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리뷰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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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눈으로, 귀로, 가슴으로 공감!지난 9월 24일(토) 서울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열린마당. 공연장 세트 뒤로 넓게 펼쳐진 가을하늘은 세트와 어우러져 마치 하늘 가까이에 있는 듯하다. 스치는 바람은 이 시간 예술과 자연을 함께 느끼고 있음에 황홀함마저 느끼게 한다. 예매한 관객들은 제공받은 종이팩 포장의 물과 친환경 재료(나무)로 만든 칫솔을 제공받았다. 현장 관람 관객들도 합류하면서 객석은 모두 채워졌고, 딱딱한 돌계단 객석이 불편하지 않도록 폭신한 방석도 제공받았다. 9월 24-25일(토-일)의 주요 공연을 돌아본다. 매 공연마다 사회자는 공연에 대해 쉽고도 재미있는 해설을 해주어, 공연의 문턱을 한결 더 낮췄다. 진굿의 중심, 김천금릉빗내농악/ (사)김천금릉빗내농악보존회 인류무형문화재 농악. 그 중에서도 김천금릉빗내농악은 군사훈련에서 유래한 진굿(진, 陳:군사훈련 때 사용되는 줄 또는 열)이라는 특색을 가지며 국가무형문화재로(제11-7호, 2019년) 지정되기도 했다. 공연에 앞서 등장한 사회자(소리꾼 이상화)는 ‘김천금릉빗내농악’에 대한 설명과 함께, 농악대 중에 실제 농사일을 하시는 분도 계시다는 말도 덧붙인다. ‘진짜 농부의 농악을 2022년 서울 하늘에서 보다니.’ 농악대의 힘찬 꽹가리 소리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역시 군사훈련에서 유래한 농악답게 가락이 빠르고 역동적이다. 유난히 강한 북소리는 가슴을 울릴 정도다. 북잽이(대북 치는 사람)를 가만히 보니, 북채를 한 손이 아니라 양손에 쥐고 치고 있었다. 온몸의 힘을 양팔과 손에 집중하여 북채로 내리쳤기에, 그 소리가 듣는 이의 가슴까지 내리쳤던 것이다. 모든 잽이(농악대)들은 대열에 변화를 주거나, 상쇠의 힘찬 소리(노래), 그리고 역동적인 개인기로 관객들은 눈을 뗄 수가 없게 한다. 특히, 소고패가 채상소고춤 중 자반뛰기(높이 뛰어 도는 동작)를 선보일 때, 관객의 함성은 최고조에 달하며 분위기가 고조됐다. 농악의 최고의 순간이다. 삶을 예술로, 그리고 다시 공동체의 결집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농악의 힘인 듯하다. 지칠 법도 하지만, 시종일관 웃는 표정을 보여주는 그들은(농악대) 과연 프로였다. 각시(흰 저고리, 검은 치마), 포수(사냥꾼 복장, 꿩과 총대 장착) 역할의 잡색(농악대의 흥을 돋우기 위해 가장한 사람) 또한 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공연 당일 새벽, 농악대와 함께 경북 김천에서 출발한 손영만 명인(김천금릉빗내농악 8대 상쇠)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서울 분들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서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이렇게 관객 분들 크게 호응해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관객들은 눈앞에 펼쳐졌던 그 역동적이고 신났던 공연이 우리의 것임을 알기에 더한 감격을 느꼈을 것이다. 공연을 마치고 만난 한 가족(경기도 오산)은 이런 말을 남겼다. 엄마 "정말 신나고 감동적이었어요.” 아이 "완전 재미있었어요. 발로 돌 때.”(채상소고춤 중 자반뒤집기) 아빠 "우리 문화유산 잘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부모는 농악을 실제로 처음 접한 아이가 농악대의 역동적인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에 놀라워하면서도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고풍(古風)/ 한누리무용단/ 극장 용 인류무형문화재 강강술래(2009), 처용무(2009)는 물론, 염불바라춤, 부채입춤, 진도북춤, 태평무(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등 전통무용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공연 전,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객석은 고요해진다. 커다란 달 아래 강강술래가 시작된다. 색색의 치마를 입은 무용수들은 버선발로 깃털 같은 춤사위로 빠르게 대열에 변화를 주며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손, 팔, 다리의 움직임은 물결 같이 흐르며, 춤이란 과연 몸으로 말하는 예술임을 깨닫는다. 바라춤은 흰 장삼의 길게 늘어진 소매에서 흐르는 선의 아름다움과 느린 호흡으로 정교하게 박자를 맞춰가는 춤사위를 보여준다. 이후 빠르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바라를 치는 순간, 듣는 이는 바라 고유의 강렬한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궁중에서 악귀를 몰아내고 평온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는 처용무. 처용탈을 쓴 5명의 무용수는 화려한 5방색의 복장을 갖추고, 절도 있고 절제된 동작을 보인다. 한삼 끝자락을 반대편 옆구리에 낀 채로 손을 앞으로 뿌리는 모습의 동작은 귀신을 몰아내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느린 동작이기에, 인상적인 탈의 모습과 강렬한 동작이 분산되지 않고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비교적 빠른 박자의 진도북춤에서는 美·興·힘을 겸비한 여성 무용수들에게서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강렬한 힘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군무 형태로 선보인 태평무는 궁중의복을 입은 무용수들의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발동작과 역동적인 춤사위가 인상적이다. 공연이 끝난 후, 그 아름다운 춤을 해낸 그들의 정중한 인사는 춤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겸양에 또 한 번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다. 강릉단오제 단오굿/ (사)강릉단오제보존회 9. 25(일), 단오굿은 한 판 놀이에 가까웠다. 무녀(빈순애 명인,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제 기능 보유자)의 걸쭉한 입담은 만담을 방불케 할 정도로, 눈을 뗄 수 없이 집중하게 했다. 생산(출생)을 관장하는 신(神)인 세존과 당금애기의 결합과정을 그린 무속신화를 구연하는 무녀는 춤, 노래, 입담, 연기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무녀인지 예인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무녀와 악사들의 주고받는 능숙한 재담과 악사들의 익살스런 춤과 입담 역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관객을 무대로 불러들이기도 하고, 이들이 관객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면서,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자들은 신에게 관객들의 행복을 기원을 하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는다. 한껏 즐긴 관객들의 박수에는 감동과 감사를 담았을 것이다. 과거 무속과 불교문화의 관련을 보여주는 바라춤(악사 김운석)까지 볼 수 있는 귀한 공연이었다. 경북 경주에서 올라와 서울에 거주하는 딸과 국립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공연을 관람했다는 한 70대 여성 관객은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좋았어요, 너무. 다음에 또 보러 강릉에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어렸을 적, 굿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어린 마음에 강하고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오늘은 굿이라기보다는 사물놀이 같기도 하고, 문화공연 같은 느낌이었어요. 나이가 드니까 이런 것들이 정말 좋더라고요. 국악도 좋고, 한국무용도 배우고 싶어요.” 아리랑 리커넥티드/ 허윤정, 조스 미에니엘 외/ 극장 ‘용’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랑(인류무형문화유산, 2012)과는 다른 색다른 아리랑을 경험하는 무대였다. 선보인 곡들은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현대적 감성을 담은 아리랑을 대중과 공유하고자, 발표해 온 음반 <The Name of Korean> 시리즈의 8집 수록 곡들이다. 이날 공연은 아리랑 유네스코 등재 1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곡들은 외국 음악인들과 협업으로 이루어졌으며, 프랑스 플루티스트 조스 미에니엘(Joce Mienniel)이 공연에 함께 했다. 우리 악기와 외국 악기의 협연이 빚어내는 서정적인 멜로디로 아리랑 고유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곡에서부터, 코로나19 시기 힘든 시대의 우리를 위로하는 다소 실험적인 곡까지 아리랑의 다양한 음악적 변신을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모든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적 색채를 살리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협연은 음악이 박자를 만들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곡이 인상적이었다.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소리꾼의 노래로 그 절정을 이루며 관객의 감동을 자아냈다. 시대를 초월하는 공감을 이뤄내던 아리랑이, 국경을 초월하는 음악적인 포용으로 그 창조성까지 발휘하는 무대였다. 이번 공연을 준비해온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심재흥 대외협력팀장은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코로나로 인해서 오랜만에 관객 분들 모시고 하는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는데요, 첫 날 첫 공연 시작 전에, 관객 분들의 환호를 들었을 때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공연은 역시 관객과 같이 해야 하고,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가 또 다른 힘을 만들어 내는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고요. 저희도 이를 발판으로 삼아 내년에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우리 전통문화, 더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실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양팔로 감싸 안고 부축하며, 자리를 나서는 나이 지긋한 중년의 남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초등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나서는 가족도, 모처럼 외출한 듯한 중년 여성들도, 그리고 두 손을 맞잡은 젊은 연인들도 보였다. 이 공연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 다른 공연이 아닌 우리의 뿌리이자 삶을 아우르는 전통예술이기에 우리 모두를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다. 오늘 그들이 경험한 전통은 누구에게는 향수가, 교육이, 추억이 되어 자신의 삶 속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파고들어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전통예술을 다시 만나게 될는지 기대해본다. 이번 공연은 11월 경,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유튜브, 네이버TV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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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창녕에서 아리예술단 ‘물처럼 바람처럼’ 무용극 펼쳐오는 28일, 오후 7시 창녕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아주 특별한 춤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 2013년부터 지금까지 무대 공연으로 이어 오고 있는 '물처럼 바람처럼'은 전통과 신(新)전통, 창작의 다양한 소품들로 구성하면서도 모두가 존중받고 함께 어우러지는 평화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프로그램이며 스토리텔러(Story Teller)가 무브먼트(Movement)형으로 진행이 된다. 어느 덧 서른 세 번째 순회공연을 갖는 '물처럼 바람처럼'은 10여 명의 전통춤•신전통춤의 전문 무용수와 국악가수가 함께 출연하여 마치 한편의 춤극 공연처럼 프로그램 전체가 스토리로 이어져 가기에 관객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 본 공연을 제작한 아리예술단은 2005년 창립되었으며 국립무용단에서 오랜 기간 동안 활동하고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장원을 수상한 김나영 예술감독에 의해 기획된 작품이다. 태평무(강선영 류), 장고춤, 검무, 심판의 방, 사랑의 춤, 천상정원, 월영, 생명의 땅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물처럼 바람처럼' 출연에는 박도운, 홍은종 무용수가 주연으로 출연하며 국악가수 김수경씨가 함께 하여 관객들의 흥을 더해 준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나영 예술감독은 "지역에서 전래되어 오는 설화나 신화를 근간으로 한 스토리를 발굴하여 기승전결로 구성된 탄탄한 작품성을 구축하고. 신화 속 주인공들로 분한 무용수들이 서사속에서 분열되고 갈등하는 인물의 희노애락과 욕망을 전통 춤사위로 표현한다. 특별한 장르를 더해서 각 국면마다 스토리텔러(Story Teller)가 서사의 키워드를 짚어주어 극적인 요소가 부각되는 입체적 무용극이다. "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감독은 "스토리텔러(Story Teller)가 무브먼트(Movement)형이란 기존 무용극의 문법을 뒤흔든 형태입니다. 극의 서사를 소개하는 스토리텔러가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 이동(Movement)을 자유롭게 하는 형식입니다. 크게 말하면 렉쳐가 서사극 속에 뛰어 들어가서 장르를 겹쳐 놓기도 하고, 방관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면서....."라고 설명했다. 20000년 창단한 아리예술단은 서울과 영남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지역의 전통 스토리를 ‘춤극’으로 제작 기획하는 2020년 공연장육성지원사업 선정, 문화체육관광부 시행 '전통예술 지역브랜드 상설공연 공모 최우수' 단체로 선정되어 공연 관계자로부터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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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일과 해금플러스’, + + ‘두타연의 울림’지난 25일, 양구 두타연에서 2022 ‘PLZ Festival’이 열렸다. ‘PLZ’는 PEACE & LIFE ZONE의 약자로 DMZ가 생명과 평화의 땅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2019년부터 강원도와 접경지역 5개 군(철원, 고성, 인제, 양구, 화천)이 주최하는 지역문화축제이다. 이 행사는 음악을 매개로 DMZ에 숨 쉬는 모든 생명의 소중함과 평화의 감각을 일깨우며 ‘DMZ TO PLZ’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매년 20여회의 야외공연을 진행하는데, 26일 양구 두타연에서는 ‘강은일과 해금플러스’ 팀의 단일 국악 공연을 개최했다. ‘강은일과 해금플러스’ 팀은 해금 연주자 강은일을 중심으로 기타 한동일, 베이스 김대호, 타악 박찬희, 양금 한진구로 구성됐다. 이번 공연에서 연주된 곡은 지영희 ‘산조’, 피터쉰들러 ‘해금랩소디’, 바하 ‘G선상의 아리아’, 피아졸라 ‘리베르탱고 & 백학’, 한진구 ‘새로운 노래’, 강은일 ‘도피안사’, 류형선 ‘비에 젖은 해금’, 강은일 ‘밀양’, 류형선 ‘헤이야’로 총 9곡이다. 이 곡들은 독특한 음악 스타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러면서도 공연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유지 되었다. 이런 성과는 다음과 같은 몇몇 요소들에 의해서이다. 하나는 해금의 초고음역 사용 효과이다. 첫 곡인 ‘도피안사’를 포함한 거의 모든 곡에서 해금이 초고음역을 연주했다. 대개 해금은 고음에서 특유의 찢어지는 소리 때문에 중음역대-중고음역대를 기본으로 한다. 이 공연에서는 찢어지는 고음을 하나의 음악적 효과로 사용했다. 극적인 연출이 필요한 야외 공연이나 곡의 하이라이트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자칫하면 듣기 싫을 수 있는 소리가 멋들어진 효과음이 되었다. 둘은 재즈와 탱고 스타일이다. 출연진 중 ‘재즈 씬’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베이스, 기타리스트가 있기 때문에 많은 곡에서 Jazzy한 느낌을 연출하였다. ‘리베르탱고’와 같은 곡은 원래 탱고가 베이스가 된 반면, 'G선상의 아리아' 같은 곡은 전통 클래식 곡임에도 기타의 Jazzy한 진행으로 새롭게 재탄생하였다. 셋은 양금 연주의 음향적 효과이다. ‘새로운 노래’라는 곡에서 한진구 작곡가가 직접 양금을 연주했다. 두타연의 계곡 소리와 양금의 맑은 음색이 어우러져 객석에서만 들을 수 있는 하나의 음향 효과가 됐다. ‘새로운 노래’라는 것은 곡명이 아니라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하여 붙인 가칭이라고 한다. 청중들에게 제목을 지어달라고 했는데, 밝은 곡의 분위기와 양금으로 낼 수 있는 음향적 효과를 고려해서 ‘두타연의 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9곡의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들과 청중이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이번 공연의 중심이 된 강은일 연주자가 청중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강은일 연주자는 "행복한 날이다. 우리가 평화를 이뤄야 되겠다. 그리고 마음속의 고요도 함께 이뤘으면 좋겠다.”며 공연의 소감을 전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감상하는 음악은 감동이 크다. PLZ Festival 주최 측의 세심한 기획력을 엿볼 수 있다. 계곡 자연음과 어우러진 해금은 청중에게 우리 음악 그대로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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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장사익, "사람은 만나야!"노래로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고 사랑을 받는 가수들에게는 목소리가 가장 큰 매력일 것이고 그런 사람을 수식하는 말로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가인, 노래손님이라는 가객, 노래왕이라는 가왕 등의 애칭이 있는데, 그런 등급을 떠나서 진정으로 가수에게 붙여줄 수 있는 최고의 호칭은 소리꾼이 아닌가 한다. 원래는 판소리를 하는 분들에게 붙이는 호칭인데, 대중가수에도 이런 호칭을 붙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넘치는 분이 있다면 나는 단연코 장사익 씨를 들고 있다. 아마 여기에 시비를 걸 분들은 많지 않을 듯하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 외롭고 슬프고 힘들 때를 족집게처럼 집어내어 노래로 위로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소리꾼 장사익, 해마다 전국을 돌며 노래로 우리의 마음을 풀어주던 장사익 씨가 코로나19 사태로 몇 년 동안 우리를 만나지 못하다가 마침내 10월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회를 연다고 한다. 4년만의 음악회다. 장사익이 벌일 소리판의 타이틀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였다. 타이틀을 접하는 순간 문득 간절하게 장사익 님, 사람 장사익을 만나고 싶어졌다. 장 선생과는 사람과 사람으로 몇 번 만난 귀한 인연이 있었다. 그래서 국악신문에 그 분 만나서 4년만의 음악회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제의하고는 다짜고짜 연락을 취해 장 선생 집을 찾았다. 원래는 아무리 전직이라고 하더라도 기자들에게 집을 잘 공개하지 않는데, 마침 세검정 근처에 있는 집으로 바로 오란다. 비탈을 깎아서 조성된 주택가를 땀을 흘리며 걸어 올라가니 미리 나와 있다가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주신다. "좋아하는 시인 마종기의 시 중에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는 구절이 있어요. 아는 사람의 추천을 받아 그 싯구절을 읽듯이 외우듯이 그냥 입으로 중얼거리고 흥얼거리곤 했는데, 그동안 여러 분들을 직접 만나지를 못했으니 이 구절처럼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졌지요. 물길이 트이면 마음도 통하고 그러면 친구도 되고 슬픔도 나눌 수 있잖아요? 그리고 행복해지고요. 제가 흥얼거리는 것이 노래가 되기는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노래를 부른 지 30년인데, 원래 제 노래가 그런 것이니 이런 노래도 들려드리고 싶고, 그렇게 모두가 사람으로 만나 마음의 물길을 트게 하고 싶어서 준비를 했는데, 다행히 코로나도 마침 많이 물러가네요. 