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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무성 화백의 춤새(72) 김진걸 명인의 '산조춤'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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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무성 화백의 춤새(72)
김진걸 명인의 '산조춤' 춤사위

  • 특집부
  • 등록 2023.11.0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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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새-김진걸 명인의 산조춤.JPG


산조춤

신무용 제2세대 중 독창적 미적 감각 작품 중 역작을 꼽으라면 바로 1957년 첫 선을 보인 김진걸의 '산조춤'이다.

 

"인간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산조춤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가장 순수하게 소통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키워드입니다. 제 산조는 여러 스승에게 배운 다양한 춤사위들을 아우른 작업인데, 승무·탈춤·무속춤 등을 모두 함축했어요. 새로운 산조를 시도하고 싶어 의상도 비로드로 만들고 버선 대신 맨발에 발레슈즈를 신고 추었습니다.”(김진걸,1953년)

 

‘산조’는 기악 독주라는 뜻이다. 1953년 성금연의 가야금 산조에서 춤 영감을 얻어 추기 시작했고 1960년 ‘내 마음의 흐름’이라는 제목으로 김진걸류 산조를 발전시켰다. 산조음악과 발생을 같이하여 기방의 입춤 형태에서 파생된 산조춤은 인간 개인의 자유로운 감정을 신체라는 움직임의 매체를 통하여 표출해 내는 인간의 해방, 육체의 해방을 의미하고 있다. 그의 산조는 오른발과 왼팔 위주의 춤사위로 구성된다. 남성적인 춤사위는 탈춤에서 볼 수 있는 오른쪽 다리 직각으로 세워들기와 왼팔 내뻗기 등이다. 발사위가 은근하고 화려해 여성 무용수에게 인기있는 춤이다. 김진걸의 산조춤은 모든 전통에 그 맥을 두고 있으며, 동작의 시각적인 면에서 선을 강조하고 있다. 산조춤은 모든 한국장단을 갖고 있으며, 한국무용의 많은 춤사위의 표현요소가 내포되어 있는 춤으로써, 가장 즉흥성이 강하고 그만큼 창작의 면모에 있어서도 표현 범주가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김진걸

김진걸(金振傑)은 ‘음악의 무용화’를 화두에 두고 삶의 희노애락을 춤사위에 담아낸 역작 '산조춤'을 발표했다.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5세 무렵 춤에 입문했다. 1940년대 초반 일본무용가 요시키(吉木) 문하에서 현대무용을 배웠고, 조택원·장추화·이채옥에게 사사했다. 
1955년 동양극장에서 첫 공연을 가졌고, 1959년 시공관에서 신무용적 미감이 짙은 작품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1962년 국립무용단이 창단되자 초대 단원으로 발탁되어 후일 지도위원을 지냈다. 1974년부터 1992년까지 약 20여년간 한성대학교 무용과 교수로 재직했다. 대한민국 평화통일 문화상 대상(1983년), 제 7회 무용대상(1986년), 화관문화훈장(1987년), 예술문화 공로상(1988년) 등을 수상했다.

김진걸 약력1926년 서울적선동에서 8남매 중 막내로 출생

1942년 이채옥 현대무용연구소 입문

1940년 요시카 문화생 입문

1944년 길목 무용연구소 입문
1946년 장추화 무용연구소 입문
1959년 김진걸 무용연구소 개소
1951~1953년 국방부 정훈군 육군 군예대 무용안무

1954~1975년 개인발표회 11차례

1955~1956년 성신여고, 한성여중·고 강사

1961~74년 한국무용협회 이사

1962~80년 국립무용단 지도위원

1974-1992년 한성대학교 무용과 교수 재직

1978~1985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1989년 『金振傑 散調춤 舞譜-내 마음의 흐름』(은하출판사) 출간

1989년 ‘김진걸 산조춤 무보’ 제작

1998~2008년 전통예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