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이규진(편고재 주인)
예쁘다 귀엽다 앙징맞다 등등은 작은 것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령 도자기에서 백자달항아리처럼 큰 기물을 두고 예쁘다 귀엽다 앙징맞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큰 것들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청자굽다리잔편이야말로 예쁘다 귀엽다 앙징맞다라는 말이 거부감 없이 꼭 들어맞는 기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자굽다리잔편은 우선 크기가 아주 작다. 크기가 작을 뿐만 아니라 생김새 또한 묘한 매력이 있다.
청자굽다리잔편은 전체적인 크기에 비해 굽이 상당히 높다. 그리고 높은 굽다리 위에는 반파된 잔이 붙어 있다. 이와 비슷하게 높은 굽 위에 완이나 접시를 얹은 형태의 그릇은 그 역사가 아주 오래다. 오래 전에는 이런 기물을 두고 두(豆)라고 불렀기 때문에 무문토기 단계에서는 두형(豆形)토기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삼국시대 토기에 와서는 고배라고도 하고 굽다리접시라고도 하는데 남부 지역에서 주로 제작이 되었다. 4세기 전반 경 가야지방에서 도질토기가 제작된 후 가야와 신라에서 경질 토기로 5~6세기 전반까지 유행한 기종이다. 원래는 뚜껑이 없는 무개고배로 제작되다가 유개고배로 발전한 양식이다.
고배처럼 높은 굽에 완이나 접시가 달린 기종은 청자나 분청이나 백자에서도 보인다. 이를 두고 고족배(高足杯)나 마상배(馬上杯)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고족배는 이해가 되지만 마상배는 아무래도 이름 자체가 의심스럽다. 굽이 높아 손으로 말아 쥐기가 편해 말 위에서 사용하는 잔이라는 뜻인데 과연 그럴 여지가 있는 것일까. 옆구리에 차거나 말에 부착했다가 사용하는 편병 정도는 이해가 가지만 마상배는 아무래도 나로서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 명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자굽다리잔편은 약간의 오목굽 형태인데 유약을 흝어내 붉은빛의 노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굽으로 벌어졌던 다리는 좁아지며 올라가다가 다시 벌어져 잔으로 연결된다. 유색은 비색에 가까우며 잔 안에는 중앙의 흑점을 중심으로 주변에 다섯 개의 백점을 퇴화로 찍어 꽃문양을 나타내고 있다. 작은 형태에 퇴화의 꽃문양은 잔이 깨져 달아나는 바람에 오히려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손상된 부분마저도 커버를 하며 이래저래 예쁘고 귀엽고 앙징맞다라는 느낌이 절로 들게 만들고 있다.
이 예쁘고 귀엽고 앙징맞은 청자굽다리잔편은 언제 어디서 구한 것일까.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 전에 인연을 맺어 내게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면 이 청자굽다리잔편은 어디에 사용되었던 것일까. 생김새로 보아 모르면 몰라도 술잔이 아니었을까 짐작을 해볼 뿐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처럼 아름다운 술잔에 어울리려면 여기에 따라 마셨을 술 또한 그야말로 구하기 힘든 감로주라도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던 박인환 시인의 시 '목마와 숙녀'는 아니더라도 이 술잔에 한 잔의 술을 마시는 상상이라도 해보며 나는 고려인들의 애틋한 꿈과 감미로운 사랑 이야기라도 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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