오늘 아침 맑은 가을 하늘처럼 말이지요.”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있고 좋아하는 노래에 꽂히는 사연이 있다. KBS초대 북경 특파원을 하고 돌아온 1996년에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장사익 공연을 객석 맨 뒤에서 본 순간 나는 이 걸쭉한 목소리, 우리의 북을 반주로 하는 그의 긴 호흡의 영창(詠唱)에 빠져들고 말았다. 힘든 삶을 살다가 4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가수로 데뷔하게 된 그의 삶의 족적도 노래의 감동을 더해주었다. 곧 CD를 사서 매일 밤 10시 회사 일이 끝나고 집까지 가는 동안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차 안에서 듣고 또 들었다. 찔레꽃, 국밥집에서, 꽃, 섬, 그리고 하늘 가는 길 등등. 특히나 하늘 가는 길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그것으로 나는 몸과 마음을 풀면서 소리꾼 장사익의 영원한 팬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저는 시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데요, 이번에도 마종기 시인뿐 아니라 서정춘 시인의 "11월처럼”, 허형만 시인의 "구두”, 한상호 시인의 "뒷짐”을 노래로 만들어 부릅니다. 모두 우리들 삶 구석 풍경을 그린 멋진 시들입니다. 우리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면 시인들은 시가 곧 노래지요. 그런 시인들의 시를 보면 시인들이 가수고, 저는 목소리를 빌려 그 시를 전해주는 역할이지요. 시인들의 시에는 기가 막힌 시어(詩語)들이 있잖습니까? 그 격조 있고 의미 있는 세계를 노래로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처럼 노래를 좀 못해도(웃음), 좋은 시는 그 자체로도 먹고 들어가잖아요.” 아름다운 시로 장 선생은 미당 서정주의 ‘황혼길’을 예로 든다. 이제 나이가 들어 삶을 마감하는 것을 "언덕 넘어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이제 잠이나 들까”라고 해서, 우리의 삶과 죽음을 그렇게 깔끔하고 진하게 갈음해 줄 수 없단다. 그런 시인들이 온 힘으로 찾아낸 시어들을 노래로 들려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하늘 가는 길’이란 노래도 바로 그런 경지일 것이다. 그의 노래에는 고된 삶이 있고 그 삶을 넘어선 죽음이 있는데, 그 죽음은 힘들고 외로운 삶의 연장이겠지만, 그것을 노래로 넘어서서 모두에게 해원(解寃)의 평화로운 세계를 열어준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에게는 한이 많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우리들은 한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그것을 부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진도 사람들의 흥타령 같은 것을 들어보세요. 그들은 삶의 모든 힘든 것을 풀어버립니다. 민요는 맺힌 것을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한이 맺히면 원(寃)이 되는데, 이 원을 풀어주는 것이지요. 그게 곧 해원(解寃)입니다. 우리들의 노래에는 이러한 힘이 있지요. 저도 그런 삶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지난 6월 세계적인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 군이 인터뷰에서 우륵의 가야금 소리에서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경지를 언급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서양 악기를 연주하는 청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을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지만 사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란 시에 짙게 담겨있는 이런 정서처럼, 슬프더라도 드러내 슬퍼하지 않는 경지가 곧 우리 민족정서의 본질적인 속성이라면 장사익의 노래에서 바로 그런 정서를 공감하게 한다고 하겠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인의 노래일 터이다. 장 선생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창밖으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한바탕 소나기가 온다. 멋지게 마련한 창 밖 수반(水盤) 위로 수많은 물방울 들이 떨어져 수 십대의 팀퍼니 소리를 듣는 것 같다. 갑자기 눈 앞의 먼지를 다 씻어가고는 곧 햇살이 나온다. 2004년부터 2006년 미국 순회공연에서 우리 동포들의 눈물을 바가지로 흘리게 한 것은 유명하다. 어떤 분이 와서 실컷 울고 나서 속이 시원해졌다며 사이다를 한 박스 마신 것 같았다고 하더란다. 우리 말을 모르는 미국 음악계에서도 "당신 노래의 뜻은 모르겠지만 당신 노래를 들으니 바로 한국의 노래임을 알겠습니다.”라는 반응을 얻어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장사익의 노래에서 블루스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는데, 거기에 덧붙여 텁텁한 그의 목소리가 막걸리를 닮았다는 말에 ‘막걸리 블루스’가 아니냐고 했더니 장 선생이 펄쩍 뛴다. "저는 술 담배를 전혀 못합니다. 아니 안합니다. 그러니 막걸리 블루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요. 그냥 우리 한국인들이 편하게 부르던 우리들 식의 노래를 할 뿐입니다” 우리 한국의 노래는 중국이나 일본과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바로 막걸리로 대표 되는 술, 그리고 된장으로 대표 되는 식재료와 식습관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된장과 마늘과 고추를 즐겨 먹는 한국 사람들, 그들이 나고 자라고 죽으며 보고 듣고 느끼고 함께 사는 이 땅, 그것이 바로 한국의 노래인 것이리라. 그러기에 우리 전통음악에는 징이 있고 북이 있고 꽹과리가 있고 꺾음과 풀림과 추임새가 있다. 그것들이 바로 한국의 음악이자 한국의 노래이다. 장사익은 대중가수라고 하지만 그의 노래에는 전통의 모든 요소들이 들어있고 녹아있어 대중음악이니 국악이니 하는 구분이 의미가 없다. 그런 그의 소리는 때로는 가슴을 후비고, 슬픔과 즐거움, 그리고 간절함 그 자체다. 어린 시절 동네 뒷산 공동묘지에서 하루 30분씩 소리를 질러 목이 트인 데다가 마흔다섯 데뷔 전까지 전자회사·가구점·독서실·카센터 등을 전전하면서 힘들게 살아온 삶의 경험이 그 속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소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소리로 인정받는 것이리라. 사실 우리들이 의식을 잘 하지 못하지만 장사익의 노래는 박자가 잘 안 맞는다. 스승으로 모셨던 타악기의 명인 흑우 김대환 선생이 이에 대해 "박자 없는 노래”라고 한 이유이다. 가끔씩 박자가 늘어지고 음정이 덜 올라가기도 한다. ‘찔레꽃’ 노래가 그랬고 ‘섬’이란 노래도 그렇다. 그것은 그의 노래가 자연발생적이기에 그렇다고 한다. 원래 우리들의 민요가 그렇게 생겨난 것 아닌가? 기분에 따라서 흥얼거리다가 거기에 음정이 생기고 박자가 생기는 것이고, 부르다 힘이 들면 잠시 쉬며 가는 것이고... 그런 게 우리 노래다. 엄격한 박자와 음정을 지키는 서양음악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 그 자신이 마시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막걸리의 특성 그대로다. 그런 소리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이번 공연에 트럼펫을 하는 원로 음악인 최선배 씨가 나온다. 그 얘기를 하니 눈이 반짝이신다. "우리의 1세대 재즈음악가로 유명한 분이지요. 제가 어려울 때 삶을 이끌어주시고 음악에 눈 뜨게 해주신 분 중 한 분입니다. 1970년대 종로구 공간사랑에서 고 김대환선생과 한국적 프리재즈를 실험했고 그 무렵 김덕수 사물놀이, 공옥진의 병신춤이 그를 이어 태어났습니다. 말하자면 공연예술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홍대 앞 지하 공연장에서 연주도 오래 하셨고요. 선배 음악인들이 먼저 가셨지만 아직 현역의 소리를 내주신다고 해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 장 선생으로서는 이번 공연이 부활의 날개짓이라 할 수 있다. 젊을 때와 달리 잦은 공연과 연습으로 성대가 붇다가 굳어져 좁아지는 등 소리를 내기 힘든 상태가 되어 3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최근 코로나 사태로 쉬면서 목도 자연스럽게 되살아나 이제 다시 옛날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단다. 다만 높은 고음은 예전처럼 올라가지 않지만 이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조금은 편하게 노래를 하겠다고 한다. "우리네 삶이 그렇지요. 쉬어가라는 것이지요. 목이 갈라지는 것도 천천히 가라는 것 아니겠어요? 그동안 너무 목을 많이 썼기에 그런 것인데, 마침 코로나로 목을 충분히 쉬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장사익 씨는 공연도 공연이지만 그의 노래를 듣고 싶은 자리라면 격식을 차리지 않고 찾아가 노래를 들려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얼마 전 돌아가신 분 중에 자신의 장례식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신다는 말을 듣고는 기왕이면 돌아가시기 전에 들려드리겠다고 곧바로 달려가 노래로 행복하게 돌아가시게 해 드렸다고 귀띔을 한다. 바로 그의 노래 ‘하늘 가는 길’이 일찍 열어 보인 대로 죽음은 삶의 연장이고 그 죽음을 담담히 아름답게 맞는 것이 우리들의 소망이라면 장사익 씨의 노래가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게 아니겠는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서로 마음의 물길을 트겠다는 이번 공연은 서울을 시발로 전국을 돌 게 될 것이다. 이제 코로나로 거리두기, 집합 금지 등의 제한이 풀어지면서 야외에서 서로 입을 가리지 않고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 부대끼며 슬픔과 기쁨, 용기와 믿음을 나누는 것이 우리들의 세상이었기에 장사익의 소리, 노래가 듣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사는 세상다운 세상의 새 출발을 다짐하는 장이 될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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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극 “갈바니 전기로 통하였소?”, “통하였다”8월 5일 금요일 밤을 기억한다. 8월의 열기로 가득한 예술공간 ‘혜화’였다. "갈바니 전기로 통하였소”의 팀은 연습 막바지 단계였다. 8월 12, 13, 14일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이 작품은 ‘김나영판소리연구소’의 김나영 감독, 장혜리 기획, 이빛나 연출, 김진성이 제작을 맡았다. 음악 감독인 김나영이 직접 작창하고, 출연 신형식과 윤효원이다. 판소리꾼인 신형식은 ‘갈바니’역, 연극배우 윤효원은 미래에서 온 여행자 역을 맡았다. 당시에는 칭송 받지 못하였으나 오늘날 심장 제세동기(심실 부정맥을 치료하기 위해 심장에 삽입하는 전자 장치)의 근원이 된 갈바니의 업적을 통해서 청년들과 과학 발전을 도모하는 과학자들에게 응원과 존경의 목소리를 보내기 위한 기획이다. 소리꾼 신형식이 연기한 루이지 갈바니(Galvani, Luigi 1737~1798)는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생리학자로 1780년 개구리의 뒷다리가 방전에 의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갈바니의 물리학자 친구인 볼타(Volta, Alessandro)가 그의 이론을 반박했고, 연구는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다. 작품은 이와 같은 갈바니의 안타까운 평가를 배경으로 한다. 볼타와의 논쟁에서 패배한 후 인정받지 못했던 그가 어느 날 타임머신을 타고 온 시간여행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시간여행을 하면서 기억을 잃어버렸는데, 과학자의 회상을 들으며 자기가 누구인지 왜 시간여행을 하게 됐는지 서서히 기억하게 된다. 시간여행자는 피뢰침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적이 있는데, 발명의 근원을 알아보다 갈바니를 알게 되어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시간여행자는 갈바니의 업적이 미래에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갈바니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게 된다. 출연진은 완벽한 연기를 위해 무더위 속에서 노력하였다. 이 공연을 위해 작곡된 노래는 판소리와 건반 반주가 섞인 퓨전국악의 형태였다. 건반이 중심을 잡아줘서 고수가 없이도 진행이 가능했으며, 소리꾼의 역량으로 북 장단 없이도 박자를 탈 수 있었다. 작창가이자 음악감독인 김나영은 연기자들의 멘토가 되어 연습을 도왔다. 연습이 끝나고 공연 팀을 만났다. 다음은 김나영과의 일문일답이다. Q. 이 소리극의 주제가 무척 창조적이에요. 어떻게 이런 주제로 소리극을 만들 생각을 하셨나요? A.'빨간 머리 앤'을 봤는데 거기서 감자 3개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서 장혜리 기획자에게 물어봤어요.(감자와 고구마 등의 일부 작물은 미약하지만 전류가 흐르는 성질 때문에 소금물 등의 전해질이 있다면 전력을 생성해낼 수 있다.)이야기가 오가다가 전기를 주제로 공연을 만들고 싶다 생각했어요. Q. 왜 루이지 갈바니에 대한 소리극을 쓰셨나요? A.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한’의 정서가 있잖아요. 분노, 체념, 원망, 슬픔 등을 느꼈을 만한 과학자를 찾아봤어요. 갈바니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그때 당시 연구 성과를 인정받지 못한 과학자이기 때문이에요, Q. 이 소리극은 무슨 장르인가요? A. 포스터에 ‘과학 소리극’이라고 적혀있지만 정확한 장르는 ‘창작 판소리’라고 하면 되겠네요. Q. 소리극에 나오는음악을 작곡하면서 전통 판소리 다섯 마당을 참고했나요? A. 봤죠. 전통 판소리 책을 다 꺼내 놓고 봤어요. 안 그러면 발라드처럼 돼버려요. 이빛나: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Q.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 기간이 얼마나 됐나요? A.1월에 회의를 하고 2월에 만나서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한 다음 실질적으로 3월부터 준비를 시작했어요. Q. 이 중 가장 독특한 곡은 무엇인가요? A.작품의 타이틀곡인 ‘개구리 뒷다리’라는 곡이에요. 이 곡은 갈바니의 감정의 절정을 보여줘요. 갈바니의 인생을 정리한 ‘틀리지 않았소’ 라는 곡도 마음에 들어요. 이 곡은 한국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한’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8월 12일, 작품을 보았다. 노래와 춤, 연기가 어우러지는 뮤지컬의 공연 양식과 비슷했다. 음악들은 건반 반주에 창작 판소리가 얹어진 형식이었다. 무대 장치에도 공을 들였다. 바닥에 갈바니의 통과하지 못한 연구 자료들이 떨어져 있었다. 신형식 소리꾼이 노래할 때 공연 장치로 쓰인 흰색 커튼에 가사가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강렬한 빛을 벽에 쏨으로써 공연의 키워드 중 하나인 전기를 연상케 하는 레이저 쇼도 있었다. 러닝타임은 1시간으로 짧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신형식의 소리와 윤효원의 연기는 관객의 박수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청년들, 실패를 동기부여로 삼아 계속해서 실험하여 과학 발전을 도모하는 과학자들에게 응원과 존경의 목소리를 보낸다’라는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했음을 관객의 환호로써 알 수 있었다. 현대음악이 국악보다 더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퓨전국악은 전통국악보다 공감을 얻기 쉬울 수 있다. 요즘은 뮤지컬뿐만 아니라 국악 관현악, 실내악 곡에서도 퓨전이 사용된다. 우리 음악을 계승하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악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이 작품과 같이 퓨전국악을 바탕으로 하는 공연들은 우리 국악계에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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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고품격 공연, 놓치지 마세요(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주관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함께 주관하는 2022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연시리즈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가 지난 9월9일(금) 한가위 연휴에 시작되어 이번 주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유네스코 등재 인류무형문화유산을 공연으로 만나는 축제로, 올해는 종묘제례악에서 아리랑까지 총 11종목, 17개의 공연으로 구성되어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무형문화유산의 정수를 경험하는 전통 공연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창작공연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고품격 문화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9. 21(수) 19:30 극장 용 ‘정악가무’(아우프윈드) 9. 23(금) 19:30 극장 용 ‘느닷X난장앤판 <관객모리>’(사물놀이 느닷, 전통연희단 난장앤판) 9. 24(토) 14:00 열린마당‘진굿의 중심, 김천금릉빗내농악’((사)김천금릉빗내농악보존회) 17:00 극장 용 ‘고풍(古風)’(한누리무용단) 18:00 거울못‘2022 위대한 유산, 해금과 만나다’(노은아 외) 9. 25(일) 14:00 열린마당‘강릉단오제 단오굿’((사)강릉단오제보존회) 17:00 극장 용 ‘아리랑 리커넥티드’(허윤정, 조스 미에니엘 외) 정악가무(아우프윈드) 정악(正樂)은 고려·조선시대 왕실과 양반층이 향유한 음악이다. 이 중, 유네스코에 등재된 ‘종묘제례악’(2001), ‘처용무’(2009), 자진한잎과 결합한 ‘가곡’(2010)을 비롯하여, 관악기 중심의 음악에 노래와 춤이 함께하는 복합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 원형에 충실한 전통예술의 정수는 물론, 새로운 연주편성, 음향적 변화, 움직임을 재해석한 영상 등을 활용하여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무대이다. 오늘날의 새로운 예악(禮樂)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다. 느닷X난장앤판 '관객모리'(사물놀이 느닷, 전통연희단 난장앤판) 유네스코에 등재된 ‘농악’(2014)과 무속가락들을 중심으로 전통연희에 대한 새로운 공감을 자아낼 신명나는 무대. 사물놀이의 다양한 시도를 보이는 ‘느닷’과 남사당놀이의 현대적 대중성을 추구하는 ‘난장앤판’이 시너지를 발산하며, 옛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엿볼 수 있으면서도, 한껏 흥을 돋우는 무대가 될 것이다. 진굿의 중심, 김천금릉빗내농악((사)김천금릉빗내농악보존회)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2014), 그 중 ‘김천금릉빗내농악’(2019, 제11-7호)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특이하게 전쟁에서 유래된 진(陣)굿의 특징을 보이는데, 풍물놀이와 무당의 굿놀이, 줄다리기 등의 행사가 혼합되어 진굿(진풀이)의 농악놀이로 발전된 형태이다. 경북 김천시 개령면 ‘빗내’라는 마을에서 전해졌다. 지리적 특성상 다른 지역의 가락이 혼합되지 않았고, 군대행진용 진굿으로 가락이 매우 강렬하고 다양하다. 빗내 농악의 12마당을 공연형식으로 각색하여 색다른 농악을 경험할 수 있다. 고풍(古風)(한누리무용단) 인류무형문화유산 ‘강강술래’(2009)와 ‘처용무’(2009),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1988)등 국내·외에서 그 예술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은 소중한 전통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무대이다. 전통춤 원형을 기반으로 구성된 공연이므로, 당대의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성과 전통춤 고유의 멋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무대이다. 2022 위대한 유산, 해금과 만나다(노은아 외) 인류무형문화유산 ‘가곡, 아리랑(2012), 판소리(2003), 처용무’등이 해금과 만나는 무대. 해금은 특유의 굵직하고도 깊은 음색과 떨림으로 삶의 희노애락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다. 해금과 생황으로 재구성한 ‘청성자진한잎’, 그리고 ‘산조’와 각 지역 ‘아리랑’의 주요 선율을 엮은 ‘아리랑 Medley’, 또한 해금연주자 노은아 교수(서울대학교 국악과)가 직접 선보이는 ‘처용무’를 감상할 수 있다. 강릉단오제 단오굿((사)강릉단오제보존회) 강릉은 대관령을 포함하고 있으며, 고대 부족국가인 ‘동예’의 땅으로 ‘무천’이라는 제천의식이 전승되는 지역이다. 인류무형문화유산 ‘강릉단오제 단오굿’(2005)은 이러한 의식을 이어받아, 강릉단오제 중에 치러지는 무속의례이며 당시 민중 신앙의 핵심을 반영한다. 