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이무성 화백의 춤새(63)무세중 명인의 무사위 춤사위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무성 화백의 춤새(63)
무세중 명인의 무사위 춤사위

대한민국 1세대 전위예술가
봉산탈춤(이근성), 양주별산대놀이(김성대), 동래 들놀음(박덕업), 남사당 덧뵈기춤(남형우) 춤사위 전수

  • 특집부
  • 등록 2023.08.09 07:30
  • 조회수 2,340

무세중 명인의 무사위 춤사위.jpg

 

무(巫)사위

우리나라 1세대 전위예술가 무세중 선생이 지역 탈춤을 전수 받고, 탈춤의 기본 동작에 철학적 의미의 '태극'(太極)을 조합시켜 재창작한 춤사위이다.

대학 신입생 20세 무세중은 봉산탈춤(이근성), 양주별산대놀이(김성대), 동래 들놀음(박덕업), 남사당 덧뵈기춤(남형우) 춤사위를 스승에게서 전수 받은 후, 탈춤의 근원을 찾아 또 다시 전국을 누볐다. 1969년 '한국 민속 가면무극 춤사위 종합 전수 발표회'를 가졌다. 이때 발표한 춤사위가 이후 무사위의 근간이 된다. 이후 연극영화과 강의 후 새내기 학생들에게 무사위를 가르쳤다. 


민속악회 ‘시나위’ 창립, 민속극회 ‘남사당’ 결성, ‘동아민속예술원’ 창립, ‘극단 민족’ 창립 등 ‘민예부흥운동’의 최 전위에 섰다. 1971년 동아민속 예술원을 설립하고 극단 민족을 창립하여 민속극의 본질 규명을 위한 <마당으로의 환원 작업>의 민예 부흥 운동으로서의 마당극 운동에 앞장서 왔다. 1972년에 민속극회 남사당놀이 여섯 마당을 최초로 무대에 올리는 남사당제(男舍堂祭)를 기획 연출, 3백여 가지의 한국 춤사위를 연구 정리하여 '한국 민속극 춤사위 연구'를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무세중은 태생적으로 굿에 열정을 품은 굿쟁이로 태어나 전위 전사의 무당 칼과 창을 들고 민족 분단의 벽을 치고 민족 분열을 용서치 아니하며 민족의 앞을 지키고자 전위(前衛) 행동의 공연을 끊임없이 저질러 왔다.(중략) 또한 무사위(musawee)라는 무세중만의 독특하고 유일한 춤과 연기 양식의 한극을 만들었으며 그의 춤은 혼을 부르는 춤사위로 영적(靈的) 움직임이 그 좌표가 되며 태극 원리처럼 철학적 상징의 즉흥무로 이어지고 있다."(『무세중의 전위 예술 충돌 50년』서평)


무세중(전위예술가)
1937년 서울생. 본명 김세중
전위 예술가, 시인, 대동전위극회 대표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 명예 이사장


학력
서울고등학교,성균관대학교 불문학과,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연극학과 졸업
드라마 센터 연극 아카데미 (서울예술대학) 졸업
베를린 자유대학 (Freie Universität Berlin) 민족학과 수학

경력


1971년 극단 <민족>창단

          동아민속예술원 원장

1972년 『한국민속극춤사위연구』(김세중, 동아민속예술원)

1973  민속악회 시나위 정기연주회

1975  마당극제

        노비 문서 전시회

        무세중 창작 발표회 <전통과의 충돌>

1977 한국 전통 택견 발표회

1969-1976년 사단법인 민속극회<남사당> 대표
1977년 독일 Berlin극단  대표

1982-2020년  통일아리랑 (통상100여 회 발표)

           통막살(통일을 위한 막걸리 살풀이) 발표

1983년 중앙대학교, 한양대학교, 서울예술대학교, 대진대학교/대학원 연극과 출강(1983-2005)
(1987-현재)대동전위극회 대표

2011년 제6회아리랑 상 수상

연출가, 안무가, 통일문화연구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