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5 (수)

[PICK인터뷰] 음향전문가 허진, “국악기 변화로 청중 신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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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인터뷰] 음향전문가 허진, “국악기 변화로 청중 신나게”

스피커 제작 경험, 국악기 개량 접목
귀를 사로잡는 악기를 위해
국악 대중화, 악기 개량으로 구현
해금 장고 북 소재 음량 개량

스피커와 한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언뜻 보면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허 진 음향전문가이다. 그는 소가죽과 한지를 스피커 진동판의 재료로 적용하면서, 원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한국적 깊이를 더하는 방법을 연구했으며, 이와 관련한 다수의 특허등록과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지 스피커는 교과서에(2 영어) 소개되어 한지의 우수성과 함께 언급되기도 했다또한 오랫동안 연구해 온 스피커 음향, 측정기술, 소재(재료)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해금, 장고(장구), 북 등의 개량 악기를 선보이며, 국악의 대중화에 발맞춰 가기를 모색하고 있다국악신문은 그의 음향과 국악기 개량에 대한 열정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712일 경기도 용인에 소재한 그의 작업실에 찾아 갔다.

 

 [국악신문] 허 진 음향전문가. (사진=류정은 기자) 2022.07.12.

 

Q. 선생님께서는 주로 스피커(가정용, 공연용) 개발에 주력하셨는데요, 국악기 개량을 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A. 어렸을 때 충남 예산에 살았는데, 그 시골 동네에서 가족 모두가 농악(국악)을 좋아했어요. 그 때는 명절, 동네잔치 할 때 농악 많이 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것 보고 자랐고, 지금도 형제들도 취미로 국악 하고 있을 정도에요. 음악을 좋아해서 27세에 스피커 만드는 일을 시작했는데, 스피커는 서양에서 온 것이라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없는 게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좀 더 한국적인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마음속으로 늘 찾고 있었어요.

30대 초에 아는 친구 권유로 장구를 배우러 다녔는데, 장구를 가만히 보니, ‘스피커 진동판을 장구 가죽(소가죽)으로 만들면 스피커에서 좀 더 한국적인 소리가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특히 발수(撥水, 물의 흡수를 막음), 재질의 균일성, 강도 조절 같은 것에 중점을 두고 연구했어요. 당시에는 펄프, 케블라(섬유의 한 종류), PP(폴리프로필렌) 같은 재료를 썼거든요.

3년 정도 개발 했는데, 모든 작업이 처음이라 쉽지 않았어요. 안산창업보육센터(중소기업진흥공단) 에서 과제로 개발하고 발표했고, 언론에도 나왔어요. 판매도 했는데, 오디오 마니아 분들 반응이 엄청 좋았어요.  그 기술을 적용해서 장구, 북 만드는데도 연구하게 됐죠.

  

고유 기술과 새로운 소재로 다양한 도전


Q, 개량 작업 하신 대표적인 악기는 어떤 것이 있으며, 각 악기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A. 해금, 장구에요. 예전에 어떤 분에게 스피커를 팔았는데, 그 분이 사정상 돈 대신에 해금을 주셨어요. 처음에는 걸어 놓고 보기만 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저것도 개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당시, 스피커 만드는데 도움을 얻으려고 바이올린 제작을 공부했어요. 제작자에게 직접 가서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했고, 이론은 독학으로 했어요. 그러던 중에, 이 기술을 해금에 접목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3년 정도 제작기간이 걸려서 해금을 개량하게 됐어요. 올해 초에 완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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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기존의 해금(좌)과 허 진 음향전문가가 제작한 해금(우). 울림통, 원산, 입죽, 주아를 개량했다. (사진=류정은 기자).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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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허 진 음향전문가가 제작한 해금. (사진=류정은 기자). 2022.07.12.

  

해금의 울림통, 원산, 입죽, 주아를 개량했어요. 통 관련해서 실용신안 1, 디자인도 3건 등록했습니다. 디자인별(기능별)로 해금 4종류를 개발했는데, 전체적으로 (음역이) 광대역이고, 주파수가 평탄하고, 기존 해금의 소리뿐만 아니라 더 맑은 소리까지 가능하도록 했어요. 기존의 해금은 공명 주파수를 조금 이용해서 저음역을 표현했지만, 저는 공명 주파수를 최대한 이용해서 저음역을 확장했어요. 다른 기술도 적용해서 고음역도 기존 해금만큼 나오게 했습니다.

또 원산의 재질과 구조를 변형해서 줄에서 생긴 진동이 원산을 통해 정확하게 복판에 전달되고, 증폭되도록 했어요.

주아의 방향을 반대로 해서, 음을 맞출 때, 조이기에도 쉽고, 더 정밀하게 조일 수 있도록 했어요. 주아 끝부분을 실리콘으로 끼워서 음의 손실을 적당히 주고, 음의 해상력(정확도)도 높였구요. 복판에 발수처리를 해서 습기 때문에 변형되는 것이 줄어드는 장점도 있습니다.

