다. 그 돈을 대다가 집안이 망하자 부인은 집을 나가고 가족이 뿔뿔히 흩어졌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숨기고 유네스코에 등재를 한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박영자 단장(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한국어 교사)은 2021년 KBS한민족체험 수기에서 이중징용 당한 가족사에 대한 수기로 대상을 수상했다. 제목은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이다. 본지에 3회에 걸쳐 연재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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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22>이강연, '사도광산' 절대 유네스코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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