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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명인 정은하' 1주기 추모식 개최지난 24일 충북 단양 방곡사에서 '아리랑 명인 정은하 1주기 추모식' 개최했다. 제자, 친지, 회원들 50여 명이 모여 극락왕생을 빌었다. 오전 10시부터 묘허스님 정봉스님 지범스님이 12시까지 엄숙하게 제행했다.제자 곽동현씨가 헌가(獻歌) 서도잡가 '제전'을 올렸다. 이어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주최의 추모공연은 이사장 곽동현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사)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오늘, 마치 21년 전 제가 제1회 대구아리랑제 첫 무대 해설을 하는 날인것 같습니다. 그만큼 정은하 선생이 가셨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립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국악신문 기미양 대표는 거의 매일 전화를 통해 아리랑연합회와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운영 등에 대해 걱정했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첫 순서는 허윤도 지부장이 스승의 업적을 기리는 자작 시조창 '팔만대장경'으로 추모의 뜻을 표했다. 이어 제자 김수희 오은비 신수진 백선혜 전은석 임옥자 허윤도 안정인 최문희 허희자 전성희 김미숙 황효숙 성은주 최문희 강옥선 홍인숙 조정원 등이 참석하여 한오백년, 대구아리랑 등을 올렸다. 세번째 무대는 정은하 선생의 애창곡 '경상도아리랑'을전성희(대구아리랑보존회),김미숙(영남아리랑보존회),최문희(성주의병아리랑보존회장),황효숙(울릉도아리랑보존회장)이 헌정했다. 초장부터 눈물을 보이더니 4분이 모두 울면서 부르게 되자 객석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 정은하 선생의 애창곡 '경상도아리랑'을 전성희(대구아리랑보존회), 김미숙(영남아리랑보존회), 최문희(성주의병아리랑보존회장), 황효숙(울릉도아리랑보존회장)이 헌정했다. 네번째 무대는김천시립국악단 조우석 악장의대금연주 '청성곡'이 구슬픈 가슴을 아득히 여며 주었다. 다섯번째는 관객의 요청에 의해곽동현 명창의서도잡가 '제전'이 다시 한번 불려졌다. 오늘 같은 날은 하루종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어서 더 불러달라는 것인 듯하다. 여섯번째는임옥자(성주아리랑보존회장),허희자(진천아리랑보존회장),성은주,안정인(성주아리랑보존회)이 '정은하 본 대구아리랑'으로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정회장이 작사 작창한 대구아리랑이다. 평생 오리지날 경상도 사투리를 투박하게 던지는 고인의 음성이 들리는 둣하였다. 휘날레는 울릉도와 제주에서 온 제자들과 전 참석자 모두 일어나서'최계란 본 대구아리랑'을 대합창으로 성료했다. 곽동현 회장은 "오늘같이 갑자기 추운 날에도 불구하고 멀리 울릉도에서도 참석해 주셔서 감사를 올립니다. 올해 22회 대구아리랑축제에서 다시 한번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전했다. (사)영천아리랑보존회 전은석 이사장은 "영천이 고향이신 정은하 스승이 25년 전 남겨준 '영천아리랑' 음반과 영천아리랑대축제는 영천의 명물이 되었다. 이제는 시민들이 나서서 인류무형문화유산 영천아리랑을 다음 세대에 계승하기 위해 명소에 영천아리랑노래비를 세웠다."라고 하며 영전을 향해 고개 숙여 감사를 올렸다. 공연 후 가족대표로 김수희씨가 인사를 했다. 3년 제사를 모신다며 내년에도 꼭 만나자고 청하였다. 참석자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내년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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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대구아리랑제, 정은하 명인을 그리며대구아리랑(정은하 본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는 넘어가네 어데에 아니라예 핑계만 찾지말고좋으면 좋다고 눈만 껌뻑하이소팔공산 수태골 감도는 구름아우리님도 내 못잊어 그리 떠도느냐아이구 이 문둥아 좋다 말만말고추야장 긴긴밤에 날 찾아오이소금호강 밝은 달이 휘영청 떠오면가신님 그리워서 내 못살겠네경감영 선화당은 대구의 자랑아름답게 보존하여 후세에 남기세비슬산 참꽃필 때 슬피우는 소쩍새우리님도 내 그리워 피토해 우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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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9월이 / 나태주9월이지구의 북반구 위에머물러 있는 동안사과는 사과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대추는 대추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너는내 가슴속에 들어와 익는다.9월이지구의 북반구 위에서서서히 물러가는 동안사과는사과나무 가지를 떠나야 하고너는내 가슴속을 떠나야 한다. 추천인: 김길자(정선아리랑보존회장) 오늘은 대구아리랑제가 21돐을 맞는다. 20년 전 제1회부터 올해까지 매년 뜨거운 광복절날 대구아리랑제 무대에 섰다. 전국에서 온 아리랑꾼들이 대구에서 뜨겁게 아리랑을 불렀다. 나에게는 대구와 정선을 아리랑으로 잇게 해주었다. 이제는 별이 된 아리랑 명인 정은하 선생님이 그립고 그립다. 20년 동안 우리를 이끌어 주셨던 전국 아리랑의 리더, 정은하 선생! 오늘 무대 앞자리에서 아리랑을 들으러 오시겠지......대구아리랑!, 정은하!, 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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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사 ‘신통일아리랑 평화축제’, 아리랑 얼쑤!천주평화연합 주최, 신통일아리랑 평화축제가 19일 오전 경북 풍기에 위치한 금강사에서 개최했다. 대한불교도법황종 금강사와 (사)한국종교협의회 등이 함께 아리랑 한마당을 통해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이번 행사에는 이현영 UPF 한국회장, 대한불교조계종 팔공총림 방장 임담의현 대종사, 대한불교도법황종 종정 혜경 대종사, 대한불교도법황종 총무원장 도봉스님, 전법주사 노형 대종사, 대한노인회 김동진 상임이사, 세계불교도연합 총재 도룡국사, 박성만 경상북도의회 의원, 김주영 영주시의회 의원을 비롯하여 UPF의 평화대사, 평화운동가 약 300여명이 참석했다. 또한 사할린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도 참석했다. 