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이규진(편고재 주인)
근래 후배에게 넘겼던 '백자청화초화문각병편'을 다시 찾아 왔다. 벌써 오래 전 일인데 당시 무슨 심뽀로 마음을 비웠던 것인지는 기억이 없다. 다만 그 후 후배 집을 방문할 때마다 이 도편이 눈에 밟혀 조르고 조른 끝에 다시 찾아 온 것이다. 후배는 그동안 정이 들었다고 안 내놓는다 것을 구미가 당길만한 것을 내주고 빼앗다시피 되찾아 온 것이다. 내가 이처럼 이 도편에 대해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마도 추초문으로 일컬어지는 백자청화초화문이 내게 단 한 점도 없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았을 것이다.
중부고속도로 경안 나들목을 빠져나와 번천리에서 고개를 넘으면 도마리다. 좌측의 도마리 제1호 백자가마터를 지나면 바로 삼거리인데 여기서 우측의 퇴촌 방향을 버리고 조금 더 직진을 하면 고개에 이르기 전에 좌측으로 도랑을 낀 골짜기가 나온다. 골짜기 우편 끝 산사면에 면한 밭이 있는데 여기가 이른바 도마리4호 백자가마터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관요인 도마리 제1호 백자가마터와는 달리 그 이전 시기의 것이다. 따라서 흑상감도 보이고 사옹원을 뜻하는 듯싶은 사자명 같은 것도 보인다. 그러니까 이곳은 관요 이전의 백자가마터로 청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먼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백자청화초화문각병편이 이곳에서 발견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추초문이라고 하는 청화초화문은 18세기 전반 그러니까 금사리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시기에 이르면 깨끗한 설백의 유색에 사대부 문인들의 정신적인 고양감을 드러내기라도 하려는 듯 간략하게 청화로 초화문이 그려진다. 그런데 이 초화문은 대개가 대지를 의미하는 듯싶은 밑줄을 긋고 그 위에 그림이 전개된다. 하지만 백자청화초화문각병편의 초화문은 밑줄이 없다. 이처럼 밑줄이 없는 초화문으로는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아타카켤렉션) 소장의 백자청화초화문면취병이 있다. 높이가 24Cm나 되는 당당한 크기에 적당한 비례로 면을 친 몸체에 초화문을 넣고 있다. 밑줄이 없는 것은 청화초화문으로서는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두 점 모두 굽이 안굽인 것도 흥미롭다.
자, 그렇다고 하면 여기서 한번 생각을 해보자.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도마리 제4호 백자가마터는 관요 이전의 가마로서 청화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왜 이 백자청화초화문각병편이 이곳에서 보였을까. 논밭에서 농부가 일을 할 때면 때에 맞추어 음식을 내가게 된다. 술도 곁들일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하면 백자청화초화문각병편은 술을 내가던 술병이 여기서 손상을 입었던 것일까. 하지만 금사리 시기에 만들어진 술병에 청화로 초화문이 들어갈 정도면 보통 귀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귀한 술병을 농부의 일터에 술을 내갈 때 사용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백자청화초화문각병편의 진실은 무엇일까.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자료가 있다. '미술사학연구' 제294호에 게재된 타시로 유이치로의 `추초수를 통해 본 근대 일본의 조선백자 인식`이라는 글에 나온 내용이다. 1942년에 간행된 입정주일랑의 '이조염부'와 전중풍태랑의 '이조도자보'에는 각각 추초문 도편을 도마리 가마터에서 찾았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이를 15~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호암컬렉션 전시와 '동양도자'에 실린 국립중앙박물관 최순우 관장의 인터뷰를 통해 초기 것이 아닌 것으로 수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도마리에서 추초문이 발견된 것만은 사실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 또한 도마리에서 백자청화초화문각병편 실물을 실견했으니 이를 어쩌랴.
백자청화초화문각병편은 현재 남은 부분이 비교적 작은 편이다. 안굽에 모래받침을 하고 있으며 유약은 설백색에 고운 빙렬이 있다. 면은 세 면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발색이 좋은 청화로 초화문을 넣고 있다. 초화문은 밑줄이 없으며 난초 같은 몇 줄의 선에 꽃이 보이기는 하지만 부분만 남아 있어 종류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면을 쳐 뽑아 올린 각병에 청화로 초화문이 어울린 원래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을까.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출토지와 관련해 미스터리가 너무도 많은 이 청화백자초화문각병편을 후배로부터 되찾아 와 나는 왜 다시 궁금증으로 인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잘 알 수가 없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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