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이규진(편고재 주인)
우리가 고미술을 아끼고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옛것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자는데 그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미술이라는 것이 재화와 관련이 있다 보니 생각보다 불미스러운 일이 흔치 않게 생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움을 통해 만나고자 하는 고미술 때문에 오히려 심성이 망가지고 생활이 어지러워 질수도 있다는 것은 얼마나 불합리한 일이겠는가. 고미술을 좋아는 하대 끊임없이 조심하고 경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이로 고미술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았던 선배가 있었다. 그런데 평생을 모았던 고미술품으로 인해 끝내는 송사까지 벌려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하지만 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녹녹한 것이 아니어서 결국은 결론 없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 일 때문에 크게 실망을 했는지 선배는 그 후 고미술계와는 완전히 발을 끊고 산과 들로 사진을 찍으로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오더니 그마저 끝내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그 선배에게서 오래 전 선물로 받았던 것이 분청양산명접시편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는 분청사기 가마터가 두 곳 있다. 상리마을 뒤편 계곡과 호포부락 뒤편에 위치한 분청사기 가마터가 바로 그 것이다. 두 곳 중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호포가마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서는 다양한 종류의 분청사기는 물론이거니와 명문도 발견이 되는데 양산장흥고(梁山長興庫)와 장흥고 등이 그 것이다. 이로 보아 가산리 호포가마터는 양산에서 중앙 관서에 상품을 납품하던 중요한 공납용 자기 제작소였음을 알 수 있다.
분청양산명접시편은 훼손이 심해 작은 조각만 남은 것이다. 그러나 선배가 호포가마터를 찾아 직접 습득한 것인 듯 95.2.9라는 날자와 양산이라는 글자가 명기되어 있어 출토지가 분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접시편은 굽부터 몸체로 거칠게 인화분청이 시문되어 있다. 접시 내저에는 국화문이 상감되어 있는데 이 또한 거칠어 문양은 뚜렷하지가 않다. 그러나 이 접시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내저 중앙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양산(梁山)명이다. 비록 삼수변은 훼손되고 없으나 선배가 남긴 기록으로 보아 양산명을 의심할 여지는 조금도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선배와 소식이 끊긴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선배는 지금도 카메라를 메고 산과 들을 누비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을까. 그러나 나보다 손 위인 선배의 나이를 생각하면 장담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실 양산 가산리 호포가마터는 선배보다도 내가 더 일찍 답사를 했던 곳이다. 그러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고, 그런 내 이야기를 듣고 선배가 건네 준 것이 바로 이 분청양산명접시편이다. 따라서 훼손이 심해 아주 작은 도편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저런 추억들이 흘러가는 구름이 손짓이라도 하듯이 가슴을 스쳐지나가고 또 지나가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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