음역 4월 5일부터 음력 5월 초까지 다양한 형태의 굿과 의식이 진행되는데, 이 중 ‘문굿·세존·중춤·바라춤·중잽이굿’을 통해 무녀들과 악사들이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음악과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아리랑 리커넥티드’(허윤정, 조스 미에니엘 외)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고품격 음악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아리랑의 의미와 가치를 현대인의 시선에서 공감하고자,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2009년부터 발표해 온 음반 ‘The Name of Korean’의 가장 최근 버전 ‘The Name of Korean vol.8’의 수록곡을 선보인다. 국내·외 음악인들의 협업으로 제작되었으며, 아리랑이 국경을 넘어 현대적으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이다. 위 공연들은 사회자의 해설과 함께 이루어지고, 안내책자도 배부될 예정이므로 공연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다. 현재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을 통해 예약이 가능하며, 야외공연의 경우 현장관람도 가능하다. 주최측에 따르면, 예약한 관객의 경우, 보다 좋은 좌석에서 관람이 가능하고, 소정의 기념품을 받게 된다. 무형문화유산은 시대의 삶이 노래, 춤, 관습, 의례 등으로 정제되고 압축된 결과물이다. 때문에 이들은 당시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적 역량 또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무더위가 지나고 다가오는 서늘한 바람과 맑은 하늘은 무뎌져있던 우리의 감성을 일깨우고 있다. 이러한 공연들을 통해, 지금 우리들에게 내재하는 시간을 초월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문화유산이 주는 문화적 자긍심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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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민요연구회, 25일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선보인다대구에서 대구 근대인물 이재욱의 업적을 기리는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행사가 25일 개최된다. 영남민요연구회(회장 배경숙)은 2005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의 18번째 행사이다. 25일(일) 오후 4시 ‘2.28 기념공원’에서 개최한다. 전체 5장으로 구성된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는 이재욱의 일대기를 5막으로 보여준다. 유년기 시절 어린 시절을 대구에서 함께 보낸 시인 이상화와 문학적 관계를 보여주고, 청년기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에서의 영남민요를 전공하고 중앙도서관 근무하는 시절을,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 장년기는 해방 직전 대구로 귀향하여 도청에서 근무하는 시기의 활동상을 조명한다. 마지막 대목은 짧은 생애 동안에 그가 남긴 영남민요 자료조사의 소중함을 함께하는 무대로 전래민요를 오늘날의 버전으로 현대화한 작품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재욱이 남긴 1930년 기록 속의 영남의 토속민요를 남성 노동요, 여성 연정요로 부각시켜 '생활 속의 민요'로 향유하는 모습을 재현한다. ‘지게목발소리’를 정종철 외 회원들이, ‘화전노래’를 정종화 외 회원들이 함께 한다. 특히 세 가지 아리랑도 무대에 올려지는데, ‘구미의병아리랑’을 임규익 외 회원들이, ‘팔공산아리랑’을 전체 합창으로, ‘경산아리랑’을 배경숙 외 회원들이 꾸민다. 이외 10여 종의 영남 지역 전래민요가 다양한 전통 절구같은 농기구, 삼베 잣는 물레같은 소도구와 함께 30여 명의 회원들에 의해 펼쳐진다. 행사를 주관하는 영남민요연구회는 17회의 공연을 통해 영남지역 전래민요를 현대적인 무대화 작품으로 선보이며 나름 성과를 이룩했고, 회장 배경숙은 이재욱의 영남전래민요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요 공연 기획자이다. 이번 행사에 대해 배 회장은 "이재욱은 어린시절 대구의 대표적인 시인 이상화와 삼촌간이라는 것에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영남민요를 연구하였다는 사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재욱의 학문과 민요 연구 성과를 더 알리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영남민요연구회는 2016년 이재욱(1905~1950)을 대구근대문화인물로 선정하는데 기여하고, 그의 주요 업적인 ‘영남전래민요집’을 발굴, 연구를 주도하였다. 이번 공연은 이재욱의 생애와 업적을 타 지역에 알리는 목적으로 그가 조사 기록한 영남지역 아리랑과 민요를 재현하고 보존하기 위한 무대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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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아리랑경창대회, 아리랑/민요경창대회로 확대문화 매력도시를 지향하며, 충청도 아리랑 중심지역 기반 확충을 위한 (사)공주아리랑보존회가 8회를 맞는 금년 경창대회를 아리랑과 민요 종목으로 확대하여 개최한다. 한강권의 메나리조 아라리와 남한강권의 육자백이조 산아지타령의 영향으로 형성된 공주지역 아리랑은 긴, 잦은, 그리고 엮음아리랑 형이 전승된다. 남은혜 명창이 보존회를 결성하여 전승해 오고 있다. 2012년에 유네스코 아리랑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서에 서명한 대표적인 아리랑 전승단체이다. 매년 3월 1일 ‘공주아리랑제’와 ‘공주아리랑경창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번 9월 29일(토) 공주문화원에서 개최하는 제8회 공주아리랑민요경창대회는 더 많은 국악인들의 참여를 위해 아리랑만이 아닌 민요 종목으로 확대, 개최한다. 충청권 아리랑과 민요 거점 지역으로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참가 대상은 명창부 일반부 단체부 신인부 학생부로, 대학생은 일반부에 포함하고 학생부는 초중고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최고 대상은 국회의장상이다. 필수 지정곡은 공주아리랑 긴, 엮음, 잦은아리랑 중 택일할 수 있다. 공주아리랑보존회 남은혜 이사장은 "코로나로 인해 위축되었던 국악인들의 활동이 제자리를 찾는데 일조했으면 한다. 또한 공주아리랑의 진가를 더 많은 국악인들이 불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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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국악의 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지난 9월 15일, 국악방송이 주최하는 ‘제16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본선 경연이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되었다. 저녁 7시 생방송을 앞둔 시간, 객석은 채워졌고, 무대는 첫 출연팀의 악기들이 준비되어 있다. 기자 눈에 들어온 카메라만 8대. 무대 위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것이다. 이 날 참가자들의 무대는 경연이기 이전에 객석을 흥분시키기도, 감동을 자아내기를 반복하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O(오) ‘0(영)’ 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팀과 곡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들의 음악에 제한과 전형성을 거부하는 음악적 주관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음악은 몽환적인 피아노 선율을 시작으로 하얀 화선지에, 점을 찍듯이 시작한다. 사운드가 더해지면서 묵직한 붓으로 채워가는 수묵화가 그려지는 듯하다. 장구, 대금, 피리, 꽹가리, 징 그리고 전자기타까지 선율을 타고 리듬과 어우러진다. 듣는 이는 곡의 기승전결을 따라 숨죽이며 따라갈 뿐이다. 절정에서는, 웅장한 북소리, 보컬과 어우러지는 전체 합주는 무속의례를 연상케 한다. 듣는 이의 가슴을 치듯 강렬하고도 부드럽다. 과연 그들의 곡은 가슴을 울리는 완벽한 사운드를 들려줬고, 그들의 서사와 드라마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대회 첫 주자로서 ‘이 대회가 이 정도입니다.’라고 말하는 듯, 관객들의 기대를 한껏 올려줬다. 오프로드 ‘듄’ ‘모래언덕’을 뜻하는 ‘듄’. 광활하고 메마른 사막을 헤쳐 가며 반복되는 여정과 모험을 표현한 곡. 빠른 비트의 가야금, 그리고 장구도 함께 속도감을 준다. 여기서 합류하는 양금의 고음은 신비감과 함께 황량한 대지를 연상케 한다. 절정에서 장구의 빠른 비트와 함께 저음과 고음 각 자리에서 묘한 조화를 이루는 양금, 가야금과 베이스기타의 향연은 가슴을 울린다. 아마도 정상에 오른 감격의 표현일 듯. 그리고 다시 속도를 되찾는 곡은 공허함과 새로운 여정을 의미할 것이다. 한 참가자의 거문고와 베이스기타를 능숙하게 넘나드는 연주에 놀라웠고, 가야금의 울림과 피아노의 음색을 동시에 가진 양금의 매력에 한껏 매료되는 시간이었다. 이러리-저고리 ‘풀어라!’ 팀 이름은 ‘색동저고리’의 제주방언이다. 곡 ‘풀어라!’는 비나리 형식을 빌리지만, 경쾌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청춘들의 고민을 풀고자 한다. 한 외국인 참가자가 눈에 띄는데, 그는 아프리카 전통악기 발라폰(울림통 이용한 목재 실로폰)과 고니(나무와 조롱박으로 된 기타와 유사한 현악기)의 연주로 함께하며, 곡의 음색은 더욱 풍부해진다. 발라폰의 경쾌함과 태평소의 힘찬 울림이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청춘의 고달픔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픈 청춘들의 당찬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통악기의 만남이라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음악적 경험이다. 구이임 ‘나븨’ ‘나븨’의 ‘븨’는 ‘때’를 뜻하는 옛말. 고장 난 시계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쇳조각이 나비가 되지만, 결국 시간에 젖어 녹슬고, 아늑한 기억 한 때에 머물며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는 서사를 표현한다. 정가 특유의 긴 호흡의 신비로운 음색과 고음의 가야금은 쇳조각이 나비가 되는 판타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피아노와 가야금이 함께 곡을 받쳐주며, 남녀보컬은 고음과 저음 각 자리에서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가야금은 때로는 타악기로 변신하거나 줄로 끄는 듯한 방법으로 고음과 저음을 구현하며, 보컬과 함께 곡 전반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반쯤 핀 꽃 ‘반쯤 핀 꽃’ 경기민요 ‘매화타령’을 모티브로 만든 곡. 팀 이름과 같은 ‘반쯤 핀 꽃’이라는 곡은 활짝 핀 꽃보다 그 과정에서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국악 여성 보컬의 느린 박자에서 남성 보컬의 빠르고 힘찬 타령의 합류, 이후 모든 보컬의 합창은 강렬한 시작을 알렸다. 양악 보컬이 독특한 음색으로 합류하면서 분위기는 한껏 오른다. 드럼은 비트를 더하고, 첼로는 묵직하면서도 부드럽게 경쾌함을 돕는다. 매화타령이 리듬과 비트를 타고, 드럼, 첼로, 기타, 피아노 등과 힘을 얻는다. 분위기는 고조되고 듣는 이의 다리는 어느새 리듬을 타고 있다. 시련과 고민을 안고 가는 청춘에게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듯한 곡이다. 줄헤르츠(JUL Hz) ‘블루(Blue)’ 현악기의 줄(Jul)과 주파수를 뜻하는 헤르츠(Hz)를 조합하여 만든 팀 이름. 거문고, 가야금, 아쟁 3명의 현악기 연주자들은 연주의 진동까지 느껴지는 섬세한 연주로 대중과 주파수를 맞추고자 한다. 그들의 곡 ‘블루(Blue)'는 평화를 상징하는 색이다. 세상의 모든 갈등과 전쟁에 상처 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사회 참여적인 메시지를 갖는다. 빠르고 반복되는 듯한 리듬은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이 갖는 특유의 음색을 보여주면서도, 현악기가 구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음악적 언어를 경험할 수 있었다. 활을 타고 흐르는 거문고의 굵직한 고음은 상처받은 이의 슬픔 같기도, 그들을 향한 위로 같기도 했고, 가야금과 아쟁은 고음과 저음을 오가며, 서로 대화하는 듯한 음악적 화합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완x케빈 ‘달에게’ 정가 보컬리스트와 재즈피아니스트의 만남. 드뷔시의 ‘달빛’을 오마주 한 곡. 정가 보컬의 고음이지만 속삭이는 듯한 음색이 동화적 곡에 녹아 내린다. 나도 모르게 마음 깊숙이 자리하던 동심을 떠올린다. 마치 어린이가 되어 노래로부터 위로 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순간, 나로 모르는 울컥함이 차오른다. 달에게 속삭이듯 노래하던 ‘달아, 달아~’ 가사는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피아노 반주를 타며, 동화적 감성으로 정가를 노래하는 그녀는 분명 신이 만든 악기임이 틀림없다. 이동하며 연주가 가능한 관악기의 특성을 살려 역동적이고 유쾌한 퍼포먼스가 객석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드럼과 기타의 경쾌한 박자를 타고 흐르는 태평소와 향피리 등 관악기들의 힘있고 경쾌한 음색을 즐길 수 있었다. 시종일관 역동적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7명의 관악기 연주자들은 독주로, 때로는 협주로 익살과 재미를 더해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했다. 꽹가리는 그 절정에서 놀이의 흥을 돋우며, 객석을 들썩이게 했다. 어릴 적 골목놀이를 연상케 하는 그들의 곡명은 바로 ‘가위바위보!’. 매간당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 매간당(魅衎黨:매혹할 매, 즐길 간, 무리 당)은 그들만의 새로운 멋과 소리를 담은 국악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하고자 한다. 그들의 곡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는 악기를 처음 만났을 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다. 악기에 대한 신선한 통찰을 통해 실험적 연주기법을 만나게 된다. 비트는 빠르고 곡은 빈틈이 없다. 거문고는 아쟁의 활과 만나고, 아쟁은 해금의 활대와 만나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음색까지 만들어내는 그들의 음악은 과연 매력 그 자체였다. 강렬한 독주이자 협주를 듣는 느낌이다. 자신의 악기에 몰두하면서도 서로의 퍼즐을 맞추듯 곡을 완성해가는 연주자들의 모습은 강렬하면서도, 듣는 이가 소리에 더욱 집중하도록 이끈다. 소리꽃가객단 ‘제be노정기’ ‘소리로 꽃피우자!’는 좌우명을 갖고 있는 팀. ‘제be’는 새 ‘제비’를 뜻하지만, 박씨를 물고 날아와 ‘복이 되다(be)’의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강도근제 홍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사용했다. 5인 여성 소리꾼들은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퍼포먼스를 선사하지만, 그들의 노래는 질펀하고도 힘찬 판소리다. 곡의 시작은 그루브 리듬을 연상시키는 드럼과 베이스기타의 비트, 그리고 피리의 고음이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준다. 후반부에서는 마치 락을 듣는 듯한 리듬마저 느낄 수 있다. 5인의 여성 소리꾼들은 서서 하기에도 만만치 않은 판소리를 댄스와 함께 소화해냈고, 관객들은 새로운 음악적 경험에 열광했다. 그들은 대중에게 판소리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선사한 것이다. 창작국악을 들으면서 경험하는 새로움 중 하나가, 익숙한 소리나 가락을 들으면서, 현대적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옛 것도 즐길 수 있구나, 가슴을 울릴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민족적 자부심과 희열은 창작국악이 주는 묘한 감동이다. 그 새로움과 자부심을 함께 느끼게 되는 그 순간, 시대의 옷을 입은 국악은 대중을 끌어들이게 되고, 이것이 창작국악의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본선 경연일 한 심사위원(이슬기 가야금연주자)의 심사평에 의하면, "연주자들의 창작 역량이 강해졌고, 그 음악적 기반이 단단해졌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그들의 음악은 자신의 고유 영역을 충분히 분석한 후에 얻은 것이며, 음악적 깊이를 갖춘 노력과 땀의 결과라는 평가를 의미한다. 경계를 넘나드는 모험을 하지만, 그것마저도 즐기면서 자신만의 음악적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은 진정 또 다른 우리 국악의 모습이다. 전통음악이 지난 시대의 삶의 거울이라면, 창작국악은 지금 이 시대를 반영하는 또 다른 국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 시대 음악인이 국악을 계승하는 하나의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창작국악은 일제시대 식민 지배를 위한 수단의 하나로 시작했다는 아픈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받아들여야 할 우리의 냉정한 현실이다. 다만 시작은 그러했을지언정, 지금의 창작음악은 조금 더 주체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전통음악을 품고,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는 참신함, 삶의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곡의 메시지, 경계를 넘나드는 악기의 구성 등에서 그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음악적 상상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아마도 국악이라는 세계가 주는 음악적 매력이 더해졌기에 우리의 감성을 더 자극하지 않았을까 싶다. 현장에서 기자가 한 가지 확실히 느낀 것은 이들은 음악을 진정 즐기고 있었다. 아니, 가지고 놀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에너지가 없다면, 이토록 놀라운 창작품들이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이들이 가진 음악적 에너지와 감수성, 그리고 열정이 대중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년에는 어떤 음악이 우리를 들뜨게 할지, 성급한 기대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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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매간당’, 대상![류기자의 현장]국내 최대 창작국악 경연대회인 ‘제16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영예의 대상은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라는 곡으로 출전한 ‘매간당’팀이 차지했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국무총리상과 상금 1500만원이 수여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국악방송이 주관, 국립국악원이 후원하는 ‘2022 국악 창작곡 개발 - 21c한국음악프로젝트’는 올해로 16회를 맞으며, 본선 경연을 지난 9월 15일(목) 저녁 7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진행됐다. 경연은 국악방송 TV, 라디오,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대상 수상팀인 ‘매간당’은 황재인(작곡), 유예진(거문고), 이다현(가야금), 김서연(대금), 이혜리(아쟁, 징), 김솔림(해금, 정주)으로 구성되었으며, 魅衎黨(매혹할매, 즐길간, 무리당)의 뜻을 갖는다. 한자어 그대로 음악과 퍼포먼스, 현대음악적 요소를 활용하여, 새로운 멋과 소리를 가진 다채로운 매력의 국악을 선보여 관객들을 즐겁게 하고자 한다. 수상곡인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는 악기와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으로, 악기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탐색을 전통악기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로 구현해냈다. 이전에 없던 그들만의 연주방식과 곡의 흐름은 강렬한 독주 같기도, 때로는 조화로운 협주를 듣는 듯, 독특한 음악적 각인을 경험하게 했다. 이들은 수상소감에서 "예상치 못했던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라고 감격과 기쁨을 표현했다. 수상 훈격과 수상팀은 다음과 같다. 대상(국무총리상) : 매간당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 금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 소리꽃가객단 ‘제be노정기’ 은상(국립국악원장상) : 구이임 ‘나븨’ 은상((재)국악방송사장상) : 피리밴드 저클(JC Crew) ‘가위바위보!’ 동상((재)국악방송사장상) : O(오) ‘0(영)’, 반쯤 핀 꽃 ‘반쯤 핀 꽃’ 장려상((재)국악방송사장상) : 오프로드 ‘듄’, 여완x케빈 ‘달에게’, 이러리-저고리 ‘풀어라!’, 줄헤르츠(JUL Hz) ‘블루(Blue)' 2차에 걸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총 10팀은 작곡·연주·문화예술기획 분야의 전문가 멘토링을 거쳐 본선 경연에서 한층 더 다져진 실력으로 풍성한 무대를 선보였다. 