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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문화예술 취업 박람회 개최, 문화예술 직업을 잡자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 이하 문체부)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도일, 이하 예경)와 함께 3월 8일(월)부터 11일(수)까지 "2021 문화예술 취업 박람회 - ‘문화예술 잡(JOB)’으로 가자!”를 개최한다. 이번 박람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예경 유튜브와 공식 누리집(www.artjobgo2021.com)을통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예술 분야의 다양한 기업 정보 제공 및 온라인 취업 상담 지원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문화예술 취업 박람회’에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53개 기업이 참여한다. 공식 누리집에서는 행사 참가자들에게 참여 기업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채용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물론 댓글로 양방향 상담을 지원한다. 예경 유튜브에서는 ‘실시간 취업정보(Live 취업정보)’를 운영한다. 취업 정보를▲ 공공기관,▲ 창업 초기 기업(스타트업), ▲ 공연장, ▲ 축제 운영,▲ 뮤지컬·연극 분야, ▲ 전시기획, ▲ 기초·광역문화재단 등 총 7개 부문으로나누어 관련 기업 대표자 또는 실무자들이 참여해 기업과 취직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실시간 질의응답을 통해 구직자들의 궁금증도 해소한다. 예술 분야 현업 종사자의 취업 비법 공유 올해 박람회에서는 53개 참여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취업 정보뿐만아니라문화예술 분야의 다양한 일자리와 직무도 소개하고 구직자들의 취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공연장 운영 전문가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뮤지컬 기획·제작 전문가김지원 이엠케이(EMK)인터내셔널 대표, 미술작품 경매 전문가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등은 ‘현장 전문가 특강’에 참여해 문화예술 기획·유통 각 직무의 정보와 필요 역량을 알려준다. 최근 취업에 성공한 선배의 취업 비법과 직무·진로 정보를 공유받는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잡(JOB)이야기(토크 콘서트)’도 이어진다. 지난해 예경의 ‘예술매개자 성장지원 사업*’을 통해 취업에 성공한 교육생과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한 현업 종사자들이 생생한 취업 후기와 성공담을 이야기한다. * 예술매개자 성장지원 사업: 예술 전공생 등 예술 분야 예비종사자를 대상으로 현장 실무교육과 현장 실습을 지원해 차세대 종사자를 육성하는 사업 온라인 면접을 통해 7개 기업에서 9명 실제 채용 예정 특히 ㈜데일리뮤지엄, ㈜연극열전, ㈜열매컴퍼니, ㈜오르아트, ㈜오픈월, ㈜워킹하우스뉴욕, ㈜코리아나매니지먼트 등 7개사는 3월 11일(목) 온라인 면접을 통해 직원 총 9명을 채용한다. 구직 희망자들은 2월 23일(화)부터 3월 2일(화) 오후 6시까지 공식 누리집에 사전 신청해야 한다. 서류심사 합격자들에게는 면접 전에 전문가들이 자기소개서 첨삭과 면접 지도를 지원한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올해 박람회가 기업과 구직자를 연결하고 직무 이해와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인력 채용의 장이되길 기대한다.”라며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능력 있는 구직자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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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23국악신문 특집부 최초의 국악 평론가 정범태 정범태 선생을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평론가라고 하면 의아해 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70년대 활동한 원로 국악인들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는 이미 70년대 우리가 꺼내지 못할 말을 대놓고 했던 인물이다. 바로 "권번은 음악천재들이 다니는 줄리아드 음대이고, 당골은 대대로 예능인을 배출하는 예능 패밀리다”라는 말을 당연시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이 말에 동의하지만 당시로서는 이를 자신있게 전거를 들어 입증 해낼 사람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선생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귀명창이며 국악역사를 꿰는 이론가라는 사실을 적어도 명무 한영숙선생이나 가야금 명인 성금연선생이나 또한 명창 박귀희 선생은 인정했던 것이다. 이 분들은 정선생이 국악 공연장에 나오면 "운동 나왔어요?‘라고 인사를 하는 처지였다. 이 말은 춘향가 어사출도 대목에서 낌새를 채고 먼저 도망가는 눈치 빠른 인물인데, 명인들 사이에서는 국악전반을 훤히 알고 있는 이를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정선생의 평론가적 능력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정선생의 야사적(野史的) 국악계 입문 동기는 이렇다. 1951년부터 지리산 파르티잔 토벌작전에 기록사진을 찍는 문관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종군기자처럼 전투현장을 따라다니며 전과(戰果)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임무였다. 이 때 경찰 지리산 전투사령부가 남원경찰서 자리에 있었고, 육군 백선엽사령부는 남원농업학교 자리에 있었다. 이 두 곳의 파르티쟌 토벌작전 현장에 때마다 오가야 했다. 그래서 일이 없는 날이면 군경 간부들이나 지역 유지들과 어울려 요정출입을 자주 하게 되었다. 당시 남원 지역에는 남선관, 부산관, 김천관, 춘향각, 방림원 등이 이름난 요정인데 여기에는 전국의 내노라는 명인 명창들이 어려운 전쟁통 말기를 의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소리의 고장답게 풍악이 넘쳐나고 있었다. 정선생은 총각인데다 전쟁통이지만 영관급 군인과 총경급 경찰이나 알만한 지역 유지들과 함께 출입하여 대우를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 중에 정선생이 자주 출입하는 곳이 요리와 풍류로 이름이 난 남선관(南鮮館)이었다. 남원읍에 있으며 입구에는 큰 소나무가 있고, 전형적인 한옥형태인 ‘ㅁ’자 기와집이었다. 그런데 정선생이 말로는 풍류가 마음에 들어 간다고는 하지만, 기실은 이곳 기생인 성향순이란 여인 때문이었다. 전하기로는 미색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단가를 비롯한 소리는 정선생을 유혹할만 했다고 한다. 이 여인이 정선생의 첫사랑으로 다가왔다. 정선생으로서나 성향순으로서나 며칠에 한번씩 기관총 소리와 대포의 포연에 놀라는 상황에서 언제 어떤 일로 생을 마감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상황에서 서로에게 필요했고, 그럴만한 청춘의 시절이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전쟁통에서도 사랑은 꽃 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서히 몸과 마음을 가까이 해가고 있던 어느날, 연인이 정선생에게 매달려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오빠가 ‘빨갱이’에게 부역했다는 죄로 구속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빠를 구해달라는 하소연을 해 온것이다. 당시 남원지역에서 이런 혐의로 구속되는 사례는 흔한 일이었다. "밤엔 공산당, 낮엔 자유당”이란 말 대로 양쪽에서 공격하는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사랑을 피워가는 첫사랑의 가족인지라 이런 처지는 피부에 닿은 일이 되었다. 정선생은 여러 방도를 찾았다. 군경 간부를 통해 사정을 했다. 일이 발생한지 10여일이 지나서야 오빠에 대한 정보가 잡혔다. 다행히 족청계열에서 파악하기로는 누명을 쓴 것이란 것이다. 결국 다리를 놓아 조경위라는 상훈부 경찰의 도움으로 자신이 보증을 서는 것으로 석방을 시켰다. 이 일로 정선생은 여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깊은 환대를 받았다. 순창군 순창읍 인계면 섬진강 상류에 자리잡은 70여호 되는 마을에서 살만큼 사는 집으로 보였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니 가야금이 세워져 있고 징 장고 북이 놓여있었다. 이름난 당골집안이었던 것이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근동에서는 외삼촌 등과 함께 삼재비 음악으로 소문이 난 집안이었다. 여인은 이를 굳이 내색하지 않았으나 정선생은 속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미 이 일대 당골네가 음악적으로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계보나 조직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 날 출소한 오빠도 만나고 음식도 후하게 대접을 받았다. 이 일이 있고나서 둘 사이는 더 가까워졌다. 곧바로 소위 ‘기생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관례대로라면 금은으로 된 장신구는 물론 집안 가구며 살림살이를 해 주어야 하는데, 전쟁통에 객지살이 문관이 그렇게 할 처지가 못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정선생은 명분상으로는 국악인을 애인으로 둔 당골집안 동간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민족음악이 태동하는 국악 속에 살게 된 것이다. 이 덕에 정선생은 누구 못지 않는 당골네들의 변(은어)에 능통했고, 춤 음악을 알게 되고, 동작과 행위에 리듬과 절도와 멋이 스며야 제대로 된 풍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국악인들의 모습을 사진기로 찍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쉴 틈만 나면 전북 일대의 굿판이며 소리판이며 춤판을 물어물어 찾아 다녔다. 그래서 누구 보다 먼저 박초월 명창 모친이 유명한 ‘봉안지무’임을 알게 되었고, 지무의 무가가 판소리요, 무악이 민속악의 본향임은 물론, 이를 잘하는 세습무는 동간이라야만 뛰어난 패밀리가 된다는 사실도 깨우쳤다. 