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5 (수)

[문화칼럼] 비비안 마이어, 죽음을 넘어 빛이 된 비운의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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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비비안 마이어, 죽음을 넘어 빛이 된 비운의 사진가.

소멸이 내가 반짝이는 방식이다”
필리프 자코테, ‘종말이 우리를 환히 밝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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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의 자가 촬영 사진

 

소멸함으로써 빛을 발하던 한 여인의 자가 촬영 사진. 그녀는 한평생 가치 있는 사진을 찍어왔지만 사망 직후에서야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이 비극적이지만 명예와 영광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기술한 책,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를 소개하려 한다.


이야기는 2008년 12월, 시카고 로저스 파크에서 한 노파가 빙판에 쓰러진 채 발견된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의 이름은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수십 년 동안 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진을 보지 못한 비운의 사진가이다. 그녀는 생사를 헤매다 2009년 4월 26일 사망한다. 장례는 그녀가 옛적에 17년간 보모로서 보살펴왔던 존, 매튜 그리고 레인 겐스버그 삼형제에 의해 치러졌다. 그들은 비비안의 초상을 요약해서 <시카고 트리뷴>에 게재했다. 그것이 그녀의 사진이 빛을 보게 된 계기가 됐다.


'시카고 트리뷴'에 존재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젊은 부동산 중개인 존 말루프가 찾던 것이었다. 그는 2007년에 열린 경매에서 비비안의 네거티브 필름이 담긴 상자를 샀다. 2년 후, 그의 감각적인 안목으로 자신이 구매한 것이 비범하다는 것을 확신했고, 구글 검색을 통해 얼마 전 올라온 그녀의 장례 보고서를 발견했다. 그 후로 삼형제를 만나 그들이 알고 있는 비비안 마이어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삼형제는 기억했다. 그녀는 카메라를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숨 쉬듯이 사진을 찍었다. 마치 자신의 생명이 그것에 달린 것처럼.” -25p


존 말루프는 자신이 보물을 발견했다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사들인 다른 구매자들을 찾아내 대부분의 사진을 사들였다. 하지만 뉴욕의 대형 미술관들은 그와 협력하기를 거부했다. 결국 그는 이베이에 네거티브 필름을 팔아 번 돈으로 시카고 문화센터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전시회를 열었다. 대중은 열광했고, 곧 이 파급력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존 말루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Finding Vivian Maier>를 제작했다. 이후 세간의 반응은 확실하게 좋았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는 지저분한 거리, 얼룩이 있고 찢긴 더러운 옷들이 등장한다. 구멍 난 신발과 도랑에서 노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지친 여자들과 세속적인 남자들이 등장한다. 두아노풍의 부드러운 노스텔지어는 전혀 없고, 학교 의자에 앉은 꿈꾸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앞에서, 정면에서 포착한, 전혀 미화되지 않은 현실이 그 속에 담겨 있다.” -36p


위의 글처럼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는 사람들과, 그들의 미화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포착돼 있다. 사람 또는 삶의 형태에 초점을 맞춘 그녀의 사진과는 달리 인생은 외롭고 고달팠다. 그 어두운 인생의 내막은 이 책의 저자인 가엘 조스와 존 말루프에 의해 세상에 나온다.


비비안 마이어는 1926년 2월 1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불화로 인해 남편과 헤어졌고 불량아인 오빠가 빈번히 사고를 일으키는 가운데 혼자 방치되었지만, 친할머니 마리아 하우저 마이어와 외할머니 외제니에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가난한 어머니와 비비안의 소식을 들은 뛰어난 사진가 잔 베르트랑이 모녀를 자기 집에서 지내게 해주었다. 저자 가엘 조스는 비비안의 사진가적 재능의 토대가 이 시기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후 1932년에 어머니의 고향 프랑스로 가서 6년을 보낸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어머니를 따라 돌아온 뉴욕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할 상황이 되자 보모 일을 직업으로 택한다. 일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할머니와 외할머니, 이모할머니의 유산으로 구매한 사진기 롤라이플렉스로 여러 사람들을 찍어왔다. 후에 시카고에서 50여년을 가난한 보모로 살면서도 사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작업은 사람들의 얼굴에, 초상 사진에 집중되었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아메리칸 드림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피곤한 노동자들, 장애인들, 삶에 지친 여자들, 씻지 못해 지저분한 아이들, 노숙자들의 얼굴에. 가끔은 보석으로 치장하고 모피를 두른 채 험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상류층 여성이나 더블 버튼 정장 차림에 시가를 문 채 짜증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는 사업가 남성의 모습을 냉소적인 눈으로 포착하기도 했다.” -111p


비비안이 어떻게 사진가적 재능을 발견했는지는 미스터리이다. 카메라 조작법을 알고 있던 어머니에게서 또는 어린 비비안을 돌봐준 잔 베르트랑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모두 추측일 뿐이다. 게다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어쩌면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가 찍은 사진들에 대부분 사람이 찍혀 있다는 사실이 의문이지 않은가. 비비안은 그녀가 돌보는 아이들, 거리의 사람들을 사진에 담아내는 데에 평생을 바쳤다. 가난한 그녀가 자신을 돌볼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왜 사진에 집착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또한 가치 있는 필름들을 한가득 가지고 있었으면서 전문가들에게 보내지 않았는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인간관계에 상처가 있는 그녀가 왜 사람의 사진을 찍었을까? 그녀의 삶에는 수많은 상처와 이별, 외로움이 함께했는데 어떻게 사진에서 공감과 연민의 시선이 느껴질까? 수많은 사람의 사진을 찍으며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평생 카메라에 담아왔던 사진들이 빛나고, 자신은 그 뒤에서 역광을 맞길 바라지 않았을까.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비비안 마이어의 일생, 그리고 그 이후. 저자인 가엘 조스가 집요하게 찾아낸 단서들이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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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 표지 (사진=뮤진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