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 (금)

[국악신문 소장자료] (20) 최금동 선생과 대본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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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소장자료] (20) 최금동 선생과 대본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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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리랑 필름 찾기회아리랑연구회고문 최금동 선생. 영화화 되지 못한 아리랑에 대한 큰 미련을 보이며 소중히 지녔던 대본 아리랑을 아리랑연합회에 기증하였다.


최금동(19221995)은 전라남도 함평(咸平) 태생이나 소년기를 거의 완도에서 보냈다. 완도보통학교와 경성고등예비학교를 거쳐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 전신)를 졸업했다.


불교전문입학 무렵 처녀작 누나를 조선중앙일보에 투고하여 가작으로 입상했는데 이 작품은 경성방송국에서 입체낭독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불교전문 3학년인 21세 때 슈베르트의 생애를 그린 미완성 교향곡을 보고 자극 받아 쓴 환무곡(幻舞曲)’이 동아일보 제1회 시나리오 현상모집에 당선됨으로써 영화계에 등단하게 된다.

 

광복과 함께 스타 최은희를 배출한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1946)를 써 주목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 오 내고향’(1953)· ‘길은 멀어도’(1959)· ‘건너지 못하는 강’(1962)· ‘푸른 별 아래 잠들게 하라’(1965)· ‘젊은 아들의 마지막 노래’(1970)· ‘허튼 소리’(1987) 등 많은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1960)· ‘표류도’(1960)· ‘청춘극장’(1967) 등 각색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 백범 김구선생’(1960)· ‘유관순’(1962)· ‘석가모니’(1963)· ‘이성계’(1967)· ‘안중근’(1971) 등과 이름없는 별들’(1954)· ‘3·1독립운동’· ‘8·15전야’(1958)· ‘동학란’(1966)· ‘팔만대장경’(1973) 등이 주목된다.

 

60여년 동안 거의 일관되게 격동의 최근세사에서 고대에 이르는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불교사상과 독자적인 민족의식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1965년 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에 피선된 후 일곱 차례나 역임되었고, 1970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91년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영화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 최금동 시나리오 문학선집(2)이 있다.


원로 영화 평론가 김종원 선생의 회고록(61)에 선생에 대해 상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