그러다보니 "팔도 동간(同間) 따지고 보면 안 걸리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계보는 세습당골로 연결되는 구조라는 것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동간이란 말은 같은 세습무 사이라는 말이고, 이에 대비되는 말이 비가비(非甲)로 갑(세습무)이 아니면서 갑인 체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동간의 세계를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를 정선생은 아주 쉽고, 구체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정선생의 구술에 기반하여 문화인류학자 박정진 교수가 엮은 전기 「발가벗고 춤추는 기자」(화당, 1998)에 한 대목이 그것인데,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동간은 혼인을 할 때 여자 집에 청혼이 들어오면 남편 될 사람이 무얼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남편이 소리광대면 청혼 말이 오가고 거의 혼사를 정할 무렵에는 바느질과 음식을 잘 가르친다. 한편 남편이 될 사람이 무업에 종사하면 필연코 아내가 될 사람은 굿음악(굿 바라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굿(어정) 학습을 가르친다. 특히 남편이 될 남자가 큰아들인 경우는 대다수가 시어머니가 하는 무업을 물려받기 때문에, 부인이 될 여자의 친정에서는 일년 후 혼사를 하기로 결정하면 친정 어머니나 혹은 일가 친척의 숙모나 친척 중에서 굿을 잘하는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어정학습을 가르친다." "새며느리를 들인 신랑집은 식구들이 다 모여서 새아기의 어정학습을 방안놀음에 붙여 들이면서 오디션을 본다. 여기서 시아주버니는 피리를 불고, 시동생이 젓대를 불고, 시당숙이나 친척 중에 장고를 치며 시어머니가 징을 친다. 가족놀음을 통해 새아기의 어정학습을 평가한다. 열두거리 굿 중에 가장 친정에서 자신있게 하던 대목을 한 두 거리를 해보라고 시켜 본다. 첫째 청(목소리의 키)을 듣는다. 상청이냐, 중청이냐, 하청이냐를 판별한 후 대개 중청으로 굿을 시작한다. 둘째 발림을 본다. 굿을 하면서 지전든 신칼을 흔들면서 가벼운 춤을 추는 것을 발림(제스처)이라고 한다. 가족들이 모여 새 식구의 굿을 듣고 덕담을 나누며 칭찬을 한 후-청 좋고 발림 좋고 태도 좋고 나무랄데가 없네. 다음 어정 때는 바로 어정판에 서게-라고 합격을 시킨다.” 정선생은 이미 70년대 우리나라 국악계의 계보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한 인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선생을 우리나라 제1호 국악평론가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정선생이 국악신문에 연재하며 기록한 명인 명창들의 혈연적이고 정서적 접근한 계보와 에피소드는 소중한 '국악의 역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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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미니 다큐멘터리 시리즈 ‘한국의 인류유산’ 방영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정성숙)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활용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인류무형유산 미니 다큐멘터리 시리즈 ‘한국의 인류유산’ 20부작을 3월 1일(월)부터 5월 4일(화)까지 매주 월·화 오전 11시 50분 KBS 1TV를 통해 방영한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활용’ 사업을 통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종목 공연과 이를 소재로 한 창작작품 공연을 지원하고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소재로 원형 공연과 창작공연이 펼쳐지는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등 무형문화유산 활용 전통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며 인류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다큐멘터리 ‘한국의 인류유산’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 아리랑, 처용무 등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 인류무형문화유산 속에 담긴 역사적, 자전적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를 고품질(UHD) 영상으로 제작해 세계가 인정한 대한민국 무형문화유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특히 제작에 참여한 한국방송공사(KBS) 공사 창립 기획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나게 돼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온 무형문화유산이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진 것은 그 속에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교감, 전수를 위한 굵은 땀방울, 맥을 잇기 위한 간절함 등 각각의 유산에 담긴 ‘결정적 한 장면’이 우리 유산을 그저 옛것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유산으로 만드는 숨을 불어 넣는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정성숙 이사장은 "이번에 제작된 인류무형유산 미니 다큐멘터리는 이야기를 통해 전달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대중에게 인류무형유산의 가치를 더욱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3월 1일 첫 방송되는 ‘한국의 인류유산’은 총 20부작으로 5월 4일까지 매주 월, 화 11시 50분 KBS 1TV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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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주년 3.1절 맞아 정기휴무인 궁&능도 개방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나명하)는 오는 제102주년 3.1절(월요일)을 맞이하여 월요일이 정기 휴무일인 덕수궁과 창덕궁, 창경궁, 조선왕릉들을 코로나 19 방역지침을 준수하여 특별 개방한다. 참고로, 궁궐과 왕릉들은 문화재보호와 관람환경 정비를 위해 일주일에 하루씩 정기 휴무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번 3.1절 특별개방 조치는 코로나 19로 지친 국민에게 나무숲 등 쾌적한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진 궁궐과 조선왕릉을 위로와 치유의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한 취지다. 3.1절에도 관람료는 유료이지만, 장애인·국가유공자·다자녀가족의 부모·임산부와 보호자 1인 등과 그리고 만24세 이하와 만 65세 이상은 무료이다. 참고로, 코로나19 방역을 위하여 실내 관람시설 및 안내해설은 운영하지 않으며, 고궁의 경우 경복궁은 전년대비 평균 관람객 수의 20% 수준, 창덕궁·덕수궁·창경궁·종묘는 30% 수준으로 일일 관람인원을 제한하여 운영하고 있다. 창덕궁 후원 관람은 사전 예약이 필수이며, 기타 궁·능의 자세한 관람요금과 관람시간은 궁능유적본부와 각 궁·능 누리집을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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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 국창 임방울의 쑥-대머리 [다큐프라임][광주MBC ] 국창 임방울의 쑥-대머리 [다큐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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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첫 '온쉼표', 한·러 수교 30주년 '언택트 음악회'세종문화회관(사장 김성규)의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천원의 행복 '온쉼표'가 3월 2일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언택트(Untact) 교류 음악회'로 2021년의 첫 문을 연다. 2007년부터 시작한 '온쉼표'는 클래식, 뮤지컬,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1000원에 관람할 수 있도록 해 시민들에게 문화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고 공연장 문턱을 낮춘 프로그램이다. 14년간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공연은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양국의 문화예술 교류 활성화를 위해 기획됐다. 코로나19로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러시아 연주자의 현지 공연 녹화 중계와 한국 연주자의 실연 무대를 접목한 ‘시대 맞춤형 공연’으로 진행된다. 이번 '온쉼표'는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양국의 문화예술 교류 활성화를 위해 기획됐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러시아 연주자의 현지 공연 녹화 중계와 한국 연주자의 실연 무대를 접목한 '시대 맞춤형 공연'으로 진행한다. 서울 공연에는 소프라노 서선영, 테너 김동원, 바리톤 김인휘 등과 러시아 바리톤 그리고레프 안드레이가 출연하며, 연주는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장윤성)이 맡는다. 러시아 민속곡 연주에는 '두브라바 콰르텟(Dubrava Quartet)'이 함께한다. 영상으로 녹화 중계될 러시아 공연에는 볼쇼이 오페라 극장의 주역 소프라노 아나스타샤 소로키나, 테너 막심 파스터, 베이스 니콜라이 카잔스키가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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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천원의 행복 ‘온쉼표’…대중, 플라잉, 연극, 뮤지컬 등 총 15개 공연 go on클래식, 연극은 물론 플라잉, 대중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매달 1~2회에 걸쳐 저렴한 가격에 만나볼 수 있는 ‘온쉼표’가 관객들과 만난다. 지난 14년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2021 천원의 행복 ‘온쉼표’(이하 ‘온쉼표’)는 세종문화회관(사장 김성규)의 <한·러수교 30주년 언택트 기념음악회> 무대를 시작으로 프로그램의 문을 연다.