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8 (수)

[연재소설] 흙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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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91>

  • 특집부
  • 등록 2022.06.02 07:30
  • 조회수 779

흙의 소리

 

이 동 희

 

연결 <3>

그해(세종 15) 11일 세종은 근정전에서 왕세자와 여러 신하에게 신년하례를 받은 후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다. 몇 번 얘기한 대로 그 때 처음으로 아악雅樂을 사용하였다.

왕은 아악을 만든 박연에게 말하였다.

"내가 조회 아악을 창제創制하고자 하는데 입법立法과 창제가 예로부터 하기가 어렵다. 임금이 하고자 하는 바를 신하가 혹 저지하고 신하가 하고자 하는 바를 임금이 혹 듣지 아니하며 비록 위와 아래서 모두 하고자 하여도 시운時運이 불리한 때도 있는데, 지금은 나의 뜻이 먼저 정하여 졌고 국가가 무사하니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이룩하오.”

이 대목을 상기시키며 회례악을 연주하는 날 세종이 말하는 조회아악이란 무엇일까, 소설은 용비어천가에 답이 있다고 하였다. 세종이 창제하자고 하는 조회아악은 박연이 마음을 다 하여 이룩해야 하는 훈민정음과 그리고 용비어천가를 의미하고 마음을 다하여 이루어야 할 훈민정음은 둘만의 은밀한 약속이었고 당시는 아직 용비어천가라는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조회아악이라고 표현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며 애초에 박연은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를 비슷한 시기에 구상하였다고 쓰고 있다.

종묘제례악의 발전된 형태가 용비어천가로 볼 수 있고 육룡六龍은 태조 태종과 태조의 4대조이며 앞에 얘기한 박연의 1번 소, 오음五音 정성正聲으로 풍속을 바로잡자는 것과 세종 9623일에 박연이, 사대부는 사조四祖까지 제사 지내기를 청하였는데, 이와 맥락이 같다. 박연은 이 때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의 제작을 제안하였다고 소설은 쓰고 있다. 그러면서 두 프로젝트가 서로 맞물려서 진행되었고 뒤에 전개되는 과정에서 박연은 훈민정음을 백성의 교육에 필요한 것으로서 생각했고 세종은 훈민정음을 조선왕조의 안정에 기여할 용비어천가 재작에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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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결론을 내렸다. 박연은 훈민정음을 창제創製하였고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創制하였다.

훈민정음은 박연의 제안과 개발 그리고 세종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創製는 전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이고 創制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제정制定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연의 훈민정음 창제 목적 원리를 말하고, 왜 세종은 훈민정음을 언문諺文이라 하였나, 세종의 언문청 박연의 정음청에 대하여 말한 다음 훈민정음 창제자는 박연이라고 하였다.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또 하나의 얘기, 신미대사信眉大師 창제설에 대하여는 가능성이 없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신미란 이름이 세종실록에 처음 등장한 것도 훈민정음 창제 3년이 지난 세종 28년이고 신미는 불경의 훈민정음 번역에 관여하면서 훈민정음 보급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박연과 신미의 관계를 밝혀 박연의 조부 박시용朴時庸은 신미의 고조부 김영이金令貽의 사위이며 김영이의 후손 신미는 박연 때문에 훈민정음의 존재를 잘 알았을 터이고 우리 글로 불경을 번역하여 한문을 모르는 사부대중에게 불경의 내용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유추하기도 하였다.

소설 박연과 훈민정음은 그러나 박연의 훈민정음 창제의 비밀을 말하지 않고 정인지鄭麟趾의 훈민정음 서문序文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이 능히 발휘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聖人으로서 제도와 시설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正音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히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인간행위의 사심私心으로 된 것이 아니다.”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세종임금의 서문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 하므로다음에 본문이 있고 그 뒤에 정인지의 서문이 있다. 발문跋文이 아니고 서문이라고 하였다.

훈민정음 창제자는 진정 누구인가, 그러나 정인지는 천기를 누설할 수 없었다. 소설은 정인지의 서문 중 그 글의 오묘한 뜻에 대하여는 신들이 언급할 일이 아니다’(若其淵源精義之妙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라고 해석한 글도 제시하하여 논리를 세웠다.

글쎄. 논리는 정연하였다. 비약이 있기는 하였지만 어디 꼬투리를 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왜 일까. 공감이 가지는 않는 것은. 스스로 그 논리를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닌데.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박연의 악장의 창작 여부를 추적하려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근본을 흔드는 결과가 되었다. 이에 대하여 소설론에 의탁하여 결론를 맡기고자 한다.

소설은 사실을 넘어 진실을 추구한다. 진실은 말없이 존재하며 영원한 것이다. 무지개 빛깔이라기 보다 하늘빛이다. 아니 빛도 없이 의미만 있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