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6 (월)

[리뷰]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Ⅰ, ‘디스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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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리뷰]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Ⅰ, ‘디스커버리’

새로운 시도, 상생하는 국악관현악
여자경 지휘, “국악관현악의 다채로운 매력”
국악관현악 명곡을 새롭게 탐미하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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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 여자경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Ⅰ ‘디스커버리’가 9월 1일(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올랐다. 이번 무대는 2023-2024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개막작으로, 지휘자 여자경이 발견한 국악관현악의 다채로운 매력을 만날 수 있었다. ‘디스커버리’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지휘자의 시선으로 국악관현악 명곡을 새롭게 탐미하는 공연이다. 그 주인공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라 여자경이 지휘봉을 잡았다. 

 

여자경은 빈 라디오심포니오케스트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등 국내외 유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 현재 대전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정확한 해석과 연주자와의 호흡, 관객과의 뛰어난 소통 능력으로 탁월한 무대를 선보여 왔다고 평가받는 여자경은 이번 공연의 전 곡을 선곡하여 지휘자가 선택하여 만들어 내는 무대를 꾸려냈다.


이미 클래식계에서 명성을 크게 얻고 있는 여자경 지휘자의 지휘를 국악관현악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새롭고 신선한 기회였다. 서양음악 지휘자가 국악관현악단과 만나는 건 이전부터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최근 클래식 음악계의 화제가 되는 여성 지휘자 여자경이 국악관현악단과 만나는 것은 이번 무대가 최초였다. 여자경은 똑같지 않게 들리는 국악기의 음을 맞추어 보는 작업에 치중하고, 본인만의 음악적 색깔을 담아 국악관현악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겠다는 포부로 이번 무대를 준비했다고 한다. 연주된 관현악곡은 총 5곡으로, 국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듣기 편하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방향으로 곡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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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연 오은철

 

이 무대를 통해 무엇보다 지휘자가 끌어내는 음악의 색채감에 집중하였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내는 관현악곡은 무엇보다 하나 되는 화합이 중요하다. 각자의 연주를 잘하는 것을 넘어서, 서로의 소리를 듣고 조화롭게 음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에 음악의 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곡을 해석하고 지시하는 데 지휘자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한데, 여자경 지휘자는 따뜻하면서 냉철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압도하며 특유의 섬세하고 분명한 지휘법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기에 그의 지휘가 국악기의 소리와 울림, 관현악곡과 만나 어떤 표현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공연을 관람하였다.

 

첫 번째 무대는 이해식 작곡의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이었다. 전통춤·민속음악·무속음악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전통적 요소를 잘 활용하여 대중적으로 사랑 받아온 곡으로, 춤과 바람을 주제로 자유로운 바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역동적인 선율이 특징인 곡이다. 경쾌한 가야금의 소리가 시작할 때부터 여자경의 깔끔하고 확실한 큐(cue) 사인이 도드라졌다. 특히 타악기가 반복적인 장단의 리듬꼴을 연주하는 부분, 피리와 대금이 점점 커지는 농음을 연주하는 부분, 해금이 고음에서 짧은 리듬 형태를 연주하는 부분 등 악기의 특수한 특성이 드러나는 연주를 할 때 정확한 타이밍에 손과 몸동작을 다양하게 사용한 큐 사인은 음악을 확실하고 섬세하게 끌어 나갔다. 

 

이 곡은 도드라지는 리듬꼴로 이루어진 빠른 선율을 악기들이 유니즌으로 연주하기에 자칫 무너질 수 있는 어려운 곡으로도 느껴졌는데, 리듬 하나, 음정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깔끔하고 완전한 지휘에 매료당할 수밖에 없었다. 특색 있는 국악기의 듣기 쉽고 귀에 맴도는 선율의 경쾌한 반복과 여자경 지휘자의 섬세한 지휘는 국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고 편하게 음악에 푹 빠져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두 번째 무대는 최지혜 작곡의 첼로 협주곡 ‘미소’. 우리 선조들의 삶을 바꿔 준 의료 선교사이자 교육자 ‘로제타 셔우드 홀’에게 감명받아 그녀의 삶을 담아낸 작품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로 수석을 지내고,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주연선이 첼로 협연자로 나섰다. 이 음악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눈앞에 그 당시 조선의 배경이 그려지는 듯 직관적이고 아름다운 곡이었다. 대금과 해금, 피리가 얽히며 만들어 내는 단조와 반음계 선율은 제물포의 습한 새벽과 어울렸고, 사극 영화를 보는 듯한 서정적인 관현악과 첼로 솔로의 선율은 한국적이며 감성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곡은 국악기로 연주하는 전통 어법을 첼로로 구현해 내고자 한 부분이 많아 흥미로웠다. 첼로는 메나리토리의 하행 진행을 연주하거나, 부드럽게 꺾어 내리는 퇴성, 쳐서 내는 표현, 농현 등을 다양하게 구사했다.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하다는 첼로의 중후하고 우는 듯한 소리로 한국적인 색채를 감상하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새로운 전통적인 시도라고 느꼈고, 작곡가가 얼마나 많이 고민하며 곡을 만들어 냈을지 그 섬세함에 감탄했다. 더 나아가 시김새 등 전통 어법을 구현하기 위해 소리를 연구하고 훌륭하게 연주해 낸 첼리스트 주연선 첼리스트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지휘 또한 훌륭했다. 국악기와 다른 원료, 특징을 갖고 있기에 합주로 묻어나기 어려울 수 있는 서양악기와의 협연이었음에도 관현악이 첼로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적재적소에 등장하고 빠지며, 받쳐주는 역할을 부드럽고 깔끔한 지휘로 만들어 냈다. 첼로의 카덴자(독주) 이후 첼로의 하모닉스 연주와 관현악단의 연주가 자연스럽게 하나 될 때는 희생과 섬김의 삶을 마친 선교사의 미소가 눈앞에 그려졌고, 관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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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연 주연선