<한·러수교 30주년 언택트 기념음악회>은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양국의 문화예술 교류 활성화를 위해 기획됐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러시아 연주자의 현지 공연 녹화 중계와 한국 연주자의 실연 무대를 접목한 '시대 맞춤형 공연'으로 진행된다. 2021년 ‘온쉼표’는 영국, 홍콩, 이탈리아 등 총 6개국 기관·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해외 교류 활성화에 기여하며 다양한 콘텐츠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5월 온쉼표 <2021 K-Music Showcase with Sejong Center>는 신진 아티스트 발굴 및 해외진출 지원을 위해 영국, 스페인, 벨기에 등 총 3개국의 재외한국문화원과 함께 기획했다. 총 6개 인디밴드의 무대를 쇼케이스 형식으로 사전 제작, 5월 중 온라인을 통해 국내외 송출. 또한, 영국 남서부 지역인 콘월에서 6월 개최 예정인 G7 정상회담(6.11~13) 시기에 맞춰 아리랑TV 글로벌 채널을 통해 영국에 방영될 예정이다.이외에도 8월 마지막 주부터 9월 초까지 2주간 세종문화회관 전체 공간에서 펼쳐지는 홍콩위크@서울과 협력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Special Stage>는 사회공헌자와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온쉼표’ 공연의 객석을 할당하여 초대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확대 시행하여 해외 우수 공연을 관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12월에는 이탈리아 '예술과 기술혁신의 만남‘ 우승 작품 <사계>를 초청하여 실감형 클래식 라이브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국악서커스 <하루>가 오는 8월 온쉼표로 또 다시 관객과 만난다. 작품 개발을 통해 우수 콘텐츠를 발굴하고자 2020년 ‘온쉼표’ 자체제작 공연으로 선보였던 <하루>는 지속적인 개발과 유통을 통해 무대화할 예정이다.올해 ‘온쉼표’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제작공연 또한 2작품이 준비되어 있다. <아파트 2021>(7.7~8 S씨어터)는 한국인에게 중요한 척도가 되어버린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삶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2인 가극으로,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인 음악감독 류재준 작곡, 남인우 연출, 문하연 작가가 삶의 터전에서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어버린 아파트의 사회적 모순을 유쾌하게 풍자한다. 서울시극단과 협력 제작하는 <고전이 전래전래(가칭)> (11.23~24 M씨어터)는 오세혁 작가, 문삼화 연출이 참여하며 서울시극단 연수단원들의 출연을 통해 신진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21 ‘온쉼표’는 장르, 시간, 장소 다양화를 통해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 받고 있다.4월 온쉼표 <필 더 클래식 Feel the Classic>은 평일 낮 브런치 콘서트를 선보임으로써 공연과 강의의 에듀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결합. 관객들이 유휴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획했으며, 5월 온쉼표 <키즈 오페라>는 가족 및 어린이들이 공연에 대한 접점을 확대하고 향후 공연에 대한 관심도 증대 및 선순환 구조의 확장을 위한 발판 마련할 예정이다.위드코로나 시기에 높아진 문화격차 해소 및 문화접근성 강화를 위해 대체공연이 아닌 계획단계에서부터 온라인 콘텐츠를 선보이는 On’쉼표 브랜드도 개발할 예정이다. 2021년 온쉼표 프로그램 중 총 3건의 공연을 영상화하여 온라인 콘텐츠로 선보인다. 앞서 언급한 <한·러수교 30주년 언택트 기념음악회>와 <2021 K-Music Showcase with Sejong Center>가 ;On‘쉼표 프로그램의 일환을 진행된다. 3월 온쉼표 <올림#콘서트 ‘인생은 뮤지컬처럼’>은 오는 6일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 공연으로 전수경, 정성화, 최재림의 무대를 온라인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더욱 새롭고 더욱 다채로운 무대로 관객과 만나는 2021 천원의 행복 ‘온쉼표’ 프로그램은 매달 초 세종문화회관 온쉼표 홈페이지(happy1000.sejongpac.or.kr)를 통해 신청할 수 있으며 2021년 연간 일정도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문의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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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단상. 애국가, 그것은 민중의 선택이었다!3년 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남북이 함께 기념한다며 소란을 떨던 것을 생각하면 금년은 거의 적막한 기념식 분위기이다. 현실 정치 상황과 코로나19에 지배당한 결과인 듯하여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번 3.1운동 102주년을 맞아 그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정중히 기념식을 가져야 한다. 1919년 3월 1일, 종로2가 탑골공원 팔각정에서는 오후 2시를 넘기면서 청년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한 시간 뒤인 3시쯤에는 인사동 태화관에서는 한용운 등 29인이 모여 선언서를 낭독함으로서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한일병합조약 무효와 한국 독립을 만천하에 선언한 것이다. 이로서 대한제국의 백성이긴 하지만 일제의 황국신민이 아닌 자유·평등·주권·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세계시민이 되었음은 물론, 상해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하여 제국에서 민국으로,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드디어는 전통에서 현대로 대 전환을 맞이하게 한 것이다. 이로부터 4월 초순까지 70여일 동안 전국과 해외 동포사회에서 1450여회에 106만여명이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연히 진압 과정에서 일경에 의해 600여명이 사망하고, 1만 4천여명이 체포, 구금되었다. 그럼에도 만세운동은 거세게 전국 곳곳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 때의 시위 형태는 대체로 다음의 순으로 진행되었다고 파악된다. ‘학교나 교회 앞마당, 마을 입구 공터 등의 ‘최초 집결→ 주동자의 독립선언서 낭독→ 지역 유지들의 연설→ 만세 3창→ 노래 제창→ 조선독립만세 등의 구호 제창→ 시장통 등을 향한 행진→면사무소 등의 재집결’ 시위의 결집력을 높이고 대오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노래가 필요했다. 그래서 ‘노래 제창’에는 학교에서는 애국가와 교가와 독립운동가가 불렸고, 교회 집회에서는 찬송가와 애국가류가 불렸다. 또한 시장통아나 면사무소 앞에서의 대규모 재집결시에는 애국가와 독립운동가는 당연하고 미리 전단으로 배포한 노래가 불리기도 했다. 목포 정명여학교 시위에서는 "터젔고나 터졌고나 조선독립성~”으로 시작되는 ‘독립가’가 불렸다. 대개 교사나 선교사 같은 지도자가 있는 시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북 고창군 고창면 시장통 3월 19일 시위에서 독립선언서와 독립가가 배포된 예가 있는데, 계획한 지도자가 있었던 상황이다. 그동안 발굴된 관련 기록을 통해 볼 때 구체적으로 가사와 곡조가 밝혀진 것은 학교 교가류, 애국가류, 찬송가류, 독립운동가류를 포함하여 10여종에 이른다. 이 중에 전국적이고도 보편적으로 불린 노래는 애국가이다. 1897년 7월 서대문 독립관(獨立館)에서 개최된 제505회 조선 개국기념 경절회(慶節會)에서 불린 윤치호(尹致昊) 작사 ‘무궁화가’(Song National Flower)에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의 후렴과 곡조를 계승한 것, 바로 오늘의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4절 노래이다. 이는 1907년을 전후하여 유포된 윤치호 역술(譯述) 「찬미가」 소재 ‘Patriotic Hymn 14’(제14장 애국 찬미가)로 개성의 한영서원과 호수돈 여학교를 비롯한 주요 지역 미션스쿨에서 불리기 시작한 노래다. 감리교 신자인 윤치호의 애국적 찬송가의 한 편으로 작사한 것이 1910년대에 이르러 국내는 물론 중국 간도 명동학교에서도 불리게 되었다. 후렴과 제1절 가사의 애국적 내용이 응집력을 발휘하여 전국적 전파 현상을 갖게 되면서, 이런 전파 상황에서 3.1운동 기간의 시위 현장에서 민중들은 쉽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3.1운동 현장에서 이 애국가가 불렸음은 당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선교사의 자료나 일제의 재판 기록, 또는 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구체적으로 애국가가 불린 기록을 선교사 켄달(Carlton W. Kendall)의 보고서 「한국독립운동의 진상」(The Truth about Korea)에서 확인 된다. 3월 20일경의 서대문 인근 시위 기록이다. "군중들은 무장하지 않았다. 행렬은 젊은이와 학생 그리고 노인과 부녀자들로 구성되었다. 군중들은 10년간 부르지 못한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에 맞춘 한국의 국가(National Anthem)를 부르고 국기를 흔들며 함성을 외치며 거리를 메웠다.” 또 하나의 자료는 1923년 서재필 박사의 자전적 저술 「한수의 여정」(Hansu’s Journey)에 주인공 한수(HANSU)의 눈에 비친 3.1운동시위 현장 기술 대목이다. "군중들은 공원 밖으로 행진해 나가기 시작했고 저마다 태극기를 흔들면서 근 10년이나 부르지 못했던 국가(National Anthem)를 힘차게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국가를 위한 환호 소리를 연거푸 소리 질렀다. 군중 전체가 마치 자기들이 새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기뻐 날뛰었다. 그들은 말도 없고 고개들을 숙이고 망설이는 걸음 거리에 슬금슬금 남의 눈치만 보던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웃을 대로 웃었고 하고 싶은 말을 다했고 떠들고 싶은 대로 떠들어 댔다.” 두 기록 모두 애국가가 아닌 국가를 뜻하는 ‘National Anthem’으로 표기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다. 이 시기 앞에서 살핀 동일한 곡조, 동일한 후렴의 ‘성자신손 오백년은~’으로 시작하는 ‘무궁화가’가 있긴 했다. 그러나 이는 문헌상의 존재이고 실제 확인 되지는 않는다. 1907년을 전후 하여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애국가로 대체된 결과이다. 다음은 애국가의 의역인 ‘there national cry’로 표현된 자료이다. 