행사를 주관한 UPF는 UN경제사회이사회 ‘포괄적 협의 지위’를 가진 글로벌 NGO로써 국내에서는 17개 광역시도 및 232개 시군구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신통일아리랑’에서 펼쳐진 아리랑은 6월 1일 ‘의병의 날’과 7월 27일 정전 70주년을 의미화 한 의병아리랑을 중심에 배치하고 7개 지역 아리랑보존회가 전승하는 토속아리랑을 함께했다. 경상도 지역 '대구아리랑'에서부터 사할린에서 불렸던 '사할린아리랑'까지 7지역 단체에서 12종의 아리랑을 선보였다. 첫 무대는 경산아리랑보존회가 준비한 산뜻한 ‘화전놀이아리랑’으로 열고, 휘날레는 탁월한 보편성을 지닌 '본조아리랑' 대합창으로 여몄다. 2006년 창립한 경산아리랑보존회(이사장:배경숙)은 경산아리랑을 전승하고 매년 경산아리랑체와 경산아리랑전국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영남지역 구전민요와 함께 경산아리랑을 스토링텔링 작업으로 완성한 소극은 전통에 무게를 실은 무대화를 통해 현대적 계승에 힘쓰고 있다. 2003년 창립한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이사장:곽동현)는 2003년부터 매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대구아리랑제(통상20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영남 지역에 25개 지부와 함께 영남아리랑축제 및 대구아리랑전국경창대회(통상 20회)를 개최하고 있다. 2012년 창립한 (사)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기연옥)은 기우만 의병장 직손으로서 문헌과 구전으로 전해지는 춘천의병아리랑과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을 기리는 '윤희순의병아리랑' 등을 소극과 뮤직컬로 무대화 하여 국내외 순회공연을 통해 널리 알리고 있다. 2019년 서울아리랑패스티발 전국아리랑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11년 창립한 (사)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사장:전은석)는 영천아리랑을 전승하고 매년 영천아리랑제와 영천아리랑전국경창대회(통산10회)를 개최하고 있다. 일년에 100여 차례 경로당 위문공연을 해오고 있다. 2005년 배경숙의 '구미아리랑' 발표 후 창립한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임규익)은 2009년부터 경상북도과 구미시 후원으로 매년 구미아리랑제 개최, 2018년 이후 허위 의병장을 기리는 구미미의병아리랑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2016년 창립한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사장: 이혜솔)는 경기서울 지역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다. 아리랑, 왕십리아리랑, 사할린아리랑, 아무르아리랑, 아리랑코로나, 연꽃아리랑 등을 스토링텔링 작업을 통한 무대화에 힘쓰고 있다. 사할린아리랑보존회 지도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2020년 창립한 동두천아리랑보존회(회장:유은서)는 휘날레에서 본조아리랑을 선창했다. 6월 25일 동두천아리랑제를 열 예정이다. (사)아리랑연합회는 이번 금강사에서 펼친 아리랑 한마당을 시작으로 신통일한국을 추동하는 힘의 노래가 아리랑임을 다양한 곳에서 전개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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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 정은하 명창 별세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회장인 정은하 명창(대구아리랑 전승자)이 5일 오후 3시 15분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상주는 정석만, 정선옥. 영안실은 영남대학 장례식장 303호(053-620-4243), 발인은 7일(토) 오후 3시. 장지는 충북 단양 방곡사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정명창은 1976년부터 이창배(1916∼1983) 선생에게 민요와 잡가, 안비취(1926∼1997) 선생에게 경기민요를 배웠다. 30대 초반에 스승이 "경상도 태생이니 경상도 민요를 연구하는 게 맞다"는 권유를 받고 1985년 무렵부터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영남민요현장조사와 무대화로 영남민요를 자신의 리파토리로 체화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대구에서 터를 잡고 정착후, 영남 지역 민요를 전공하는 대학 교수들과 함께 영남 지역을 다니며 예천 통명농요(중요무형문화재 84호), 예천 공처농요(경북도 무형문화재 10호), 안동 저전농요(경북도 무형문화재 2호), 구미 발갱이들소리(경북도 무형문화재 27호), 달성 하빈들소리(대구시 무형문화재 16호) 등을 찾아내어 기록하고,무대에서 재현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음반으로는 영천아리랑, 대구아리랑, 영남아리랑의 재발견 3장의 음반에서. 팔도 아리랑과 여러 음악장르를 넘나드는 아리랑 음반을 발표했다. 또한 영남아리랑보존회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아리랑 지부(25개 지부)를 가진 단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실적에서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 되는데 숨은 공로를 인정 받아서 2013년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으로 추대를 받았다. 이러한 고인의 전승활동으로 대구를 중심으로 한 영남이 우리나라 아리랑 전승의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아리랑 전승활동을 살피면, 1983년 올케 친정집에 놀러왔다가 동구 불로동에서 전해지는 '대구아리랑'을 채록하고 전승해 왔다. 2000년 '615공동선언기념아리랑음악회' 공동주최측인 (사)아리랑연합회에서, 당시 남한에서 유일하게 '영천아리랑'을 부를 수 있는 국악인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는 정은하 선생를 모셨다. 고향이 영천인 그는 영천아리랑을 경상도조로 당차게 불러주어서 청중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이후 영남아리랑보존회를 창립하고, 2011년까지 영천에서 '영천아리랑'을 주제로 ‘영남아리랑축제’를 전국아리랑경창대회와 함께 개최해 오다가, 제자인 영천 출신 전은석(현 (사)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 이사장)에게 전해 주었다.