각 팀들은 음악적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연주구성과 깊이 있는 음악적 통찰력으로 시대를 주도하는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작년 대상 수상팀인 ‘창작아티스트 오늘’의 축하공연으로 경연의 열기는 한껏 더해졌다. ‘21c한국음악프로젝트’는 지난 15년간 총 130곡의 창작곡, 16장의 앨범을 발표해오며, 신진음악인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마다 전통음악에 현대적 감성을 담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국악창작곡을 선보이며, 전통음악의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국내외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류 열풍에 힘을 보태고 있기도 하다. 대회의 주요 앨범으로는 ‘난감하네’, ‘풍류도시’,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등이 있고, 배출한 작곡가는 심영섭, 최덕렬, 홍정의 등이 있으며, 에스닉팝스룹 락(2007), 불세출(2007), 앙상블 시나위(2008), 숨(2009), 고래야(2010), 헤이스트링(2017), 서도밴드(2018), 경로이탈(2019) 등의 그룹들 또한 이 대회 출신이다. 또한 이번 대회는 류형선(작곡가, 21c한국음악프로젝트 초대 예술감독), 김영대(문화연구자, 음악평론가), 방수미(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지도단원), 설현주((주)국설당 대표), 신대철(밴드 시나위 리더), 심상욱(전주시립국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 이슬기(가야금 연주자) 등 총 7인의 각 분야 전문가에 의해 공정하게 평가되었다. 류형선(전남도립국악단 예술감독) 심사위원장은 "오늘 이 무대에서 대중성, 전통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치, 그 예술적인 가치, 독창성, 이런 것들을 다 관통해내는 어떤 천재 하나를 만난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국악은 이래야 된다’ 라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 무한대의 자유로움 같은 것을 선사해주신 것 같아서 무척 즐거운 밤이었습니다.” 라고 심사의 소회를 밝혔다. 본선에 진출한 10팀은 아티스트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프로필 사진 및 영상 촬영과 음원 녹음을 마쳤으며, 이후 CD앨범 제작 및 국내·외 주요 음원사이트 내 수상곡 음원 유통으로 대중과 음악적으로 소통할 수 있으며, 국내·외 공연 출연 연계 등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적 상상력과 통찰력이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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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절신 충혼 달랜 한글 악장(樂章) 발굴제47회 정선아리랑제가 15일부터 3년 만에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다.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정선공설운동장에서 대규모로 진행된다. 축제는 남면 거칠현동 七賢祠(칠현사)에서 고유제를 지내면서 시작된다. 정선출신 고려유신 전오륜을 비롯한 신안·김충한·이수생·변귀수·김위·고천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들이 율창(律唱) 한 7편의 시가 정선 지역인들에게 전해지면서 정선아리랑 대표사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와 같은 우국 사설이 지어졌다고 전한다. 이런 연유로 정선아리랑 시원설과 7인의 인물과 7편의 시가 언급된다. 이런 연유로 정선아리랑제는 이들의 위패를 배향한 정선 남면 거칠현동 ‘7현사’에서 제를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금년 행사에는 특별한 수서가 들어갔다. 고려 충렬신들을 기리는 ‘악장’ 일편이 낭송되기 때문이다. 이 (사)아리랑연합회 소장자료인 1936년 간행 景賢祠誌(경현사지) 제5권에 수록된 것을 이번에 발굴,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악장은 조선시대 들어 궁중에서 국가행사나 잔치 등에서 행해진 장르이다. 이 번 발굴 작품은 기존의 한문 또는 현토(懸吐) 형이 아닌 국문 중심의 악장이면서 민간에서 행해진 작품이란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를 계기로 발굴 악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고려 충절신은 이른 바 ‘杜門洞72현’으로 통칭된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세워진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고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이성계에 불복하여 두문동 만수산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문신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의 존재와 충절 정신이 세상에 드러나기로는 조선조 후기에 와서다. 1740년 영조 임금이 개성을 행차할 때 만수산 인근 두문동 유래를 듣고 비석을 세워주게 되고, 이을 계기로 자손들이 가승(家乘)에 수록하자 다시 정조 임금이 감탄하여 1783년 개성 성균관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추모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이후 ‘두문동72賢’, ‘3隱’, ‘9貞忠’, ‘7賢’ 등의 인물 규정이 생기고, 기리는 문중의 사당 건립과 실기(實記)나 문집 등의 간행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기록이 1809년 ‘두문동선생실기’(3권1책 목판본), 1860년 ‘화해사전’(1931년 재간), 1866년 ‘채미헌실기’(서산서원 발행), 1904년 ‘전씨관면록’9전사자본), 1934년 ‘두문동서원지, 1936년 '경현사지'(목활자본), 1956年 '전씨관면록'(鉛活字本) 등이다. 이 중에 ‘채미헌실기’와 ‘전씨관면록’은 전오륜 등 ‘정선7현’ 관련 시편이 수록되어 주목되고, ‘경현사지’는 고려 충절신을 기리는 한글 악장(樂章)이 수록되어 주목된다. 전자는 정선아리랑의 시원설과 관련 있는 시편이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후자는 민간의 한글 악장이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문헌들이다. 그런데 후자 즉, ‘경현사지’에 수록된 악장 작품은 기존에 국가 행사에서 불러진 악장과는 다르게 민간 향사에서, 그것도 한글로 지어진 악장이란 점에서 큰 가치로 평가한다. 특히 실제 불려진 작품이란 점에서 음악적 논의도 필요한 작품이다. 樂章 享祀 時 擧用 麗季忠賢貞忠大節 죽어죽어 一百番 다시죽어 白骨이 塵土되고 魂魄이 잇든지엄든지 人君ᄉᆡᆼ각ᄒᆞ난 一片丹心이야 엇지끈칠쇼냐 天命이 도라가이 國事가 이미 글넛도다 王氏의 鬼神이 차라리 될지언정 李氏의 臣下난 되지 안컨네 杜門ᄒᆞ기을 甘心하여 죽은 뒤에 말지로다 深山에 드러가면 耕者를 누가 알고 陶河世上머럿시니 슬푸고 슬푸도다 潘溪水에 끄든낙수 周文王을 낙는 ᄯᅳᆺ은 무삼일고 伯夷ᄂᆞᆫ 엇드한 사람이며 나은 엇더한 사람이뇨 齊王蠋의 忠臣不事二君 말은 나도 敬服하난바라 松嶽山을 도라보니 우리 故國이 아니요 首陽山을 바ᄅᆡ보니 차마 한마음을 이질쇼냐 五柳先生淵明은 千古에 同志로다 新朝에 北面마소 二心人이 붓그럽게 高麗山이 어ᄃᆡ잇나 차자가기 願이로다 田橫島가 어ᄃᆡ잇나 차질길이 茫然하다 國破君亡아엿시니 나난어ᄃᆡ로 갈고 時代가 이미 글너시니 안이가고 무어설 求할소야 정몽주의 ‘丹心歌’를 수구(首句)로 충절을 주제로 했음을 제시하고 ‘충신불사이군’ 등의 술어로 출절의 고고함을 찬하였다. ‘新朝’, ‘高麗山’, ‘國破君亡’ 등으로 왕조의 개변이 있었음을 분명이 하고, 충절신들을 천고의 동지로 삼아 살지어라고 한탄하였다. 새로운 우국 악장인 것이다. 악장 전공인 숭실대 조규익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작품을 듣고, "조선시대 ‘용비어천가’로 상징되는 왕조 악장의 전통에서는 그 반대의 고려조 충신을 기리는 내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조 교수는 "享祀時 擧行”이란 기록으로 실제 사용된 사실에 대해 음악 부분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하였다. " 그 곡조가 고려시대 또는 조선 초 민간음악과 관련을 갖고 있다면 메나리조의 중심인 정선아리랑과도 관련지어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국가에서 사용하기 위한 악장이나 현토(한문에 토만 단 형태)악장과 다르게 한글 악장이다. 특히 "享祀 時 擧用”이란 표기와 홀기(笏記)이어 수록한 것으로 볼 때 1783년 개성 성균관 표절사(表節祠) 제향이나 1936년 경현사 제향에서 실제 불린 것으로 볼 수 있다. 15일 제47회 정선아리랑제에 맞춰 ‘7현사’에서 축제 고유제가 있다고 한다. 이 뜻깊은 행사에 충절신 향사 전통을 이어, 이 번에 곡조를 얹어 부르지는 못 하더라도 낭송으로라도 올린다면 의미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일곱 충신들의 위패 앞에서 제를 지내는 것은 충절 정신을 계승하고, 정선아리랑을 가시화 한 역사성을 기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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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무형문화유산 '이담농악'의 재현과 특성본지 8월 13일자 이담농악단 김경수 단장의 기고문 "동두천 이담농악, 경기북부에서 '국악의 메카'로 도약" 이라는 주제의 지면이 나간 후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담농악'은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경기 북부지방의 양주시 문화권에 본류를 둔 농악으로, 이담풍물놀이보존회가 관리하고 있다. 경기도 향토 지적 재산으로 선정되었다. '이담'은 1963년까지 양주에 속해 있는 동두천의 옛 고을 이름이다. 양주지역은 예부터 수많은 뜬쇄들이 배출된 농악의 고장이었으며 마을마다 농악대가 구성되어 있었다. 1945년 8·15광복 전후에 양주지역에서 개최한 각종 농악경진대회에서 이담농악은 많은 상을 차지하였다. 1960년대까지는 이담농악에 속하는 송내농악·안흥농악·광암농악·행단농악·하봉암농악 등이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송내농악의 상쇠잡이 조임득, 행단농악의 이창인 등이 이담농악을 이끌었다. 근래에는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회가 구성되었다. 1997년 문화원에서 ‘우리소리 한마당’이라는 제명으로 이담농악이 재현되었다. 2년후 1999년 경기도 민속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동두천 지역민의 응원에 2007년에는 '동두천시립이담풍물단'이 창단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지 8년 후, 2017년 이담농악이 문화재 등록이 되고, 보유자가 지정된다. 김경수 단장은 전승이 희박해져 가는 동두천 '이담농악'을 재현하기 위해 힘쓴 공로와 타고난 예능을 인정받아서 동두천 무형문화재 3호 '이담농악' 보유자가 된다. 그런데 필자는 왜 타지에서 온 김경수 단장이 보유자가 되었을까라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정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동두천 '이담농악'이 무형문화유산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을 들어본다. 김단장의 이력을 살펴보니 일찌기 '국악영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40여 년 동안 올곧이 '농악'에 몸 담고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1982년 '농악의 육군사관학교'라고 불리는 한국민속촌농악단의 입단제의를 받아 그곳에서부터 전승활동을 시작하면서 현재 한국 농악의 맥과 계보를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김단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이수자로 출발하여 (사)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 (사)대한명인회 선정 사물놀이 '채상설장구' 명인,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사)한국국악협회 경기도 지회 이사, (사)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동두천지회 부지회장 등을 맡으면서 동두천 국악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에서 '국악교육'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전국 농악보존회를 조사하기 위해 매주 현지 답사를 수행하고 있다. 한달 간 인터뷰를 통해서 일제강점기는 물론 1945년 해방 전후 전국 각 지역 고을마다 마을마다 존재했던 전국 농악보존회 단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담농악의 시원과 역사성 Q. 안녕하세요. 지난 달 본지에 실린 김경수 단장님 기고문을 통해서 '농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전해집니다. 이 기고문을 읽은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동두천 지역 농악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A. 때는 1994년, 지인을 통해서 동두천 지역 학교에서 풍물반 지도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동두천이 예전에는 양주 지역이어서 양주농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히 수락을 하고 온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를 왔습니다. 동두천여자상업고등학교 풍물반 지도를 하면서, 동두천 지역 농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지역 농악의 존재와 전승상황은 어떤지요 A. 당시만해도 동두천 지역은 북한계를 따라서 흐르는 내천과 농사짓는 땅이 풍부한 지역이라서, 논두렁 밭두렁 지나가면 농부님들이 흥얼거리면서 '논매기소리' 같은 민요가 생생히 살아있는 고장이었습니다. 즉, 수량이 풍부한 내천을 끼고 사는 고을이라서 집약적 농사를 짓는 마을이 많고 당연히 마을마다 농악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왕지사 동두천에 사는지라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농사를 짓는 마을을 중심으로 '농악'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여상 고적대는 전국에서 꽤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지도하시는 풍물반은 어땠나요. A. 당시 동두천여상의 고적대와 풍물반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수이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Q. 이담농악의 존재에 대해서 언제 알게 되어서 조사를 시작하셨나요? A.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풍물반 학생들이 동네 어르신에게서 지역 마을공동체가 주관하는 놀이(풍물)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동두천여상 풍물 담당 김흥래 선생님의 자문과 천재원 동장님의 고증에 따라 동두천 지역 농악의 발자취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Q. 인생 최고 청년기에 동두천에 와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시는 것 같아요. A. 제가 동두천여상 풍물반을 지도하러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이담농악을 만났고... 1999년 경기도 민속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동두천 이담농악이 국악계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 계기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바로 이담농악이 오늘의 저의 존재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Q. '이담농악'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듣고 싶습니다. A. 동두천의 옛고을 지명이 이담입니다. 마을조사에서 농악의 존재와 꼭두쇠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구심점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1995년 '이담농악동호회'도 창립되자마자, 저는 문서와 흔적을 찾기 시작했죠. 당시 발족회 주축 인물은 송내농악을 이끌었던 상쇠 조임득, 이창인 어르신들이 앞장서서 이끌어주셨습니다. 동두천 지역 농악을 양주에서 최고의 민속놀이로 끌어올린 연희자들이셨습니다. Q.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A. 이담농악은 1980년대에 들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부터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단체가 구성되었죠. 이때 30살을 갓 넘긴 어린 저에게 시작을 함께 한다는 명분을 주셨습니다. Q. 마을조사와 학계의 고증을 통해 이담농악의 재현작업이 시작되어 가는 과정에서 본인의 역활과 성과가 궁금합니다. A. 재현 과정은 이론과 연희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죠. 저는 행단농악에서 활동하던 어윤희(지행동), 송내농악의 장병우(송내동)등의 고증에 따라 행단농악과 송내농악을 재정리하여 앞놀음과 뒷놀음을 구성하고, 전해지는 광복가락과 법고놀이를 체득하고 전래되어 오는 '농사풀이' 소리를 재현하여 이담농악의 몸집을 만들어 만들어 갔습니다. Q. 조사과정에서 특별하게 도움을 주신 분이 계시나요? A. 故 장병우 선생님이십니다. 이담농악의 전신인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이십니다. 2016년 10월 12일 선생님을 찾아가서 소고놀이를 통해서 농사풀이 과정을 고증 받아서 정리를 했습니다. 전 과장의 재현과 무대화를 위해 각별한 지도를 받았습니다. Q. 당시 일정 기간 단절된 이담농악의 재현을 위해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A.동두천 출신 지역 사람이 아닌 타지인이 지역 농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저를 처음엔 그 누구도 탐탁치 않게 바라보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을조사와 같은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일이지요. 제가 묵묵히 흔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며...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시간나는 대로 지속적으로 마을을 찾아다녔습니다. 우선 마을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당목 은행나무 밑을 그냥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막걸리를 올리고 절을 하고 기원을 드렸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의 진심이 통했던지... 사람들도 점차 마음을 열게 되면서 지난 마을의 역사와 함께 마을굿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Q. 긴 세월 동안 힘든 고증과정을 거쳐서 언제 이담농악이 세상(동두천시)에 나왔나요? 즉 언제 어느 무대에서 첫 '재현'(Repretation)을 하셨나요? A. 드디어 10여 년에 걸친 고증작업 끝에 2017년 12월 12일 오후 6시30분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립 이담농악단 첫번째 정기공연, 즉 무대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우린 모두 이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에 모두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Q. 그 마을이 바로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마을인가요? A. 네, 사당골(현 이담로 161) 마을 사람이 주축이 되어 마을굿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굿을 지켜내려고 애를 쓰고 계셨습니다. 마을굿이 있는 곳에는 농악대가 존재합니다. Q. 사당골 마을제는 언제, 어디서부터 출발을 하나요? 특정 장소가 있나요. A. 마을 입구에 마을 수호신 당목이 우뚝 서 있습니다. 특히 이를 알리는 사당골 수호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매년 마을 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마을제를 지냅니다. 행단제라고 합니다. 1,000년이나 된 당목 은행나무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액운을 떨쳐내고 화합과 단합을 기원하는 고유제와 같은 제사의식과 줄다리기 및 씨름대회가 끝나고 뒤풀이 형식으로 구성된 놀이로 시작됩니다. Q.그렇다면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사당골에서 이루어지는 마을굿 행단제에서는 섬기는 대상이 있나요. 대상이 있다면 무엇을 상징하는 설화나 전해오는 민담이 있지 않을까요? A.사당골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당목과 함께 어유소 장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Q. 흥미롭습니다. 사당골을 지키는 은행나무가 기적이나 예시를 보여준 전설이 있나요. A. 