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 오사카 카페 ‘싸브’ 의 아리랑
1987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매년 일본을 방문했다. 북한 전문가 미야즈카 도시오宮塚利雄 前야마나시山梨학원대 교수를 만나거나 가이드를 받는 방문이고, KBS와 MBC 특집 프로그램 제작팀 일원으로 가기도 했다. 물론 모두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아리랑 관련 방문이었다. 특히 1994년에는 MBC특집팀과 작가 김경원씨의 가이드로 아리랑 필름 소장자로 알려진 아베安部씨의 인터뷰를 위해서 방일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났고 의외의 성과를 거두었다.
의외의 인물은 오사카 거주 동포 트럼펫 연주자 김병수씨다. 한국 재즈 뮤지션들의 일본 활동상과 아리랑 서예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해외 첫 아리랑 재즈 편곡작인 오스카 패티포드(Oscar Pettiford)의 ‘아디동 부르스(Ah Dee Dong Blues’의 사연을 만나게 해 준 인물이다.
김병수씨를 섭외한 것은 오사카 지역 저명인사로 아베씨가 우익계 인물이어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자는 뜻에서 동행을 청하게 되었다. 그동안 아베씨는 남측 인사들을 피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병수씨는 만나자 마자 역도산力道山 선생의 증언자라며 "역도산 선생이 술에 취해 혼자일 때는 아리랑을 불렀어요. 그 아리랑이 어떤 아리랑인지를 알기 위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라며 취재 동행에 선뜻 응해주었다. 사흘 내내 시간을 함께 내주었다.
이틀간의 오사카 공식 일정을 마쳤다. 취재 목적인 아베씨에게서 ‘영화’아리랑‘ 필름 소장所藏 경위와 공개 시기 등에 대해 인터뷰를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필름을 찾게 되면 남북의 관계자들에게 공개하겠다는 등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 하였을뿐이었다. 다음 날 미국으로 이동하기 위해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김 선생이 식사를 겸할 수 있는 좋은 카페로 안내하겠다며 "한국의 째즈 뮤직션 강태환과 김대환이 자주 오는 곳이에요. 나도 가끔 셰션으로 연주하는 곳이지요.”라며 앞장서 갔다. 깜작 놀랐다. 김대환이 거명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반색하여 물었다. "드럼 친다는 김대환을 말하는 건가요?”라고.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맞아요”라고 짧게 대답하며 까페 ‘싸브SABU’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카페는 테이블이 4개로 좁았다. 그런데 카운터 겸 스탠드 구석에 드럼과 베이스가 세워져 있고, 음반 자켓 서너 장이 벽면을 장식하여 재즈 카페임을 보여주었다. 앉자마자 물었다.
"여기에 드럼 치는 그 김대환이란 분이 자주 왔다는 말입니까?”
"예, 그래요. 여기 주인 싸부 선생이 베이스 연주자예요. 김선생과 강태환과 여러 투어를 하였지요. 오사카에서는 여기가 재즈뮤지션들의 거점이지요.”
김경원 선생, PD, 카메라맨, 음향담당자를 따돌리고 그저 김대화선생에 대해서만 물었다. 의외의 사연들을 들었다. 너무나 중요하고 놀라 운 이야기들이다. 먼저 오사카예술대학을 졸업해서 다년 간 오사카에 거주했던 김경원 선생이 한 아리랑 글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오사카에 김대환 선생의 아리랑 글씨가 많아요. 애국가도 있고 아리랑도 있어요. 그런데 지난해 서울에서 봤는데 거꾸로 한자를 쓴 것도 있더라구요? 우수右手 글씨라고도 하던데요?”
이 말에 먼저 김병수 선생이 거들었다. 옆의 테이블에서는 차를 시키지도 않고 우리를 보고 무슨 얘기가 그렇게 진지하냐고 바라봤다. 김병수 선생이 말을 받았다.
"이 카페에도 김대환 선생의 글씨가 있었어요. 작년까지 저쪽에 하나 붙어있었는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쓴 것이 있었어요.”
김병수 선생의 얘기대로라면 ‘애국가’의 후렴을 쓴 것이 분명하다. 김선생이 애국가 후렴을 썼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다. 이에 대해 김경원 선생이 의외의 사실을 알려주었다. 김대환선생이 처음 일본에서 재즈투어를 하며 팬들에게 써준 것은 ‘애국가’ 후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조총련 측 팬들이 문제를 삼았다. 당연하였다. 그래서 북한 애국가를 쓸 수는 없고 해서 대신하여 쓴 것이 아리랑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본 아리랑은 세 가지라고 했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고 발병난다”
서울 인사동 까페 ‘청동시대’에서 본 아리랑 글씨의 존재 배경과 저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정리하면 김대환 선생의 아리랑 서예 작품은 일본에서 팬들에게 서비스로 써주기 시작한 것으로 ‘애국가’ 대신으로 선택된 것일 뿐이다. 그렇다 해도 독특한 필체의 작품 아리랑은 일본인들에게는 한글의 아름다움과 아리랑을 알리는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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