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계기로 지역의 지명`사투리를 곁들여 현대적으로 만든 ‘대구아리랑’을 발표 후, 이를 계기로 대구아리랑 음반을 시작으로 매년 8월 15일 ‘대구아리랑제’와 대구아리랑전국경창대회도 함께 개최해왔다. 제자인 곽동현 한양대 국악과 겸임교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께 민요를 배웠다"며 "결혼도 안 하신 채 늘 '나는 아리랑과 결혼했다'고 하셨을만큼 아리랑과 제자밖에 모르셨던 분이다. 너무나 일찍 가셔서 전국아리랑전승단체들이 애통함을 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리랑학회 기미양 이사는 "정은하 명창은 영남민요와 영남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는 전승자로서 현장조사시 음악적 분석에 대해서 탁월한 안내를 해주었다. 그만큼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언제나 전화만 해도 궁금해하는 지역 아리랑은 물론 경기민요에서부터 서도민요, 영남민요 지역의 토리대로 척척 불러주었다. 특히 잘 들리지 않는 일제강점기 SP음반 사설을 줄줄 풀어주었다. 영남지역 구비문화조사시 채록해서 들려주면 서울사람 귀에는 전혀 채록이 안되는 발음과 사투리 뜻까지 해결해 주었다. 이렇게 빚을 많이 지었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특히 아리랑 리더로서 전국 아리랑공동체 결속에 기여해 왔다."며 "17세 되는 1970년대 중반부터 평생 함께해 온 국악계 명사와 소리꾼들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전해 주었다. 국악계와 국악인을 이해하는데 큰 자산이 되었다."라고 전했다. 정은하 명창 약력 소속: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이사장)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회장 전국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장 1956년 (경상북도 영천 출생) 1976년 이창배`안비취 선생을 사사, 국가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이수자 1982년 KBS 민요백일장 장원 1985년 한라문화제 최우수상 수상 MBC 전주대사습놀이대회 우수상 1986년 한국국악협회대구지부 민요분과장 겸 이사 1991년 제1회정은하 민요발표회/대구문화예술회관 대극장 1998년~2010년 대구교원연수원 강사, 대구교대`영남대`대구예술대`경북예고 2000년 영천아리랑 음반 발매 2002년 '제4회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통령상' 수상 2003년 대구아리랑 음반 발매/제1회대구아리랑제 주관 2004년 팔도아리랑,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장 수상 제6회 영남의 소리 발표회/ 대구시민회관 대극장 2005년 (사)영남아리랑보존회 이사장 취임 2007년 영남아리랑의 재발견 음반발매 제1회 영남아리랑대축제 (영천야외특설무대)주최주관 제1회 전국아리랑경창대회 (영천시민회관)주최주관 2008년 제1회 상주아리랑축제 주최주관 2012년 아리랑상 수상(공로상) ((사)아리랑연합회 주최/아리랑학회 주관) 2013년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회장 취임. 2014년 제 8회 영남아리랑대축제 및 전국아리랑경창대회 (영천시민회관) 2016년 제1회사할린아리랑제 예술감독 2022년 제20회대구아리랑제 주최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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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대구아리랑제 20년, ‘아리랑축제 레전드’ 되다2003년 8월 24일, 유럽의 한 음악가 모임에서 아리랑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선정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맨트로 시작한 제1회 대구아리랑제.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된 아리랑 주제 행사였다. 이후 20년, 2022년 8월 20일 오후 7시, 대구 아양아트센타 아양홀에서 대구아리랑제가 열렸다. 제20회, 20년을 맞은 역사적 공연이다. 정은하 회장 총지휘에 의해 개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정주년이라는 꺽는 해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불가에서 20세를 이름값을 하는 나이라는 의미로 명자사미(名字沙彌)라고 하고, 남자 20세를 비로소 관모를 쓸 수 있는 나이라 하여 약관(弱冠)이라 말한다. 이렇게듯 20회의 연륜은 의미가 큰 회수이다. 곧 '대구아리랑제'라는 전형성을 획득했다는 성과 때문이다. 2003년 제1회에서 ‘김삿갓 8도아리랑’이란 소리극 형식을 중심으로 아리랑 전승자들을 통해 전통과 창작 아리랑 판을 펼치는 형식이다. 정리하면 해설과 소리극(매년 역사인물 제재)을 통한 아리랑 주제 실현, 그리고 전통과 창작아리랑을 담아내는 무대이다. 금년 제20회에서도 주제 이해를 돕는 해설과 경상감영 예기 앵무 '염농산'의 애민정신을 아리랑의 대동정신 구현을 주제한 소리극과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이춘희,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김길자, 진도아리랑 예능보유자 강송대 명창을 비롯하여, (사)영천아리랑보존회 전은석 회장 등 영남지역 아리랑 전승단체가 모두 참가하여 아리랑 한마당을 꾸몄다. 창작아리랑은 '곽동현과 슈퍼 밴드'가 함께 하여 다채롭게 하였다. 이런 형식은 ‘실내형 아리랑축제’의 전형으로써, 전국 전승단체 중 대구아리랑제가 제일 먼저 선도한 것이다. 대구아리랑제를 통한 실내형 아리랑축제 전형을 구축하는 데는 단연 영남아리랑보존회 정은하 회장의 공로가 주목된다. 30년 전 영남지역 아리랑을 조사하여 학계와 언론에 알려 전국에서 아리랑 전승 중심지가 영남지역이고, 현대적 활성화의 본 고장을 대구지역으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작창 ‘대구아리랑’을 발표하여 ‘대구아리랑의 탄생’이란 음반 발매하여 창작 아리랑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고, 이를 통해 1937년 발매한 최계란의 ‘대구아리랑’ 음반 발굴의 계기를 마련하게 한 공로는 주목해야 한다. 이 음반을 통해서 대구 지역이 1930년대 아리랑을 재 발화 시킨 지역임을 알게 한 것이다. 대구아리랑(정은하 작창) 어데에 아니라예 핑계만 찾지말고 좋으면 좋다고 눈만 껌뻑하이소 팔공산 수태골 감도는 구름아 우리님도 내 못잊어 그리 떠도느냐 아이구 이 문둥아 좋다 말만말고 추야장 긴긴밤에 날 찾아오이소 금호강 밝은 달이 휘영청 떠오면 가신님 그리워서 내 못살겠네 경상감영 선화당은 대구의 자랑 아름답게 보존하여 후세에 남기세 또한 20년간의 무대를 통해 가려져 있던 여러 아리랑을 가시화 시킨 것도 주목하게 된다. 