당시 세브란스의전 소속 ‘브리스 자작 조사위원회’(Bryce Viscoint Investing Commission)소속 오웬스(한국명 오은수) 5월 24일 보고서 일부이다. 실제 내용은 3월 5일 오전 9시경의 남대문 일대 시위 상황이다. "3월 5일 오전 9시를 기해 큰 소요가 있었다. 철도역 대로에서 일어났는데 상점 골목에서 뛰어나온 젊은이들이 애국가를 부르며(calling out there national cry) 기차역으로 향하였다. 순간 인력거에 있던 한 남자가 군중들에 에워 쌓여 남대문으로 향하였다. 높이든 양 손에는 빨간 끈이 있었고 남대문을 지나 시가지로 들어갔다. 이 행렬을 대부분 학생들로 이루어졌고 여고생들도 참가했다. 경찰과 대치하는 행렬을 반마일이나 되었다.” 일반적인 "sang a song’으로 표기하지 않고 ‘national cry’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선교사들 인식으로 단순한 노래가 아니고 ‘국가적인 노래’라고 표현한 것으로, 이미 민중들의 정서적 공인을 받고 불리는 공공의 노래임을 인식을 한 결과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기록은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음은 중국 동포사회 3.1운동 시위에서도 애국가가 불렸음을 알게 하는 기록을 본다. 3월 31일 봉천성 집안현 납석차 교회당에서 약 600명이 만세 시위상황 기록을 본다. "3월 31일 오전 10시경에는 약 600명이 모였고, 그 중에는 100여 명의 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오에 납석차의 기독교 지도자인 고종호(高鐘鎬)가 독립선언에 대해 연설하였다. 이어 애국가를 합창한 후 시위대는 태극기를 들고 ‘한국독립만세’를 외치며 부근을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진입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집안현 치화보 사구령 보갑국(保甲局) 및 유수림자 순경국(巡警局)과 보갑국원들이 출동하여 제지함에 따라 오후 5시에 해산하였다.” 이렇게 3.1운동은 조선독립만세와 태극기와 애국가로 진행되었다. 국가상징 국호 조선, 국기 태극기, 국가 애국가가 자연스럽게 민중들에게 인식되었다. 이중에 국호와 국기는 대한제국기 직간접적인 제도의 공인을 받아 활용되어 왔으나 애국가는 1907년을 전후하여 기독교계 학교로부터 확산되어 비로소 3.1운동 기간에 전국적으로 불림으로서 ‘유일한 애국가’로 공인된 것이다. 이 결과로 애국가는 두 가지의 분명한 현상을 얻게 되었다. 하나는 임시정부가 국기 태극기와 함께 애국가를 국가상징으로 채택하였다는 사실이다. 임시정부는 국호 ‘대한민국’에 대하여는 논의를 하였다. 그러나 국기와 국가에 대해서는 논의 없이 채택하였다. 「임시의정원회의록」에도 관련 논의 사실이 없고, 곧바로 의전에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임시정부의 의정원 개원식 기록이다. "총의장의 사회로 개식을 선언하고 일동이 기립하야 애국가를 창한 후 국기를 향하야 최경례를 행하였다.” 이런 결과와 함께 두 번째 현상은 애국가가 일제의 탄압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애국가를 부르거나 기록하는 것 자체를 독립운동으로 보아 탄압을 한 것이다. 이런 탄압상은 20년대 초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1923년 4월에 국내에 잠입했다 체포된 임시정부 연락원들이 형무소 내에서 4월 10일의 임시정부 창립일 ‘애국가’를 불러 크게 제제를 당했다. 또한 애국가가 적힌 공책을 휴대한 학생이 구인되어 엄중한 취조를 받기도 했다. 이 중 1924년 5월 21일자 동아일보는 ‘愛國歌 사건’이란 보도에서 그 탄압상을 짐작하게 한다. "愛國歌사건으로 잡힌 로희성(盧熙星. 30), 시내 동대문 경찰서에서는 근일에 시내 종로 3정목 93번지 사는 로희성을 체포하야 비밀리에 취조 중이라 하며 시내 청진동 청진여관에서도 한명을 인치하야 취조한다는 데 들은 바에 의하면 모다 지난번 애국가사건에 관련된 것인 듯하다더라.” 기사 제목이 ‘애국가사건’으로 규정되었다. 이는 이런 사건이 매우 많았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런 애국가 탄압은 일제가 3.1운동 시위 현장의 노래라는 인식에서 강력하게 통제했던 것으로, 강점기 내내 지속되었던 것이다. 한편 1940년 애국가 역사에서 획기적인 일이 있게 되었다. 바로 중경 임시정부에서 안익태 작곡 새 곡조로 애국가를 부르게 된 사실이다. 이는 오랜 세월 외국 곡조 ‘올드 랭 사인’에서 온전한 우리 손에 의한 곡조의 애국가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안익태가 1930년 10월 초순 미국 유학길 첫 예배에서 갖게 된 감동과 비감의 애국가 연주로부터 작곡 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교회에서 자신의 장학기금 마련을 위한 예배가 있었다. 그 마지막 순서에서 첼로로 애국가를 연주하게 되었다. 당연히 슬픈 선율의 외국의 ‘올드 랭 사인’ 곡조였다. 기미가요(君が代)’만 들을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조국을 떠나 큰 음악가의 꿈을 품고 유학 온 청년 안익태는 이 애국가 연주에서 굳게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남의 나라 곡조라니. 내가 애국가를 우리 가락으로 지어내야겠다.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사에 생명이 있다. 희망이 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나의 조국이다.” 1934년 9월, 후렴 부분을 남긴 1차 작곡을 끝냈다. 그리고 이듬해 11월, 드디어 작곡을 완성했다. 미주교민 신문 신한민보에 그 감동을 담았다. "아시아 동반도의 도덕적인 대한국 애국가인 만큼 경솔히 작곡되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과거 5년간 구심 근작 하여 약 2년 전에 처음 절은 필하였습니다만 후렴을 필하지 못하고 지나는 도중 지난 11월 사흘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실로 하느님의 암시로 후렴 전부를 근작하였습니다.” 5년 전에 결심한 ‘우리 가락’으로 애국가 작곡을 완성했음을 ‘하느님의 암시’로 돌렸다. 스스로를 격상시킨 것이기도 하지만, 암울한 현실에 민족혼을 담은 애국가를 작곡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안익태의 이 같은 감격은 개인만의 것은 아니었다. 미주지역 교민사회, 특히 한인 교회에서 환영하여 불렀다. 신한민보도 기사를 통해 보급운동을 벌였음은 물론 ‘대한국애국가’(KOREAN NATIONAL HYMN, EA KOOK KA)란 표제의 악보를 발행하고, ‘신애국가’ 음반을 제작하여 해외동포와 흥사단 같은 독립운동 전선에 보급을 하였다. 이런 미주지역의 반응은 교민단체 중 그 규모와 권위가 가장 큰 ‘대한인국민회’로부터 임시정부에 공식적인 사용 허가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愛國歌 新曲譜 許可. 북미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로부터 安益泰가 作曲한 愛國歌 新曲譜의 使用 許可를 要求하였음으로 大韓民國 22년 12월 20일 國務會議 內務部로서 그 使用을 許可하기로 議決하다.” 이 같은 사용 허가 요청은 임시정부의 위상뿐만 아니라 애국가에 대한 위상도 확인시켜 준다. 동시에 허가권자인 임시정부도 당연히 이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알게 한 것이다. 이 변화는 이듬해인 1941년 중경 임시정부 국군 광복군의 성립식에서 안익태 곡조의 애국가를 공식적으로 연주하게 한 것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임시정부에서의 안익태 신곡보 채택은 작곡가 안익태가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기 위해 사용 요청을 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임시정부가 작곡료를 주고 위촉하여 그 결과를 받아들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연히 청년 음악가 안익태의 순전한 애국심에 의한 작곡이고, 이의 진정성을 교민단체가 임시정부에 전해 채택되기에 이른 것이란 점이다. 이는 1906년 교육용의 ‘애국적 찬송가’의 하나로 작사한 윤치호의 ‘동해물과 백두산이~’ 가사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작사인지도 모르게 학생들과 대중에게 전파된 사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드디어 1945년 8월 해방을 맞았다. 마음 놓고 애국가를 소리내어 부를 수 있게 되었다. 11월 21자 ‘예술통신’은 미국에서 귀국한 김호(金乎)씨 제공의 ‘창의적이고 아름답고 웅대한 악보’를 게재하며 "미국서는 모든 국가 의식에 조선을 대표하는 때는 벌써 이 곡을 쓰고 있고 특히 조선어 방송 시간에도 쓰고 있다"는 정황 까지 전했다. 또한 10월 18일에는 김구선생이 제자(題字)를 쓴 한중영문중국판(韓中英文中國版) ‘한국애국가(韓國愛國歌)’란 악보집을 발간했다.11월 23일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할 때 비행기에서 한반도가 보이자 "누구의 지휘도 없이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애국가가 엄숙하게 흘러나왔다. 비행기 속 공기를 흔드는 노래 소리는 어느덧 울음 섞인 노래”로 불렸다. 그리고 12월 16일, 드디어 이뤄진 명치좌(明治座)에서의 ‘해방기념음악회’에서 이화여고생들의 합창으로 국내 초연이 이뤄졌다. 북한도 1948년 7월 8일 ‘북조선 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태극기와 애국가 사용 페지 결정 전까지 애국가를 불렀다. 다만 곡조는 안익태 곡이 아닌 기존의 ‘올 드랭 사인’곡이었다. 1948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식이 개최되었다. 의전 순서에 따라 경찰취주악대 반주와 연합합창단과 국민의 합창으로 애국가가 연주되었다. 드디어 국가 애국가는 그 역사성과 정통성을 공인 받았다. 이로서 애국가는 적어도 대한민국 국가의 위상을 부여받은 것이다. 세계 국가사에서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 노래가 드디어 국가로 승격되는 계기는 국가적 행사에 공식적인 의전 순서에서 연주된 것이라는 사실을 견준다면 이 경우는 이의가 없는 것이다. 3.1운동 시위현장,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개원식, 중경 임시정부 국군 광복군 성립식,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식에서의 공식 연주, 정통성을 공인 받은 역사적인 사실인 것이다. 이상에서 살핀 애국가의 긴 여정을 통해 오늘의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애국가는 나라사랑을 표현한 노래를 말 하는 보통명사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가(國歌)의 명칭이란 고유명사다. 이 동시성에는 두 가지을 함의 한다. 하나는 식민지와 임시정부와 미군정기를 가졌던 특수성에서 ‘애국가’와 ‘국가’의 의미를 함께 담은 것이란 점이다. 이는 우리민의 특수한 현상이다. 