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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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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102>

  • 특집부
  • 등록 2022.08.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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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소리

 

이 동 희

 순명順命 <4>

참으로 민망하고 얼굴을 들 수가 없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천금을 잃은들 그보다 더 가슴이 아플 수가 없었다. 도의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죄 짓는 일 악하고 추한 일을 절대로 하지 않고 제 정신으로 길이 아닌 데를 가지 않고 말이 아닌 것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늙고 쇠하니 볼성 사나운 일이 자꾸 생기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어찌 할 수가 없는 일이지만 임금 앞에 보이게 되어 괴로웠다. 자신을 생각해 주고, 그것이 총애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껴주고 존중해 주는 임금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슴 아팠다. 나이가 들고 늙으니 그런 마음이 더 하였다.

그런데 자꾸 그런 일이 생기고 그렇게 보기 싫은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아들의 일이었다.

전 현감縣監 정우鄭瑀, 행사정行司正 박연의 아들 朴自荊으로 사위를 삼았는데 자장資裝을 갖추지 못한 것을 불만족하게 여기고 또 여자가 뚱뚱하고 키가 작으므로 실행失行하였다고 핑계를 대고 버린다고 하므로 의금부義禁府에 내려 국문鞫問하고 있으나 오래도록 정상情狀을 얻지 못하였다고 고하였다.

자장은 시집갈 때 가지고 가는 혼수이다. 그리고 실행은 도의에 어그러진 좋지못한 행실을 말한다. 박연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자식의 일이지만 너무나 죄스러웠다. 그런데 임금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어 말하는 것이어서 더욱 황송하였다.

"대저 옥을 결단하는 데는 대강을 잃지 않는 것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 의금부에서 한갓 자형이 술에 만취하여 술주정을 한 것 등의 일로써 판결을 하려고 하니 모두 끝이다. 그 여자가 만일 참으로 실행을 하였다면 자형이 그날 밤에 당연히 곧 버리고 갔을 것이다. 그대로 그 집에서 자고 아침이 되어 유모乳母가 정가鄭家에 오매 예물을 주어 보냈으니 혼례는 이루어진 것이다. 자형이 이불 요와 의복이 화려하지 못한 것을 보고 빈한貧寒한 것을 싫어하여 실행하였다고 청탁하여 버리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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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임금은 사안을 잘 알고 있었다. 정우의 편을 들지 않고 박연의 편을 든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있었다.

의금부에서 다시 국문하니 임금의 말대로였다. 자형이 무고誣告에 좌죄坐罪되어 장60에 도1년에 처하고 다시 완취完聚하게 하였다.

완취는 흩어진 가족이 함께 모여 산다는 뜻인데 두 사람이 갈라서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다.

박연은 더욱 송구하고 죄스러웠다. 정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자식을 특별히 가르친 것은 없었지만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았었다. 늘 아침 저녁으로 밥상에서나 특별한 날에 중뿔나지 말고 쳐지지 말고 절대로 과욕 허욕은 부리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말하였다. 가난하고 빈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의로운 일을 하는 것보다 의롭지 못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물려준 것은 그런 중언부언밖에 없었다. 그러나 늘 불만이고 아버지를 답답하게 생각하였지만 거역하지 않고 따라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다들 제 앞 가림은 하였다. 큰아들 맹우는 현령으로 정5품 둘째 중우는 郡守로 정4품 세째 계우는 집현전 한림으로 정9품으로 시작을 하여 잘 못 되긴 하였지만 아버지 박연은 자식들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었다. 늘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자형은 어느 자식의 별호인지 필자로서는 알 수가 없다. 족보를 뒤져보면 정우의 딸인 며느리가 나올 것이다.

좌우간 그리고 얼마 후의 일인데 불미스러운 일로 파직을 당하였다. 정말 다른 무엇보다 악학제조樂學提調는 그동안의 어떤 일보다도 마음에 들고 맡고 싶었던 직위로서 스스로 참으로 대견스럽게 여기던 자리가 아니었던가. 덕이 부족하고 늙고 불민한 탓이었던가. 정말로 비뚫어지고 영악해지기 시작한 것인가.

사헌부에서, 박연이 휴가를 얻어 귀향하더니 누이가 죽으매 서울에 돌아갈 날이 급하였다고 핑계하여 나흘만에 장사 지내고 드디어 재선을 나누어 짐바리에 싣고 왔으며 또 악하제조로서 사사로이 악공樂工을 데리고 영업행위를 하게 하였다고 아뢰었다. 그리고 죄를 주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명하여 그 직을 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