제주아리랑, 울릉도아리랑, 영천아리랑, 경상도아리랑, 광복군아리랑, 대구아리랑(최계란 창), 동래아리랑, 상주아리랑, 사할린아리랑 등이다. 금년은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대구아리랑제가 아리랑의 다양성과 무형유산의 '창조적 계승' 실상을 보여주어 유네스코 등재시키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대구아리랑제는 전국의 전승 아리랑, 다양하게 이뤄진 창작아리랑을 무대화 하는 행사로도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제 내년 제21회 행사부터는 새로운 트랜드를 찾아 진전된 실내형 아리랑축제를 선도해야 한다. 내년부터 문화재청의 아리랑 전승단체 지원책 시행을 계기로 아리랑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년의 대구아리랑제, 이를 이끈 정은하 회장, 분명 아리랑축제의 역사에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이제 새로운 아리랑축제 역사의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바이다. 대구아리랑 얼쑤!. 정은하 명창 얼쑤! 우리 아리랑 얼쑤! ‘앵무 염농산가’ 기미양 작/낭송 여보시오 동무님네 이내하소 들어보소 대구삼절 염농산을 어느만큼 아시는교 옛날옛적 그시절에 대구감영 수행이니 그 예명 앵무로서 그 동생 비취라네 그 앵무 하신말쌈 영남뜰에 남아시니 기녀도 나라위해 몸바칠수 있단말쌈 나라빚 덜어내고 방천뚝 쌓을세라 누구든지 따라나서 교남대륜 세웠다네 염농산 제언공덕비 상주용암 세웠으니 대구삼절 영남풍류기적비 감영터에 세울세라 춤에 시조에 소리 박록주 최계란을 키워내고 달성권번 대들놓아 영남풍류 세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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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돐 맞는 대구아리랑축제, 소리극 '염농산 아리랑' 메아리친다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가 주최하고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회장:정은하)가 여는 제20회 대구아리랑 축제가 20일 오후 7시 대구 아양아트센터 아양홀에서 열린다. 같은 날 오전 10시부터는 제16회 대구 최계란 명창 전국아리랑 경창대회도 함께 펼쳐진다. 올해 20년 돐을 맞는 대구아리랑축제는 조선말 국채보상운동 당시 여성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기생 염농산의 삶을 주제로 한 소리극 '염농산 아리랑'(연출 최석민, 대본 김재만)을 선보인다. '앵무(鸚鵡)'로 불렸던 염농산(廉嚨山(본명:염경은 1890-1947년)은 경상감영 교방의 관기 출신으로 불과 열여덟 살 때 국채보상운동 당시 대구 거상 서상돈과 같은 거금 지화(紙貨)100환을 기부하여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1907년) 해마다 물난리를 겪던 성주 사람들을 위해 제방을 쌓았고, 주민들은 공덕비를 세워 존경을 표했다. 1927년 68세가 되던 해에는 합자회자 '달성권번'을 설립하고 초대회장을 맡았다. 말년엔 폐교 위기에 몰린 대구 교남학교를 위해 재산의 절반을 희사하여 살려냈다. 위기를 극복하고 명문 대륜고등학교로 성장했다. "금번 국채보상은 힘에 따라 내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거늘, 여자로서 감히 남자보다 1푼이라도 더 낼 수 없으니 누구든지 기천원을 출연하면 나도 그만큼 죽기를 무릅쓰고 출연하겠다" 대구 기생 앵무가 100환(당시 집 한채 값)을 쾌척했다는 소식은 운동을 삽시간에 부녀자와 하층민중에게까지 확산하였다. 당시 대구에서는 걸인들까지 의연금을 내기에 이를 정도였다. 대구에서 일어난 운동은 경남, 황해, 평안, 함경지역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참여는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그는 "기생은 돈많은 사람만을 섬겨서는 안되며,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위해서 한 몸을 바칠 수도 있어야 한다."라고 일갈했다. 정은하 회장은 "송도3절에 황진이가 있다면 대구에는 앵두, 석재 서병오, 달성공원과 함께 '대구3절'이 있다. '여성이 국민이 된 권리와 의무를 내세우면서 독립된 참여와 활동'은 국채보상운동에서 처음이었다. 당시 노비, 백정과 함께 '팔천(八賤)'으로 불린 기생은 사실상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천민이었지만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일어났다. 이러한 운동에 앞장 선 리더가 바로 대구 달성권번 기생 앵무이다." 이어서 "그의 의로운 구국운동을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에 담아 기리고자, 소리극 '염농산 아리랑'을 기획했다. 특히 올해 20돐이 되는 대구아리랑제를 기념하기 위해 대구를 빛낸 인물 독립운동가 염농산의 구국운동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사)영남아리랑보존회(정은하), 대구아리랑보존회(김상진), (사)정선아리랑보존회(김길자), 진도아리랑연구보존회(강송대), (사)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전은석), (사)울릉도아리랑보존회(황효숙), 성주의병아리랑보존회(최문희)가 출연한다. 영남, 강원, 남도, 경기, 서도 5권역의 민요권에서 불려지는 아리랑을 전승하는 6개 지역, 총 7개 아리랑전승단체가 계승하는 다양한 아리랑을 대구아리랑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곽동현 예술감독은 "영남의 메나리토리로 부르는 '대구아리랑', '성주의병아리랑', '영천아리랑', '독도아리랑', '경상도아리랑', '독립군아리랑'과 경토리가 섞인 밀양아리랑과 밀양아리랑 선율로 부른 광복군아리랑을 들을 수 있다. 태백산맥을 넘어가서 강원도 메나리토리의 정수 '정선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남도의 육자배기토리로 부르는 '진도아리랑'을 만나볼 수 있다. 아리랑 중 비장미가 가장 높은 '경기 긴아리랑', 서도지역에서 불리는 '해주아리랑'을 감상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특별출현으로 이춘희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김길자 강원무형문화재 '정선아리랑'예능보유자, 강송대 '남도잡가' 예능보유자가 관중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예술감독은 곽동현, 연주는 '곽동현과 슈퍼밴드'가 맡는다. 