또 하나는 나라를 상징하는 국가 상징물로서의 국가이기보다는 나라사랑을 촉구하는 애국적인 노래로서의 기능성을 우선한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작사자 윤치호나 작곡가 인익태 모두 개인적인 애국심에서 작사하고 작곡한 것이지, 공적 기구의 의뢰나 작품료를 받고 위촉 받아 완성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애국심의 발로라는 진정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는 오늘의 국가상징물이 되기까지는 작사자나 작곡가와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애국가가 지닌 최고의 가치이며 다른 나라와 변별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그 위상과 가치를 변경하거나 재설정을 필요할 때는 이를 선택한 역사 공동체 시기 민중을 존중하여 신중해야 한다. 즉, 이를 상회할만한 새롭고 유의미한 대체 명분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그 명분은 분명하다. 곧 통일에 의한 남북민의 자유로운 선택, 그 명예롭고, 위대하고, 역사적인 선택을 말하는 것이다. 3·1운동 102년을 맞는 우리의 핵심 화두는 서두에서 제시한 3.1혁명 정신 자유·평등·주권·평화여야 한다. 아직도 일제 잔재 청산 단죄와 분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다면 작사 작곡자의 친일문제는 국가 애국가의 역사성과 정통성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친일 사실을 문제가 없다거나 문제를 삼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국가상징물은 이를 규정한 공적 의미에 한정된다는 편협한 해석의 문제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애국가의 오늘은 역사의 고비마다 민중에 의해 자연스럽게 선택된 결과라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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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우리가락] 전주MBC2020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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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해태TV] 동락춤 2017 아비뇽 페스티벌 공연2017년 7월 19일~25일 아비뇽 페스티벌 축제장 고객을 찾아가 흥겨운 판을 벌이는, 동락춤 공연은 '고객 감동'의 경영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크라운-해태제과의 노력입니다. 공연자의 앞, 뒤로 인형을 봉(棒)에 엮어, 마치 다수의 공연자가 합을 맞춰 공연하는 듯한 움직임이 동락춤의 가장 큰 특징이다. 크라운-해태제과의 동락춤은 2017년 부터 세계 유수의 종합 예술 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과 애든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새로운 도전을 계속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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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과 기술 융합주간’ 성황리 종료‘예술과 기술의 융합, 어디까지 왔나’라는 질문과 함께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예술기술 융합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2월 23~25일까지 사흘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 이하 예술위)가 주최한 ‘예술과 기술 융합주간’ 비대면 온라인 행사가 성황리에 끝났다. 격변하는 시대에 예술과 기술의 융합, 확장되는 예술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고민을 다룬 이번 행사는 여러 세부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과 과학 기술의 융합 현황을 살피고, 변화의 시대에 예술의 경계가 확장하는 지점에서 만난 새로운 고민과 가능성을 모색했다. 온라인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전 신청 1000여 명과 3일 동안 실시간 질문 및 댓글 300여 개, 유튜브 조회 수 4만여 회로 예술기술 융합에 대한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예술계, 기술계, 학계 및 예술 지원기관 등 각계각층에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위한 철학과 통찰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 마련됐다. 이번 행사는 온라인 개최의 단점을 보완해 오프라인 콘퍼런스의 현장감과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을 융합한 ‘하이브리드 디지털 플랫폼 무대’로 선보여졌다. 각 연사자의 연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영상·사진·입체 타이포 등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실감형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됐으며, 8K 영상 및 4면 LED 시스템을 통한 비대면 시대의 예술 기술 융합의 몰입형 행사로 참여자들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했다. 또 ‘쉐어타이핑’을 통해 행사 전 내용을 문자로 중계해 관객 편의성을 높이고 관객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새로운 온라인 콘퍼런스의 장을 열었다. 행사 종료 직후 실시하는 설문조사는 참여자 만족도 조사와 함께 즉각적인 의견 수렴으로 앞으로 더 나은 행사를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1일 차(23일) 개회사로 행사의 문을 연 예술위 박종관 위원장은 "예술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오늘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해법을 찾아갈 것”이라며 "예술위도 창조의 기쁨을 함께 만드는 예술 현장의 파트너로서 새로운 예술의 성장을 위한 실험을 뒷받침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각오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익숙한 기존 방식에서 한 걸음 나아가 새로운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예술 현장의 도전을 응원했다. 또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미술관 혁신’에 대한 주제를 다룬 닐 맥코넌(Neil McConnon,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 파트너십 디렉터)과 ‘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과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적용성과 범용성’에 대해 다룬 민세희(데이터 시각화 아티스트)는 기조 발제를 통해 예술과 기술 융합주간의 전체 주제를 아우르며 예술 중심의 예술과 기술 융합을 펼쳐나가기 위한 철학과 인사이트를 나눴다. 이어 서강대학교 아트앤테크놀로지 학과 김주섭 교수를 모더레이터로 국내 주요 아트앤테크놀로지 관련 학과들의 성과를 알아보고 현장과 교류를 도모하기 위한 학계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아트앤테크놀로지 연구소 소장 및 영상원 이승무 교수, 서울예술대학교 영상학부 디지털아트 전공 오준현 조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남주한 부교수 3명의 패널은 학계에서 이뤄지는 실험적 도전이 예술 현장과 활발하게 공유되고, 함께 발전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요구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진행했다. 2일 차(24일)에는 4차 산업혁명 주요 기술 D.N.A.(데이터, 5세대 통신, 인공지능)의 예술 접목 방안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 6인의 강연이 진행됐다. 한국, 영국, 프랑스에서 화상 중계를 통해 진행된 6개 강연에서 ‘데이터’는 한윤정(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주립 대학교 조교수)과 마오틱(Maotik, 프랑스 디지털 아티스트), ‘5세대 통신’은 김종민(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xR 큐레이터)과 임성희(SK텔레콤 부장), ‘인공지능’은 박외진(주식회사 아크릴 대표이사)과 임양규(덕성여자대학교 IT미디어공학전공 조교수)가 진행했다. 주제별 강연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지던 D.N.A 기술의 발달이 문화예술 창작 분야까지 확장되고 있는 지금,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한 동반 성장을 도모하고 융복합 예술 창작의 새로운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인 3일 차(25일)에는 ‘2020 아트앤테크 활성화 창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7개 단체(△고병량 △도로시 엠 윤 △프로젝트 밈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 △주식회사 그래피직스 △이정연댄스프로젝트 △테크캡슐)의 성과공유회가 열렸다. 단체별 공연·전시는 행사 기간 홈페이지 내 3D 디지털 갤러리에서 디지털 트윈 방식으로 공개됐다. 작품을 본 융복합 예술 창작에 관심이 있는 예술가, 관객과 함께 선정 단체의 작품 구상부터 결과 발표까지 작업 과정과 기술 융합 창작에 관한 생각을 공유했다. 기술 접목 예술 창작에 필요한 정보를 기술 전문가 그룹(△상화 △레벨나인 △클릭트 △모온컴퍼니 △EMK Musical Company)에서 직접 들어보는 페어&멘토링 시간이 있었다. 예술에 쉽게 접목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정보 공유와 함께 창의적이면서 독창적인 융복합 인사이트를 얻으며 이번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외에도 비공개로 진행된 유관 기관 대담회는 여러 기관에서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 담당자들이 모여 각자 생각하는 지원 사업의 현황과 한계점, 앞으로 예술과 기술 융합 지원 방향성과 발전 방안을 공유했다. 인공지능, XR, 사운드, 매핑, 공연 제작 등 각 분야 전문가 10명이 참여하는 일대일 비대면 멘토링은 융복합 예술 창작에 대한 고민 해결을 위한 실질적 조언과 도움을 줘 참여한 예술가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 행사 홈페이지는 6월까지 운영되며, 행사 일부 영상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훌륭한 예술이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이가 창조의 기쁨을 공유하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6년 설립된 단체다. 