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개의 친밀감에 대하여
개가 얼마나 친밀한 존재이고 심성적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몇 차례 장그르니에를 인용해 소개한 적이 있다(장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민음사, 1997).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개의 부류는 '친밀감'을 속성으로 한다.
인간의 친구인 개, 인간이 얻은 가장 고상한 피정복물 아니 지금은 동맹관계로 바뀌어버린 말(馬), 흔히 무고한 희생물의 대명사로 사용되기까지 하는 비둘기, 이 동물들만큼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없다. 토끼를 비롯한 다른 몇 동물들도 이 부류에 포함 시킬 수 있을까. 인간은 친밀감을 열망한다. 이는 친구로서의 남자, 어머니로서의 여자,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두드러진다. 하지만 친밀감이라는 것이 대립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친밀한 이들 사이에서도 반목은 일어날 수 있다. 이 부류의 동물들이 지닌 특성은, 인간이 함부로 인간만의 속성으로 분류해놓은 '인간미'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온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개(犬)적인 온정'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럴까? 그르니에가 말하는 '개적인 온정'이라는 것이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개 같은~'이라는 비하적 언설과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개(犬)적인 온정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실 인간적인 본연의 온정을 찾는 길이라는 둥 피상적인 심리 정도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질문해보면 문제 제기가 좀 더 명료하다. 이 온정을 붙들어두기 위해 고안한 것이 개목걸이일까?
고양이의 거리감으로부터
개에 비해 고양이의 부류는 '거리감'을 속성으로 한다. 장그르니를 다시 인용한다. "이 고양이의 부류에는 원숭이와 앵무새도 포함된다. (때때로) 우리의 찬탄을 이끌어 내기도 하지만 이 동물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게다가 뷔퐁의 생각처럼, 이 부류의 대표격인 고양이가 우리에게 애정의 몸짓을 보이기는커녕 우리를 이용해 제 몸을 쓰다듬는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도저히 이 녀석들이 아무리 완벽하게 사람의 흉내를 내도 (그 거리감은) 좁혀질 수 없다. 앵무새는 목소리를, 원숭이는 몸짓을 흉내 내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 녀석들은 우리로부터 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식물이 우리와 가깝다. 결국 생활 방식은 친밀감과 거리감이라는 양극으로 특징 지어진다.
결합을 도모하는 것과 결별을 꾀하는 것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는 '심성'과 '지성'이라는 양극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심성'과 '지성'의 경계를 확연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단지 애착으로 결합하는 것들과 냉담하게 이탈하는 것들을 대립시킬 뿐이다. 로마의 들판에서 볼 수 있는 소나무처럼, 지평선 위로 수직선을 그리며 홀로 자라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포도나무나 올리브나무처럼 모여 조화를 이루는 나무들도 있다.
뾰로통하고 새침한 고양이, 그 이지적 지성에 비해 아무 조건 없이 그저 영혼 모두를 우리에게 의탁하는 개의 무구한 심성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인류가 태고이래 고안하고 재구성하며 천착해왔던 신(神)에 이르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엠비로스 비어스는 우리 누구보다 먼저 이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괄호는 가독(可讀)의 편의를 위해 내가 추가한 것이다.
지면상 인용한 컨텍스트를 일일이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개는 심성적이고 고양이는 지성적이라고. 재차 질문해둔다. 반려견 혹은 반려동물에게 채우는 목걸이는 이 거리감 혹은 친밀함과 관련된 것인가? 혹은 사람들의 (주로 여성들이 거는) 목걸이조차도 이 친밀함이나 거리감과 관련된 장식들인가?
반려동물 목걸이의 문화사
이주은이 지은 "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세계사"(파피에, 2019)를 통해 고대풍속의 편린들을 확인해볼 수 있다. "기원전 1401년부터 기원전 1391년의 이집트, 왕실 부채 관리인 마이헐프리라는 사람이 24세쯤 사망하였다. 그의 무덤에서 유리잔, 도자기, 화살통 2개, 화살 75개, 고기, 빵과 더불어 개목걸이 2개가 출토되었다. 선인장 꽃과 말들이 그려진 개목걸이에는 황동 단추가 장식되어 있었다. 다른 목걸이에는 아이벡스(커다란 뿔이 있는 야생 염소의 근연종)와 가젤을 사냥하는 개들이 그려져 있고, 개의 이름 '탄타누트'가 새겨져 있었다."
탄타누트는 이집트에서 일반적으로 여성 이름이었다. 평자들이 이 개목걸이의 주인을 암컷 사냥개로 추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왜 개의 목걸이에 황동단추가 장식되었으며 여성의 이름을 새겨 넣게 되었을까? 애완견 혹은 반려견의 역사적 맥락들을 살펴보면 여성 비하와 동물 비하의 행간들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기에 제기하는 질문이다. 애완견이 너무도 사랑스러웠기에 지어준 명예로운 이름이었을까 하는 점 말이다. 이주은은 이렇게 설명한다. "목줄이나 목걸이가 제재용만이 아니라 오히려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사례를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서기 79년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사라진 폼페이에서는 세베리누스라는 소년의 개였던 델타가 특별한 목걸이를 차고 다녔다. 용암과 화산재가 쏟아지던 마지막 순간까지 꼬마 주인을 보호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그 목걸이에는 바다에 빠질 뻔한 주인을 구해준 일, 강도를 물리쳐 주인을 구한 일, 다이애나 여신의 땅에서 늑대에게 공격당한 주인을 살린 일이 새겨져 있었다.
" 켄돌란 델 베치오는 '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을 위한 안내서'에서 또 이렇게 소개한다. "왕족들도 그러했지만 프랑스의 샤를 5세의 개는 진주와 루비가 장식된 벨벳 목걸이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 개에게 진주목걸이와 금목걸이라니! 표현의 결이 달라서 그렇지 반려대상으로 삼은 이들에게 '개목줄'이라는 평상의 비하적 언설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쯤 해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짐작할 것이다. 왜 반려동물 목줄을 목걸이에 비유하는지를. 이 이야기는 올 초, 소의 해 씨압소 전통을 말하면서 언급했던 쇠코뚜레와 수많은 고분에서 산견되는 목걸이로 상고해 오른다. 오늘은 지면이 다하였으니 차차 소개해나가기로 한다.
반려동물 목줄에 대한 명상
목줄이나 목걸이도 소의 코뚜레처럼 상징적이거나 민속신앙적인 것일까? 이를 역사적으로 추적해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어떤 관념들 아니면 해명되지 않는 무의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밝혀질지도 모른다.
마치 쇠코뚜레를 벽에 걸어두고 벽사진경(辟邪進慶), 즉 악한 것을 막아내고 좋은 것을 불러들이는 금기나 풍속으로 삼았던 것처럼 말이다. 아니 어쩌면 개를 길러 문지기 삼고 개그림을 그려 대문에 걸었던 것처럼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 자체가 무의식적 어떤 관념이나 신앙의 발로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개가 집안의 지킴이 특히 여성 등 위약자의 지킴이를 넘어 죽은자의 영혼을 지키는 신앙물로 나타나겠는가 말이다. 켄돌란 델 베치오는 이렇게 말한다. "낸시와 저는 많은 성인 남녀들로부터 떠나보낸 반려동물의 봉제 인형이나 목줄, 목걸이가 있어야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고백을 들었어요." 그래서다. 나는 이 목걸이를 보다 더 근원적인 무의식까지 추적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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