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이규진(편고재 주인)
국보 제219호인 백자청화매죽문호(白磁靑華梅竹文壺)는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이다. 높이가 41Cm나 되는 당당한 크기에 청화로 앞뒤에 매화와 대나무를 그려 넣은 초기 백자청화를 대표하는 명품 중에 명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품도 구입 당시에는 진위가 의심스럽다는 주장이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물건이다. 다행이었던 것은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똑 같은 양식의 백자청화매죽문호편이 발견되어 그러한 의심을 잠재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백자청화매죽문호에 대한 저간의 사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미술관 리움이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 중의 하나다. 그런 권위 있는 기관의 구입 물건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은 일반 시중에서는 얼마든지 진품을 놓고도 엉뚱한 시비가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삼성미술관 리움이 물건을 구입하려면 관련된 전문가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세간의 평판이라는 것이 얼마나 믿기 어려운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백자초기청화는 귀하다. 수십 년 고미술업에 종사한 사람 중에서도 초기청화를 만져 본 사람은 흔치 않다. 그렇다고 하면 초기청화에 대한 문외한은 의외로 많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외한들이 나서서 감정을 하게 될 경우 어떻게 될까. 재미있는 것은 가짜를 진품으로 감정을 할 경우 언젠가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진짜를 가짜로 판정해 나중에 책임을 감수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하면 감정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처음 보는 것이거나 감정에 자신이 없는 물건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게 될까. 심정적으로 당연히 책임이 없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자청화뚜껑편은 잠시 동안이지만 시중에서 바람을 쏘였던 물건이다. 바람을 쏘이는 동안 여러 가지 말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값이 저렴해 지는 바람에 구입을 할 수 있었으니 나로서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나 할까. 내가 이 것을 구입한 것은 내 나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래를 할 물건이 아니어서 나로서는 비교적 자유스러운 입장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구입 후 나보다도 더 오래 고미술에 관심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한국도자전집 출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선배에게 보여 주었더니 횡재를 했다고 치하를 해주었다. 나 또한 이 백자청화뚜껑편을 볼 때마다 가치에 비해 헐값에 구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기분이 매우 좋아지고는 한다.
백자청화뚜껑편은 연봉오리 모양의 꼭지가 달리고 그 아래로는 단을 이루듯 층을 만든 뒤 끝 부분이 꺽여지며 마우리 되는 전형적인 초기 백자 항아리의 뚜껑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온전치가 않다는 점이다. 토진(土塵)이 묻어 있는가 하면 일그러지고 터진 부분도 여러 곳이 있다. 한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모래가 묻은 부분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일부러 꾸며서 인공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흔적들이 아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청화의 발색이다. 아무래도 조선 초기의 청화는 중국에서 수입을 한 것이다 보니 명 초기의 백자에서 보이는 특징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의 것을 보면 청화가 검게 뭉쳐 터지는 것 같은 부분을 볼 수 있는데 백자청화뚜껑편의 청화 또한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조선 초기의 백자청화뚜껑편인 것이다.
청화의 문양은 들국화 절지문을 세 군데 배치하고 그 사이에 나비가 두 마리 보인다. 이런 모양의 들국화는 보물인 백자청화망우대명초충문잔탁(白磁靑華忘憂臺銘草蟲文盞托)과 백자청화매조죽문호(白磁靑華梅鳥竹文壺)에서 보이는 형식이다. 나비 중 한 마리는 날개를 활짝 편 상태고 또 한 마리는 날개를 접은 모습이다. 꽃과 나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나비는 꽃에서 꿀을 채취하고 꽃은 나비를 통해 꽃가루를 전파한다. 공생관계로 밀접한 관계인 것이다. 왜 백자항아리 뚜껑에 이런 문양을 넣어야 했을까. 자연의 섭리 같은 것을 염두에 두었던 것일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문양은 그 의미하는 바가 심상치 않은 것들이 많다. 들국화와 나비도 그 의미하는 바는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깊은 속내를 어찌 알 수 있으랴.
리움 소장의 국보 제219호 백자청화매죽문호에 대한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고 있는 가운데 동서고미술 백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텔레파시가 통한 탓일까. 백사장은 자못 흥분된 목소리로 방금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백자 전시를 보고 나오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일본에 있는 것과 한국의 명품 백자들이 함께 전시되고 있는데 정말이지 그 수준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기계치에 속한 편이어서 아들에게 인터넷 예약을 부탁 했더니 이미 관람 신청이 보름 정도가 밀려 있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보긴 꼭 보아야 하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옳을까. 관람 방법을 고심해 보아야 하겠지만 그런 전시가 열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봄을 앞두고 우리 고미술계에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꽃이라도 활짝 핀 느낌이어서 여간 황홀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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