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나는 호남우도농악에 속하는 무안읍 양림마을의 잡색 복식을 주목하고 있다. 대개 농악단 잡색으로서의 양반 캐릭터는 게으른 논주인 정도의 컨셉이다. 하지만 양림마을의 잡색 양반은 한편으로 '살보'를 들었다. 일반적으로는 살포라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살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살포갱이(경남 영산)', 살피(경북), 논물광이(강원), 살보(전남), 삽가래(전남 보성), 손가래(경북), 살보가래(전남 강진)' 등으로 불린다. 손바닥만한 날에 비하여 자루는 길어서 2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다. 남부지방에서는 대나무를 자루로 박아 쓰는 일이 많다. 날의 형태는 네모난 날 끝을 위로 두 번 구부리고 괴통을 단 것, 깻잎 모양으로 앞이 뾰족하고 끝이 위로 두 번 구부러져서 괴통이 달린 것(이를 오리살포라 한다), 말굽쇠형 따비처럼 직사각형의 몸채에 말굽쇠형의 날을 끼운 것, 괭이의 날처럼 위로 한번 구부리고 괴통을 단 것 등 매우 다양하다."
이상하게 생긴 이 도구를 어디에 쓰는가? 논의 물꼬를 트거나 막을 때 쓰는 농기구 중의 하나다. 논에 나갈 때 지팡이 대신 짚고 다니기도 한다. 그것뿐일까? 용기(龍旗) 혹은 농기(農旗)로 호명되는 농악단의 깃발을 보면 염제 신농씨가 들고 있는 살보가 보인다. 주지하듯이 염제 신농씨는 신화시대의 상제(上帝) 즉 하나님이다. 농업과 의약을 최초로 재배하고 발명한 신이기도 하다. 강진 용소마을의 농기를 보면 염제신농씨가 용을 타고 살보를 든 형상이 그려져 있다. 거북이와 물고기 등을 포함해 다양한 민화적 해석은 차후 지면을 기약한다.
신농씨가 들고 있는 살보는 수도작의 키워드라고나 할까. 농업의 코어코드라고나 할까. 농사의 신이 들고 있는 핵심적인 농사도구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무안우도농악에서는 담뱃대나 들고 거드렁거릴 주제의 잡색 양반이 왜 살보를 들고 다니는 것일까? 무안우도농악이 바로 두레풍장 농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이보형에 의하면 이 두레농악 또한 당산제 등의 의례음악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농악대는 농신을 받아 들에 나가 한 바퀴 돌고 마을마당에서 농신제를 지내기도 하고 농사풀이라는 농사짓는 모양새를 꾸미기도 한다. 이러한 농신제나 김매기 할 때의 풍농제 농악을 두레굿이라 한다. 진행 형식이 당산제와 같으므로 종교적인 농악이 두레농악으로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향후 여러 용례를 통해 살펴보겠지만 무안읍 양림마을의 농악은 정월 당산제와 김매기 두레 풍장이 마치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살보는 지배층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사례가 많으며 임금이 하사하기도 했다. 나는 이를 두레풍장과 관련하여 주목하고 있다. 장차 좌도농악과 우도농악의 편의주의적 구분법에 대해서도 이의제기를 할 요량이지만 마당밟이와 두레풍장을 변별하여 논의해왔던 저간의 관행에도 문제제기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렇다. 살보를 든 농악의 잡색 양반이 농기 민화로 들어갔거나 농기의 신농씨가 농악의 잡색 양반으로 뛰쳐나왔거나, 남도의 두레풍장과 농악은 하나의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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