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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65)정소산 명인의 '정소산류 수건춤'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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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65)
정소산 명인의 '정소산류 수건춤' 춤사위

2015년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18호 ‘정소산류 대구흥춤’ 지정

  • 특집부
  • 등록 2023.08.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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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새-정소산 명인의 정소산류 수건춤2 (1).JPG

 

정소산류 수건춤

수건춤은 수건을 뿌리치거나 들어 매고, 휘감아 뽑아 올리는 등 수건을 쥐고 추는 동작으로 이루어지는 민속춤이다. 대구광역시에 전승되는 수건춤은 입춤 형식의 민속춤에 궁중춤이 결합한 독특한 형태의 춤으로서 춤사위는 보는 이로 하여금 흥을 돋우면서도 장중함과 단아함, 절제미가 있다.


궁중무희복장에 수건들고 추는 일종의 수건춤이다. 정소산이 궁중정재 사범 하규일 선생으로부터 궁중춤을 배웠고 한성준으로부터 '승무' 등 민속춤을 배워 궁중춤과 민속춤의 섞여진 조금 애매한(?)춤이어서 문화재 지정이 보류되었고, 후에 '흥춤' 등으로 이름 붙였나. 이것도 저정 종목으로 합당치 않아서 지정이 안된 것이다. 제자 백년욱에 의해 ‘정소산류 대구흥춤’으로 2015년 대구시무형문화재 제18호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수건춤은 전승자의 계보로 보면 하규일-정소산-백년욱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수건춤이 현재의 형태를 갖추는 데에는 정소산[1904~1978]의 영향이 컸다. 궁중 여악 출신이자 근대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춤꾼인 정소산은 1920년 중반 대구에 정착한 이래로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대구 무용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제자로는 최묘정과 백년욱 등이 있는데 백년욱만이 대구 지역 무용계를 지키면서 정소산의 춤을 잇고 있다. 1955년부터 정소산의 문하생으로 입문하여, 정소산의 춤 원형을 잘 보존하여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정소산(1904~1978)은 궁중무희 마지막 세대로, 대구 근대한국무용사에서 대구 전통무용의 기반을 다졌다. 190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박난파는 한때 약방 기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살풀이춤으로 불리는 이 춤사위는 전통춤의 특징인 정중동(靜中動)·동중정(動中靜)의 미가 극치를 이루는 춤이다.

 

정소산 선생은 이 춤의 의상으로 특히 색동옷을 선호했다고 전해진다. 춤에 사용되는 수건은 정소산 선생이 제자를 지도할 때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과 유사한 길지 않은 수건이다. 이는 주로 긴 수건을 사용하는 살풀이와는 차이가 있다. 반주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 이생강 선생의 연주만 썼다고 한다.

 

"선생님은 단아하고 춤을 무겁게 춰야 한다고 하셨다. 교태를 부리면서 (몸을) 흔드는 춤을 싫어하셨고, 춤이 기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 수건춤은 내가 춰봐도 그런 느낌이 있다"(백년욱)

 

정소산 약력

본명은 유색(柳色), 호는 소산(小山)

숙명여고 무용교사

1904년 대구 출생

1909년(5세) 명무 채희에게 춤을 배운다. 

1910년(6세) 대구시 기생조합 김수희 조합장의 문하생 입교

1914년 (10세)부산의 봉래권번, 수원의 화인청 입교

1921년 (17세) 대정권번 입적

1923년 (19세) 금하 하규일 선생 문하에서 '승무' 사사

1926년 (23세) 한성준 선생에게 '승'무 사사

1928년 (25세) 조선권번, 달성권번 등 권번에서 춤 지도

1946년  첫 발표회

1948년 대구 하서동 '정소산고전무용연구소' 개설

1960년 한국국악협회 경북지부장

1962년 경북문화상 수상

           문공부장관상, 대통령상 수상

1978년 74세로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