현장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된 10명의 위원이 합의를 통해 문화예술 정책을 끌어내며, 민간이 공공 영역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공공 영역이 민간에 참여하는 동시적 구조를 통해 문화예술이 처한 각종 환경에 대한 현장 중심의 구체적인 대안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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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br>중국, 중국동포, ‘중국 속의 아리랑’기찬숙/아리랑학회 연구이사 아리랑 연표상 어느 해에나 아리랑으로 점철(點綴)되지 않는 해가 있을까마는 2005년의 아리랑은 벽두(劈頭)부터 시작되었다. 1월 19일자 국악신문에는 뜻밖의 아리랑 기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한 국회의원의 인터뷰 중 세계적인 통신사 ‘AP통신’ 보도의 인용이란 설명과 함께 아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언급이 눈에 띄었다. "고유의 전통음악인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선정되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이 노래를 알 것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이루어진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대회’에서 82%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고 아리랑이 선정된 것이다. 선정과정 중에는 단 한명의 한국인도 없어 심사했던 이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이에 대해 ‘아리랑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나에게 깨우쳐줬다’, ‘듣는 도중 몇 번씩 흥이 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감동적이다’라는 반응이었다. 이들 모두 처음 듣는 곡이었다고도 했다.” 이 기사는 화제를 낳았다. 이로부터 급기야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오르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 순간, 아리랑연합회 김연갑선생의 ‘근거 없다’는 유권해석(有權解釋)으로 ‘가짜 뉴스’로 잠복되었다. 이렇게 필자에게 2005년은 이 가짜 AP통신 기사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작 2005년의 중요한 아리랑 기억은 4월 중순 연변에서 전해 온 아리랑 소식이었다. 바로 연변 원로 음악가 안계련선생과 민속학자 김봉관선생의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찬동서’가 우리에게 전달 된 것이다. 매우 조심스럽게 전해진 이 문건은 일견 우리가 이미 추진하는 것에 대해 찬동한다는 뜻이지만, 진의는 이 때 우리는 유네스코 등재를 생각을 하지 않던 것으로 중국이 먼저 등재할 수도 있으니 서두르라는 충고였다. 이 충고는 2012년 중국의 아리랑 국가 비물질문화유산 지정으로 현실화 되어 소동을 버린 바 있어 그 진정성을 확인하게 된 바 이다. 이 두 원로 동포 2세대의 고국 아리랑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은 우리에게 동포들의 세대차를 실감하게 하는 계기였다. 이를 통해 중국과 동포사회를 정확하고 더 깊게 이해해야 함을 절감했다.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탄생했다. 그러나 중국 내의 소수민족정책은 이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공동강령(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共同綱領)’이란 공산당의 발표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정책은 다민족 국가는 자치제가 적합한 제도이며 보편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였고, 자치제도는 공산당의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정책이며 기본정치제도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에는 크게 두 단계로 나뉘는데, 첫 단계인 1922년부터 1935년까지는 소련의 영향을 받아 연방제가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다 1935년 중국공산당이 모택동을 핵심으로 한 영도기구를 설립하고 난 이후, 연방제는 민족정책 고려 대상에서 서서히 배제되었다. 소련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이유로 연방제 대신 민족구역자치제를 택해 1947년 내몽고자치구 건립을 둔 것이 그것이다. 주은래(周恩來)는 중국이 5천년의 역사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서로 교류하여 한 지역에 다민족이 혼거하는 상황을 강조하였다. 한(漢) 왕조 이후 중앙집권 전통이 지배적이었던 점과 20여년에 걸쳐 민족해방전쟁과 내전에서 한족과 소수민족들이 동지적인 혈연적 유대를 갖게 된 점을 들어 소련식 민족 간 자치가 아닌, 보다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인 민족 간 연합의 형태로 민족자치구를 두고자 했다. 이중에 조선족의 경우, 한족(漢族)을 포함한 기타 민족들과 함께 반제반봉건 투쟁과 국내 해방전쟁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 시민권을 부여 받았다. 이로부터 건국 직전 중국 공산당이 조선민족에 부여한 정치적 지위는 중공연변지위(中共延邊地委) 서기 유준수(劉俊秀)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조국이 조선이라는 것을 승인하는 동시에 그들을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이며, 중국공민으로 일체의 권리를 향수할 수 있고 조선이 외적의 침략을 받을 때 조선공민의 신분으로 조선에 나가 전쟁에 뛰어들 수 있다” ‘조국이 조선’이란 북한을 말하는 제한성이 있긴 하지만 한반도를 조국으로 인정하여 이중국적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건설과 중국대륙의 승리가 보이면서, 유준수는 만주의 조선인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그것은 조선족과 조교(조선교포)의 구별이다. 연변에 중국공민으로 등록된 자는 ‘조선족’으로 분류되며, 등록을 하지 않았거나, 1945년 이후 적절한 중국 공산당의 허가를 취득하지 않고 입국한 사람은 북한 국적으로 분류하여 ‘조교’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 중, 호주(戶主)가 중국에 살고, 가족이 북한에 있는 경우 집이나 토지를 중국에서 소유한 자도 중국 공민권을 취득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북한방문을 원하는 조선족은 중국정부의 허가를 취득해야 했으며, 중국인과 동일한 권리 의무를 행사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한국전쟁으로 조선족이 동원(참전)되면서 실제적 시행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한국전쟁 기간과 전후 북한의 복구사업에 많은 조선족이 참여한 사실 등에서도 사실상의 이중국적이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957년에 이르러 중국정부는 지역적 개념을 사용하여, ‘산해관(山海關) 이북의 조선인을 조선족’으로, ‘이남의 조선인과 이후 중국에 들어온 사람을 조교’로 분류하기까지 특수한 상황은 유지되었다. 이에 앞서 1945년 9월 말, 이미 조선족의 국적문제를 주시해온 중공중앙동북국은 역사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조선인 상황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며 한족과 만찬가지로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향유한다고 인정하였다. 또한 동북민주연합군사령부 사령 겸 길림성정부 주석 주보중은 "화북지구 항련(抗日聯軍)에 참가한 조선의용군을 제외하고 동북의 조선주민은 일반적으로 중국 경내의 소수민족으로 보는”것으로 조선족의 소수민족 지위를 인정하였다. 이로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일원으로 정치적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현재 조선족자치구역은 조선족자치주 1개, 자치현 1개, 자치향진(민족연합진을 포함) 43개가 있다. 그 외, 조선족촌이 1000여개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국가보다 공산당이 먼저 창립하고 이를 통해 국가를 건립하였음으로 당을 우선시 한다는 특수 상황에서, 정치체는 이미 공산당 선립기인 1920년대 초로부터 확립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1930년대 화북지구 항련(抗日聯軍)에 참가한 조선의용군과 북한 정권 수립 구성원들과 연관을 갖게 되어 남한과는 다른 긴밀성을 갖게 되는 배경이 된다. 결국 구체적으로는 북한이지만 한반도를 고국으로 인식한 동포사회 구성원은 이 역사를 살아 온 소위 동포 1세대들이다. 바로 이 2세들 중 민족성 내지는 고국의 민속과 음악을 이해하여 그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이들이 안계련과 김봉관 선생이다. 1946년 연변에서 개최된 3.1절 행사에 ‘아리랑七景’ 같은 민족정서가 담긴 연극작품을 체험하고 자란 이들이다. 2005년의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찬동서’가 아니었다면, 이를 계기로 이 분들과 인식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2012년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도 중국에 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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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로 감소된 티켓 수입 지원해요”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김종휘)은 포르쉐코리아(대표 홀가 게어만)와 함께 ‘공연장 객석 거리두기’로 인해 감소된 티켓 수입을 보전하는 <사이채움> 지원사업을 26일 (금)부터 3월 17일 (수)까지 진행한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수많은 문화예술 행사가 중단되고,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객석간 거리두기로 대부분의 단체들이 수입에서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사이채움>은 포르쉐코리아의 사회공헌 캠페인 ‘포르쉐 두 드림(Do Dream)’의 기부금을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공연예술계를 돕는 것이 목적이다. 