오전에 진행되는 제16회 '대구최계란명창전국아리랑경창대회'는 명창부(대상 300만원), 일반부(금상 100만원), 단체부(금상 100만원), 학생부(금상 30만원) 등 4개 부문으로 나눠 진행된다. 코로나로 인해 예선은 전날 동영상 심사로 이루어졌고, 본선은 대면심사로 이루어진다. 한편 아리랑명창 등용문인 대구아리랑전국경창대회는 공정한 심사와 투명한 점수 공개로 정평이 나 있는 전국단위 경연대회이다.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는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의 공식 문화행사로 대구아리랑축제를 처음 선보인 이후, 매년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8월 15일 개최되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코로나 줄확진으로 올해는 20일 개최된다. 053-424-6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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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청 퇴근 5분전, ‘영천아리랑’의 의미영천시청 청사에서는 퇴근 5분 전에 영천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제9회 ‘아리랑의 날’부터 지역을 상징하는 노래 영천아리랑이 방송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직사회가 지역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생활화 하여 결속력을 높이는데 앞장 선 것이다. 많은 지자체가 축제 및 경연대회와 관련 사업을 해 오면서도 전체 공직자가 지역 아리랑 계승과 전형화에 함께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런 사실에서 영천 시청의 이번 결행은 32개 아리랑 관련 단체는 물론 타 지역 공직사회에도 신선한 충격으로 전해질 것으로 본다. 그동안 전국 지자체에서 아리랑 전승 활성화를 위한, 또는 창조적 계승을 위한 사업은 다양하게 펼쳐져 왔다. 초기 사업 형태로는 음원(LP레코드, 1972/2000년 이후 CD) 제작과 사설집 발간(1972), 배포이다. 다음이 노래비(기념비) 건립이다. 형태는 비 전후면에 사설과 유래를 세긴 경우와 ‘지역명+아리랑’이란 단순한 글을 새긴 표석 형태이다. 정선아리랑의 경우 1977년 비봉산에 건립한 노래비를 비롯하여 4곳에 세워져 있고, 밀양 (3 지역), 문경(2 지역)과 정읍(1 지역)과 진도(1 지역) 등에 건립되어 있다. 다음은 축제와 경연대회를 정례화 하는 경우이다. 이 형태는 대다수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다. 상주시의 경우 축제는 7년 전부터 시행해오다 경연대회는 금년 11월 말 처음으로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개최 시작은 정선군이 1976년 군민체육대회 형태로 처음 시작하였고, 이어 밀양, 진도 순으로 정착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3년 세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개최를 기념하여 대구에서 대구아리랑제가 시작되었고, 이어 문경, 영천, 춘천, 경산, 부산, 제주 등지로 확대, 개편이 이뤄져 오는 실정이다. 예외적으로 ‘사할린아리랑제’가 코로나 정국 이전까지 4회 정례화 되어 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은 대개 외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일면에서는 일회적이고, 관성적이고, 치적사업으로 이뤄지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측면에서 다를 수 있지만 지자체장의 결정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치적 사업으로 의심을 받는 경우도 있어 진정성 있는 아리랑 전승 사업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있기도 하다. 이런 평가는 전 지자체 공직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사업이 아니라 특정 부서의 사업으로 이뤄진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사실에서 전 구성원의 진정성이 반영된, 또는 그런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아리랑을 송출하는 영천시청의 사례를 주목하게 된다. 지역 아리랑에 대한 특정 부서만의 관심이 아니라 전 공직자가 관심과 이해를 갖고, 또는 갖기 위해 시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를 권고하는 목소리가 이미 20년 전부터 있어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학계와 전승 단체가 지역 아리랑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공직자들의 전반적인 이해와 애정 없이는 지속적인 전승 활성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동안 학술 모임에서나 언론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해 온 터이다. 이의 결과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현재 두 지자체 청사 내부 화장실에 아리랑을 내보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는 시행 목적 자체가 외부인 또는 관광객에 대한 제한적인 서비스 차원이지 공직 구성원 전체가 아리랑 이해를 위한 활동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성과와 이의 평가가 문제이다.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면접 조사 등에 의해 평가되어 성과가 확인이 되면 이 사례는 전 지자체에 보급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영천시청의 이번 단행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코 한 지자체의 이벤트가 아닌 긍정적 문화운동의 한 모범 사례로 기록되기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최기문 영천시장은 8일 오후 2시 시민회관에서 개최된 제9회 영천아리랑대축제 축사에서 이 사실을 밝혀서 외지 공연자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특히 이를 의미화하기 위해 이번 영천아리랑대축제에 북한 출신 무용가 최신아를 특별 초청, 최초로 북한의 민성창법에 의한 영천아리랑을 시민들에게 전하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이 역시 매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만하다. 