조선 초기 어유소 장군이 어린시절부터 이 은행나무 밑에 단을 쌓고 학문과 무예를 익혔으며 은행나무와 대화를 주고받듯 은행나무를 모시면서 가까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한달 동안 은행나무가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또 조선 말기 고종 인산일 바로 직전에는 날씨가 맑고 화창한데 갑자기 마른 벼락이 치면서 한양 방면을 향해 자라고 있던 큰 가지가 저절로 꺾여 부러졌다고 합니다. 이후부터 어유소 장군과 은행나무을 기리는 ‘행단제’라는 마을굿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죠. Q. 사당골 마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1150년대에는 온양 방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였으며 고려 의종시 상서령 벼슬을 한 방휘진이 1177년에 이 마을에 묻히고 이후에 사당이 건립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1420년에는 평해 황씨, 1430년에는 충주 어씨가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사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사당골이라고 불려졌다고 합니다. 사당은 양지마을에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1920년대부터는 사당골을 행단부락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1963년부터는 양주군 동두천읍 지행 2리였으며, 1981년 7월 1일부터 동두천시 내행동 5통이고, 현재는 불현동 23통으로 46세대 외에 아파트 단지가 구성되었고, 이후 마을회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Q. 사당골 마을회 구성원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고문에는 박양희, 회장에는 황석만,부회장은 이경훈,총무는 이창수,감사는 박현희, 운영위원으로 박은희, 박찬희, 박정호, 송요섭, 이상재, 이명애이십니다. 언제든지 가면 황석만 회장님이 반겨주십니다. 이담농악보존회 후원회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마을제를 지내도 앞장서서 주축이 되는 마을 유지분들입니다. 그런데 자꾸 젊은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사가는 추세입니다. 아! 마을이 살아야 나라도 삽니다. Q. 지금도 사당골에는 마을제를 지내나요. A. 인터뷰 당일날에도 우연치 않게 은행나무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박은희 어르신께서 은행나무 주변에 제초기로 잡초를 제거하고 계신 것을 보고 다행이도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인구가 줄어서 매년 음력 10월1일에 마을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삼색 과일과 술을 올리며 간소하게 마을제를 지낸다고 박은희 어르신께 인터뷰를 통해서 전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마을공동체가 활성화 되어 활동이 번창하였으나 지금은 어르신들의 연세가 고령화되면서 박은희 운영위원님 외 몇몇 어르신들만이 관심을 가지시는 실정이라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Q.주변 마을에서 농악이 성행했는 마을은? A. 이담농악의 전신인 행단농악(지행동), 송내농악(송내동), 안흥농악(동안동) 등이 조선후기부터 연행되었으며, 주변 지역 송내농악과 안흥농악 등 농악들이 다수 존재했습니다. 특히 행단농악의 지행동, 송내농악의 송내동, 안흥농악의 동안동, 이 3개의 지역에서도 마을굿과 농악대 활동이 가장 성행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도 마을굿이 내려오고 있었죠. 그러나 산업화가 급속히 발전하고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농사보다는 보산동 상가와 주변 골목들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미군을 대상으로 한 클럽문화가 조성되어 전국에서 외지 사람들이 불나비처럼 모여들었죠. 최근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동두천역 근처 상권이 발달하면서 점점 전통 민속문화같은 농악이 자취를 감추고 명맥 마저 희미해져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Q. 마을조사를 하시면서 이담농악 재현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은 누구신가요 A. 송내동에 사시는 장병우라는 분이십니다. 소고잽이이십니다. Q. 송내농악의 소고잽이셨던 故 장병우 선생님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사당골 마을회 운영위원이신 박은희 어르신에 의하면, 송내동에 장병우라는 소고잽이가 있었고, 송내농악이 행단제를 지내고 나면 넓는 공터에서 난장을 틀고 농악놀이 등 다양한 풍장놀이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고 합니다. 그 중에 장병우 소고잽이가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계셨는데 안타깝게 금년 6월 18일에 소천하셨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 12월 12일(토) 2시에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 무형문화재연합회 주관으로 무형문화재 연합회 공연에서 이담농악단원들과 장병우 선생님께 ’소고놀이‘ 농사풀이를 지도받고 선생님과 저와 단원들이 함께 공연을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 공연이 되었습니다. Q. 저도 작년에 이광수 선생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12일 참석했습니다. 장병우 어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서 풍물을 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그 분의 유품 중 상모같은 거라도 보존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혹 남겨주신 거라도 있나요. A. 네, 다행히 상모와 의상을 저에게 주시고 가셨습니다. 몇 장의 사진이 남겨있습니다. 가끔 시간이 나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곤합니다. 가신지 얼마 안되어선지 실감이 안납니다. 생각만 하면 그리워집니다. Q. 이담농악보존회는 언제 창단이 되었나요? A. 1990년 초반 이담농악을 연구하며 1995년에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단체가 구성되어 이담농악보존회를 창단하였습니다. 이담농악의 발전과 저변 확대를 위해서 성신여대 지회와 을지로 지회 및 구미 지회, 동두천 관내에도 상패동, 송내동,걸산마을, 동두천시 평생학습관. 동두천문화원에서 이담농악 강좌, 등..... 활성화를 위해서 회원님들을 모시고 있으며 이담농악후원회 이사회를 조직하였습니다. 동두천 시민들에게 이담농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이담농악 각 과장의 구성은? A. 이담농악을 이끌어 가면서 재구성한 것은 광복가락을 입장과 퇴장할 때 치고있습니다. 고깔소고 농사풀이 과정을 故 장병우 선생님과 작년에 함께 공연하면서 보완하였습니다. 1)길놀이(광복가락) ⟶ 2)인사굿 ⟶ 3)원진 ⟶ 4) 벅구마당놀이 ⟶ 5)당산벌림 ⟶ 6) 멍석말이 ⟶ 7) 원진 ⟶ 8) 벅구놀이 ⟶ 9) 한줄벅구 ⟶ 10) 두줄벅구 ⟶ 11) 벅구 농사풀이(가래질,논가는 동작, 모판대기, 씨앗 뿌리기, 써래질, 모 짜고 심는동작, 애눈파기, 두벌논메기, 퇴비주기, 벼베기, 타작)로 전과장이 11과장입니다. 설명을 하자면 동작과 춤사위도 보여 주어야 하니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Q. 당시 문화재 지정 신청하는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A. 2016년에 시 문화재 신청서를 넣을 당시에는 절차와 방식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막했습니다. 장구잽이로 학교에 출강하면서 현장에서 활동하던 실연자이라서 행정적인 문서화 작업이 저에게는 엄청 부담이 많았고 벅찼습니다. 그러나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지인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서 신청서류를 제출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나 싶을정도로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담농악'의 광복장단과 태극상모.그리고 제금 편성 Q. 이담농악만이 갖고 있는 지역성을 상징하는 특징이 있나요? A. 하나는 '광복장단'이고 다른 하나는 태극 문양이 들어간 '태극상모'입니다. ‘광복장단’은 이담농악에서만 쓰이는 가장 특색 있는 장단으로써 1945년 광복 전후 동두천 지역에서 길놀이를 할 때에 쓰이던 장단입니다. 말 그대로 ‘광복’ 이라는 의미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해방을 표현하는 장단이라고 봅니다. 외세에 의한 억압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흥을 더하고 신명을 표출할 때 쓰이던 장단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지금까지 큰 경사스러운 날에는 반드시 ‘광복장단’을 썼고 이것이 전통이 되어 이담농악 판제에 가장 특색 있는 장단이 되었습니다. 더한다면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불교적 성향이 보입니다. 불교식 제례에서 스님들의 춤사위인 바라춤에서 쓰는 '바라'(제금)를 사용하여 편성이 이루어집니다. Q.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이 타 지역과 대비해서 이담만의 것인가요. 그렇다면 동두천 지역 농악대에서만 전해진다는 '광복가락'에 대해 궁금합니다. A. 동두천 송내동, 지행동, 동안동, 등 여러 지역에서 치던 가락입니다. 일제강점기 1940년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군가로 불린 광복군아리랑이 떠 오릅니다. 농민들이 광복을 기원하면서 '광복+농악'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광복후에 광복군아리랑을 만들리가 없거든요. 이 용어의 발생을 1940년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재금을 치배로 구성하여 함께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담농악의 판제가 완성됩니다. Q. 다른 지역 가락의 용어는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A. 삼채장단, 덩덕쿵이, 자진모리장단 등등 다양합니다. Q. 광복가락을 듣고 싶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다른 지역과 현저하게 다릅니다. ‘광복가락’의 기본 장단은 쇠가락 구음으로 ‘갱 무개갱 갱 무개갱 갱 갱 갱 무개갱’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장단은 '덩덕궁' 장단이라 볼 수 있죠. 광복장단은 긴 삼채굿 혹은 자진삼채굿과 비슷하나, 다른 점은 긴 삼채굿, 자진삼채굿의 경우에는 기본형과 반주형을 교대로 치지만 덩덕궁이의 경우에는 기본형에 구애됨이 없이 다채롭게 변주하여 리듬이 매우 생동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 ‘광복장단’ 역시 길놀이 때의 걸음걸이에 따라 장단의 속도와 장단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Q. 이담농악대가 쓰는 태극상모도 독특합니다. 연유가 있나요. A. 이담은 다른 농악대와는 달리 농기(만장기, 깃발)위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상모에도 태극문양을 그려넣습니다. 예전에 동두천에는 태극기와 태극문양이 아주 흔했습니다. ’동두천‘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남과 북이 갈리는 최전방 길로 통하는 교통의 도시 동두천, 전통과 달러가 공생하는 동두천(당시 세간에서 지나가는 개도 파란 달러를 입에 물고 다닌다고 했죠.)....거리에는 주한 미군 제7사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군들이 많았죠. 미군들을 상대하는 크럽이나 레스토랑 건물 입구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흔하게 보입니다. 미군들이 주로 외출복으로 걸치는 카키색 항공점퍼나 모자에는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수 놓아서 입는 것이 당시 유행이었죠. 점퍼 뒤에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수놓아서 입을 정도입니다. 당시 중고등 학생들도 그런 미군들이 입던 군복을 구입해서 멋스럽게 걸치는 미리터리룩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도 농기에 태극기를 그려 넣게 되고, 태극상모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동두천 이담농악만이 태극 문양이 그려진 태극상모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담농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동두천, 광복장단, 태극상모를 연결해보니 동두천 백년사 중 민중사 일부가 고스란히 '이담농악'으로 직결된다. 일제강점기 외세에 대한 저항으로 발생한 광복장단(1940년초), 1950년 6.25전쟁 이후 주한미군 7사단이 주둔한 동두천은 외부 집단으로부터 정체성을 찾고자 해서 나온 태극문양(1960년 이후)은 지역성을 구현시키고자 나온 태극상모(2017년)로 연결된다. 김단장은 아직까지 타 지역에서 태극상모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전통문화의 시대성이 발현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제금을 쓰는 모습에서 불교적 성향이 엿보인다. 이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을 통해서 동두천 역사의 일부분을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Q. 이담농악보존회 농악단 자랑을 하신다면? A.동두천 이담농악의 자랑은 모두가 한 가족 같은 마음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라고 자부합니다. 전공자나 동호인분들이 구분없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협동하고 단결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지역 유지이신 차유철 보존회장님을 중심으로 이담농악 후원 이사회가 구성되어서, 정신적으로 든든합니다. 동두천 관내에서 저명한 훌륭한 분들로서, 우리에게 큰 버팀목이 되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시대에 앞서가는 '농악의 컨텐츠' 개발 연구 절실하다" Q. 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으로서 동두천 시민들에게 ’국악‘과 '이담농악'을 어떻게 알리고 싶으십니까? A. 첫째, 가까운 의정부에는 회룡문화제가 있다. 공주의 백제문화제 등..... 동두천예술제를 더 키워서, 전통을 복원하고 'K-국악'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통이 실린 ’이담문화제‘가 개최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져서 시민들에게 낯설지 않은 ’국악‘을 알려야 합니다. 특히 동두천은 일찌기 숭늉보다도 커피를 더 좋아하고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인지라 낯선 국악을 감상하기 위해 쉽게 다가가지 못하죠. 둘째, 세계적 한류 바람을 타고 한류의 근간을 전통 민속문화에 두고 있습니다. ’K-국악‘이나 ’K-뮤직’ 시대에 맞는 창작활동을 통해 외부에 동두천의 전통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요청하는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셋째, 동두천시가 주최하고 국악협회가 주관하는 ‘동두천 국악대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를 타악 부문, 민요 부문, 연희 부문 이렇게 3개 부문 학생부와 일반부, 명인부로 나누어서 개최를 하여 경기북부를 시작으로 경기도를 대표하는 국악대제전을 통해 동두천을 알리고 싶습니다. Q. 해외 공연은 언제부터 나가셨나요? 다녀 오신 나라는?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A. 1987년 남사당 사물놀이 예맥 활동을 시작으로 김덕수 명인 밑에서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 호주 등에 있는 한국문화원과 동포사회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인도. 말레이 시아. 폴란드. 파라과이. 베네쥬엘라.멕시코. 보스니아. 칠레. 홍콩. 이라크 등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라 민족음악을 알리는 기회가 주어졌죠. 문화와 문화가 만나면 다양한 컨텐츠가 열립니다. 그것은 현장에서만 느낄수 있습니다. 많은 영감을 얻고 왔습니다. 특히 말은 안통하지만 손짓 발짓으로 동포사회 청소년들이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특히 동포들과 휘날레를 할때는 모두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우리 공연에 대해서 아리랑으로 답해주는...그 감동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동포들에게 농악을 전수해주고 싶습니다. Q.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 '농악' 을 주제로 한 전국 단위 행사는? A. 2018년 10월 전국 50여 개 지역 농악보존회가 총집합해서 난장을 틀고 광화문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조직위원장:윤영달) 판놀이길놀이(거리퍼레이드)를 할 때입니다.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농악대들이 하늘 높이 만장기를 들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난장을 틀때는 신명이 올라서 하늘로 용솓음쳤습니다. 전국 농악대를 이끄는 리더를 맡은 임웅수(경기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회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하늘과 땅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날에 형제들(?)과 주고 받은 에너지가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그 행사를 열어주신 해태크라운제과 윤영달 회장님의 국악에 대한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전 고인이 되신 주재연 예술감독님의 열정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농악대 길놀이야말로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컨텐츠라고 봅니다. 동두천예술제에도 시도하고 싶습니다. 길놀이는 길닦이를 통해 정화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필자는 제1회서울아리랑페스티발부터 학술자문위원 소속 단체라서 매년 3일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농악대가 보여준 거리퍼레이드는 장관이었다. Q. 20여년 동안 동두천에서 이담농악단을 맡으시면서 제자 중 특별한 제자가 있는지요. A. 파란눈의 이담농악 전수자,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Basile Peuvion)입니다. 우리가 2015년 9월 프랑스 낭트페스티발에 초청 공연을 받고서,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사물놀이 교습을 열었는데, 그때 농악을 공부하러 온 재즈 드러머를 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음악교사로 활동하는데 2018년 여름 휴가를 받고 한국에 와서 수소문 끝에 저를 찾아서 동두천까지 와서 우리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한달 동안 농악을 배우고 돌아갔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이담농악단 하계, 동계 수련회 및 김경수 장구 두드림캠프에서 농악을 전수한 이래로, 해마다 2회에 걸쳐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동·하계수련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농악과 재즈가 협연하는 실험적 무대도 만들었죠.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우리 문화와 서양 문화가 섞이니까 상대는 물론 우리 농악도 빛을 발하더군요. Q. 외국에서 동두천까지 농악을 배우러 온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 소개해주세요. A. 재즈음악가인 그는 12세때 재즈드러머로 입문. 2012년 여수 국제 엑스포에서 공연한 경험을 계기로 한국 음악을 발견하게 됩니다. 판소리와 민요, 그리고 사물놀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후에 장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추최한 ‘K-Vox voix coréenne 2015’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할만큼 신명과 끼가 있는 친구입니다. 프랑스주문화원에서 이담농악을 배운후, 칠곡 세계사물놀이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국악 타악곡 웃다리를 드럼으로 편곡해 연주하고 비나리, 진도아리랑, 사랑가를 연곡으로 부르고, 장구 솔로 연주를 선보였죠. 외국인 부문에서 2위로 입상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과 재즈음악을 배합한 수많은 콜라보레이션 공연을 이어나갔습니다. 국내 국악대전에서 외국인 부문 최우수 수상하는가 하면, 자라섬 재즈패스티벌 참여하여 농악을 가미한 재즈 드럼 공연 등을 펼치는 등 활발한 국악 전도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에 빠져서 이광수 명인을 찾아가서 '비나리'도 배워서 무대에서도 불렀습니다. 