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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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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95>

  • 특집부
  • 등록 2022.06.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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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소리

 

이 동 희

천명 <2>

애초에 봉상시奉常寺에서 소장되었던 은찬銀瓚은 종묘에서 임금이 친히 제향하는데에만 쓰던 것인데 도둑에게 잃어버리자 왕은 바로 박연에게 다시 주조鑄造하게 하였다.

"우순虞舜은 종묘 제향을 옥가(의 뜻인 가)로 하고 하후씨夏后氏는 식玉式(옥과 식이 합자된 것임)을 썼다 하니 식은 곧 작이며 옥으로 만든 것입니다. 주례周禮에 태제太帝가 선왕을 제향할 때에 옥작이라 불렀고 천자는 종묘 제향에 규찬圭瓚을 썼다 했으며 송나라 시대에 와서는 황제가 친히 태묘太廟에 제향하는데 옥가로 술을 올리고 아헌과 종헌은 은가가로 썼으며 음복에는 금가가를 썼고 태묘 제향에는 금과 은을 칠한 잔을 쓰고 유사有事가 행사할 때에는 구리로 만든 잔을 썼으니 무릇 역대의 찬과 작이 모두 옥과 은을 썼습니다.”

어명으로 집현전에서 찬 작의 제도를 상고詳考하여 아뢴 것을 예조에 전하였다.

왕은, 고제古制를 따라서 친향親享할 때의 잔과 작은 모두 은을 쓰고 섭행攝行(대행代行)할 때의 잔과 작은 모두 구리를 쓰며 친향할 때의 아헌과 종헌도 역시 은작을 쓰기를 항식恒式으로 하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박연으로 하여금 은작銀爵과 동찬銅瓚을 주조하게 하면서 하교하였다.

"이제 작을 은으로 만들었으니 목점木坫을 쓰는 것은 옳지 않소. (술잔을 얹어두는 대)도 구리로 만드는 것이 좋겠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종묘와 산릉山陵의 친향과 섭행할 때의 찬 작과 점을 명에 의하여 옛 제도대로 따르게 되었다.

박연은 악기를 제작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악장을 만들고 제기를 만드는 데도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쏟았다. 예악이라고 할까, 예와 악의 모든 분야의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조예가 깊었다. 집현전의 의견이었지만 그도 다 상고한 바였다. 제향 때 친향 친제 때의 술은 어떤 잔에 어떻게 올리고 섭행 대행 때에는 어떻게 하고 또 초헌 아헌 종헌 때는 어떻게 하고 하는 절차 규식이 다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학식이라고 할까 지식뿐 아니고 그것을 부어 만드는 주조 기술도 생각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교한 기능이 뒷받침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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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쉬임없이 책을 읽었고 조금이라고 의문이 나면 그것을 며칠이고 생각하여 풀려고 하였고 책으로 해결이 안 되면 몇백리고 찾아가고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묻고 이야기하여 해결하였다. 기술 기능적인 것도 그랬다. 악기를 만들 때나 술잔을 만들 때나 그는 목수가 되고 토기장이가 되었고 도가니에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만드는 공정을 수없이 되풀이하여 기술을 터득하는 공장工匠이 되어야 했다.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탁백이를 같이 마시고 하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눈썰미가 있고 손재주가 있다는 말을 더러 듣기도 했다. 짚신을 모양 있게 삼았고 물수제비를 남들보다 많이 떴다. 피리를 잘 분다고 하였고 글을 잘 왼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것도 같았다. 그러나 노력이 더 많았다.

시골 마을에 짚신을 잘 삼는 친구가 있었다. 나이가 위였다. 아무리 잘 삼아도 그 친구를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잘 삼아도 모양이 나지 않았고 째가 나지 않았다. 그 친구는 무슨 말을 해도 그 기술을 알으켜 주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에게 배운 비밀이라고 했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무슨 천기天機라도 되는 듯이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들려주었다고 하였다. 별의별 얘기를 다 하고 아무리 술을 받아줘도 고개를 흔들었다. 박연은 그와 코가 삐뚫어지도록 술을 마시고 자신도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고 하고 홀애자식이라고 하고 무슨 소리를 해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그의 밑천을 보여주며 자신의 것은 짝짝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그 사람의 손을 끌어다 만지게 해주자, 자기 것도 만져주게 해주며 자기도 짝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마구 웃어대다가 그 비밀을 알으켜 주는 것이었다. 잔 털을 뽑으라는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짚신의 잔털을 뜯어내자 째가 났다. 박연이 짚신을 잘 삼는 데는 그런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매사에 그랬다. 편경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인 것같이 은잔 동잔 하나를 만드는 데도 젖먹던 힘을 다 기울였다.

그리고 박연은 끊임없이 상언을 하였다.

 

 

"제향은 나라의 큰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제단祭壇이 모두 그 제도가 틀렸으므로 지난번에 신이 청하여 모두 개정하도록 명하셨고 특별히 제단감조색祭壇監造色을 세워 그 건설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 때에 종묘 사직만을 개정하고 나머지 중사中祀 소사小祀 그리고 10여 단은 역사役事도 시작하지 않은 채 이제까지 8, 9년이 되도록 국가의 영선營繕이 호번浩煩하다 하여 거행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