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지난 회에 이어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의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의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지난 회에서"수학은 학생들이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교과목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학생들에게는 가장 외면 받는 존재가 되었다”라며 거기에 얽힌 여러 가지 문제점과 의미들을 짚어 보았다. 이번 회에서는 수학과 예술, 인문학의 관련성에 대해 탐색해 보고자 한다.(조선일보, SBS 등 보도기사 참조 및 인용)
허준이 교수는 며칠 전 서울대학교 2022학년도 여름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좇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 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타인과 다르다는 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상대평가의 기준에 자신을 모질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 줍니다. 취업, 창업, 결혼,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의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정신 팔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 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수학은 무 모순이 용납하는 어떤 정의도 허락합니다. 수학자들 주요 업무가 그 중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인데,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한 여러 가지 약속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끌어내는 지가 그 가치의 잣대가 됩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하니 들뜬 마음에 모든 시도가 소중해 보입니다. ~”
시인을 꿈꾸던 수학자다운 말 같지만, 수학과 무 모순에 대해 언뜻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언어를 말한다. 이에 관련하여 허 교수는 다른 인터뷰에서 시와 수학과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보면 공통점이 많아요. 시는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표현 양식입니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언어로 소통하려는 시도니까요. 그래서 시적 모호성이 생기죠. 수학은 땅으로 끌어내리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을 수와 논리로 표현해 공유하는 거고요. 둘 다 대상을 고도로 함축해 강력한 상징을 만들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 교수는 입시와 연관된 수학교육에 대해 또다시 아쉬움을 나타낸다.
"처음엔 수학이 재미있었지만, 입시와 연관돼 있어 수학의 기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중3 때 경시 대회 나가볼까, 과학고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하시더군요. ‘나는 수학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해 버리게 됐어요. 수학자가 된 지금 돌이켜 보면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한국 사람들은 ‘뭘 하기에 늦었다’는 말을 너무 많이, 가혹하게 해요.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어떤 일이라도 시작하기에 늦은 일은 없지 않을까요?”
수학자인 허 교수의 자녀에 대한 수학 교육은 어떨까.
"저희 애는 수학에 영 관심이 없어요. 대신 K팝 천재 같아요. 드럼 비트 한 번만 들어도 BTS 노래인지, 블랙핑크 노래인지 다 맞힌다니까요!”,
그러나 허 교수는 아이의 수학교육에 대해서는 아이가 수학문제를 내게 해서 허 교수가 답을 풀어주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허준이 교수에겐 예술가의 피가 흐른다. 한국 근대 조각의 거장 권진규(1922~1973)의 조카 손자이다. 어린 시절 집 안 구석구석 권진규의 테라코타 조각상이 있었단다.
"밤에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나요. 집안 어른들이 유명 조각가라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제가 좀 컸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사는 게 그만큼 힘들 수도 있구나 생각했죠.”
뉴호라이즌 상을 수상했을 때 허 교수는 "수학자의 내적 동기는 예술가의 그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실제로 옥스퍼드 대 수학과 교수이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처럼 예술과 수학을 병행한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허준이 교수의 스승인 일본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하버드대 명예 교수도 한 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다고 한다.
이에 따라 허 교수는, "기질적으로 비슷한 지점이 있어요. 둘 다 추상적 대상을 공유하면서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요. 내가 굉장히 애써서 어떤 아름다움을 간신히 봤는데 나만 아는 게 아니라 너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랄까요?”라고 말했다.
시와 관련한 허준이 교수의 요즘 근황에 대해서는, "쓰지는 않지만 많이 읽습니다. 최근엔 시인 데이비드 화이트의 작품을 즐겨 읽어요. 그의 산문 '위로'는 특히 강추!”한다고 말하면서 "언어를 굉장히 정교하게 사용해 곱씹으며 읽는 즐거움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허 교수의 견해는, "수학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문학, 물리학 등은 자연이 만든 대상을 연구하는데 수학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걸 연구해요. 그런 면에서 철학, 인문학과 오히려 결이 비슷하죠.”라고 말했다.
따라서 수학은 큰 범주 안에서의 예술이며 융합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정리하면 어떨까.
※ 위 내용은 외부 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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