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이만유 (향토사 연구원)
문경의 정체성을 한 말로 표현한다면 "길”이다. 다시 말해 문경은 "길의 고장”이다. 길은 사람과 물류 이동은 물론 문화의 통로이자 침략의 길목이기도 하다. 길과 걷는 것이 21세기의 사회적 트렌드가 되었고 한 때 지역마다 길 만들기 열풍이 불었고 그 대표적인 길이 지리산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도산구곡 예뎐길, 울진 십이령길 등이 있다. 그러나 문경에는 이미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위”로 뽑혔고, 근대 아리랑의 시원지 "아리랑고개”로 알려지기도 한 6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옛길 "문경새재”가 있다.
문경은 땅 전체가 우리나라 지리문화의 보고이자 길 박물관이다. 역사적으로 교통의 중심지이며 군사적 요충지로 특히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소통로로서 앞에서 말한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던 "문경새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유명하지만 우리나라 최고(最古, 서기 156년 개척)의 고갯길인 "하늘재(계립령)”와 옛길의 백미이자 한국의 차마고도로 일컬을 수 있는 "토끼비리(관갑천, 토천)”까지 있다.
길의 종류는 다양하다. 마을의 좁은 골목길인 "고샅길”을 비롯해 "오솔길” "갈림길” 강가나 바닷가 낭떠러지 위로 통과하는 비탈길인 "벼룻길” "꼬부랑길” "하룻길과 천릿길” "꽃길과 덤불길” "돌길과 황톳길” 등이 있고 길이란 사람이나 동물,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는 것만이 길이 아니라 "인생은 나그넷길”도 있고 "학문의 길” "출세의 길” 죽어서 가는 "황천길” "살길과 죽을 길” "인생의 뒤안길”도 있다.
이제, 길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유사 이래 문경 땅을 밟은 왕들의 자취를 더듬어 "문경의 King Road(왕의 길)”를 찾아 역사를 반추할 기회를 가져보도록 하겠다. 지금부터 1,400년이 훨씬 넘는 시기에 신라왕이 수레를 타고 서라벌에서 멀리 떨어진 문경까지 행차했던 길을 역사와 설화를 들으면서 걸어본다면 어떤 감회에 젖어 들까? 왕들이 찾아왔거나 지나간 각각의 길들에 대한 이름을 붙이면서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다.
1. 진평왕의 사불암 경배로(敬拜路)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사방불(四面石佛)은 모두 3기로서 경주와 충남 예산, 문경의 사불산(四佛山)에 각각 1기씩 남아 있다. 원래 동서남북 사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것은 사방정토(四方淨土)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방불 사면에 어떤 부처를 모시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신라의 사방불은 경주와 문경을 예로 살펴보았을 때 대체로 서방에 아미타불과 동방에 약사여래, 남쪽에 석가모니불, 북쪽에 미륵불을 모신다.
문경 대승사 사면석불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일연의 삼국유사에 "진평왕 9년(587)에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한 길이나 되는 큰 돌이 붉은 보자기에 싸여 하늘에서 떨어졌다. 진평왕이 이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사불암을 보고 절을 세우고 이름을 대승사라고 했다. 여기에 이름은 전하지 않으나 법화경을 외는 중을 청해 이 절을 맡겼으며 나중 중이 죽어 장사지냈더니 무덤 위에서 쌍연이 피었다.”라고 되어 있어 "천강사불 지용쌍연(天降四佛 地湧雙蓮)”이라는 연기 설화가 남아 있다.
불상이 새겨진 각 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으며 사면에는 모두 불상 1구씩이 새겨져 있다. 불상은 높이 약 295㎝, 너비 약 150㎝로서 커다란 돌기둥에 새겨진 사방불로서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하여 세부 문양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모두 여래상인 것으로 보인다. 동쪽과 서쪽은 좌상(坐像)이고 남쪽과 북쪽은 입상(立像)으로 추정되며 진평왕이 사불산 가까이 와서 산북면 소야리에 있는 작은 고개를 넘으니 그곳에서 사불암을 처음 볼 수 있어 기쁨에 겨워 환희에 찬 목소리로 탄성을 지르면서 경배하였다는 전설이 있고 그 고개를 환희재라고 한다.
* 경배로 루터(관광코스) : 내화리 화장사지(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 ⇨ 화장산성 ⇨ 미면사 ⇨ 환희재(산북 소야) ⇨ 사불산 대승사 ⇨ 사불암 (다음 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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