이번 공모는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좌석을 비워둔 채로 공연하는 작품이 대상이다. 신청 자격은 서울시 소재의 공연장에서 진행되는 유료 공연 중 2021년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진행되었거나 진행이 확정된 ▲연극 ▲뮤지컬 ▲아동 · 청소년극 ▲무용 ▲음악 ▲전통장르 등의 작품이다. 이 중 500석 이하 중소 규모의 작품을 우선하며, 총 37개 내외 작품을 선정해 공연을 마친 후 500만 원을 정액 지원한다. 이밖에 서울문화재단은 포르쉐코리아와 업무협약(MOU)을 통해 기부 받은 5억 원을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환경을 조성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사이채움> 에 2억 원을 시작으로, 하반기에는 코로나19로 우울함을 느끼는 시민이 일상에서 쉽게 예술을 접하고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형식의 프로젝트도 선보인다. 서울문화재단 김종휘 대표이사는 "이번 <사이채움>은 민간 기업의 제휴로 확보한 재원을 통해 국내에선 처음으로 거리두기 빈 객석의 티켓을 지원하는 사례” 라며, "앞으로도 현장의 예술가와 단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을 설계할 것” 이라고 말했다. 포르쉐코리아 홀가 게어만 대표는 "코로나19 확산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주변의 이웃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문화예술계에 대한 이번 지원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예술인들은 사회 구조를 견고히 하고, 꿈을 꾸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우리 사회의 주춧돌 역할을 한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는 어려운 시기에 이 같은 사회의 중요한 축이 유지되고, 계속해서 ‘꿈’을 이어나가는 데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고 전했다. 공모와 관련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서울문화재단 누리집(www.sfac.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예술청팀 02-3290-7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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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이 감소하는 ‘근감소증’ 예방하려면?뼈를 지탱해 몸을 움직이게 하고, 신체의 각 기관을 보호하는 중요한 부위인 근육. 하지만 우리 몸은 나이들면 서서히 근육량이 줄어들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실내 활동시간이 많아지면서 운동량이 부족해져 근감소증 발생 위험이 커지고 있다. 소중한 근육을 지키기 위해서는 젊을 때부터 7일에 3번, 30분 이상 꾸준한 근력운동과 단백질을 섭취하면 근감소증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근감소증 예방법을 자세히 알아본다. 근감소증이란? 근감소증은 영양 부족, 운동량 감소, 노화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근육의 양과 근력 및 근 기능이 감소하는 질환으로, 대게 30대부터 근육이 감소하기 시작하며, 60대 이상은 30%, 80대 정도가 되면 근육의 절반까지 감소하게 된다. 근감소증은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 등과 같은 합병증을 유발하며 신체 전반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뼈를 약화시키는 것과도 관련이 있으며, 특히 고령층일수록 근감소증에 척추 노화까지 맞물려 허리디스크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근감소증 예방 운동법 ▲ 하체 운동 ‘백 런지’ 인체의 가장 큰 근육 부위를 차지하는 하체 근육을 단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①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서서 한 발을 뒤로 뻗는다. ② 그 상태에서 무릎을 수직 방향으로 굽히며 자세를 사진과 같이 낮춘다. ③ 반대쪽도 같은 방법으로 수행한다. ▲ 상체 운동 ‘니 푸쉬업’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으니 무릎을 대고 운동한다. ① 팔을 어깨너비보다 넓게 벌린 후 무릎을 대고 엎드린다. ② 가슴에 힘을 주어 팔굽혀펴기를 진행한다. ▲ 등 운동 근력 운동을 쉽게 할 수 없는 노약자의 경우 가벼운 강도의 고무밴드를 활용한다. ① 앉아서 다리를 약간 구부린 상태로 펴준다. ② 고무밴드를 발바닥에 걸어 팔을 등 뒤로 당겨준다. 단백질 섭취법 운동만으로는 근육을 유지하고 강화하기에는 부족하다. 평소 지속적인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므로 콩과 두부, 생선, 계란, 기름기 없는 고기와 같은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하루에 적어도 본인 체중당 1g의 단백질을 섭취한다. 단, 단백질 보충제는 간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식품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한다. 단백질뿐만 아니라 비타민D도 중요한데 비타민D가 결핍되면 근력이 약해지고 피로감을 쉽게 느끼며 근육통을 유발한다. 하루 20분 이상 햇볕을 쬐고 치즈와 우유, 마가린, 버터, 연어 등의 비타민D가 풍부한 음식을 섭취한다. <자료제공=대한체육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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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과 공동연구도서 출판기념식 개최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2월 25일 카자흐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관장 A. 무하메디울리)에 지난 5년간의 공동연구 성과를 우리말과 러시아어로 출간한 『카타르토베 -제티수 사카 엘리트 고분군』을 전달하고, 2016년 체결한 학술교류 협력 관계를 연장하는 협약을 체결하기로 하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유라시아 고대 문화의 교류 양상을 연구하기 위해 2016년에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과 학술교류협약을 체결한 바 있으며, 이후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문화에 대한 공동조사와 연구를 같이 해왔다. 이번에 발간한 『카타르토베 -제티수 사카 엘리트 고분군』도서는 양 기관이 협약체결 후 2018년까지 유라시아 고대 유목민의 고분 문화에 대해 공동 조사 성과를 담은 내용으로, 지난해 우리말로 공동 발간한 『카자흐스탄 제티수 지역의 고분 문화』를 재구성하여 러시아어로 출판한 것이다. 카자흐스탄 초기철기 시대 쿠르간의 발굴조사 내용과 다양한 자연과학적인 융·복합 연구성과가 수록됐다. 러시아어로 번역된 만큼 이 책자는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각국의 국립연구기관과 도서관에 배포되어 양국의 공동 연구 성과를 홍보하고, 연구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번 도서 전달행사는 카자흐스탄 누르술탄에 자리한 국립박물관 도서관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대회의실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으며, 도서는 주카자흐스탄 대한민국대사관에서 전달하였다. 아울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책임운영기관으로서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과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에 대응한 상호협력 관계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 기존 학술교류협약을 5년간 연장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양 기관은 유라시아 고대문화의 교류양상을 밝히는 조사와 연구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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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and the National Museum of the Republic Kazakhstan celebrate Publication of Joint Research ReportOn February 25th,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General Director, Ji Byongmok) delivered the Russian translation of the publication on the joint research within the last 5 years, Katartobe ? Zhetisu Necropolis of the Saka Elite to A. Muhamediuli, General Director of the National Museum of the Republic Kazakhstan and held an online conference in order to extend the joint research agreement signed in 2016. On February 25th,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General Director, Ji Byongmok) delivered the Russian translation of the publication on the joint research within the last 5 years, Katartobe ? Zhetisu Necropolis of the Saka Elite to A. Muhamediuli, General Director of the National Museum of the Republic Kazakhstan and held an online conference in order to extend the joint research agreement signed in 2016. The NRICH entered into a Joint Academic Research Project with the National Museum of the Republic Kazakhstan in 2016 to inquire into ancient cultural exchanges in Eurasia, and has been conducting investigations and researches on the