왜냐하면 영천아리랑의 귀향 이면의 서사(스토리텔링)를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기 때문인데, 우리 근대사를 축약적으로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향살이에서 영천아리랑의 기능이 어떠했는지를 전하는 계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07년 정미의병의 패퇴(敗退)로 많은 의병들이 ‘의로운 거병 정신을 지키기 위해(去之守舊)’ 연해주와 만주로 넘어갔고, 이들이 바로 해외 항일민족투쟁 중심세력인 독립군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이들이 군가로 때로는 사향가(思鄕歌)로 부른 노래인 ‘독립군아리랑’에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었다. 이 독립군아리랑의 곡조가 영천아리랑 곡조와 같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문경지역과 춘천지역 의병 관련 아리랑 사설의 발굴로 ‘의병아리랑’으로 명명하여 주목해 왔는데, 그 곡조를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단서를 영천아리랑의 귀향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천아리랑 귀향의 역정(歷程)은 절절하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의 노래 곡조로 기능을 하였고, 이를 중국 동포사회가 본래의 곡명 영천아리랑으로 불러(Naming) 주었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기 항미원조 조선전쟁에 참전한 중국 동포들이 이를 북한에 전해주었다. 이를 의미 있게 받아들인 북한은 1954년 "대구 인근의 사과가 많이 나는 영천의 민요”로 기록하며 널리 불렀을 뿐만 아니라 정책가요 ‘랭산모판 큰애기’라는 곡명의 노래도 재형상하여 불렀다. 그리고 다시 일본 조총련 사회와 동구권 국가 동포들에게 이를 확산시켰다. 새 세기 2000년을 맞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우리 방송에 영천아리랑이 여러 차례 송출되면서 비로소 고향 영천으로 귀향을 하게 되었다. 이런 영천아리랑의 역동적인 행로를 이번 시청 청사 방송과 북한 가수의 영천아리랑 공연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영천시의 이 같은 활동이 내년 제10회 영천아리랑대축제와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아리랑의 날 10주기 기념, 그리고 영천시가 개최하는 의병제에 더욱 크게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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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아카펠라 '토리스' 단체 연혁(창단:2008)국악 아카펠라 '토리스' 단체 연혁(창단:2008) ●2017년-2015년 8월22일 우리가락우리마당 야외상설공연-2015년 10월30일 자라섬 막걸리 페스티벌 공연-2015년 10월16일 경북도립국악단 대한민국 문화의달 특별공연-2015년 5월1일 국립국악원 연희마당 빛나는 불협화음-2015년 7월10일 서암문화재단 5주년기념 서암음악회-2015년 3월25일 경상북도립국악단 정기연주회 신춘음악회-2015년 11월1일 명창 박록주 탄생 110주년 기념공연-2015년 10월3일 민속연주단 해학회 정기연주회 임방울 다시읽기-2015년 12월7일 경상북도립국악단 제129회 정기연주회●2016년 - 6월11일 조계사 종무식 축하공연 협연- 6월25일 대백프라자 프라임홀 곽동현과 슈퍼밴드 광대소리 콘서트- 7월18일 kbs 누가누가잘하나 출연 및 심사위원- 7월2일 국악방송 ‘가야랑의 행복한 하루’ 라이브- 7월18일 부여연꽃축제 - 7월24일 우리가락우리마당 공연- 8월15일 대구아리랑제 축제 - 8월16일 북구문화예술회관 콘서트- 10월2일 영천과일축제 공연- 10월2일 팔공산 동화사 승시축제공연- 10월12일 대구컬러풀축제 공연●2015년 -12월31일 수성아트피아 제야음악회 -12월20일 도시가 즐겁다 도시樂 공연-10월5일 국악한마당 천회특집 (kbs국악관현악단 협연) -9월11일 충남국악관현악단 어울림 소리세상 협연 -10월12일 천안시충남국악관현악단과 함께하는 국악공연 협연 -11월15일 kbs 누가누가잘하나 출연 및 심사위원 -10월0 5일 젊은노래꾼 곽동현의 콘서트 -10월15일 젊은노래꾼 곽동현 두 번째 앨범 광대소리 발매- 07월19일 군위 삼국유사문예회관 콘서트-07월15일 음악극 "윤” 공연 경종(윤) 역할 공연-07월02일 포항시 베16회 포항세오녀 문화제축제 곽동현 콘서트- 04월01일 우리가락우리문화 젊은소리꾼 출연- 01월26일 대구mbc ‘문화요’ 젊은노래꾼 - 02월21일 대구kbs 아침마당 젊은가객 -02월22일 한국형 신개념 파티 ‘모던한’ 공연- 02월28일 대구kbs ‘문화의 시간’ 방송출연 ●2014 - 06월9일 전주 밤샘콘서트- 06월19일 산은 옛산이로되 황진이 벽계수역 공연- 07월14일 국악한마당 젊은소리꾼 고금성과 곽동현의 무대- 07월21일 가든파이브 문화숲 프로젝트 하늘락 콘서트 초청 공연- 08월9일 남산국악당 별빛달빛 콘서트- 08월15일 대구아리랑축제 출- 08월20일 제4회 세계 한국어 교육자 대회 만찬 초청 축하공연- 09월22일 영천 아리랑축제 출연- 09월25~30일 러시아 사할린 제4회 국제민속음악 콩쿠르 종합대상- 10월12일 대구 컬러풀 페스티벌축제 공연- 10월15일 전국체전 축제 공연- 10월20일 국악한마당 ‘새로운 소리로 열다’ 출연- 10월27일 천안충남관현악단 협연- 11월05~07 어릿광대 춘향이 소리극 공연 (이몽룡 역할)- 11월22일 젊은국악축제 공연 ●2013 - 03월20~22일 일본 오사카 월드뮤직 페스티발 참가- 07월~11월 소외계층문화사업 "신명나는 토리여행”- 11월 24~25일 대학로극장 "듣고지고 보고지고” 콘서트●2012 - KOREA 21 MUSIC; HERE AND NOW 미국 초청공연- MBC ‘우리가락 우리문화’ 출연- 광주MBC ‘신 얼씨구학당’ 출연- 북 서울 꿈의 숲 콘서트- 서울막걸리페스티벌’ 초청공연- 서울시청광장 초청공연- 서울문화재단 ‘나랑 YOU랑’ 순회공연- tbs교통방송 ‘강상 음악회’ 초청공연- 21C한국음악프로젝트 오프닝 초청공연- 여름방학청소년음악회 ‘푸르미르 ’ 초청공연- 아 필레타’ 내한공연 게스트 출연- 당진문화예술회관 콘서트- 서울 국제아카펠라페스티벌 초청공연●2008 - 소리꾼 김용우의 콘서트 <꿍꿍이> 출연●2009 - 국립국악원 초록음악회 초청공연- 창작국악그룹 'The 그림' 콘서트 출연- 국악방송과 함께하는 ‘가을음악회’ 초청공연- KBS 국악한마당 다수 출연- 주한옥마을 뜨락음악회 콘서트- 대한불교조계종 청계사 산사음악회 콘서트- 남산골에 도깨비가 떳다’ 1박2일 초청공연- 문광부주최 <전통예술송년의밤> 초청공연- 국악방송 송년음악회 ‘마음’ 초청공연- 국악방송 윤중강의 <꿈꾸는 아리랑> 출연 ◈토리스 공연프로그램◈1. 