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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 사진전] 가인 '장사익의 눈'은 무엇을 보았나?

16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스마트폰으로 찍은 80×100cm 크기의 작품 60여점

이동식 대기자
기사입력 2022.03.16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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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소리꾼 장사익의 첫 사진전 '장사익의 눈,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2022-03-16.

     

     "마음은 머리가 모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우리 시대의 가인(歌人) 장사익 씨가 인사동에서 연 사진전시장을 들어서면서 왜 이 말이 생각나는 것일까? 시인 김성옥씨가 그의 세 번째 시집 <사람의 가을> 첫 머리에 쓴 이 말처럼 우리는 노래를 하는 장 선생이 그렇게 머리가 모르는 마음의 눈을 가졌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장 선생이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그 눈은, ‘장사익의 눈이란 전시회의 부제처럼, 곧 마음만이 볼 수 있는 눈이 아닌가? 그는 우리들이 오랫동안 가꾸고 키워온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감정과 느낌과 신명을 소리로 대변해온 한 가인이다. 그런 그가 이런 마음의 눈을 갖고 있다니 놀랄 노()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로 그의 노래를 기다리던 많은 팬들과 넘어갈 수 없는 담이 생기고 열리지 않는 벽이 눈 앞에 드리웠던 것이 그에게 그런 눈을 뜨게 한 것이리라. 벽 속에 갇힌 소리의 영혼이 그 벽을 깨기 위해 앞으로 나가려다 보니 그 벽 속에 우주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푸른 하늘이 있었고 구름이 있었고 비바람이 있었고 비에 젖어 흘러내리는 흙탕물이 있었다. 가인의 눈에 우리가 보지 못한 다른 우주가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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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소리꾼 장사익의 첫 사진전 '장사익의 눈', 장사익 作,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2022-03-16.

     

    80년대 중반 우리 한국 화단을 휘몰았던 수묵 추상의 세계가 거기 있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의 사람을 받는 유영국 님의 기운과 정신과 선만 남은 산과 구름이 있었고 꺼먼 타르의 진한 생명력이 캔버스 위를 뒤덮는 윤형근이 있었고 류경채의 데포름이 있었고 남관의 문자 추상처럼 획과 선이 면이 되고 면이 다시 중첩되어 일어나는 그런 세계가 있었다. 마치 현대 우리 화단의 주요한 추상화가 하나 또는 섞여서 그 사진 속에 있구나. 그것을 화가도 아니고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가인이 자연 속에서 눈으로 보아 찾아 드러냈단 말인가?


    누구는 장 선생이 일찍이 수많은 이 시대 대가들과 교류하며 그림을 보고 생각하고, 화랑을 하면서 직접 만지고 다루기도 한 경력과 무관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날 장 선생이 노래하는 무대 밑에서 요즈음 유행하는 막걸리의 맨 마지막 찌꺼기까지가 뻑뻑하게 담겨 있는 사발 잔을 죽 들이키는 듯한 감동을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묘한 맛은 남의 것을 보아서만 가능한 것일까? 아니, 그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장 선생에게 그런 마음의 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자신 표현대로 원래 자발이 없는 사람이어서 남이 걸어간 길, 남이 열어놓은 길만을 따라가지 않고, 남이 가르쳐 준 박자나 장단에 얽매이지 않고 엇박자로 내는 그의 노래에 담긴 마음이 그러한 새로운 눈을 열어준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다른 시인은 인생이 우리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들에게 뿌듯한 만족을 오랫동안 주지 못했기에 우리들의 삶은 들인 밑천을 생각하면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가다가 길을 멈추게 된다. 공연히 서글프고 외롭고 힘들고, 그래서 힘이 빠져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때에 장 선생은 작은 핸드폰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가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벽에서 새로운 질서를 발견한 것이고, 그 무생물, 무채색의 세계에서 그들의 춤과 노래를 발견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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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김녕만 사진전-'장사익, 당신은 찔레꽃'에서 필자, 경인미술관 제5전시실, 2020-10-07.

