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8 (수)

[국악신문] 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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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69)

동학란노래

  • 특집부
  • 등록 2023.11.29 07:30
  • 조회수 14,736
화면 캡처 2023-11-28 155925.jpg
<동학란노래>,(2023, 한지에 먹, 70× 63cm)

 

동학란노래

 

개남아 개남아 진개남아

수많은 군사를 어데 두고

전주야 숲에는 유시했노

 

봉준아 봉준아 전봉준아

양에야 양철을 짊어지고

놀미 갱갱이 패진했네

 

동학란노래를 쓰다.

계묘년가을 한얼이종선

 

감상

*진개남: 김개남(金開南)이다. 전봉준과 더불어 동학란을 이끌었다.

*유시(遺屍): 시체가 되다.

*패진(敗陣): 패전. 전투에서 지다.

*놀미: 논산, 갱갱이: 강경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 이후 민씨 정권과 고종은 친청 정책을 펼치며 새로운 국면을 모색했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동아시아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나라는 혼란하였다.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항거하여 고부군의 동학도들과 농민군들이 쟁기와 낫 등 농기구를 들고 집단으로 무장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움직임은 곧 중앙정부의 탐관오리들에 대한 분노로 증폭되어 '보국안민'과 '폐정개혁'을 기치로 내건 농민들의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건 민란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1894년 3월 동학혁명으로 폭발되어 관군과 농민 사이의 전면전으로 발전하였다. 동학란, 동비의 난, 갑오농민운동으로 불린다.

동학농민운동은 교조 신원운동에서 시작되어 고부 봉기, 그리고 제2차 전주성 봉기에 이어 서울로 쳐들어가 부패한 정치가들과 외세를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잡는 데 있었지만, 관군과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12월 패배함으로서 동학 농민군의 봉기는 결국 실패하였다.

 

이 노래는 동학란 실패에 대한 백성들의 회한을 담고 있다.

고체로 가로쓰기 하였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