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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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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94>

  • 특집부
  • 등록 2022.06.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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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소리

 

이 동 희

 

천명天命 <1 >

공자는 오십에 천명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박연은 쉰을 훨씬 넘도록 천명이 무엇인지 그런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저 주어진 자리 부닥친 일을 하늘이 내려준 기회로 알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정신을 거기 다 쏟았다. 그런 10년이었다.

그 전이나 그 후나 다를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쉰 아홉이 되는 박연은 정초부터 늘 그 자리에서 생각난 것을 먹을 갈아 썼다.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면 폐백을 요대燎臺에서 불사르고 지기地祇에게 제사 지내고 인귀人鬼에게 제향하면 폐백을 예감瘞坎에 묻는데 이것은 신의 돌아가게 하는 예로서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 사람을 보내어 지켜본다는 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러 제사에 내단소內壇所의 제사는 지금 단을 쌓지 아니하고 또 구덩이를 설치하지 않아서 임시로 땅을 파서 망예望瘞를 겨우 마치자 마자 곧 훔쳐 취하여 신을 업신여기고 예를 빠뜨리게 되니 편하지 아니합니다.”

세종 18(1436) 정초 19, 제사 후의 폐백 처리 등의 상언上言을 하였다. 판봉상시사判奉常侍事 자리를 맡고서 올리는 청원이었다.

"그러나 단을 만들기 전에는 구제하기가 실로 어려우니 영녕전永寧殿과 종묘 사직 등의 제사는 이미 예감을 설치하고 또한 문단門壇도 있으며 관속官屬이 구비하였지만 예감에는 문단 속의 봉한 것도 없고 관리에게는 심찰히는 법이 없으니 원컨대 지금부터는 매양 제사 지낼 때를 당하면 기일 전 3일에 종묘와 사직의 관원이 전사관典祀官과 함께 예감을 수리하여 깨끗이 하고 전일에 넣어둔 폐백을 살펴서 노예의 도적질하려는 마음을 막게 할 것이며 폐백이 만일 썩었으면 꺼내어 불사르고 만약 썩지 않았으면 따로 저장하여 신주神廚의 닦는 수건과 시루띠甑帶의 소용에 제공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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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의 언제나와 같은 자상한 상언에 대하여 예조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였다. 그러자 예조에서 아뢰었다.

위 항의 각 곳에는 이미 맡은 관원 간수看守가 있으니 자물쇠를 설치하고 제사를 지낼 때마다 감찰점시監察點視하게 하고 씻고 소제할 때에는 맡은 관원과 함께 예감을 열어보고 만약 도적질해 가져간 사람이 있으면 죄를 과하게 하고 하는 등의 의견을 첨가하였다.

제사에 따른 폐백의 구체적 관례 규칙이 그렇게 만들어졌고 정착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냐 하는 것보다 없어서는 안 될 시행 세칙들이었고 그것을 자발스럽게 아니 너무도 자상하게 빈틈 없이 만든 것이다. 그것이 무슨 업적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의 땀흘린 행적이었다.

그는 여러 자리로 옮겨 앉아서 일을 하였다. 무슨 자리나 임명하는 대로 갈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어떤 자리 무슨 일을 맡게 되든 예와 악에 관련되는 일을 찾아서 하게 되었다. 이번 상언도 그런 것이었다.

그해 12월에는 왕이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제수除授하였다. 제수란 천거에 의하지 않고 직접 임명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며 정3품 당상직이었다. 중추부가 관장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문 무관 가운데 소속이 없는 경우 이에 소속시켜 우대하였다.

박연은 첨지중추원사로서 임무를 맡자마자 다시 상언하였다.

"주례周禮를 상고하건대, 천자天子는 규찬圭瓚이니 규로 자루를 만들고 제후諸侯는 장찬璋瓚이니 장으로 자루를 만들고 모두 조가 있다고 하였는데 주에 이르기를 조는 자이니 장에 까는 것이라 하였고 또 말하기를 잡문雜文이라 하였습니다.”

규는 옥이며 규찬은 옥으로 만든 술잔이고 장은 반쪽 서옥瑞玉이며 장찬은 장으로 만든 술잔이다. 조는 야청으로 검은 빛깔을 띤 부른 빛이며 자는 깔다는 뜻이다. 설명이 더 어려운 것 같은 대로 왕실의 의식, 제물 기명器皿의 재질과 색감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대개 찬은 종묘에서 강신降神하는 그릇인데 옛 사람의 찬의 제도가 아래에는 받치는 쟁반이 있고 자루에는 자조藉繰가 있으니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관계됨이 지극히 중하여 감히 손으로 범할 수 없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낮추고 주장할 것은 다 주장하였다.

"도형圖形을 보건대, 조의 모양이 수건과 같은 데가 있고 또 잡문을 그렸는데 지금 중국의 수건은 흔히 잡문이 있는 비단을 쓰기 때문에 그림 수건이라고 일컬으니 찬 자루의 자조로 임시 사용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잡문 자조, 설명이 잘 안 된다. 잡문은 글의 종류가 아닌 것 같은데

 

 

박연의 상언은 예조에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