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이규진(편고재 주인)
근래 글씨도 좋고 각도 좋은 육낙정(六樂亭) 현판 한 점을 구했다. 그런데 이를 통해 여섯 가지 즐거움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자료를 찾아보니 목은 이색이 노인의 다섯 가지 좌절을 이야기 한 것이 있었다. 내용인즉,
첫째 낮에는 꾸벅꾸벅 졸지만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둘째 곡할 때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는 눈물이 나며
셋째 30년 전 일은 기억하면서 눈앞의 일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넷째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는 없고 이빨 사이에 다 끼고
다섯째 흰 얼굴은 검어 지는데 검은 머리는 희어지네.
이에 반해 다산 정약용이 노인의 여섯 가지 즐거움을 이야기 한 것도 있었다. 목은이 노인의 부정적인 면을 논했다면 다산은 이와는 반대로 긍정적으로 즐거움을 논하고 있는데 이는 나이가 들면서 일어나는 일을 해학적으로 풀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짜피 나이 들어 일어나고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다산처럼 긍정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다산의 여섯 가지 즐거움이란,
첫째 대머리가 되니 빗이 필요치 않고
둘째 이가 없으니 치통이 사라지고
셋째 눈이 어두우니 공부를 안해 편안하고
넷째 귀가 어두우니 세상 시비에서 멀어지며
다섯째 붓 가는대로 글을 쓰니 손 볼 필요가 없으며
여섯째 하수들과 바둑을 두니 여유가 있어 좋다.
그런데 다산의 여섯 가지 즐거움 중에서 셋째의 눈이 어두우니 공부를 안해 편안하고는 글을 안 읽으니 편안하고로 고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다섯째와 여섯째도 나이가 들어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의미 같은데 내게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점도 있다. 그렇다고 하면 도편으로 인한 즐거움은 없는 것일까. 그래서 여섯 가지를 만들어 보았다.
첫째 크기가 작아 간수가 용이하다.
둘째 가격이 저렴해 구입하기가 쉽다.
셋째 탐내는 사람이 적어 도둑맞을 염려가 없다.
넷째 이미 깨져 있어 더 깨질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다섯째 온전한 것과는 달리 속살인 태토를 볼 수 있다.
여섯째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을 할 수 있다.
억지춘향이 격으로 여섯 가지 즐거움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맞는 도편이 없을까 궁리를 하다 찾아낸 것이 분청흑백상감접시편이다. 이 접시편은 사방으로 손상이 심했던지 주변을 자르고 갈아내 둥근 모습으로 남아 있다. 무슨 받침 같은 것으로 사용하기 위해 손을 댄 모습인데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분청흑백상감접시편은 잘라 낸 모습이 너무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무늬만 놓고 보면 허술히 볼 그런 물건은 아니다. 접시 중앙에는 국화문을 새기고 이를 두 개의 선으로 둘러싼 후 흑백의 연주문을 돌린 후 또 다시 두 개의 선으로 감싸고 있다. 그 밖으로는 철사를 말아 돌린 듯한 특이한 백상감의 무늬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흑상감의 무늬를 빼꼭히 채워 놓고 있다. 한 마디로 심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그런 도안이다. 이 분청흑백상감접시편은 도편의 여섯 가지 즐거움에 모두 해당하는 자료라고 할 수 있지만 글쎄, 여섯째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 아직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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