휘날레에서는 늘 아리랑도 잘부릅니다. 현재 프랑스,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 이담농악 및 한국 음악을 알리며 '국악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동두천 명예시민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특별한 제자입니다. 벌써 보고 싶어지네요. Q. 단장님이 연구하시는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A. 저는 지금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 6학기 논문 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장은주 교수님의 논문지도하에 "대한민국 농악 용어 연구”란 제목으로 열심히 인터뷰를 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용어 속에서 예인들의 생각과 시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전국에 있는 농악인들을 찾아가서, 국가문화재, 광역시문화재, 도문화재로 분류하여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국 지역 농악에 대한 데이터가 국가기록 빅데이터 자료가 되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특히 아직 저에게는 벅찬 서양예술사, 예술기획과 행정. 한국예술사, ’예술과 사회‘같은 학문이 농악을 다각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3년이나 된 코로나라는 비대면 시기에 주어진 시간을 다행히 공부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Q.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 예능보유자로서 다음 세대에게 이 민족유산 '농악'을 물려주기 위해 지향해야 할 과제는? A.농악은 마을굿에서 출발한만큼 지역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민족유산입니다.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2009년 동북삼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중국식 표현)이 향유하고 있는 농악을 ’농악무‘라는 종목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습니다. 우리는 2014년에,,,안타까운 일이죠. 첫째, 180개국에 살고 있는 동포사회를 대상으로 ’농악의 세계화‘를 펼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실험적 무대가 필요합니다. 일찌기 김덕수 선생님을 따라서 국외 공연을 많이 다녀왔습니다. 국내 무대와 국외 무대는 다릅니다. 청중의 시선에 맞추어야 합니다. 당시는 공연에만 집중하는지라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공연 무대에서 연희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예술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국외에서 동포들과 외국인들이 농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러한 기회가 확장될 수 있도록 문화와 문화를 연결을 시켜주는 문화매개자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사물놀이'(김덕수 명인)와 '판소리'(안숙선 명인)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고 주재연이라는 문화기획자에 의해 'K-국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둘째,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작업입니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풍류대장, K-팦 등과 같은 대중문화가 넘쳐나면서 국악을 전공했던 세대들의 지각변동이 일고 있습니다.(방탄소년단과 같은 아이돌 그룹의 경제적인 가치와 시너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농악도 이런 특별한 목적을 가진 무대가 생긴다면 무한한 컨텐츠가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셋째,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농악이 '지속가능성' 있는 종목으로 다음 세대로 전승되고 계승발전이 될 수 있도록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 전승환경 개선과 행정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농악은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야만 하는 지속가능성 있는 민족유산입니다. 다음세대에도 계승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작업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이라고 봅니다. 저의 연구는 이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악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번 구술작업을 통해 이담농악의 특성을 찾게 되었다. 광복장단과 태극상모, 그리고 '제금' 편성이다. 더 늦기 전에 마을조사를 통해서 광복장단에 대한 민속학 및 음악적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아리랑연구자로서 광복가락을 듣고서 '광복군아리랑'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1940년을 전후해서 '광복'이라고 명명했던 가락을 오늘날까지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을에서만 치던 장단이 아니고 양주농악을 계승해 온 이담농악 권역에서 많은 마을이 전승해 오고 있다. 시대성을 도입한 민중예술의 전승주체들이야말로 '창조적 계승'의 실체인 것이다. 태극상모의 출현과 이를 계승하는 이담농악은 자발적으로 지역성을 구현하려는 주체들의 성과라고 본다. 대내적으로는 미군 제7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동두천과 태극기를 연결시켜볼 수 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무형문화유산 종목 중 지역명(지역+종목+보존회)을 달고 있는 전국단위 민속예술 종목 중 하나가 '농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그만큼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마을 사람들도 함께 참가할 수 있는 '대동놀이' 종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 광화문 무대에서 전국 단위로 집합할 수 있었던 종목이 농악(2018년)과 아리랑(2019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지속가능성' 종목 중에서 아리랑, 농악이 2012년 2014년에 각각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다. 이때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부분이 바로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기능을 가진 종목'이라는 것이다. 즉 대동성에 주목한 것이다. 이담농악보존회는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3호 전승단체로써 위상을 확립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보존회 회원들과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목표로 원형을 복원하고 재현하여 이담농악을 후손들에게 계승하고자 힘쓰고 있다. 경기도 문화재보호조례를 보면, "제53조의5(도무형문화재의 보호 및 육성)의 제1항에 도지사 및 시장·군수는 지정된 도 무형문화재의 전승·보전을 위해 전수교육비·장학금 등 필요한 경비를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전승자들은 경제적 문제와 열악한 전승 환경에 내몰린 채 힘겹게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문화의 수요가 많지 않은 분야일수록 명맥 잇기를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무형문화 전승자들의 실상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가 9월 9일부터 9월 12일까지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전통연희축제 첫날은 김덕수 명인이 ‘신동 김덕수의 초연’ 둘째 날에는 연희풍류’, 고창농악보존회의 ‘고창농악 판굿’, 삼도농악’이 이어진다. 셋째 날에는 줄타기 공연인 ‘동두천 이담농악X여류줄꾼 서주향’ 공연이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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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되살아난 추석공연.....신명나게 즐겨보자3년 만의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명절이다. 가족 모임과 방문에 제한이 없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공연계의 일상 회복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명절 분위기를 북돋우는 전통 공연부터 볼거리가 풍성한 명품 국악공연이 국립국악원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국립국악원의 추석 대표 야외 공연이 삼년만에 관객을 맞이한다. 코로나19로 2020년은 취소됐고 지난해는 실내 공연으로 대체됐다. 국립국악원은 추석 당일인 10일 저녁 8시, 국악원 연희마당에서 공연 ‘휘영청 둥근 달’을 선보인다. 소리꾼 김나니의 사회로 민속악단과 무용단, 전통연희단 꼭두쇠, 줄타기 명인 권원태연희단이 출연한다. 사자놀음 길놀이와 민요 연곡, 줄타기와 강강술래, 판굿 등 오감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공연으로 한가위를 풍성하게 밝힌다. 본 공연에 앞서 오후 2시부터 8시까지는 민속 놀이터 '우면랜드'가 운영된다. 버나놀이, 굴렁쇠 놀이 등 8종의 민속놀이와 페이스 페인팅, 비눗방울 놀이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공연과 체험 모두 무료다. 국립민속박물관은 9일과 11~12일 ‘추석 한마당 한가위 보름달 걸렸네’를 공연한다. 송편 나누기, 길쌈놀이, 한가위 탐험대, 올개심니(올벼신미) 체험, 청사초롱 만들기 등 관객 참여형 체험 공연 31종을 즐길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함께 박물관 곳곳에서 전통 공연을 선보이는 '2022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를 연다. 9일은 안성시립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의 '바우덕이 서울나들이'가, 12일에는 방수미, 강길원의 '판소리 다섯바탕 눈대목전'이 각각 열린마당에서 공연된다. 국립정동극장 대표 레퍼토리 '적벽'은 판소리 ‘적벽가’를 바탕으로 소리꾼들이 판소리 합창과 춤을 역동적으로 소화해 내는 판소리 뮤지컬이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29일까지 공연되며 추석 연휴 중에는 10, 11일에 공연이 있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29일까지 공연되며 추석 연휴 중에는 10, 11일에 공연이 있다. 다음 달 23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 '서편제'는 이번이 2010년 처음 선보인 공연의 마지막 시즌이다. 주인공 송화를 이자람·차지연·유리아·홍자·양지은·홍지윤 등 역대 최다인 6명의 배우가 나눠 맡았다. 다양한 현장 증정 이벤트도 진행한다. 4대궁과 종묘, 조선왕릉을 추석 연휴 기간 무료로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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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특집방송..... 흥보전, 국악동요, 판소리 명창로드매일 보는 TV프로그램, 명절이라고 다른 것이 있을까? 집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프로그램일지라도, 의미 있는 가치를 전달하고자 보다 제작진의 특별한 노력이 집약된 것이 바로 특집 프로그램들이다. 올 한가위 역시 이러한 특집 프로그램들이 다양한 형태로 시청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국악방송과 KBS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9월 9일(금) KBS 1TV 낮 12:10, ‘추석 특집 제11회 국악동요 부르기 한마당’ 국악의 멋과 동심이 어우러진 국악 동요를 소개하고 보급하기 위한 프로그램. 1·2차 예선을 통과한 12팀 어린들의 국악동요부르기 경연이 펼쳐진다. 강승화 아나운서와 가수 겸 국악인 양지은, ‘누가 누가 잘하나’의 캠벨 에이시아가 MC를 맡고, 남경주(뮤지컬 배우), 난장앤판, 조수황의 흥겨운 국악 특별 공연도 선보인다. KBS 1TV ‘2022 추석장사 씨름대회(4회)’ 9일(금) 오후 2:10, 10일(토) 오후 2:00, 11일(일) 오후 3:10, 12일(월) 오후 2:10 한가위를 맞아, 태백·금강·한라·백두장사를 가려내는 모래판 위의 대전이 경남 고성국민체육센터에서 펼쳐진다. 천하장사 출신 ‘모래판의 황제’ 이태현 교수가 해설을 맡고, 한상헌, 김종현 아나운서가 중계한다. KBS 1TV 저녁 7:10, ‘추석특집다큐 쇠제비갈매기의 귀향’ 2005년 방송된 ‘안동호 쇠제비갈매기의 비밀’ 이후, 안동시에서 조성한 세계 최초 쇠제비갈매기 인공서식지에 정착한 쇠제비갈매기 가족과 안동호 주민들의 아름다운 공존 이야기를 다룬다.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생명의 소중함과 감동을 선사한다. 9월 10일(토) 국악방송 국악방송 라디오 저녁 7:30, ‘2022 추석특집 라디오 창극 <흥보전>’ 민속 대명절 추석을 맞아 풍자와 해학을 곁들인 판소리 흥보가를 라디오 창극으로 재탄생시켜 신명 나고 흥겨운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김학용, 이광복, 이소연, 최용석, 서정금 등의 목소리 출연으로 창극 흥보전의 맛과 흥을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악방송 TV 오전 11:00, ‘동편제 길을 걷다 <명창로드>' (IPTV채널 : KT올레tv 251, SK브로드밴드tv 288, LG유플러스 189)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 신정일 인문학자, 소리꾼 김준수 등이 출연하여, 동편제 판소리의 역사가 담긴 명창의 옛길을 찾아 탐색하며, 우리 소리의 역사를 살펴보고, 현재 대중들에게 판소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국악방송 TV 오후 5:00 국악무대 ‘여성국극 삼거리연가 : 능수버들’(서라벌국악예술단 주관) 국악방송 TV 저녁 7:00, ‘국악콘서트 판, <우리들의 국악>’ 우리음악의 매력에 빠져 한국으로 건너 온 국악 외국인들의 무대와 국악의 미래를 이어갈 어린이들의 유쾌하고 발랄한 무대 등 다양한 출연진과 풍성한 음악 선물로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방송인 한석준의 진행, 난시 카스트로(멕시코, 경기소리꾼), 쉬윤페(대만, 해금연주자), 빅토린 블라보(프랑스, 소리꾼), 예움전통연희단(어린이, 강령탈춤극), 박성진(탈북민, 소해금연주자) 등이 출연한다. 국악방송 TV 밤 9:00 추석특집 ‘시대창극 당신의 의미’(도립국악단 주관) KBS 1TV 10일(토)-11일(일) 밤 9:40, ‘추석 특집 4부작 한식 연대기’ 세계를 매혹시킨 근·현대 우리 한식의 위대함을 재발견하고,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이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한식 100년의 기억록을 펼친다. 1부 ‘정치의 맛’, 2부 ‘여인, 백년의 밥상’이 추석 연휴에, 3부 ‘한식 주식회사’, 4부 ‘K-푸드 익스프레스’는 추석 이후 목요일에 방영된다. 배우 주상욱이 1-3부, 김규리가 2부 프리젠터를 맡는다. KBS 1TV 10일(토)-11일(일) 밤 12:20 ‘추석 특집 제주어 드라마-저승차사 강림 2부작’ 2018년 이후 꾸준히 제작된 제주어 드라마 시리즈의 일환으로, 영화 ‘신과 함께’의 모티프가 된 제주신화 ‘차사본풀이’를 각색한 드라마. 인간의 몸으로 이승과 저승을 오가게 된 저승 차사 ‘강림’의 이야기로, 제주민들의 죽음에 대한 관념과 장례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9월 11일(일) 국악방송 TV 오후 5:00 추석특집 ‘국립부산국악원 천생연분 시리즈 시즌 2 ‘붉은머리 학 이야기’’ 국악방송 TV 밤 9:00 추석특집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 아라리’’(정선아리랑문화재단 주관) 9월 12일(월) 국악방송 TV 오후 5:00 추석특집 ‘마당을 나온 암탉’(국립민속국악원 주관) 추석특집 영화 모음 * 국악방송 TV 9일(금) 밤11시 ‘디아스포라의 노래: 아리랑 로드’ 10일(토) 밤11시 ‘매미소리’ 11일(일) 밤11시 ‘왕의남자’ KBS 한국방송 2TV 9일(금) 오후 11:50 ‘신의 한 수: 귀수 편’ 2TV 10일(토) 오전 10:45 ‘도굴’ 1TV 10일(토) 오후 3:15 ‘광대들: 풍문조작단’ 2TV 10일(토) 오후 9:20 ‘발신제한’ 1TV 11일(일) 오후 1:20 ‘말임씨를 부탁해’ 2TV 11일(일) 오후 10:45 ‘뜨거운 피’ 웃고 즐기는 오락 프로그램도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와 뿌리를 탐색하는 프로그램들 역시 다른 방식으로 삶의 활력소를 제공할 수 있다. 더 깊이, 오래 갈 수 있는 감동을 느끼는 것 또한 연휴를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길어지는 코로나 시대,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현명한 문화생활이 함께 하는 연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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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에 박현영 명창 인터뷰국악분야 최고 등용문인 ‘제4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박현영씨(만 33세·전북 전주시)가 영예의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차지했다. 박 씨는 이날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을 불러 심사위원 점수 94.8점, 청중평가단 점수 4.4점을 받아 장원을 차지해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전주시는 5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열린 제4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경연에서 판소리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을 열창한 박현영 씨가 장원을 차지해 대통령상과 함께 국악계 최고 상금인 7000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5일 열린 제4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판소리 명창부 장원에 등극한 박현영(33세)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 판소리에 입문한지 20년이 되는 해에 이렇게 큰상을 받게 되어 두 분(김일구, 김영자)의 스승님께 감사드립니다." " 판소리는 서사성이 뛰어납니다. 희노애락이 담겨 있는 이야기를 소리에 담아서 전해주고 싶습니다. "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책을 들려주는 소리꾼이 되겠습니다." 친가나 외가에 소리를 하는 예인들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박명창은 13살부터 처음 들어 본 판소리가 좋아서 줄 곧 20년을 판소리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고 한다. 판소리 다섯마당 속에 나오는 수궁가, 적벽가, 춘향가 등의 판소리를 이야기 하듯이, 내용을 이해하고 관중들에게 전달해 주는 무대가 좋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판소리 속에서 놀았다고 한다. 순수한 노력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판소리명창부 장원에게 주어진 상금은 국악계 최고 대회의 위상에 맞춰 높여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 6000만 원에서 1000만 원이 늘어났다. 이날 본선대회는 전주MBC로 생중계 될 예정이었으나, 기상특보 방영으로 인해 '전주MBC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되었으며, 판소리명창부 대상인 박현영 씨를 포함해 각 부문별 장원자가 배출됐다. 부문별 장원자는 △무용명인부 한진희(국회의장상) △농악부 오산외미걸립농악보존회(국무총리상) △민요부 이소정(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가야금병창부 이정아(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궁도부 이형춘(전라북도지사상) △무용 일반부 박현준(전주시장상) △판소리 일반부 정진성(전주시장상) △기악부 김소리(문화방송사장상) △시조부 임환(문화방송사장상) △고법부 김영주(전주시장상) 등이다. 지난 4일 진행된 학생대회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판소리부 정새하, 관악부 박혜솔, 현악부 최세론, 무용부 김재원 △전라북도지사상 민요부 강산, 가야금병창부 신수린 △대상문화재단이사장상 농악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가 장원으로 선정됐다. 제4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와 제39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는 지난달 21일 궁도부 대회를 시작으로 이날 본선대회까지 총 16일간 국립무형유산원을 비롯해 전주대사습청, 전주향교, 천양정, 전주시청 강당 등에서 분산 개최됐다. 