 

2부 무대의 첫 곡은 김백찬 작곡가의 ‘Knock’로 시작했다. 2021년 <리컴포즈>에서 위촉 초연된 이 곡은 한국 전통음악의 5음 음계(도·레·미·솔·라)를 기반으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해 전통음악만이 가진 고유의 호흡과 리듬감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음악이다. 여자경 지휘자는 이 곡이 표제음악처럼 어떤 형상을 소리로 만들어진 곡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만큼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색다른 시도가 곡에 많이 묻어났는데, 단3도 화음 형태의 선율 진행이나 자연스러운 전조 진행 가운데 반복되는 선율, 베이스의 반음계 빠르고 느린 반음계 진행 위에 얹어지는 악기들의 깔끔한 투티(tutti)(다 같이 합주함),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리듬꼴 등 다채로운 변화에 귀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 다양한 반복 때문인지 음악을 따라가느라 급급해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주제 선율이나 장단이 귀에 남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으나, 음악의 셈여림, 다이내믹을 깔끔하게 지시하고 다양한 몸짓과 방법을 통해 음악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지휘를 포함하여 색다르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흥미로웠다.

 

네 번째 무대는 2021년 초연된 성찬경 작곡가의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금희악기점’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경영했던 유일한 악기점인 금희악기점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피아노 협주곡으로, 피아노 협연은 작곡가·피아니스트·음악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은철이 함께했다. 앞서 첼로가 국악관현악과 자연스럽게 묻어 어우러진 것에 비해 피아노의 음색은 국악 관현악과 잘 맞지 않고 튀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작곡가가 의도한 ‘더 새로운 소리’와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느꼈다. 

 

새로운 접근과 음색을 통해 오늘날의 음악, 더 새로운 소리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나누고자 한 작곡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 음악은 오묘하면서도 현대적인 사운드가 잔뜩 묻어났으며, 특히 국악기로는 많이 시도되지 않던 선율 진행이 흥미로웠다. 어딘가 신비한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금희악기점’은 꿈속을 그려낸 이미혜의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생각나기도 하고,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의 ‘rhapsody in blue’가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 전통 음악, 창작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겸손하게 말하고자 하는 작곡가의 음악적 가치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무대였다.

 

마지막 무대는 북한 작곡가 최성환이 아리랑을 테마로 만든 국악관현악 ‘아리랑 환상곡’. 국내뿐 아니라 미국·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여자경 지휘자가 서양 오케스트라와도 꽤 자주 연주했던 곡이라고 한다. 이번 무대에서는 국악기를 가지고 서양악기의 앙상블을 만드는 쪽으로 접근했다고 하는데, 곡 전체를 관통하는 아리랑의 선율이 ‘국악기’가 만들어 내는 음색에만 치중되지 않아 그 해석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났다. 이는 특히 해금 연주에서 잘 보였다. 

 

해금은 바이올린 등 서양 현악기보다 상대적으로 거친 소리가 나고, 활을 바꿀 때 조금 더 세게 마찰하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곡에서 해금 연주자들은 일부러 활을 동일하게 나누어 균등한 소리를 연주하고, 끝까지 활을 마찰시켜 바꾸며 부드러운 ‘선율’을 만들어 나가는 데 치중했다. 악기의 색이 튀지 않게 ‘아리랑’ 선율을 만들어 나간 관현악단의 연주는 특히 여자경 지휘자의 지시를 믿고 집중하며 더 큰 빛을 발했다. 깔끔하고 화합된 합주에 하나의 통일된 톤은 흡입력 강한 여자경 지휘자의 지휘와 더불어 국악 관현악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전통 음악의 현대적인 재해석, 한국의 정신과 정체성을 담은 사운드, 전 세계의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는 현대적인 레퍼토리를 담은 차별화된 무대를 선보여 나간다. 그들의 연주는 해가 갈수록 더욱더 빛이 난다. 월등한 연주 실력과 더불어 지휘자를,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믿고 음악에 집중하여 하나 된 소리의 감동을 보여준 그들의 이번 무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해 주었다. 

 

여자경 지휘자는 ‘청중이 없으면 무대도 없다’는 신념으로 낯선 길을 마다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여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그가 이번에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보여준 무대는, 국악에 익숙한 관객도, 익숙지 않은 관객도, 또한 서양 음악 지휘에 익숙하거나 익숙지 않은 관객도 모두 음악 아래 하나가 될 수 있는 순간을 선사해 주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발견’한 지휘자 여자경이 ‘발견’한 국악관현악 무대, ‘디스커버리’에서는 무엇보다 ‘화합’과 ‘상생’이 도드라졌다. 음악이라는 주체 아래 서로 다른 장르 사람들의 해석이 합쳐지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우리 국악 관현악은 앞으로 더욱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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