아리랑연곡 편곡 김재우여러 지방을 대표하는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을 연곡으로 만들었다. 비교적 쉬운 노래들로 관객도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신나는 곡이다. 2. 통영개타령+ 쾌지나칭칭 통영개타령은 통영지방 주위로 구전으로 전승된 발달된 남도민요이다 자진모리장단으로 밝고 명랑하며 어린이들의 동요로도 많이 불려지는 곡이기도하며, 이어서 흥겨운 쾌지나칭칭으로 마무리한다3. 뱃노래 작곡 김재우뱃노래는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오늘 부를 뱃노래는 경상도 지방의 민요이고, 고기를 잡기위해 노를 젓는 어부들의 역동성이 살아있는 곡이다. 국악의 다양한 시김새와 서양 화성을 아카펠라 형식으로 불러보았다. 토리스 단체연혁 ●2017년-2015년 8월22일 우리가락우리마당 야외상설공연-2015년 10월30일 자라섬 막걸리 페스티벌 -2015년 10월16일 경북도립국악단 대한민국 문화의달 특별공연-2015년 05월1일 국립국악원 연희마당 빛나는 불협화음-2015년 07월10일 서암문화재단 5주년기념 서암음악회-2015년 03월25일 경상북도립국악단 정기연주회 신춘음악회-2015년 11월1일 명창 박록주 탄생 110주년 기념공연-2015년 10월3일 민속연주단 해학회 정기연주회 임방울 다시읽기-2015년 12월7일 경상북도립국악단 제129회 정기연주회●2016년 - 06월11일 조계사 종무식 축하공연 협연- 06월25일 대백프라자 프라임홀 곽동현과 슈퍼밴드 광대소리 콘서트- 07월18일 kbs 누가누가잘하나 출연 및 심사위원- 07월2일 국악방송 ‘가야랑의 행복한 하루’ 라이브- 07월18일 부여연꽃축제 - 07월24일 우리가락우리마당 공연- 08월15일 대구아리랑제 축제 - 08월16일 북구문화예술회관 콘서트- 10월2일 영천과일축제 공연- 10월2일 팔공산 동화사 승시축제공연- 10월12일 대구컬러풀축제 공연●2015년 -12월31일 수성아트피아 제야음악회 -12월20일 도시가 즐겁다 도시樂 공연-10월5일 국악한마당 천회특집 (kbs국악관현악단 협연) -09월11일 충남국악관현악단 어울림 소리세상 협연 -10월12일 천안시충남국악관현악단과 함께하는 국악공연 협연 -11월15일 kbs 누가누가잘하나 출연 및 심사위원 -10월 05일 젊은노래꾼 곽동현의 콘서트 -10월15일 젊은노래꾼 곽동현 두 번째 앨범 광대소리 발매- 07월19일 군위 삼국유사문예회관 콘서트- 07월15일 음악극 "윤” 공연 경종(윤) 역할 공연- 07월02일 포항시 베16회 포항세오녀 문화제축제 곽동현 콘서트- 04월01일 우리가락우리문화 젊은소리꾼 출연- 01월26일 대구mbc ‘문화요’ 젊은노래꾼 - 02월21일 대구kbs 아침마당 젊은가객 - 02월22일 한국형 신개념 파티 ‘모던한’ 공연- 02월28일 대구kbs ‘문화의 시간’ 방송출연 ●2014 - 06월9일 전주 밤샘콘서트- 06월19일 산은 옛산이로되 황진이 벽계수역 공연- 07월14일 국악한마당 젊은소리꾼 고금성과 곽동현의 무대-07월21일 가든파이브 문화숲 프로젝트 하늘락 콘서트 초청 공연- 08월9일 남산국악당 별빛달빛 콘서트- 08월15일 대구아리랑축제 출연- 08월20일 제4회 세계 한국어 교육자 대회 만찬 초청 축하공연- 09월22일 영천 아리랑축제 출연- 09월25~30일 러시아 사할린 제4회 국제민속음악 콩쿠르 종합대상 수상- 10월12일 대구 컬러풀 페스티벌축제 공연- 10월15일 전국체전 축제 공연- 10월20일 국악한마당 ‘새로운 소리로 열다’ 출연- 10월27일 천안충남관현악단 협연- 11월5~7 어릿광대 춘향이 소리극 공연 (이몽룡 역할) - 11월22일 젊은국악축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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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br>다시 읽는 'Song of Ariran'(1)금년은 아리랑에 관한 책으로 매우 의미있는 ‘Song of Arirang’이 간행된지 80년을 맞는 해이다. 아리랑 역사의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아리랑’을 표제로 한 책은 10여종에 이른다. 1945년까지의 상황으로는 1930년대 초 창가집류가 5종으로 ‘映畵名曲아리랑唱歌’(1930), ‘아리랑民謠集’(1930), ‘現代映畵아리랑唱歌集’(1931), ‘아리랑民謠集’(1931), ‘현대유행신아리랑창가(’1932)가 있고, 1935년 이후 일본어 표기 의 ‘朝鮮民謠アリラン’(1935년 김지연)과 소설 ‘ありらん峠’(1938년 김문집)가 있다. 그리고 영어로 쓰여진 ‘Song of Arirang’이 있다. 이중에 마지막의 영어로 쓰여진 것은 1941년 의외의 미국에서, 의외의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스(Nym Wales. 본명:Helen Foster Snow, 1907~1997)가 조선인 김상의 생애를 전기체로 쓴 책이다. 창가책 5종은 (사)아리랑연합회 소장자료로 서지사항이 밝혀졌고, 일본어 표기 중 김지연의 ‘朝鮮民謠アリラン’에 대해서는 필자의 연구논문이 있고, 김문집의 단편집 ‘ありらん峠’ 역시 최근 연구논문(동의대 신용주)이 발표되어있다. 그러나 ‘Song of Arirang’에 대해서는 그 유명세에 비해 서평에 머무르는 듯하다. 필자는 학부 졸업논문으로 ‘Song of Arirang’ 소재 아리랑 연구‘를 제출하면서 이 책을 탐독했다. 2001년 스터디 모임 ‘아리랑아카데미’에서 백선기(소설가 김팔봉의 서랑)선생과 김연갑선생으로부터 님 웨일즈 방문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 주인공 김산(1905~1938)의 아들 고영광 선생을 초청, 부친의 건국훈장 애국장 서훈식 참석을 도운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그동안 책을 통해 풀지 못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예컨대 저자 님 웨일즈가 노벨상에 두 번(1981~2)이나 노미네이트(nominate) 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Song of Arirang'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인지의 여부였다. 결과는 중국 속의 조선인 항일투쟁가들을 기록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고발했다는 평가로 문학상이 아닌 평화상의 후보지명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님 웨일즈는 김산에 대해 단순한 취재원이었을 뿐인가라는 의문이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갖고 있는 의문이었을 것인데, 직접 만난 두 분과 고영광선생의 증언으로는 3개월 간 22회의 ‘밀회 같은 인터뷰’이었을 뿐이고, 고매한 열정의 혁명가를 격려하는 관계였을 뿐, 연인 관계까지 갔다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1938년 10월 19일, 중국 공산당 사회부장 캉성(康生)의 명령으로 처형되었을 때, 그 죄목은 무엇이었는가라는 문제다. 