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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페치카 최재형 지사 순국 102주기

편집부
기사입력 2022.04.07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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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1860~1920) 선생

     

    오늘은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  최 페치카  최재형 지사 순국 102주기입니다 


    저는 오늘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또 순국선열들의 피로 일군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최재형 선생의 영전에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가 없습니다.


     최재형 선생은 조국을 잊은 적이 없건만 조국은 최재형 선생을 두 번이나 버렸습니다. 한번은 이념의 장벽에 가려 긴 망각으로 버렸고, 한번은 국립묘지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연해주 항일투쟁의 페치카 최, 최재형 선생은 이제 우리가 예우에 맞게 모셔야 합니다. 


     최재형 선생은 102년 전인 1920년 바로 오늘 4월 7일에 재판도 없이 일본의 총탄에 돌아가셨습니다. 대한민국은 사후 42년인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970년 11월 17일에 바로 추모식을 하고 있는 이곳 서울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08위에 묘를 만들어 모셨습니다. 이역만리에서 목숨을 바쳐 항일독립운동을 한 분들은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허묘로 모신 분들이 있고 최재형 선생의 묘도 허묘였습니다. 당시 후손으로 등록된 사람은 최규흠이란 사람이었습니다.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은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당시 철의 장막이라 일컫던 소련에 살다가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야 대한민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1995년에 독립운동가 후손초청사업으로 최재형의 막내딸 최 엘리자베타와 손자 최 발렌틴이 한국에 왔고 최재형의 후손으로 등록되었던 최규흠이란 사람과 DNA검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최규흠이 가짜후손으로 밝혀졌습니다. 가짜후손이 무려 30여년 동안을 유족연금을 받았던 것입니다. 

     2004년에야 비로소 최재형의 막내딸 최 엘리자베타가 유족연금 수급자로 등록되었고 2005년 사망하여 손자 최 발렌틴이 이어받았습니다. 


     2006년, 최 발렌틴은 국립서울현충원의 안내를 받아 애국지사묘역 108위 최재형의 묘에 참배를 했고 그 사진을 남겼습니다.

     이후 2009년에 최 발렌틴이 현충원에 참배하려 했으나 묘는 멸실되었고 묘가 있던 빈 터에 꽃다발을 놓고 망연자실한 채 서 있는 사진을 남겼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08위는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묘였습니다. 후손이 가짜로 판명되어도 그 묘의 주인은 최재형 선생이십니다. 후손만 바꾸면 되는데 후손에게 연락도 없이 묘를 멸실시켰다는 것은 최재형 선생을 독립운동사에서 삭제시킨 것과 같습니다. 행정착오로 가짜후손을 등록했다면 진짜 후손이 나타났을 때 시행착오를 밝히고 제대로 모셨어야 합니다. 

     후손들은 그래도 할아버지의 조국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구나 하면서 참배를 하고 그 다음에 왔을 때 또 참배를 하기 위해 찾아갔는데 후손에게 연락도 없이 묘는 없어지고 빈터만 보는 손자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당시 최발렌틴은 언어도 통하지 않아 어디에 하소연도 못한 채 그냥 돌아갔습니다. 


    손자는 2010년 자신이 러시아어로 출간한 『최재형』 책에 사진과 함께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최재형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2015년 부부위패비 5번에 겨우 부부의 이름만 올렸습니다.  

     최재형기념사업회와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은 어마어마한 재산과 생명까지 바친 연해주 항일독랍운동의 대부인 최재형 선생을 200여 명이 넘는 부부위패비 한 귀퉁이에 이름만 올린 것이 항상 죄스럽고 안타까웠습니다. 

     2020년,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후손들은 최재형 순국 100주년을 맞아 보훈처와 청와대를 찾아가 후손도 모르게 멸실시킨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시켜 줄 것을 요청했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만 내세워 반드시 유골이나 시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정부가 잘못한 일이 밝혀지면 새정부가 바로잡아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이 순국선열의 예우를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법이 바뀌었다고 잘못된 행정을 그래도 답습한다면 그 또한 과거의 행정착오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것입니다. 

     

     보훈처에 알아본 결과 30여년 간이나 가짜후손 행세를 한 최규흠은 이름만 있을 뿐 모든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현재 최규흠은 작고한 상태입니다. 이는 누가 봐도 묘를 멸실시키면서 가짜후손의 기록도 삭제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는 누가봐도 행정실수를 감추기 위해서였죠. 


     현재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페트로브나는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의 희생자로 머나먼 키르기스스탄 비쉬켁 공동묘지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후손들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요청합니다.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최재형 부인의 유골을 봉환해올테니 1970년 11월 17일 조성되어 2006년까지 존재했던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하여 부부합장묘를 쓸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최재형기념사업회와 최재형 후손들은 키르기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과 협력하여 올해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의 유골을 국내로 봉환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올해는 대한민국과 키르기스스탄 수교 30주년입니다. 현재 후손들한테도 동의서를 다 받아놓았습니다. 부인의 유골과 우수리스크 최재형 선생의 집 마당에서 흙 한 줌을 가져오거나, 최재형 선생의 유품을 애국지사 묘역 108위에 부부합장묘로 복원시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올해 8월 15일은 광복 77주년이며 최재형 선생 탄신 162주년입니다. 이렇듯 뜻깊은 해에 최재형 부부 합장묘를 애국지사 묘역 108위에 복원해주신다면 새정부는 상징적으로 순국선열을 제대로 모셔서 과거정부와 차별화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홍범도 장군의 훈격을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으로 승격시켜 유해를 고국으로 안장했습니다. 훈격을 최고등급으로 승격한 이유가 홍범도 장군이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최재형 선생은 초기 독립운동의 태동지였던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였고 한인들의 페치카였습니다. 엄청난 재산과 목숨을 바쳤고 당시 연해주 한인들에게 난로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1962년 서훈심사는 최재형 선생의 신분이 낮고 후손도 없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어 있다는 것을 관심을 가진 분들은 다 공감합니다. 더더구나 연해주에서 최재형 선생과 동시기 활동한 분들의 서훈은 거의 2등급인 대통령 장이고 1990년 이후 서훈을 받은 분들도 모두 대통령장입니다. 최재형 선생의 서훈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데 재심의 조항이 없어서 조정을 못한다고 합니다. 미비한 조항은 보완하면 되고, 없는 조항은 필요시 새로 만들어 재심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법이 없어 못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나 같습니다.  


     최재형 선생은 함경북도 경원이 고향이라 지원해 줄 지자체도 없습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 구성원들은 최재형 선생과 혈연도 지연도 없는 순수한 단체로 그 어떤 이권도 사리사욕도 없습니다. 오로지 훌륭한 삶을 살다 가신 최재형 선생을 제대로 알리고 선양하는 단체입니다.  

     오늘 최재형 순국 102주기를 맞이하여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도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오늘 나눠드린 묘지복원 책자와 그 안에 묘지복원 동의서가 들어있습니다. 펜도 넣었으니 돌아가실 때 묘지복원사업에 찬성하는 서명을 꼭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상으로 최재형 선생 102주기를 추모하며 기념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4월 7일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문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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