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한류문화 컬럼니스트)
‘국악의 날’ 지정은 국악의 진흥 및 국악문화 산업 발전을 위한 기반 구축의 하나이다. ‘국악의 날’ 지정은 지속가능한 한류음악의 원형자산인 국악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글로컬 창조적 시스템으로 작용할 것이다.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74회’의 ‘국악의 날 지정을 위한 제언(1)’을 읽고 많은 분들이 댓글을 보내주셨다. 보내주신 댓글의 내용을 잠깐 소개 한다. 서울 시내 중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국어교사로 정년퇴임하신 선생님이 보내온 내용이다. "양극화, 국악계도 예외가 아니겠지요”라고 지적하면서, "‘국악의 날’을 제정하면서 양극화 문제를 먼저 고민하시는 모습에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그러나 그런 고민은 우리 국악계를 좀 더 따뜻하게 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끌어들여 더욱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라는 글을 보내 주셨다.
이 분이 교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국악관현악단’과 ‘사물놀이패’를 조직하여 운영하였다고 한다. 현재에도 다른 선생님에 의해 계속 유지 운영되고 있다.(교장 선생님의 격려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많은 분들께서 ‘국악의 날’ 선정을 위한 제안 ‘배경’(국악신문 1월 27일 자, 참조)이 "합리적이고 의미가 있어 너무 좋다”고 하시면서 댓글을 올려 주셨다는 점도 소개한다. 역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지난 회에서 언급했듯이, 신라시대의 음악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조 초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각 시대 별로 어떠한 음악문화적 과정을 거쳐 조선조 초까지 이어졌을까. 이번 회에는 우선 신라시대의 향가음악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신라시대의 향가 음악 중 노래 곡은 어떤 악곡들이 존재했고, 그 때 연주된 악기들과 곡들은 몇 곡 정도였을까? 악기와 노래 곡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신라향가음악』 박상진 지음, 참조)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의 악기로서 삼현삼죽(三絃三竹), 박판(拍板), 대고(大鼓)가 명시되어 있다. 삼현삼죽 가운데 삼현이란, 3종의 현악기, 즉 현금(玄琴, 거문고) ‧ 가야금 ‧ 비파를 말한다. 또 삼죽이란, 3종의 관악기, 즉 대금 ‧ 중금 ‧ 소금을 말한다. 따라서 『삼국사기』 소재 신라악기는 삼현과 삼죽만이 선율을 연주할 수 있는 선율악기에 속하고, 나머지 박판과 대고는 선율 연주를 위한 악기가 아니라 박자를 맞추는 리듬악기에 속한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악기로 금(琴) ‧ 현금 ‧ 신적(神笛) ‧ 십이현금(十二絃琴) ‧ 비파 ‧ 생(笙) ‧ 적(萬波息笛) ‧ 나발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는 결국 『삼국사기』에 비해 종류와 수가 비교적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두된 악기의 명칭을 말할 때는 반드시 시대적 배경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삼국사기』에 보이는 ‘금(琴)’이라는 악기는 현금으로서 고구려의 왕산악이 만들어(3C~5C초) 신라에 전해진 거문고이다. 그리고 가야금은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든(6C 경) 악기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보이는 ‘금(琴)’은 물계자(勿稽子, 2C~3C ?)가 사용했다는 악기로서 시대적으로 이른바 가야금이나 거문고가 성립되기 이전에 사용해오던 모종의 현악기였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어쨌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문현 자료에 의해 확인되는 신라의 악기는 삼현(거문고 ‧ 가야금 ‧ 비파)과 삼죽(대금 ‧ 중금 ‧ 소금)을 비롯하여 박판 ‧ 대고 ‧ 생 ‧ 나발 등이다.
그렇다면 이 악기 가운데 어떤 악기가 주로 향가음악에 사용되었을까? 이를 추고(推考)할 수 있는 단서나 방법은 없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결점에 도달하려면 당시에 어떤 곡들이 얼마나 존재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겠다. 문헌상, 각 악기 별로 언급된 악곡의 수가 많을수록 보다 활용도가 높았으리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그러한 전제 하에, 만일 신라향가가 다수의 신라인들에 의해 애호되었던 음악이었다면 비교적 활용도가 높은 악기야말로 향가음악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삼국사기』 악지에 의하면, 이들 악기에 의한 악곡 가운데 유실된 것을 제외하고 김부식(1075 ~ 1151, 고려중기 학자, ‘삼국사기’ 편찬자) 시대까지 전해진 악곡을 보면, 삼현 가운데 거문고는 187곡, 가야금은 165곡, 향비파는 212곡이며, 삼죽 가운데 대금은 324곡, 중금은 245곡, 소금은 298곡 등 엄청난 양의 곡이 존재하였다.
따라서 가장 많은 곡을 남긴 악기는 대금이며, 그 다음은 소금 ‧ 중금 ‧ 향비파 ‧ 거문고 ‧ 가야금 순이다. 특히 거문고 ‧ 가야금 ‧ 향비파로 연주한 삼현 곡(584곡)보다 대금 ‧ 중금 ‧ 소금에 의한 삼죽 곡(867곡)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그 음악이 바로 화랑들이 즐긴 향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화랑들은 누구보다도 ‘젓대(대금)’에 능통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실은 천년 왕국 신라인들 대부분이 향가 노래의 반주로 이들 악기를 즐겨 널리 사용하였음을 명확히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향가가 단순히 성악 위주의 민요 수준이 아니라 상당히 세련된 가악(歌樂)으로서의 고급음악도 포함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신라 사람들이 얼마나 전통적으로 가악을 즐겼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고, 더구나 그 음악의 작자(作者)가 위로는 제왕(帝王)으로부터 각상(各相) ‧ 국선(國仙), 아래로는 일반 서민 ‧ 병졸 ‧ 기녀에 이르기까지 온갖 계층을 망라하였다는 것으로서 향가가 얼마나 그들의 실생활에 보편적으로 스며들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로써 우리는, 향가의 대부분은 독창(獨唱) 성악곡으로 노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삼현삼죽이라는 주체적으로 창작되고 개량된 악기의 반주로 불리어진 음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화랑이 중심이 된 대중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회에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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