이는 아들 고영광에 의한 복권(1983년) 신청과 심사 과정에서 밝혀졌는데, ‘반혁명죄와 간첩죄’였다. 즉, 트로츠키(Leon Davidovich Trotsky)파라는 이유와 일본 경찰에서 큰 고초 없이 풀려난 것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간첩죄로 몰렸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복권 심사과정에서 확인되었다. 공산당 문서에서는 "변명하지 않는 미련한 자”란 기록과 일본 기록에는 "결코 변절하지 않을 놈”이란 기록이 나와 결국 무협의로 복권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가 있다. 일본의 이회성 작가나 중국의 고영광 등에 의해 자료가 발굴되면서 해결되었으나, 정작 ‘아리랑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였다. ‘아리랑 문제’란 김산이란 인물 연구와 Song of Arirang이란 텍스트 연구의 근본 문제인데, 결정적으로 과연 김산은 언제, 어떤 계기에 아리랑을 접하고, 가슴으로 인식하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이다. 혁명에 대한 신념만큼이나 돋보이는 아리랑에 대한 명징한 표현들은 단순한 이해 정도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지식인들, 이광수도, 최남선도, 김소운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모든 서평이나 김산을 언급하는 이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에는 "님 웨일스라는 탁월한 기록자가 연안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장지락(김산의 본명)은 그의 다른 무수한 동지들처럼 홍진에 묻혀 사라졌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무수한 동지들’ 중에 이토록 아리랑을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인물은 오직 김산 한 사람뿐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유난히도 높고 깊은 고개를 넘고 넘은 그의 생애에서 알 수 있다. 1917년 개신교 계열 중학교에 진학, 3.1 운동에 참가하다 체포되어 3일간 구류 처분을 계기로 도일하였다. 1922년 상해로 가 김성숙을 만나 마르크스주의를 배우고,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베이징 지부에 입당하고, 공산주의 잡지 ‘혁명’을 간행하고, 1926년 ‘혁명동맹’ 편집을 맡아 선언문을 작성했다. 1927년에는 황푸군관학교 교관을 맡으며 1930년까지 홍콩, 상하이, 베이징 등지에서 활동하다 베이징 경찰에 체포, 일본 영사관으로 넘겨진 뒤 조선에서 심문을 받다 다음해 4월 풀려나 다시 베이징으로 가서 사범학교 교사로 생활했다. 1933년 4월 중국 국민당 경찰에 붙잡혀 다음해 탈출하였다. 이후 잠시 철도 노동자로 일했고, 1936년 7월에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창설하고, 8월에는 조선 혁명가 대표로 선발되었다. 1937년에는 항일 군정 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수학, 일본어, 한국어를 강의하였다. 님웨일즈를 만날 때까지의 이 굴곡진 역정을 김산 말고 산 이가 또 있는가. 분명 이 파란의 과정에서 김산은 아리랑을 접하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계기는 언제, 어디서였을까? 참고: <김산. 그리고 아리랑> www.arirang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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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대구아리랑제에서 아리랑 한바탕 성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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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란 명창과 대구아리랑(1936년)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서 태어난 명창 최계란을 기념하는 대구아리랑제가 2014년부터 시작되어 2019년 6회를 맞고 있다. 1회는 11월 15일에 했으나 2회부터는 10월 1일에 개최하고 있으며 선생의 고향인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불로천에서 열린다. 영남 민요의 정수를 보여주는 1936년 밀리온레코드사가 출시한 대구아리랑 SP판. 노래를 부른 조선권번 출신 예기 최계란은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서 태어났고 그의 오빠 최영환도 동생과 비슷한 율조의 ‘아라리요’를 83년 녹음했다. 『三千里』(1936) 8권 8호에 발표된 "조선·한성·종로 삼권번(三券番) 기생 예도(藝道) 개평(慨評)"에 소개됐다. 최계란 선생은 1920년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181번지에서 태어났다. 1930년 열 살 나이로 대구 달성권번에 들어간 최계란은 강태홍으로부터 가야금병창을 배웠다. 이후 최계란은 1934년부터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고 1936년에 「대구 아리랑」을 발표한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2012년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됨에 따라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민들은 물론 대구 시민들에게도 자부심을 주었다. 이에 2014년부터 (사)대구동구자원봉사단체협의회가 주관하여 최계란 선생의 대구 아리랑제를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 「아롱아롱 아롱아롱 아라리요」(『경북신문』, 2014. 11. 13) 「잊혀져가는 ‘대구 아리랑’ 불씨 살린다」(『대구신문』, 2015. 10. 1) 「최계란의 고향서 다시 울려 퍼진 대구 아리랑」(『영남일보』, 2016. 10. 5) 「전통춤과 뱃노래 그리고 민요공연, 불로천에 울려퍼진 대구 아리랑」(『영남일보』, 2017. 10. 18)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8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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