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1980년대 들어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간행물들이 영인출판으로 공개되었다. ‘아세아문화사’를 선두로 많은 출판사가 잡지와 신문 등을 복각(復刻)하였다. 이를 통해 국학분야는 근대에 대한 연구의 진척을 볼 수 있었다. 애국가 분야 같은 특수 분야도 마찬가지다. 특히 ‘독립신문’의 복각 출판으로 구한말의 애국가 운동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5년만의 준비로 1987년 독립기념관의 개관을 계기로 해외 산출 자료의 대량 수집, 공개로 독립운동사 분야는 물론 인접 부야도 큰 혜택을 보는 계기였다. 애국가 분야로서는 임시정부와 안창호와 안익태 자료의 전모를 통해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미주 ‘신한민보’ 완질(完帙) 입수를 통해 안익태의 애국가 작곡 시기와 악보와 음반 발행 시기를 알게 되었고, 안창호의 유품을 통해 가족들의 인식 여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가 분야에는 두 가지 현상이 있게 되었다. 하나는 안창호에 대한 자료가 집대성 되어 그의 애국시가(愛國詩歌) 전모가 드러난 것이고, 또 하나나는 안창호 연구가 활성화 되어 애국가 작사설이 다시 대두하게 된 점이다.
이 결과로 안창호의 애국시가 중에 잡지와 신문 소재 "애국가” 곡명의 두 작품을 확인하여 안창호가 작사한 ‘애국가’가 따로 있었음을 밝혀냈다. 바로 안창호는 다른 애국가 작사 사실 때문에 현 애국가의 작사자로 오해를 받게 되었고, 안창호 작사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를 드러내지 않고 있음도 확인하였다. 이번 회에서는 이 사례와 유사한 안창호 가족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검토하기로 한다.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1884~1969) 여사가 1962년 정부 초청으로 건국공로훈장 수훈차 귀국을 했다. 이 때 흥사단 기관지 ‘기러기’는 이혜련 여사와의 인터뷰를 수록했다. 이를 통해 가족관계는 물론, 흥사단 창립과 3·1운동, 서재필과의 교류, 이갑(李甲)선생의 엄지손가락 마비 사실 같은 것도 기술했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안창호의 애국가 작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또한 미국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한 큰아들 필립이 1960~70년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여러 잡지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거국가’만 언급을 했을 뿐이고, 애국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가족들이 안창호가 애국가를 작사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런데 큰딸 수산의 경우는 조금은 다르다. 2003년 펴낸 책 ‘버드나무 그늘 아래- 도산 안창호의 딸 안수산 이야기-’에는 21개 에피소드를 담고 의외로 참고문헌을 첨부했다. 그리고 ‘도산 선생’ 외 3개 항목에 아버지와 가족 이야기를 기술했다. 여기에서 ‘거국가’ 4절 가사 제시했고 애국가도 두 번이나 언급을 했다. 첫 대목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직후 부친이 평양 대성학교에서 체포되어 용산 감옥에 수감된 후의 상황에서다. 밤이면 감옥 근체에 대성학교 학생들이 와서 부친이 듣도록 ‘올드랭 사인 애국가’를 불렀다고 하였다. 이 기술은 이미 다른 증언에서 알려진 에피소드로 단순한 애국가를 부른 정황을 전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이미 개교 당시부터 교장인 윤치호가 작사한 현 애국가를 불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다음은 ‘감옥 속의 아버지’라는 항목에서 1926년 2월 장리욱이 자택으로 찾아온 날을 회상한 열한 살적 기억이다.
"월슨 꼭대기에서 아버지는 조용히 있지 않았다. 그와 장리욱은 건너편 산골짜기 아래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우뚝 서서는 목청껏 애국가를 불렀다. 장난치던 아이들도 나무줄기를 향해 돌을 던지던 놀이를 멈추고선 친숙한 올드랭 사인의 멜로디에 조선말 가사를 붙인 노래를 듣기 위해 조용히 서있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아버지가 울고 있어, 다 울고 있어··· 아버지가 왜 우는 거지? 아이들은 서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도산의 인격과 생애’의 저자 장리욱과 안창호의 친밀 관계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위 두 대목에서 애국가 작사자 여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들도 작사자가 부친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이런 진술은 나름 진정성이 있는 상황임으로 의미가 크다. 그러므로 애국가 작사자 문제가 격렬하게 전개된 2000년대의 기록은 학습된 정보로 보게 된다. 애국가 작사자 문제로 방문한 이들로부터 주입된 정보로 사료적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보여 주는 자료가 있다. 그것은 1915년 아들 필선에게 보낸 서신의 일절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차남 필선에게 보낸 엽서이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차남 필선을 격려하는 내용이다.
"필션아 네가 이져음에도 마취(march)를 잘하며 동해물과 백두산도 잘 부르느냐 나는 잘 잇노라”
어린 아들에게 행진하고 애국가를 부르며 씩씩하게 자라라고 격려했다. 이런 정도인데도 애국가를 자신이 작사했음을 숨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후 가족 누구도 6, 70년대 귀국하여 애국가 작사자가 부친이라고 말 한 바가 없다. 이는 자신이 작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작사자에 대해 말 하지 않은 결과이다. 결론은 이렇다.
"안창호는 가족들에게 애국가의 작사자가 누구인지를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작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창호는 애국가(국가)의 기능을 알고 있기에 아들에게까지 부를 것을 독려하였다. 안창호는 지극한 애국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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