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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무성 화백의 춤새(69)박설자 명인의 '진주포구락무'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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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무성 화백의 춤새(69)
박설자 명인의 '진주포구락무' 춤사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진주포구락무' 예능보유자

  • 특집부
  • 등록 2023.10.12 07:30
  • 조회수 6,307

        포락무.jpg

 

진주포구락무 

1991년 12월 23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음악과 무용으로 채구(彩毬:용알, 공)를 구문(毬門)의 풍류안(風流眼)에 던져 넣는 놀이를 형상화한 궁중가무이다.
원래 「포구락무」는 궁중에서 행했던 춤과 노래 중 하나로 공을 구멍에 던져 넣는 놀이를 표현한 것이다. 진주포구락무는 채구()를 구문()의 풍류안()에 던져 넣는 놀이를 음악과 무용으로 형상화한 궁중정재가 진주권번에서 지역화 된 춤으로서 고종[재위 1863~1907] 때 진주부사를 지냈던 정현석의 『교방가요』에서 비롯되었다.

 

정재(呈才)가 지방 교방으로 내려오면서 화관, 몽두리, 죽간자를 쓰지 않고, 상벌의 방법과 개수장(開收場)의 창사(唱詞), 세령산(細靈山)의 반주가 생기는 등 진주만의 특성으로 변화하였다. 악사는 박 1명, 대금 1명,피리 2명, 해금 1명, 장고 2명으로 총 7명으로 이루어진다.  음악은 세령산· 타령· 잦은 타령· 향단고주· 경기 굿거리가 주를 이루고, 춤사위로는 평사위· 쌍어리· 절화부· 회수부· 팔수부 등을 춘다. 

 

진주포구락무 (晋州抛毬樂舞)는 궁중에서 행했던 춤과 노래 중 하나인 포구락무가 고종이 재위시 진주에 전해진 것에서 비로된 춤이다. 포구락은 공을 구멍에 던져 넣는 놀이를 표현한 것이며, 포구락무는 고려시대 때 중국에서 들어와 조선 전기까지 전승되었다. 궁중에서는 무희들이 궁중복을 입었고, 머리에 화려한 화관을 썼으며, 벌로 받는 먹점을 빰에 그렸지만, 진주 포구락무는 화관이 없고, 평상복을 입으며, 먹점은 눈 주위에 퉁방울을 그린다고 했다. 죽간자는 당악 정재에만 사용했기 때문에 진주 포구락부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궁중 포구락무는 정형화 되어 음악이 매우 느리지만, 진주 포구락무는 서민적이라 음악이 경쾌하며 빠르고 흥겹다.

 

박설자(81세)
박설자 예능보유자는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고향인 진주로 오게 됐다. 이후 부산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진주로 다시 오게 되면서 초등학교 옆에 있는 발레학원에 등록에 발레도 했고, 장구며 여러 가지 악기들도 배웠다. 그는 "다른 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포구락무는 연주와 춤과 노래가 함께 가기 때문에 장단 박자를 알아야 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수관이나 어린 학생들에게 포구락무를 가르칠 때 장단 박자를 가장 중시하며 진주포구락무 보전회 회장, 진주민속예술보존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