전국대회에서는 △외국인 공연자들의 국악 축하공연 △젊은 장원자들과 국악계 명인·명창, 그리고 전주대사습놀이 역대 장원들의 축하공연 등 다채로운 무대가 선을 보였다. 서배원 전주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올해는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다소 위축되었던 전통공연 부흥의 시작을 알리고자 풍부하고 다채로운 축하공연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앞으로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국악계의 큰 기둥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발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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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창설50주년 동문음악회 성료지난 9월 2일 저녁 7시, 한양대학교 백남음악관에서 1971년 창설된 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창설50주년 동문음악회가 개최되었다. 50년을 이어 온 한양대학교 국악과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축제의 장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문화의 가치를 중시하고,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 교류하는 환경에서 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출신들의 활동이 활발함을 입증 하고 내일에도 는 전통음악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짐하는 자리였다. 한양대학교 국악과에 대해서는 설립자이신 김연준 박사의 예술교육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석사과정, 박사과정으로 이어지는 완성된 교육체계를 확립했고, 이론과 연주 능력을 겸비한 국악인들을 배출하여 국악 발전과 중흥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음악회는 동문 상호간 소통을 통해 새로운 국악 미래 50년을 향하는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는 큰 뜻에 의한 행사다. 제1부는 이인수(73) 동문의 집박으로 ‘수제천’, 문정일(81) 동문의 등채로 ‘대취타 천년만세’로 시작하여 위촉작과 개작 초연의 4작품이 연주되었다. 합주곡 4번 주제에 의한 ‘추흥팔경화책(秋興八景畵冊)’ 개작초연(작곡 김용진 편곡/지휘 선중규), 16개 타악기를 위한 ‘시나위’ 개작초연(작곡 이상규 편곡/지휘 이경은), 관현악과 소리를 위한 ‘수궁환영(幻影)’ 개작초연(작곡 서순정 지휘 이상준), 소리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빛을 더하리’ 위촉초연(작곡 박경훈 지휘 이희복)작이 연주되었다. 총 90여명이 연주에 참여하였다. 현재 국악과는 전임 5명, 강사 74명이 재직하고, 학부생 123명, 석사 44명, 박사 43명이 수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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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문화유산에 빠져들어도 좋습니다”종묘제례악, 남사당놀이, 판소리, 강강술래, 아리랑, 처용무, 농악, 줄타기, 가곡(전통 성악곡 중 한 종류), 강릉단오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 나라 문화유산이다. 이들을 오는 9월 9-25일 국립중앙박물관(서울시 용산구) 내 시설(열린마당, 거울못, 극장 용)에서 다양한 형태로 만나볼 수 있다. [류기자의 객석]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주최로 진행되는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시리즈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무형문화유산을 활용한 전통·창작 공연을 통해,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대중과 공유하고 전통예술의 현대화, 일상화를 지향하고자, 지난 2018년도부터 시작된 기획이다. 올해는 총 17개 공연이 선보이게 되며, 각 문화유산의 전통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전승자의 무대는 물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작무대까지 다양한 형태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공연은 무료관람이며, 8월 18일부터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을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 전통문화 원형 중심의 공연 중, 지역의 문화와 생활이 묻어 있는 귀한 공연도 눈에 띈다. 바다의 평온과 풍작, 풍어를 기원하는 제주의 대표의식 중 일부인 ‘제주 칠머리당영등굿 초감제’((사)제주칠머리당 영등굿 보존회), 풍물놀이와 무당 굿놀이 등이 혼합된 경북 김천만의 독특한 빗내 농악 12마당을 공연 형식으로 즐길 수 있는 ‘진굿의 중심, 김천금릉빗내농악’((사)김천금릉빗내농악보존회), 단오제의 무속의례 중 하나로 민중신앙의 핵심을 경험할 수 있는 ‘강릉단오제 단오굿’((사)강릉단오제보존회) 등이다. 그 외에도, 줄타기, 소고놀이, 버나놀이 등의 남사당놀이를 선보이는 ‘바우덕이 서울나들이’(안성시립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 판소리 다섯 바탕의 백미를 경험할 수 있는 ‘판소리 다섯 바탕 눈대목 전’(방수미 명창, 강길원 명창, 김태영 고수), 지역별 특징을 담은 아리랑과 민요를 즐길 수 있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강효주 명창, 차세대 경서도 가객, 두레소리),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이아미 명창의 시조와 가곡을 감상할 수 있는 ‘풍류방의 노래들’, 종묘제례악, 처용무, 자진한잎과 결합한 가곡, 그리고 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정악가무’(아우프윈드), 강강술래, 처용무, 태평무 등의 전통춤을 감상할 수 있는 ‘고풍(古風)’(한누리 무용단), 서울대 국악과 노은아 교수의 해금연주와 처용무를 감상할 수 있는 ‘2022 위대한 유산, 해금과 만나다’ 등의 공연이 선보일 예정이다. 국악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창작공연을 경험하는 것도 추천할만하다. 줄 타는 듯 불안한 현대인의 삶을 현악, 타악, 인형, 전통춤으로 구현하는 창작연희극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광대생각)은 어린이의 취향까지 저격할만한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형극과 산대, 그림자극으로 구성된 ‘꼭두각시 산대 WALL&MOON’(남사당놀이 관악지부 예토), 강강술래를 춤이라는 메시지로 재해석한 ‘CODE-강강:술래’(판댄스컴퍼니) 등은 전통문화가 우리 삶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준다. 그 밖에, ‘다올소리와 함께 떠나는 제주음악여행’(다올소리), ‘느닷X난장앤판 '관객모리’'(사물놀이 느닷, 전통연희단 난장앤판), ‘바로크 판소리 심청’((주)목성) 역시 각자의 색깔로 재해석한 전통을 관객과 공유할 예정이다. 올해 시리즈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행사를 축소 진행해오다, 2년 만에 전면 대면공연으로 돌아왔다. 주최 측에 따르면, 전통문화공연의 경우, 각 문화유산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압축하여 밀도 있게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했고, 다수의 창작공연이 포함된 실내공연이 8회로 확장되면서, 다양한 무대 효과와 구성으로 실내공연만의 색다른 매력을 제공할 것이다. 올해 5년째 이 기획을 이어오고 있는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대외협력팀 심재흥 팀장은 이 기획에 대한 자부심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올해 공연은 누가 봐도 즐겁게 볼 수 있을만한 공연으로 구성하려고 했습니다. 저희가 이 시리즈 첫 회 시작할 때, 인류무형문화유산 종목들을 일반 관객 분들이 좋아하실까 걱정했는데, 우려와는 다르게 호응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종묘제례악 공연에 일반 관객 분들이 최소 3-4천분 오셨는데, 잠깐 보다 가시지 않고, 끝까지 다 보고 가시는 것을 보고 저희도 의외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만큼 이런 종류의 공연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고 믿어요. 평상시에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비로운 경험일 수도 있고, 또 이런 훌륭한 문화가 우리 것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고정 팬 같은 분들도 생겨서, 연락 주시고 관심 보이는 분들 보면, 보람도 느낍니다. 전통공연도 이런 형태로 대중 속으로 파고 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또한 심팀장은 5년째, 공연의 장으로 함께 주관을 맡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장소에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박물관 관람 오셨다가 우연히 저희 공연을 보시고, 관심을 갖게 되시는 경우도 많은데요, 전통문화와 직접적인 연이 없는 분들이거든요, 이런 과정이 공연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전통문화 공연의 관객층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까요.” 특히,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리랑 리커넥티드’는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2009년부터 아리랑의 의미와 가치를 현재의 방식으로 수용하여 제작해 온 음반 중, 가장 최근 음반인 <The Name of Korean vol.8>의 수록곡을 선보인다. 코로나로 인해 멈춰진 일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실감을 아리랑이란 정서와 함께 담아냈으며, 국내 및 해외 음악인들과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음반이기도 하다. 2020년 음반 공개 후, 처음으로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공연이며, 제작 당시,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했던 해외 음악인 중, 프랑스 플루티스트 조스 미에니엘(Joce Mienniel)과 함께, 월드 뮤직 그룹 ‘블랙스트링’의 허윤정 서울대 교수, 이아람, 황민왕, 박경소, 김율희 등의 연주로 전통음악의 최신 흐름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올해 처음 시도하는 것으로, 친환경 행사를 진행한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다회용기 및 종이팩 생수를 사용하고, 생분해성 기념품 배포 및 플라스틱 물품을 수거하여 업사이클링한 물품으로 교환해주는 이벤트 등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환경의 중요성 또한 함께 공유하는 장이 될 것이다. 전통문화예술 자체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조상들의 삶과 지혜가 압축된 형태임을 생각한다면, 공연들 그 자체로 자연친화적이며, 관객들의 친환경 실천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공연은 사회자의 프로그램 설명과 함께 이루어지고, 관객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안내책자가 배부될 예정이므로, 사전 지식이 없어도, 남녀노소 누구든 부담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심재흥 팀장은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한 곳에서 다양한 전통행사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행사는 드물거든요. 공연들 보시면서, 진짜 우리의 새로운 전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께서 전통은 고루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와서 보시면, 그렇지 않다는 것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음악, 특히 판소리의 경우도 음악 자체에 서사가 있어서 주는 감동이 있고, 그것을 실제 음악인이 노래 부르고, 연주하는 것을 들을 때 느끼는 감동은 서양음악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심팀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행사로서, 이후에 여건이 허락된다면, 각 종목의 원형을 가감 없이 대중에게 보여드릴 수 있 기회를 기약하기도 했다. 원활환 행사 진행을 위해 예약 관람을 장려하고 있다. 예약자에 한해서 소정의 친환경 기념품을 제공 받을 수 있고, 야외공연의 경우, 예약자는 보다 나은 좌석에서 관람할 수 있게 된다. 행사 현장 관계자는 특히, 예약 후 관람하지 않는 ‘노쇼(No Show)’는 다른 관객의 관람 기회 가져가는 것이므로, 성숙한 관람문화 정착을 위해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장소별 공연시간대를 살펴보면, 열린마당 공연은 오후 2시, 극장 용 공연은 오후 5시 혹은 저녁 7시 30분, 거울못 공연은 오후 6시이다. 또한 실내공연(극장 용)은 36개월 이상, 그 외 공연은 전체연령이 관람 가능하므로, 가족, 지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시간대에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누리집에 따르면, 무형문화유산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승되며, 인간과 주변 환경, 자연의 교류 및 역사 변천 과정에서 공동체와 집단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공동체 및 집단에 정체성과 지속성을 부여하며, 문화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 증진시키고, 공동체간 상호 존중 및 지속가능발전에 부합한다.” ‘2022 위대한 유산, 오늘을 만나다’를 통해, 이런 훌륭한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민족적 동질감은 물론, 세계 문화강국으로서의 뿌리를 확인하고, 역사를 초월한 문화적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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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4년 동안 공주에서 '공주아리랑 꽃피우다'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는 공주아리랑보존회가 주관하는 제24회 공주아리랑제가 지난달 27일 공주하숙마을에서 성황리에 성료되었다. 주제는 '공주아리랑 꽃피우다'이다 제1부는 공주의 전래민요와 토속아리랑, 2부는 창작아리랑 아리랑,치르치크아리랑, 은개골아리랑, 3부는 의병아리랑인 우금티아리랑, 휘날레로 진행되었다. 오프닝 공연으로 '다듬이 연주+공주아리랑'(김계화)이 막을 열었다. 이어서 공주에서 전래되는 토속민요 '산아지타령', 토속아리랑인 공주아리랑(남은혜 외 15인)이 공주의 정취와 공주민의 심상을 전해주었다. 도라지타령과 공주군밤타령 (서민호,박고운,박세아,장다은,김나림,지유리,안수지)으로 신명을 높였다. 2부에서는 아리랑,치르치크아리랑(남은혜), 태평가,밀양아리랑(전수경 외 15인), 김죽파류'가야금산조' (안은정), 3부에서는 공주아리랑,은개골아리랑 (서민호 외 9인),우금티아리랑(공주의병아리랑),해주아리랑(전수경,박순복,허경자) 정선아리랑,한오백년,강원도아리랑(남은혜,김계화), 휘날레로 관객과 무대가 하나가 되어 아리랑 대합창으로 막을 내렸다. 반주에는 피리(조성환), 장구(김영덕),가야금(안은정)이 함께 했다. 공주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 오는 공주민요와 공주아리랑을 면면히 계승 발전시켜 온 공주아리랑보존회는 매년 3월 1일 삼일절에 공주아리랑제가 정례화 되어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줄확산으로 8월에서야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남은혜 회장은 "올해 벌써 24돐이나 되는 아리랑제와 공주아리랑전국경창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10월에 개최되는 공주아리랑전국경창대회를 통해 전국 아리랑 소리꾼과 국악인들에게는 공주아리랑이 널리 알려져 있다. 공주아리랑이 공주 시민들에게 애창하는 고향의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남은혜 명창은 2011년부터 우즈벡에서 개최된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기념 세계아리랑실크로드축제(단장:권오성 교수)에서부터 사할린아리랑제에서 '공주아리랑'과 남명창의 레파토리인 '치르치크아리랑'을 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오고 있다. 2011년부터 매년 중앙아시아 동포사회에서 아리랑을 알려오다가 키르키르탄 동포사회에서 한국을 알리는 아리랑축제에서 초청공연을 매년 정기적으로 정례화 해오고 있다. 남명창은 전국 아리랑 전승단체 중 충청도 지역에서 가장 먼저 2003년 공주아리랑보존회를 창립하였고, 충남 지역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다. 특히 남명창의 레파토리인 '북간도아리랑'과 '치르치크아리랑'은 중국과 러시아 동포들이 애창하고 있는 아리랑이다. 그동안 회원들과 갈고 닦은 토속아리랑과 창작아리랑을 배합하여 소리극으로 발표한 2019년 '유관순아리랑'에서 불린 의병아리랑, 우금치아리랑, 유관순의사아리랑이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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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 공연[류기자의 객석] 서울시 노원구에 중심을 두고 국악의 생활화를 실천하고 있는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 공연이 8월 20일 오후 5시,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성황리에 종료됐다. 주요 공연 장면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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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ef Reporter Interview] Chair professor Park Beom-hun, ‘Finding New Terrain in Korean Music’In March of next year, the Department of Korean Music will begin their courses In the middle of August, a man located in his professor’s office is thinking hard about something and thus unable to pay attention to the changing weather outside his window. This man is a musician of Korean traditional music. But also a composer, a music conductor, a Korean traditional music scholar, a university president, an educational and cultural policymaker, and once again returning as a Korean traditional music scholar while looking after his professor’s office, chair professor Park Beom-hun. Recently, Park Beom-hun has been busy with the preparations for the opening of the ‘Department of Korean Music’ at Dongguk University Seoul Campus, deciding on the full-time professors and chair professors, an administration, and so forth. Chief reporter Lee Dong-sik looked for Park Beom-hun, someone he regards as a close acquaintance since the time that Lee was a reporter at KBS. During the 80-minute interview, it became clear that the topic of conversation was the promotion of Buddhist music as new terrain in Korean music by the religious university. From this point onwards, let us listen to his thoughts. This article was translated by Linda Pauw (intern reporter) Q. Chief reporter Lee Dong-sik – Instead of going on vacation what are you doing in this hot weather? A. Chair professor Park Beom-hun – A pleasure to see you. This fall semester we are checking various matters, such as whether the received applications of students for the opening of the college of arts Korean Music Department are going according to plan. Opening a new department is a lot of