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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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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96>

  • 특집부
  • 등록 2022.07.0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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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소리

 

이 동 희

 

천명 <3>

종묘 사직에 관한 간곡한 청원이었다.

"그러나 신이 생각하건대, 제단을 개정하는 일은 마땅히 뒤로 미룰 일이 아니고 또 공사는 전우殿宇를 화려하게 건축하는 사치도 없는 것이고 깎고 단청 칠하는 사치도 없으며 단지 돌을 포열布列하여 단을 쌓고 바깥으로 난간과 담장을 마련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불긴不緊한 것으로 보고 여러 해 동안 지체하는 것은 매우 불가한 일입니다.”

양심이 있는 선비로서 첨지중추원사 일을 맡은 관리로서 부당하고 온당치 못함을 사안의 옳고 그름을 밝혀 건의하는 것이다. 대차고 격하였다.

"이제 만일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후세에 전하면 제소祭所가 적의適宜함을 잃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선잠先蠶 산천의 두 단은 잡석으로 지경地境을 이루었으므로 무너지는 것은 겨우 면하였으나 그 나머지 여러 단은 모두가 흙 언덕이 될 뿐입니다. 또 단소壇所에 난간으로 보호하는 것이 없어서 소 양 개 돼지가 마구 드나들어 더럽게 만들며 아울러 좁고 막히고 또 많이 기울어지고 쓰러져서 예를 행하고 음악을 쓰는 데 모두 그 의례대로 못하게 됩니다. 지금 예악이 바야흐로 성하고 제도가 닦여 밝은데 사전祀典에는 결함이 이와 같이 있으니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더군다나 일찍이 미신微臣에게 명하여 그 일을 감독하게 하였으니 어찌 세월을 구차하게 끌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여 창성한 시대의 날로 새로워지는 성덕聖德에 누가 되게 하겠습니까.”

너무도 간곡하게 너무도 지당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청원하였다. 어구가 지나치고 심할 정도였다. 통분하기까지 했다. 맡은 직을 걸고 지식과 문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그러면서 한껏 스스로를 낮추었다. 거기에 어디 하나 맞지 않고 합당하지 않은 사항이 있는가. 박연은 항상 그런 자세였다. 언제나 그랬다. 하늘이 자신에게 명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상관에 앞서 왕에게 앞서 높은 곳에서 하늘이 내려준 직이며 사명이라고 철칙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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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의 상언은 그대로 따랐다.

그는 계속해서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을 바로잡자는 방안을 아뢰었다.

"단유壇壝가 제도에 어긋나니 그 전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박연의 상언은 그 강도가 높아졌다. 예순, 천명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인가. 두려움도 없어졌다. 논어를 딸딸 외는 그의 체질에는 인자仁者는 불우不憂하고 지자知者는 불혹不惑하고 용자勇者는 불구不懼하고 하는 신조가 배어 있었다. 옳은 일 바른 일을 위하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궁행躬行을 하여온 평생이었다. 그런 그의 몸짓을 알아주고 지켜주는 고불古佛 세종 같은 음우陰佑가 있음으로 가능하였는지 모른다. 그것은 그는 늘 행운, 천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여러 신사神祀가 다 그러한데 풍운뇌우단이 더욱 심합니다. 이 신은 자연의 조화가 가장 관계가 깊어서 걸핏하면 재앙과 상서祥瑞를 가져옴으로 옛 사람은 그 제사를 중하게 여기어 각각 단유를 세우고 받들었습니다. 예법은 그 성대함을 지극히 하였고 풍악風樂도 역시 합당하게 하였습니다. 천자天子는 궁현宮懸의 연주를 사용하였고 헌가軒架의 악을 거행하였는데 역대 모두 그렇게 하여서 봉숭奉崇하는 것이 지극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역대 제후왕諸侯王의 통행하던 제도를 상고하지 아니하고 단지 홍무예제洪武禮制에 의거하여 정하였는데 신이 그 제도를 살펴보니 오등제후五等諸侯를 위하여 마련한 것이 아니고 이것은 홍무 초년에 반포하여 주부군현州府郡縣의 경내에서 행할 수 있는 제사에 실행하게 한 것이며 그것은 정당한 예법이 아닙니다.”

박연은 계속 제단 제례 그리고 예악의 부당함을 하나 하나 지적하였다.

우선 마땅치 않은 것으로 심한 것은 풍 운 뇌 우를 같은 단에서 제사지내는 것이며 산천 성황의 신을 천신과 더불어 모두 남향하게 하니 대단히 설만褻慢하고, 풍사風師 운사雲師 뇌사雷師 우사雨師의 사를 빼고 풍운뇌우 네자를 한 목패木牌에 써서 신주神主로 삼고 단지 한 위의 찬수饌需를 진설하여 제사 지내니 네 위의 천신이 같이 한 그릇의 음식을 흠향하는 것이다.

풍사 우사의 사는 신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여러 제사의 단에는 여러 위를 합해서 한 신주로 하고 한 가지로 한 그릇의 제수를 흠향하는 데가 없는데 천신에게만 그 명호名號를 깎고 그 전물奠物을 감쇄減殺하니 이것은 심이 모만侮慢하고 불경不敬하다. 또 악에는 제후국 헌가의 성대함을 사용하면서 제사에는 주현州縣의 간략한 의식을 쓰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약 깎아내리기 위해서 주현의 의식을 쓰는 것이라면 악에서 제후국의 제도를 쓰는 것은 크게 상반되는 것이다. 악에 헌가를 쓰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한다면 그 제단을 세우고 제사를 받드는 데 주현의 의식에 스스로 비의比擬함은 부당하다. 예와 악이 상반되어 전도顚倒되고 모순됨이 이러하니 우리 성조에 이런 잘못된 일이 있으리라 여겼겠는가. 봄에 빌고 가을에 보시報施하는 제향이 또한 음양이 고르고 순하는 징험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