Central Asian Silk Road unitedly ever since. The Katartobe ? Zhetisu Necropolis of the Saka Elite contains the discoveries regarding the tomb cultures of the ancient nomads in Eurasia from the signing of the agreement until 2018. Based on the Ancient Tombs in Zhetisu Kazakhstan, which was co-published in Korean last year, the content was restructured and translated into Russian. It includes archaeological discoveries of the early iron age Kurgans in Kazakhstan and various interdisciplinary, natural scientific research outcomes. As per Russian translation, distributed to national research institutions and libraries in Central Asian countries including Kazakhstan, this book will promote the joint research outcomes of both nations and serve as basic material for research. The event was held online, within the library of the National Museum of the Republic Kazakhstan, Nursultan and the main conference room of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and the actual book was handed over by the Korean Embassy in Kazakhstan. In addition, the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s an executive agency, decided to extend the existing agreement with the National Museum of the Republic Kazakhstan for 5 more years to consolidated the cooperative relationship in the Post-COVID19 period. Both institution will continue the research and studies to shed light on the exchange structure of the Eurasian cultures based on this ext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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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내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고?전국 공공도서관에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매체 콘텐츠로 제작하고 체험할 수 있는 창작공간이 만들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같은 내용의 ‘스마트 케이(K)-도서관 사업’을 추진, 다음달 31일까지 90곳 참여 도서관을 공모한다고 26일 밝혔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스마트 케이(K)-도서관 사업’은 전국 공공도서관 안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대중매체 콘텐츠로 제작 체험할 수 있는 부대시설과 관련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창작공간을 만드는 사업이다. 체험환경형 유형은 15㎡ 이내 공간에 미디어 영상 콘텐츠 창작을 위한 공간 조성 및 조명 등 시설 구축한다. 제작 환경형 유형은 30㎡ 이상 공간에 미디어 콘텐츠 창작 공간 조성하고 조명 등 관련 장비와 함께 영상(녹음 등) 콘텐츠 제작 관련 부대장비 갖춘다. 문체부는 스마트 케이(K)-도서관을 통해 지역 주민에게 지식정보를 전달하고 문화적 삶을 즐기는 일상 공간에서 더 나아가 대중매체 콘텐츠 창작활동 등 문화서비스 운영체제(플랫폼)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바꿀 방침이다. 문체부는 이번 사업에 참여할 공공도서관을 공모하기 위해 지자체와 교육청 도서관 업무 관련 부서에 지원 규모와 조건 등을 안내했다. 선정된 공공도서관에는 창작공간 조성과 관련 장비구축에 대한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디지털시대 전환기를 맞이해 앞으로 공공도서관이 온라인교육·근무·여가 등의 비대면 소통 환경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대중매체 콘텐츠를 제작·체험할 수 있는 지능형 문화시설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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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기념우표 발행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의 하나로 정부기관 간 협업을 강화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본부장 박종석)의 환수 문화재 기념우표(4종) 발행을 지원했다.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환수와 현지 활용 등을 담당하고 있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현재 국외에 있는 문화재는 21개국에 약 19만 3,000여 점이며, 이중 환수된 문화재는 12국 1만 838점이다. 이번에 기념우표로 발행되는 환수 문화재는 ▲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박일훈), ▲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헐버트, 베델), ▲ 명성황후 옥보(조창수),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전형필) 등 총 4종으로 환수 과정에서 개인 차원의 노력이 반영되어 있는 문화재들이라서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한다. 환수 문화재 기념우표는 26일 우정사업본부에서 총 75만 2000장이 발행되며 가까운우체국을방문하거나 인터넷우체국(www.epost.go.kr)에 신청하면 구매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환수 공로자를 기억하고 홍보하기 위해 환수 우표 제작 지원을 포함하여 홍보책자 제작, 감사패 증정 등 다각적인 공로자 예우사업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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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문화재 지정번호제도 개선 위한 의견 수렴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문화재 지정번호제도 개선에 대한 대국민 의견수렴을 3월 1일부터 3월 15일까지 광화문1번가에서 진행한다. * 광화문1번가 국민 참여 플랫폼(http://www.gwanghwamoon1st.go.kr, 정책참여, 설문·공청회) 문화재 지정번호제도는 국보나 보물 등 문화재 지정 시 순서대로 부여하는 번호이지만, 일부에서 문화재 지정순서가 아닌 가치 서열로 오인해 서열화 논란이 제기되는 경우가 있어 왔다. 또한, 비지정문화재, 근현대유산 등 문화유산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기존의 지정된 문화재 위주의 보호·관리를 확장하여 아직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보호가치가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까지 보호·관리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며, 이러한 문화유산의 보호 범위 확대는 유네스코(UNESCO)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 관리 체계와도 부합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문화재청은 현상변경 허가신청서 등 민간을 대상으로 하는 대외 문화재 행정에서는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내부에서 관리하는 용도로만 지정번호를 사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또한, 제도 변화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고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하여 광화문1번가 국민 참여 플랫폼(http://www.gwanghwamoon1st.go.kr, 정책참여, 설문·공청회)에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 후 제도 개선에 반영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참여한 분들 중 20명을 선정하여 소정의 선물도 증정한다. 문화재청은 올 한해 문화재 지정번호제도를 개선해 비지정문화재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문화재 보호와 관리는 물론, 서열화 논란을 해소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또한, 문화재와 관련한 행정업무에서 국민이 제출해야 하는 각종 신청서나 신고서 등의 서식을 간소화하여 편의를 높이고 적극행정에 이바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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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休), 무형유산’ 힐링 콘텐츠 더 풍성해진다이번에 공개하는 영상은 무형유산을 ‘뉴미디어아트’를 통해 역동적이고 현대적으로 표현하여 국민들이 무형유산을 한층 친근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무형유산의 움직임과 색감을 고속촬영으로 재해석한 ▲ ‘스며듦’, 처용무를 역동적인 ‘선’율로 표현한 ▲ ‘이음, 잇다’, 전통 가면극의 패턴을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한 ▲ ‘탈변주’, 모션그래픽 효과로 13개 탈의 특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 ‘숨틔움, 얼을 비추다(1)’ ▲ ‘숨틔움, 얼을 비추다(2)’ 등 총 5편으로 구성된다. 새롭게 선보이는 영상은 온라인 외에도 국립무형유산원 공연장 로비에서 대형 OLED TV를 통해 직접 관람할 수 있으며, ‘휴(休), 무형유산’에서는 5편 외에도 무형유산 아카이브 자료를 활용한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앞으로도 국민이 무형유산의 가치를 친근하고 편안하게 누리고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힐링 영상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