     

    우리는 안다. 장사익이란 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46살의 나이에도 일정한 직업이 없이 태평소를 불며 사물놀이패를 따라다니던 19946월 잠실 5단지 옆을 지나는데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찌르더란다. 당시 아파트 담장에는 장미가 많이 심어져 있었기에 당연히 장미꽃이겠거니 하고 냄새를 따라가 보니 장미에서는 전혀 냄새가 없고 어느 잘 보이지 않는 한구석에 하얀 찔레꽃이 피어있는데 거기서 그렇게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을 보고 울컥했단다.


     "! 아무도 안 보는 이 보잘것 없는 찔레꽃에서 이런 좋은 향기가 나다니. 그래. 출세해서 고대광실에 번쩍거리는 승용차를 자랑하며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 서민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아니겠나? 속으로 진한 향기를 담고 각자 자기의 삶을 사는 ....” 그래서 만든 것이 '찔레꽃'이란 노래이고 그것은 곧 장사익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것으로서 그의 삶은 찔레꽃의 향기를 우리들에게 선사했다. 40대 후반에 시작한 노래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지만. 그만큼 그때까지 눈물 속에 지냈음을 우리는 안다. 직업을 열다섯 번이나 바꾸었고, 맨 마지막 직장인 카센터에서 그때 한참 잘나가는 가수의 막 새로 나온 그랜져 승용차에 광택을 입혀준다고 나섰다가 생채기를 내고 한 달 동안이나 봐달라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는 장사익.


    그러다가 어느 날 노래의 문이 기적처럼 덜컹 열리자 그동안 인생에서 쌓아놓았던 모든 감정과 응어리와 한이 목 안에서부터 가래에 담겨 튀어나간 듯, 그의 노래는 우리들의 가슴을 건드리고 눈물샘을 터지게 했음을....... 박자도 안 맞고 가락도 늘어지기 일쑤고 반주가 힘들어 손으로 박자를 따라서 쳐볼 양이면 영락없이 어긋나서 손바닥이 무안해지는 그런 노래들로 우리들의 쓰린 가슴을 풀어주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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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소리꾼 장사익의 첫 사진전 '장사익의 눈', 장사익 作.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2022-03-16.

      

    그의 노래는 굳이 말하자면 국악인지 가요인지 재즈인지.... 뭐 이런 것 중의 하나일 수도 있고 둘일 수도 있고 다 아닐 수도 있고 또는 다 합친 것일 수도 있다는데, 이번에 보여준 장사익의 사진들도 바로 그렇게 동양화인지, 서양화인지, 먹그림인지, 유화인지, 그래픽인지 혹은 치덕치덕 물감을 바른 것인지...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런 것들인데도 자세히 보는 사진은 맞는 것 같되, 사람들에게 감탄을 하게 만들고 아! 이렇게 하는 것도 예술이 되는구나... 하는 새로운 인식을 열어주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은 예술이란 것은 형식의 문제, 매체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으면 늘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음을 이 가인을 통해서. 그것도 소리 예술이 아닌 시각예술의 형태로 알게 되다니.... 참으로 세상은 아름답구나. 요즈음 노래하는 분들, 연기하는 분들이 그림을 그려 이름을 내는 분들이 있지만, 장사익 씨가 마음의 눈으로 본 세계는 그것과는 달리 벽을 넘고 그 속과 너머에 있는 무심한 자연의 리듬을 그만의 눈으로 파헤쳤다는 데서 그 놀라움과 감동이 당분간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과의 거래에서 타산이 맞지 않는 길을 걸어오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타산이 맞지 않으니 새로운 타산이 생기는 것이고 그것이 곧 창조의 기쁨이고 창작의 즐거움이라면 우리 삶에서 전혀 예상 못한 즐거움과 기쁨을 가인 장사익의 사진전이 열리는 인사동 인사아트플라자 갤러리 전시장에서 보는 것이다.


    그의 전시는 다음 주 월요일인 321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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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소리꾼 장사익의 첫 사진전 '장사익의 눈', 장사익 作.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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