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9 (수)
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일 년여 전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어머니란 무엇인가'를 말한 적이 있다. 아들 없던 예순여섯 내 아버지에게 씨받이로 오셔서 나를 낳으셨지만 족보에도 그림에도 그 어떤 글에도 기록되지 않은 어머니 얘기였다.
더불어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가신 이 땅 민중들에 대한 행간을 읽어내려 했던 노정이기도 했다. 내 생모의 호명은 '개골네'였다. 고길(개골)마을의 여편네라는 뜻이다. 갯가의 골짜기 마을이었으니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아들딸 넷을 낳았으나 본 남편이 병사하였다. 병수발로 작은 재산마저 거덜 난 어머니는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다. 두 딸은 식모살이 보내고 작은 아들은 고아원으로 보냈다. 큰 아이 하나 부둥켜안고 살았다. 아들 낳아주면 밭뙈기를 떼어주겠다는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굶어죽는 일은 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미원의 궁문을 열어 나를 이 땅에 내려놓으신 순간, 치욕적인 호명 씨받이가 덧붙여졌다.
재작년 졸저 <산자와 죽은자를 위한 축제>(민속원, 2018)를 내며 서문에 그렇게 써두었다. 음력 5월 24일 유시(酉時) 내 생일날이자 내가 태어난 바로 그 시간에 운명하신 뜻이 무엇일까라고. 참으로 기묘한 일시에 운명하신 어머니를 재삼 묵상한다. 바리데기가 막내딸로 태어나 버림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내력을 닮아서일까.
탈북녀 바리가 천변만화의 역경을 넘어 구사일생하는 내력과 같아서일까. 자식 없던 노인에게 몸이 팔려 아들자식 낳아준 또 하나의 당금애기여서일까. 한 몸 희생하여 자식들과 눈 먼 세상을 구원한 또 하나의 심청이어서일까. 내 묵상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민중신학자 안병무가 남긴 유작 '선천댁'에 가 닿는다. 이 또한 그의 어머니 이야기가 소재다. 구미정 교수는 그의 글 '데기-되기: '선천댁'에 나타난 안병무의 '민중 구원론 다시 읽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안병무의 어머니 선천댁은 비문자 계층의 여성으로, 당대 거의 모든 여성들이 그러했듯이 가부장적 가족제도 안에서 차별과 희생을 겪었다. 식자인 남편의 모진 학대와 냉대 속에서 부엌데기로, 소박데기로, 바리데기로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를 버린 남편과 그 남편을 빼앗아간 첩에 대해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품기는커녕 연민과 자비로 보듬었다."
안병무의 민중신학이 선천댁의 '연민의 윤리'에서 발견한 민중의 자기초월적 단초라는 얘기다. 14세기 독일 신비주의 사상의 대가였던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하느님-아기를 낳음'에 견주어서도 설명한다. 엑카르트는 하느님의 본질을 '낳음'이라고 말한다. 오구굿 바리데기를 빌어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느님의 본질은 '또 낳음'이고 '되기'이며 다시 살아오는 그 무엇 아닐까. 그래서일 것이다. 오구굿의 말미는 "되아 오소 되아를 오소서"라고 노래한다. 죽은 자가 살아서 그 어떤 무엇으로 살아오는 과정이라는 함의다. 나는 내 어머니를 묵상할 때마다 늘 이 지점을 서성인다. 내 운문적 정조가 머물러 있거나 어쩌면 방황하는 경계일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버림받았지만 재생과 환생의 화신이 된 바리데기가 있고 당금애기가 있으며 연꽃으로 환생한 심청이 있다.
남도인문학팁
바리데기의 복선(伏線), 오구굿의 배후
남도지역의 오구의례를 위한 장치들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무속의례 자체가 매우 소박한 지역적 특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리듬과 선율, 곧 장단과 노래를 중심에 두는 심미안의 발로 때문이다. 당골은 작은 시루에서 넋당석을 거쳐 긴 실을 뽑아내며 바리데기의 내력을 읊는다.
실은 생명줄이기도 하고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다. 정월이라 초하룻날 납채(納采)를 들이고 이월이라 열이렛날 사성(四星)을 들인다. 삼월이라 삼짇날 부부인연을 맺었더니 태기가 생긴다. 한 달 두 달 이슬 모아 삼석달에 입덧 나더니 연이어 달을 거치고 열 달 만에 바리데기를 낳는다.
일생의 서사에 다름 아니다. 긴 출생의 여정 과정에서 일곱이라는 7수와 막내딸의 버림, 아버지의 병듦과 바리데기의 서천서역 여행이 융숭 깊게 노래된다. 부모를 구하기 위한 약수는 아홉 해 동안의 혼인생활과 아홉 아들을 낳아주는 조건으로 완성된다. 이후 아홉 아들과 더불어 좌정하니 오구 시왕(十王)이다.
내가 주목하는 이 드라마의 미장센들은 실과 시루와 넋당삭과 알곡들의 배후에 직조된 씨줄과 날줄의 은유들이다. 바리데기가 구하는 약수는 환생초이자 불로초이고 거듭남의 핏물이자 재생의 떡 덩어리다. 이승과 저승,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 시공을 넘나드는 무가의 사설들이 촘촘하게 배열되어 노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교 수용 이후 많은 변화들을 거쳤거나 재구성되었겠지만 바리데기 이야기가 죽은 자의 넋을 위무하는 절차로 연행되는 이유를 나는 여기서 찾는다. '되아 오소서' 오구굿 사설의 말미가 이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망자의 재생 혹은 부활에 대한 염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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