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이 책은 한 저널리스트가 조선 광해군 때의 문신 박엽(朴燁)이 인조반정 이후 ‘파렴치범’으로 몰려 처형된 사건에 관한 진실을 찾아 나선 행적과 기록이다. 저자 이동식은 관찬 사료와 야사·야담은 물론 개인 문집, 후세의 기록과 평가 등 사료를 두루 섭렵하면서 ‘역사’라고 하는 ‘거대한 기억’ 속에서 사실과 진실을 마주하고자 했다.
역사란 문자화된 기억이다. 즉 한 사회가 겪었던 일들에 대한 공식화된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역사는 또한 선택된 기억이다. 문자를 지배하는 자들, 결국 힘 있는 자들이 자기의 구미에 맞는 기억만을 선택하여 문자로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김세걸, ‘기억 전쟁의 미로찾기’).
사후 40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박엽을 소환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작금의 정치 현실에 빗대어, "역사의 죄인으로 처형된 한 문인 장수의 진정한 면모를 우리가 기억하고, 그의 억울한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정치행태를 거울로 삼아 박엽 이후의 정묘, 병자호란과 같은 고통과 치욕을 우리 국민이 다시 겪지 않을 수 있다면 긴 탐색과 고민의 시간이 보상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박엽을 ‘조선의 만리장성’으로 비유한 선인들의 탄식과 맥을 같이 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예컨대, 조선 후기 《매산집》을 저술한 홍직필은 "정묘, 병자 두 호란을 겪고 나서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박엽의 처형으로 스스로 만리장성을 허물었다고 통탄했다.”라고 전한다.
저자는 "박엽에 관한 기록들을 다시 검토하고 분석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얻었다. 이 책을 통해 역사의 죄인으로 처형된 한 문인 장수의 진정한 면모를 현대의 우리가 기억하고, 그의 억울한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정치행태를 거울로 삼아 박엽 이후의 정묘, 병자호란과 같은 고통과 치욕을 우리 국민이 다시 겪지 않을 수 있다면 지난 시간의 긴 탐색과 고민의 시간이 보상받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분석했다.
박엽 (朴燁, 1570~1623)은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숙야(叔夜)이고, 1597년(선조 3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1601년 정언(正言)이 되고, 이어 병조정랑·직강(直講)을 역임하고 해남 현감 등을 지냈다. 그 뒤 광해군 때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광해군의 뜻에 따라 성지(城池)를 수축해 북변의 방비를 공고히 하였다. 그리고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평안도 관찰사가 되어 6년 동안 규율을 확립하고 여진족의 동정을 잘 살펴 국방을 튼튼히 해 외침을 당하지 않았다. 당시의 권신 이이첨(李爾瞻)을 모욕하고도 무사하리만큼 명망이 있었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 뒤, 광해군 아래에서 심하(深河)의 역(役)에 협력하고, 부인이 세자빈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박엽을 두려워하는 훈신들에 의해 학정의 죄로 평양 임지에서 처형되었다.
저자 이동식(李東植)은 1953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7년부터 2013년까지 36년간 KBS에 재직하면서 문화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사회부 기자, 문화부 차장,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을 거쳐 보도제작국장, 정책기획본부장, 해설위원실장, 부산총국장 등을 역임했다.
1984년 백남준을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이우환, 이응로, 윤이상 등 문화예술인들을 다큐멘터리로 소개했으며, 중국 실크로드를 처음으로 취재해 방송하기도 했다.
저서로 《온계이해평전》《책바다 무작정 헤엄치기》《천안문을 열고 보니》《길이 멀어 못 갈 곳 없네》《찔레꽃과 된장》《우리 음악 어디 있나》《아니되옵니다》《숨 좀 쉬어요》《거문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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