work. Our department will accept all new students via rolling admissions and there is exactly one month left for this. Creating the content and means of education of the subjects that fit the new department’s vision and purpose of establishment, the confirmation of professors, but also deciding the factors of the screening process, and becoming acquainted with the defined evaluation criteria et cetera are all tasks that need to be confirmed and examined one by one. Q. Lee – Dongkuk University originally hosted their Korean Music Department on their Gyeongju Campus but the news that a new department is being created in Seoul is unexpected. A. It is a bit embarrassing to admit but if art-related departments are not operated in places where associated artists come together, inevitably, problems such as the securing of a faculty or students’ classes will arise. Also, our university is a religious university established by the Jogye Order of Buddhism but when the department was still located in Gyeongju, there was an inadequacy regarding the element of promotion of Buddhist music. Therefore, the university authorities should research and teach the foundations of Buddhist music more in-depth for a new terrain of Korean music to open, this can be achieved by suggesting the establishment of a Department of Korean Music in the middle of Seoul as a way for outstanding artists to be more involved as teachers. As you are well aware, the number of universities in the metropolitan area cannot be increased. Thus, by developing the then slightly lacking research and cultivation of Buddhist music in an era in which the world welcomes Hallyu, our university, as a religious university, thought hard about the viewpoint in which we have to bring up the talents of Korean music that our country is demanding, and decided to create a Korean music department in Seoul by turning around the existing capacity of employees. Q. Earlier, you mentioned that we can cultivate our music through Buddhist music, but the Buddhist music that we know is charged with a specific religious undertone, for instance, Buddhist hymns and chants, Buddhist prayers, and the song ‘Hoesimgok’ that became famous through the singing of Kim Yeong-im and so on. Would it not be difficult to look at this as mainstream traditional music? A. The foundation of Korean music is Buddhism. As it entered the Three Kingdoms period, it has been Buddhism that has lived with our people for more than 1500 years. The remaining melodies, the stories told in the middle of songs, the beats, and such that were made engraved the three elements of traditional music, song, dance, and appreciation, inside of us before we knew it and are manifesting this without us realizing even in modern times. It is a situation of which we are not aware. It was through Buddhist scriptures that we learned about the concept of music, not only Buddhist prayers or chants but also Yeongsan Hoesang, Hoesimgok, Binari, Tapdori, Sanyeombul, and more folk songs among Korean traditional music that is performed are all considered to be Buddhist music. So in fact, it has already deeply penetrated our music. I propose that it is important to precisely know these things, to research what we can take and disregard, and to then rekindle this with our artistic talents of this era. As there are 15 applications to our department we cannot say that this suffices, but our goal is to produce the best talent through the direct training of excellent professors, if at all possible. Q. Then, has it been confirmed who will be part of the teaching faculty? A. We can boast that all musicians representing this era are included in the faculty. Kim Deok-su and An Suk-seon who you know are involved, as well as Kim Yeong-jae, Kim Seong-nyeo, Park Ae-ri, Lee Chun-hui, Kim Hae-suk, and more. We gathered the most outstanding experts in the fields of vocal music, instrumental music, dance, and composition. This September, students can enroll and in March next year, we will open the doors of our new department. Q. I think there might be concerns about whether the world of traditional Korean music’s demand for manpower is not saturated as there are traditional music departments or Korean music departments at the top universities of our country. A. Recently, our country is trying to develop the fields of semiconductors and nuclear energy, there is absolutely no manpower discharge structure so would there not be a situation in which you cannot handle the manpower? The current state of our music is filled with anticipation due to the phenomenon of Hallyu, to keep up with this trend more new manpower, and more new talent needs to emerge. These talents, while performing that of the past, have to create new music that surpasses the level of imitation. If you look closely, our traditional music has always been creative music. That is what has been passed down to the next generation. In this era, we are already making and delivering music that appeals to people over the world beyond our own country, to do this it is absolutely essential to find the strength in our traditional music and reinvent this. Recently, a research that stated that Psy’s song ‘Gangnam Style’ worked well for people around the world because the music was based on a hwimori-rhythm can be regarded as an example of this. To establish this, performing is of course important, but education in composition that maximizes the ability to create new music in each field is absolutely necessary. Our school makes sure that the faculty members can provide personalized one-on-one education to our students. Because the National Theater is nearby, by always seeing, hearing, and learning on site we focus on developing the capability for traditional music to be reborn as the music of this era. Q. Some are concerned that this era will not last long, as in some areas the current popularity of our idols or the Korean Wave has not been universally recognized. A. The thing that we are overlooking is that Western music has also derived from religious music. Because Christianity (Catholicism) gave birth to Western music culture, we can say that Western music’s roots are Christianity. Likewise, the roots of East Asian music can be found in Buddhism. Western music incorporated ethnic and regional music from this background. Ethnic music from Hungary, Finland, Russia, Spain, and other Western countries has risen to the mainstream of Western music since the mid-19th century and is currently dominating the world. Asia’s music is based on Buddhist music, and I think it is time for Asian ethnic music to rise as world music. These elements should now be raised as modern music and world music. Q. However, the question that always torments us is to what extent is this still our music… A. Ah, right. Whether we are talking about culture or music, anything new is essentially bibimbap. Think about our bibimbap. As garnish we throw in various vegetables, we add sesame oil, and lastly, we add red pepper paste and mix it all in, this is essential to bibimbap. There might be a difference in the amount of red pepper paste added, but once that red pepper paste goes into our music it really becomes our music. Then we can ask what that red pepper paste represents exactly. Element-wise, for example, it could represent the form of a beat or song, the problem of music intervals, the method of vocal usage, movement, and other different elements like these. The problem is how do we blend these elements? And if we do this correctly, would that not result in the best version of our music? We have to identify these factors and share them. Q. I think we talked a lot about the new department. As you know too, professor, our gugak industry and our traditional music industry have suffered a lot under the corona pandemic and dealt with problems such as the cancelation of performances and a decrease in its audience although it is slightly getting better lately. How should we look at this? Is there any solution to this? A. Haha. Us Koreans who see through music or folklore are truly wise people. Don’t we have the wisdom to define objects that bring harm or annoy us as byeolsin or evil spirits, and send them away through a gut (exorcism)? Corona does make our lives difficult, but should even our spirits have a hard time because of this? Just as we overcome our saddest times by singing, we should banish this crisis by holding a byeolsingut (exorcising ritual). This is our humor and positive mind. Q. A concern that we have is that Western instruments’ expressiveness is powerful by nature whereas there is an aspect to our instruments that makes this expressiveness difficult to follow. How do you look at this problem? A. Isn’t distinguishing Western instruments from our instruments defining the limits of our music in advance? Previously, I held a North and South Korean concert in Pyongyang, at this concert the cello players who performed wore hanbok, and Western instruments and traditional Korean instruments were able to coexist. A conductor named Seiji Ozawa is a world-famous conductor of Western music. After that yangban came to China, he fell in love with the charm of the erhu and after inviting a Chinese performer to Boston to open a concert together with the Boston Orchestra, the erhu gained worldwide recognition. Now, we need to have the wisdom to exceed the distinction between instruments and styles and open a world of music. In foreign countries, the world of music is already expanding in that direction. I think this starts with us not being bound by instruments or a certain music form but us ‘submitting’ to our music. To be honest, this is a North Korean way of talking though… Even in our own three Asian countries, each presents its specific national characteristics. I think it is important that we draw from this source when needed and discard it when there is an excess to make a more universal style of music. Q. However, we still have nationalistic feelings toward Japan and lately, some voices are proposing that the roots of Japanese enka music are Korean. A. It seems true that, historically, our music moved to Japan during the Three Kingdom period. And that is how it became their music, but are we also not creating music in our own style by adopting Chinese and Western music? Regarding the origin of Japanese enka, there are records of Koga Masao, who is referred to as the founder of enka, having lived in Incheon and lately, a theory has come out that he is Korean, but because the basic vocal register for enka music does not exist in our country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ey have copied what is ours. This is something for researchers to reveal, but it would be sensible to think about how we can embrace this or that element as our own instead of sinking into nationalist sentiments about who is the original or where did someone copy something. In the past, there was a project in which musicians from Korea, Japan, and China worked together. If they looked at the sheet music, they could not express the meaning of the music but when they all held hands, started practicing, and sang, they all related to each other and the music came out wonderfully. Absorbing the strengths of each country and reviving this in the current age, that is the task that is given to us. Q. I think the time for me to ask other questions that I’m curious about has run out. You are leading the foundation of this Korean Music Department, I hope that through more compositions or the training of our younger generation our music can proudly spread abroad. A. Yes, as we were in a hurry I have spoken in rambles, but our music is always the beginning. What is clear is that we should not cling to the past and with new music should not just create gugak but also a wide range of Korean music. The answer lies in the fact that nowadays almost all university departments choose the name Korean Music Department. Now we have to find and create Korean music, and we are confident that the foundation of our Dongkuk University’s Korean Music Department under the best leaders of our time creates the opportunity to meet this desire and expectation. Thank you. English translation: Linda Pauw (Intern reporter) Linda Pauw is a Dutch student of Korean Studies and Critical Heritage Studies. Pauw came to Korea after finishing her Master's program at Leiden University to attend Yonsei University's Korean Studies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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