입죽도 타원형으로 했어요. 잡을 때 잘 돌아가지 않도록 했죠.

 

장구는 채편을 먼저 개발하고, 최근에 궁편을 했어요. 가죽 대신에 섬유 재질로 만들었는데, 섬유에 특수 개발한 코팅재료를 사용해서 가죽 이상으로 소리 나게 했어요. 울림이 더 좋고, 습기에 강합니다. 소리의 균일성이 뛰어나고, 내구성도 좋아요. 탄력성(복원력)도 좋아서 연주할 때, 힘이 덜 들죠. 기존 다른 업체들도 섬유로 만들었지만, 저는 소리 크기, 울림, 탄력성, 내구성 면에서 전문가용까지 가능하도록 기술적으로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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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허 진 음향전문가가 제작한 장고(장구). 채편과 궁편 제작에 섬유와 특수 개발한 코팅재료를 사용했다. (사진=류정은 기자). 2022.07.12.

 

Q. 악기 개량에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A. 제가 스피커만 오래 해서 늘 듣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예전에 국악은 집안 몇몇 사람들에게 연주됐지만, 지금은 집 밖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있어요. 사람들은 서양음악(대중음악)에 길들여져 있는데, 서양악기는 음역이 넓고, 음의 분리도 명확합니다. 국악기도 충분히 고유의 장점이 많지만, 지금보다 음역이 넓고, 음의 해상력도 높아져야 곡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고, 듣는 사람들도 더 만족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런 부분을 보완해서 전통악기가 가지는 장점을 살리면서 경쟁력 있는 악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음악은 혼자 방에서 들을 수도 있고, 큰 공연장에서 들을 수도 있잖아요. 각 상황에 맞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연구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악기를 담당하는 마이크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공연장에서 어떤 악기가 어떤 스피커로, 어떻게 설치되어야 소리가 더 잘 전달되는지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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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허 진 음향전문가는 스피커 음향 측정 기술을 활용하여 소리크기, 주파수 대역, 소리의 편차를 측정하고 있다. (사진=류정은 기자). 2022.07.12.

 

음역 넓히고, 음 해상도, 내구성 보완

 

Q. 개량 하신 악기의 보급, 판매는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가요?

A. 제가 만든 악기 특징이 음역이 넓고, 음의 해상력이 보완된 것이라서, 독주나 크로스오버 음악 하시는 분들과 맞을 것 같아요. 그 분들이 호응해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초보자 분들께서 국악을 쉽고 재미있게 배우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악기 제작자로서 앞으로서의 계획이나 소망은 무엇인가요?

A. 일반적으로 해금의 통이 크면 고음이 잘 나올 수 없다고 하지만, 제 기술로 가능하게 했습니다. 저는 제 생각과 제 길을 믿으니까. 앞으로도 제가 생각한 것을 믿고 갈 겁니다.

악기도 더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 같은 악기들 저음역을 더 보완하고, 반음 표현이 확실하게 될 수 있고, 음의 해상력도 높이고 싶어요. 악기 소리도 더 크게, 그리고 재질도 소리의 변형 없이 발수 처리해서 습기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보완할 생각이에요그리고 서양악기와 당당하게 협연 가능하고, 독주 가능한 악기를 개발하고 싶습니다.

대중음악 콘서트나 큰 공연장 음향설비 제작자로서 참여한 적도 있는데, 국악기도 제가 만든 악기, 제가 제작한 음향시스템으로 공연에 참여하고 싶어요.

 

Q. 국악계 혹은 일반 대중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A. 국악도 세계화해야 합니다. K-pop처럼 세계인의 호응을 얻으려면 국악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국악을 듣고, 또 듣고 싶어서 음반을 사고, 수익이 생겨야 산업이 유지되잖아요. 대중화, 세계화가 오래 가려면, 공연보다는 음반(음원) 산업이 활성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더 많이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죠. 전통은 전통대로 지키면서, 시대에 맞춰 변화할 필요가 있는데, 악기의 변화도 함께 가 줘야 한다는 거예요. 귀에 직접 전달하는 매체잖아요.

저도 제 자리에서 연구하고 만들어가지만, 음악 하시는 분들이나 연주자 분들도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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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허 진 음향전문가.(사진=류정은 기자). 2022.07.12.

 

그는 스피커 전문가로서 온전히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음악이 어떻게 구현 되는지 만을 연구해왔다. 서양음악이 대중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오랜 경험과 지식으로 국악계에 힘을 불어 넣고 싶어 한다. 어린 시절, 국악을 즐기고, 좋아했던 아이는 50여년이 흘러, 돌고 돌아 다시 국악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는 지금도 해금을 배우고 즐기면서, 해금 제작에도 도움을 얻는다고 한다. 서양음악과 음향학적 기술로 무장한 그의 노련함과 예민한 청력, 섬세한 손길, 그리고 국악과 국악기에 대한 애정이 국악계에 어떻게 발현될지, 앞으로 그의 악기와 그의 활동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