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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을 삭이는 신명의 몸짓 - 최 윤 희 2004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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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뉴스

한을 삭이는 신명의 몸짓 - 최 윤 희 2004년 2월 25일

  • 김지연
  • 등록 2004.02.15 15:03
  • 조회수 2,139
일시 : 2004년 2월 25일 늦은 7시 장소 : 국립국악원 우면당 춤이라는 것이 단순히 몸동작을 아름답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그 자체인 동시에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것. 그래서 춤동작에서 무자(舞者)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고 최윤희 씨는 말한다. 명주 수건자락에 인생의 한(恨)을 담아 춤사위로 풀어내는 도살풀이춤을 추는 최윤희 씨를 감싼 흰 치마 저고리는 어두운 공간을 가르며 떨어지는 한 줄기 빛처럼 적요함을 전해주고 바닥을 사뿐히 즈려밟는 듯한 흰 버선코를 날렵하게 들어올려졌다가 치마자락 밑으로 다소곳하 게 숨겨놓는 것이 마치 신명이 깃든 영혼의 몸짓으로 생명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하다고 표현한다. 최 씨의 도살푸리 춤은 그의 스승인 김숙자 선생의 춤사위를 많이 닮았고, 그녀의 춤 동작마다 한이 묻어 나오는 것 같다고 한다. 충남 홍성 출신인 최윤희 씨는 어린 시절부터 예능분야에 타고난 소질이 있어서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열 다섯부터는 도살푸리와 민살푸리 비롯해 승무, 한량무, 입춤, 장고춤, 북춤, 검무, 부채춤, 설장고 등 전통춤을 유홍란 선생에게서 본격적으로 배웠다. 유선생의 조교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각종 대회에 출전하여 입상하며 활동하고 있을 때 유 선생의 이모인 김숙자 선생의 눈에 띄어 74년부터 78년까지 약 5년 동안 서울에서 김 선생님의 전통무용을 배웠다. 74년 3월 정식으로 김 선생의 제자로 입문하였을 때 날아갈 듯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으며 또한 선생의 연구실을 전담 운영하게 되었고, 김 선생에게 특별 지도를 해 주시는 등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스승인 김숙자 선생은 성품이 엄하고 날카로운 성격이었다. 그러한 김 선생을 만나기전까지만 해도 최윤희 씨는 전공을 정하지 못한 채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있었고, 김 선생이 이것 저것을 지켜본 뒤 방향을 잡아 주셔 이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김 선생과의 공부 중 78년 5월에는 김 선생의 권유로 제4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차상을 차지했다. 그 이듬해에는 김 선생의 슬하를 떠나 광주로 내려가 활동하면서 제5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하였 고, 당시 최연소 수상자로 기록되었다. 그 뒤 85년에는 제35회 개천한국무용제에서 대통령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춤에 영역을 넓히기 위해 인간문화재 김천흥 선생에게 춘앵무·박접무·무산 향 인간문화재 일응 스님에게 범패작법을 사사받았다. 전통가무악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광주에서 도립무용단 상임안무자로 재직하며 대학에 출강하는 등 활발 한 활동을 하다가 90년부터는 대전을 중심으로 충청도에서 인간문화재인 김숙자 선생으로 부터 전수받은 도살푸리를 대중화를 위해 학원과 학교에서 도살푸리 의 강습에 여념하였다. 그리고 스승인 김숙자 선생이 사후에는 3년 동안 인도· 티벳에서 직접 자료를 수집하여 만 든 창작무용 <관음향무>를 93년 대전에서 발표하여 불교 무용계에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 다. 김숙자 선생이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뒤에 최윤희 씨를 불러 도살푸리 이수하라는 권유를 받았고 서류를 준비하던 중 선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해 슬프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그 후에는 무용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한때 방황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인도에서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인 도무용을 배우다 문득 ‘자신이 해야 할 것은 우리 춤을 추는 것 밖에 없다’는 것과 ‘춤에 빠 지지 않고는 춤을 출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아 어느 때보다도 춤 연습에 몰입하였다. 불자인 자신이 무용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표현하고 부처님께 좀 더 가까이 하고 싶어 관세음보살의 광대무변한 묘지력을 관음의 33화신으로 형상화해 표현한 <관음향무>라는 창작무용을 발표 해 보는 이로 하여금 신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관람평과 함께 불교 무용계 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주목받기도 하였다. 지난 96년부터 지역전통예술의 진흥을 위해 사비를 들여가며 한밭전통 가무악 경연대회를 전국규모로 개최하고 있으며 현재는 대통령대회로 격상시켜 지역예술발전에 한목을 하고 있다. 이것 또한 김숙자류 도살푸리 대중화에 뿌리내리기 위한 시도로 현재까지 이끌고 있다. 최윤희 씨는 ‘도살푸리는 경기도당 굿에서 유래 된 것이다. 그리고 도살푸리 음악 또한 경기제로 현재 남도 음악으로 추는 것과 6박을 4박으로 사용하는 도살푸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도살푸리의 폄하된 용어(지게춤, 꼽추춤, 추고싶지 않은 춤)로 쓰이는 것 또한 잘못 된 것’ 이라고 지적하였다. 도살푸리는 경기 무속에서 출발한 영혼이 담긴 심오한 철학의 춤이며, 살풀이와는 뿌리가 전혀 다른 우리 민속춤이라고 한다. 이제 최윤희 씨에게는 그의 우상이자 스승이 추었던 한을 삭이고 혼이 깃든 고품격 예술 도살 푸리의 대중화에 힘을 쏟으며 제자 양성에 온 힘을 쏟겠다고 한다. 최윤희 씨는 오는 2월 25일 (수 오후 7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최윤희의 도살푸리 춤”을 발표한다. 특히 이번 무대에 서 이매방 명무의 살풀이와 김숙자 류 도살푸리가 동시에 선보여 두 춤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 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